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 나상준은 차 키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내 손이 걱정되면 당신이 운전해. 예전에 당신이 타던 차니까 익숙하지.”차우미는 눈앞에 있는 아우디 차 키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차는 확실히 그녀가 예전에 계속 타고 다니던 차인데 하얀색이고 이 집에서 제일 저렴한 차였고 당연히 익숙하성우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 휴대폰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했다.차우미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오늘 밤 나상준의 반응이 모두 생소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차 키에는 그가 손수 만든 안전을 기원하는 나무 재질의 조각품이 그대로 달려 있었는데 그 아래에 달린 빨간 액세서리가 밤하늘 아래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순간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그래, 알았어.”시간이 너무 늦은 지금 당장 마음속의 수많은 의심을 해결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고 나상준이 회사에 일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손을 다친 나상준이 운전하다가 더 심각해질까 봐 차우미는 자기가 운전하기로 했다.차 키를 건네받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그는 처음으로 차우미가 운전하는 차에 타는 거였다. 아우디는 차우미가 출근하거나 평소 외출할 때 타던 거여서 내부 설정 등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하였다. 비록 이혼하고 아우디 차를 만지지 않은 시간이 몇 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핸들을 잡는 순간 조금 낯설었다. 이건 시간이 가져다 주는 필연이다.하지만 시동을 거는 순간 낯선 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차우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핸들을 돌리며 별장을 나갔다.나상준은 조수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차우미의 손을 바라보았는데 밤하늘의 가로등이 가늘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따뜻함으로 감싸주는 듯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회사로 가본 적이 있어서 곧바로 회사로 향했는데 도착한 다음 내려서 택시 타고 호텔에 가려고 했다.호텔 방은 아직 퇴실하
차우미는 허영우에게 비용은 자신이 부담할 테니 나상준의 생활까지 돌봐줄 간병인을 찾아주라고 부탁하려 했다.그녀는 자기가 비용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전화 연결음을 들으며 그녀는 출발하지 않고 차를 옆에 주차한 채 회사 안에서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나상준의 손이 더 심각해질까 봐 걱정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전화가 연결되면서 허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허 비서님, 안녕하세요. 상준 씨가 조금 전에 처리할 일이 있다고 회사에 들어갔어요. 손이 아프다고 했는데 허 비서님 혹시 지금 회사에 계시면 심각한지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회사에 안 계시면 상준 씨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아보고 그쪽으로 전문 간병인을 찾아봐 줘요. 그리고 상준 씨가 다친 건 저 때문이어서 간병인 비용이 나오면 알려주세요. 제가 부담할 거예요.”차우미는 허영우에게 모든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의 업무 능력은 모두 인정한다.허영우는 차우미의 말을 듣고 그의 앞에서 평온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저 지금 회사에 있어요. 마침, 대표님께 서류 가져가는 길인데 바로 가서 확인할게요.”“네, 그러면 부탁해요.”“별말씀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허영우는 전화를 끊고 앞에서 가다가 걸음을 멈춘 사람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손이 아프다고 하셨다고 상태를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 전문 간병인을 찾아드리라고 하셨어요.”어젯밤에 손을 다치고 오늘 밤에 일하러 나온 나상준의 의도를 허영우는 진작에 알아챘는데 바로 일부러 차우미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오랜 세월 동안 나상준 옆에 있으면서 그가 이토록 한 여자를 대하는 건 처음이었다.그렇다, 나상준은 차우미에 대해 진심이다.차우미에게 손이 아프다고 한 것도 아마 나상준의 작전일 것이다.사실이든, 거짓이든 허영우는 차우미의 말을 그대로 나상준에게 전달하고 또 나상준이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된다.나상준이 대
허영우는 후속 업무에 대한 지시를 받고는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나상준이 이메일을 클릭하여 최근 업무 리포트를 확인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는데 화면에 하성우 이름을 보더니 마음속으로 역시 며칠을 못 버틴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왜.”그는 리포트를 보며 전화를 받았는데 반대편의 하성우는 여전히 감정 기복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청주에 꼬셔오더니 어떻게 됐어?”하성우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미롭게 나상준의 감정 상태를 물었다.나상준은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가 분명 자기를 놀리려는 것임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리포트에 있는 데이터를 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듯했다.하성우는 휴대폰을 들고 두 팔을 벌린 채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는데 아주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그는 며칠 동안 다른 나무 조각가들과 놀러 다녔는데 오늘 오후에 헤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이제야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워낙 오후에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상준에게 전화해서 잘 되고 있는지 친구의 감정을 관심하려고 했지만, 회사 일 때문에 지금까지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다.