양진환의 아내가 남편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한서 여자친구 있었어요?”양진환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당연한 소릴. 생긴 것도 멀끔하고 능력도 있으니 여자친구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양진환의 아내가 말했다. “난 우리 지원이랑 이어주려고 했더니.”“어어 주긴 뭘 이어줘. 좋은 애인 건 사실이지만 한서는 이혼했었잖아. 우린 지원이 하나뿐인데, 난 하 밖에 없는 내 딸은 이혼한 남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아.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길 줄 알고. 송병천 딸이 가지라고 해.”양진환의 아내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이혼을 신경 써요?”“어떤 세월이든 난 상관없어. 멋대로 쓸데없는 일 만들지 마.”양진환의 아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인데 말하는 것 좀 봐요. 당신만 딸 아까운 줄 알아요? 나도 우리 딸 아까워요. 매번 당신만 좋은 아빠고 난 나쁜 엄마지!”양진환은 얼른 아내의 손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내가 말을 예쁘게 못 해서 그래. 아량 넓은 당신이 용서해.”그의 아내는 마지못해 양진환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현진과 강한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벗어난 뒤 한현진이 강한서의 손을 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서 놀아. 난 일 보러 가야겠어.”강한서가 그녀를 잡아세웠다. “너 무슨 일을 벌이려고?”한현진이 말했다. “양지원 씨 곁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지원 씨에게 보여주려고.”강한서가 멈칫했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바짝 다가와 그의 귓가에 속삭이더니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다녀올게.”그러니 한현진이 곧 자리를 떠났다. 마음이 놓이지 않은 강한서가 민경하를 불렀다. “민 실장이 가서 현진이 좀 지켜봐요.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뒤처리 좀 해줘요.”민경하가 말했다. “사모님 수단 좋으시잖아요.”강한서가 민경하를 노려보았다. “가라고 하면 좀 가요.”민경하가
양지원은 서서히,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과 친구로 지내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양지원이라는 고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한현진은 예외였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오히려 그 모습에 반감이 줄어들었다. 양지원이 덤덤하게 말했다. “저와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거라면, 오늘 그 디자이너를 내쫓지 마셨어야 했어요.”“전 양지원 씨를 제 단골로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양지원 씨가 제 가게에서 더 많이 소비하게 하기 위해 예쁘지도 않은 걸 예쁘다고 칭찬하는, 그런 식의 강매라면 전 차라리 하지 않을 거예요.”양지원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결국은 제가 그쪽 가게에서 제품을 사게 하려는 거잖아요.”한현진이 웃음을 거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지원 씨. 맞지 않는 곳에 억지로 어울리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지원 씨는 그 사람들과 달라요. 이 바닥에서 양 대표님 정도면, 지원 씨가 본인을 억지로 바꿔가며 맞추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그들이 지원 씨에게 맞춰야 하죠.”멍해졌던 양지원이 곧 창피한 듯 한현진의 말을 받아쳤다. “누가 맞췄다고 그래요? 전 단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할 뿐이에요.”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정말 좋아하는 거라면 제가 지원 씨 액세서리를 뺐을 때, 그렇게까지 불편한 기색을 하지 마셨어야 해요. 지원 씨에게 그건 단순히 액세서리가 아니라, 그들과 어울리는 통행증 같은 거잖아요. 하지만 사실 지원 씨에게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아요. 양 대표님께서 지원 씨를 위해 가꿔주신 세상은, 지원 씨가 자유롭게 지원 씨 답게 살기에 충분해요. 힘들게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얘기죠.”양지원이 뭐라고 얘기를 하려는데 커튼 너머로 불만을 늘어놓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고 불러놓고는 한참이나 지났는데, 어디 간 거야?”“나도 못 봤어. 설마 우리 갖고 장난하는 거야?”안하윤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안하윤이 굳어버린 몸을 돌려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 “지원아. 네... 네가 여기 어떻게?”양지원이 냉랭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내가 여기 없었으면, 저에 대한 안하윤 씨의 진심을 어떻게 알았겠어요?”“지원아, 그... 방금 그건 오해야. 난...”양지원이 차가운 태도로 안하윤의 말을 끊었다. “안하윤 씨, 저희 이름 부를 정도로 친하진 않은 것 같은데요.”안하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양지원이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저와 안하윤 씨는 친하지 않아요. 친구도 할 수 없고요. 여러분 중 안하윤 씨 친구가 계시다면 앞으로는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이런 사람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거든요. 친구의 친구로도 말이죠.”양지원의 뜻은 너무도 분명했다. 방금 한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할 테니 안하윤과 친구를 할 것인지, 자신과 친구를 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안하윤을 포함한 그들 모두 양지원와 친분을 쌓고 싶어 했다. 유씨 가문이 사건에 휘말린 후, 그들과 제일 친분이 깊었던 안하윤 집안이 제일 큰 손해를 입었다. 그들은 지금 억지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안하윤이 업계의 많은 파티에 참석하는 건 더 많은 인맥을 만들어 사업을 늘리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양지원의 스타일이 아무리 촌스러워도, 안하윤은 양지원에게 사업을 구걸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언행은 사실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양지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안하윤에게서 멀어졌다. 심지어 단 한 명도 안하윤을 대신해 설명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변명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양지원이 안하윤이 하는 말을 전부 들었다는 건 자신들이 한 말도 당연히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양지원이 그걸 문제 삼지 않아 준 상황에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굳이 안하윤의 편을 들 필요는 없었다. 안하윤은 창백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
