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과를 비운 오대반이 차를 한잔 더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오대반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예를 갖췄다. 송석석은 곧장 그의 손을 받쳐주며 말했다. "예는 필요 없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오대반이 그녀를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었기에 오늘이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대반이 자리에 앉자, 송석석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재 어머니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왕부에 시집온 후에도, 왕야를 위해 황상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어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오대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왕비께서 이렇게 감사를 표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 기다린 것입니다." 송석석은 자리에 앉으며 상냥하게 답했다. "말씀하시지요." 오대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왕비께서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왕비님을 믿고 쓰기로 했다면, 그것은 매우 큰 신뢰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부는 절대 마음이 갈라지면 안 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믿고, 함께 의논해야 합니다. 이익이나 권력 때문에 틈이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서로 신뢰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송석석은 오대반의 말을 곱씹으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생각해 보았다. 황제가 최대한으로 신뢰한다 해도,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었다. 절대적으로 그녀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추구하는 목표가 같더라도 절대적인 신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게다가 본래 의심이 많은 황제이기에 어느 정도의 신뢰도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부부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함은 권력이나 이익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었다.그와 사여묵은 부부이고 함께 조정에 나아가 관직에 있으니 큰 방향은 같을지라도 간혹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때로는 부딪힐 수도 있었다. 게다가 현갑군의 지휘사로 황제의 명을 따르는
오늘 장공주부는 아수라장이었다.장공주를 포함한 모든 관리들이 전부 잡혀갔고, 집안의 노비들은 일단 장공주 댁에 임시로 머물게 하고 대리사에서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었다. 나중에 심문할 자는 모두 데려가 문초할 예정이었다. 경위와 순방영이 철수하고, 사건은 대리사에 넘겨졌다. 대리사 소경 진이 여인들에게 집으로 소식을 전하게 하고, 사건이 마무리되면 장공주 댁에서 해산시키고 보상해 줄 것이라 전하였다. 림봉아는 집이 진성이라 먼저 귀가하도록 하였고 고청란이 직접 맞이하러 왔다.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십오일이 아닌 초하루에 움직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왕비께서는 그녀에게조차 계획을 숨긴 것이다. 고청란은 왕비가 자신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왕비에게 말해 주었고, 심지어 아버지까지 데려갔건만, 왕비는 계획을 끝까지 숨겼던 것이다. 집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림봉아가 그녀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네 아버지는 애초에 왕비와 협력할 마음이 없었다. 그이는 너희가 십오일에 실행할 계획을 이미 장공주에게 알렸단다. 만약 계획이 앞당겨지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청란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저를 배신하셨단 말입니까? 그건 저를 죽음으로 몰수도 있는 것인데 말입니까?" 림봉아는 딸의 어깨에 힘없이 기대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딸들을 이용할 뿐이다. 장공주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하지만…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던 고청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셨단 말입니다." "사내의 말을 온전히 믿을 것은 아니니라. 온전히 믿었다가는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림봉아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처음에는 미모를 보고 몇 년간 마음을 두기는 하였겠지. 하지
듣고 있던 고청란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그럴 리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권세가를 찾으려 했다면, 전에 량소가 적합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그는 언니를 정말로 사랑했지 않았습니까?"림봉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량소는 승은백부의 세자이자 탐화랑이지. 하지만 그가 아내로 맞이한 것은 회왕부의 영안 군주다. 그러니 청우가 정실부인이 될 희망은 없다. 게다가 량소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정작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느니라. 그리 애지중지하면서도 평처로조차 들이지 못했다."고청란은 순간 멈칫했다."평처요?"마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고 림봉아는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래, 평처여야만 정실부인이 죽으면 승격될 기회가 있는 것이다. 평처가 되지 못하고 단지 첩이라면, 정실부인이 죽는다 해도 정실로 올라갈 수 없느니라. 청우는 첩이 될 수 있지만, 평생 첩으로만 남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하더구나."