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는 왕부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진부연의 손에는 두 층으로 된 나무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눈물은 마치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18년, 수많은 낮과 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날들 속에서 단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매일 후회했다. 더 잘해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시부모님과 남편, 아들까지도 염희진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녀는 엄격했다. 그녀의 손바닥을 때리고 금고에 가두어 벌을 준 적도 있었으며 배를 곯게 한 적도 있었다... 많은 일들이 세월속에서 희미해졌지만, 억울함 가득했던 그 슬픈 얼굴, 눈물 흘리던 모습, 매 맞고 잔뜩 주눅이 들었던 어깨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여 그녀의 마음 가장 아픈 곳을 매일같이 도려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녀를 꾸짖었을까? 왜 때렸을까? 왜 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다른 이들처럼 소중히 대할 수는 없었을까? 마차에서 염 선생은 염희진이 납치된 후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진부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숲속에 버려졌으니,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것이었다.하늘이 도운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 살려주었고, 결국 그녀는 무사할 수 있었다.재주를 부리며 살던 날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장난기가 많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곤 했지만, 재주를 배우려면 얼마나 많이 넘어졌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예쁜 얼굴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옹현으로 거처를 옮겼다.그런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반주는 그녀가 은혜를 갚기도 전에 해를 당하고 말았다.염희진은 아직 반주가 돌아간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장공주를 따라 진성으로 가면 반주에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의사의 치료도 받고 돌봐줄 사람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진부연은 이 세월 동안 악한 자에
해피엔딩만을 선호했던 시만자는 슬픔에 가장 약했다.그녀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염희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기만 했다.“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생사에는 천명이 있는 법. 반주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렸고 죽음이 비록 좋은 해방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크게 고통받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시만자는 반주가 진정으로 잠결에 목숨을 잃었기를 바랐다. 사실 염 선생은 그녀에게 반주가 병사했다고 말할 것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사여묵과 송석석이 반대하였다. 그들은 염희진이 누가 반주를 죽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시만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의 스승을 죽였다면… 만약, 만약에 말이다. 그녀도 누가 원수인지 알려 했을 것이다. 결코 멍청하게 모른 채로 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슬퍼하는 염희진의 모습에 시만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지금 그대는 오라버니와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진성으로 오고 계시는 그대의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입니다. 반주께서도 이를 보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가족과 재회할 것이라는 말에도 염희진의 슬픔은 가시지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기다려왔던 만남이기에 기대할 뿐이었다. 시만자에게서 오라버니가 진성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만남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그녀는 줄곧 일곱 살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오라비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냈다. 그들의 얼굴도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선명했던 기억은 어머니께서 자신의 손바닥을 때리던 장면이었다. 노란색 나무 자로 손바닥을 내려치던 모습이었는데, 너무나 아팠던 기억이다. 하지만 매번 그녀가 맞고 나면 어머니도 눈물을 훔치셨다. 그러면 그녀는 애교를 부리며 어머니를 웃음을 짓게 하려 애썼다. 염희진은 슬픔을 억누르며 눈물을 닦았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 십팔 년을 헤멨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이제 더는 그들을 슬프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가냘픈 어머니를 껴안은 그녀는 그동안 받았던 상처가 마치 둑이 무너진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어머니를 껴안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못했다.이어 염 선생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가왔고 그들은 눈물로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정청 안으로 들어갔다. 진부연은 여전히 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억 속에 일곱 살이었던 염희진은 이제 스물다섯이 되었다. 그녀의 기억도 서서히 또렷해졌다. 하지만 기억 속 어머니는 젊고 활기찼었다. 그녀를 꾸짖을 때면 이웃들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지만, 이제는 말조차 힘겹게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이 장면을 보고 있었던 시만자와 송석석은 두 사람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눈시울을 붉히며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두 사람도 가슴이 뭉클해졌다.염 선생은 어릴 때부터 동생을 무진장 아꼈고 여리기만 한 진부연은 한때는 강인한 모습이었으며 어린 시절의 염희진이 장난꾸러기였다. 