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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Penulis: 송진
병원에서는 아무 말 없던 하늘이가 병원을 나서자마자 폴짝폴짝 뛰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뛰어다니면서도 성유리의 손을 놓지 않았고 가끔 뒤를 돌아보며 밝게 웃기까지 했다.

성유리는 그런 하늘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오늘 뭐 먹고 싶어?”

“엄마가 간장 베이스로 만든 닭 날개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마트 가서 재료 사자. 어때?”

하늘이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마트 가서 카트도 탈래요.”

성유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최근 하늘이가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쇼핑카트에 앉아 있어도 성유리에게는 전혀 무리 되지 않았다.

마트의 밝은 조명 아래 하늘이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아 성유리는 마음이 놓였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하늘이었다.

“엄마! 저거 사고 싶어!”

하늘이는 오랜만에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나와서인지 잔뜩 흥분했고 작은 다리를 흔들며 쇼핑카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려 했다.

성유리는 조미료의 제조 일자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쇼핑카트가 그녀 손에서 벗어나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성유리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잡으려 했지만 이미 카트는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갔다.

“꺅!”

그때, 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마트 안을 울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성유리는 급히 쇼핑카트를 잡아당기며 연신 사과했다.

“제가 아이를 잘 보지 못했네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여성은 화가 난 듯했지만 사람들이 많은 장소라서인지 억지로 화를 삭이며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이 데리고 나왔으면 조심해야죠!”

“맞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성유리는 허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사과했다.

하늘이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는지 여자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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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처음엔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다.하지만 박한빈이 그녀 앞에 국 한 그릇을 내려놓으며 손을 뻗는 순간, 풍겨온 성유정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그래서 성유리는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그녀는 입을 틀어막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사실 성유리는 저녁도 거의 먹지 못했기에 토할 것도 없는 빈속에서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세면대에 몸을 기댄 채 서 있던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너무 힘을 준 탓에 세면대를 짚고 있는 손이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문밖에서 가사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다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설마 무슨 일 생긴 거 아니겠지?”“임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심하게 입덧을 해? 앞으로 어쩌려고.”“그러게 말이야.”“근데 뭐... 이해는 가지. 복 많은 도련님의 아기를 가지려면 그만한 고생은 해야 하지 않겠어?”그들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딱 성유리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일부러 비꼰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도우미들도 눈이 있으니 이 집에서 성유리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당연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집안 어르신인 김난희가 성유리를 싫어하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고 김서영 역시 그저 고인이 된 남편의 뜻을 따라 돌봐주는 척하는 것뿐이라는 것을.박한빈, 그는 아예 성유리를 아내라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고 그에게 성유리는 한낱 ‘도구’에 가까웠다.그 사실이 너무도 명확하게 떠오르자 성유리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너무 굳어 있어서 한참이나 애써도 겨우 떨리는 듯 올라갈 뿐, 미소라고 볼 수도 없었다.거울 속에 비친 성유리의 모습에서 제일 잘 보이는 건 붉게 충혈된 눈동자였다.그러나 눈물은 흐르지는 않았다.왜냐하면 성유리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눈물이라는 건 자신을 아끼는 사람 앞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5화

