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인 오대반의 얼굴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는 공손히 대답했다. “저도 들었사오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북명왕께서 전하의 어명을 받들고 남강 전장으로 가셨고, 남강을 수복하여 전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이는 분명 공이옵니다. 황제께서도 공을 칭송하시고 천하에 알리셨으니, 제 생각으로는 북명왕께서 신하로서 공을 세우신 것은 분명하나, 공업이 기록될 때에는 전하를 먼저 기리고, 주로 삼아야 마땅하다 생각하옵니다.”숙청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이제 내 눈치를 보는구나. 오대반, 나는 그리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공이 높아 군주를 위협한다는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다만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전신묘를 세우겠다는 말이 남강을 수복하고 돌아왔을 때가 아닌 왜 지금에서야 그 얘기가 나왔느냐는 것이다. 그때가 백성들이 가장 격동되었을 때가 아니었느냐?”잔을 들어 올린 숙청제는 깊은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여러 현사들이 그를 칭송한 바 있었다. 그런데 또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혹시 같은 자들이 아닌지 묻는 것이다.”오대반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하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옵니다. 다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전신묘를 세우자는 제안은 남강을 수복한 직후 나왔어야 했을 터인데 흥분이 가라앉아 일상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리도 소란스러우니 저도 당황한 것뿐입니다.”숙청제는 붓을 들고 상소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대반은 숙청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황제는 사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듣고 마음이 불편해져 누가 먼저 이런 소동을 일으켰는지, 북명왕부와 관련은 없는 것인지 알아보게 하였다.조사 결과, 왕부는 이 일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심지어 칭송하는 글을 보게 된 북명왕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남강을 수복하는 것은 선황제께서 뜻을 세우셨고, 황제께서 계획을 세우셨
그들이 태후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으로 온 것을 알고 있었던 장공주는 내심 분노하면서도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교류가 있었기에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었다. 특히 황형이 방금 진성으로 돌아온 시점에서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곧 다가올 10월 15일에 있을 송석석의 계획에도 그들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장공주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들을 모두 초대했다.안태부 부인이 손녀 안여옥과 함께 가장 먼저 도착했다. 장공주는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며 태후가 재물을 내려주신 덕에 후궁의 빈비들까지도 자비의 마음으로 많은 부인들이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태부 부인은 문제 될 것 없다며 선한 마음이지 않냐고 개의치 않았다.태부 부인은 오랜 세월 불교를 믿으며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고 가끔 목 승상 부인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기도 했으나,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는 매년 한 번씩 열리는 한의절뿐이었다. 그녀는 돌아가신 영혼을 초도하기 위해서였고 고승들에게 불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원래 안여옥은 오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안여옥이 스스로 따라가겠다고 했다. 손녀가 불교에 믿음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착한 심성에 항상 타인의 신앙을 존중했기에 기꺼이 동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오늘은 밤새워 경을 읽어야 할 예정이었다.정청 밖에는 이미 향단이 차려졌고, 경을 읊는 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연 대사께서는 오셨는지요?”태부 부인이 물었다. “이미 도착하였습니다. 지금은 진지를 드시고 있고 밤이 되어야 시작할 것입니다. 먼 길을 오신 탓에 쉬도록 했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경문을 베끼기로 합시다. 이미 많이 베꼈지만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장공주는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승상 부인의 마차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태부 부인이 문방사우를 준비해 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 승상 부인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태부인과 육태부인도 도착했다. 그들 역시 각각 자손들을 데려왔다. 이태부
장공주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김도연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시민주를 잘 감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김도연 또한 불쾌했다. 하지만 측비 신분이라 시민주가 사람들을 붙잡고 인사를 나눌 때 직접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오기 전 그녀도 미리 경고했었다. 오늘 밤은 엄숙하게 보내야 하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고 말해두었다. 침묵 속에서 경문을 베끼고 경을 읊어 자비심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라 했거늘 시민주는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나누며, 마치 연회에 참석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 탓에 몇몇 태부인들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김도연은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왕비님, 우리 함께 경문을 베낍시다.” 그녀는 ‘지장보살본원경’과 ‘태상구고’을 챙겼다. 그녀는 궁에서 병자를 돌보며 몇 차례 베낀 적이 있었다. 시민주는 마지못해 방석에 앉아 경문을 베끼기 시작했다. 경문은 난해하고, 글자는 쓰기 어려웠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아파왔다. 하여 붓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장공주의 차가운 시선이 날아와 어쩔 수 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시민주가 있는 한, 장공주는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부인들이 도착하고 있었고 특별히 대접할 필요는 없었지만 손을 모아 인사를 나누는 정도는 해야 했다. 경단 밖에는 이미 제물을 공양하는 상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최고의 단향과 촛불이 준비되었다. 비용은 장공주가 혼자 부담하는 것이 아니었고,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부담할 예정이었다.고승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다. 지원 스님을 필두로 7명의 명망 있는 스님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스님들을 맞이했다. 태부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해도 지원 대사와 여러 고승들을 뵐 수 있어 기쁩니다.” 가사를 걸친 지원 스님도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그는 이미 여든을 넘었으나, 육십 정도로 보였고 길고 흰 눈썹과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부인의 건강이야말로 기쁨이지요.
