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자가 대꾸했다.“하지만 그들이 낸 등록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그리고 평범한 백성 집안의 딸은 전부 생계를 도우러 나가야 해. 공부는 돈을 버는 게 아니잖아.”“은자가 적지 않아서 1~2년은 버틸 수 있고,” 송석석이 생각해 보더니,“등록금을 면제해 주는 건 안 되지만 적게 걷을 수는 있지. 반나절 수업하고 반나절은 돌아가서 집안일을 도우라고 하는 거야.”“또 상인 집안도 있잖아? 그들은 은자에 인색하게 굴리 없고, 무슨 예법이니 법도도 상인 집안은 그렇게 살벌하지 않아.”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그렇긴 하지. 명문이나 황실을 대상으로 한 상인을 제외하고 일반 상인 집안은 여자들이 나와서 장사하기도 하니까.”국태 부인도 말을 보탰다.“보통 백성도 올 사람이 있어. 심 선생의 이름을 보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많은 집에서 아들을 공부시킬 돈은 없지만, 만약 딸이 여학에 가는데 등록금이 싸면 딸을 보내길 원할 게 틀림없어. 딸이 집에 와서 형제에게 글을 가르치게 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마음 속으로 태후 마마의 이번 계책은 상대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태후 마마는 설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시는 걸까? 황후는 그녀가 명문세가 사람들과 빈번하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고, 금족령이 풀리자마자 부인들에게 자신을 알현하라는 명목으로 부른 것은 자퇴를 선동하기 위해서였다.황제가 자신을 책망하지 못하도록 누군가 자퇴한 뒤, 황후가 유난을 떨며 여학을 권한 것은 사실 모두에게 자퇴 결심을 더욱 굳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황후는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는 태후와 송석석이 하고 싶었던 대로였다.그래도 좋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었고, 다들 기쁘니까 말이다.‘단지 폐하는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 같네, 하여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야.’아군여학이 민간에 학생을 모집한다는 얘기가 황후 귀에 전해지자 황후는 체통
한편 지안궁에서는, 방금 영태비로부터 보고를 전해 듣게 된 황태후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노라. 어의더러 최선을 다해 치료를 도우도록 하여라. 온갖 좋은 약재들을 다 쓰도록 하고.”“네!”고 공공은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다. “감사드립니다, 태후.”“그나저나 이 일을 왜 황후한테는 보고하지 않은 것이냐?”이내 태후가 담담하게 물었다. “사실 이미 가서 보고를 드리긴 했지만, 황후 마마께서는 이 정도 시점이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될 거라고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사람을 시켜 음식이라도 보내라고 하셨사옵니다. 그러고 나서 영태비를 안심시키면 뒷일은 알아서 잘 수습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감히 이 말을 그대로 영태비께 전해드릴 용기나 나지 않았사옵니다.”그 말에 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준비해야 할 건 철저히 잘 준비해야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거라.”그러자 고 공공은 울먹이며 말했다. “태후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 이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의가 가서 직접 치료를 해줄 수 있으니 영태비도 이젠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이제 그만 가보거라. 나중에 때가 되면 애 씨 가문도 병문안을 한번 가보거라.”태후가 분부를 하였다. 고 공공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는 인사를 표한 뒤 자리를 물러섰다. “복구안.”이내 태후는 잔뜩 화난 말투로 소리쳤다. “지금 태병원으로 향하여, 황후가 혹시 어의가 영태비를 진료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알아보고 오너라.”복구안은 명령을 받들자마자 걸음을 옮겼고, 그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황후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그 말에 그는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 태후를 보았고, 태후는 그더러 밖을 나서라고 눈짓을 하였다. 뒤이어 황후는 란주와 함께 궁전에 들어서고는 문안 인사를 드렸다. “태후 마마, 황후가 만나 뵙습니다.” “황후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그러자 황후는 몸을 반듯하게 펴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
그 말을 들은 태후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황후가 폐하께 시집가기 전까지만 해도, 애 씨 가문은 진성을 뒤흔든 재녀를 둔 것으로 기억하는데... 황후는 그동안 그렇게나 많은 학문을 닦고 나서도 어떻게 이제 와서는 여자가 책을 읽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그럼 왜 방금 학문은 이치를 깨닫는 것에 좋다고 말한 것이오? 황후가 한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태후의 말에 황후는 멍해졌다. “저... 저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여자가 학문을 잘 닦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옵니다. 명문 집안의 자녀들이라면 당연히 학문을 닦고 더욱 견문을 넓히는 것이 좋긴 합니다. 필경 극소수의 명문 집안은 예교 제약이 있기에 학문을 통해서라도 시야를 넓힐 수 있사옵니다.”“황후, 내가 보기에는 황후는 예교 규칙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혹시 예교 제약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오?”그 말에 황후는 매우 의아해했다. “하지만 어머니, 이것은 여자로 살기 위한 근본인데 어떻게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결정할 수 있겠사옵니까? 정직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준수해야 합니다. 과거 제가 상나라 율법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을 단속하면서 제약을 하게 되면 악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정직한 백성들은 그것을 구속이라 느끼지도 않을 것입니다.”그러자 태후가 웃으며 말했다. “황후의 생각은 이러하였군. 그래, 좋소.”태후의 칭찬을 알아채지 못한 황후는 여전히 내심 의아했다. “어머니, 제 말이 틀리기라도 한 겁니까?”태후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우리끼리 간단히 하는 잡담인데, 뭐가 옳고 그른 게 있겠는가?”“혹여 어머니께서는 저랑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그러나 황후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노라.”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황후는 되물었다. “그럼 대체
