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 다 끝나면 연락해. 나도 안평으로 가야 하니까.”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며 대화를 끝냈다.차우미는 너무 황당하고 혼란스러워서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오늘 밤에 안평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밤에 돌아가도 되는데 왜 굳이 내일 나와 같이 간다고 하는 거지? 아직도 나더러 간병하라는 거야?'한마디만 던지고 안으로 들어가는 나상준의 뒷모습을 보며 차우미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나상준은 절대 차우미의 간병을 받으려고 그녀와 같이 안평에 갈 사람이 아니다.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대체 왜 저러는 거지?’차우미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나상준은 들어가자마자 사라졌는데 시간이 늦어서 휴식하고 싶은 듯했다.차우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봤는데 10시 30분이었다. 호텔까지 가려면 새벽이 될 거라서 그녀는 지체하지 않았다.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호텔로 가기 위해 캐리어 가지러 들어갔다.나예은이 집으로 갔기에 차우미도 이제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 호텔로 가려는 것이다.그녀가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위층에서 캐리어 바퀴가 굴리는 소리가 났는데 조용한 밤에 엄청 크게 들렸다.차우미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위층을 보니 나상준이 그녀의 캐리어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설마 나를 데려다주려는 건가?’한 손에는 캐리어를 번쩍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차 키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차우미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나상준의 다친 손이 걱정되어 차우미는 서둘러 올라가며 말했다.“내가 할게. 택시 부르면 되니까 상준 씨는 일찍 쉬어.”차우미는 곧바로 그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계단 조심해.”전에는 절대 들어볼 수 없었던 부드러움과 세심한 배려에 차우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불빛 아래에서 눈을 살짝 내리깔고 계단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보였는데 짙고 긴 속눈썹에 가려진 눈매는 그의 속마음을 전혀 엿볼 수 없었다.그의 옆모습은
차우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 나상준은 차 키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내 손이 걱정되면 당신이 운전해. 예전에 당신이 타던 차니까 익숙하지.”차우미는 눈앞에 있는 아우디 차 키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차는 확실히 그녀가 예전에 계속 타고 다니던 차인데 하얀색이고 이 집에서 제일 저렴한 차였고 당연히 익숙하성우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 휴대폰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했다.차우미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오늘 밤 나상준의 반응이 모두 생소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차 키에는 그가 손수 만든 안전을 기원하는 나무 재질의 조각품이 그대로 달려 있었는데 그 아래에 달린 빨간 액세서리가 밤하늘 아래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순간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그래, 알았어.”시간이 너무 늦은 지금 당장 마음속의 수많은 의심을 해결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고 나상준이 회사에 일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손을 다친 나상준이 운전하다가 더 심각해질까 봐 차우미는 자기가 운전하기로 했다.차 키를 건네받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그는 처음으로 차우미가 운전하는 차에 타는 거였다. 아우디는 차우미가 출근하거나 평소 외출할 때 타던 거여서 내부 설정 등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하였다. 비록 이혼하고 아우디 차를 만지지 않은 시간이 몇 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핸들을 잡는 순간 조금 낯설었다. 이건 시간이 가져다 주는 필연이다.하지만 시동을 거는 순간 낯선 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차우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핸들을 돌리며 별장을 나갔다.나상준은 조수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차우미의 손을 바라보았는데 밤하늘의 가로등이 가늘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따뜻함으로 감싸주는 듯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회사로 가본 적이 있어서 곧바로 회사로 향했는데 도착한 다음 내려서 택시 타고 호텔에 가려고 했다.호텔 방은 아직 퇴실하
차우미는 허영우에게 비용은 자신이 부담할 테니 나상준의 생활까지 돌봐줄 간병인을 찾아주라고 부탁하려 했다.그녀는 자기가 비용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전화 연결음을 들으며 그녀는 출발하지 않고 차를 옆에 주차한 채 회사 안에서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나상준의 손이 더 심각해질까 봐 걱정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전화가 연결되면서 허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허 비서님, 안녕하세요. 상준 씨가 조금 전에 처리할 일이 있다고 회사에 들어갔어요. 손이 아프다고 했는데 허 비서님 혹시 지금 회사에 계시면 심각한지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회사에 안 계시면 상준 씨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아보고 그쪽으로 전문 간병인을 찾아봐 줘요. 그리고 상준 씨가 다친 건 저 때문이어서 간병인 비용이 나오면 알려주세요. 제가 부담할 거예요.”