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경은 송석석을 두려워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난듯 벌떡 일어났다. “송석석, 내 명예를 훼손해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몽동이가 소리쳤다. “무엄하십니다. 일개 현주가 감히 왕비의 이름을 부르다니요!” 그러자 송석석은 손을 들어 몽동이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한 다음 옥경을 바라보며 비꼬았다. “그렇게 말을 잘하는데 왜 당신 어머니가 박대를 당하는 것을 보고도 찍소리도 하지 못했답니까? 어머니를 위해 말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옆에서 정성껏 시중을 들어 당신들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를 갚았어야지요.” 옥경은 노여움을 금치 못했지만 시만자의 눈빛이 차갑게 쓸어오자 그녀는 순간 겁에 질려 욕은 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게 잘 났으면 직접 가서 시중이나 들지 그랬습니까? 누가 입으로는 말 못 합니까? 그래도 사촌 이모인데 왜 직접 가서 시중들지 않았습니까?” 송석석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자녀들이 효도를 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었군요.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목 씨 부인께 알려서 잘 선전하도록 부탁해야겠어요.” 그러자 연왕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옥경아, 네 사촌언니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옥경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째려보더니 달갑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연왕은 마음속으로 옥경 현주보다 더 화가 났다. 왜냐하면 송석석이 이렇게 말하는 건 분명 그가 왕비를 박대했다고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시만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니 그는 더욱 체면이 서지 않았다.다행히도 사여묵이 오해를 풀었다. “자, 오늘같이 즐거운 날엔 옛이야기를 해서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맙시다.” 그러자 송석석은 사여묵에게까지 화를 냈다. “내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난 사촌 이모가 불쌍해서 그럽니다. 불효녀 둘을 낳은 것도 모자라 불효자식을 둘이나 키웠으니요!” 그러자 연왕의 얼
연왕은 옥경을 꾸짖으며 돌아가서 반성하라고 했다. 측비 김씨 또한 옥영 현주를 불러 함께 자리를 떠났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하녀를 데리고 송석석 일행을 쫓기 시작했다. 비록 저택에 암실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침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시민주가 멍청해서 그들에게 이용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 무상은 줄곧 사여묵을 몰래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가 왕야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언짢은 표정으로 힐끔힐끔 밖을 내다보았는데 마치 젊은 부부가 다툰 후 화가 나면서도 상대방을 걱정하는 모습 같았다. 게다가 방금 송석석의 눈빛에 드러난 노여움은 연기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송석석이 연황실에 온 목적은 전 연왕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온 것 같았다. 무상은 그것이 송석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참에 그녀가 화를 풀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식들이 나갔으니 왕야와 이야기하기도 더 편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묵아, 어머님은 건강하시지?” 연왕은 사여묵에게 혜 태비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건강하십니다. 영태비 어르신께선 어떠십니까?” 연왕은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드디어 좀 나아지셨단다.” 그러자 사여묵이 물었다. “그럼 황숙께선 언제 연주로 돌아가실 예정 이십니까?” 연왕은 큰 소리로 웃더니 말했다. “조카는 황숙이 진성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냐? 왜 그렇게 황급히 황숙을 연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 것이냐?”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무상이 연왕 대신 대답했다. “왕야께선 아무래도 월말이면 연주로 돌아가야 하실 것 같습니다.” 사여묵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무상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도 사여묵이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아 무상은 그가 온 목적
연황실에서는 물건을 숨길 수 없었다. 숨길 수 있다 하더라도 주고받았던 서신들만 가능했고, 중요한 물건은 숨기거나 소각했다. 싸움을 일으켜서 좋을 건 없으니 서재에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시만자를 초대한 건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에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오늘 연황실로 오기 전에 원래는 이번 기회에 황실에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사사가 황실에 있는지, 만약 없다면 다음에 시만자를 다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왕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 송석석은 시만자를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 눈빛이 너무 징그러워서 송석석은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하녀들이 줄줄이 달려와 떡을 탁자에 놓자 송석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대추떡을 든 하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하녀는 발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측비 김씨가 경계스러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보자, 송석석이 대추떡을 가리키며 하녀에게 말했다. “이 대추떡은 북명왕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정청으로 보내거라.” 