고청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언니가 첩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든 첩이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언니는 어머니를 위해 계속 이용당해 왔으니, 언니도 참 불쌍합니다."고청란의 어깨에 기댄 림봉아는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기침도 점점 거세졌다. 그러다 결국 피까지 토해냈다.고청란은 어머니의 등을 다독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찌 이리도 심하게 기침하시는 겁니까? 분명히 대부를 모셔 왔다 하지 않으셨습니까?"림봉아는 더러워진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힘없이 웃었다. "어미는 곧 나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어미의 말을 꼭 기억해라. 앞으로 청우가 무슨 일을 시키든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라. 명심하거라, 그 어떤 것도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청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공주부도 이미 무너졌으니, 저에게 시킬 일도 없습니다. 진성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고청란의 손을 잡은 림봉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엄히 경고했다."어미 말을 꼭 기
오늘 대리사에게 가장 바쁜 하루였다.대리시경이 명령을 내리자, 모든 사람들의 휴가는 취소되었다. 대리승 허평안도 부모상을 치르기 위해 본가로 돌아갔던 대리승 허평안은 관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차에 반역 사건이 터졌고 왕야가 상소를 올려 그를 복직시켰다. 허평안은 즉시 환복하고 대리사로 향했다.장공주와 고부진은 대리사로 끌려왔다. 사여묵이 직접 장공주를 심문하였고 진이가 고부진을 심문하였다. 그 외 관리인, 노비, 부의, 하인들은 대리승 허평안과 대리정 노정의가 맡았다.사여묵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장공주를 심문하기에 앞서 공주부의 무기들을 모두 대리사로 옮겨 증거로 삼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심문을 시작하였다.해가 질 때까지 겨우 몇 사람 심문하였다. 사여묵은 교대로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려 심문이 멈추지 않도록 하였다. 진이는 심문한 내용을 정리하여 사여묵에게 보고하였다.사여묵이 살펴보니, 정보는 매우 적었다. 그가 고부진의 자료를 꺼내 들었지만 가득한 물음에 비해 답변은 거의 없었고, 많은 것들은 "모르겠다"로 일관하고 있었다.진이는 머리가 아팠다."고부진은 모른다고만 일관하며 지하 감옥에 있던 여인들과 후원에 감시받던 여자들이 자기 첩들이라는 것만 인정했습니다. 그 무기들과 장공주의 반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사여묵은 고부진의 증언을 한쪽에 내려놓았다."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자백하지 않겠지." 그는 방 마마와 도준의 것을 집어 들었다."방 마마는 장공주 곁에 오래 있었던 심복이다. 그리고 도준은 공주부의 시위장이지. 이들은 뭐라 하였느냐?""방 마마는 충격이 컸는지 입버릇처럼 ‘그럴 리 없다’만 되풀이하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도준은 많은 것을 자백했지만, 대부분 사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공주가 누구와 빈번하게 왕래했는지, 어떻게 첩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첩들이 아이를 낳으면 물에 빠트리거나, 목 조르거나, 던지는 등 온갖 방식으로 죽였다고 합
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렸다.‘자백이 아주 상세한 것을 보니 죽음이 실로 두려웠나 보군.’고청우가 어떻게 그를 유혹하였고, 어떤 말들로 그를 궁지로 몰았는지, 어찌하여 위험을 무릅쓰면서가지 림봉아를 해치게 되었는지, 사용한 약과 병세가 언제쯤 악화되는지, 언제쯤 죽을 것인지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았다.양백은 고청우가 더 이상 장공주의 통제 아래에 있고 싶지 않아 아예 자신의 생모를 독살하려 했다고 추측하였다.사여묵은 사건을 처리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금방 문제점을 알아챘다. “고청우가 장공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장공주가 그녀를 통제한 수단이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으니, 만약 고청우가 어머니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승은백부 량소를 앞세워 장공주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령 그녀가 첩이 되기 싫어 량소에게서 돈을 뜯어 멀리 도망쳤다면, 장공주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정말로 극단적이었구나, 양부의가 이미 예순 가까이 되었는데 말이다.”대리사에 오래 있어 온갖 인간을 만나봤던 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고청우는 어릴 적부터 이런 쪽으로 길러졌으니, 자신의 외모와 몸을 거래의 도구로 삼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사옵니다.”“그녀를 데려와 심문하거라.”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고부진은 고청우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불었습니다. 그녀가 만가다장에 있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애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인력이 부족하여 사람을 충분히 배치하지 못했습니다.”대리사는 평소 사건을 처리하기에 인력이 충분하였으나 이번 사건은 연루된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었다. 만약 신속히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요한 인물들이 도망치기 쉬운 상황이었다. 장공주는 진성에서 오랜 세월 권력을 다졌으니, 분명 적지 않은 대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년 그 많은 은화를 접대에 쏟아붓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와 갑옷
