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81화

작가: 유애
시만자는 가슴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계속 여식을 해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벼슬길을 위해 여식들을 물건 취급하며 하나하나 희생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왜 만근을 자결하게 한 걸까요? 그렇게 비열한 생각을 가진 자라면 차라리 만근을 계속...”

시만자는 문득 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 정말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네요.”

사여묵은 입맛이 없었던 건지 음식을 짚던 젓가락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건 그자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밖으로 알려진 이상 화근이 될까 두려워 만근을 죽게 하고 딸이 없었다고 부정해 버리는 거지. 그래야 앞으로도 약점을 잡히지 않으니까. 아마 족보에서도 이미 지워버렸을 것이다."

시만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그냥 자기 여식을 망치도록 놔둬야 한단 말입니까? 관직이란 게 이렇게 더러운데 황제는 이런 일을 신경 쓰지도 않습니까? 목 승상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여묵이 말했다.

“조사는 할 수 있다. 대리사에서 조사할 것이다.”

사여묵은 송석석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허나 만근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면 다른 방면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어. 어쨌든 예부주사는 변변찮은 관직이야. 부패를 저지르기엔 위치가 부족하고 직무 태만을 따지자니 맡은 일이 대단한 일도 아니다. 결국 사생활이나 품행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이 사람이 밖에서는 꽤 평판이 좋은 편이라. 그가 가진 가장 큰 악행이라면 딸과 여동생을 팔아 자기 배를 불린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만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직 두 가지 방도 뿐입니다. 첫번째 방법은 만근을 끌어들이는 것인데… 그건 제가 원치 않습니다. 두 번째는 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그러자 송석석이 손가락 관절을 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 번째 방도도 있다. 평생 침상에서 못 일어나게 만드는 거지. 더는 관직에 나갈 수 없게 하고 연명하듯 살아가면서 집사람과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2화

    송석석은 직접 금경루를 찾아 금소주를 만났다.금소주는 비록 상인이지만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정직하며 순수한 면모를 겸비한 인물로 사업에서 철저히 이익을 추구했지만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거액을 기꺼이 기부하며 애국심을 보여왔다. 금소주는 평소 송석석을 존경하며 친분을 쌓고 싶었지만 신분상의 차이로 그녀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송석석이 직접 찾아왔으니 금소주는 자연스레 극진히 그녀를 대접하며 협조를 약속했다.그는 탕천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여러 관료의 비밀이 얽힌 일이라 그가 직접 조사하기는 어려웠고 단지 어떤 여인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송석석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하니 그는 망설임 없이 돕겠다고 나서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송 대감, 이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곧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그로부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금소주는 경위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탕천에서 한 귀한 객관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온 옥패를 잃어버렸으니 순방영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대부분 물건을 잃어버리면 관청에 신고해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엔 잃어버린 사람이 예사롭지 않은 신분을 가진 퇴직 관료였기에 상황이 달랐다. 그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단한 인물이라는 소문은 익히 퍼져 있었다.게다가 이 사건 자체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피해자가 요청했으니 순방영은 충분히 조사에 나설 명분이 있었다. 옥산탕천의 이용료는 상당히 비쌌고 항상 하인들이 객관을 보필하고 있었기에 사건 당일 옥산탕천에 출입했던 사람들을 조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제상서가 예약했던 곳은 비취탕였지만 그는 사건 당일 절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에 의심에서 제외되었고, 이는 절의 사미가 증언해 주었다.송석석은 먼저 오진과 함께 탕천 일대를 둘러보며 지형을 파악했다.탕천은 절의 동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으며, 약 3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크고 웅장한 정문이 세워져 있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3화