황후를 내쫓은 태후는 궁 밖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에게 령을 전했다. 아군서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녀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외부 사람의 말은 아무것도 들을 필요가 없었다.그와 동시에 숙청제에게도 사람을 보내 저녁 식사를 하러 오시라고 전했다.복구안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우려주며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황후께서 모르신다면 알려드리면 되지 않습니까.”“내가 몇 년 동안 가르친 것이 적었는가? 알아들은 게 있긴 한가? 애씨 가문은 어찌하여 다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야?” 태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태비를 못살게 구는 일까지 하다니, 연왕께서 연유를 찾지 못하여 밖에 나가 이야기할까 걱정이네.”연왕은 연주에 돌아온 뒤, 상처를 입고 더욱 잔인해졌다. 만약 늙은 영비가 처참하게 세상을 뜬다면, 연주 백성을 선동할 기회와 구실을 주는 셈이다. 아주 적절한 시기임이 틀림없다.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황후는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어서방, 숙청제는 지안궁의 사람이 태후께서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는 소식을 전하려 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숙청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식사를 하러 오라니, 식사라니.어쩔 수 없이 오 대반을 불러 누군가 태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알아보라고 했다.오 대반도 잘 아는 사람이라 복구안을 찾아가 물으니 일이 훤히 다 드러났다.두 사람에게 이 과정은 아주 습관적이었다. 태후께서 황제께 식사를 하자고 하시면 황제는 먼저 물어 준비를 해야 했다.오 대반이 돌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결론을 말했다. “하나는 여학을 위해 고자질 한 일이고, 둘째는 늙은 영태비의 병으로 태후께서 기분이 상하시어 황후를 꾸짖으셨는데, 아직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신 것일까 생각됩니다.”숙청제는 그가 반복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손까지 떨렸다. “짐이 그녀의 외출을 금한다.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단 말인가? 여학과 소주방의 일은 원래 하루도 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 고자질을 하고
숙청제는 몸을 살짝 숙였다. 눈에는 분노가 번뜩였다. “짐이 네게 아군여학을 폐지하라는 명을 했는가? 여학은 어마마마가 창립한 것이고, 많은 유명한 가문의 부인들을 모을 수 있어 짐에게는 이로운 점이 더 많은데, 왜 폐지해야 하느냐?”황후는 혼란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폐하께서도 송석석과 그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는 것은 원치 않으신 것 아닙니까?”숙청제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마디 한 마디 말했다. “황후는 송석석을 대신할 능력이 없는가?”황후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폐하의 말씀은 제가 여학에 가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혹은 부인들을 모아야 한다는 겁니까?”그녀는 황후다. 그녀가 여학에 가는 것이 무슨 망신인가? 그리고 그 부인들은 왜 황후라는 사람이 모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들이 와서 아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이것은 신분을 어지럽히는 일이 아닌가?숙청제가 차갑게 말했다. “황제의 권력은 보기에는 높고 위엄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높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밑에서 무너져 깨져버릴 것이다. 짐은 황제로서 그들에게 많은 일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 눈을 감아주고, 심지어 때로는 상을 주어 좋은 인상을 남겨 그들이 스스로 허리를 숙여 이 계단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헌데 황후는 왜 모든 사람이 네게 고개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네가 황후이기 때문인가?”황후는 말문이 막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황후는 사실 정말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짐을 위해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 사촌 동생을 방시원에게 시집보내 대황자를 위해 무장 세력을 끌어모으지 않았을 터.”황후는 얼굴색이 변하며 급히 해명했다. “폐하,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방시원이 충직한 사람이라 좋은 사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촌 동생을 시집보내려던 것뿐입니다.”“황후 스스로는 믿는가?” 숙청제가 차갑게 웃었다.황후가 대답했다. “저
궁문이 열리자, 오 대반은 급히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란주 상궁은 급히 들어가 황후를 부축해 일으켰다.“마마 손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란주 상궁은 급히 손수건으로 피를 닦으며 궁녀들을 불러 상처를 씻기게 했다.제 황후는 온몸에 힘이 없이 의자에 앉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태비를 버리겠다고 하셨어, 폐하께서 태비를 버리겠다고.”“폐하께서 잠시 노하셔서 그런 겁니다. 어떻게 태후를 버리시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란주 상궁은 시중을 들던 궁녀들을 나가게 하고, 창백한 얼굴을 한 마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마마께서 태후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늙은 영태비의 일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마마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나는 이게 뭐가 잘못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 황후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두 일은 잘못하긴 했지만 아주 작은 잘못이고,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란 말이다.”