오늘 밤 장공주부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그들은 오히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객이 출동했으니, 지하감옥은 반드시 침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공주부의 법회로 인해 많은 고승들이 모였고, 순방영과 경위도 그곳을 중점으로 순찰할 것이기에 자객이 나타나면 염 선생이 준비한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며 그들을 유인할 것이다. 자객은 장공주부의 구조를 알고 있었고, 지하감옥의 입구도 알고 있기에 그곳으로 유인할 계획이었다.송석석은 이 모든 상황이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태후께서 물품을 내려 장공주를 지원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들었다. 태후는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태후께서도 이러신 적이 없었으니, 황제께서 준비한 것이 틀림없다.정심이 궁에 돌려보내져 심문을 받았으니, 그 과정에서 장공주의 이름이 나왔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황제께서도 오늘 밤의 법회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뿐 아닌가?모든 분석을 마친 송석석이 염 선생에게 물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장공주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유인하려는 것이냐? 필경 사이가 돈독하지 않다면 초대도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그러자 염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는 오히려 오늘 밤 장공주부에서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비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황제의 목적은 장공주부에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그 말에 깜짝 놀란 시만자가 물었다.“우리의 계획을 황제께서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확실하진 않습니다.” 염 선생은 시만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의심이 많고, 속을 알 수 없는 분이라 왕부에 누군가를 심어두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차례 조사했지만 깊이 잠입한 생태라면 거듭 조사한들 무용지물일 것입니다.”송석석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일을 아는 자는 우리들뿐이었
술시 무렵, 자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을 든 자객들이 한 줄로 나란히 야행복을 입고, 조용히 장공주부에 침입하였다. 그때 공주부의 정원에서는 고승들이 경을 읊고 있었고, 부인들은 베낀 불경들을 모두 태웠고 일부는 계속해서 경을 베끼고 일부는 외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객이다!" 비명소리는 밤하늘을 가르며 장공주의 심장을 내리 찔렀다. 정원에 있었던 장공주는 자객을 보지 못했기에 중원과 후원으로 침입한 것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곧바로 뛰어나가려 했으나, 안여옥이 급히 장공주를 붙잡으며 말했다. “장공주님, 자객이 있습니다. 밖은 위험합니다.” “놔라.” 장공주는 매서운 표정으로 안여옥의 손을 뿌리쳤다. 그 표정에 주변 사람들이 화들짝놀랐다.정원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으나, 고승들과 몇몇 태부인들만이 침착했다. 지원 스님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자객은 사위와 병사들이 상대할 것이니, 장공주께서는 위험을 무릅쓰지 마시고 계속 경을 읊으시오.” 장공주는 경단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지원 스님을 바라보았다. 두 손을 모은 그는 자비롭고 경건한 모습이었으나, 눈빛에는 뭔가 번뜩였다.경호병들이 후원으로 급히 달려가는 발소리를 들은 장공주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몸이 떨렸다. 송석석은 15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밤 움직인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속였고, 정심을 속였다. 이 자객들은 송석석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지하 감옥에 갇힌 고청란의 어머니를 구하러 온 것인가? 지하 감옥! 불길함을 느낀 장공주는 주변의 만류는 뒤로하고 서둘러 서원으로 뛰어갔다. 자객들은 이미 경호병들과 격돌 중이었다. 도준은 부병의 일부를 고승들과 부인들을 보호하는 데 배치해, 그들이 공주부에서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했다. "자객이라니! 너무 무섭구나! 얼른 도망쳐야 하지 않느냐?" 잔뜩 겁에 질린 시민주가 계속해서 김도연에게 묻자, 경
전북망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과 고승들이 모여 있었기에, 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었다. 하여 급히 지원 스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사님, 일단 안으로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객들을 잡고 난 뒤 다시 경을 이어가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원 스님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임무를 수행하시지요. 경단은 열렸으니, 경을 다 읊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북망은 다급해졌다.“자객들이 침입했습니다. 위험하단 말입니다.” 하지만 지원 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며 조용히 말했다. “자객은 제가 목표가 아닙니다. 만약 제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그것 또한 제 운명입니다.” 스님을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전북망은 남겨진 경호병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스님과 부인들을 보호하여라.” 말을 마친 전북망은 검을 들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서원에 도착한 장공주 30여 명의 경호병들과 함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는 지하 감옥의 네 개 입구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장공주는 송석석이 고청란의 어머니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를 구한다 해도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기에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서원만큼은 결코 뚫려서는 안 되었다. 필명이 병사들을 이끌고 서원에 도착했을 때, 자객이 보이지 않자 급히 다가가 공손히 말했다. “장공주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 피하십시오. 자객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필명을 본 장공주는 차가운 눈빛을 쏘며 말했다.“필요 없다! 당장 나가거라. 공주부의 병사들로도 충분하니 너희들이 끼어들 필요 없다.” “자객들은 무공이 뛰어나 공주부의 병사들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장공주는 급기야 분노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내 병사들이 어찌 몇 명의 자객을 당해내지 못하겠느냐? 당장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 너희들을 공주부에 무단 침입한 죄로 고발하겠다!