차우미는 허영우에게 모든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의 업무 능력은 모두 인정한다.허영우는 차우미의 말을 듣고 그의 앞에서 평온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저 지금 회사에 있어요. 마침, 대표님께 서류 가져가는 길인데 바로 가서 확인할게요.”“네, 그러면 부탁해요.”“별말씀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허영우는 전화를 끊고 앞에서 가다가 걸음을 멈춘 사람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손이 아프다고 하셨다고 상태를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 전문 간병인을 찾아드리라고 하셨어요.”어젯밤에 손을 다치고 오늘 밤에 일하러 나온 나상준의 의도를 허영우는 진작에 알아챘는데 바로 일부러 차우미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오랜 세월 동안 나상준 옆에 있으면서 그가 이토록 한 여자를 대하는 건 처음이었다.그렇다, 나상준은 차우미에 대해 진심이다.차우미에게 손이 아프다고 한 것도 아마 나상준의 작전일 것이다.사실이든, 거짓이든 허영우는 차우미의 말을 그대로 나상준에게 전달하고 또 나상준이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된다.나상준이 대
허영우는 후속 업무에 대한 지시를 받고는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나상준이 이메일을 클릭하여 최근 업무 리포트를 확인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는데 화면에 하성우 이름을 보더니 마음속으로 역시 며칠을 못 버틴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왜.”그는 리포트를 보며 전화를 받았는데 반대편의 하성우는 여전히 감정 기복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청주에 꼬셔오더니 어떻게 됐어?”하성우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미롭게 나상준의 감정 상태를 물었다.나상준은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가 분명 자기를 놀리려는 것임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리포트에 있는 데이터를 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듯했다.하성우는 휴대폰을 들고 두 팔을 벌린 채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는데 아주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그는 며칠 동안 다른 나무 조각가들과 놀러 다녔는데 오늘 오후에 헤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이제야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워낙 오후에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상준에게 전화해서 잘 되고 있는지 친구의 감정을 관심하려고 했지만, 회사 일 때문에 지금까지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다.겨우 일이 끝나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고 나상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성우는 며칠 동안 참았던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기다렸다.“...”그런데 휴대폰에서 곧바로 연결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하성우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 휴대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지금 내 전화를 일부러 끊은 거야? 설마 아니겠지? 실수로 끊어졌을 거야. 얼마 만에 전화하는 건데 이렇게 무정하게 끊을 수는 없을 거야.’하성우는 나상준이 분명 휴대폰을 잘못 건드려서 실수로 끊어진 거라고 믿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성우는 여전히 담담한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여가현이라고 알지? 며칠 동안 너의 근황을 조사하고 있어. 대체 뭘 잘못해서 여가현에게 조사를 당하는 거야? 어쨌든 변호사이고 이 바닥에서 몇 년 동안 일해서 차우미 씨보다는 더 예민해.”하성우는 비록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그는 여가현이 온이샘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상준에게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상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더니 상관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조사하라고 해.”하성우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하긴, 조사해서 네가 어떤 사람이고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여가현이 너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이미지를 세탁하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너한테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잖아. 그래도 너니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지, 나는 절대 안 돼.”하성우는 나상준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주제 파악도 잘했다.나상준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그만해.”“뭘 그만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네.”하성우는 나성준의 무의식적으로 던진 한마디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상준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나상준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듯 말했다.“나연이가 옆에 있을 때 잘해.”어떤 말은 나상준도 직설적으로 할 수 없었다.그는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상대가 하성우라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게다가 이번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다.“...”하성우는 바로 굳어버렸다.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 나상준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불통이 자기한테로 튕길 줄을 생각도 못 했다.하성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해지자 나상준이 말했다.“나중에 또