그러자 하녀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답했다. “네.” 하녀는 쟁반을 받쳐 들고 몸을 돌려 떠났는데 발걸음에 흔들림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자 측비 김씨가 피식 웃었다. “두 분께서 정말 금슬이 좋으시나 봅니다. 방금 다투었는데도 왕야께서 좋아하는 대추떡을 기억하고 있다니.” 송석석은 자리에 앉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대화를 하기 싫은 태도였다. 심지어 그녀는 몸을 돌려 멀리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민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자야, 우리 측비 김씨는 무시당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단다.” 측비 김씨는 담담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매일 총애와 권력 다툼만 할 줄 아는 멍청한 년이. 지금은 진성에 잠깐 머무르는 중인데 무슨 권리 다툼할 것이 있다고. 연왕비가 되어서 머리에 든 것이 하나도 없으니 왕야님 체
북명황실로 돌아온 시만자는 마차에서 내려 저택 입구에서 몇 번 뛰며 온몸의 불운을 털어냈지만, 여전히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감히 날 넘보다니! 그의 아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말이야, 이 파렴치한 늙은이가.”노 집사는 마침 정면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시만자의 말을 듣더니 한 걸음 물러서서 멍하니 생각했다.‘늙은이가 왜 파렴치하다는 거지?’송석석도 화가 나서 그녀를 끌고 저택으로 들어갔다.“앞으로 연황실에 가지 마. 그 늙은이가 더러운 눈빛으로 네 몸을 몇 번이나 훑었는지 알아? 그저 보기만 했는데도 네가 오염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고.”그녀는 오늘 밤에 본 연왕이 예전에 그 야심이 가득했던 연왕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그야말로 색마로 변신한 것 같았다.의사당에 들어서자 사여묵은 연왕이 시만자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염 선생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염 선생은 그의 말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설마요? 그렇게나 티가 났다는 말씀입니까?”“그러게. 나도 처음엔 그가 가장한 것이라고 의심했다니까.”사여묵은 돌아오는 마차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전혀 여색을 밝히지 않아,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연주의 관리들도 대부분 여자들을 회유해서 구슬리고 있었는데 그 여자들도 모두 미인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가 시민주와 결혼한 것도 시 씨 가문의 재력과 병기구조와 군마를 위해서였다.그래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자리에 앉은 후 송석석에게 물었다.“석석, 혹시 우리가 만난 사람이 진짜 연왕이 아니고, 진짜 연왕은 이미 연주로 돌아갔을 가능성은 없소?” 송석석은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얘기를 듣고 자세히 생각해 보니 사여묵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강호의 이용술은 자세히 구분하지 않으면 정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신기했기 때문이다. 염 선생 또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고 있던 연
염 선생은 몽동이의 말이 빗나간 것을 듣고 급히 말했다. “몽 교관, 왕야님을 예로 들면 안 되지요. 물론 그런 남자가 있긴 하겠지만 그건 오늘의 주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몽둥이는 여전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만자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건 찬성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어린 시절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우면 시간이 지난 후에 얼마나 추하게 되니까요. 도금을 한 철은 언젠가 금이 없어지고 녹이 슬기 마련이겠지요. 정이 있어도 그런데 하물며 연왕 같이 계산만 할 줄 알고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늙은이는 오죽하겠어요? 그런 사람은 만자 같은 여자가 그의 생활 속에 들어와 그의 메마른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그가 하는 큰 일을 도와줄 수 있다면 발정난 숫놈처럼 들러붙을 것입니다.” 그러자 염 선생이 멍하니 듣다가 물었다. “이것도 당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까?” 온갖 역경을 다 겪지 않고 서야 어찌 이런 상서로운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몽동이는 절대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네. 사부님께서 아주 많이 말씀해 주셨는데,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아니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거절했다. 실은 그들은 들을 생각에 벌써 구역질이 났다. 그들은 몽동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건 인성에서 분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성은 연왕이 예전에 보여주었던 본성보다 더 솔직한 것이었다. 송석석은 오늘 밤 연황실에서 발견한 무공을 익힌 하녀와 하인의 수를 말했다. “하녀는 총 열여덟 명이고 하인은 스물세 명이 있었는데, 하인은 사사 같지 않았습니다. 사사는 엄격한 훈련을 받아서 특히 위험할 때 그들은 무의식적인 방어반응을 하는데 그건 수천 번의 위기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오늘 총 세 명의 하녀와 한 명의 하인에게 시험해 보았지만 그들은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기색변화나 신체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여묵은 고개를
