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무장들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히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지만 숙청제는 격분하지 않았다. “대리사는 이 사건만 처리하거라,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 조사할 것이다.” “예, 폐하.” 숙청제는 엄지손가락의 옥반지를 돌리며 말했다. “전에 듣기로 당분간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석석은 현갑군의 부지휘관이고 너는 이미 대리사 경이 되었으니, 현갑군 지휘관 자리는 내려놓거라. 나는 석석이를 현갑군 지휘관으로 임명할 생각이다.” 사여묵은 조금 놀랐다.“폐하, 실권이 있는 자리로 말입니까?” “그렇다. 그 애가 바로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사여묵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폐하, 조정에 여인이 장군으로 임명된 전례는 있으나, 관직을 맡은 선례는 없습니다.” “그런 선례는 만들면 그만이다.” 사여묵은 황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송석석에게 황실의 치안을 맡기는 것은 그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의도가 있는 것인지.“석석이는 여고를 세우고 싶다며 일찍 부지휘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적이 있고 명예직이었기에 사직하지 않았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사직할 필요는 없고 명예직도 아니니라. 현갑군은 경위와 금군을 포함하고 있으니, 실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석석이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사여묵이 아무 말 없자 숙청제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석석이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냐 아니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냐? 것도 아니면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 않고 집안에만 가두고 싶은 것이냐?” 이에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지지합니다. 다만 그녀는 관직을 원하지 않았고, 여고를 세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을 뿐입니다. 폐하, 신하가
숙청제가 떠난 후, 오대반이 어전에 들어갔다. "폐하, 이제 한 식경 후면 조정에 오를 시간입니다. 제가 폐하의 의복을 준비하겠습니다." "여기서 바로 갈아입도록 하겠다." 숙청제가 손짓하자 오대반이 외쳤다."어서 용포를 가져오라. 폐하께서 환복하신다." 잠시 후 궁녀들이 용포와 황관을 들고 줄지어 들어왔다. 오대반은 모두 물러가게 하고 직접 숙청제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 숙청제의 얼굴에는 여전히 노여움이 서려 있었지만,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다.숙청제는 오대반을 보며 물었다. "왜 내가 석석이를 현갑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는지 아느냐?" 오대반은 용무늬 허리띠를 정리하며 답했다. "폐하의 영명하심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것입니다." 숙청제는 양팔을 벌려 그가 겨드랑이 부분을 정리하도록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장공주가 왜 반역을 꾀했을까? 나를 무너뜨려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저는 장공주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는 늘 각별히 대해주셨는데 말입니다." "그럴 리 없다 믿었던 장공주가 반역에 가담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느냐?" 숙청제는 넓은 소매를 흔들며 몸에서 피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려 애썼다. "이번 일은 북명왕부와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공주부로 끌어들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전각의 등불이 숙청제의 준수한 얼굴을 비추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였으니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면 그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왕비에게 현갑군을 맡겨 실권을 주신 것입니까? 이는 그에게 권력을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오대반은 의아했다.숙청제는 고개를 저으며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그가 직접 선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그에게 충
궁을 나선 사여묵은 먼저 돌아가 막 잠이든 염 선생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러고는 왕비가 깨어난 후 알리라 했다.이를 들은 염 선생은 잠이 확 달아났다. 왕비가 깨면 그녀에게 부탁해 동생을 만나려 했지만, 이제는 황제의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머리를 짜야 했다.이제 잠자기는 글렀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송석석이 옷을 입고 나오자, 염 선생이 직접 찾아와 말했다. "장군께서 다녀가시며 황제께서 왕비님을 현갑군 지휘관으로 임명할 것이라며 경위와 순방영 금군과 어전시위까지 맡기실 계획이라 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의도를 파악하진 못했습니다." 송석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직이라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실직입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송석석이 말을 이었다. "조정에 여인이 관리를 맡은 적은 없었다. 과거 여장군으로 이름을 날린 이방조차 위소에서만 활동했을 뿐, 조정에서 권력을 쥔 적은 없다. 나 또한 지휘관 자리를 받았다고는 하나, 지금껏 아무 일도 맡지 않았고 단지 녹봉만 더 받았을 뿐이다." 여인이 전장에 나서는 것과 여성이 관직에 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녀가 통솔해야 할 것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라 현갑군, 그리고 금군, 궁중 호위까지 포함한 막중한 권력을 쥐는 것이었다."황제의 의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오늘 조정 회의가 끝나면 임명 문서가 곧바로 내려올 것입니다. 게다가 장군께서 전하기를, 황제가 직접 교지를 내릴 거라고 하셨습니다." 송석석은 이번 결정이 다소 의아했지만, 임명이 이루어진다면 수락할 생각이었다. 조정에서 여인이 관직에 오른 일은 이전 왕조에는 존재했다. 다만 우리 조정에는 없을 뿐이다.여성의 지위는 너무도 낮았다. 태후도 항상 이 점을 한탄하셨다. 하여 전에 이방이 여장군이 되었을 때, 태후는 그토록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잠시 고민하던 송석석이 말을 이었다. "염 선생, 사실 줄곧 물러서고, 인내하며 양보해 왔던 장군을 황제께서도 다 보고 계셨을 것이다.