송석석도 아직 잠들지 않았고, 보주는 그녀의 관복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이 관복은 본래 현갑군 부지휘사 시절의 것이었고 그저 명목상의 직책에 불과하여 실제로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입게 될 줄은 몰랐다. 4마리 야수가 박힌 관복에 별도의 무기는 하사받지 못했다. 검은 비단 모자에는 구슬이 박혀 있었으니 이제 더 이상 여자 옷차림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보주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예전에 전북망이 평처를 들이겠다며 송석석을 무시했던 것이 분했지만 이제 아가씨께서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지휘사가 무관이긴 하지만, 더 이상 군영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보주는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어떻게 되었습니까? 알아내셨습니까?"돌아온 사여묵에 송석석이 급히 다가갔다.하지만 사여묵은 그녀의 관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건 부지휘사의 관복이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정지휘사요.""상관없습니다. 일단 이걸 입으렵니다." 송석석은 담담하게 덧붙였다."내일 아침에 입궁해야 하고, 그 후 현갑군 위소로 가서 모든 일을 접수할 것입니다. 당신은 바빠서 자리하지 못할 테지요?"사여묵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웃었다. "나는 남강으로 간 이후로 현갑군의 일을 거의 돌보지 않았으니, 당신이 필명을 다스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오. 아니면, 조금 불안한가? 내가 함께 가야 하오?""아닙니다. 전혀 긴장되지 않습니다." 송석석은 사여묵의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답했다. 이 모습을 본 보주와 명주는 재빨리 물러났다."전장에서 적을 베고도 긴장하지 않았으니, 지휘사 직책은 손쉽게 해낼 것 같소." 사여묵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축하하오. 당신은 우리나라 개국 이래 첫 번째로 조정에 진출한 여관이 되었소."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황제께서 즉흥적으로 내리신 명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이유를 들어
"고청우의 행방은 아마 홍시 일행이 알 수 있겠지만 추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리도 큰 사건이 벌어졌으니, 분명 진성에 머물며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돌아온 것은 그들에게 연왕부와 회왕부를 감시하게 하기 위함이오. 비록 그들이 당분간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이 무기들의 제조와 운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을 것이고 지하 감옥이 아직 차지 않았으니, 아마 여전히 무언가를 진행 중일 것이오. 장공주부가 무너진 후, 연왕이나 회왕이 이 일을 떠맡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우선 그들을 감시하시오.""알겠습니다. 제가 만자에게 전하겠습니다." 사여묵은 씻기 위해 하인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하게 했다.환복하고 나니 반시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염 선생은 그가 돌아온 것을 알고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 했으나, 사여묵이 곧 다시 대리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와 함께 대리사로 향할 생각이었다.염 선생은 왕부의 장사로서 대리사 소속은 아니었으나, 왕의 곁에서 조언을 제공할 수 있었다. 왕비 또한 관직을 맡았으니, 왕부는 자연스레 노 집사와 양 마마에게 넘어갔다. 다행히도 최근 심청화 선생이 왕부에 머물고 있었기에, 많은 일에 있어 자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사여묵은 긴 의자에 누웠다. 그는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이는 피곤해서라기보다는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 제대로 된 휴식은 사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언제든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을 익혔고, 몸을 즉시 이완시키며 회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반 시진이 지나 사여묵이 깨어났을 때, 염 선생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송석석은 그에게 관복을 입혀 주며, 그의 흐트러진 머리도 빠르게 정리해 주었다. "양 마마가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가져가서 배가 고프면 몇 개씩 드세요.""알겠소." 사여묵은 미지근한 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야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이제 떠나야겠소. 아마 내일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없
시만자는 연신 감탄했다. “어머 어머, 대감께서는 어디로 가시려는 건지요? 소녀도 데려가 주시겠습니까?”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응징하며 말했다. “마침, 잘 왔어. 너 없으면 안 될 일이 하나 있어.”시만자는 몸을 낮추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송석석이 아니꼽게 흘겼다.“대감께서 명하시면 소녀는 그저 따르겠습니다.”“제대로 안 할래? 한 대 더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하지만 시만자는 손수건을 휘두르며 여전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대감, 너무 거칠게 구시옵니다.”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려 넘겼으나, 시만자는 몸을 돌려 두 발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잡히지 않지, 잡히지 않아.”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영씨가 말했다. “시 아가씨는 정말 재미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태비마마께서 예뻐하시는 것 같습니다.”“그야 태비마마께서 석석이보다는 절 더 좋아하시니깐요.” 시만자는 태비마마 흉내를 내며 도도한 표정을 짓자, 송석석이 다시 한번 흘겼다.“나 곧 나가야 본론을 들어갈게.”그제야 시만자는 몸가짐을 가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송 대감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모두 나가거라.”모두가 떠나자, 송석석은 한 바퀴 돌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나 어때?”“역시 잘난 척하려는 것이로군.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옜다! 멋있어! 아주 관직이 체질이군. 기품이 넘쳐.”송석석은 구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참 낯선 기분이야.”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시만자는 흥분한 듯 발을 구르며 말했다. “석석아, 너 정말 대단해! 여인이 관직에 오르다니, 넌 매산의 영광이야!”송석석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나도 이 자리에 오를 줄은 몰랐어. 어제 임명장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관복을 입으니, 책임감이 들고 어깨가 좀 무거워진 것 같아.”그녀의 표정