겨우 일이 끝나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고 나상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성우는 며칠 동안 참았던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기다렸다.“...”그런데 휴대폰에서 곧바로 연결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하성우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 휴대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지금 내 전화를 일부러 끊은 거야? 설마 아니겠지? 실수로 끊어졌을 거야. 얼마 만에 전화하는 건데 이렇게 무정하게 끊을 수는 없을 거야.’하성우는 나상준이 분명 휴대폰을 잘못 건드려서 실수로 끊어진 거라고 믿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성우는 여전히 담담한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여가현이라고 알지? 며칠 동안 너의 근황을 조사하고 있어. 대체 뭘 잘못해서 여가현에게 조사를 당하는 거야? 어쨌든 변호사이고 이 바닥에서 몇 년 동안 일해서 차우미 씨보다는 더 예민해.”하성우는 비록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그는 여가현이 온이샘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상준에게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상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더니 상관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조사하라고 해.”하성우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하긴, 조사해서 네가 어떤 사람이고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여가현이 너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이미지를 세탁하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너한테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잖아. 그래도 너니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지, 나는 절대 안 돼.”하성우는 나상준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주제 파악도 잘했다.나상준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그만해.”“뭘 그만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네.”하성우는 나성준의 무의식적으로 던진 한마디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상준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나상준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듯 말했다.“나연이가 옆에 있을 때 잘해.”어떤 말은 나상준도 직설적으로 할 수 없었다.그는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상대가 하성우라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게다가 이번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다.“...”하성우는 바로 굳어버렸다.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 나상준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불통이 자기한테로 튕길 줄을 생각도 못 했다.하성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해지자 나상준이 말했다.“나중에 또
나상준의 회사에서 멀지 않아서 20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차우미는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방 안은 청소를 해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차우미는 차 키와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캐리어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욕실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더니 침대에 앉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때는 이미 매우 늦은 자정 12시 30분이었다.차우미는 오래 전부터 많이 피곤한 걸 애써 참고 있었는데 시간을 확인하자 참았던 피로가 순식간에 확 풀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하품하고, 휴대폰을 머릿장에 올려놓고 점등한 다음 바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점등하는 순간부터 방 안에 고요한 밤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우미는 곧바로 꿈속으로 들어갔다.다만 잠들기 전에 그녀의 눈앞에는 오늘 밤 나상준이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을 할 때의 신중하고 담담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그의 눈빛 속에 많은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서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청주의 밤은 깊어졌고 도시 전체가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도시의 혼잡함과 차들의 경적 그리고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새벽 시간이 되자 모두 사라졌다.같은 시각 스카이빌리지 서재에서 온이샘은 안경을 벗고 의자에 기대어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그는 서재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줄곧 일을 했다.겨우 일를 끝내고 눈을 감았는데 조금 지나자, 온몸의 피곤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눈을 뜨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니 차우미와의 대화창이 나타났다.차우미는 그가 메시지를 보낸 다음 답장을 했는데 비록 아주 간단한 세 글자였지만 온이샘은 만족했다.온이샘은 다시 한번 차우미의 답장을 확인하고는 위로 올려 서로의 대화들을 훑어보았는데 마음이 두근거렸고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주말이 지났으니, 내일은 그 아이도 학교에