나상준의 회사에서 멀지 않아서 20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차우미는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방 안은 청소를 해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차우미는 차 키와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캐리어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욕실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더니 침대에 앉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때는 이미 매우 늦은 자정 12시 30분이었다.차우미는 오래 전부터 많이 피곤한 걸 애써 참고 있었는데 시간을 확인하자 참았던 피로가 순식간에 확 풀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하품하고, 휴대폰을 머릿장에 올려놓고 점등한 다음 바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점등하는 순간부터 방 안에 고요한 밤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우미는 곧바로 꿈속으로 들어갔다.다만 잠들기 전에 그녀의 눈앞에는 오늘 밤 나상준이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을 할 때의 신중하고 담담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그의 눈빛 속에 많은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서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청주의 밤은 깊어졌고 도시 전체가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도시의 혼잡함과 차들의 경적 그리고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새벽 시간이 되자 모두 사라졌다.같은 시각 스카이빌리지 서재에서 온이샘은 안경을 벗고 의자에 기대어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그는 서재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줄곧 일을 했다.겨우 일를 끝내고 눈을 감았는데 조금 지나자, 온몸의 피곤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눈을 뜨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니 차우미와의 대화창이 나타났다.차우미는 그가 메시지를 보낸 다음 답장을 했는데 비록 아주 간단한 세 글자였지만 온이샘은 만족했다.온이샘은 다시 한번 차우미의 답장을 확인하고는 위로 올려 서로의 대화들을 훑어보았는데 마음이 두근거렸고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주말이 지났으니, 내일은 그 아이도 학교에
차우미는 온이샘에게 할 일이 끝났다고 아주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냈었다.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온이샘이 오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대화창을 누르고 답변했다.[호텔에 있어.]윙윙.휴대폰 진동소리였는데 또 온이샘의 메시지가 왔다.[알았어. 호텔에서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온이샘이 오겠다는 말에 차우미는 깜짝 놀랐다.‘선배가 여기로 온다고?’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창밖의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고 청주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여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찌그리더니 다시 온이샘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그녀는 워낙 온이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짐을 정리한 다음 아침 먹으러 가려고 했다.그런데 온이샘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답변을 보내고 호텔까지 온다고 할 줄을 몰랐다.차우미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메시지를 보내고 차우미는 짐을 정리하면서 온이샘을 기다리기로 했다.스카이빌리지에서 온이샘은 7시에 강서흔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강서흔이 이른 아침에 온이샘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가 청주에 아직 있으면 만나서 차우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강서흔의 말투에서 조금 다급하고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강서흔이 정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직 청주에 있다고 했는데 현재 차우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어서 언제 만날지는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온이샘은 강서흔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차우미와 식사하기로 한 것까지 모두 말했다.그런데 온이샘의 말을 듣고 강서흔은 더 다급해졌다.‘기다리면 어떡해? 주동적으로 연락해야지.’온이샘의 성격은 온화하고 횡포하지 않기에 차우미를 좋아하더라도 항상 차우미를 존중하고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강서흔은 그런 온이샘을 답답해하며 오늘 무조건 만나야 하니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확정되면 알려달라고 했다.그는 이런 일은 얼굴 보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우미는 스카이빌리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거기에서 호텔까지 거리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온이샘이 스카이빌리지에서 출발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 놓고 짐을 준비했다.그녀가 모든 짐을 챙겼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익숙한 전화벨 소리에 차우미는 캐리어를 한편에 놓고 손잡이를 거둔 다음 휴대폰을 들었다.