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93화

작가: 송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15 19:00:00
김서영의 물음에 성유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침묵했고 때마침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성유리는 냉큼 자리를 비켰고 김서영은 멍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의료진들에게 몸을 맡겼다.

무슨 말을 하기도 거부하는 김서영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까지 꽉 깨물었다.

그녀의 모습에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야 할 그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성유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박한빈은 통화를 끊더니 직접 앞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깨셨어?”

그의 물음에 성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제 그만 가서 푹 쉬어. 내가 가서 얘기 좀 나눌 테니까.”

박한빈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움직였지만 성유리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뭐지?’

이상한 성유리의 행동에 박한빈은 잠시 의아해하다가 이내 그녀의 뜻을 알겠다는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잘 얘기할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성유리는 딱 봐도 박한빈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살짝 어루만지더니 병실 안으로 들어섰고 간병인은 그를 발견하자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건네려고 했다.

“박...”

그러나 박한빈은 간병인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가보세요.”

김서영은 박한빈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떨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는 척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박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맡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김서영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근데 전 좀 이해가 안 가네요. 어젯밤 일은 미리 계획을 세워두신 겁니까?”

“저한테 성유리가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대답은 하지 마십시오. 비록 전 어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유리는 다르지 않습니까?”

“정말로 미리 계산을 다 한 거라면 전에 했던 일들은 뭐가 되는 겁니까? 투자자들과 이사회 사람들과 함께 벌인 그 일들은 저와 겨루기 위해 그런 것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4화

    성유리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고 병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박한빈은 병실에서 나오다 여전히 밖에 있는 성유리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유리에게 물었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병실 안만 쳐다보았다. “지금 주무셔.” 박한빈은 성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먼저 말해줬다. “괜찮으세요?” 그제야 성유리는 박한빈을 보며 되물었다. “무슨 얘기 하셨는데요?”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성유리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대답하세요.” 성유리가 살짝 짜증이 난 말투로 말하자 박한빈은 발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자고 일어나면 그때 얘기해줄게.” 박한빈은 잠시 동안은 성유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해주기 싫어 그녀가 아무리 화를 내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성유리도 물어보기를 포기했고 박한빈은 정말로 그녀와 함께 집에 가 잠만 자려고 했다. 성유리는 자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쉽게 잠에 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도연제에 도착해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니 바로 잠들었다. 방안의 커튼은 쳐져 있고 옆에 작은 조명만 켜져 있으니 성유리는 다시 깨어나서도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몰랐다. 성유리가 정신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핸드폰을 찾으려 손을 쭉 뻗는 순간, 박한빈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깼어?” 성유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딱 이 시간에 깰 줄 알았어.” 박한빈은 기분이 꽤 좋은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뭐 좀 끓였어. 내려와서 같이 먹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박한빈에게 물었다. “지금이 몇 시죠?” “9시쯤일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박한빈은 방안으로 돌아와 커튼을 활짝 펼치더니 성유리에게 다가왔다. “가자.” 성유리는 그의 말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고 준비돼 있는 많은 양의 면을 보고는 인상

    최신 업데이트 : 2024-12-15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5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맞아.” 박한빈이 갑자기 말했다. 성유리는 그의 말에 영문을 몰라 하며 물었다.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응? 사진 속에 적혀있는 날짜와 시간을 보면 모르겠어?” 성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박성훈 씨, 그러니까 박한빈 씨 아버지와 박세빈 씨 어머니가 먼저 알던 사이었고 김서영 씨와 결혼한 원인도 외모 때문이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박한빈은 아주 담담하게 맞다는 대답을 했지만 성유리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에서 발생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애써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결국 침묵했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왜 나랑 박세빈이 그렇게 닮았는지 궁금했어. 알고 보니까 우리 두 사람 엄마가 이렇게 똑같게 생겼더라고.” “박한빈 씨 어머님도... 최근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건가요?” 성유리가 나지막한 소리로 박한빈에게 물었다. “응. 전에 박성훈 씨가 밖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본인이랑 많이 닮아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야. 그래서 자기 자신이 그 여자의 대체품이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봐.” “할머니가 박세빈을 집에 들이기 전에 어머니는 많이 반대하셨대. 근데 그때 할머니가 사실 사진 속 두 사람이 서로 뒤틀리지만 않았다면 어머니는 박씨 가문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고 말하셨나 봐. 어머님은 아마 본인이 제삼자 같았을 거야. 마치 다른 여자의 삶을 빌려서 쓰는 도둑처럼 느껴졌을 거고.” 박한빈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지만 표정은 굳어있었다. 성유리는 그의 말에 화가 나는지 주먹을 꽉 쥐고 있다가 박한빈에게 물었다. “이건... 어머님이 알려주신 건가요?” “응.” “그럼 두 사람...” “화해했다고 할 수 있지.” 박한빈은 고개를 숙이고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만 만지작거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박한빈이지만