“아무것도 모르면서, 현진 씨가 뭔데 멋대로 구는 거예요?”한현진은 양지원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양지원 씨. 전에 만나셨던 친구분들은, 지원 씨가 패션에 대해 모른다고 비웃던가요?”양지원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친구는 그저 친구일 뿐이었다. 높은 곳에 올랐다고 비교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인생의 밑바닥을 걷고 있을 때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가끔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절대 뒤에서 칼을 꽂지 않았다. “지원 씨. 친구를 사귀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주변 환경에 어울리려는 것도요. 하지만 그 방향과 사람이 틀렸어요. 정말 지원 씨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모든 곳에서 지원 씨 덕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지원 씨도 보셨다시피, 이 바닥의 많은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요.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이익을 위해, 자신조차도 역겨운 모습을 연기하죠. 하지만 지원 씨는 그럴 필요 없어요. 지원 씨를 뭐라고 하든, 지원 씨가 가진 모든 것, 지원 씨 지금의 위치는 그런 인간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만질 수 없는 높은 곳이라고요.”“그 인간들은 어두운 구석에서 지원 씨를 깎아내리면서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할 뿐이에요. ‘봐, 양진환 대표 딸이면 뭐 어쩔 거야? 결국은 촌년일 뿐이잖아.’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요? 그 인간들은 지원 씨 앞에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지원 씨 비위를 맞추려고 하죠. 지원 씨 한마디면 그들은 쉽게 계약을 따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지원 씨는 여기에 맞출 필요가 전혀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원 씨에게 맞춰야 하죠.”양지원이 입술을 짓이기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현진도 이번 도박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비록 양지원은 강민서처럼 곱게 자란 부잣집 딸 만의 도도하고 오만한 모습은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현실을 직시했을지는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현진이 그를 밀어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냥 이혼해. 2천억이면 너보다 젊고 멋있는 남자를 한 무더기 찾을 수 있어.”“...”‘쓸데없는 얘기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송병천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진아. 몇 시에 올 거니? 아빠가 이미 침대 정리를 끝냈어. 네 오빠가 수면에 좋은 아로마 오일도 준비했고. 얼른 돌아와서 마음에 드는지 보렴.”한현진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9시가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자신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빠, 저 얼른 들어갈게요. 늦었는데 기다리지 마세요.”“늦긴. 너도 기다릴 겸 아직 TV 보고 있었어. 운전 번거로울까 봐 데리러 가게 사람 보내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네 오빠더러 가라고 할까? 이렇게 늦었는데, 마음이 놓이질 않네.”“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강한서가 데려다줄 거예요.”“...”마음이 놓이지 않는 건 바로 강한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집으로 데려온 딸이, 곧 다시 강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다시 한집안에서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이 되니까. 하지만 한현진이 좋아하니, 더 이상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송병천은 어쩔 수 없이 당부했다. “한서에게 운전 조심하라고 해. 급할 것 없다고.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이야.”“네.”전화를 끊은 후, 강한서와 한현진은 양진환 부부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한성우는 일 처리 하나는 빨랐다. 한현진이 그에게 부탁한 물건은 진작 준비되어 있었다. 강한서가 차에 옮긴 후 한현진을 태우고 청하구에 있는 송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 송병천은 실제로 집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TV의 내용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은 문밖에 집중되어 있었다. 차량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그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옆에 앉아있던 송민준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놀리듯 말했다. “아예 의자를 가져가 문 앞에