휴대폰에서 여가현이라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차우미는 온이샘이 도착했다는 전화인 줄 알았는데 여가현인 것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 전화를 받았다.“가현아, 무슨 일이야?.”“이틀 동안 괜찮았어? 나상준 씨가 괴롭히지 않았어? 너 다친 데 없지? 그 아이를 돌봐주는 건 이제 끝난 거야?”휴대폰 건너편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와 함께 여가현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그녀는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제야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월요일인데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있어?”월요일은 모두에게 바쁜 날이다.“흠! 사실은 어제 너에게 전화하려다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참았어. 어차피 나상준 씨도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에 감히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까. 만약 나상준 씨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직접 나씨 가문의 어르신을 찾아갈 거야. 그분은 자기 집안 사람이라고 감싸주는 분이 아니니까.”여가현의 말에 차우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상준은 이미 여가현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서 믿음이라고 전혀 없었다.차우미는 통유리창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침 햇살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야. 괴롭히거나 다치게 한 것 없어. 이틀 동안 나와 같이 나예은과 아주 잘 놀아 줬어. 상준 씨가 예은이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차우미도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 동안의 나상준은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던 다른 사람이었다.“쳇! 그 아이는 나씨 가문의 아이니 당연히 친절하게 잘해주겠지. 그런데 너는 다르잖아. 너는 이제 나상준 씨의 전처일 뿐이잖아.”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가현이와 서흔이가 연애할 때 서로 같이 놀면서 알게 되었어. 비록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계속 같이 어울리다 보니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가 되었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 도시에서 몇 개월 근무하다가 안평시로 돌아갔고 선배는 그때 학업과 일 때문에 많이 바빴는데 나중에 출국한 거로 알고 있어. 구체적으로 언제 출국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실이야. 그 후로 서로 같은 도시에 있지 않으면서 연락이 끊겼어. 그리고 나는 상준 씨를 알게 되었고 결혼을 했고 그 동안 선배와는 전혀 연락이 없었어.”예전에 차우미는 이런 일을 나상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오늘의 일 때문에 얘기해야 한다고 느꼈다.어떤 일과 말은 얘기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크다.차우미는 서로의 오해가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나상준은 한없이 평온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차우미의 눈에 담긴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현재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무런 불안도 위험 요소도 없었다.차우미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해서 말했다.“나 결혼한 3년 동안 선배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어. 선배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나도 선배와 연락한 적이 없었어. 우리가 다시 연락하고 만나게 된 건 이혼한 후 내가 안평으로 돌아간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야. 어느 날 선배가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서 다시 연락된 거야. 나 결혼 기간 동안 주변에 남성 친구도 없었고 선을 넘는 행동도 절대 하지 않았어.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이혼은 우리 자신의 문제이지 선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선배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차우미는 말하면서 나상준의 표정을 살폈는데 아무런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그녀는 나상준에게 숨기는 거 없이 모두 사실대로 말했고 자기를 믿어 주기를 바랐으며 또 모든 상황을 들은 후 온이샘에 대한 편견이 없이 예전과 같기를 바랐다.차우미는 두
나상준이 물었기에 차우미는 억지로 먹을 수 있는 척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그러자 나상준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남은 4개에서 2개를 더 가져가고 2개만 남겼다.한 그릇 가득하던 만두가 순식간에 외롭게 2개만 남겨졌다.차우미는 만두 그릇을 내려다보며 이제는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따라서 그녀의 미간도 펴졌고 긴장했던 표정도 사라졌다.“고마워.”손을 뻗어 나상준 앞으로 간 만두 그릇을 가져오려고 하자 나상준이 잽싸게 그릇을 차우미 앞에 가져다 놓았다.그녀는 손을 거두고 숟가락을 들어 몇 개 남지 않은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나상준이 전혀 싫어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차우미는 의외라고 생각했다.나상준은 약간의 결벽증이 있고 청결을 좋아했다.차우미도 그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 자신 그릇의 만두를 개의치 않아 하며 가져가는 모습에 약간 놀라웠다.차우미는 아마도 회성에서 일을 했던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대 나상준이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면서 조금 변한 것 같았다.그런 생각을 하며 차우미는 숟가락으로 만두를 먹었다.