차우미는 온이샘에게 할 일이 끝났다고 아주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냈었다.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온이샘이 오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대화창을 누르고 답변했다.[호텔에 있어.]윙윙.휴대폰 진동소리였는데 또 온이샘의 메시지가 왔다.[알았어. 호텔에서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온이샘이 오겠다는 말에 차우미는 깜짝 놀랐다.‘선배가 여기로 온다고?’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창밖의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고 청주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여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찌그리더니 다시 온이샘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그녀는 워낙 온이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짐을 정리한 다음 아침 먹으러 가려고 했다.그런데 온이샘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답변을 보내고 호텔까지 온다고 할 줄을 몰랐다.차우미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메시지를 보내고 차우미는 짐을 정리하면서 온이샘을 기다리기로 했다.스카이빌리지에서 온이샘은 7시에 강서흔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강서흔이 이른 아침에 온이샘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가 청주에 아직 있으면 만나서 차우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강서흔의 말투에서 조금 다급하고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강서흔이 정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직 청주에 있다고 했는데 현재 차우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어서 언제 만날지는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온이샘은 강서흔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차우미와 식사하기로 한 것까지 모두 말했다.그런데 온이샘의 말을 듣고 강서흔은 더 다급해졌다.‘기다리면 어떡해? 주동적으로 연락해야지.’온이샘의 성격은 온화하고 횡포하지 않기에 차우미를 좋아하더라도 항상 차우미를 존중하고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강서흔은 그런 온이샘을 답답해하며 오늘 무조건 만나야 하니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확정되면 알려달라고 했다.그는 이런 일은 얼굴 보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우미는 스카이빌리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거기에서 호텔까지 거리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온이샘이 스카이빌리지에서 출발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 놓고 짐을 준비했다.그녀가 모든 짐을 챙겼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익숙한 전화벨 소리에 차우미는 캐리어를 한편에 놓고 손잡이를 거둔 다음 휴대폰을 들었다.휴대폰에서 여가현이라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차우미는 온이샘이 도착했다는 전화인 줄 알았는데 여가현인 것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 전화를 받았다.“가현아, 무슨 일이야?.”“이틀 동안 괜찮았어? 나상준 씨가 괴롭히지 않았어? 너 다친 데 없지? 그 아이를 돌봐주는 건 이제 끝난 거야?”휴대폰 건너편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와 함께 여가현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그녀는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제야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월요일인데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있어?”월요일은 모두에게 바쁜 날이다.“흠! 사실은 어제 너에게 전화하려다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참았어. 어차피 나상준 씨도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에 감히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까. 만약 나상준 씨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직접 나씨 가문의 어르신을 찾아갈 거야. 그분은 자기 집안 사람이라고 감싸주는 분이 아니니까.”여가현의 말에 차우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상준은 이미 여가현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서 믿음이라고 전혀 없었다.차우미는 통유리창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침 햇살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야. 괴롭히거나 다치게 한 것 없어. 이틀 동안 나와 같이 나예은과 아주 잘 놀아 줬어. 상준 씨가 예은이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차우미도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 동안의 나상준은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던 다른 사람이었다.“쳇! 그 아이는 나씨 가문의 아이니 당연히 친절하게 잘해주겠지. 그런데 너는 다르잖아. 너는 이제 나상준 씨의 전처일 뿐이잖아.”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여가현은 서류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사인을 하려다가 차우미의 말을 듣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할 말이라는 건 뭐야? 무슨 뜻이야? 해야 할 말이 뭔데? 그러니까 네 말은 이샘 선배가 고백하기 전에 네가 먼저 거절하겠다는 거야?”역시 차우미와 함께 자란 사람으로서 차우미의 간단하게 한 말에서 그 의도를 알아챘다.차우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응.”탁!여가현이 펜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거절한다고? 왜? 이틀 동안 나상준 씨가 또 무슨 말로 너를 꼬셨는데 이샘 선배를 거절한다는 거야? 차우미, 제발 멍청한 짓 하지 마!”여가현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여가현의 반응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이어서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뒀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현의 다급한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렸다.