    그때의 성유리는 진심으로 감동했고 더없이 행복했다.그 순간만큼은 박한빈의 모든 무심함과 냉랭함을 다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의 성유리는 알게 됐다.자신이 박한빈에겐 그저 하나의 장난감이었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처럼 하찮은 존재였다는 걸.성유리가 처음으로 받은 단 하나의 선물, 그건 결국 성유정이 필요 없다고 내버린 사은품일 뿐이었다.박한빈의 아내는 성유리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준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성유리의 생각을 진심으로 존중해준 적이 없었다.그러니 성유리가 팔찌를 들고 박한빈에게 보여줬을 때 그렇게 놀란 눈빛을 보였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그건 성유리가 박한빈의 얼굴에서 본 몇 안 되는 감정의 변화였다.기뻐하는 성유리를 보며 박한빈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이 여자 참 어이없을 정도로 순진하다고, 이 정도 선물에 저렇게 감격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박한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그저 그런 사소한 물건 하나면 성유리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테니까.그녀의 감정과 진심은 박한빈에게 그렇게나 값싸고 하찮은 존재였다....성유정은 돌아오긴 했지만 저녁 식사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자신의 물건을 놓고 가서 잠깐 들른 것뿐이라며 떠났고 그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박한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성유리 옆자리에 앉았다.박씨 저택의 주방은 매우 컸다.식사를 하는 사람은 네 명뿐이었지만 여전히 지름 2미터 가까이 되는 원형 테이블을 사용했다.성유리는 자신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박한빈이 평소보다 더 가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너무 가까워서 박한빈의 향수 냄새가 또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그 향은 성유리에게도 익숙한 냄새였다.왜냐하면 그것은 조금 전 성유정이 박한빈을 껴안으며 남긴 향기였으니까.고개를 숙였을 때 성유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텅 빈 손목뿐이었다.그 위에 끼고 있던 팔찌는 이미 그녀가 스스로 끊어내 버린 상태였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4화

    방안의 보석을 다 둘러본 뒤, 김서영은 저녁 준비 상황을 보러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성유리는 화장실에 들렀다.손을 씻고 나오는 순간 조금 전 먼저 떠났던 성유정이 다시 돌아와 있는 걸 보게 됐다.지금 그녀는 정원에 서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박한빈이었다.성유정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비록 성유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작게 떨리는 어깨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박한빈은 성유리 쪽을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이나 반응은 볼 수 없었다.그런데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그 장면은 어쩐지 너무 자연스럽고 심지어 눈이 아릴 정도로 잘 어울렸다.성유리는 이제 그만 보고 얼른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마치 스스로를 학대하듯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두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그리고 이내 성유정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성유정이 팔을 뻗어 박한빈을 끌어안으려는 순간 성유리는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그녀는 마치 도둑처럼 급히 몸을 돌렸고 다급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사모님, 어디 안 좋으세요?”가사도우미가 가장 먼저 성유리에게서 이상함을 감지했다.성유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냈다.“괜찮아요.”“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세요. 몸이 불편하신가요?”“아니에요. 그냥... 급히 움직였더니 좀 숨이 차네요. 조금만 쉬면 괜찮을 거예요.”도우미가 또 뭔가 말하려던 그때, 성유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그 순간, 성유리의 몸이 바짝 굳었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성유정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성큼성큼 걸어와 성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갑자기 들은 소식이라 순간 좀 당황했나 봐.”“언니가 임신했다니... 나 진심으로 너무 기뻐. 언니랑 형부, 꼭 행복해야 해.”성유정의 연기는 늘 어릴 때부터 완벽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얼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3화

    성유정은 박한빈과 성유리의 결혼은 그저 잠깐의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확신했었다.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자신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성유리와 이혼하고 결국 자신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그런데 지금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성유리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은 진짜 믿고 싶지가 않았다.그들이 정말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장면을 떠올리자 성유정은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미쳐버릴 것 같았다.아무리 애써 눌러도 눈가는 빨갛게 물들고 목소리는 떨렸으며 얼굴에는 힘들게 억누른 감정이 일그러진 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성유리는 그런 성유정을 오랫동안 보고 있다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고마워.”그때, 성유정이 김난희에게 얼버무리듯 말했다.“할머니, 저... 생각해 보니 급한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볼게요.”이 자리에 성유정은 더는 머물 수 없었다.그래서 김난희에게도 짧게 인사만 남긴 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집을 나섰다.“쟤 왜 저래?”김난희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러곤 성유리를 돌아보며 말했다.“어쨌든 지금 너한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꼭 지켜야 해, 알겠니?”말투엔 여전히 집안 어르신의 권위가 잔뜩 실려 있었는데 마치 아이를 낳는 것이 성유리에게 내려진 대단한 영광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하지만 성유리는 이제 그런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몇 번 꾹 참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김서영이 곧 화제를 돌렸다.“며칠 전에 새로 들인 보석이 있는데 같이 올라가서 좀 볼래?”성유리는 김서영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임신 초기 석 달이 제일 중요해.”계단을 오르며 김서영이 말했다.“원래는 조용히 넘기려 했는데 이젠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밀로 하는 것도 의미가 없겠더라.”“네 일도... 요즘은 좀 줄이는 게 좋겠어. 내가 사람 몇 명 골라서 보낼게. 하루 세 끼 챙겨주고 매일 태아 심장박동이랑 혈압 체크도 해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2화

