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리사에게 가장 바쁜 하루였다.대리시경이 명령을 내리자, 모든 사람들의 휴가는 취소되었다. 대리승 허평안도 부모상을 치르기 위해 본가로 돌아갔던 대리승 허평안은 관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차에 반역 사건이 터졌고 왕야가 상소를 올려 그를 복직시켰다. 허평안은 즉시 환복하고 대리사로 향했다.장공주와 고부진은 대리사로 끌려왔다. 사여묵이 직접 장공주를 심문하였고 진이가 고부진을 심문하였다. 그 외 관리인, 노비, 부의, 하인들은 대리승 허평안과 대리정 노정의가 맡았다.사여묵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장공주를 심문하기에 앞서 공주부의 무기들을 모두 대리사로 옮겨 증거로 삼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심문을 시작하였다.해가 질 때까지 겨우 몇 사람 심문하였다. 사여묵은 교대로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려 심문이 멈추지 않도록 하였다. 진이는 심문한 내용을 정리하여 사여묵에게 보고하였다.사여묵이 살펴보니, 정보는 매우 적었다. 그가 고부진의 자료를 꺼내 들었지만 가득한 물음에 비해 답변은 거의 없었고, 많은 것들은 "모르겠다"로 일관하고 있었다.진이는 머리가 아팠다."고부진은 모른다고만 일관하며 지하 감옥에 있던 여인들과 후원에 감시받던 여자들이 자기 첩들이라는 것만 인정했습니다. 그 무기들과 장공주의 반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사여묵은 고부진의 증언을 한쪽에 내려놓았다."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자백하지 않겠지." 그는 방 마마와 도준의 것을 집어 들었다."방 마마는 장공주 곁에 오래 있었던 심복이다. 그리고 도준은 공주부의 시위장이지. 이들은 뭐라 하였느냐?""방 마마는 충격이 컸는지 입버릇처럼 ‘그럴 리 없다’만 되풀이하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도준은 많은 것을 자백했지만, 대부분 사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공주가 누구와 빈번하게 왕래했는지, 어떻게 첩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첩들이 아이를 낳으면 물에 빠트리거나, 목 조르거나, 던지는 등 온갖 방식으로 죽였다고 합
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렸다.‘자백이 아주 상세한 것을 보니 죽음이 실로 두려웠나 보군.’고청우가 어떻게 그를 유혹하였고, 어떤 말들로 그를 궁지로 몰았는지, 어찌하여 위험을 무릅쓰면서가지 림봉아를 해치게 되었는지, 사용한 약과 병세가 언제쯤 악화되는지, 언제쯤 죽을 것인지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았다.양백은 고청우가 더 이상 장공주의 통제 아래에 있고 싶지 않아 아예 자신의 생모를 독살하려 했다고 추측하였다.사여묵은 사건을 처리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금방 문제점을 알아챘다. “고청우가 장공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장공주가 그녀를 통제한 수단이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으니, 만약 고청우가 어머니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승은백부 량소를 앞세워 장공주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령 그녀가 첩이 되기 싫어 량소에게서 돈을 뜯어 멀리 도망쳤다면, 장공주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정말로 극단적이었구나, 양부의가 이미 예순 가까이 되었는데 말이다.”대리사에 오래 있어 온갖 인간을 만나봤던 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고청우는 어릴 적부터 이런 쪽으로 길러졌으니, 자신의 외모와 몸을 거래의 도구로 삼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사옵니다.”“그녀를 데려와 심문하거라.”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고부진은 고청우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불었습니다. 그녀가 만가다장에 있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애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인력이 부족하여 사람을 충분히 배치하지 못했습니다.”대리사는 평소 사건을 처리하기에 인력이 충분하였으나 이번 사건은 연루된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었다. 만약 신속히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요한 인물들이 도망치기 쉬운 상황이었다. 장공주는 진성에서 오랜 세월 권력을 다졌으니, 분명 적지 않은 대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년 그 많은 은화를 접대에 쏟아붓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와 갑옷
송석석도 아직 잠들지 않았고, 보주는 그녀의 관복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이 관복은 본래 현갑군 부지휘사 시절의 것이었고 그저 명목상의 직책에 불과하여 실제로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입게 될 줄은 몰랐다. 4마리 야수가 박힌 관복에 별도의 무기는 하사받지 못했다. 검은 비단 모자에는 구슬이 박혀 있었으니 이제 더 이상 여자 옷차림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보주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예전에 전북망이 평처를 들이겠다며 송석석을 무시했던 것이 분했지만 이제 아가씨께서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지휘사가 무관이긴 하지만, 더 이상 군영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보주는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어떻게 되었습니까? 알아내셨습니까?"돌아온 사여묵에 송석석이 급히 다가갔다.하지만 사여묵은 그녀의 관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건 부지휘사의 관복이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정지휘사요.""상관없습니다. 일단 이걸 입으렵니다." 송석석은 담담하게 덧붙였다."