연왕은 그제서야 자신이 정말로 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입술을 덜덜 떨었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듯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당황함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밀려와, 역대 왕조들 중 역정의 후과를 떠올리니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전에도 비록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기껏해야 자신의 목숨을 끝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포로가 되어 비녀까지 빼앗겨 산발이 된 채로 이곳에 갇혀 버렸다. 세 면이 창살이고 한쪽만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단했지만 머리를 박는다고 해도 죽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감옥 밖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어, 박는다고 해도 아프기만 할 뿐 고생할 것이 뻔했다. 그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지?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 곁엔 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야 하건만, 지금은 곁에 사람은 있지만 한마음이 아니다.’ 그러고는 분노와 증오가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날 배신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느냐? 결국은 나와 함께 갇힌 죄수가 되지 않았느냐? 사청엄이 너희를 구해준다더냐?” 죽음이 두려운 회왕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상의 곁으로 가서 그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대체 무슨 상황이오? 그들이 우릴 구하러 오긴 온 단 말이오…? 말 좀 해 보오. 죽더라고 이런 건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무상이 거칠고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우릴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추몽과 하상지가 모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성 밖에서 매복 공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보름 동안 포위되어 소식이 늦으니 아마도 목종욱은 일찍 각처의 대란을 평정하고 매복해 있었을 것입니다.”무상의 말을 들은 회왕의 눈빛은 절망으로 변했다. ‘어쩐지 그들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지 않더라니, 지금 보니 목종욱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지? 애초에 사청엄의
야외에서의 전쟁 또한 싸우면서 물러설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기만 하면, 상황은 쉽게 되돌릴 수 있었다.그래서 방시원은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길 때까지 그들이 도망갈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한편, 연주 성내에서 무상도 붙잡혀 연왕 등의 사람들과 함께 갇혔다.그 모습에 회왕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무상 선생, 당신은 대체 왜 잡힌 것이오? 추몽이 전패했소?”무상의 옷은 엉망진창이 됐고 온몸에 상처가 났으며 입가의 고인 피는 굳어 낭패하기 그지없었다.연왕은 아직도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밤새도록 왜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지 걱정만 했다. 그러고는 추몽을 바랄 수는 없는 것 같으니,하상지라도 오길 바랐다. 왜냐하면 하상지는 반드시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무상까지 갇힌 것을 보자,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다.그는 이전에 자신의 몸으로 적을 성으로 유인하려고 할 때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반면, 회왕은 아니었다. 그는 줄곧 추몽과 하상지가 도착하기만 하면 경군을 모조리 섬멸할 수 있다고 했기에, 무상이 갇히는 것을 보고 당황해하며 말했다.“어서 말해보시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추몽이 전패한 것이오,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이오?”무상은 입을 오므리고 있었는데, 그의 눈 밑에는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기색이 띠었다.그는 결국 두괴산으로 도망치기로 결정했고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곧장 진성으로 달려가 영군왕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두괴산은 이미 경군에 의해 봉쇄되어 도망칠 수 없었기에, 무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체포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회왕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말을 안 하는 걸 보니, 정말 추몽이 안 왔다는 말이오?! 추몽이 왔다면 하룻밤 만에 전패하지는 않을 것인데. 우린 그들에게 속은 것이오… 무상, 모두 당신 때문이오. 당신이 영군왕에게 의탁하고 셋째 형을 배신하라고 하지 않았소? 우린 당신과 영군왕에게 속은 것이오!