자고 일어난 시만자는 조정에서 송석석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갑군의 지휘관으로서 경위와 순방영 금군을 통솔한다고 말이다.그녀는 꿈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물었다.“정말로 망나니가 되려는 거야?”송석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망나니라니, 괜찮은 관료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렇다면 청렴한 대관이 되는 거네.” 시만자는 턱을 괴고는 송석석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덧붙였다.“좋아, 우리 석석이는 청렴한 대관이 되는 거야.”송석석은 둘이 함께 무림을 누비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무림인들은 지방 관리들이 탐탁지 않았다. 그들은 부패한 관리들을 ‘망나니’라며 혀를 찼었다. 그러나 청렴하고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관리들에게는 모두 존경을 표했었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야 했고, 그로 인해 송석석은 사숙에게 반년 동안 문밖을 나서지 못한다는 벌을 받게 되었다.그 시절을 떠올린 송석석은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관료가 되더니 얼굴이 폈네?”그런 송석석을 보는 시만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송석석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벼슬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그 지겨운 ‘부덕부언’의 규율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야.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잖아.”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네가 그동안 세가의 부인들과 있을 때 웃음조차 입 꼭 마물어야 해서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었어.”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시만자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황제가 갑자기 너를 관직에 앉히려고 하는 거야? 네가 공을 세우고 돌아왔을 때 이미 관직을 줬어야지. 이제 와서 이러시면 반대하는 대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 그들은 여인이 조정에 발을 들이는 걸 원치 않을 테니 말이야.”송석석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대신들의 반대는 황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왜 나를 벼슬에 앉히려 하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내가 가까이 다가가야지만 황제도 우리 북명왕부가 그토록 경계할
이날, 진성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염구진 가문의 하인들이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며 전하였더니, 염철근은 하인들에게 상관하지 말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말라고 명하였다. 그의 손자가 북명왕부에서 장사로 있으니 그들은 결코 정치적인 일에 얽히거나, 어떠한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염철근은 그 일은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겼다. 진성에 살며 그들은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해 왔으니, 그것은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여 손자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는 정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날씨가 점차 추워져 햇살이 점점 더 귀해졌다."소아가 그러기를 아버님께서 아침을 적게 드셨다고 하더이다. 혹 몸이 불편하신 것은 아니 옵니까?" 염구진의 어머니, 진부연이 다가와 공손히 묻자, 염철근은 눈을 떴다. 며느리의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입맛이 없는 것뿐이니 별것 아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염철근은 찌푸린 얼굴로 되물었다."또 악몽을 꾸었느냐?"진부연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근래 들어 자주 희진이가 보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나이다."염철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염희진이 온갖 고통을 당하는 악몽이었다. 염희진은 손발이 잘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혹은 불에 타는 처참한 모습이었다."생각하는 대로 꿈을 꾼다 하지 않았더냐? 너무 염려한 탓이니라. 좋게 생각해 보거라. 어쩌면 이미 혼인하고 자식도 낳아 평안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입을 열려던 진부연은 말을 아꼈다. 어둠이 드리운 시아버지의 눈빛을 본 그녀는 그 역시 자신을 위로하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게 생각해 보겠지만 하늘이 가엾이 여겨 다시 희진이를 만나게 한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나이다."염철근은 며느리를 위로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거라. 세상일은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강요하지 않으면 뜻밖에 기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니라."