내일 아침에 입궁해야 하고, 그 후 현갑군 위소로 가서 모든 일을 접수할 것입니다. 당신은 바빠서 자리하지 못할 테지요?"사여묵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웃었다. "나는 남강으로 간 이후로 현갑군의 일을 거의 돌보지 않았으니, 당신이 필명을 다스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오. 아니면, 조금 불안한가? 내가 함께 가야 하오?""아닙니다. 전혀 긴장되지 않습니다." 송석석은 사여묵의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답했다. 이 모습을 본 보주와 명주는 재빨리 물러났다."전장에서 적을 베고도 긴장하지 않았으니, 지휘사 직책은 손쉽게 해낼 것 같소." 사여묵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축하하오. 당신은 우리나라 개국 이래 첫 번째로 조정에 진출한 여관이 되었소."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황제께서 즉흥적으로 내리신 명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이유를 들어
"고청우의 행방은 아마 홍시 일행이 알 수 있겠지만 추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리도 큰 사건이 벌어졌으니, 분명 진성에 머물며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돌아온 것은 그들에게 연왕부와 회왕부를 감시하게 하기 위함이오. 비록 그들이 당분간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이 무기들의 제조와 운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을 것이고 지하 감옥이 아직 차지 않았으니, 아마 여전히 무언가를 진행 중일 것이오. 장공주부가 무너진 후, 연왕이나 회왕이 이 일을 떠맡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우선 그들을 감시하시오.""알겠습니다. 제가 만자에게 전하겠습니다." 사여묵은 씻기 위해 하인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하게 했다.환복하고 나니 반시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염 선생은 그가 돌아온 것을 알고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 했으나, 사여묵이 곧 다시 대리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와 함께 대리사로 향할 생각이었다.염 선생은 왕부의 장사로서 대리사 소속은 아니었으나, 왕의 곁에서 조언을 제공할 수 있었다. 왕비 또한 관직을 맡았으니, 왕부는 자연스레 노 집사와 양 마마에게 넘어갔다. 다행히도 최근 심청화 선생이 왕부에 머물고 있었기에, 많은 일에 있어 자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사여묵은 긴 의자에 누웠다. 그는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이는 피곤해서라기보다는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 제대로 된 휴식은 사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언제든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을 익혔고, 몸을 즉시 이완시키며 회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반 시진이 지나 사여묵이 깨어났을 때, 염 선생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송석석은 그에게 관복을 입혀 주며, 그의 흐트러진 머리도 빠르게 정리해 주었다. "양 마마가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가져가서 배가 고프면 몇 개씩 드세요.""알겠소." 사여묵은 미지근한 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야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이제 떠나야겠소. 아마 내일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없
시만자는 연신 감탄했다. “어머 어머, 대감께서는 어디로 가시려는 건지요? 소녀도 데려가 주시겠습니까?”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응징하며 말했다. “마침, 잘 왔어. 너 없으면 안 될 일이 하나 있어.”시만자는 몸을 낮추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송석석이 아니꼽게 흘겼다.“대감께서 명하시면 소녀는 그저 따르겠습니다.”“제대로 안 할래? 한 대 더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하지만 시만자는 손수건을 휘두르며 여전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대감, 너무 거칠게 구시옵니다.”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려 넘겼으나, 시만자는 몸을 돌려 두 발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잡히지 않지, 잡히지 않아.”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영씨가 말했다. “시 아가씨는 정말 재미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태비마마께서 예뻐하시는 것 같습니다.”“그야 태비마마께서 석석이보다는 절 더 좋아하시니깐요.” 시만자는 태비마마 흉내를 내며 도도한 표정을 짓자, 송석석이 다시 한번 흘겼다.“나 곧 나가야 본론을 들어갈게.”그제야 시만자는 몸가짐을 가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송 대감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모두 나가거라.”모두가 떠나자, 송석석은 한 바퀴 돌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나 어때?”“역시 잘난 척하려는 것이로군.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옜다! 멋있어! 아주 관직이 체질이군. 기품이 넘쳐.”송석석은 구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참 낯선 기분이야.”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시만자는 흥분한 듯 발을 구르며 말했다. “석석아, 너 정말 대단해! 여인이 관직에 오르다니, 넌 매산의 영광이야!”송석석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나도 이 자리에 오를 줄은 몰랐어. 어제 임명장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관복을 입으니, 책임감이 들고 어깨가 좀 무거워진 것 같아.”그녀의 표정