사여묵은 다음날 아침 일찍 궁에 들어가 결재한 사건요지를 되찾으며 황제에게 말했다.“석석이 연황실의 난초가 정말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택에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 하녀들까지 모두 무공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숙청제는 멍하니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월이 그렇게 오랫동안 연황실의 뒷조사를 해도 아무런 속내도 찾지 못했는데 그들은 한 번만 갔을 뿐인데 바로 알아냈 다니.오월은 연황실에서 호위를 발견하지 못해 사사들이 주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사들은 무공이 뛰어나서 발견하기 어렵다고 여겨 함부로 침입하지 못했다고 했다.숙청제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사사인가?”그러자 사여묵이 웃으며 말했다.“아닙니다.”그러자 숙청제는 그를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왜 웃는 것이냐?”사여묵은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요즘 의미 없이 웃는 것을 좋아합니다.”그러자 숙청제도 그를 보고 웃음이 난듯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럼 바보 아니냐?”형제는 서로 마주 보더니 바로 얼굴을 돌리고 웃었다. 그 웃음 속엔 알 수 없는 힘이 있어 숙청제의 높은 방어벽에 금이 가게 했다.황제가 사사에 관해서 물어보았다는 건 그의 조사 진행이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가 물을 수 있다는 건 오월의 조사 진도를 그에게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또한 그에게서 조금의 소식이라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니 어느 정도 그에게 믿음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적어도 황제는 자신만의 금고에서 한 발짝 나온 것이었다.저녁 식사자리에서 연왕의 독촉에 시민주는 돈으로 소진 소주방에 대한 소문을 깨트렸다. 소문낸 것과 해명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비록 설득력은 없어 보였지만 시민주는 돈을 잃고 말았다. 가의가 소문을 듣고 즉시 시민주를 찾아갔는데 시민주는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의는 연황실 문 앞에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고 측비 김씨는 소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하인들에게 가의가 오면 쫓아내라고 분부했다. 결
가의가 공방으로 들어간 다음날, 진성 곳곳에서 가의가 휴직당한 원인과 결과를 전했다.그러자 그녀가 평양후부의 자식을 살해하고 첩실을 용납하지 못해 첩실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다는 소문이 펴지기 시작했다.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누군가 그녀가 월숫돈을 푼 일도 발설했다. 이런 극악무도한 사람을 평양후부에선 관부로 보내지 않고 내쫓기만 하다니, 그리고 소진소주방은 또 이런 사람을 수용해 잘 대접하고 있다니, 사람들은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석석은 순방영의 숙정작전의 마무리를 짓고 있어 소진 소주방이 또다시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된 일을 몰랐다. 그녀는 숙정작전이 끝나기 전날에야 이 사실을 알고는, 돌아가 시만자에게 물었더니 시만자도 골치가 아픈 듯 말했다. “홍시가 조사해 본 결과 시민주가 푼 소문이 아니라 평양후부에서 소문을 푼 모양이야. 평양후부에서는 가의를 내쫓은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평양후부의 사람이 소문을 낸 것이 분명해. 그 사람은 가의를 죽일 작정인 것이야.”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가의뿐만 아니라 소진소주방도 죽이려고 하고 있어. 누가 소문을 낸 것인 지 조사해 냈냐? 이렇게 대규모로 사람을 매수해 정보를 흘리려면 돈이 많이 들 것인데 말이야.” 시만자가 대답했다. “평양후부에 네가 아는 사람이 있잖아. 혹시 그 사람이 한 짓은 아닐까?” “전소환 말이냐?” 그러자 송석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녀가 가의와 민소진을 증오할 가능성이 제일 크긴 하지. 공방은 민소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니까 공방도 싫었을 테고. 하지만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미리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말했다.“조미진?” “조미진?”가의를 증오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분명 가의 때문에 아이를 잃은 조미진일 것이 분명했다. 원래 송석석도 설사를 하게 하는 약이 어떻게 낙태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평양후 노부인이 병을 핑계 삼아
평양후부에서는 장례를 치르고 있는 탓에 송석석도 더 이상 방문요청을 보내지 못했다. 다만 유언비어가 너무 많아 억제하고 싶었는데,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니 억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시도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소식은 확실히 평양후부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했다. 홍시는 자세히 훑어보고 돈까지 지불해서 알아본 결과 그 이야기꾼들의 정보가 평양후부의 하인들에게 얻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유는 예전에 가의가 하인들을 구박해서 그들은 가의에게 복수하려고 했다.이야기꾼들도 분개해서 이런 일을 알게 된 이상 가의의 악랄함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홍시가 그게 모두 사실이냐고 묻자 이야기꾼들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어이 없다는듯 말했다.“당연히 사실이지요! 가의가 누굽니까? 사온의 딸 아닙니까? 황제폐하께서 그녀의 군주 자리까지 폐위시켰으니 그녀가 역모사건에서도 무고한 건 아닐 것입니다. 감히 역모도 꾸밀 수 있는데 저택에서 사람을 몇 명 해치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손에 죽었을 지 모르는 일입니다.”가의라는 두 글자는 이미 죄가 되었다. 홍시는 몇 명에게 더 물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알아내지 못해 그대로 보고를 했다.시만자는 오늘 말을 타고 공방에 갔는데 문 앞에 사람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문과 벽엔 썩은 계란과 똥으로 가득 찼다.시만자는 화가 나서 말을 타고 북명황실로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홍시가 평양후부의 하인이 일을 폭로했고, 이유는 가의가 평시에 그들을 학대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이라고 알렸다.그러자 시만자는 화가 치밀어 오른듯 찻잔을 내던지며 소리쳤다.“이런 망할!”송석석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만자에게 물었다.