    최신 업데이트 : 2024-12-15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6화

    박한빈의 말에 성유리가 대답을 하기도 전, 이번에는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성유리는 은근슬쩍 박한빈의 핸드폰을 쳐다봤는데 발신자는 다름 아닌 에릭이었다. 박한빈은 핸드폰과 성유리를 번갈아 보더니 전화를 받으러 뒤를 돌았다. 수화기 너머 에릭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박한빈의 인상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성유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정말?” 성유리의 귀에 박한빈이 대답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그래서?” “알겠어.” 간단한 대답만 내뱉던 박한빈은 바로 통화를 끝내버렸다. “에릭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어?” 전화를 끊은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네.” “둘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지?” 그의 말에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되물었다. “전화 한 통 한다고 다 친하지는 않아요.” “내일 비행기로 금성에 온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나한테 말하지 않고 너한테 말해줬어. 이래도 안 친한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고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걔한테 속지 마.”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사람 같지만 사실은 냉혈하고 매정한 사람이야. 그리고 넌 정말 걔한테 연인이 없다고 생각해?” “절대 그렇지 않아. 에릭 그 새*는 전국 각지에 다 여자가 있다고. 게다가 매번 파티를 벌일 때마다 제일 미친 듯이 노는 사람도 에릭이야. 잊었어? 전에 너도 걔한테 잡혀서 몹쓸 짓을 당할 뻔했잖아. 에릭 같은 사람과는... 절대 가까이하지 마.” 박한빈은 원래 성유리에게 짧은 충고 말들만 하려고 했지만 말하다 보니 격양돼서 친구의 뒷담화만 잔뜩 늘어놓았다. 이런 당당하지 못한 행동은 박한빈 본인마저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성유리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성유리의 태도는 박한빈의 안색을 더욱 어두워지게 했다. “걱정마세요.” 이때,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절대 혼자서는 에릭 씨를 만나지 않을 테

    최신 업데이트 : 2024-12-16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7화

    박한빈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멱살을 잡은 손을 놓더니 앞쪽으로 걸어갔고 에릭은 금세 따라붙으며 말했다. “됐어. 그 얘기는 그만하고 내가 어디에 묵는지 물어봐도 돼? 너희 집인가?” “호텔.” 박한빈은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에릭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까지 으쓱했다. 오늘 박한빈에게는 다른 일이 있어 에릭을 호텔까지 데려다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차로 이동하려던 찰나, 에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너희 부인도 내가 오늘 도착하는 거 안다더라. 나한테 환영회를 열어준다던데 저녁엔 너도 올 거지?” 박한빈은 고개를 휙 돌려 에릭을 쳐다봤고 그는 씩 웃으며 계속 말했다. “괜찮아. 네가 안 와도 우리 둘만 밥 먹어도 상관없으니까.” 물론 성유리가 있으니 박한빈이 안 갈 리 없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성유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네가 걔랑 단둘이 만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뭐야?” 성유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대답했다. “박한빈 씨가 먼저 약속한 거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저녁에 한빈 씨가 초대한다고 해서 제가 온 건데...” 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에릭의 계략에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릭은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고 얼마 안 지나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는 새하얀 양복으로 갈아입고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맸는데 마치 어떤 중요한 연회에 참석하려는 사람처럼 근엄했다. 게다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잘생긴 얼굴 덕분에 에릭은 마치 북유럽 그림에서 걸어 나온 왕자 같았다. 심지어는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도 에릭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에릭은 항상 사람들 앞에서 품위와 우아함을 유지했고 성유리가 자신의 눈에 깃든 혐오를 알아챘음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웃는 그의 모습에 주문을 받던 직원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직원이 나가고 나서야 에릭은 성유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걸었다. “사모님, 저를 이렇게 대접하