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식사했는데 공항은 여전히 활기차게 북적거렸다.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라디오 소리, 음악 소리가 끊기지 않고 울려 퍼졌다.나상준과 차우미는 정상적인 부부처럼, 연인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 같았다.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만두 3개를 먹는 건 금방이었는데 차우미가 다 먹었을 때 나상준은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다.차우미는 티슈를 가져다 입을 닦은 다음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현재 4시 전이었기에 아직 시간이 충분해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넣고 나상준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봤는데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했다.그녀는 오늘의 상황을 나상준과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나상준은 서두르지 않고 식사를 했는데 식사하는 일거수일투족에서 뿜어나오는 명문의 수양은 보기 좋았고, 보는 사람을 매료시켰다.나상준은 눈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지 마치 차우미를 당장이라도 삼킬 듯했다.차우미가 말했다.“알았어, 만두 가게로 가자.”차우미는 나상준이 밥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만두를 선택해서 조금 의외였다.만두 가게는 조금 더 앞에 있었는데 그들은 가게 앞에 도착해서 메뉴판을 확인하고는 차우미가 물었다.“만두가 여러 가지 있는데 어떤 걸로 할 거야?”“삼선 만두로 해.”차우미가 묻자마자 나상준은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대답했다.나상준의 대답에 차우미는 순간적으로 회성에서 나상준과 같이 만두를 먹을 때가 떠올랐는데 그때도 삼선 만두를 먹었었다.아마도 그때 먹었던 삼선 만두가 입맛에 맞아서 이번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택한 것 같았다.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이어서 주인을 보며 말했다.“삼선 만두 한 그릇 주세요. 그리고 파는 빼주세요.”“네. 5000원이에요.”“두 그릇 주세요.”차우미가 계산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나상준이 말했다.차우미는 동작을 멈추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다.그가 또 주인에게 말했다.“한 그릇은 그대로 주시고 한 그릇은 파를 빼주세요.”그의 말을 듣는 순간 차우미는 그의 뜻을 알아챘다.“상준 씨, 나는 점심을 먹었어.”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조금 더 먹어.”차우미가 살짝 멈칫하고 말했다.“점심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도 배가 불러.”차우미는 12시에 점심을 먹고 이제 세 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세 시간 동안 줄곧 차 안에 앉아 있어서 전혀 소화되지 않았다.그녀는 정말로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가 없었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그럼 내가 먹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차우미는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보고 있지 않으면 같이 먹자는 거야?’나상준이 또 말했다.“네가 먹는 걸 보고 있으면 나 제대로 먹을 수 없어.”“...”나상준이 끝까지 삼선 만두 두 그릇을 시켜서 함께 먹자고 하는 바람에 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테이블 앞에 앉아 뜨거운 김이 모
이건 분명 자기는 모른다는 뜻이다.차우미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자리를 뜨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움찔하다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온이샘을 보고 말했다.“선배, 캐리어는...”“먼저 들어가. 캐리어는 내가 챙길 거니까 대기실에서 만나자.”차우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이샘이 먼저 차우미가 익숙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온이샘은 시종일관으로 차우미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불쾌감도 없었다.그리고 절대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었다.온이샘은 그런 차우미의 표정을 보며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가봐. 캐리어를 가지고 다니면 불편할 거니까 나한테 맡겨. 괜찮아.”이어서 또 무언가 생각하더니 눈을 지그시 뜨고 말했다.“아니면, 나도 같아 가?”이 말은 농담 같기도 하고 진심인 것 같기도 했다.진심인지, 농담인지 헷갈렸지만 그의 눈에 온통 차우미 뿐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차우미가 말했다.“선배, 우리 그냥 대기실에서 다시 만나자.”온이샘의 눈에는 상실감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알았어.”말을 마치고 온이샘은 캐리어를 가지고 진서원에게 말했다.“그 여행 가방도 저 주세요.”진서원은 줄곧 자기가 말할 자리가 아닌 걸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있는 듯 없는 듯 방관자로 옆에서 세 사람 지켜보다가 온이샘이 자기와 말하자 대답했다.“네.”여행 가방까지 건네받은 온이샘이 차우미를 보며 말했다.“가자.”차우미는 나상준과 함께 식사하러 갈 생각도 없고 자신의 짐을 온이샘에게 들게 할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 상황은 그녀의 생각대로 할 수가 없었다.“응, 가자.”두 사람은 나란히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나상준은 공항 입구의 유리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차 뒤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눈동자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였다.온이샘은 캐리어를 가지고 먼저 탑승수속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3시가 넘어서 인지 공항에는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밖에서 전화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차들도 끊임없이 들어와서 공항 입구까지 줄을 서 있었다.