“너… 가의 만났어?”가의라는 말에 시만자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가의는 무슨, 난 공방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그녀가 그런 짓을 한 게 뭐가 이상하다고, 원래 좋은 사람도 아니었잖아.” 송석석은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서백부에 도착했다. 시만자의 신분을 아는 덕분에 밤늦은 시간임에도 문이 열렸다. 하지만 최씨가 병을 앓고 있는 관계로 하인은 왕준과 남희에게 이를 알리러 갔다.소식을 들은 왕준과 남희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늦은 밤에 시 소저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준이 먼저 물었다.“남자를 데려왔다고? 그 남자는 누구인가?" 문지기가 답했다."전혀 본 적이 없는 이였고, 태도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의자를 두 개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습니다. 입으로는 험한 말을 뱉으며 정말 너무한다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왕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분란을 일으키러 온 건가? 혹시 왕청여가 화를 산 사람인가?"그는 최근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누군가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면 첫 번째로 왕청여가 일을 벌인 게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아닐 겁니다." 문지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이 욕한 대상은 노부인과…… 돌아가신 선대대인 이었습니다."왕준은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기에 백작이라 불리지 못했다. 그래서 평서백부의 하인들은 그를 선대대인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왕준은 효심이 매우 깊은 아들인지라,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시만자가 데려온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가자, 내가 직접 나가서 누군지 보겠다. 평서백부에 와서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무슨 배짱을 가진 놈인가 보자!"왕준은 죽은 자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이를 욕하는 것은 성격이 비열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만이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에 차 남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나갔다.한편 왕이장이 의자를 발로 차는 소란이 있자, 다른 하인이 이를 최씨에게 보고하러 갔다. 모두가 이런 문제를 진정시킬 사람은 오직 최씨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왕준도 관직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이 대게
심청화가 급하게 그를 따라 나서서 붙잡자, 왕이장은 걸어가며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심청화는 왕이장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마음속에 무언가 괴로움이 있어도 그는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저 다른 곳으로 떠나 은둔하는 것을 선택했다."이건 우리가 추측한 것일 뿐이야.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왕이장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제 술을 마시러 갈 겁니다. 마침 지금 가을바람도 불고 날씨도 시원한데, 미인과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시만자가 나서서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가자. 내가 함께 마셔줄게."시만자도 지금이 되어서야 그가 사실 첩의 아들이 아니라 평서백부인의 친아들이며, 왕표와 왕청여와 같은 친남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왕이장은 시만자가 따라오는 것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는 시만자에게 말했다."내가 가려는 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시만자는 막무가내로 그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술값은 내가 계산해줄게."하지만 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태도가 날카롭고 신랄하게 변한 것이다."돈 있어. 따라오지 마. 정말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냐? 정말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된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자꾸만 살려준 은혜를 갚으려 해서 그랬던 거야. 너희 여자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 스스로 얼마나 귀찮은지조차 모르잖아."시만자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여자들만 귀찮아? 남자들은 안 귀찮고?"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왕이장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다 귀찮아. 똑같이 귀찮아."시만자는 그의 손을 계속 잡아끌며 마구간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말타러 가자. 남자도 여자도 보지 않으면 되잖아.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데. 바람 맞으며 말을 타면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안 간다고!"“가자니까!”시만자는 웃음을 거두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말 타러 가지 않으면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네가 나랑 같이 가야 해. 나도