    최신 업데이트 : 2024-12-16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8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에릭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박한빈의 사업을 완전히 무너뜨리면 걔는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모풍국에 머물게 될 겁니다.” “그럼 유리 씨도 자유를 얻을 수 있을 테고.” 성유리는 에릭의 대답에 그저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에릭은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성유리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 에릭 씨, 당신은 저를 돕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네?” “박한빈 씨를 절망하게 만드는 건 간단해요. 당신과 제가 손잡았다는 사실만 알려주면 충분하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에릭 씨가 저보다 잘 알잖아요. 그의 국내 사업을 망쳐놓으면 그 사람이 당신을 가만두겠어요?” “그건 에릭 씨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겠죠. 그래서 당신은 그저 제가 박한빈 씨를 배신했다고 믿게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이 그동안 저를 재촉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였죠. 맞나요?” “그렇게 되면 에릭 씨는 박한빈 씨에게 말할 수 있겠죠. 이것 좀 보라고. 네 곁에 있는 사람들, 아내마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오직 나만이 너의 진정한 동료라고.”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에릭은 한참을 침묵한 후에야 다시 미소를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 원래 난 유리 씨를 그냥 겉만 화려한 바보 미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로얀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군요.” 성유리는 무표정하게 그저 에릭을 쳐다볼 뿐이었다. “흠... 유리 씨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손해가 될 건 없잖아요? 어차피 유리 씨가 원하는 건 박한빈 곁을 떠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유리 씨를 폭로하면 한빈이가 당신에게 실망해 결국 놓아줄 테니까. 그때면 성유리 씨가 원하는 걸 얻게 되는 셈 아닙니까?” “아니면... 혹시 박한빈 옆에 남고 싶어진 건가요?”“아니요.” 성유리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그녀의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에릭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쳐다만 보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니

    최신 업데이트 : 2024-12-16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9화

    성유리가 에릭과 거의 동시에 방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박한빈은 즉각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둘이 어디 갔다 온 거야?”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성유리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가는 길에 에릭 씨를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고요.” 그녀의 태도는 매우 자연스러웠다.게다가 여기는 금성이었으니 박한빈도 에릭이 대담한 행동을 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한빈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했다. 그는 에릭을 한번 흘겨보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은 이미 모두 상에 차려져 있었다. 에릭은 여전히 중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체면상 조금 먹는 척은 했다. 대신 에릭은 박한빈과 함께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박한빈이 계속 술을 마시려 하자 성유리는 그의 잔을 꽉 쥐며 내려놓더니 말했다.“그만 마셔요.” “요즘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술까지 많이 마시면 몸이 성하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고 눈에는 불만이 그득하게 서려 있었다. 박한빈은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에릭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난 안 마실게.” 에릭은 별다른 말 없이 두 사람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그의 시선 대부분은 성유리에게 향해 있었다. 솔직히 방금 성유리가 했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박한빈을 걱정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여자의 연기력은 이제 무서울 정도라니까.’ ... 박한빈은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집에 도착한 후, 성유리는 그에게 꿀물 한 잔을 타 주었다.  그는 성유리가 건네준 잔을 받아 들더니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래요?” 성유리가 물었다. “그냥... 네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너 이제 나 안 미워해?” 그 말을 끝으로 박한빈은 스스로 미간을 찌푸리며 대화의 화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성유리가