한마디로 엄청 시끄러웠다.그때 벤츠 차의 뒷부분에는 커다란 검은색 캐리어가 있었는데 진서원이 뒤에서 차우미의 여행용 가방을 들고 있었고 캐리어의 좌우로 두 명의 남자가 버티고 있었다.그들은 앞장서서 캐리어 바를 잡고 있었는데 서로 마주 보며 아무도 잡고 있는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깜짝 놀랐다.하지만 금방 뒤에 차량의 경적이 들려왔고 차우미는 곧바로 앞으로 가서 말했다.“내가 할게.”그렇다, 캐리어는 트롤리 바도 있고 바퀴도 달려 있어서 충분히 직접 할 수 있었다.차우미는 두 남자의 긴장된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손을 뻗어 캐리어를 잡으려 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차우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놓을 생각 없이 한 쪽씩 꽉 잡고 있었다.차우미는 골격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힘 있게 잡고 있는 두 남자의 손을 보며 허공에 뻗은 손을 어찌할지 몰랐다.다행히 차우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두 사람을 보았는데 아무도 차우미를 보지 않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두 남자의 눈빛이 너무나 평온해서 오히려 불안했다.차우미는 표정은 평온하지만 미소가 없는 온이샘을 보다가 또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의 나상준을 보다가 말했다.“상준 씨.”그렇다, 그녀는 온이샘이 아닌 나상준을 먼저 불렀다.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상준의 눈빛이 흔들렸는데 순식간에 깊은 곳에 있던 어두운 기운이 솟구쳤다.온이샘도 표정이 살짝 흠칫했는데 그는 나상준 눈빛의 변화를 분명 보았다.순식간에 너무 음산했다.차우미도 주변 기운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말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그녀가 나상준을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 진지했다.공항 주변은 북적거렸지만 지금 순간 세 사람은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번잡하고 뜨거운 바깥과 달리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욱더 조용해진 것 같았다.나상준은 여전히 부드러운 차우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비록 부드럽지만, 거리감이 느껴졌고 아무도 그녀의 마음속에 쉽게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그는 차우미의 명랑한 눈을 바라보았는데 여전히 푸른 산 아래 호수처럼 조용하고 안정적이고 맑았다.나상준은 그렇게 그녀의 얼굴과 눈매를 조용히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온이샘은 그동안 백미러로 줄곧 뒷좌석을 보고 있었다.온이샘은 차우미의 표정, 태도는 물론이고 나상준의 기분, 정서, 마음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었다.오후의 태양은 매우 강해서 거리에도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하지만 차들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다란 용처럼 청주시를 둘러쌌다.진서원은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신경을 썼는데 균등한 속도로 앞 차량과 언제나 안전거리를 유지했다.차 안에는 에어컨을 줄곧 켜고 있었기에 밖은 더워도 안은 조금 추운 것 같았는데 어찌 보면 적막한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진서원은 가끔 백미러로 나상준과 차우미도 보고 또 옆에 있는 온이샘도 바라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러다가 또 시선을 거두고 앞에 거리 상황을 보며 각별히 집중했다.그는 차 안의 분위기가 폭풍전야 같았다.나상준은 오랫동안 차우미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자, 시선을 돌려 앞 좌석에서 백미러로 줄곧 뒷좌석을 보고 있는 온이샘을 보았다.백미러에는 그도 있고 차우미가 있고 또 온이샘도 있었다.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는데 온이샘은 살짝 흠칫하고는 백미러로 계속 나상준을 보았는데 그의 눈은 깊고 날카롭고 위압적이며 강렬했다.온이샘은 피하지도, 움찔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나상준을 마주 보다가 한참 지나자, 시선을 돌려 밖의 풍경을 바라봤는데 모든 것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웠다.나상준은 온이샘이 시선을 돌리자,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더니 눈을 감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지만 마치 보지 못한 듯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그 뒤로
“점심은 먹었어?”진서원은 차를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게 운전했지만, 핸들을 잡은 그의 손은 차 안의 분위기 때문에 긴장 상태였다.진서원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지 운전하는 내내 신경을 세우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이런 느낌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처음이었기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전하려고 노력했다.그런데 조금 전에 뒷좌석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더니 팽팽하게 긴장했던 신경 끈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백미러로 차우미 옆에 앉아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나상준은 깊은 밤과 같이 바람도 비도 없이 너무 조용했는데 조금 전의 나상준과 너무 달랐다.마치 오랫동안 쌓였던 구름이 폭풍우를 준비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그 순간, 언제 그랬는지 싶었다.진서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들을 꼭 잡고 더 안정적으로 운전했다.파도는 잔잔할수록 더 무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차우미는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상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나상준을 바라봤다.