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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작가: 송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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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리의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은 다음날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의료진 팀은 약속대로 도착해 하늘이를 맡고 있던 의사들과 간단한 회의를 마친 뒤,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늘이 엄마인 성유리는 전에 검사를 받았지만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지 못했고 지금은 박한빈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만약 박한빈의 결과도 부적합이라고 한다면 성유리의 세상은 무너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싫었고 이틀이 지나도록 박한빈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성유리로 하여금 빠르게 박한빈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의료진을 동원하고 검사를 받는 것 또한 그저 아버지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는 의도 말이다.

하지만 성유리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시름을 놓았다. 다른 일이랑은 상관이 없어 보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경 전에 사하나도 아이는 부모 사이를 잇는 끈과 같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이다. 만약 하늘이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진즉에 연락이 끊겼을 것이다.

그때 사하나의 말을 듣는 순간, 성유리는 두려웠다.

다들 제일 아팠던 기억이 제일 오래 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성유리는 박한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 당시 사하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성유리는 이제야 더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가 다시 입원한 지 4일이 흐른 날, 누군가가 병문안을 왔다.

그는 바로 연정우.

성유리는 이미 오랫동안 연정우와 만난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아마 성유리의 어느 한 사인회였을 것이다.

연정우는 그날 특별 초청된 게스트로 사인회에 참석했는데 이유는 바로 성유리와 협업한 출판사에 그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인회에서 만났지만 별다른 교류도 없이 업무에만 몰두했고 다 끝이 나서도 함께 밥 한 끼 먹지도 않았다.

성유리가 나중에서야 연정우가 학교 교수직을 포기하고는 업계에 발을 들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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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하늘이의 기분을 맞춰주려 애를 썼고 덕분에 아이는 이내 즐거워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퇴원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차례차례 성유리에게 말해줬고 그녀는 옆에 앉아 아이의 말을 경청해줬다. 간호사가 들어와 약을 건네줄 때에도 하늘이는 떼도 안 쓰고 순순히 약을 복용했고 부작용 때문에 힘든지 침대에 누워 성유리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성유리는 그런 하늘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며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녀의 자세는 어딘가 이상했지만 아이가 너무 편해하니 바꾸지도 않았다. 하늘이는 병원 병실에 있는 것이 너무 안정감이 없는 건지 눈을 떠서도, 눈을 감을 때도 성유리가 안 보이면 극도로 불안해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저려오는 다리와 팔을 애써 주무르며 하늘이 곁을 지켜야 했고 아이가 깊은 잠에 들어서야 천천히 팔을 뺐다. “성유리 씨.” 간병인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 하늘이가 잠에 든 후, 성유리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밖에 어떤 사람이 계속 앉아 있던데 아시는 분이에요?” 성유리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곧 애써 부정했다. 필경 박한빈이 어떤 사람인지 성유리는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방금 전, 하늘이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박한빈은 화가 나 바로 병원을 떠났다고 성유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병실 밖을 나가보니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성유리가 돌아왔을 때에도 그 의자에 앉아 있던 그였지만 현재는 태블릿도 보지 않은 채로 멍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망설이다 박한빈에게로 다가가며 먼저 말했다. “죄송해요.” 성유리의 목소리에 박한빈은 고개를 번쩍 들었고 눈빛은 마치 왜 사과를 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하늘이가 요즘... 불안정해요. 일부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하려던 말을 이어갔고 그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갑자기 물었다. “연정우 씨도 하늘이를 만났어?” 성유리는 왜 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90화