염선생과 노 집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이 일이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심청화의 말에 따르면, 사부님께서 처음 조사한 바로는 왕전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했었다. 다만 몸이 상해 이미 건강이 나빠진 탓에, 진성의 많은 명의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서 결국 어느 사찰로 보냈다는 것이다.이 점은 왕전이 이 아이에게 부성애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막내아들은 대개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하지만 노 집사와 평서백부의 몇몇 노관리와 노집사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왕전은 죽은 그 아이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태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냉대했다는 것이다.그들은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지금의 왕이장이 옛날 그 당시에는 왕교여라고 불렸다. 때는 할아버지의 생신 날, 할아버지는 그를 직접 안고 생신 연회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정정하게 걸으실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일 이후, 왕교여가 할아버지를 피곤하게 했다는 이유로 왕전은 그를 끌어내 손바닥을 열 대나 맞는 벌을 내렸다.이 일은 다른 이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하인들 중 일부가 목격했다고 한다.또 다른 예로, 할아버지가 왕교여를 데리고 사냥을 갔을 때 흰 여우를 잡아 여우 가죽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가죽은 셋째인 왕청여가 입고 있었다.그 외에도 왕전이 왕교여에게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는 하인들 사이에서 여러 번 회자되었다. 노 집사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들도 이를 보았다고 말했다.당시 분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저택에서 생활했다. 왕전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조차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또한 왕교여의 병을 치료할 때 당시 의원은 모두 그의 할아버지가 초빙한 명의들이었다. 그렇게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약재가 바뀌었는데, 왕전은 약을 달이는 하녀나 하인들에게
하지만 그녀는 순간 집사의 보고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매각한 점포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으며, 그 가격 또한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세보다 10~20% 더 높은 가격이었다.그녀는 집안을 관리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점포 거래를 여러 번 해보았다. 거래는 대개 시세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한두 건 정도 시세를 약간 웃도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 매각한 모든 점포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거래되니 매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자신이 점포를 매각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급히 은자가 필요한 줄로 여겨 일부러 높은 가격에 매입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집사에게 매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계약서에 써 있는 매수인의 이름이 고효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북명황실에 고효풍이라는 이름의 집사가 있느냐?" 최씨가 집사에게 물었다."들어본 적 없습니다.""그럼 이 매수인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그녀의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세보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 매수하다니, 혹시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거래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공식 문서를 통해 등기되었고, 또한 증인이 보증한 합법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어 보였다."됐다.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남은 점포는 더 이상 팔지 마라. 어머니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그녀거 집사에게 말했다.점포를 매각하는 일은 그녀가 노부인 몰래 진행한 것으로, 심지어 왕준이나 남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안일은 관리하지 않으니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이를 알게 되더라도 나중에 이유를 설명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이 일은 그녀만을 위해 진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수인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송석석이 그녀를
홍이의 말에 왕청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대답했다.“하지만… 내 서방님은 출세를 못하잖아. 가서 계급도 달지 못한 병사를 한다는데.. 그럼 내 체면은 어떡하라고? 난 내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거야. 그때 당시 송석석이 내 서방과 이혼할 땐 어명까지 내려졌잖아. 그런데 난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거냐고.”홍이는 이 모든 게 왕청여가 자초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각자 다른 선택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북명 왕비님보다 못한 사람도 있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한 건 아닙니다.”왕청여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왜 예전에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냐?”“제가 얘기를 해도 아가씨께서는 제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문발을 내린 홍이가 마부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이만 출발합시다.”마차 안에 멍하니 앉아있던 왕청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녀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불안했다.