여가현이 말을 다 하고 잠깐 숨을 쉬는 사이에 차우미가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다 진지하게 말했다.“가현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휴대폰으로 차우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여가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애써 참고 심호흡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그래, 우선 진정하자.’차우미는 휴대폰 건너편이 조용해지고 거친 호흡 소리가 들리자, 여가현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가현아, 상준 씨랑 상관없이 나도 오랫동안 생각했어. 얼마 전에 선배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 이번에 청주에 와서 선배 어머니를 또 뵀었는데 너무너무 좋은 분이셔. 상준 씨의 어머니보다도 엄청 좋았어. 그분도 나를 예쁘게 봐주셨고 나도 선배 어머니가 너무 좋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이혼했고 선배의 가족과 배경은 너도 잘 알다시피 그런
진서원은 캐리어와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뚜껑을 닫았다. 그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세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진서원은 온이샘을 보다가 또 그의 뒤에 서 있는 차우미를 보고 그다음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보다가 차우미 옆으로 가서 손짓했다.“사모님, 차에 타세요.”차우미는 왠지 나상준이 무슨 안 좋은 일을 벌일 것 같아 불안했는데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또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상준이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일들을 겪었기에 그의 판단력 역시 현명하고 날카로울 것이다.예전에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오해했지만 분명 그후에 충분한 조사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처럼 침착할 수가 없다.나상준은 사람들에서 쉽게 휘둘리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일도 쉽게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한다.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바로 진짜 나상준이다.진서원의 말에 차우미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뿌리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그리고 온이샘을 봤는데 그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표정에서 차우미는 이해와 따뜻함을 느꼈다.“타.”온이샘은 마치 진서원이 조금 전에 차우미에 대한 호칭을 듣지 못한 척, 진서원이 차우미를 향해 뻗은 손도 보지 못한 척하며 차우미에게 말했다.온이샘은 꿋꿋하게 다른 것에는 모두 관심을 끄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만 했다.차우미는 정서적으로 너무 안정적인 온이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응.”온이샘은 몸을 비켜서더니 차우미가 뒷좌석에 올라타자, 차 문을 닫아주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진서원은 그의 행동을 보고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운전석으로 올라탔다.이어서 차가 출발했는데 호텔 내부에 있던 분수대를 한 바퀴 돌아 도로로 나갔다.비록 호텔 문앞에서 잠깐의 지체가 있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하자마자 차우미는 시간부터 확인했는데 그녀가 초반에 계획했던 대로 2시가 조금 넘었다.지금
차 안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어서 시원하던 공기가 차 문이 열리면서 더운 공기가 들어가 얽혀서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았다.열린 차 문 앞에 서 있는 온이샘은 시원하고 더운 공기가 어울린 공기를 마시며 어느새 주변의 번잡한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안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차우미가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여전히 냉정한 모습 그대로였다.온이샘이 먼저 몸을 약간 숙이고 말했다.“상준 씨, 안녕하세요. 우미가 그러는 데 두 사람 오늘 6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안평으로 간다면서요. 저도 마침 청주에서의 일이 끝나서 똑같은 항공편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차로 같이 공항으로 이동해도 되죠?”온이샘은 마치 서로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담담한 말투로 나성준에게 물었다.나상준은 손가락으로 서류를 넘겨보고 있다가 온이샘의 예의를 갖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차 안의 기온이 급하강 되는 것 같았다.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는데 길거리의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나상준의 서류를 넘기던 손가락도 온이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멈추었다.그 순간 나상준과 온이샘이 존재하는 세계와 그 외의 세계로 나누어진 것 같았다.온이샘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줄곧 차 안에 있는 나상준을 바라봤기에 그의 변화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순간 나상준으로부터 몰려오는 압박감은 주변을 감히 꼼짝하지 못하게 침묵에 빠뜨렸다.하지만 온이샘은 전혀 영향받지 않고 평소와 똑같이 평온하게 나상준의 대답을 기다렸다.온이샘은 나상준이 동의하든, 안 하든 모두 받아들일 것이다.잠시 멈췄던 시간이 나상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회복되었다.나상준은 고개를 들어 차 밖에서 허리를 살짝 굽히고 자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온이샘을 보며 말했다.“그렇게 하세요.”온이샘도 대답했다.“고마워요.”차우미는 온이샘의 뒤에서 따라 나왔기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그 때문에 온이샘에게 하려던 말을 못 했다.