염희진은 매산에서의 두 사람과 많이 닮아있었다.송석석은 시간을 내어 황제의 임명장을 받아왔다. 임명장은 아직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했지만, 감사의 예는 갖추었다. 오대반이 직접 임명장을 전달하며 몇 마디 나누고 싶어 했지만, 송석석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더 보고 싶어 그더러 잠시 기다리게 했다.시만자의 말처럼 이런 상봉이야말로 가장 감격스러운 것이었다.송석석은 눈물을 닦으며 딸을 품에 꼭 안고 있는 진부연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안길 수 있는 어머니가 없었다.그녀가 몸을 돌리자 혜태비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혜태비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고 씨 유모 역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눈물이 맺힌 송석석의 모습이 혜태비는 안쓰러웠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송석석은 눈물을 닦으며 다가가자, 혜태비는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어미가 되어줄 것이다." 송석석은 감동
다과를 비운 오대반이 차를 한잔 더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오대반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예를 갖췄다. 송석석은 곧장 그의 손을 받쳐주며 말했다. "예는 필요 없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오대반이 그녀를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었기에 오늘이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대반이 자리에 앉자, 송석석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재 어머니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왕부에 시집온 후에도, 왕야를 위해 황상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어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오대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왕비께서 이렇게 감사를 표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 기다린 것입니다." 송석석은 자리에 앉으며 상냥하게 답했다. "말씀하시지요." 오대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왕비께서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왕비님을 믿고 쓰기로 했다면, 그것은 매우 큰 신뢰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부는 절대 마음이 갈라지면 안 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믿고, 함께 의논해야 합니다. 이익이나 권력 때문에 틈이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서로 신뢰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송석석은 오대반의 말을 곱씹으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생각해 보았다. 황제가 최대한으로 신뢰한다 해도,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었다. 절대적으로 그녀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추구하는 목표가 같더라도 절대적인 신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게다가 본래 의심이 많은 황제이기에 어느 정도의 신뢰도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부부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함은 권력이나 이익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었다.그와 사여묵은 부부이고 함께 조정에 나아가 관직에 있으니 큰 방향은 같을지라도 간혹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때로는 부딪힐 수도 있었다. 게다가 현갑군의 지휘사로 황제의 명을 따르는
오늘 장공주부는 아수라장이었다.장공주를 포함한 모든 관리들이 전부 잡혀갔고, 집안의 노비들은 일단 장공주 댁에 임시로 머물게 하고 대리사에서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었다. 나중에 심문할 자는 모두 데려가 문초할 예정이었다. 경위와 순방영이 철수하고, 사건은 대리사에 넘겨졌다. 대리사 소경 진이 여인들에게 집으로 소식을 전하게 하고, 사건이 마무리되면 장공주 댁에서 해산시키고 보상해 줄 것이라 전하였다. 림봉아는 집이 진성이라 먼저 귀가하도록 하였고 고청란이 직접 맞이하러 왔다.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십오일이 아닌 초하루에 움직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왕비께서는 그녀에게조차 계획을 숨긴 것이다. 고청란은 왕비가 자신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왕비에게 말해 주었고, 심지어 아버지까지 데려갔건만, 왕비는 계획을 끝까지 숨겼던 것이다. 집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림봉아가 그녀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네 아버지는 애초에 왕비와 협력할 마음이 없었다. 그이는 너희가 십오일에 실행할 계획을 이미 장공주에게 알렸단다. 만약 계획이 앞당겨지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청란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저를 배신하셨단 말입니까? 그건 저를 죽음으로 몰수도 있는 것인데 말입니까?" 림봉아는 딸의 어깨에 힘없이 기대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딸들을 이용할 뿐이다. 장공주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하지만…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던 고청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셨단 말입니다." "사내의 말을 온전히 믿을 것은 아니니라. 온전히 믿었다가는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림봉아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처음에는 미모를 보고 몇 년간 마음을 두기는 하였겠지. 하지
