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어떻게든 청주에 남겨야 한다.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녀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물론 그녀는 이번 기회에 아들 일을 확실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이렇게 계속 느긋하게 굴다가는 언제나 손자를 보겠는가.아들은 급하지 않아도, 그녀는 급했다.진문숙은 전화를 걸며 아들을 어떻게 도울지 많은 생각을 굴렸다.한편, 안평에서 온이샘은 방금 수업을 마치고 교재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그는 사무실로 가는 길에 휴대폰을 꺼내서 무음 모드를 해제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 무음을 해제하자마자 진문숙의 전화가 걸려 왔다.화면에 뜬 전화번호를 본 온이샘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핸드폰에 뜬 시간을 보고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전화를 받았다.“엄마.”온이샘의 목소리를 듣자, 진문숙의 얼굴에 즉시 미소가 번졌다.매우 만족스러웠다.그녀의 마음속에서 자기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로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었다.이제 아들이 드디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 그녀는 아들을 위해 더 힘을 내야 할 것이다.“이샘아, 지금 바빠?”진문숙은 웃으며 물었고, 목소리는 밝고 명쾌했다. 딱 들어도 좋은 소식이 있는 듯했다.그녀의 웃음소리를 듣자 온이샘의 마음이 놓였다.그는 어머니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 줄 알았다. 특히 외할머니와 관련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외할머니는 아직 병원에 계시지만, 상태는 이미 많이 좋아졌다. 매일 전문 간호사가 돌보고 있었고 또 집안 어른들도 교대로 곁을 지키고 있었다.물론 다들 고생이긴 하지만, 외할머니가 안정을 찾으니 모두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예전만큼 불안해하지는 않았다.하지만 나이가 많으신 만큼 혹시라도 상태가 악화될까 걱정은 되었다. 그래서 온이샘은 진문숙의 전화를 보자 살짝 긴장했다.하지만 어머니의 안정된 목소리를 듣고 온이샘은 안심했다.“방금 수업 끝났어요. 무슨 일이신데요?”진문숙은 보통 일이 있을 때만 아들에게 전화를 걸 뿐 별일 없으면
거의 확신에 찬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자, 온이샘은 눈살을 찌푸렸다.“청주요?”“우미가... 청주에 있다고요?”온이샘은 휴대폰을 꽉 움켜쥔 채 머릿속으로 진문숙이 방금 한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그는 잘못 듣지 않았다. 어머니는 청주에서 차우미를 봤다고 했다.그렇다면 차우미는 정말 청주에 있는 것이다.청주에 있다면...이 순간 온이샘의 머릿속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떠올랐다.“선배, 나 이쪽에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 아마도 하루 이틀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 돌아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어제 그녀와 통화를 했을 때, 그녀는 처리할 일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저 업무상의 일이거나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도 꼬치꼬치 캐묻기가 그래서 묻지 않았다.하지만, 그 일이 청주와 관련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나상준과 관련이 있을 줄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온이샘의 마음이 조여왔고 위기감이 밀려왔다.나상준에 대해, 그는 무의식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차우미가 이혼 후 나상준과 다시 만나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그의 위기감은 순식간에 나타났다.주체할 수 없었다.이혼했으니 원래는 마음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혼 후 다시 마주한 순간 결혼 생활 때보다도 더 불안해졌다.마치 그들이 다시 함께할 것만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이 순간 차우미가 청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러한 감정은 빠르게 드러나 그를 완전히 압도하여 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온이샘의 마음은 한없이 불안해졌다.진문숙은 아들이 차우미가 청주에 있는 것을 모른다고 거의 백 퍼센트 확신했다. 차우미처럼 예의를 아는 아이는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청주에 간다고 아들에게 말하면 아들은 분명 그녀와 이야기할 게 뻔하니까.그래서 차우미는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다만, 진문숙은 아들이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걸 알
온이샘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았다.여름이 한창이었기에 뜨거운 기운이 가득 차서 모든 것이 밝고 눈부시게 보였다.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의 말소리, 농구하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그리고 매미 소리가 귀에 들어와 그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봄이 지나 어느새 여름이 왔다. 소리 없이 찾아온 이 여름은 그의 눈에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온이샘은 손에 들린 휴대폰을 꽉 쥐고, 뜨거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린 뒤, 발걸음을 재촉해 사무실로 향했다.오늘은 금요일,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은 없었다.한편, 진문숙은 온이샘의 감정이 평소와 다름을 느끼고 모든 이야기를 아들에게 털어놓은 뒤, 속을 태우며 아들의 답을 기다렸다.그런데, 아들은 몇 마디만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이다.아들이 이렇게 빨리 전화를 끊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녀는 몹시 당황했다.더 놀라운 건 아들이 청주로 돌아오겠다고 하며 꽤 흥분한 듯 보였다는 점이다.진문숙은 차 안에서 휴대폰을 들고 아들이 했던 말을 계속 떠올렸다.아들의 말투와 감정을 천천히 떠올리며 그가 어떤 표정으로 말했을지 상상하던 순간, 진문숙은 미소를 지었다.아들은 차우미가 그녀 때문에 놀라 도망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하하하...진문숙은 마음이 순식간에 즐거워져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제는 전혀 없었다. 단지 아들이 그 아가씨를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청주에 있다는 말에 덜컥 놀랐을 것이다.아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고, 당연히 차우미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의 열정이 차우미를 정말로 놀라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진문숙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었다.그러나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원래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돌아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아들은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뒷부분의 계획은 반드시 필요했다.그녀는 이번에는 반드시 차우미를 며느리로 확