마차는 왕부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진부연의 손에는 두 층으로 된 나무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눈물은 마치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18년, 수많은 낮과 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날들 속에서 단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매일 후회했다. 더 잘해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시부모님과 남편, 아들까지도 염희진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녀는 엄격했다. 그녀의 손바닥을 때리고 금고에 가두어 벌을 준 적도 있었으며 배를 곯게 한 적도 있었다... 많은 일들이 세월속에서 희미해졌지만, 억울함 가득했던 그 슬픈 얼굴, 눈물 흘리던 모습, 매 맞고 잔뜩 주눅이 들었던 어깨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여 그녀의 마음 가장 아픈 곳을 매일같이 도려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녀를 꾸짖었을까? 왜 때렸을까? 왜 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다른 이들처럼 소중히 대할 수는 없었을까? 마차에서 염 선생은 염희진이 납치된 후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진부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숲속에 버려졌으니,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것이었다.하늘이 도운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 살려주었고, 결국 그녀는 무사할 수 있었다.재주를 부리며 살던 날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장난기가 많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곤 했지만, 재주를 배우려면 얼마나 많이 넘어졌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예쁜 얼굴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옹현으로 거처를 옮겼다.그런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반주는 그녀가 은혜를 갚기도 전에 해를 당하고 말았다.염희진은 아직 반주가 돌아간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장공주를 따라 진성으로 가면 반주에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의사의 치료도 받고 돌봐줄 사람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진부연은 이 세월 동안 악한 자에
해피엔딩만을 선호했던 시만자는 슬픔에 가장 약했다.그녀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염희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기만 했다.“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생사에는 천명이 있는 법. 반주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렸고 죽음이 비록 좋은 해방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크게 고통받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시만자는 반주가 진정으로 잠결에 목숨을 잃었기를 바랐다. 사실 염 선생은 그녀에게 반주가 병사했다고 말할 것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사여묵과 송석석이 반대하였다. 그들은 염희진이 누가 반주를 죽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시만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의 스승을 죽였다면… 만약, 만약에 말이다. 그녀도 누가 원수인지 알려 했을 것이다. 결코 멍청하게 모른 채로 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슬퍼하는 염희진의 모습에 시만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지금 그대는 오라버니와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진성으로 오고 계시는 그대의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입니다. 반주께서도 이를 보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가족과 재회할 것이라는 말에도 염희진의 슬픔은 가시지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기다려왔던 만남이기에 기대할 뿐이었다. 시만자에게서 오라버니가 진성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만남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그녀는 줄곧 일곱 살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오라비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냈다. 그들의 얼굴도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선명했던 기억은 어머니께서 자신의 손바닥을 때리던 장면이었다. 노란색 나무 자로 손바닥을 내려치던 모습이었는데, 너무나 아팠던 기억이다. 하지만 매번 그녀가 맞고 나면 어머니도 눈물을 훔치셨다. 그러면 그녀는 애교를 부리며 어머니를 웃음을 짓게 하려 애썼다. 염희진은 슬픔을 억누르며 눈물을 닦았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 십팔 년을 헤멨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이제 더는 그들을 슬프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가냘픈 어머니를 껴안은 그녀는 그동안 받았던 상처가 마치 둑이 무너진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어머니를 껴안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못했다.이어 염 선생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가왔고 그들은 눈물로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정청 안으로 들어갔다. 진부연은 여전히 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억 속에 일곱 살이었던 염희진은 이제 스물다섯이 되었다. 그녀의 기억도 서서히 또렷해졌다. 하지만 기억 속 어머니는 젊고 활기찼었다. 그녀를 꾸짖을 때면 이웃들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지만, 이제는 말조차 힘겹게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이 장면을 보고 있었던 시만자와 송석석은 두 사람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눈시울을 붉히며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두 사람도 가슴이 뭉클해졌다.염 선생은 어릴 때부터 동생을 무진장 아꼈고 여리기만 한 진부연은 한때는 강인한 모습이었으며 어린 시절의 염희진이 장난꾸러기였다. 염희진은 매산에서의 두 사람과 많이 닮아있었다.송석석은 시간을 내어 황제의 임명장을 받아왔다. 임명장은 아직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했지만, 감사의 예는 갖추었다. 오대반이 직접 임명장을 전달하며 몇 마디 나누고 싶어 했지만, 송석석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더 보고 싶어 그더러 잠시 기다리게 했다.시만자의 말처럼 이런 상봉이야말로 가장 감격스러운 것이었다.송석석은 눈물을 닦으며 딸을 품에 꼭 안고 있는 진부연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안길 수 있는 어머니가 없었다.그녀가 몸을 돌리자 혜태비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혜태비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고 씨 유모 역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눈물이 맺힌 송석석의 모습이 혜태비는 안쓰러웠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송석석은 눈물을 닦으며 다가가자, 혜태비는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어미가 되어줄 것이다." 송석석은 감동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