김수덕도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나도 모르겠소. 분명히 추몽 선생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말이오.” 그러자 무상은 점점 두려움이 앞섰다. 추상이 평소에 시간을 정하면 일찍 오면 왔지 늦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도중에 매복이라도 당했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소. 전에 조사한 바로는 목종욱의 병마가 분리되어 비적을 토벌하고 있다고 했소. 지금쯤 이미 월지로 갔으니 돌아올 리가 없소.” “만약 병마가 도중에 가로막았다면 추몽 선생은 바로 사람을 보내 통지할 것이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들에게 정탐꾼이 있는 것 같소.” 김수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공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무상 선생, 이제 어떡한 단 말이오? 우리는 경군을 이길 수 없소.” 무상은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 진정하고 말했다. “그러니 지금 우린 탈출하여 추몽과 합류할 수밖에 없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연주는 함락될 것이오.” 김수덕이 조급해져서 말했다. “가족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탈출한 단 말이오? 그들이 성문을 막고 있는 탓에 두괴산으로 밖에 도망갈 수 없소. 노약자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찌 두괴산으로 도망간단 말이오?” 그러자 무상이 연황실의 하인과 호위를 지휘하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소. 일단 우리 먼저 탈출하고 다시 계획을 짜봅시다. 방시원은 평민을 죽이지 않으니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오.” 김수덕이 급히 뒤뜰로 달려갔는데, 측비 김 씨는 이미 소식을 들은듯 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는 무상의 분석을 듣지 않아도 지금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왕의 아들 딸들 또한 모두 놀라서 비싼 물건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하인들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는 장신구를 모두 빼앗아 뒷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김수덕이 검을 들고 연달아 몇 명을 죽이고 나서야 하인들이 더 이상 날뛰지 않았다. 측비 김 씨가 오라버니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얼른 사람을 파견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보호해 주
두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 무소위는 이미 무림인들을 데리고 영주에 도착했다. 시간까지 모두 잘 맞춰져 있었는데 이때쯤이면 영주에 일을 결정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고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거의 출동하여 천 명의 사람과 관아의 관리만이 남아서 영주를 지키고 있었다. 무소위는 영패를 들고 곧장 지부의 관아로 가서 지부를 파면하고 관아를 차지했다. 그와 동시에 시 씨 가문의 가주는 직접 여러 표국과 상회의 호위들을 이끌고 왔다. 노 휘왕의 영패가 있어 영군황실이 모두 봉쇄되었기 때문에 영주는 가장 공략하기 좋은 곳이었다. 더불어 영군황실에는 더 이상 노휘왕의 사람은 없었고 예전의 사람들은 모두 마을로 쫓겨난 상황이었다. 무소위는 관아를 점거한 후, 사람을 이끌고 영군황실로 가서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고 고문 끝에 그들이 연락하는 암호를 모두 알아냈다. 게다가 추몽이 기르던 전서구까지 모두 챙겼다. 전서구는 정해진 노선이 있었는데 그중 몇 마리는 특별히 영군왕에게 연락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추몽이 대승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붉은 비단을 묶고 실패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흰색 비단을 묶었다. 만약 전황이 교착되어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면 전서구의 다리에 아무것도 묶지 않고 보내 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은밀한 언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전서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참모들이 제출한 암어록에는 암어의 뜻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돼지, 개, 소, 말, 늑대, 호랑이, 뱀, 여우 등의 호칭이 있었는데 참모들의 진술에 따르면 모두 지정된 상대가 있다고 했다. 돼지는 연왕, 개는 회왕, 뱀은 숙청제, 늑대는 송석석, 호랑이는 사여묵, 그리고 용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중 승상과 육부상서는 그들만의 호칭이 있다고 했다.그리고 영군왕과 역모를 꾸민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찾아냈는데 그중 많은 단어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시 씨 가주와의 서신 왕래는 명확했는데 생명을 구해준 은혜로 그
