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후부에서는 장례를 치르고 있는 탓에 송석석도 더 이상 방문요청을 보내지 못했다. 다만 유언비어가 너무 많아 억제하고 싶었는데,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니 억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시도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소식은 확실히 평양후부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했다. 홍시는 자세히 훑어보고 돈까지 지불해서 알아본 결과 그 이야기꾼들의 정보가 평양후부의 하인들에게 얻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유는 예전에 가의가 하인들을 구박해서 그들은 가의에게 복수하려고 했다.이야기꾼들도 분개해서 이런 일을 알게 된 이상 가의의 악랄함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홍시가 그게 모두 사실이냐고 묻자 이야기꾼들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어이 없다는듯 말했다.“당연히 사실이지요! 가의가 누굽니까? 사온의 딸 아닙니까? 황제폐하께서 그녀의 군주 자리까지 폐위시켰으니 그녀가 역모사건에서도 무고한 건 아닐 것입니다. 감히 역모도 꾸밀 수 있는데 저택에서 사람을 몇 명 해치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손에 죽었을 지 모르는 일입니다.”가의라는 두 글자는 이미 죄가 되었다. 홍시는 몇 명에게 더 물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알아내지 못해 그대로 보고를 했다.시만자는 오늘 말을 타고 공방에 갔는데 문 앞에 사람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문과 벽엔 썩은 계란과 똥으로 가득 찼다.시만자는 화가 나서 말을 타고 북명황실로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홍시가 평양후부의 하인이 일을 폭로했고, 이유는 가의가 평시에 그들을 학대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이라고 알렸다.그러자 시만자는 화가 치밀어 오른듯 찻잔을 내던지며 소리쳤다.“이런 망할!”송석석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만자에게 물었다.“너… 가의 만났어?”가의라는 말에 시만자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가의는 무슨, 난 공방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그녀가 그런 짓을 한 게 뭐가 이상하다고, 원래 좋은 사람도 아니었잖아.” 송석석은
시만자는 자기 의견을 고수하며 말했다. “허나 가의를 쫓아내면 우리가 더는 이 소란에 휘말리지 않을 것 아니더냐?”“그럼 그 뒤엔 어찌할 생각이냐?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생기면? 사실 나는 가의 일은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건 우리에게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에게도 기준이란 게 생길 게 아니냐? 우선 편견은 버리고 사실을 확인한 뒤에 진짜 잘못이 있으면 쫓아내고 아니면 기회를 주는 건 어떠냐?”송석석이 덧붙였다. “편견을 버리는 건 아주 중요해. 쫓겨난 여인들은 죄를 뒤집어쓰기 마련이지. 허나 우리가 미리 결정을 내린다면 아무도 우리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시만자는 여전히 답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는 거 알아. 나 역시 공방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가의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구나. 그리고 가의는 절대 무고하지 않아. 그러니 그냥 쫓아내면 되지 않겠느냐? 넌 가의가 싫지도 않느냐?”“나도 싫지.” 송석석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된 거 아니냐? 우리가 싫어하는데 왜 공방에 받아들이는 거야? 나는 처음에 큰 그림을 보고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처음부터 가의랑 시만홍이 문제를 일으킨 거잖느냐. 자신이 공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니 지금 다 망치려고 하고, 평양후부 사람들마저도 우리를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어. 생각할수록 화가 나구나.”시만자는 점점 더 화가 솟구쳐 말이 거칠어졌다. “게다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받지 않기로 했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선의로 공방을 시작한 건데, 왜 이제 와서 선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지? 선의가 없으면 공방 자체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그리고 내가 가의를 싫어하는 연유는 가의와 그녀의 어머니가 널 괴롭혔기 때문이야. 제일 화가 나야 할 사람은 넌데 왜 가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지? 공방이 이런 사람을 받아들일 거면 그냥 문을 닫는 게 나을 것이야!”“너도 싫다고
보주는 이 일이 두 사람 간에 갈등을 일으킨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동안 시만자 아씨는 항상 아씨를 지지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번엔 한 번 순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지금까지도 평양후부의 하인들 말고는 누가 공방을 방해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송석석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은 천만번을 대비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만약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하단다. 보주야, 나한테 생각이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송석석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녁에 공방에 한 번 가볼 생각이다.”홍소는 옆에서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왕비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그러자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홍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홍소 네가 같이 갈 필요는 없다. 넌 계속 누군가가 돈을 받고 소문을 퍼뜨린 게 아닌지 알아보거라.”“알겠습니다!” 홍소는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나갔다.송석석은 다시 노집사를 불러 풍집사에게 가서 가의가 하인들을 학대한 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리고 어떤 하인들이 그 일로 문제가 된 것인지 물어보라고 지시했다.