란주 상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태후와 황제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송석석을 어떻게 공격해야 대황자를 위한 것일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하지만 이건 잘못된 길이다.“마마, 반드시 송석석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녀는 후궁이 아니잖습니까.” 란주 상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북명왕은 그녀의 말을 잘 따르니, 만약 그녀를 끌어들인다면 북명왕도 자연스레 대황자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폐하께서 항상 북명왕을 경계하시는데, 내가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건 황자께 더욱 해가 되지 않겠는가?”“마마님, 계속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시고, 흘러가는 것에 맞추시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북명왕을 중용하시고, 비록 형제간에 갈등이 있지만 국사 방면에서는 그를 의지하고 계십니다. 북명왕과 왕비의 능력이 뛰어나니, 그들 부부가 폐하께 가장 좋은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황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게 내가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야. 난 송
“황후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텐데요. 예전엔 아주 총명했습니다.” 태후는 밥상에서 일어나 단목 원형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배가 부르니 편안했다. “똑똑한 사람이 갑자기 어리석어지는 것은 한복판에 서있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저 자신의 이익만 보고, 그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해야 한다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요.”“네, 어마마마 말씀이 맞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태후는 그에게 앉으라 하며 물었다. “지금 여학 모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숙청제가 대답했다. “저는 아주 좋은 일이라 생각하옵니다. 백성들이 자신과 권력자들 간에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민심도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그는 당연히 큰 틀에서 생각했고, 여자 백성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그럼 세상의 학자들이 이것으로 인해 반발하지 않을까요?” 태후가 또 물었다.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어떤 학자들은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거나, 여자들은 총명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장난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여자들도 총명하여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어서 심지어 이 일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여자들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이 반발하면 시험 자격이 취소될 터인데, 몇몇 세상에 화를 품고 있는 자들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자신의 앞길을 걸고 도박을 하진 않을 것입니다."태후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만약 이렇게 간단한 도리였다면, 황후가 어떻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애씨 가문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것도 결국 애씨 가문을 바보 취급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숙청제의 얼굴을 더욱 엄숙해졌다. 어머니가 이렇게 단호하게 누군가를 논한 적이 없었다. 특히 황후에게는 항상 어느 정도 배려를 해왔다.숙청제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황후가 여학을 건드려 다른 사람
남풍관의 일이 철저히 조사된 후, 송석석는 직접 궁으로 들어가 보고했다.그녀는 황후가 그녀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일을 마친 뒤 태후께 문안을 올릴 생각뿐이었다.숙청제는 남풍관에 무술을 익힌 사국인들이 숨어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그의 표정은 바로 굳어졌다.송석석는 제제사가 남풍관에 간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그저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남풍관으로 갔을 뿐이다. 그는 심지어 신분을 철저히 숨기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꾸미고 있었다.몇 차례 몰래 대화를 엿들어 보니, 그는 풍월을 논할 뿐 정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특별히 이상한 행동도 없었기에 기밀을 누설될 가능성은 없었다.홍현은 남창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 있었다. 그들은 제제사를 ‘늙은이’라 부르며 몹시 싫어했고 남풍관에 다시 왔다며 불평했었다. 하지만 제제사가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상대한다고 했었다.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하니, 송석석은 보고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일부 남창이 사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사국인은 기준이 엄격하여,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남성들만 골랐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사국인이라 보기엔 애매했다.대부분은 남강인과 사국인의 자식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 역시 반쯤은 상국인이었다. 남강은 오랫동안 사국의 지배를 받았고, 겨우 최근 2년에야 독립을 회복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4~5년 전부터 경성에 숨어들어 있었다. 이는 그들의 주인이 사국인 임을 뜻했다.“이들은 모두 사온이 살아 있을 때 상단을 따라 몰래 경성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사온이 그들의 신분을 바꿔 남풍관에 들였고, 남풍관은 그녀의 명을 받고 세워진 곳입니다. 남풍관이 큰돈을 벌고 있기에 사온이 몰락한 후에도 광릉후는 남풍관의 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습니다.”숙청제는 화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소문에 의하면 광릉후 향봉천도 남색을 좋아한다고 하더구나. 그가 남풍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