차우미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서 자료를 찾고 메모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휴대전화가 울리자 차우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화면에 읽지 않은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발신자는 다름 아닌 나상준이었다.차우미는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나상준의 일이 이제 끝난 것 같다.차우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내려와.】내려오라는 말에 차우미는 약간 어리둥절해 하며 무언가 떠올랐다.【호텔 앞에 있어?】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5시가 넘었다.창밖은 아직 밝지만, 곧 어두워질 것이다.나상준이 아마 방금 일을 끝내고 왔을 것이다.이 시간에 차우미 보고 내려오라고 한 것은 나예은을 보러 가는 건가?떡을 만드는 데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떡을 다 하고 나예은에 찾아가면 벌써 자고 있을 것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지금 자기보고 나상준 집에 가서 떡을 만들라고 한 게 아니라 다른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떡을 만들고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아주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신의 추측일 뿐 확실하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 한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무슨 일로 왔는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우리 지금 상준 씨 집에 가서 떡 만들러 가? 근데 떡 만들려면 2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너무 늦을 거 같은데.】차우미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상준의 답장을 기다렸다.방금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나상준은 답하지 않았다.차우미는 책상 위의 자료와 노트를 닫았다.그녀는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책상을 정리했다.정리를 다 하고 휴대전화가 땡 하고 메시지가 왔다. 차우미는 휴대전화를 들어 나상준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아니.】차우미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군말 없는 짧은 두 글자의 답장이었다.그녀는 웃으며 가방과 키를 챙기고 방을 떠났다.호텔 입구에 검은 벤츠 한 대가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마치 그곳이 자기 자리이고, 아무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차우미는 호텔에서
나상준은 서류를 덮고 차에서 내렸다.그는 차우미가 자기한테 여기로 왜 데려왔는지 기다리고 있는 대답이 있다는 걸 눈치 못 챙긴 듯 쳐다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렸다.차우미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나상준을 보고 차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무슨 일이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게 차우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그러나 나상준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계속 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도 안 된다.차우미는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다만 몇 달 동안 떠나 있던 이곳에 발을 다시 들여놓는데, 3년 동안 살았던 별장을 보며 차우미의 마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떠났을 때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찾아왔다. 비록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이상했다.어쨌든 3년 동안이나 살았던 곳이다.마치 한 편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갑자기 수많은 화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잊었던 기억들이 점점 떠오른다...한때 결혼에 대해 조바심을 하고 불안하고 남편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었다.차우미는 그녀의 결혼도 남들과 같이 남편과 아이랑 같이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얼마나 좋은 집안에 좋은 사람은 바라지 않고 그의 부모님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그러나 기대와 환상이 둘의 결혼일 첫날 밤에 나상준이 업무처리로 떠나면서 식어버렸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는 출장이 집을 비우면서 생기가 있어야 할 집안이 온통 차가운 기운뿐이었다.차우미의 기대와 환상은 사라지고 남은 건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는 상황뿐이다.다 잘 될 거야.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나중에는 자신을 속이기까지 한다.순간, 차우미는 계단 앞에 서서 몇 달 동안 시간에 물들지 않은 별장을 바라보며 모든 게 익숙하고 한 치의 빛깔도 바래지 않고 여전했다.시간이 지나도 변한 게 없다.차우미는 눈동자를 굴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집안 청소는 담장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고, 차우미가 매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자신과 나상준을 잘 챙기고 일상에 쓰인 지출을 잘 확인하면 된다.예를 들어, 집 인터리어에 뭐를 더 장만해야 하는지, 어디를 새로 고쳐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 황갑잔치나 결혼식 돌잔치 등 여러가지 일들을 나상준의 도움 없이 차우미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결혼하면 남자가 주로 밖에서 일하고 여자가 집에서 집안일을 한다는 걸 차우미는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나상준도 이 점을 잘 알고 그런 일을 차우미에게 맡기면서 말을 아꼈다. 차우미가 하는데로 따르고 돈은 둘이 결혼하고 나서 나상준이 차우미에게 카드 한 장과 집안의 금고 비밀번호와 비상금의 위치까지 다 알려주었다.집안일을 차우미에게 맡기는 게 안심하고, 나상준은 밖에서 일만 잘하면 된다. 