    최신 업데이트 : 2024-12-16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00화

    김서영의 부상은 심각했지만 치명적인 곳까지는 다치지 않아 며칠 병원에 머문 뒤에는 퇴원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박한빈은 김서영을 박씨 본가에 돌아가게 하지 않고 조용하고 품격 있는 장소에 머물게 했다. 마침 월말이 되어 박세빈이 금성에 돌아와 직무 보고를 할 예정이었다. 박한빈은 외부 레스토랑에 자리를 예약하며 다 같이 모여서 화합의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성유리는 이 말을 듣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박씨 가문의 모임이라는 게 한 번도 순조롭게 끝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기에 아무리 싫어도 성유리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금성시는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져 있었다. 외출하기 전,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직접 흰색 목도리를 둘러줬다. 목도리 색은 그녀가 입은 코트와 같은 계열이었고 반대로 그는 온통 검은색의 차림으로 입고 있었다. 극과 극의 색상이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잘 어울렸다. 박한빈은 성유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찍더니 말했다. “참, 며칠 후엔 우리 웨딩촬영도 해야 해.” 그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청첩장도 곧 돌릴 건데 초대하고 싶은 친구 있어?” “없어요.” 성유리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박한빈은 웃으며 말했다. “참 신기하네.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 결혼식 날짜가 연정우 씨의 결혼식이랑 같은 날이더라고.” 연정우라는 이름은 성유리가 한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갑작스럽게 언급되었지만 성유리는 가볍게 대답해 주며 별로 흥미 없는 듯 반응했다.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한 번 흘깃 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곧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잡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안내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기 전, 성유리는 문 너머로 들리는 김난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잘해 봐. 이번이 네 기회야. 그쪽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회사로 돌

    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01화

    김난희는 옆에서 박한빈의 다정한 행동을 똑똑히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참을 챙겨주던 박한빈은 성유리가 식사를 거의 마쳤다고 판단이 들었고 이내 박세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강서 그룹 쪽 사람들이랑 만난다던데... 지금 상황이 어때?” 박세빈은 고개를 숙인 채 음식만 먹고 있다가 박한빈의 질문을 듣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 그러더니 놀란 토끼 눈으로 박한빈을 쳐다봤다. 한편, 김난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서 그룹? 그게 뭔데?” “아, 할머니께선 아직 잘 모르시겠군요. 그쪽은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예요.” 박한빈은 미소를 지으며 강서 그룹에 대한 설명의 말을 덧붙였다. “쉽게 말해 가진 지분을 담보로 거액의 현금을 빌려주는 곳입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주식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추가 배당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주식이 특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 조건에 따라 지분을 해체하거나 심지어 삼켜버리기도 하죠.” 그는 천천히 차도 한 모금 마시며 계속 말했다. “그럼 지금 그쪽과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네 생활에 그렇게 큰돈이 필요할 이유가 있나? 그들과 손을 잡아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박한빈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의 명확한 의도는 박세빈의 안색을 창백해지게 만들었다. 김난희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네가 지화의 지분을 담보로 잡혔단 거니?”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다시 조용히 한 모금 마셨다. “아니에요! 저는 단지 만나기만 했을 뿐이고 아직...”박세빈은 급히 부정했지만 대답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박한빈이 그의 말을 뚝 끊었다.“정말일까? 근데 내가 알기로는 네가 얼마 전에 해외로 큰 금액을 송금했다던데? 해외에 네가 아는 사람이나 친척이라도 있나? 그런 큰 금액은 대체 뭐 때문이었어?” 박한빈은 느긋한 말투로 박세빈에게 따지듯 물었다. “설마 너도 주식 같은 거에 손댄 거야? 그

    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최신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7화