시만자는 즉시 대답했다. “알겠어. 홍작과 함께 가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송석석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에 앉혔다. “또 한 가지가 있어. 미리 말해 줄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갑자기 엄숙하게 군다고? 겁주는 거야? 뭔 일인데? 어서 말해 봐.”송석석은 여전히 어색해하는 듯 관모를 정리했다.“장공주부가 완전히 무너졌으니, 연왕 무리들이 장공주의 자백 여부를 캐려 할 거야. 누구를 언급했는지, 과거에 누구와 교류했는지 말이야. 과거에 조정의 어떤 관리와 접촉했든 지금은 감히 찾지 못할 거야. 하여 내 생각엔 네 그 당숙이 너를 찾아올 거야.”시만자는 목소리가 급격히 차가워졌다.“그렇다 한들 나한테서 뭘 알아내겠어? 나로부터 비밀을 캐내려고? 꿈도 꾸지 말라 그래. 걱정 마, 그 머리로 날 속이긴 글렀고 나도 절대 누설하지 않을 거야.”잠시 멈칫하던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혹시 그녀를 달래며 잘 지내는 척 떠보라는 거야?”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예전처럼 대하면 돼. 특별히 다정하게 굴 필요 없어. 분명 김 측비와 함께 널 찾아올 거야. 김 측비는 신중하고 세심하니, 네가 연왕부에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금방 눈치챌 거야.”“그야 어렵지 않지. 그녀가 연왕에게 시집간 이후로 나는 한 번도 그녀에게 눈길을 준 적이 없으니, 그대로 하면 되지?”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갑자기 친절하게 굴면 오히려 수상할 테니까.”“알겠어. 그런데 너는 왜 아직도 출발 안 해?” 시만자가 묻자,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머뭇거렸다.“흥분돼서 일찍 일어난 거야. 아직 날도 밝지 않았어.”“지금 출발하면 도착할 즈음엔 해가 떠 있을 거야.”“오늘은 조회가 없으니, 황제께서도 이리도 일찍 어전에 계시진 않을 거 같아.”“응? 오대반이 언제 입궁하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송석석은 수줍은 듯이 답했다.“어제 명을 전할 때 얘기해 줬고 진시 말쯤에 오라고 했어.”시만자의 눈이 휘둥그레졌
매원에서 한바탕 난리법석이더니 시만자가 욕설을 퍼붓고 몽동이는 도망쳤다. 보주와 궁녀 영 씨는 계란을 삶아 두 사람의 얼굴과 눈가의 붓기를 가라앉혔다. 효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분을 발라서 시만자의 얼굴은 보기에 많이 좋아 보였지만 왕비의 눈가는 점점 검게 변했다. 보주가 분을 발라주려고 하자 송석석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됐어. 조정의 명관이 무슨 분을 바른 다는 것이냐? 저리 가거라.” “하지만 부인의 눈이 크게 뜨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주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황제폐하도 만나러 가야 할 텐데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송석석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황제를 만나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령 고개를 든다고 해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송석석은 직접 마구간에 가서 그녀의 망아지 번개를 끌어내고 번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쪽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말했다. “번개야,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전쟁터로 가야 한다. 우린 함께 싸워야 된다. 알겠느냐?” 번개는 마구간에 너무 오랫동안 있었다. 가끔 두어 바퀴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송석석은 마차를 타고 나갔고 번개는 마차를 끌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개는 코에서 김을 뿜고 말발굽으로 땅을 파헤치며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이때 마부가 와서 몸을 굽히고 말했다. “왕비님 걱정 마십시오. 안장은 새것이고 발굽도 고쳤습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제가 가장 좋은 사료를 먹였습니다. 번개는 지금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송석석은 새 안장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사람은 옷 발이고 말은 안장 발이라더니 안장을 바꾸니 바로 위풍당당하게 느껴지는구나.’ 송석석은 채찍을 받아 들고 말했다. “돌아가서 노 집사에게 돈을 받거라. 내가 분부한 것이라고 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왕비님의 승진을 기원합니다.” 마부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 왕비님의 한쪽 눈이 왜 시커멓게 멍이 들었는지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송석석이 외출
송석석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일찍 일어나서 입궁 전에 저택의 사람들과 비무하다 실수로 한 대 맞은 것입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이냐? 현갑군 지휘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봐 긴장이라도 한 것이냐?” 황제의 물음에 송석석은 사실대로 말했다. “긴장한 것 맞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어서 기대에 어긋날까 봐 걱정입니다.” 숙청제는 그녀의 검푸른 눈을 보며 여전히 웃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몇 가지 당부할 말이 있어 정색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조정의 첫 번째 여관으로서 네가 감당해야 할 일은 현갑군 지휘사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태후의 기대도 있고, 천하의 여인들도 모두 널 우러러보겠지. 그러니 다른 사람이 지휘사를 맡으면 나라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 하면 되지만 넌 항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처리도 잘해야 하겠지. 