    “유정이 왔니?”성유정은 밥을 얻어먹으러 왔다고 말했지만 김난희는 그래도 너무 반가운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성유정 또한 자연스레 김난희의 팔짱을 꼈는데 그 모습이 꼭 진짜 손녀처럼 친밀해 보였다.그러다 성유정은 성유리도 자리에 있는 걸 발견하곤 먼저 인사를 건넸다.“언니도 와 있었네?”성유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맞다. 오늘이 음력설이지.”성유정은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요즘 졸업 준비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걸 깜빡했네.”“별일도 아닌데 잘 왔다. 저녁 같이 먹자.”김난희가 성유정의 말에 바로 대답했고 그녀도 군말 없이 수긍했다.그러다 성유리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걸 본 성유정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가 보려고 했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김난희가 성유정을 잡아끌며 말했다.“조심해라. 너희 언니 지금 아주 귀하신 몸이시다.”그 말은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성유정은 순간 멈칫하며 무심코 물었다.“왜요?”김서영이 입술을 다물고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김난희가 먼저 나섰다.“어이구, 바보야! 왜겠니? 당연히 네 언니가 임신했으니까 그렇지.”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유정의 얼굴에 띠고 있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던 성유정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임신? 임신했다고? 언니가... 진짜 임신한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한빈 오빠는 분명 언니를 좋아하지 않았잖아. 엄마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거 아니었어? 두 사람의 결혼은 명목뿐인 관계라고... 분명히 언니가 그때 인정했었는데?’수많은 생각이 들어 머릿속은 복답했지만 성유정의 시선은 성유리에게 고정돼 있었다.‘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거잖아!’성유정은 가슴 깊숙한 곳을 누군가 날카로운 칼로 찌른 것처럼 아팠고 숨이 막힐 듯한 분노가 치밀었다.그래서 성유리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표정 관리를 할 틈도 없이 그 눈빛엔 마치 성유리를 갈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1화

    오늘 밤 박한빈은 꽤 일찍 집에 돌아왔다.성유리가 저녁을 먹으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평소와 달리 박한빈이 집에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하지만 박한빈은 태연하게 그녀를 불렀다.“밥 먹자.”그제야 성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결혼한 이후, 두 사람이 이렇게 같이 저녁을 먹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매달 한 번씩 박씨 저택에 돌아갈 때면 그들도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그렇지만 성유리가 말하는 건 지금처럼 단둘이 있는 상황이었다.비록 아침에 성유정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지만 지금 박한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성유리는 참 기뻤다.그녀가 바라는 건 사실 정말 많지 않았다.이렇게 박한빈의 곁에 앉아 있을 수 있고 박한빈이 자신을 위해 작은 자리를 내어주며 조금이나마 함께 있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그래서 성유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저녁을 먹었고 결국 기다리다 못한 박한빈이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일이 좀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넌 천천히 먹고 있어.”그 말을 끝으로 박한빈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는 성유리에게 대답하거나 반응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홀로 남겨진 성유리는 그대로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박한빈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왔다.그리고 이내 작은 상자를 성유리 앞에 내려놓았다.“선물.”예상치 못한 상황에 성유리는 곧장 고개를 들었다.지금 성유리의 눈은 반짝였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한빈을 바라보았다.성유리의 반응이 너무 컸던 탓인지 박한빈의 눈빛도 순간 흔들렸다.“저... 주시는 거예요?”성유리가 묻고 나서야 박한빈이 정신을 차린 듯 짧게 대답했다.“응.”“고마워요.”성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매도 부드럽게 휘어졌다.원래도 예쁘고 화사했던 얼굴이 그 순간 더욱 생기 넘치게 변했다.박한빈은 너무 아름다운 성유리의 모습을 보며 무의식중에 눈을 가늘게 떴다.그와 눈이 마주치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0화