화가 난 시만자는 이리저리 정원을 걷다가 정자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혜태비를 보았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혜태비는 그 모습을 보고 즉시 가녀에게 물러서라고 한 뒤 고씨 유모에게 말했다. “돌아가자꾸나.”“시만자 아씨가 오셨나이다.” 고씨 유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말에 혜태비가 말했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자니깐! 얼굴이 아주 뾰루퉁해 있지 않느냐! 괜히 건드려서 쓸데없는 소리 듣지 말고 얼른 가자꾸나.”정자에 도착한 시만자는 혜태비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도 자신의 행동이 너무 성급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직접 고른 문이 망가졌고, 공방의 간판도 엉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심 사형이 직접 쓴 글인데 송석석은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없는
송석석은 정자 밖으로 나가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입에 물고는 연달아 세 바퀴를 돌며 공중제비를 했다. 그리고 난간을 넘어 다시 돌아와 시만자 옆에 앉더니 팔을 펼치며 시만자를 향해 입에 문 장미를 내밀었다. 그의 밝은 눈동자엔 웃음이 가득해졌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시만자는 손으로 꽃을 낚아채며 뾰로통하게 말했다."이제 그만하거라! 왕비란 사람이 이리저리 공중제비나 돌기나 하고, 체통은 내다 버린 것이냐? 창피하게 말이야.""그러게 내가 왜 우리 시만자 아씨의 기분을 건드려서는!" 송석석이 두 볼에 홍조를 띠며 해맑게 웃었다. "그래서 우리 시만자 아씨, 이제 저를 용서해 주시겠나이까?""애초에 진짜 화난 것도 아니었다. 가자, 공방에 가서 가의나 찾아보자." 시만자는 그녀의 팔을 힘껏 꼬집고는 몽동이를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뭘 그리 웃는 게냐? 그러다 턱 빠지겠다!"몽동이는 눈물을 닦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우스워 죽겠다. 완전 원숭이 같구나."송석석과 시만자는 몽동이를 신경 쓰지 않고 정자를 나섰다.시만자는 뒤에서 송석석의 엉덩이를 발로 툭 차고는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망할 놈."그러자 송석석은 뒤돌아 귀여운 얼굴을 찡그리며 장난쳤다."그래도 내 방도가 먹히지 않았느냐?"시만자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문득 몽동이의 말이 떠올랐는지 이내 서늘해지더니 눈가가 붉어지며 속이 쓰려왔다. 이렇게 즐겁게 떠드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소진 소주방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앞문에는 여전히 십수 명의 백성들이 모여 욕설을 퍼붓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문에 돌과 헌 신발을 던지고 오물을 뿌리는 중이었다. 송석석은 들어가자마자 이 부근을 살피던 대둔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는 이 씨 부인이 보낸 사람이었다. 대둔자가 말하기를 한두 시간 간격으로 사람이 교체되는데 그들 중 백성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시끄럽게 하러 온 사람도 보인다고 했다.대둔자는 백성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편청.손마마가 차를 준비하자마자 가의는 벌컥벌컥 마셔 거의 한 주전자나 마셔버렸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올까 두려워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손마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말하였다."며칠 전엔 그래도 열심히 일했으니 내가 국수라도 한 그릇 끓여 주지.""고맙소."가의는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손마마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눈은 호두처럼 부어 있어 원래 초췌했던 얼굴이 더욱 처량해 보였다."전당할 수 있는 건 다 전당해서 빚을 갚았다." 그녀의 눈빛은 점차 잠잠해졌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허나 내가 평양후부에서 도대체 무슨 악행을 저질렀다고 그러는 것이냐? 시어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서방님도 나를 싫어해서 나에겐 아무런 실권도 없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한 달 중 스무날은 공주부에서 지냈다.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고가가 무너져 버려 천민 신분이 되었지. 후부에서 나는 계속 참고 또 참아왔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괴로워도 감히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눈물은 점차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그 조씨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반대할 자격도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신경 썼을지도 모른다. 전소환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났었다. 송석석,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넌 자업자득이라 생각할 것이겠지. 전소환이 처음에 마음에 둔 사람은 바로 사여묵이니 말이다. 그렇다. 이건 전부 내 업보다."그녀는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보였다."내가 전소환을 때리고 욕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자초한 일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천박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일은 노부인도 알고 계셔서 노부인께서도 그녀에게 많은 벌을 주셨다.""허나 조씨는 나를 한 번도 적대하지 않았고 집에 들어온 뒤로도 늘 얌전하게 지냈다. 나를 보면 늘 공손히 부인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만약 조씨의 체면을 보