무상이 직접 보내 연왕과 회왕은 함께 성문에서 압송되었다. 회왕은 인수할 때 무상이 자신을 풀어줄 줄 알고 있엇는데, 경군들이 그들을 억류할 때까지 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며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심하라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그를 묶어 놓고, 나중에 같이 나간다고 했지만 결국엔 셋째 형만 넘겨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상이 자신까지 경군에게 넘기는 것을 본 회왕은 그가 자신까지 진성으로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자 당황해서 크게 소리쳤다. “나는 무죄요! 내가 연왕을 체포한 것이니 난 놔주오!” 그러자 방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리석긴.” “무상…!” 회왕의 얼음처럼 차가워진 눈빛으로 무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나운 표정에서 이내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상 선생, 당신은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얼른 방 장군에게 말해주시오!” 하지만 무상은 눈을 내리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황제폐하께서 유무죄를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 황제폐하’라는 말을 힘 있게 말하자 회왕은 일말의 희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때가 되어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경군의 목숨은 모두 연주에 남게 될 테니 난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무상이 왜 미리 말하지 않는 것이지?’ 그는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그들이 정말로 날 버린 것이라면 직접 죽이겠지 왜 방시원의 손에 넣겠어? 내가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성을 포위해서 습격할 것을 말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무상을 바라보자, 무상이 그를 향해 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되었든 경군은 연주를 떠
연왕은 이번 협상이 단지 허위 계략일 뿐이며, 자신이 결국 방시원에게 넘겨져 그를 성 안으로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역시나 몰랐다.방시원이 협상에 동의하며 단독으로 이동했고, 무상 또한 단독으로 이동했다. 양측 뒤에는 호위병이 따랐으나 모두 열 장 떨어진 거리에서 머물렀다.무상은 자신과 연주의 대다수 관리들이 연왕의 반란 계획을 알지 못했으며, 설령 알았던 사람들이라도 연왕의 세력에 눌려 감히 말하지 못했음을 설명했다.그러나 방시원은 이를 믿지 않았다. 방시원은 그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단언했었기에, 그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으며, 이는 무상에게 그가 영군왕의 배후와 비밀 병력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었다.무상은 그의 태도를 통해 확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추몽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이 신뢰와 존경은 그가 시씨 가문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무상과 연왕은 오랫동안 시간 시씨 가문을 공략했었지만, 시철진은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왕을 배신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점에서 영군왕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무상은 참모이니 자연히 승산 있는 자를 따라야 했다. 연왕은 이미 몰락하였으니 그를 따라 계속 반란을 도모한다면 죽음뿐이었다.협상 과정 자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의 목적은 성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단지 각자 계산이 다를 뿐이었다.무상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추몽이 요구한 대로 해가 지기 전, 방시원의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진 남짓이었다.그래서 협상은 오래 지연되지 않았다. 무상은 연왕을 그들에게 넘기기로 동의했지만, 방시원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켜 진성으로 돌아간 뒤 관대한 처분을 황제께 청할 것을 요구했다.사실 연왕을 넘기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 방시원의 경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수장이 없으면 방시원은 그들이 더는 큰일을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할
방시원은 이미 첩자의 보고를 받아 몇몇 신비한 부대가 영주 밖에서 합류하여 연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보다 더 일찍, 그는 염선생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통해 연왕이 항복하는 척하며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한 뒤, 안팎에서 협공을 가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았었기에, 연왕이 단지 영군왕의 한 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았다.방시원은 오랫동안 정보 첩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이런 두세 개의 정보만으로도 실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편, 노홍과 제방은 원래 진성에 남아 있어야 했지만, 어제 갑작스럽게 연주 밖에서 그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방시원은 처음에 진성이 가장 위험할 때에 왜 이 둘을 보낸 건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송대감의 사부이자 만종문의 문주가 직접 진성에 왔고, 심지어 많은 무림인을 데리고 내려와 지원 중이라는 제방의 설명을 듣고 이내 안심했다.일반적으로 무림인은 조정의 다툼에 관여하지 않지만, 만약 반란이 발생하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방시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종문의 문주 임양운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면서 묵가의 기술에 능했고, 특히나 기계 무기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안통 또한 그의 손에 의해 개량되었으니 말이다.그가 진성을 지키고 있으니 영군왕은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틀 후, 정말로 염선생의 말대로 연주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방 장군, 우리는 이미 역적 연왕과 사청엽, 회왕과 사청엄을 붙잡았습니다. 많은 관리와 병사들은 그들에게 미혹당했을 뿐 반역할 의도는 없었으며, 지금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공적을 세움으로써 죄를 보상하려하니 방 장군께서는 성에 들어와 상의해 주시길 바랍니다.”소리치는 사람은 김수덕으로, 측비 김씨의 오라버니였다.방시원은 천리경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김수덕 옆에는 무상이 서 있었고, 연왕과 회왕은 온몸이 결박된 채 대검이 그들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