    하늘이의 목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박한빈은 물론, 성유리조차 하늘이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성유리는 순간 멈칫하며 아이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하늘아, 너...” “난 저 사람 보기 싫어. 엄마, 저 사람 나가게 해. 나가게 하란 말이야!” 하늘이는 떼를 쓰며 성유리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작디작은 아이의 손등에는 아직도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는데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바늘이 당겨지며 피가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성유리는 하늘이가 다칠까 봐 재빨리 아이의 손을 눌러 진정시키며 달랬다. “알았어. 보지 마. 하늘아, 괜찮으니까 진정해.” 말을 마친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살짝 바라보았고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성유리는 그에게 상처 주지 않게 에둘러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지만 예상과 달리 박한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스스로 뒤돌아 걸어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하늘이는 조금씩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성유리의 팔을 꼭 붙들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괜찮아졌어?” 성유리는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에게 물었다. “하늘이가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돼. 걱정하지 마. 엄마가 여기 있잖아.” 하늘이는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하늘이가 왜 그 사람을 보기 싫은지 엄마에게 말해줄 수 있어?” 성유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성유리는 아이가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더 묻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늘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사람도 하늘이를 싫어하니까.” 그 말에 성유리는 깜짝 놀란 듯 멈칫했다. 그리고 하늘이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하늘이가 먼저 말을 이었다. “나도 알고 있어. 그 사람은 하늘이를 싫어해. 그래서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 저번에도 하늘이를 붙잡고 억지로 사과하게 했잖아.” “그건 아니야. 하늘아.” 성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9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연정우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말을 마친 성유리는 그대로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연정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더니 물었다. “그래서 넌 결국 박한빈 씨를 선택한 거야? 그런데 너 그거 알아? 그는 곧 결혼할 사람이야.” ... 성유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이가 있는 병실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병실 밖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옆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노트북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는 태블릿을 들고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진지하고도 엄숙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방금 어딘가에서 급히 온 것처럼 보이는 그는 평소 항상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도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옷에도 약간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원래 태블릿 화면만 보고 있던 그는 성유리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약 십 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VIP 병동 복도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고요한 나머지 성유리는 자신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잠깐 망설이던 성유리는 그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왔어?” 박한빈이 태블릿을 닫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성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 태도에 박한빈은 살짝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성유리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로 온 거예요?” “일 없으면 오면 안 되나?” 박한빈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거예요. 며칠 전에는 계속 안 오셨잖아요?” “출장 다녀왔어.” 박한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넌 계속 날 기다렸던 거야?” 성유리는 자신의 말을 들은 그가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내렸는지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박한빈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8화

    연정우는 지금 웃고는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의 눈빛엔 지금 냉철함과 날카로움 뿐만 남아있는 듯했다. 성유리는 그 눈빛에 당황했지만 이내 진정하며 입을 땠다.“넌 아닐 거야.” “응?” “넌 유효정 씨랑 결혼하고 싶지 않았잖아. 근데 전에 그 사람은 납치와 상해치사죄로 벌을 받았고. 그러니까 네 목표는 이뤄졌지. 굳이 네가 유씨 가문을 신고할 필요가 없지 않아? 그래서 난 너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성유리는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게 분석했고 연정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더욱 환하게 웃더니 물었다. “난 지금 기뻐해야 되는 건가? 네가 나를 이렇게 잘 알아주고 믿어줘서?” 자신이 지금 연정우를 믿은 건지 성유리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녀는 그저 연정우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정말 연정우가 신고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박한빈 씨야.” 성유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연정우가 바로 답을 알려줬다. 연정우는 성유리를 바라보며 웃어 보이더니 계속 말했다. “전에 내가 너한테 했던 말 기억해?” “나도 알고 있었어. 유효정 씨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유씨 가문에서는 그 사건을 덮었을 거야. 하지만 그 일에 네가 연루됐다면 일은 달라지지. 박한빈 씨는 당연하게도 절대 그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 대신 복수를 한 거지.” 성유리는 침묵했다. “넌 감동도 안 받아?” 연정우가 물었다. “왜 감동받아야 하는데?” “당연히 그 남자가 너를 위해 이런 복수를 한 거랑 너를 많이 아낀다는 것에 감동해야지.” 연정우가 계속 말했다. “그때 박한빈 씨에게도 일이 되게 많았을 거야. 그럼에도 네 일에 신경 쓰고 있었던 거고. 박한빈 씨는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오늘 하고 싶다던 말이 이거야?” 성유리의 물음에 연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내가 말하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7화