송가람은 싸구려 에코백을 보며 자신은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명품 가방을 떠올렸다. 그녀는 하마터면 미소도 유지하지 못할 뻔 했다. 이런 싸구려 물건으로 자신의 명품 가방을 바꾸다니. ‘대체 어떻게 뻔뻔하게 저런 얘기를 하는 거야?’송병천이 한현진을 칭찬했다. “역시 현진이가 생각이 깊어.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다니.”송가람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질투를 누르며 에코백을 열었다. 안을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비웃음이 걸렸다. 역시나, 송가람의 생각대로 한현진이 가지고 온 물건은 전부 싸구려뿐이었다. 한현진이 눈을 예쁘게 휘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람 언니,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안 들면 저기 더 있어요. 마음에 드는 거로 바꿔요.”송가람은 위선적인 한현진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당연히 현진 씨에겐 제일 좋은 거로 직접 골랐겠죠. 우리가 취향이 그렇게 비슷한데, 현진 씨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저도 마음에 들어요.”한현진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입꼬리를 씩 올려 미소 지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한현진이 집으로 돌아온 후, 송병천은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행여라도 딸이 불편할까, 집에서 누구보다 분주하게 다녔다. 정리를 마치고 송병천은 또 한현진을 끌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그녀의 어렸을 적 이야기였다. 한현진도 차분하게 송병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눈 깜짝할 사이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계속 말이 없던 서해금이 귀띔했다. “여보, 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방으로 들어가요. 현진이도 첫날인데, 잠자리가 적응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새 방에 적응도 좀 해야죠.”송병천이 아쉬움 가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일찍 쉬어. 아빠 방은 바로 네 위층이야. 무슨 일 있으면 아빠 불러.”“네. 그럼 아빠, 아주머니도 일찍 쉬세요.”송가람도 옆에서 그녀에게 잘 잘고 인사를 전한 뒤 송병천 부부와 함께 자리에서
송민준이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나야.”한현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오빠, 시크한 척 하더니 100일에도 기저귀를 했네요.”송민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침대에 실수도 했는걸.”한현진이 웃음을 터트리며 계속 사진첩을 넘겼다.송민준이 태어난 후 사진 속 가족은 눈에 띄게 점점 화목해졌다. 사진첩엔 송민준의 성장을 기록 했을 뿐만 아니라 세 식구의 가족사진도 꽤 있었다.마지막 가족사진으로 넘어 가자 송민준은 이미 5, 6살 정도로 보였고 그의 앞에는 송병천이 한아름을 부축 한 채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한아름은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의 배는 이미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한아름은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임신 때문이었는지 전 사진들과 달리 얼굴은 조금 더 통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엄마 특유의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따뜻함 그녀의 모습을 한껏 기품 있게 만들었다.그것이 마지막 사진이었다.사진첩에 담겨 있던 모든 기록은 거기에서 또 끊어졌다.송민준이 말했다.“엄마가 널 가졌을 때 계속 식욕이 없으셔서 자신이 음식을 먹지 못해서 네가 제대로 크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어. 그래서 매일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으려고 했고 몇 개월 뒤에야 체중이 조금 붙기 시작했지. 너 어렸을 때 몸은 좀 어땠어?”한현진이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길러 주신 엄마가 그러셨는데 전 신생아 중에서는 제법 튼실했대요.”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아셨으면 흐뭇해 하셨을 거야.”한현진은 코끝이 찡 했고 눈시울도 붉어졌다.“오빠, 엄마... 엄마는 절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거예요?”송민준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다 지나간 일이야. 네가 이제라도 건강하게 돌아왔으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한현진이 사진첩을 닫으며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오빠 전 대체 어떻게 바뀌게 된 거예요? 알아 내셨어요?”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겼다.“요즘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어
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직원과 그렇게 친하면 제가 왜 그 디자이너를 해고했는지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든, 뭐라도 얘기 좀 해줘. 그래야 나도 가서 대답해 주지.”송가람이 직접 물어봐달라고 부탁했으니 송민준도 당연히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단지 한현진에게 둘러댈 핑곗거리를 달라고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송가람은 서해금과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아꼈었던 동생이었다. 송민준에게도 당연히 어느 정도 감정이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건 후, 송가람 역시 그들 남매 사이를 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송민준은 송가람과 거리감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한현진이 입술을 삐죽였다. “오빠, 스트레인지는 이제 제 소관이에요. 그러니 제가 당연히 정리해야죠. 저도 그렇게 빨리 사람을 해고할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디자이너가 기어코 기어오르잖아요. 능력도 없으면서 아부 밖에 할 줄 모르고. 입만 열면 서 대표님이 어쩌고 하면서요. 지금 스트레인지 대표는 저예요. 전 대표로 저를 누르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죠. 날 대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에게도 굳이 곁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요. 스트레인지는 명품만 취급하는 곳이에요. 그러니 호객 행위는 절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요. 통 큰 고객만 보면 어떻게든 들러붙는 게 아니라, 브랜드라면 당연히 브랜드의 자신감과 자존심이 있어야 해요. 제가 만약 쇼핑하면서 이런 사람을 마주친다면, 구매 욕구가 완전히 사라졌을 거예요. 스트레인지에는 문제점이 많아요. 저를 대표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품과 서비스도 엉망이에요. 제가 어떻게든 먼저 해결할 구멍을 찾아야죠.”송민준이 물었다. “전부 바꿀 생각인 거야?”한현진이 멈칫했다. “설마요. 밖에서 스카우트해 오고, 새로운 직원을 모집하고 다시 교육하고 맞춰가면 시간도 길고 너무 많은 정력이 필요해요. 게다가 전부 갈아엎는 건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오자마자 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