시만자는 이 가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나쁘기도 나빴고, 심지어는 어리석기도 했다. 아마 그녀의 어리석음은 그녀의 어머니인 사온이 살아있을 때 이미 뚜렷하게 드러난 것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온이 그렇게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한 일을 왜 그녀에게는 아예 알려주지 않았겠는가?이 생각에 시만자가 무심코 물었다.“네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그건 왜 묻는 것이냐?”가의는 즉시 경계심을 드러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나한테 누명을 씌우고 싶은 것이냐? 그렇다면 생각도 하지 말 거라.”가의가 마치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는 모습에 시만자는 더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았고 대신 그녀의 집안 시녀들에 대해 물었다.가의는 시녀들에겐 문제가 없다고 단언하며 모두 그녀의 충실한 하인들이라고 답했다.“나는 쫓겨났지만 그 아이들은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후부에 있으면 적어도 박대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부인은 관대하신 분이니 굳이 나와 함께 고생할 필요 없겠지.”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 “전소환이 군주님을 해치려 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 없으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약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전소환은 감히 그러지 못할 것이다.”가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매사 나에게 의지하며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그랬을 리가.”“해칠 용기가 없는데 밀고를 했단 말입니까?”가의는 잠시 멈칫했지만 본능적으로 전소환을 변호했다.“아마도 들키는 게 두려워서 그랬던 거겠지. 전소환은 단지 설사약만 썼을 뿐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으니.”“어쩜 아량이 그리도 넓은 게냐.”시만자가 비꼬듯 말했다.그러자 가의는 그저 고개만 홱 돌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석석은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자손 문제가 걸린 일인데 후부에서는 왜 더욱 철저히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가의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노부인은 병에 걸렸고 수씨도 곧 죽을 것처럼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가의는 수년간 수씨와 얽혔던 은혜와 원한을 떠올렸다.수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는 깨달았다. 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듯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수씨가 그녀를 화나게 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그녀의 잘못이 더 컸건만 가의는 매번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사실 그녀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효성스럽고 너그러웠으며 후작을 위해 장남을 낳았고, 심지어는 수년간 후부의 살림도 총괄했지. 작년에 유산하지 않았더라면 몸 상태가 이렇게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 유산을 했단 말이냐?” 시만자가 물었다.“그렇다. 그녀는 원래 체질이 좋지 않았다. 의원이 임신은 피하라고 당부했는데 하필 그 시기에 또 아이를 가졌던 것이다. 태아가 선천적으로 약해 결국 지키지 못했고 유산 이후 몸이 더 상하게 되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송석석은 문득 노 집사가 풍 집사에게 물었을 때 풍 집사가 이런 일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그저 그녀가 둘째 아이를 낳을 때 병을 얻었다고만 말한 것을 들었다. 즉, 풍 집사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 집사에게 일부만 전한 것이 분명했다.시만자는 속으로 탄식하며 수씨는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다시금 믿었다. 악독하고 깐깐한 가의조차 그녀를 좋게 평가한다면 그건 진심일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 총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이를 낳고 몸이 망가졌으니,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시만자가 다시 물었다.“정말 하인을 죽인 적은 없는 것이냐?”가의는 억울한 표정으로 답했다.“때리고 꾸짖은 적은 있어도 죽인 적은 없다. 허나 노부인이 싫어해서 자주 그런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 곁에는 대부분 내 지참금으로 데려온 사람들 아니겠느냐? 내가 굳이 내 사람에게 그럴 이유가 뭐 있겠느냐?”마차로 돌아가는 길에 시만자는 가의를 내쫓겠다는 말을 더는 꺼내지 않았다.송석석이 말했다.“우리가 의
풍 집사와 대화를 끝낸 노 집사는 가의가 실제로 하인을 학대하고 구타한 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풍 집사가 수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수씨는 평양후부에서 매우 인망이 높았으며 가의가 아니었더라면 정실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홍시도 돌아왔지만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그녀는 평양후부의 하인들에게도 물었지만 그들은 철저히 침묵했다.단 가의에게 학대당했다고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 외에는 누구도 가의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이로써 평양후부의 하인 관리와 내부 사생활 보호가 철저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그러니 오히려 몇몇 사람이 의도적으로 가의를 비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양후부에서는 별다른 단서를 못 찾았지만 이번 외부에서 퍼진 유언비어는 몇몇 거자들이 공방을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시작된 것이었어요.”“거자들이라니? 그들이 누구란 말이냐?”“조사해 보니 모두 제상서의 제자들이었습니다.”“제상서?”시만자는 한동안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네, 이부상서이자 황후의 부친이다.”“그 사람이구나.” 송석석이 말하고 나서야 기억이 난 시만자는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근데 왜 그런 짓을 한 거지?”송석석이 담담히 말했다.“여인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길을 열어주는 일은 원래 황후의 일이지 않더냐.”“허나 황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난받기 딱 좋은 일에 황후가 왜 나선단 말이냐?”