    성유리는 간병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뒤돌아 연정우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우리 지금... 1년 만에 만난 거 아니야?” 연정우가 말했다. “그땐 너도 출산한 지 얼마 안 됐었고 나도 바쁘고 너도 바빴잖아. 그래서 너랑 제대로 말도 못 나눴네.” 병원 정원에는 마침 햇살을 만끽하러 나온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연정우와 성유리는 정자에 앉아 있었는데 몹시 여유로워 보였다. 성유리는 문득 연정우에게서 박한빈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기억 속 늘 다정하고 착하던 연정우가 이런 태도로 자신에게 말하자 성유리는 너무 이상했다. “응.”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 장성그룹 세웠어. 너도 알지?” 연정우가 또다시 말을 걸었다. “응. 기사 봤어. 회사 되게 잘되는 것 같더라? 축하해.” 성유리의 대답에 연정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고마워.” “아, 네가 모를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건데...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어.” 그 말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필경 그가 돌아갔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 전에 많이 존경하던 화가이자 몇 번 만났을 때도 늘 잘 대해주던 어르신의 부고 소식은 성유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연정우는 그녀의 이런 반응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을 잘 통제하고 있었어. 근데 너도 알잖아. 할아버지는 늘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었다는 걸.” “만약 계속 그 상태로 살아계셨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건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들었나 봐.” “자기 몸에 입혀져 있는 기저귀와 엉망진창이 돼버린 침대도 발견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나 보지. 간병인이 잠깐 방심했을 때 바로 뛰어내리셨어.” 연정우는 마치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이 아닌 것처럼 아주 담담히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전해줬다. 하지만 성유리는 잘 안다. 연정우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말이다. 만약 할아버지의 명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6화

    성유리의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은 다음날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의료진 팀은 약속대로 도착해 하늘이를 맡고 있던 의사들과 간단한 회의를 마친 뒤,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늘이 엄마인 성유리는 전에 검사를 받았지만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지 못했고 지금은 박한빈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만약 박한빈의 결과도 부적합이라고 한다면 성유리의 세상은 무너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싫었고 이틀이 지나도록 박한빈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성유리로 하여금 빠르게 박한빈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의료진을 동원하고 검사를 받는 것 또한 그저 아버지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는 의도 말이다. 하지만 성유리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시름을 놓았다. 다른 일이랑은 상관이 없어 보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경 전에 사하나도 아이는 부모 사이를 잇는 끈과 같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이다. 만약 하늘이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진즉에 연락이 끊겼을 것이다. 그때 사하나의 말을 듣는 순간, 성유리는 두려웠다. 다들 제일 아팠던 기억이 제일 오래 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성유리는 박한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 당시 사하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성유리는 이제야 더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가 다시 입원한 지 4일이 흐른 날, 누군가가 병문안을 왔다. 그는 바로 연정우. 성유리는 이미 오랫동안 연정우와 만난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아마 성유리의 어느 한 사인회였을 것이다. 연정우는 그날 특별 초청된 게스트로 사인회에 참석했는데 이유는 바로 성유리와 협업한 출판사에 그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인회에서 만났지만 별다른 교류도 없이 업무에만 몰두했고 다 끝이 나서도 함께 밥 한 끼 먹지도 않았다. 성유리가 나중에서야 연정우가 학교 교수직을 포기하고는 업계에 발을 들였다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5화

