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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작가: 송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29 14:22:45
이를 꽉 깨문 성유리의 목소리가 극도로 갈라져 있었다.

성유리는 그동안 이미 그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스스로 과대평가를 한 것이었다.

이제 성씨 집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박한빈만이 몇 마디 말만 해도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그녀의 오장육부를 도려내는 것 같았다.

박한빈은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응시하다가 곧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억울해? 그럼 이혼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다른 남자랑 맞선 보는 건 얼마나 고고한 행위지?”

성유리가 말하지 않자 박한빈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내 침대에 먼저 기어오른 건 너야. 그땐 왜 천박하다는 생각 안 했어?”

그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조롱하는 듯한 표정이 꼭 성유리의 뺨을 손으로 때린 것 같았다.

성유리는 이를 악물었지만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은 점점 느슨해졌다.

박한빈은 그녀와 빙빙 말을 주고받을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유리, 사실 너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 말을 남기고 그가 걸음을 옮겨 앞으로 가려는 순간 뒤에서 성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간은요?”

박한빈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성유리도 마침 고개를 들었다.

이미 눈꼬리는 빨개져 있었고 입술은 깨물어 피가 나는데도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박한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젯밤 자신을 바라보던 촉촉한 눈동자가 떠올라 목울대가 꿈틀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2년으로 하자.”

성유리는 더욱 이를 꽉 물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박한빈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어디 가는 거야?”

“제집으로 가야죠.”

대답을 마친 성유리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내가 필요 없죠? 필요할 때 올게요.”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녀의 마음은 한결 진정된 상태였고 사무적인 어투는 둘 사이의 일을 완전히 거래 취급하고 있었다.

박한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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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박한빈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방으로 들어가 보니 안에는 예상대로 남자들만 가득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요즘 이런 자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예전에는 가끔 박한빈과 함께 공개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자리에도 나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결혼식 때였지만 그 결혼식조차 끝까지 진행되지 못해 참석자들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자 남자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우리 아내가 전에 성유리 씨랑 꼭 얘기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요 며칠 집에서 차 모임을 열었는데 시간 되시면 꼭 오십시오.” “성유리 씨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전에 경매장에서…” 이런 자리에서 하는 형식적인 대화는 성유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과거 성리 그룹에서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했지만 지금은 단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박한빈이 그녀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고는 바로 나서서 그녀의 술잔을 대신 받아들었다. “지금은 유리가 마실 수 없으니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사실 그의 신분으로는 그냥 그녀를 데리고 나가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박한빈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 같았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웃음이 살짝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박 대표님이 부인을 참 아끼시네요.” “성유리 씨 남편 복이 정말 많으십니다.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박한빈이 두 번째 잔을 들려는 것을 보자 그제야 나서서 그를 막았다.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잖아요. 죽고 싶어서 이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행동은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 주변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는 더 커졌지만 성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박한빈을 계속 노려봤다. 박한빈은 자신을 말리려는 성유리를 보며 웃음을 짓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6화

    그녀의 말이 끝나고 박한빈은 잠시 멍해지더니 천천히 물었다.“내가 왜 너를 도와야 하지?” “나... 아니, 너는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남자라면 여자가 이런 식으로 모욕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보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최정민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맞은편에 서 있는 박한빈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의무감을 느끼지 않아. 그럴 생각도 없고.” “너...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네!” 최정민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다 같은 패거리잖아!” 박한빈은 더 이상 그녀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걸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최정민이 갑자기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 행동에 박한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손을 확 밀쳐냈다. “꺼져.”그의 목소리는 차가움을 넘어 얼음처럼 서늘했다. 최정민은 처음엔 분노에 차 있었지만 박한빈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보자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박한빈은 최정민에게 조금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그때 매니저의 전화가 걸려 왔고 매니저는 그녀에게 당장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이미 해고된 최정민으로서는 매니저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으니 그녀는 바로 자신의 물건을 챙겨 식당을 떠나버렸다.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최정민은 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박한빈이었다. 조금 전 그가 보였던 눈빛이 떠오른 최정민은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졌다. 그와 다시 몇 마디라도 나눠볼까 다가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표정과 분위기가 아까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한빈은 차 옆에 서서 차 안에 있는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정민은 거리가 멀어 차 안의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사실 그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5화

    최정민은 분명 이런 상황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남자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휙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죠?”  남자는 그냥 장난으로 가볍게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런 행동은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최정민의 강렬한 반응에 그는 멈칫했다가 곧 비웃듯 말했다.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제가 뭘 했냐고요? 방금 당신이 저를 만졌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봤을 거예요!” 최정민은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그때까지 박한빈은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최정민의 시선도 마침 박한빈에게 머물렀지만 이내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누가 널 만졌다고?” 남자는 여전히 조롱하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새로 들어온 거야?” “맞아요.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요! 이 방엔 CCTV가 있어요. 확인하면 당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나 올 겁니다!” 최정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는 최정민의 말에 잔뜩 화가 나서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감히 네가 지금 나한테 까불어? 네가 뭔데!” 이때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남자는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박한빈이 차분하고도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죠?”  그의 평온한 한마디는 남자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렸다. 박한빈의 존재만으로도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서둘러 중재하려 했고 마침 식당의 매니저가 방으로 들어왔다. 최정민은 눈가가 붉어진 채 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매니저는 들어오자마자 오히려 그녀를 꾸짖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방에서 끌어내며 남자들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당연히 최정민은 사과할 수 없다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4화