“지금은 비난받기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방도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야.그렇게 되면 내가 북명왕비로서 황후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지.”홍시가 동의하며 말했다.“맞습니다. 황후는 가만히 있어도 국모로서 백성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만약 왕비가 나서서 이런 일을 성공시킨다면 황후의 위상이 흔들릴 테니까요.”시만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그럼 그냥 지지한다고 하면 되지 않더냐!”“지금 황후는 태자가 정해지기 전이라 비난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본인은 아무것도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서백부에 도착했다. 시만자의 신분을 아는 덕분에 밤늦은 시간임에도 문이 열렸다. 하지만 최씨가 병을 앓고 있는 관계로 하인은 왕준과 남희에게 이를 알리러 갔다.소식을 들은 왕준과 남희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늦은 밤에 시 소저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준이 먼저 물었다.“남자를 데려왔다고? 그 남자는 누구인가?" 문지기가 답했다."전혀 본 적이 없는 이였고, 태도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의자를 두 개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습니다. 입으로는 험한 말을 뱉으며 정말 너무한다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왕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분란을 일으키러 온 건가? 혹시 왕청여가 화를 산 사람인가?"그는 최근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누군가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면 첫 번째로 왕청여가 일을 벌인 게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아닐 겁니다." 문지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이 욕한 대상은 노부인과…… 돌아가신 선대대인 이었습니다."왕준은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기에 백작이라 불리지 못했다. 그래서 평서백부의 하인들은 그를 선대대인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왕준은 효심이 매우 깊은 아들인지라,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시만자가 데려온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가자, 내가 직접 나가서 누군지 보겠다. 평서백부에 와서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무슨 배짱을 가진 놈인가 보자!"왕준은 죽은 자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이를 욕하는 것은 성격이 비열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만이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에 차 남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나갔다.한편 왕이장이 의자를 발로 차는 소란이 있자, 다른 하인이 이를 최씨에게 보고하러 갔다. 모두가 이런 문제를 진정시킬 사람은 오직 최씨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왕준도 관직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이 대게
심청화가 급하게 그를 따라 나서서 붙잡자, 왕이장은 걸어가며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심청화는 왕이장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마음속에 무언가 괴로움이 있어도 그는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저 다른 곳으로 떠나 은둔하는 것을 선택했다."이건 우리가 추측한 것일 뿐이야.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왕이장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제 술을 마시러 갈 겁니다. 마침 지금 가을바람도 불고 날씨도 시원한데, 미인과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시만자가 나서서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가자. 내가 함께 마셔줄게."시만자도 지금이 되어서야 그가 사실 첩의 아들이 아니라 평서백부인의 친아들이며, 왕표와 왕청여와 같은 친남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왕이장은 시만자가 따라오는 것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는 시만자에게 말했다."내가 가려는 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시만자는 막무가내로 그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술값은 내가 계산해줄게."하지만 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태도가 날카롭고 신랄하게 변한 것이다."돈 있어. 따라오지 마. 정말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냐? 정말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된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자꾸만 살려준 은혜를 갚으려 해서 그랬던 거야. 너희 여자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 스스로 얼마나 귀찮은지조차 모르잖아."시만자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여자들만 귀찮아? 남자들은 안 귀찮고?"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왕이장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다 귀찮아. 똑같이 귀찮아."시만자는 그의 손을 계속 잡아끌며 마구간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말타러 가자. 남자도 여자도 보지 않으면 되잖아.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데. 바람 맞으며 말을 타면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안 간다고!"“가자니까!”시만자는 웃음을 거두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말 타러 가지 않으면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네가 나랑 같이 가야 해. 나도