차우미가 직원에게 말했다.“잠깐만요.”“네.”차우미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온이샘은 캐리어를 잡고 옆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사실 차우미의 휴대폰이 울리자마자 온이샘의 시선은 그녀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것을 줄곧 주시했다.온이샘의 키가 크고 각도와 시력이 좋았기에 그는 차우미 휴대폰에 뜬 이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나상준이었다.그 이름을 보는 순간 온이샘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상대방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자신의 휴대폰을 보는 줄도 모르고 전화 온 사람이 나상준인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호텔 밖으로 나가서 받았다.“여보세요.”“어디야?”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간결하고 선명하게 차우미의 귀에 들렸다.차우미는 호텔 밖의 차들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차가 보이지 않자,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지금 호텔 로비에 있어. 체크아웃 수속을 금방 마쳤어.”“그럼, 나와.”“뭐라고?”뚜뚜...나상준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반대편에서 전화를 끊은 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번 밖에 있는 차들을 둘러봤는데 그때 검은 벤츠가 가까이 와서 호텔 문 앞에 주차했다.차우미의 눈에는 충격과 불확실이 가득했다.‘벌써 왔다고?’처음에 나상준이 그녀에게 일이 끝나면 전화하라고 했을 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를 데리러 올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 차 키가 그녀에게 있어서 그럴 것 같다고 추측은 했었지만, 그냥 추측일 뿐 나상준의 성격상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부정했었다.나상준은 원래도 바쁜 사람인데 주말 이틀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기에 오늘은 엄청나게 바쁠 거라고 생각했다.차우미가 연락했을 때는 비록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상준은 예전 습관대로 서두르지 않고 출발 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공항 도착할 것이다.조금 전에 나상준의 전화가 들어올 때 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물어볼 뿐이지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차우미는 안평으로 돌아간 다음 다시 얘기할 시간을 찾으려고 했다.오늘 밤 안평으로 가기 위해 나상준도 공항에 올 것이고 그날 밤 레스토랑에서처럼 온이샘이 나상준을 보면 온이샘도 마음속으로 더 신중하게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한번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어떤 일은 여러 번 반복해서 보게 되면 거기에 대해서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결론을 내릴 거라고 믿었다.그리고 나상준이 온이샘과 자기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차우미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이혼했기에 그녀의 삶은 당연히 결혼했을 때와 달라질 것이다.때문에 차우미는 나상준이 오해를 하든, 화를 내든 자기의 삶을 충실히 계속할 것이다.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차우미 방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차우미가 먼저 고개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온이샘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방금 차우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온이샘 역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각자 자기의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차우미의 방에 도착했고 온이샘이 방에 있는 캐리어를 보며 물었다.“캐리어가 하나야?”말하면서 그는 주동적으로 캐리어를 들었다.차우미는 회성의 특산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사전에 산 것들은 이미 택배로 보냈기에 올 때의 짐 그대로 돌아가면 되었다.다만 온이샘이 그녀에게 옷을 가져다준 적이 있었는데 그 가방이 하나 더 있었다.차우미는 옷장에서 작은 여행 가방을 꺼내고 누락된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둘러보며 말했다.“여기 여행용 작은 가방이 하나 더 있어.”온이샘은 캐리어를 들고 또 차우미 손에서 여행 가방까지 가져갔다.두 사람의 손가락이 무심코 마주치는 순간 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풀었고 온이샘은 여행 가방을 꽉 잡아서 캐리어 위에 올려놓았다.“내가 할게.”차우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선배, 괜찮아. 여행 가방은 내가 들게.”말을 마친 차우미가 가방을 잡으려고 하자 온이샘은 곧바로 캐리어와
차우미는 온이샘과 같이 삼륜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서 곧바로 차에 타고 도로로 나왔다.그때 차에서 차우미가 나상준에게 자기의 상황을 메시지로 보냈다.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을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출발하여 아직 2시가 되지 않았다.호텔에 도착하면 2시가 될 거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하고 차 키까지 맡기면 아마 2시가 넘어서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3시 넘어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다.차우미는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고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했다.