    성유리는 병실 밖에서 잠시 머물다 천천히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병실 밖에 앉아 있는 김서영을 마주쳤다. 김서영은 병실 문 앞에 앉아 성유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성유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서영은 성유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돌아왔네?” 성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한빈이를 돌보느라 고생 많았어.” 김서영이 말을 이어갔다. “한빈이가 성격이 워낙 가만히 있질 못하잖아. 이렇게 아픈 상황에서도 매일 일을 하고 있으니 네가 잘 지켜봐 줘야 해.” 성유리는 무슨 대답을 하려고 했다. 그들의 관계가 아직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김서영이 그렇게 당부하니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김서영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계속 말했다. “비록 결혼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너희 둘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잖아. 그래서 나는 너무 기뻐.” 그녀는 성유리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잘 지내길 바란다. 약속할 수 있겠니?” 그 말에는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고 김서영의 눈빛도 사뭇 진지해졌다. 성유리는 순간 가슴이 뛰었지만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김서영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성유리는 왜 그녀의 부탁에 그렇게 쉽게 응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병실로 돌아갔을 때, 예상대로 박한빈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고 그녀의 행동을 쳐다보던 박한빈은 그녀가 떠날 준비를 하자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집에 가요.” “아직 시간이 이른데 벌써 가려고?” “어차피 당신은 이제 간호가 필요 없잖아요?” 성유리는 그의 손에 있던 서류를 한 번 쓱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이렇게 일을 잘하고 있는 걸 보니.” 박한빈은 순간 멈칫했고 그녀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3화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박한빈에게 물었다. “깨어났어요?” 그녀가 다가오자 박한빈의 얼굴에 서려 있던 감정이 단숨에 사라졌다.“정말 놀랐잖아. 얼마 전 갑자기 응급실 근무에 차출되어 며칠간 정신없이 바빴는데 오늘 간신히 핸드폰을 확인했어. 그리고 처음으로 너에 대한 뉴스를 확인했고.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최정민이 눈가가 붉어진 채로 박한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박한빈은 눈살을 바짝 찌푸리며 물었다.“여긴 왜 온 거지?”“너 보러 왔지. 마침 이 방에 아무도 없고 나도 마침 퇴근해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온 거였어. 그런데 네가 딱 깨어난 거야. 물 마실래? 내가 따라줄게.” “나가.” 최정민이 말을 이어가며 자리에 앉으려 하자 박한빈은 단호히 말했다. 그의 차가운 태도에 최정민은 잠시 멈칫했다. “내가 한 말은 못 알아들었어?” 박한빈의 목소리는 더욱 냉랭해졌다. 최정민은 처음엔 걱정과 열정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태도에 점차 무표정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나가지 않고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냉정할 필요 있나? 그냥 잠깐 보러 온 건데.” 박한빈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최정민은 그의 태도에 이를 악물며 계속 말했다. “좋아. 내가 괜히 참견했네. 다음엔 안 오면 되잖아? 걱정 마, 너한테서 빌린 돈은 반드시 갚을 테니까. 돈 갚고 나면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닌 거야!” 최정민의 마지막 말에 박한빈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우리 사이라니? 대체 언제부터 그런 게 있었던 거지? 또 누가 쟤랑 우리라는 말을 쓴다고?’ 그러나 박한빈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최정민은 이미 방을 나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슬퍼 보였지만 그것은 박한빈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성유리는 언제 나간 거지? 혹시 이 상황을 보고 오해한 건 아니겠지?’ 그 생각에 박한빈은 급히 핸드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2화

    그들은 전에 훨씬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박한빈이 손에 힘을 살짝 풀자 성유리는 바로 손을 빼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성유리를 조용히 쳐다보며 그녀가 먹여주기를 기다렸다. 결국 성유리는 계속해서 그의 요청에 응했고 이번에는 그도 얌전히 협조했기 때문에 한 그릇의 죽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하지만 박한빈은 곧바로 쉬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기대앉아 성유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여 도시락을 정리했다. “전 가볼게요. 푹 쉬세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그대로 돌아서려 했지만 박한빈이 그녀를 다시 붙잡았다. “왜 이렇게 급하게 가려고 해?”박한빈이 물었다. “나랑 잠깐만 더 있어 줄래?” 성유리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하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그의 곁에 앉았다. 사실 박한빈은 그녀가 거절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오늘 자신이 조금 지나친 부탁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성유리는 예상과 달리 박한빈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지금 그녀는 박한빈 바로 옆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고작 20cm 남짓이었다. 병실 안에는 여전히 둘 뿐이었고 박한빈은 성유리의 숨결이 매우 뚜렷하게 느껴졌다. 원래 박한빈은 잠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배를 든든히 채워서인지 점점 졸음이 밀려왔고 살짝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박한빈은 그날 아주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그는 성유리가 귀여운 딸을 낳는 장면을 보았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아이는 박한빈의 품에 안겨 있었고 마치 단단한 끈처럼 그와 성유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단단히 이어진 것 같았다. 박한빈은 그 아이가 자라난 모습도 꿈에서 보았는데 성유리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한빈은 꿈속에서 굳게 다짐했다. 딸의 평생을 걱정 없고 평온하게 만들어주겠다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1화