    “얼마 전 뉴스에서도 본 것 같아. 지금은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고?” 김서영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사하나 씨는 참 의리 있는 분이고 사씨 가문의 배경도 대단하지만 하늘이는 내 손녀야. 계속 남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고. 아마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겠지.” “그리고 수술 후에는 분명 재활과 회복에 시간이 필요할 텐데 금성의 의료 환경은 전국 최고 수준이니까 이곳에 머무르는 게 최선의 선택일 거야.” “내가 사는 집은 너도 와봤잖아. 지금은 나랑 몇몇 가정부들만 있어서 아주 조용해. 걱정하지 마. 한빈이도 그곳에 자주 오지 않으니까. 한번 잘 생각해 봐.” 김서영의 말은 느리고 차분했지만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모든 걸 준비한 듯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이유를 풀어내며 성유리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성유리는 잠시 김서영을 주시하다가 물었다. “왜죠?” “뭐가?” “왜 저와 제 아이가 어머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요?” “아까 말했듯이...” 성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죠. 진짜 이유는... 어머니가 저와 박한빈 씨 사이를 다시 이어보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요?” 김서영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성유리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반박할 수는 없겠네.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어.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내 또래 사람들 곁에 자식들과 손주들이 둘러싸인 모습을 보면 부럽더라고.” “혼자 산 시간이 너무 길어서 아이가 곁에 있으면 훨씬 활기찰 것 같아.” “그럼 만약... 제가 동의하지 않는다면요? 수술을 거부하시겠어요?” “그럴 리 없지.” 김서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말했잖아. 하늘이는 내 손녀니까 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제안일 뿐 강요하려는 건 아니야.” “사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가 준 제안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6화

    깨어난 성유리는 먼저 하늘이를 보러 갔고 김서영은 그녀를 따라 아이의 병실까지 향했다. 하지만 성유리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경계심을 느꼈던 걸까, 김서영은 쉽게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하늘이를 처음 보는 날인데 서둘러 오느라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걸려 병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지만 결국 끝까지 들어서지 않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하늘이의 목소리에는 아직 어린아이의 티가 묻어 있었다. 김서영은 그 소리를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문틈으로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의 작은 뒷모습과 동글동글한 머리와 하얀 팔이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하늘이는 아주 얌전한 아이 같았다. 하늘이의 실물을 본 김서영의 시선은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그때, 병실 문이 스르르 열리며 성유리가 나왔다. 그녀는 방금 맞고 있던 수액 바늘을 뽑으려 했으나 사하나의 강한 만류로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의 손에는 아직 수액 바늘이 꽂혀 있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병실로 돌아온 뒤에야 성유리가 먼저 김서영에게 물었다.“이건 오늘 내가 막 받은 결과야.” 김서영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성유리에게 건넸다.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성유리는 서류에 적힌 조합 일치라는 몇 글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어 김서영을 바라보았고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자 김서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 이건 나와 아이의 조합 결과야.” “언제부터... 이렇게 준비하신 거예요?” 성유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전에 한빈이한테 얘기 들었어. 물론 나도 한빈이의 결정에 극구 반대했지만 걔 몸은 결국 본인의 것이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그가 내린 결정을 어머니인 나조차 강요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손녀잖아. 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고 유리 네가 그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어. 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5화

    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하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깊이 성유리의 기분을 알고 있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을 대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박한빈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박한빈의 침묵은 성유리의 숨통을 정확히 틀어쥐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며 모든 것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쥐락펴락하는 것이 바로 전부터 박한빈의 특기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유리를 가장 아프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걸 완벽하게 실행하고 있다. 사하나는 그녀 곁에서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성유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이미 잠들어있는 하늘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아직 너무도 작고 체온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성유리는 아이가 점점 쇠약해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성유리 씨! 유리 언니.” 사하나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고 대답을 듣지 못한 그녀는 성유리의 어깨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러나 성유리는 아무런 대답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한없이 깊은 어둠이 그녀를 삼켜버렸다.... 성유리는 끝없이 긴 길을 걷고 있었다.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눈앞은 뿌연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멈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멈출 수 없었다.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앞에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성유리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디에서인가 나약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성유리는 온몸이 굳어졌고 그녀는 급히 몸을 돌려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으려 했다. 여전히 안개는 짙었고 그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성유리는 안개를 걷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4화