    워낙 이 일을 모르고 있던 제상서는 송석석의 말을 듣고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는 이미 이런 일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외실이 낳은 사생아는 그의 오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면 그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사람들은 그가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화가 난 제상서는 바로 그 시위병을 끌어냈다. 시위병은 진삼이라 불리는 사람으로 부모도 제씨 가문 일을 맡고 있기에 학문을 익혀 시위병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만가가 문간방에 제상서가 탕천으로 가는 사실을 염탐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상서 부부를 따라 절에 갔다가 그가 탕천에 가지 않자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만근을 더럽힌 사람이 바로 진삼이었기에 제상서는 당장이라도 진삼을 죽이고 싶었다. 게다가 송석석은 제상서의 외실을 파내고 사생아까지 진숙의 손에 넘긴 여자였다. 고고한 국장이자 이품 이부상서로 수많은 관리의 앞날이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는 송석석을 두려워했고 그녀 앞에서 감히 머리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여도 이보다 덜했을 것이다.송석석은 그의 앞에서 진삼을 발로 걷어찼는데 그 힘은 당장이라도 진삼의 목숨을 앗아갈 듯했다. 진삼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배를 움츠린 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제상서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송석석이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제 대인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제대로 된 설명은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제상서는 얼굴을 한 번 쓱 만지더니 답답한 듯 긴숨을 내쉬었다. “하… 진삼이의 잘못이 맞긴하나 여식을 팔아먹은 본인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그건 제 대인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진삼을 어찌 해결할 것일지만 말씀하십시오.” 제상서는 진삼을 죽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봐왔던 아이라 마음이 독해지지 못했다. 진삼은 배를 끌어안은 채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소인 잠시 귀신에 홀려 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4화

    송석석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질책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글쎄요. 제상서께서는 그 질책을 견뎌낼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제상서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지금 그저 조용히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리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하필이면 그의 막내 여식이 진영실의 곁으로 돌아와 양육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태자도 정해지지 않은 시기에 만약 외척이 일을 저질러 체면을 구긴다면 대황자에게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진삼은 고작 하인일 뿐이고 여태 그를 잘 봐줬기에 호위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제상서가 결정을 내렸다. 그의 눈빛에 서늘한 살기가 떠오르자 진삼은 온몸을 떨며 머리를 바닥에 찧어댔다."대인,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으니 죽어도 싸다 하시겠지만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그러자 제상서는 매섭게 꾸짖었다."이 자식이, 감히 살려달라고?! 죄 없는 여인을 해쳤으니 네놈 목숨 하나로도 부족할 지경이다!"진삼은 흐느끼며 소리쳤다."대인, 그 여인에게 어찌 죄가 없단 말입니까? 만가에서는 그 여인을 대인께 바치려고 보낸 게 아닙니까? 대인께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지만 저는 순간의 실수로... 허나 그 여인은 최음제를 먹었고 저는 그 여인을 구하려 했던 겁니다... 그러니 죽을죄는 아닙니다!"제상서는 만귀가 더더욱 증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오래전에 만귀의 딸을 첩으로 삼으라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비열한 수를 쓸 줄이야.제상서는 송석석을 보며 다시금 결심을 굳혔다."왕비께서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목숨을 거둬야 한다면 곧바로 그리하겠습니다."송석석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어찌 됐든 제상서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처분할지는 제상서에게 달렸습니다.” 교활한 송석석의 모습에 제상서는 속이 끓어올랐다. 진삼의 목숨을 원하면서도 이를 직접 밝히지 않으니 어떤 결과가 생기든 그녀는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가진 셈이었다.송석석은 북명왕부를 철통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5화