    박한빈은 그녀의 말에 멈칫했다.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성유리는 그의 모습에 서훈을 쳐다보며 물었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죠?” “그런데 사모님 의사 선생님께서 박 대표님은 이미...” 서훈은 뭐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성유리의 눈을 쳐다보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성유리는 서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박한빈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손에 넣었다. “죽 좀 끓여왔어요.” 그때, 성유리가 말했다. “이거 좀 드시고 푹 쉬세요.” 박한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유리는 자기가 박한빈의 물건을 빼앗아 그가 화가 난 줄 알았고 입술을 오므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직 깨어나신 지 얼마 안 되셨기 때문에 잘 쉬셔야죠.” “...” 그 시각, 서훈은 조용히 서류를 건네받더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박한빈은 침대에 가만히 앉아 성유리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눈빛에 담긴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못 본 척 애써 무시하며 준비해 온 도시락통을 열었다. 도시락통 안에 들어있는 죽의 향긋한 냄새는 병실 가득 퍼졌고 죽이 너무 뜨거운 탓에 성유리는 조금 소분하여 박한빈에게 건네주려 했다. 그러나 순간, 박한빈이 손을 뻗어 성유리의 손목을 꽉 잡았고 그녀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몸이 굳어졌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더욱더 힘을 주며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손목에 고통이 느껴진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박한빈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주는 거야?” 성유리는 그의 물음이 무척이나 웃겼다. 지금 병실 안에는 둘 뿐인데 박한빈을 주려는 것이 아니면 뭐겠는가?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 성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계속 말했다. “안에 독 탔어요.” 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20화

    박한빈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고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자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상처 부위가 다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며 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하지만 박한빈은 통증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리며 누군가를 찾으려 했다. “대표님!” 서훈이 제일 먼저 박한빈의 움직임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달려와 그를 강제로 눕혔다.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박한빈은 서훈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을 꽉 잡더니 물었다. “성유리는 어디 있습니까? 다친 데는 없나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은 아무 이상 없으십니다.” 서훈이 서둘러 대답하자 박한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러나 곧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은 명확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훈은 그제야 박한빈의 의도를 깨달은 듯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 사실 어제 하루 종일 사모님께서는 계속 병원에 계셨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쉬시라고 설득해 보냈을 뿐입니다.” 그의 설명은 타당해 보였지만 박한빈은 미소를 살짝 지으며 짧게 물었다. “그래요?” 박한빈의 물음에는 서훈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성유리가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결혼식 날조차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미소 한 번 지어주지 않았다. 만약 성유정이 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날 결혼식이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었다. 혹은 만약 성유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난입했다면 성유리가 그를 따라가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입니다. 대표님.” 서훈은 박한빈의 눈 속에 서려 있는 냉랭한 감정을 알아보았고 이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게다가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19화

    성유리는 인간이 아닌 나무로 만든 인형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결혼식이 두 사람의 예상대로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그들 앞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실루엣은 무척이나 야위었지만 그 안에는 광기 어린 집착이 서려 있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성유리는 그 사람이 달려드는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의 배를 감싸안았고 커다란 공포가 한순간에 성유리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지난번 성유정과 계단에 서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때 성유정은 손을 뻗어 자신을 계단 아래로 밀어버렸고 그 순간에도 성유정의 입가에는 지금과 똑같은 광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예상했던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성유리는 눈을 천천히 떴고 그제야 성유정이 이미 현장의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눌려 있는 것을 보았다. “놔! 박한빈, 내가 널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 그리고 너 성유리! 네가 원흉이야! 다 너 때문이야!” “왜 돌아온 거야? 이건 원래 다 내 것이었어! 다 내 거라고! 왜 죽지 않았어? 왜 거기서 사라지지 않았냐고?!”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너희 모두 다 죽어야 한다고!” 성유정은 계속해서 저주를 퍼부었지만 성유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의사를 불러오라고 외쳤다.‘의사를? 왜?’ 성유리는 의사를 왜 불러야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시선을 돌린 그녀는 성유정의 손에 꽉 쥐어져 있는 과일칼을 발견했다. 그 칼에는 누군가의 선명한 피가 묻어 있었다. ‘저 피는 누구 꺼지?’ 성유리는 느리게 돌아가는 사고 속에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을 굳은 상태로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박한빈의 하얀 정장이 이미 빨간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한빈이 그녀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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