감옥 바닥에는 묶여 있는 화살 더미와 노기, 그리고 한 줄로 늘어선 칼, 검, 활들이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는 커다란 통들이 쌓여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통들은 밀봉되어 있었고 위에 여러 겹으로 덮여 있었지만 화약 냄새는 여전히 새어 나왔다. 그 통들이 있는 곳에는 등불이 없었고, 지하 감옥의 입구 쪽에만 등불이 있었다. 사여묵이 뒤를 돌아보자, 경호병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옥 안의 상황을 본 그들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자객을 상대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까먹은 듯했다. 검을 휘둘러 몇 명을 쓰러뜨린 사여묵은 전북망이 경위병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전북망은 아직 이곳을 둘러볼 새도 없이 자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사여묵은 그와 몇 차례 칼을 맞대었고, 어두운 불빛 아래 전북망은 그의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 순간, 전북망은 잠시 멈칫했다. 사여묵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몸을 날려 계단을 세 걸음에 뛰어올라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전북망은 지하 감옥에 가득한 무기와 장비들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던 그가 경위병들에게 외쳤다.“당장 필명 대감에게 보고하라!” 전북망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며 덧붙였다.“그리고 순방영의 총령 육 대감도 불러오거라! 빨리 움직여라!” 바로 그때, 지하 감옥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장공주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내려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필명을 찾아가려는 경위병들에게 겨누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움직이지 말라!” 경위병들은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자 그녀는 부병들에게 명령했다. “이들을 모두 죽여라.” 경위병들과 전북망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뿐이었지만 부병들은 약 30명 가까이 있었다. 부병들이 사여묵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지만, 전북망과 네 명의 경위병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부병들이 검을 들고 다섯 명을 향해 다가가
자객들은 필명과 순방영의 육 대감을 이끌고 다른 지하 감옥에 침입했다. 그곳에서 송지안의 일가족 네 명과 더불어 일곱, 여덟 명의 미쳐있거나 병약한 여인들이 발견되었다. 필명은 송씨 가문의 네 식구를 보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즉시 이들을 부인들 곁으로 호송하라. 그곳에는 경위병과 부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안전하다.” 옆방에 갇혀 있던 여인들은 모두 불구 상태였다. 어떤 이는 팔이 잘렸고, 어떤 이는 다리가 잘렸으며, 또 어떤 이는 얼굴이 망가졌거나 혀가 잘려 있었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 아물지 않았고 그중 한 여인의 잘린 다리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위병들은 이곳이 공주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지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들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한 명 한 명 구출했다.정원에서는 지원 스님이 고승들과 함께 계속해서 경을 읊고 있었다. 경위병과 순방영의 병력은 점점 많아지자 이에 몇몇 사람들은 자객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시민주를 비롯한 몇몇 부인들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지원 스님이 그들을 저지했다. 자비롭고 온화하기로 유명한 지원 스님이 드물게도 날카로웠다.“여기까지 왔으면 끝까지 있어야 합니다. 다시 자리에 앉으시오.” 시민주는 두려움에 떨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자객이 있는데 왜 나갈 수 없단 말입니까? 영혼을 위로하려다 목숨까지 잃는 건 너무 어리석지 않습니까? 자비를 말하면서 사람 목숨을 위협하고 있군요.” 그러자 승상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경위병과 순방영이 모두 왔거늘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요? 김측비를 보시지요. 얼마나 침착합니까.” 김측비는 침착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연왕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녀이기에 연왕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고 장공주의 지하 감옥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물건들이 발각된다면,
정말 형부에 눌러 앉으려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형부라는 곳을 떠나는 게 정상인데 왜 아직도 형부에 붙어있는 걸까?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일까요?""모르겠소. 오늘 이 대인이 사건 기록을 전하며 말했는데 전북망이 유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으며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소. 원래는 하루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정말 이상합니다. 혹시 직위마저 포기한 겁니까?" 황제의 처분이 아니라는 말에 송석석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상 중에 일어난 일들을 폐하에게 보고한 후, 폐하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정영수의 암살 시도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향병이 장공주에게 독을 준 일은 예전에 비주 사건과 똑같은 독이었으므로 황제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조사는 반드시 할 거요. 아마 오월이가 조사할 것 같소."대리사에서는 비록 반역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라 황제는 대리사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보주가 들어와 남은 음식을 치우자 궁녀 영씨가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목욕은 일찍 준비하셔야 합니다."최근 협상 때문에 사여묵이 살이 빠진 것 같아 궁녀 영씨는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잘 회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여묵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송석석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새끼손톱으로 송석석의 손목 피부를 스치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빨리 준비해야겠소."설마 이 동작은…?송석석의 얼굴은 즉시 빨개졌고 귀끝까지 붉어져 급히 손을 뺐다.궁녀 영씨와 보주도 있는 데 왜 이리 가벼운 행동을 한 거지?궁녀 영씨는 그 모습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섰고 보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송석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진 이유를 궁금해했다.보주는 의아한 듯 궁녀 영씨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봤다. "궁녀 영씨는 왜 웃으시는 겁니까?"송석석이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것도