    줄곧 마당에 서 있던 제대부인은 송석석이 나오자 몸을 낮춰서 배웅을 했다.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한 제대부인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그 아씨는 지금 어떠신지요?” 그녀는 함께 문까지 나서며 물었다. "지금 공방에 머무르고 있으나 아직도 자결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송석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참으로 죄악이군요."제대부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문 앞까지 동행했다."왕비님, 그 아씨를 돕는 데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지요. 고맙습니다, 부인."제대부인은 다시 몸을 낮추어 인사하며 송석석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배웅했다.그녀는 문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이때 진승이 아내와 함께 다가와 진삼을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대인에게 부탁하거라. 이 일까진 내가 관여할 수 없다."진승의 아내는 제대부인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흐느끼며 말했다."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희는 아들이란 단 하나뿐입니다. 대가 끊어질 수는 없습니다."제대부인의 눈에 분노가 스쳤다."스스로 죄를 지었는데 누구를 탓한단 말이냐?"그녀는 치맛자락을 힘껏 당기고 뒤돌아섰다. 진승의 아내는 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지만 제대부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제대부인은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그러자 동희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부인, 정말 보고만 계실 겁니까? 이러다 아래것들까지 마음이 떠나면 어찌합니까?” 제대부인은 여태 하인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그녀의 성품이 너그러워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안 노비들을 잡아두어 제부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배려였다.평소라면 그녀는 죄를 물은 뒤에도 은혜를 베풀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씨 일가는 제부에서 오래 지내온 사람들로 제부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악심을 품는다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동희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6화

    다음 날, 순방영과 경위대는 예부 만주사의 집에 자객이 잠입해 만주사를 심각한 부상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의원은 완치되더라도 앞으로 먹고 마시며 배설까지도 모두 침상에서 해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천자의 발밑에서 조정 관리에게 이렇게 과감한 폭행을 가하다니, 이는 천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였다.송석석이 조사를 거쳐 인증을 찾은 바로는 경성으로 온 한 무림인사가 만귀가 자기 여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추가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만근에 대한 외부의 추잡한 소문은 모두 거짓으로 그녀의 정조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만귀는 이 헛된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자신의 딸이 정조를 잃었다고 오해하여 그녀를 집에서 내쫓았다.아버지에게 신뢰를 잃은 소녀는 소문에 상처받은 끝에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그녀가 이젠 세상을 떠났기에 공방이 대신 장례를 치러주었다. 조사가 마무리된 후, 만귀를 향한 비난은 점점 쇄도해졌다.사람들은 그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동시에 그 무림인의 정의로운 행동을 칭송했다.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만근의 무덤 앞에서 향을 피우며 그녀가 다음 생에는 좋은 운명을 타고나길 기원했다.그것은 만근의 의관총이었다. 그 의관총은 그녀가 생을 마감하려 했을 때 입고 있던 옷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공방의 스승인 석소사저와 라사저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으며 그녀의 18년 인생을 닮고 있었다. 시만자는 그녀를 위해 사금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비단처럼 아름답게 펼쳐질 삶을 의미하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현재 그녀는 송석석과 심만자와 함께 마차에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의관총 앞에 모여 그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자 사금이 시만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여태 살아오며 저를 이리도 아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다시 자결하려 한다면 목숨을 걸고 절 지켜주신 두 분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사람들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7화

    잠시 고민하던 시만자는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만나러 가지 못한 것도 미안하니 서신을 써서 은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하긴, 돈을 써주는 것도 효도를 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서신을 써 오겠습니다.” 연왕이 웃으며 말했다. “급할 것 없다. 며칠 뒤에 갈 생각이니 서신은 내일 주도록 하거라. 자매끼리 잡담이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송석석의 눈빛은 순간 차가워졌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건가? 시만자는 고개를 돌린 채 웃었는데 그 웃음은 왠지 사악해 보였다. “그러지요.” 송석석이 그녀를 째려보았다. ‘대체 뭘 하려고 그러지?’시만자는 마치 송석석의 경고를 느낀 것처럼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계속 시만자를 주시하는 연왕의 모습에 사여묵은 괜히 속이 울렁거렸다. ‘아직도 시만자한테서 이득을 얻어 시씨 가문을 조종하려는 속셈인가? 게다가 보아하니 사심도 있는 것 같군. 천박한 사람 같으니라고!’사여묵은 이전부터 연왕을 무시했기에 당연히 식사 제안도 하지 않았고, 어쩌다 쉬는 날 연왕을 마주해야 하는 건 정말 고역 같은 일이었다. “황숙은 언제 연주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사여묵이 물었다. “사흘 뒤면 떠날 것이다. 폐하께도 이미 상주 드렸다.” 연왕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숙청제가 승낙하지 않을까 봐 감히 진성을 떠나지 못했는데 의외로 숙청제는 흔쾌히 찬성했다. 그러자 사여묵은 웃으며 말했다. “조카는 공무로 배웅하러 못 갈 것 같으니, 미리 황숙께서 평안히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러자 연왕이 웃으며 말했다. “굳이 배웅할 필요 없다.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연주로 찾아오거라.” 사여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꼭 그러겠습니다.” 얄미운 일가를 보낸 뒤 송석석은 시만자의 머리를 잡고 편청으로 들어갔다. “너 아주 주견이 있구나.” 송석석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쳐다봤다.그러자 시만자는 웃으며 말했다. “주견이 없는 게지. 네가 승낙하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8화