염선생과 노 집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이 일이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심청화의 말에 따르면, 사부님께서 처음 조사한 바로는 왕전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했었다. 다만 몸이 상해 이미 건강이 나빠진 탓에, 진성의 많은 명의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서 결국 어느 사찰로 보냈다는 것이다.이 점은 왕전이 이 아이에게 부성애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막내아들은 대개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하지만 노 집사와 평서백부의 몇몇 노관리와 노집사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왕전은 죽은 그 아이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태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냉대했다는 것이다.그들은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지금의 왕이장이 옛날 그 당시에는 왕교여라고 불렸다. 때는 할아버지의 생신 날, 할아버지는 그를 직접 안고 생신 연회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정정하게 걸으실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일 이후, 왕교여가 할아버지를 피곤하게 했다는 이유로 왕전은 그를 끌어내 손바닥을 열 대나 맞는 벌을 내렸다.이 일은 다른 이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하인들 중 일부가 목격했다고 한다.또 다른 예로, 할아버지가 왕교여를 데리고 사냥을 갔을 때 흰 여우를 잡아 여우 가죽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가죽은 셋째인 왕청여가 입고 있었다.그 외에도 왕전이 왕교여에게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는 하인들 사이에서 여러 번 회자되었다. 노 집사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들도 이를 보았다고 말했다.당시 분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저택에서 생활했다. 왕전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조차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또한 왕교여의 병을 치료할 때 당시 의원은 모두 그의 할아버지가 초빙한 명의들이었다. 그렇게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약재가 바뀌었는데, 왕전은 약을 달이는 하녀나 하인들에게
하지만 그녀는 순간 집사의 보고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매각한 점포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으며, 그 가격 또한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세보다 10~20% 더 높은 가격이었다.그녀는 집안을 관리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점포 거래를 여러 번 해보았다. 거래는 대개 시세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한두 건 정도 시세를 약간 웃도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 매각한 모든 점포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거래되니 매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자신이 점포를 매각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급히 은자가 필요한 줄로 여겨 일부러 높은 가격에 매입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집사에게 매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계약서에 써 있는 매수인의 이름이 고효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북명황실에 고효풍이라는 이름의 집사가 있느냐?" 최씨가 집사에게 물었다."들어본 적 없습니다.""그럼 이 매수인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그녀의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세보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 매수하다니, 혹시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거래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공식 문서를 통해 등기되었고, 또한 증인이 보증한 합법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어 보였다."됐다.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남은 점포는 더 이상 팔지 마라. 어머니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그녀거 집사에게 말했다.점포를 매각하는 일은 그녀가 노부인 몰래 진행한 것으로, 심지어 왕준이나 남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안일은 관리하지 않으니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이를 알게 되더라도 나중에 이유를 설명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이 일은 그녀만을 위해 진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수인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송석석이 그녀를
홍이의 말에 왕청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대답했다.“하지만… 내 서방님은 출세를 못하잖아. 가서 계급도 달지 못한 병사를 한다는데.. 그럼 내 체면은 어떡하라고? 난 내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거야. 그때 당시 송석석이 내 서방과 이혼할 땐 어명까지 내려졌잖아. 그런데 난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거냐고.”홍이는 이 모든 게 왕청여가 자초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각자 다른 선택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북명 왕비님보다 못한 사람도 있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한 건 아닙니다.”왕청여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왜 예전에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냐?”“제가 얘기를 해도 아가씨께서는 제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문발을 내린 홍이가 마부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이만 출발합시다.”