송석석이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 그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자꾸나. 정말 안 되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그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여학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아니다, 여학은 자리가 늘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송석석이 말했다.그러자 시만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 밤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켜야겠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시 사부, 어서 공지를 내려라. 네 제자들은 무공에 대한 열정이 아주 대단하더구나.”시만자도 웃으며 말했다. “장기문이 제일 부지런하다. 이 녀석은 항상 최선을 다해 발전도 빠르지. 무공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자질이야. 어릴 때 사부를 만났다면 지금쯤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야 배우는 걸 보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그 후, 송석석은 평서백부로 향했고, 시만자는 가죽 채찍을 들고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다.최씨가 송석석의 말을 듣자마자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송석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부인이 도와주시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여인은 살기가 너무 힘드니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복을 쌓는 일이지요.” 최씨는 깊은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겝니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최씨도 그녀를 여러 번이고 도왔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최씨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몇 가지 작은 문제가 있긴 하다만 왕비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닙니다.”송석석도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하녀가 급히 뛰어와 말
소진 소주방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언제든 사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회 부인은 다과회를 열어 이 사실을 알렸고 곧 백성들의 입에도 소주방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말은 많았지만 이혼당한 부인 중 누구도 소주방에 발을 들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시만자는 의아해하며 홍시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끝에 많은 이혼당한 부인들이 암자에 머무르며 고된 일에 시달렸고, 심지어 때로는 끼니조차 거르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들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3월 10일 십자리강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경조부의 조사 결과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자수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만자는 참을 수 없는 마음에 곧바로 송석석을 찾으러 경위부로 달려갔다.송석석은 다급히 달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 일은 본래부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소주방에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소주방에 들어가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혼당한 부인임을 알리는 셈이 될 테니. 그걸 이겨내기 힘든 것이야.”"소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혼당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시만자는 속이 상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는 소진 소주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녀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려 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하면서도 소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려무나.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지 않느냐.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고 강에 투신한 그 여인도 아마 절망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그래도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일인데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시만자는 답답함과 좌절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송석석은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지며 위로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우리가 그들