    시민주에 대한 시만자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시만자는 채찍을 휘두르며 시민주를 쫓아냈고 시민주는 머리를 감싼 채 쥐새끼처럼 도망쳤다. 연왕의 음흉한 속셈을 잘 알고 있는 송석석은 연왕이 진성을 떠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홍시를 보내 혹시라도 시만자가 연왕부에 가지 않는지 감시하게 했다. 며칠 연속 감시했지만 시만자는 오직 소진 소주방에만 드나들 뿐 연왕부에는 가지 않았다. 그제야 송석석도 조금 안심되었다. 소진 소주방과 여학은 점차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여학은 송석석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여학에 들어와 여인들은 사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다들 학문에는 관심이 없었고 하루 종일 다과나 자수품, 혹은 선물로 귀족 아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뿐이었다. 일부 귀족 아씨들은 작은 관직의 여식들에겐 오만하게 굴며 차츰 파벌을 형성했다.하여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여인들은 오히려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또 일부는 훗날 혼인을 하게 되면 가정을 책임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국태부인에게 예법을 배우거나 가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익히고자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개학 초기와 완전히 달랐다. 당시에 많은 이들은 심청화의 명성을 듣고 여학에 왔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심청화에게 그림을 부탁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의 글 한 점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설령 퇴학을 하더라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송희희는 훈장으로서 이런 문제를 항상 처리해야 했다.백 명도 넘는 여인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면 정말 골치가 아팠다. 훌륭한 가문의 여식들이 어찌 이렇게 시끄럽게 군단 말인가? 규방에서 배운 예법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송석석은 급히 꾸짖기보다는 우선 누가 앞장서서 소란을 일으키는지 조사를 했고 조사 끝에 문제의 주동자 몇 명을 알아냈다. 첫 번째는 제 황후의 작은 사촌 동생인 제자예였다. 그녀는 올해 열다섯 살로 갓 성년이 되었고, 아버지는 제 상서의 친동생인 태상시경이다.두 번째는 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89화

    때로는 여성 간의 악의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안태부는 청류의 수장이지만 안여옥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그녀들은 안여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런 간단한 문제라면 송석석은 어떻게든 해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아군여학을 망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더 컸다. 현재로서 이 무리의 우두머리는 제부의 여식들로 보였지만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약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여학을 건드리려 하다니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송석석은 그녀가 이번 일로 상처를 받았을까 봐 우선 안여옥을 달래주기로 했다. 안여옥은 미간을 찌푸린 채 글씨 연습장을 한 장씩 넘기며 살피던 중이라 송석석이 다가오는 발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송석석이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 속에 담긴 억눌린 분노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훈장, 언제 오셨소? 아무래도 내가 실례를 범한 것 같군.”송석석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안주강, 앉으시오.” 자리에 앉은 뒤 송석석은 그녀 앞에 놓인 글씨 연습장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방금까지도 안여옥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혹시 학도들이 과제를 제때 제출하지 않은게요?”안여옥은 첫 몇 장을 송석석에게 건네주며 설명을 시작했고 송석석은 안여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글을 더 단정히 쓰게 하려고 천자문을 따라 쓰도록 했소. 헌데 이 몇 명은 천자문이 아닌 전고를 마치 낙서처럼 썼더군. 날 상대로 일부러 이러는 게 뻔하오!” 송석석은 몇 장을 넘겨 살펴보았는데 적힌 전고는 모두 같은 내용이며 전조의 나여옥이라 불리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난을 싫어하고 부귀영화를 탐하는 그녀는 약혼자의 가문이 몰락하자 단호히 파혼을 요구했지만 3년 후 약혼자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전조 승상의 여식과 혼인해 나여옥은 그만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결국 수식루에서 약혼자의 부인을 만나 비녀로 찔러 죽이는 일이 발생했고 그녀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5화