마차 안에 멍하니 앉아있던 왕청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녀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불안했다.‘송석석은 한 번 이혼을 하고도 외모가 수려하고 나라에 큰 공까지 세운 서방을 만날 수 있는데 난 왜 안 되는 걸까?’이런 생각에 왕청여는 홍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홍이야, 설마 나중에 전북망 그 사람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일은 절대 없겠지?”홍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아가씨,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그분은 나중에 다시 장군님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평생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결국 장군부까지 잃을 수도 있겠죠.”“그 사람 능력으로 다시 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산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예물마저 다 탕진하고 결국 장군부까지 빼앗겨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도 있어. 그럼 내 인생은 정말 망가지는 거야. 내
시만자는 오늘 계속 방씨 가문에 있었다. 오수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약왕당의 청작을 불러서 방씨 가문으로 같이 간 것이다.저녁이 될 때까지 방씨 가문에 있었던 시만자는 방씨 가문 사람들을 통해 오늘 편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천허의 부인은 이 사실을 절대 오수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도 모자라 낙태까지 하다니. 방시원은 이제 더 이상 왕청여의 서방이 아니지만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기에 방시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외부에 방시원이 잠자리에 약해서 왕청여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남발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전장에 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이와 반대로 왕청여가 태생부터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박한 여자라는 비판도 무성했으며 노세진을 뻔뻔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씨 가문에서 착한 마음으로 노세진을 거둬줬는데 노세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노세진과 왕청여는 천벌 받아 마땅한 나쁜 놈들이고 방시원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엮였다는 결론이 내렸다. 반면, 전북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씨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전북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왕청여와 이혼한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밤, 함께 황실로 돌아온 시만자와 송석석은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얘기해주다가 이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전에는 구경 삼아 지켜보던 일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시만자와 송석석도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한편, 현이는 오늘 밤에도 무술을 연습하러 찾아왔고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현이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약왕당으로 가서 홍작을 모셔왔다. 다행히 이마의 상처가 깊지 않았고 신속적으로 지혈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고열을 앓고 있었던 최씨는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화까지 낸 탓에 새까만 피를 왈칵 토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최씨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석석이 아무리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의원님, 상황은 좀 어떤가요?”홍작이 최씨에게 진맥 검사를 마치자 송석석이 물었고 홍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인께서 고열을 며칠이나 앓으셨는데 조금 전에 등을 확인해보니 폐에 문제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화병 때문에 간에도 어혈이 생겼습니다. 전에 복용하시던 약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극약 처방으로 간과 폐를 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은 몸조리를 통해 천천히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과로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말을 하던 홍작은 송석석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간에 어혈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늘 화병이 잠재되어 있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에 어떤 일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쌓아 두면 나중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은 최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왕표가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안 사람들까지 엮이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일단 약을 좀 복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홍작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송석석은 밖으로 나와 순방영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이내 순방영 사람들까지 떠났고 송석석은 돌아선 순간, 기둥에 가까스로 기댄 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왕청여를 발견하게 되었다.왕청여는 다음 순간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으로 송석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북명 왕비님, 제가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