온이샘은 운전하면서 가끔 그녀를 살펴봤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심각하지는 않고 무언가 계획하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자기도 함께 안평으로 가는 데 있어서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온이샘은 나상준 때문에 차우미가 자기도 안평으로 함께 가려는 것을 거절할까 봐 걱정했었다.온이샘은 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기가 없는 상황에서 나상준만 차우미 옆에 있는 것이 두려웠다.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계속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온이샘은 방해하지 않았다.온이샘은 앞을 바라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며 이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이번에 청주로 오면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기에 잘 생각해야 했다.두 사람은 호텔로 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아 차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1시가 넘어서 교통 체증이 조금 있었지만, 아침 정도는 아니어서 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시 47분으로 차우미가 예상했던 시간과 비슷했다.차우미가 가방을 들고 온이샘에게 말했다.“선배, 나의 짐은 준비를 다 했으니 이제 방에 돌아가서 한 번 살펴보고 공항으로 출발할 거야. 그러니 선배도 이제 돌아가서 정리하고 우리 공항에서 만나.”온이샘이 그녀와 같은 항공편을 예약했기에 그냥 돌아설 수 없어 자기의 상황을 얘기했다.어차피 같은 비행기로, 함께 안평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실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이 고양이는 특별히 귀한 품종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고양이다.이혜정은 식사하고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하루 박영자와 이혜정은 함께 산책하다가 숲에서 아주 약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이혜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숲속을 바라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고양이가 이혜정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는 이혜정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 걸 알고 있다는 듯 이혜정의 발 옆에 와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혜정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습관이 없는데 어릴 때 가문이 망했을 때도 그녀의 생활은 여전히 평범하지 않았고 아가씨로 불리고 집에 가정부도 있었다.하지만 아주 어릴 때 누군가 아주 진귀한 페르시아고양이를 선물했었는데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하다가 죽었다. 그때 이혜정는 오랫동안 슬퍼했고 그 뒤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이혜정은 더 이상 이별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게다가 그때 가문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페르시아고양이가 죽은 다음 가문이 더욱 힘들게 되면서 심지어 자기를 진심으로 대해줄 사람과 결혼할 수도 없게 되었다.그리하여 이혜정은 결국 그때 보따리 장사를 하던 나동석과 결혼하게 되었다.그렇다고 무작위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나동석의 근면 성실하고 착하고 노력하는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다.결혼 후 두 사람은 많은 풍파를 함께 겪으면서 인생의 굴곡을 모두 체험했다.그런 상황에서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조건도, 여유도 없었다.때문에 어린 고양이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라 이혜정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지금까지 키우게 되었다.그런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혜정은 힘들 때 나씨 가문을 도와주었던 차우미의 할아버지를 찾게 되었다.그 이후에는 나상준과 차우미의 결혼으로 서로 사돈을 맺게 되었다.고양이는 재미있게 놀다가 힘들었는지 그 자리에 엎드려 꼬리를 흔들며 물고기들이 헤엄치
봄이 지나고 여름이 한창이기에 산과 나무들은 무성하고 푸르다.숲속에서는 매미가 울고 나뭇가지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나뭇잎들은 바람에 사르륵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은 여름날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었고 여름날의 풍경을 그대로 표현했다.별장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을 중심으로 숲 아래에 있는데 봄이 가면서 추위가 사라지고 그윽하고 고요한 여름을 맞이했다.검은색 벤츠가 별장 문 앞에 있었는데 나상준이 거실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차는 곧바로 별장을 떠났고 박영자는 청석으로 포장된 바닥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뒷마당의 연못 옆에 있는 정자로 갔다.박영자는 돌 벤치에 앉아 대나무로 엮은 공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를 앉고 있는 노인의 옆에 가서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은 출발하셨어요.”이혜정은 주먹만큼 크기의 공은 한 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술 장식들이 있었고 공이 움직일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술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노란 고양이가 몸을 일으키며 잡으려고 했고 잡지 못하면 다급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이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했는데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연구하는 듯 귀를 잡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이혜정은 평소 잘 웃지 않았는데 후손들을 만나거나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볼 때만 주름을 자랑하며 미소를 보여주었다.