    황후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서리고 있었다.그녀는 후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줄은, 심지어 황제가 그 무엇보다 먼저 송석석을 감싸며 노여움을 터뜨릴 줄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 노여움도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송석석이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황제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황제가 모든 비난을 혼자 떠맡기로 한 것이다.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물 흐르듯 상황을 이용해 송석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명성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근데 왜 지금 송석석을 먼저 보호하려 하는 것인가? 만약 외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서히 제 황후의 마음을 휘감았고, 문득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황제가 송석석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제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이 남자가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 것은 지위와 권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하지만 전제 조건은, 황제가 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긴 세월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총애란 단지 황제가 패를 몇 번 더 뒤집은 것뿐이었지, 진정한 마음을 쏟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다.평소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부분 그녀가 주관했다. 그러나 오직 송석석만은 예외였다. 송석석의 이름은 황제가 직접 올렸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또 다른 이유는 송석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4화

    염선생의 걱정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황실의 하인들을 찾아가 몰래 물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미리 경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북명황실이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더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일이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제가 궁궐을 나선다는 것은, 화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수의 사람만 데리고 미복하여 민간을 방문해 민정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황실이나 훈작세가에 어떤 경사가 있더라도, 황제가 가마를 이끌고 그곳에 방문하려면 미리 몇 일 전부터 조서를 내려 황제를 맞이할 일을 준비하게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정원이나 집을 미리 수리하고, 부드러운 융단을 깔고 꽃을 심으며,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밤중에 단 몇 명만 데리고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북명왕은 아직 남강에 있었고, 북명왕비이자 사령관인 송석석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줄곧 그녀를 어서방에 불러 국사를 논의했다고 했다.과연 진짜로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서 일까?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남자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를 탓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황제가 잘못을 했다면, 모두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황제가 송석석과 어서방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황제는 후궁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틀림없이 속삭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물론 후궁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거동한 일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후궁들이 장춘궁에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 수빈과 덕비는 평소에는 후궁의 상황을 황후에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다. 보고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3화

    서방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심청화의 말을 듣자마자 송석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겠네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뻔했습니다."염선생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심청화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연왕을 본받는다면, 사제는 아마 사청엄처럼 될 것이다.""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했을 겁니다." 염선생이 말하자 송석석이 매우 우울해하며 말했다. "그가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을텐데…... 어렸을 때 그는 둘째 형과 잘 지내며, 항상 나를 여동생처럼 대해줬고, 내가 조정에 들어간 후에도 진심으로 나를 신하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그러자 염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갑자기요? 왕비님은 남강을 되찾고 돌아왔을 때, 그가 왕비님을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나는 그가 나를 이용해 사제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그리고 그때 그녀는 송회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궁에 들이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심청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가 너에게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익을 계산해본 후 포기한 거겠지."그러고나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때 진짜로 너를 궁에 들이려 했다면, 넌 궁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느냐?"송석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곧장 짐을 싸서 매산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단순히 궁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나?""대사형,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에요. 궁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하지만 너는 그때 사제도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왜 망설임 없이 그에게 시집을 간 것이지?" 심청화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그때 이미 사제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너 자신도 그 감정을 몰랐거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2화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1화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30화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29화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28화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27화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