    “언니!”모든 일이 끝난 후, 성유리가 저택을 떠나려 할 때 성유정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성유정은 성유리의 손을 잡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엄마는 언니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 방법이 조금 틀렸을 수도 있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성유리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성유정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걱정 마. 언니랑 한빈 오빠... 아니, 형부 쪽은 내가 잘 설득해 볼게. 둘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형부는 원래 언니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었으니까 이런 일은 서두를 필요 없어. 그렇지?”성유정은 정말 진심인 듯 보였지만 그 말속에 성유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박한빈이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을 계속 들먹였다.하지만 성유리는 굳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성유정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마워.”“나는 언니 동생이니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성유정은 성유리의 팔짱을 끼며 계속 말했다.“오늘 별일 없지? 우리 둘이 쇼핑이라도 할까?”“아니, 몸이 좀 안 좋아서 쉬고 싶어.”“그렇구나. 원래는 언니랑 가면 형부랑 안 가려고 했는데...”성유정은 끼고 있던 목걸이를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봐. 형부가 지난번에 사준 건데 2주도 안 돼서 고장 났어. 그래서 오늘 매장에 가서 제대로 얘기해야 돼.”성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 성유정에게 물었다.“그걸 왜 나한테 말해?”“언니랑 형부는 부부 사이잖아. 그럼 매장 사람들도 언니를 알 거야. 그리고 형부 카드도 언니한테 있는 거 아니야?”“나한테 없어.”성유리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성유정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구나. 그럼 난 먼저 가볼게.”성유리는 더 이상 성유정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떠났다.차가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는 비로소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을 풀었는데 손바닥에는 이미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 자국이 언제 남았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49화

    성유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성유리를 한번 쓱 쳐다보았다.그 눈빛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성유리의 눈엔 조금은 도발적인 눈빛으로 보였다.성유리는 성유정의 눈빛의 의미를 잘 알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성유정이 나타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윤청하와 점점 서먹해졌기 때문이다. 필경 수년간 엄마로서 윤청하는 성유리에게 애정을 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래서 성유정이 등장하자 성유리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성유리는 성유정의 눈빛을 무시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성유정은 눈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방금 전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 식사 중에도 윤청하에게 계속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그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거야.”윤청하는 태연하게 대답했고 성유리는 그녀가 이 사실을 성유정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그러나 식사를 마친 후 윤청하는 성유리에게 한약 한 그릇을 준비해 주었다.“이건 네 몸을 위한 거야.”윤청하가 계속 말했다.“내가 특별히 좋은 것만 넣었어.”성유리는 윤청하가 부엌에서 뭔가를 바삐 준비하던 이유가 바로 이 한약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그리고 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감동을 받은 걸까? 어쩌면 오랜만에 느껴본 모성애 때문에 멍해졌을 수도 있지만 성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랑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윤청하가 원하는 것은 그저 성유리의 뱃속 아이가 성씨 가문과 박씨 가문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저는...”성유리는 거절하려 했지만 윤청하가 그녀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그냥 내 말 들어. 너 지금 너무 말랐어. 임신...”윤청하는 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성유정의 눈치를 본 후 빠르게 말을 바꿨다.“그건 쉬운 일이 아니야. 먼저 네 몸을 잘 챙기고 난 다음에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해야지.”성유리는 그 한약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 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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