    성유리의 말을 들은 사하나는 눈에 띄게 멍해졌다. 그녀는 성유리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듯했고 몇 초가 지나서야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요?” “수술을 받고 싶지가 않대.” 성유리는 쉰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말에 사하나는 즉시 이어폰을 벗으며 외쳤다. “박한빈 씨 정말 제정신이에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병상에 누워 있던 하늘이를 깨웠다. 깨어난 하늘이는 졸린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성유리는 급히 하늘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가 너 깨웠니? 미안해.” 하늘이는 성유리와 사하나를 다시 번갈아 보았다. 그때 이미 사하나의 얼굴은 화가 나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엄마, 엄마랑 이모 싸웠어?” 하늘이가 물었다. “아니야. 그냥 이야기한 거야. 괜찮으니까 하늘이는 다시 자면 돼.” 성유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하늘이의 뺨을 쓰다듬어줬다. 하늘이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성유리가 다른 이야기를 막 하며 아이의 주의를 돌렸다.성유리가 오랜 시간 달래고 나서야 하늘이는 다시 잠들었고 그제야 사하나는 숨을 고르고 조금 진정된 상태로 말했다. “솔직히 전 전혀 놀랍지 않아요.” 그녀는 단호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 “그 사람 애초부터 아버지다운 면모가 없었잖아요. 언니가 아이를 낳을 때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가 아프다고 몇 번이나 보러 왔어요?” “박한빈 씨가 예전에 적합성 검사를 받아준 것도 병원 사람들 입을 막으려고 한 거였겠죠. 검사가 적합하지 않게 나왔더라면 그는 여전히 멋진 아버지 이미지를 유지했을 거예요. 하지만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오니까 그냥 도망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이제 와서 언니가 찾아가니까 대놓고 거부하잖아요. 이런 세상에 미친 놈을 봤나! 자기 아이를 위해 수술을 거부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게 말이 돼요? 하늘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아버지로 두고 태어났을까요?” 사하나는 최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3화

    “자기 친자식을 미워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아이가 죽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시겠다고요?” “그래. 내가 그 말을 했었지. 하지만 분명히 말할게. 난 이 수술 못 하겠어.” 박한빈의 태도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는 지금 성유리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성유리의 말이 맞다. 박한빈은 약속을 어겼고 말한 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병원 규정에 따르면 반드시 본인이 병원에 와서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결정권은 박한빈에게 있었으니 그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의 손을 강제로 잡아 서명하게 만들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성유리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박한빈이 아무리 나빠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자기 아이가 정말로 위험에 처했을 때 그걸 눈 뜨고 지켜보진 않을 거라고.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배반했다. 그는 정말로 그런 냉혈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이미 목구멍이 꽉 막혀버린 것 같았다. “박한빈 씨, 전 평생 당신을 원망할 거예요.” 마침내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박한빈은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 참 다행이네. 오히려 네가 날 미워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거든.” 성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막지 않았다. 이제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었다. 이 사실 또한 성유리는 알고 있었다. 박한빈이 성유리를 미워하듯 그녀 또한 그를 미워했다. 그렇지만 웬일인지 성유리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몰랐기 때문에. 하늘이는 여전히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의사들은 희망적인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이미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의사들 눈에는 동의서 서명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박한빈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2화

    박한빈은 자신을 억제해 왔다. 결국 버림받은 사람은 그였으니까. 버려진 사람이 다시 상대를 붙잡고 이유를 묻는 것은 실패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에 재회한 이후 그는 한 번도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국 참지 못했다. 성유리가 직접 말해주는 정답이 너무 궁금했고 진심으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유리의 과거 행동들은 박한빈에게 너무도 모순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고생하고 싶지 않다며 떠났지만 정작 그의 물건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박한빈이 그때 성유리에게 해준 선물들은 아주 많았다. 그중 단 하나만이라도 가져갔다면 평생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유리가 말한 이유는 단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한 핑계였던 걸까?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한빈은 간절하게 답을 알고 싶어 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를 향했고 성유리는 잠시 그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는 제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뭐라고?” “혼자였다면 당신과 함께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를 당신 때문에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성유리는 조용히 진실을 말했다. 그건 극적이거나 박한빈이 상상했던 불가피한 사연 같은 것도 아니었고 답은 그저 이렇게 간단했다.하지만 이 간단한 답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박한빈의 마음을 꿰뚫었다.성유리의 손을 잡고 있던 박한빈의 손에 힘이 천천히 풀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 성유리는 시선을 내리깔고는 계속 말했다. “그래서 하늘이는 저에게 너무도 소중해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저는 모든 걸 버릴 수 있어요.” “알겠어. 그래 보이네.” 박한빈은 여전히 피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때는 주저 없이 나를 떠나고 이혼했겠지. 지금은 나랑 잠자리를 해서라도 동의서를 얻어내려는 거고.” 성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1화