박영자의 말을 듣고 이혜정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혜정의 대답을 들은 박영자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혜정의 뒤에서 부채질했다.이혜정은 공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고양이를 놀리다가 가끔은 고양이가 잡을 수 있게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그녀가 공을 멈추고 높이를 낮추면 고양이는 누워서 뒹굴며 놀았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녀는 또 공을 뺏었는데 그때마다 혼란스러워하는 고양이의 표정을 보고 이혜정은 크게 웃었다.박영자는 이혜정의 웃음소리와 표정을 보다가 또 멍해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따라서 웃었다.이혜정은 고생을 많이 했는
“이샘이는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유독 여자애들과는 언제나 거리를 두었어. 다른 남자애들은 사춘기 때 짝사랑도 하고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이샘이는 공부 외에 아무 데도 관심이 없고 항상 품행과 학업이 모두 뛰어났어. 그래서 그때 우리 반의 여학생들은 거의 모두 이샘이를 짝사랑 했었거든.”유리의 말을 듣고 화동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당신도 좋아했어?”유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당연하지. 그때 짝사랑 안 해본 사람이 없을걸. 게다가 그렇게 우수한 사람을 누군들 싫어하겠어. 그 나이 때는 누구나 짝사랑하는 거야. 사춘기의 소녀가 같은 반에 공부도 잘하고 가문도 좋고 잘생긴 남자가 있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화동은 유리가 흥이 나서 그때 일을 얘기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며 미소를 아끼지 않았다.유리는 화동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왜 웃어? 질투 안 해?”화동은 그녀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안 해.”유리는 화동의 웃고 있는 얼굴을 꼬집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어렸을 때니까 당연히 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지만 크면서 달라지는 거야.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인연이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예전에 친구들이 농담으로 이샘이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지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끝내 알았어. 만약 이샘이와 우미 씨가 정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애들한테 자랑해야겠어.”말하면서 유리는 휴대폰을 꺼내서 갤러리를 클릭해서 오전에 길거리를 구경하면서 찍었던 온이샘과 차우미의 사진을 화동에게 보여주었다.“이거 봐. 두 사람 잘 어울리지.”화동도 사진을 보았다.차우미와 온이샘이 무후문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무후문 위에 있는 깃발을 올려다보고 온이샘은 옆에서 차우미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었다.화창한 햇빛 아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거리의 풍경도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생활 중의 여러 가지 색으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하지만 온이샘에게는 아
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놀리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가 아직은 연인이 아니고 또 차우미가 많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온이샘이 차우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너무 무례하지 않았다.유리가 먼저 침묵을 깨자, 화동이가 이어서 말했다.“우미 씨, 이샘 씨, 저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세요.”화동의 겸손한 한마디에 온이샘이 서둘러 말했다.“아니에요. 화동 씨 요리 너무 맛있어요. 청주와 노주 그리고 안평 요리까지 모두 너무 맛있어요. 저 지금 엄청 많이 먹고 있어요.”말하면서 온이샘은 젓가락을 들고 요리와 함께 밥그릇의 맨 위에 놓인 차우미한테서 가져온 밥을 먹었다.차우미는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온이샘이 아무렇지 않게 자기의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먹었다.그렇게 분위기는 금방 돌아왔고 모두 즐겁게 식사했다.오후 1시가 거의 될 때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지나서 화동과 주관규가 일어나서 식탁을 정리하자, 차우미와 온이샘도 일어나서 도와주었다.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여러 명이 움직이자, 식탁은 금방 정리되었다.설겆이까지 다 끝나고 온이샘이 시계를 보았는데 1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우리 오늘 안평으로 가야 해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다시 모이자.”유리는 두 사람이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너 일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바쁜 사람인 거 알아. 우미 씨도 바쁜 것 같으니 잡지 않을게. 우리 서로 연락 방법을 남겨서 나중에 또 연락하자.”“그래. 교통도 편리하니 모두 시간이 될 때 또 만나자.”유리는 역시 소탈하고 통쾌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러자.”이어서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데 차우미도 유리의 전화번호와 카톡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