안태부와 목 승상은 왕부에 남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은 매우 푸짐했고 좋은 술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 마마는 손수 장수 찐빵을 만들었는데 그 위에 찍은 붉은 점이 마치 눈 위에 떨어진 한 송이 붉은 매화처럼 보였다.소 대장군은 무척 기뻐하며 술자리를 즐겼다. 식사 중 그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전 노장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목 승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내가 전 노장군을 생각해 전북망의 중매를 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두 사람이 원수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소. 정말 후회스럽군.”"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오."안태부가 말했다. 그러고는 소 대장군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몸이나 건강하게 지키며 자손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게 좋지 않겠소?"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젊고 기반이 불안정하며 또 일부 노신을 새로운 신하로 물갈이를 할 것이 뻔했다. 세월이 바뀌면 세상도 변하는 법이니 이미 물러났다면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소 대장군이 웃으며 말했다. "태부의 말씀에 일리가 있으니 그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오." 이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어 성릉관을 지키긴 힘들었다. 다행히도 현재 총사령관 자리는 삼랑이 맡고 있으니 당장 무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소가군은 여전히 성릉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들은 한껏 술을 마시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목 승상은 소 대장군의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이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몸 건강히 지내게나, 친구.""자네도 몸조심하게!" 소 대장군은 공손히 인사하며 송별했다. 비록 술을 많이 마셨으나 여전히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사여묵도 소 대장군과 함께 그들을 배웅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남씨가 란이의 손을
북명황실에 도착한 란이는 외조부와 남씨를 보더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소 대장군과 남씨는 무의식적으로 문밖을 바라보았으나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잠시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들은 금세 다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남씨는 웃으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보 같은 것, 대체 왜 울고 있느냐? 외조부를 무사히 만났으니 기쁜 게 아니더냐?"그러자 란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기쁩니다, 너무 기뻐서 그러는 겁니다."소 대장군은 외손녀가 겪은 고난을 알기에 눈가에 연민이 가득했다. "란이야, 어서 이리 오렴. 어디 찬찬히 보자꾸나."소 대장군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듣자, 순간 어머니의 냉담함이 떠올라란이는 가슴이 아려 눈물이 다시 흘렀다. "외조부님, 란이는 석석이 언니가 도와주고 있어서 괜찮습니다."소 대장군은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촌동생을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다."너희가 서로 도울 수 있다니 외조부는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 의지하거라.""예, 외조부의 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송석석과 란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별의 슬픔을 억누른 채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 대장군은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남씨가 란이에게 물었다. "란이야, 네 어머니는 왜 오지 않은 것이냐?"란이가 대답하려는 순간 사여묵이 목 승상과 안태부를 모시고 들어왔다. 그러자 소 대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안태부, 목 승상, 모두 오랜만이오. 그간 모두 무탈하셨소?"안태부는 예를 갖추며 인사하고 목 승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장군, 잠시 실례하겠소."송석석은 남씨와 란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바로 자리
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외조부께서 내일이면 성릉관으로 돌아가십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번에 뵙지 못한다면 아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번 생신은 혼자 서쪽 별당에서 보내셨다고요. 어머니께서 함께 가셔서 오래도록 건강하시라고 축복해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하지만 회왕비는 여전히 눈물을 닦으며 걱정할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못 가겠다. 게다가 그날 석석이가 찾아뵙지 않았을까?”란이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어머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외조부님 생신에 언니는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폐하께서도 아직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부적절한 시기에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회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이냐? 어차피 대단한 날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생일상 한 번 올려드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느냐? 네외조부님께서 막 돌아오셨을 때 물론 나도 찾아뵈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누가 막아서 돌아와야 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요즘 들어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란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저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단지 마음이 여리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냉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그러자 회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의 세상이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한 번 뵙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더냐? 네가 냉정하지 않다면 어째서 네 어미가 이렇게 힘든 처지에 놓인 건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네 부왕께서 나를 버리셨다. 집의 금은보화를 다 가져가 버렸어. 나는 이제 가진게 아무것도 없단다.”란이는 자리를 뜨려다가 어머니가 이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설득해 보려 했다. “부왕의 일은 따로 알아보면 됩니다. 그게 어머니가 외조부를 뵙는