듣고 있던 고청란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그럴 리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권세가를 찾으려 했다면, 전에 량소가 적합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그는 언니를 정말로 사랑했지 않았습니까?"림봉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량소는 승은백부의 세자이자 탐화랑이지. 하지만 그가 아내로 맞이한 것은 회왕부의 영안 군주다. 그러니 청우가 정실부인이 될 희망은 없다. 게다가 량소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정작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느니라. 그리 애지중지하면서도 평처로조차 들이지 못했다."고청란은 순간 멈칫했다."평처요?"마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고 림봉아는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래, 평처여야만 정실부인이 죽으면 승격될 기회가 있는 것이다. 평처가 되지 못하고 단지 첩이라면, 정실부인이 죽는다 해도 정실로 올라갈 수 없느니라. 청우는 첩이 될 수 있지만, 평생 첩으로만 남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하더구나."고청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언니가 첩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든 첩이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언니는 어머니를 위해 계속 이용당해 왔으니, 언니도 참 불쌍합니다."고청란의 어깨에 기댄 림봉아는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기침도 점점 거세졌다. 그러다 결국 피까지 토해냈다.고청란은 어머니의 등을 다독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찌 이리도 심하게 기침하시는 겁니까? 분명히 대부를 모셔 왔다 하지 않으셨습니까?"림봉아는 더러워진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힘없이 웃었다. "어미는 곧 나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어미의 말을 꼭 기억해라. 앞으로 청우가 무슨 일을 시키든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라. 명심하거라, 그 어떤 것도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청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공주부도 이미 무너졌으니, 저에게 시킬 일도 없습니다. 진성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고청란의 손을 잡은 림봉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엄히 경고했다."어미 말을 꼭 기
오늘 대리사에게 가장 바쁜 하루였다.대리시경이 명령을 내리자, 모든 사람들의 휴가는 취소되었다. 대리승 허평안도 부모상을 치르기 위해 본가로 돌아갔던 대리승 허평안은 관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차에 반역 사건이 터졌고 왕야가 상소를 올려 그를 복직시켰다. 허평안은 즉시 환복하고 대리사로 향했다.장공주와 고부진은 대리사로 끌려왔다. 사여묵이 직접 장공주를 심문하였고 진이가 고부진을 심문하였다. 그 외 관리인, 노비, 부의, 하인들은 대리승 허평안과 대리정 노정의가 맡았다.사여묵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장공주를 심문하기에 앞서 공주부의 무기들을 모두 대리사로 옮겨 증거로 삼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심문을 시작하였다.해가 질 때까지 겨우 몇 사람 심문하였다. 사여묵은 교대로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려 심문이 멈추지 않도록 하였다. 진이는 심문한 내용을 정리하여 사여묵에게 보고하였다.사여묵이 살펴보니, 정보는 매우 적었다. 그가 고부진의 자료를 꺼내 들었지만 가득한 물음에 비해 답변은 거의 없었고, 많은 것들은 "모르겠다"로 일관하고 있었다.진이는 머리가 아팠다."고부진은 모른다고만 일관하며 지하 감옥에 있던 여인들과 후원에 감시받던 여자들이 자기 첩들이라는 것만 인정했습니다. 그 무기들과 장공주의 반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사여묵은 고부진의 증언을 한쪽에 내려놓았다."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자백하지 않겠지." 그는 방 마마와 도준의 것을 집어 들었다."방 마마는 장공주 곁에 오래 있었던 심복이다. 그리고 도준은 공주부의 시위장이지. 이들은 뭐라 하였느냐?""방 마마는 충격이 컸는지 입버릇처럼 ‘그럴 리 없다’만 되풀이하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도준은 많은 것을 자백했지만, 대부분 사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공주가 누구와 빈번하게 왕래했는지, 어떻게 첩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첩들이 아이를 낳으면 물에 빠트리거나, 목 조르거나, 던지는 등 온갖 방식으로 죽였다고 합
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렸다.‘자백이 아주 상세한 것을 보니 죽음이 실로 두려웠나 보군.’고청우가 어떻게 그를 유혹하였고, 어떤 말들로 그를 궁지로 몰았는지, 어찌하여 위험을 무릅쓰면서가지 림봉아를 해치게 되었는지, 사용한 약과 병세가 언제쯤 악화되는지, 언제쯤 죽을 것인지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았다.양백은 고청우가 더 이상 장공주의 통제 아래에 있고 싶지 않아 아예 자신의 생모를 독살하려 했다고 추측하였다.사여묵은 사건을 처리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금방 문제점을 알아챘다. “고청우가 장공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장공주가 그녀를 통제한 수단이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으니, 만약 고청우가 어머니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승은백부 량소를 앞세워 장공주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령 그녀가 첩이 되기 싫어 량소에게서 돈을 뜯어 멀리 도망쳤다면, 장공주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정말로 극단적이었구나, 양부의가 이미 예순 가까이 되었는데 말이다.”대리사에 오래 있어 온갖 인간을 만나봤던 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고청우는 어릴 적부터 이런 쪽으로 길러졌으니, 자신의 외모와 몸을 거래의 도구로 삼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사옵니다.”“그녀를 데려와 심문하거라.”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고부진은 고청우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불었습니다. 그녀가 만가다장에 있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애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인력이 부족하여 사람을 충분히 배치하지 못했습니다.”대리사는 평소 사건을 처리하기에 인력이 충분하였으나 이번 사건은 연루된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었다. 만약 신속히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요한 인물들이 도망치기 쉬운 상황이었다. 장공주는 진성에서 오랜 세월 권력을 다졌으니, 분명 적지 않은 대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년 그 많은 은화를 접대에 쏟아붓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와 갑옷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