‘송석석은 한 번 이혼을 하고도 외모가 수려하고 나라에 큰 공까지 세운 서방을 만날 수 있는데 난 왜 안 되는 걸까?’이런 생각에 왕청여는 홍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홍이야, 설마 나중에 전북망 그 사람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일은 절대 없겠지?”홍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아가씨,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그분은 나중에 다시 장군님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평생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결국 장군부까지 잃을 수도 있겠죠.”“그 사람 능력으로 다시 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산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예물마저 다 탕진하고 결국 장군부까지 빼앗겨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도 있어. 그럼 내 인생은 정말 망가지는 거야. 내
시만자는 오늘 계속 방씨 가문에 있었다. 오수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약왕당의 청작을 불러서 방씨 가문으로 같이 간 것이다.저녁이 될 때까지 방씨 가문에 있었던 시만자는 방씨 가문 사람들을 통해 오늘 편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천허의 부인은 이 사실을 절대 오수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도 모자라 낙태까지 하다니. 방시원은 이제 더 이상 왕청여의 서방이 아니지만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기에 방시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외부에 방시원이 잠자리에 약해서 왕청여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남발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전장에 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이와 반대로 왕청여가 태생부터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박한 여자라는 비판도 무성했으며 노세진을 뻔뻔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씨 가문에서 착한 마음으로 노세진을 거둬줬는데 노세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노세진과 왕청여는 천벌 받아 마땅한 나쁜 놈들이고 방시원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엮였다는 결론이 내렸다. 반면, 전북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씨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전북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왕청여와 이혼한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밤, 함께 황실로 돌아온 시만자와 송석석은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얘기해주다가 이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전에는 구경 삼아 지켜보던 일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시만자와 송석석도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한편, 현이는 오늘 밤에도 무술을 연습하러 찾아왔고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현이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약왕당으로 가서 홍작을 모셔왔다. 다행히 이마의 상처가 깊지 않았고 신속적으로 지혈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고열을 앓고 있었던 최씨는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화까지 낸 탓에 새까만 피를 왈칵 토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최씨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석석이 아무리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의원님, 상황은 좀 어떤가요?”홍작이 최씨에게 진맥 검사를 마치자 송석석이 물었고 홍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인께서 고열을 며칠이나 앓으셨는데 조금 전에 등을 확인해보니 폐에 문제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화병 때문에 간에도 어혈이 생겼습니다. 전에 복용하시던 약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극약 처방으로 간과 폐를 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은 몸조리를 통해 천천히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과로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말을 하던 홍작은 송석석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간에 어혈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늘 화병이 잠재되어 있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에 어떤 일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쌓아 두면 나중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은 최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왕표가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안 사람들까지 엮이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일단 약을 좀 복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홍작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송석석은 밖으로 나와 순방영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이내 순방영 사람들까지 떠났고 송석석은 돌아선 순간, 기둥에 가까스로 기댄 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왕청여를 발견하게 되었다.왕청여는 다음 순간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으로 송석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북명 왕비님, 제가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