저녁 식사 후, 소 대장군과 사여묵은 오랫동안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송석석은 처음에 들어가서 듣고 싶었지만 소 대장군이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니 그녀가 들어오면 불편할 것 같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송석석은 평 사저와 대사형을 찾아갔다.저녁 식사 중에 사숙은 자신도 매산으로 돌아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며, 특히 대사형에게 엄격히 명령하고 돌아가도록 했다. 대사형이 왕부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왕부가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사형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조정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숙은 그런 인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또한 그의 제자 사여묵에게 해를 끼칠까 우려가 되어 그들에게 반드시 왕부를 떠나라고 엄숙하게 지시했다.평 사저는 뒤에서 몰래 사숙은 일이 필요할 때만 부려 먹고 일이 끝나면 귀찮아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평 사저는 평소에 남을 험담하는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사숙에 대해서만은 뒷말을 하였는데, 그것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정말로 돌아가야 합니까? 며칠 더 머무르실 수는 없습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사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돌아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사숙님이 명령을 내리셨잖니." 평무종은 어린 사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에도 사부님은 우리가 자주 너를 찾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우린 강호인이라 왕부에 강호인이 많이 드나드는 것도 좋지 않고, 너에게 민폐가 될 것이다.""전혀 민폐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 그저 모두가 제 곁에 있어 주는 게 좋습니다!" 송석석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숙님 혼자만 돌아가라고 하십시오."그러자 평무종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용히 말하거라. 사숙님께 들키면 나중에 벌을 받을 것이야."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왕부에선 사숙님이 저에게 벌주지 않을 겁니다.
시만자는 원래 그들의 몸에 더 많은 구멍을 뚫어줄까도 생각했으나 보주의 말을 듣고 멈추기로 했다. 몇 번 더 찌른다면 피가 너무 빨리 흘러 그들이 너무 쉽게 죽을수도 있어서였다.송석석은 조상 묘지 앞의 작은 사당에서 향을 가져와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그러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무릎을 꿇고 세 번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절을 올리면서 먼저 떠난 가족들이 저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사여묵 역시 향을 피우고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송석석이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어 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여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범인이 이미 처형되었으니 장모님도 저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오.”송석석은 그들이 정말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록 복수는 했지만 마음속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강해지고 행복해져야만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서경의 두 정탐꾼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과다 출혈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경 말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송석석과 시만자 등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오직 사여묵만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바로 “송구하다”라는 말이었다.그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단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듯 했다. 송구하다는 말이야말로 그들이 이 묘지 앞에서 비로소 할 말이었다.사여묵이 송석석과 보주에게 전했다. “이자들이 송구스럽다고 말하는구나.”보주는 여태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사여묵의 말을 듣자마자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시만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송구스럽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보주는 목이 찢어질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단지 송구하다는 말로 모든 죄
일행은 이상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송석석은 내내 보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리고 곧 두 명의 서경 정탐이 끌려 나왔는데 그들의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피가 묻어있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그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몸이 앞쪽으로 쏠려 거의 넘어져 엎어질 지경이었다.보주는 눈에 핏대를 세운 채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그녀와 송석석은 단 하루도 진북후부의 멸문에 대한 복수를 잊은 적이 없었다.이제 대세는 정해졌고 그녀도 마침내 가족과 송 부인 등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녀의 가슴 속에 있던 슬픔과 분노는 산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솟구쳐 나왔다.보주는 당장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상서 앞에서 무례하게 굴어 왕야와 아씨의 얼굴을 깎아내릴 수 없었다.이대인이 말했다. “이 두 정탐은 형부에 보내졌을 때까지도 죽음을 각오한 듯 오만한 태도였습니다. 하관이 직접 고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그들의 몸에 난 상처도 이미 잡혀 올 때부터 있었습니다.”그러자 사여묵은 평 사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역시나 심하게 맞은 후 여기에 데려온 것이다.사여묵은 가볍게 허리를 굽히고는, 몽동이에게 그들을 데리고 송가의 조상 묘지에 가라고 지시했다.바람에 흔들리는 등불이 그림자를 드리워 날은 앞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몽동이는 그들을 마차 앞에 묶고 말을 몰았다. 그러던중 송가의 멸문이 떠올릴 때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송가 조상 묘지 앞에 도착하자, 몽동이는 발로 그들을 묘지 앞으로 걷어찼다.보주도 그들 앞으로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둥글게 말아 쥔 손바닥이 뺨에 연달아 떨어졌으나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모두 그녀를 막지 않았고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순진했던 그녀가 이토록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마음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