금전적인 면에서 나상준은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카드에 정확히 얼마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혼하기 전까지도 잔액이 부족하다는 말이 없었다.카드 안의 자금은 늘 충분했다.차우미는 결혼하면 하나의 가족이니 니꺼내까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상준이 차우미에게 그러한 권력을 주면서 그녀도 니꺼내꺼 나눌 생각이 없다. 나상준이 준 카드를 쓰든 비상금을 쓰든 그게 나상준 돈이다 아니면 자기 돈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차우미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나상준의 것이 차우미의 것이고, 차우미의 것이 곧 나상준의 것이다.이건 차우미가 결혼한 후 들은 생각이다.돈은 충분히 많았지만 그렇다고 차우미가 펑펑 쓰지는 않았다. 써야 할 곳에 돈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할 것은 쓰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그녀에게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불필요한 지출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배웠다.그래서 인간사정에 관해서 필요한 선물, 드리는 상대 그리고 가격대에서는 아끼지 않고, 신경 써야 할 것은 차우미의 계획되로 진행되어 있었다. 차우미로 인해 집이 질서정연하게 꾸려가고 나상준도 밖에서 아무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다.차우미는 나상준을 신경
겨울의 한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네 시를 넘기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의 시작을 알리며 아늑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초봄의 시작을 알렸다.시내의 어느 유치원.사무실을 나온 차우미는 처마 밑에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오늘은 시댁에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시할머니는 가족간의 우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나 회장이 돌아가신 뒤로 가문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본가로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하는 풍습이 생겼다.이 풍습은 차우미가 NS그룹 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이미 오십 년이나 전해져 내려온 풍습이었다.아침부터 비 온다는 예고는 있었지만 오후에 뒤늦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차우미는 조용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섯 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나상준은 며칠째 출장 중이었다. 아침에 나상준의 비서인 허영우에게 문자를 보내 확인했을 때는 예정대로 세 시 사십 분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네 시가 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것이다.차우미는 방향을 틀어 주차장을 벗어났다.청주에 있는 시댁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차우미는 직접 시댁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나상준이 집에 도착하면 그와 같이 시댁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관강동은 청주의 유명한 부유층들이 사는 주택가였다. 나상준과 차우미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창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금방 싹을 피워내기 시작한 비에 젖은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차우미는 익숙한 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서 검은색 롤스로이스 뒤에 차를 세웠다.차가 도착한 걸 보니 그가 돌아온 모양이었다.시동을 끈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집으로 들어갔다.“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해.”커다란 거실 창문을 통해 커튼 사이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
시댁은 청주시 남부의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번화한 시내와 떨어져 산과 들을 등지고 지은 호화저택은 요양하기 최적인 곳이었다.차가 서서히 정원으로 들어서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날은 이미 저물었고 저택에서는 밝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빗소리와 가족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최우미는 곱게 포장한 쿠키를 들고 나상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집 안에서 어린 소녀가 뛰어나오더니 앳된 목소리로 그들을 맞아주었다.“큰아빠, 큰엄마!”최우미는 미소 띈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박스를 아이에게 건넸다.“열어봐.”아이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환호를 질렀다.“와! 백설공주랑 일곱 난쟁이다!”최우미는 동화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취향을 고려해 동화 속 캐릭터를 닮은 쿠키를 만들어 아이에게 자주 선물하고는 했는데 여느 베이커리 전문가와 비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마음에 들어?”“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큰엄마!”“마음에 들었으면 됐어.”가족들은 이미 모두 도착해서 최우미와 나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었기에 지각했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둘은 가족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나상준의 할아버지인 전대 회장님은 아주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네 아이와 함께 졸지에 든든한 가장을 잃었지만 이혜정 여사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네 아이를 돌보고 회사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회사는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빚더미에 허덕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 회장이 사망한지 불과 3년이 되던 해에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아들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남편을 잃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식까지 잃은 이혜정 여사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다시 일어서서 홀로 아이들을 길러냈고 지금의 NS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장남인 나상준의 아버지 나명덕은 슬하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