    성유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도망치듯 떠나는 박한빈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병실로 돌아갔다. 사하나는 병상 옆에 앉아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비록 손가락으로 열심히 화면을 넘기고 있었지만 그다지 집중한 모습은 아니었다. 성유리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왔어요?” 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얘기했어요? 그 나쁜 새...” “그 사람은 하늘이가 아팠던 걸 몰랐다고 했어.” 성유리가 사하나의 말을 뚝 끊으며 대답했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사하나는 놀란 듯 멍해졌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사하나는 마치 누군가 자신의 약점을 건드린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요! 그 사람이 모를 리가 없는데... 박한빈 씨가 직접 저한테 말했어요. 언니가 그런 선택을 한 거라고 했고 심지어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다고도...” 사하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유리는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러더니 하늘이를 곁눈질하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사하나는 자신이 지금 극도로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 인간이 직접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언니 선택이라면서 다른 여자랑 아이를 가지겠다고...” “그만해.” 사하나가 계속 얘기하려는 순간, 성유리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평소완 다른 성유리의 모습에 사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사람이 과거에 알았던 몰랐든 이제 상황은 이렇게 됐잖아. 그리고 박한빈 씨는 이미 해외 전문가한테 연락을 한 것 같아. 나한테 그들이 내일 도착한다고 했어.” “언니가 동의한 거예요?” “응.” “왜요?” 사하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가 소개한 의료진 팀을 못 믿어서 그랬어요?” “그건 아니야.” “그럼 왜요? 왜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그런 사람이 무슨 자격이나 있어서?” “나는 하늘이를 박한빈 씨와의 자존심 싸움에 이용하고 싶지 않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4화

    죄송하다는 성유리의 한 마디에 박한빈은 고작 그 네 글자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슨 대답이라도 해주려고 입을 움찔거렸지만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사과하는 거야?” “오늘 오후에 하늘이가 당신들에게 사과했어야 했어요.” 성유리는 고개를 떨군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잘못한 일에는 사과를 해야 하죠. 만약 그때 사과했다면 뒤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엄마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에요. 그래서 박한빈 씨에게 사과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후에 제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땐 너무 다급했거든요. 부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해요.” 성유리가 말을 끝냈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아, 그리고 의료진 관련해서도 정말 감사해요. 저 그게...” “됐어.” 성유리가 말을 이어가려 하자 박한빈이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이빨을 꽉 깨물고 있는 박한빈의 표정에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일부러 이렇게 말해서 나를 더 힘들게 하려는 거냐고!” 성유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지금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가 아픈 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래. 지난 2년간 내가 너희 생활에 신경 쓰지 않았던 건 맞아. 하지만 그건 네가 선택한 거 아니었어?” “처음 네가 내 곁을 떠나겠다고 고집했던 것도 너였잖아! 버려진 사람은 나야! 그런데 나더러 뭘 더 어쩌란 거야? 눈치 없이 매달리기라도 했어야 했어?” “오늘 일도 마찬가지야. 네가 아이가 아프다는 걸 미리 말했으면 내가 이렇게 했겠어? 내가 뭐로 보이는데? 그래도 내 핏줄인데!” 박한빈은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유리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는 스스로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83화

    박한빈은 마침 하늘이가 있는 병실 밖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을 마주한 사하나는 조롱하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박 대표님 아니신가? 설마 마트에서 한 일도 부족하다고 느껴서 여기까지 와서 교육자 흉내를 내시려고 그러는 건가요?”박한빈은 사하나의 말을 무시하고 성유리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할 말이 있어.” 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하나가 끼어들었다. “당신 뭐야? 무슨 자격으로 유리 언니한테 그런 말투로 말하는데?” 그러나 박한빈은 여전히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박한빈의 태도는 사하나로 하여금 표정이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화가 나 무언가 더 말하려던 사하나를 가로막던 성유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아이 좀 봐줘.” 사하나는 성유리의 말에 이를 악물고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리는 그녀 옆을 지나쳤고 박한빈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병실 밖으로 걸어갔다. 반면, 박한빈은 병상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손바닥만큼 작고 창백했고 수액이 꽂혀 있는 마른 손에는 혈관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박한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성유리의 뒤를 따라나섰다. 성유리는 병실 밖 의자에 앉아 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이마와 귀 옆으로 흘러내린 잔머리가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박한빈은 그녀가 정말 많이 야위었음을 깨달았다. 성유리에게서는 병약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봤을 때의 초췌한 모습은 표절 문제로 동분서주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때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바랐다. 세간의 폭풍 같은 여론을 자신이 충분히 잠재울 수 있었고 책임감 없는 남자조차도 자신이 손봐서 연예계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사라지면 그의 팬들도 잠잠해질 터였다. 그래서 박한빈은 그저 그녀가 자신에게 한 마디라도 약한 소리를 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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