    하지만 이내 박한빈은 성유리를 무시한 채 뒤돌아섰다. 성유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당연히 그가 자신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성유리지만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성유리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해요.” 성유리가 먼저 말했다. “지난번에 당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건 제 잘못이에요.” 이어진 그녀의 말에는 간절함이 더 묻어나 있었다.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아이는 아무 죄가 없잖아요. 제발...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성유리는 행여나 박한빈의 심기를 또 건드릴까 신중히 단어들을 선택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졌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성유리는 이곳에서 박한빈의 시간을 조금도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성유리도 잘 알고 있었다. 박한빈은 사실 그녀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박한빈은 그녀가 무릎을 꿇고 굴욕적이게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기를 바랐다.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은 그제야 그녀를 똑바로 쳐다봐줬다. 그리더니 성유리의 턱을 잡아 억지로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고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성유리의 눈은 약간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한층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은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나 박한빈은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잠시 성유리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야.” 그의 말은 성유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성유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나 성유리는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붙잡으려는 듯 그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그녀는 한동안 마음을 다잡은 뒤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성유리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고 그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그녀의 눈빛은 박한빈이 전에 사랑했던 여자의 모습이 조금 담겨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00화

    박한빈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성유리가 카드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성유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이번 거래 조건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보는 게 어때요?” 박한빈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성유리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쳐다보았다. “이건 수술 동의서예요. 먼저 서명해 주세요.” 성유리는 차분히 말했다. 지난번 그는 자신이 약속한 적 없다고 했을 때 성유리는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행여나 같은 일이 반복이 되는 것이 두려운 성유리는 이번에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했다. 박한빈은 철저한 사업가였으니 결국 눈앞에 놓인 서류에 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유리는 동의서 외에도 또 다른 계약서를 준비했는데 그 계약서에는 그들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계약서에 똑똑히 이런 문구를 적었다.자신이 박한빈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지만 그 조건은 하늘이가 회복되는 기간 동안에만 작용을 한다는 문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하늘이가 건강을 되찾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즉시 종료되며 앞으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게 된다.] 계약서의 조항은 간단하지만 지나치리만큼 직설적이었다. 이 문서가 만약 언론에 공개되기라도 한다면 둘 모두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성유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거래의 도구로 내놓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박한빈은 서류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조용히 서류만 주시하고 있었다. 짧은 몇 줄의 문장이었기에 그는 이미 내용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바라봤다. “박 대표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성유리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제야 박한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성유리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99화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단지 분풀이일 뿐일 거야.” 성유리가 사하나의 말을 뚝 끊어버리며 말했다. “나에게서 받은 좌절과 실망감을 이제 와서 나에게 되갚아주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제가 보기엔...”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나를 아직도 좋아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일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진 않았을 거야.” 성유리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그의 말에 따르고 있는 것도 하늘이가 수술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서야. 이런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러니 사하나, 나와 그 사람은 정말로 끝난 사이야.” ... 어느새 밤이 다시 찾아왔다.솔직히 말해서 성유리는 이 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박한빈에게서 어떤 메시지가 올까 걱정했고 동시에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어쨌든 박한빈은 아직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성유리는 왜 박한빈이 전날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뉴스에서는 전날 밤 박한빈이 어떤 연회에 참석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 속 박한빈의 옆에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화장이 조금 달라졌지만 성유리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그와 함께 마트에 갔던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성유리에게 있어 함께 마트로 향하는 일은 꽤 친밀한 행위로 느껴졌다. 둘이 함께 살지 않는다면 마트에서 함께 필요한 물건을 고르며 자신들만의 공간을 꾸민다는 일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성유리와 박한빈 사이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박한빈은 항상 바빴다. 그의 옷은 계절마다 고급 맞춤 팀에서 직접 저택으로 보내졌고 생활용품 같은 사소한 물건에 시간을 쓰는 일을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의 낭비라는 것도 박한빈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었다. 어쩌면 어떤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을 하든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