밤이 되자, 김수덕이 첩자를 데리고 돌아와 급히 보고했다."왕야, 하상지가 이미 흩어져 있던 병력을 모두 소집하였으며, 시씨 가문의 군마 500필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중으로, 걸음 속도로 보아 사흘 뒤 도착할 것입니다."연왕은 벌떡 일어나며 크게 기뻐했다."정말인가?!""정말 확실합니다! 첩자가 바로 문밖에 있으니 왕야께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서 들여 라!"연왕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병력을 모두 소집하게 되었지만, 시씨 가문에서 군마 500필이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만자의 사건 이후로 시씨 가문과는와는 이미 갈라선 사이였는데 말이다.그때 첩자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야, 하대감께서 소인을 보내 보고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병은 모두 소집되었으며, 영군왕의 참모인 추선생도 5천 병력과 500필의 군마를 이끌고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단, 영군왕의 요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 휘왕을 구출하는 것입니다."연왕은 영군왕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전에도 영군왕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했고,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영군왕을 배제한 상태였다.이번에는 오히려 처음에는 동조했던 사람들이 모두 발을 뺀 상황에서 영군왕이 나서준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노 휘왕은 진성에 있었지만, 실상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청엄이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그는 사청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의젓한 군자였고, 효심이 깊어 그의 효성은 강남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노 휘왕이 홀로 진성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청엄도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연왕은 즉시 사람들을 소집하여 사흘 뒤의 계획을 논의했다.그는 거짓 항복 계략에 동의했다.무상이 처음 이 계략을 제안했을 때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안팎으로 협공만 할 수 있다면 방시원을 속여 성 안으로 유인해 잡는 것이 가능할 것 같
노 휘왕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뒤따라갔다.의원이 진찰한 결과, 정삼숙의 두 다리는 부러졌고 이가 세 개나 빠졌으며 얼굴의 여러 뼈에도 골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노 휘왕을 향해 웃으려 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몰골이었지만 끝내 웃음을 잃지 않으며, 게속 괜찮다고 했다.노 휘왕은 순간 마음이 아파져 고개를 돌렸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 이런 참혹한 꼴을 당했으니,그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그의 영패는 이미 영주에 있을 때 하나 더 만들어 두었었다. 이는 혹시 누군가가 후에 영패를 훔쳐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다른 영패를 사용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쓰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편, 수로 작업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고, 김창명은 관리 소홀의 책임으로 체포되어 황실 감옥에 갇힌 탓에 이후 수로 작업은 선평후가 직접 감독하게 되었다.하도사의 다른 관리들도 모두 직무 태만의 문제로 교체되었다.이렇게 모두 겉으로는 김창명이 수로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숙청제와 송석석은 실제로 이미 내부에 또 다른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창명이 죽는다고 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었기에 사청엄은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그는 추몽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만 있었다.연주에서의 연왕은 이미 마음이 불안해진듯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방시원이 성을 포위한 지 2주나 넘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격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기에더욱 초조해진 것이다. 성을 포위했다는 말은 외부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또한, 각지에 퍼뜨린 도적들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목종욱이 방시원과 합류했는지, 그리고 진성의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포위된 상황에서도 소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산길을 타고 밀림을 넘어가면 연주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즉, 만약 소식이 도착했다면 그것은 열흘 전의 상황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