힘들긴 하지만 나는 네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모든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 계신 네 가족의 영혼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다. 네 부친과 오라비들은 우리 조정의 여웅이다. 그들은 용맹하게 싸웠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들이 편히 살기를 바랐다. 그러니 너도 그들의 의지를 계승해야 할 것이야.” 황제가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에 송석석은 알아채고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 반드시 최선을 다해 진성의 평화를 지키고 백성들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숙청제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는 현갑군 지휘사의 관복을 입고 있는 송석석이 위풍당당해 보였고 그녀의 실력으로 현갑군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압할 수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지휘관으로서 그녀는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했다.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아침부터 대리사 쪽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보고가 들어왔으니 넌
태후는 수빈이 계란궁으로 이주한 것이 삼황자의 요양을 위한 것이니,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태후의 감시가 있는 한, 궁의 내부에서도 감히 게을리할 수 없어, 여전히 수빈에게 원래의 빈의 신분에 걸맞은 의식주를 제공했다.그러나 가권들과의 만남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그 이유 역시 삼황자의 안정적인 요양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이씨 부인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송석석을 찾아가 부탁하기로 했다. 그녀는 수빈이 궁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테니, 약간의 은화를 보내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적절히 챙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궁 안에서 고생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었다.이씨 부인은 복소의의 유산이 수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총애를 잃은 후궁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궁 안에서는 권력이 곧 생명이며, 사람들은 강한 자에게만 붙어 약한 자를 철저히 외면했다.송석석은 그녀에게 태후께서 이미 공주와 황자를 돌보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다. 그러나 이씨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아이는 제가 열 달을 품고 어렵게 낳은 딸입니다. 손바닥 위에서 귀하게 키우며 그 어떤 고통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아이인데……이제는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겠지요. 왕비께서 부디 그녀에게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부디 스스로를 아끼라고 전해주십시오.”송석석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지며, 가슴이 저릿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도 이전에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녀의 모친은 자신을 전북망에게 시집을 보낼 때,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내가 석석이를 가졌을 때는 이미 나이가 많아 열 달을 품고 또 낳는 동안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했네. 이 아이는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소중한 내 딸이네. 작은 고통조차
수빈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태후의 말투를 보아하니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더 깊이 파헤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는데, 그녀 자신은 정말 그들이 철저히 조사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장 먼저 죄를 뒤집어쓰게 될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사실을 털어놓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린 뒤, 휘청거리며 궁을 나섰다.태후는 수빈의 초라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처음 입궁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성격은 오만하고 고고했으며, 황제의 총애를 받은 뒤에는 거침없을 정도로 방자해지기까지 했다.최근 몇 년 동안은 많이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그녀의 본질적인 자존심과 야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야망이 결국 그녀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권력이란 참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태후는 사태가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즉시 황후와 덕비에게 경문을 필사하도록 명하여, 제야까지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대황자와 이황자는 낮에는 서방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황숙과 무예를 익히며 지속적으로 지안궁에서 숙식하게 했다. 황후와 덕비가 그들을 만나는 것 또한 금지되었다.사여묵은 현철위를 배치하여 황자들의 서방 출입과 무예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궁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까지 철저히 호위하도록 조치했다. 그들의 식사는 모두 지안궁에서 해결되었으며, 지안궁은 그 자체로 철통 같은 경계 속에 있었으므로 적어도 식사로 해를 입을 위험은 없었다.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수빈이 거처를 옮긴 것은 복소의의 태아를 해쳤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궁중에 떠돌기 시작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빈은 무고하며 실제 복소의의 태아를 해한 자는 황후이며, 수빈은 황후의 죄를 뒤집어쓴 희생양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이 소문은 너무 빠르고 강하게 퍼져 결국 황후의 귀