그녀는 나상준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할 줄을 몰랐기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차우미는 곧 알아챘다. 현재 시각은 2시가 넘었고 그녀는 당연히 식사했지만, 나상준은 아마 바빠서 점심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다.차우미가 물었다. “나는 먹었어. 상준 씨는 먹었어?”차우미의 대답을 듣고 진서원이 무의식적으로 백미러로 다시 나상준을 보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관심에 대답했다.“안 먹었어.”“...”진서원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나상준이 어찌나 놀랍고, 충격이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더 이상 뒷좌석을 보지 않았다.차우미는 예상은 했지만, 나상준의 대답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그래? 지금 2시가 넘어서 공항에 도착하면 3시가 넘을 거고 비행기 출발이 6시 5분이니 공항에서 간단히 식사할 시간이 될 거야."차우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녀는 사실 나상준이 왜 이렇게 빨리 왔는지 궁금했다
차우미의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은 친구에 대한 걱정이었는데 조금은 건성으로 보였다.나상준은 단 한 글자도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하지만 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차우미가 봤을 때 나상준의 기분이 엉망인 것 같았다.온이샘이 차우미와 같이 있었고 심지어 한 차에 탔기에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나씨 가문은 청주에서 뿌리가 깊다고 하지만 맨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나씨 가문의 가장인 이혜정은 절대 맨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국내에는 나씨 가문의 이혜정처럼 지혜를 감추고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과 가문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나씨 가문도, 온씨 가문도 그들 중 하나였다.처음에 차우미는 나씨 가문과 온씨 가문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 몰랐다.나상준과 결혼한 3년 동안 나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그녀는 예의를 갖춰 비즈니스도 해야 했는데 그때 나씨 가문과 온씨 가문이 사업상의 파트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서로 왕래가 있어서 낯선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예를 들어 필요한 장소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필요한 대화를 하는 사이였다.나상준은 초반에 온씨 가문을 알고 있었을 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온이샘과 차우미를 오해하면서 온씨 가문에 대해 알아봤을 것이다.대부분 상황에 대해 요해 했기에 필요한 예의는 갖춰야 했다.때문에 온이샘이 조금 전에 정중하게 물어봤을 때 나상준도 부드럽게 대답했을 것이다.온이샘은 분명 의도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는 사이이고 또 마침 같은 시간에 안평으로 가는 길이니 함께 가자고 했을 것이다.나상준 역시 예전의 오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고 예의를 갖춘 것이다.이 모든 것은 겉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현재 상황을
진서원은 캐리어와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뚜껑을 닫았다. 그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세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진서원은 온이샘을 보다가 또 그의 뒤에 서 있는 차우미를 보고 그다음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보다가 차우미 옆으로 가서 손짓했다.“사모님, 차에 타세요.”차우미는 왠지 나상준이 무슨 안 좋은 일을 벌일 것 같아 불안했는데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또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상준이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일들을 겪었기에 그의 판단력 역시 현명하고 날카로울 것이다.예전에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오해했지만 분명 그후에 충분한 조사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처럼 침착할 수가 없다.나상준은 사람들에서 쉽게 휘둘리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일도 쉽게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한다.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바로 진짜 나상준이다.진서원의 말에 차우미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뿌리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그리고 온이샘을 봤는데 그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표정에서 차우미는 이해와 따뜻함을 느꼈다.“타.”온이샘은 마치 진서원이 조금 전에 차우미에 대한 호칭을 듣지 못한 척, 진서원이 차우미를 향해 뻗은 손도 보지 못한 척하며 차우미에게 말했다.온이샘은 꿋꿋하게 다른 것에는 모두 관심을 끄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만 했다.차우미는 정서적으로 너무 안정적인 온이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응.”온이샘은 몸을 비켜서더니 차우미가 뒷좌석에 올라타자, 차 문을 닫아주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진서원은 그의 행동을 보고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운전석으로 올라탔다.이어서 차가 출발했는데 호텔 내부에 있던 분수대를 한 바퀴 돌아 도로로 나갔다.비록 호텔 문앞에서 잠깐의 지체가 있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하자마자 차우미는 시간부터 확인했는데 그녀가 초반에 계획했던 대로 2시가 조금 넘었다.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