며칠 후, 태후궁에서 궁녀의 시신 한 구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그날 숙청제는 즉시 칙령을 내려 수빈을 혜의궁에서 쫓아내고, 삼공주와 삼황자를 데리고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했다.계란궁은 황궁의 서북쪽 끝, 냉궁과 가까운 곳에 있어 평소 찾아오는 이조차 드물었다.칙령이 내려졌을 때, 수빈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오랜 시간 멍하니 굳어 있었다.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직이 명령했다."짐을 챙기거라."그녀는 이제 자신과 삼황자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사실,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복소의의 아이가 사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빨랐다. 그녀가 탄 약의 양은 극히 적은 탓에, 반드시 보름 동안 먹어야만 효과가 나타나도록 조절했기 때문이다.그런데 하루 만에 유산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심어둔 사람 중 누군가가 황후나 덕비에게 붙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제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그녀의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수빈이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려 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만약 더 발버둥 친다면, 궁을 옮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곧장 냉궁으로 내쳐질 터였다.이번 처분이 오히려 최선일 수도 있다. 추후에 더 가혹한 처벌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곧 후궁 전역에 수빈의 이주 소식이 퍼졌다.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혜의궁으로 옮겨갔을 때의 화려했던 순간이 모두의 기억에 선명한데, 이제는 냉궁 근처로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후궁의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이 복소의의 유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황제의 교지에는 삼황자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조용한 환경에서 요양해야 하므로, 보다 한적한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한다고 쓰여 있었다.또한, 수빈이 삼황자를 돌보아야 하므로 후궁을 관리하던 권한 당분간 내려놓을 것이며, 덕비와 함께 후궁을 보좌할 적절한 인물을
송석석은 황제라는 위치가 얼마나 갑갑한 것인지 실감했다. 이 권력의 저울질과 계산 속에서 그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지금 황제는 대황자를 태자로 세우려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황후는 이 일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황자는 본래 평범한 인물이니, 만약 황후가 황자를 해하려 한 죄목까지 더해진다면 그가 태자로 자리 잡는 것도 위태로워질 것이었다.그리고 직접 손을 쓴 수빈에 대해서도 황제는 그녀의 부친을 고려해야 하기에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다.결국, 이 사건은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한 사람도 만만한 이가 없구나."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한 번쯤 싸워보고 싶은 법이다."송석석이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물으려 할 때, 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가 궁 안의 일들을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폐하께서 한때 북명황실을 경계하더니, 이제는 다시 너희를 신뢰하고 있지않느냐. 누군가 그 자리를 탐낸다면 네게서 빈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후궁의 음흉한 계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고,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송석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겁니까?"태후가 고개를 저었다."저지른 죄를 어찌 그저 덮어둘 수 있겠느냐. 지금은 그대로 둔다 해도,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업보를 지고 가는 법이다."송석석이 다시 한 번 물었다."이미 모든 의도를 파악하셨는데, 후궁의 평온은 이미 깨진 것이 아닙니까? 이를 막을 수 있으시겠습니까?"태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말했듯이 사람의 마음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한순간 천국을 꿈꾸다가도, 한순간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지. 그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데, 어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