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였다.사람들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주혜민은 나상준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따뜻한 햇살이 그녀의 청순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자신을 등지고 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사람들의 시선이 주혜민에게서 나상준에게로 옮겨졌다.나상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뒤에 선 여자를 향해 미세하게 미소를 지었다.“혜민아.”주혜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문하은은 주혜민과 아들을 번갈아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우린 빠져줄 테니까 너희끼리 얘기 나눠. 오랜만에 보는 건데.”그 말을 들은 주변 아줌마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젊은이들끼리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을 텐데 얘기 나눠.”“자, 우린 이제 들어갑시다.”“저쪽에서 카드게임 하고 있던데 그쪽으로 가보자고.”“좋아.”그렇게 아줌마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주혜민은 아련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3년 전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뒤로 첫만남이었다.그날 이후 그녀는 해외로 출국했다가 3년만에 돌아왔다.주혜민은 나상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얘기 좀 할까?”그의 앞으로 다가선 그녀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제안했다. 3년을 안 본 사이지만 어제 만난 친구처럼 친근했다.나상준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문하은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만족스러운가 보네?”옆에 있던 친구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문하은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에이, 말을 말아야지.”“내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이면 그냥 하지 마.”“그러니까 갑자기 하고 싶어지는데? 사실 난 우미 걔가 성실하고 성품도 온화한 것이 참 괜찮았었어.”문하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애들 이미 이혼했어.”더
차우미를 안고 병원으로 간 온이샘은 링거를 맞고 입원했다.의사는 화상 상처 때문에 열이 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며칠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입원 절차를 마무리하고 간병인에게 차우미를 맡긴 뒤, 온이샘은 생필품을 사러 마트로 향했다.모든 준비가 다 끝났을 때는 이미 점심 때가 넘은 시각이었다.차우미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열이 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곤하게 잤다.온이샘은 물수건을 갈아준 뒤, 화장실로 가서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그리고 찬물에 물수건을 적셔 그녀의 얼굴과 팔을 닦아주었다.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어 닦아줄 수 없었다. 여전히 열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기에 온이샘은 간병인에게 말했다.“저는 나갔다 올 테니까 환자 몸 좀 닦아주세요.”“네, 알겠습니다.”밖으로 나가려던 온이샘은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간병인에게 말했다.“가서 여자가 입을 옷 좀 사다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지갑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간병인에게 건넸다.“이 정도면 되나요?”간병인은 적어도 몇십만 원은 될 것 같은 두꺼운 현금뭉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충분해요.”사실 편한 복장과 속옷을 사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온이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지금 다녀오세요. 제가 병실을 지키고 있을게요.”“네”간병인이 돈을 챙겨 나간 뒤, 온이샘은 의자를 가져다가 침대 앞에 앉았다.잠든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 미소가 나왔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잠든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었다.예전에 강서흔과 여가현이 싸우고 화해를 위해 넷이서 같이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차우미는 흔쾌히 응했고 그렇게 네 명은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그때 운전대는 온이샘이 잡고 차우미는 조수석에 탔는데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건지 가는 길에 잠들어 버렸다.그때도 지금처럼 천사처럼 조용하게 잠들어 있었는데 운전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온이샘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아직 열이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차우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낯선 천장과 전등이 시야에 들어오더니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녀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침대머리에 엎드려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온이샘은 침대머리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긴 속눈썹이 자연스럽게 눈 밑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차우미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그런데 어쩌다가 병원에 오게 된 거지?분명 잠들었을 때는 호텔이었다.주변을 둘러보니 단독 화장실이 딸린 일인용 병실이었다.온이샘은 피곤한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가 옮겨줬을 것이다.차우미는 얇은 셔츠만 걸치고 잠들어 있는 그를 보고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다친 손이 짓눌리며 손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아!”그녀의 외마디 비명에 잠들어 있던 온이샘이 번쩍 눈을 떴다.그는 피곤한 기색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차우미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깼어?”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댔다.열이 내린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안심한 표정으로 차우미를 보며 물었다.“몸은 좀 어때?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차우미는 그의 단잠을 깨웠다는 생각에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미안해, 선배. 나 때문에 고생했겠네.”“난 괜찮아. 넌 어때?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얘기해.”“괜찮아. 많이 좋아졌어.”온이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일어나려고 했던 거야?”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자, 부축해 줄게.”그녀는 손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온이샘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간병인 불러서 목욕이라도 시켜주려고 했는데 돌아와 봤더니 네가 자고 있는 거야. 게다가 이마가 불덩이 같아서 병원에 데려왔어. 의사는 며칠 경과를 지켜봐야 한대.”온이샘은 그녀의 등 뒤에 쿠션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았다.부모님은 오늘 돌아가는 줄 알고
나상준.최근 통화목록 첫 번째에 그의 번호가 있었다.무시하려고 했지만 자꾸 눈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차우미가 계속해서 말했다.“맨 밑으로 보면 있을 거야.”부모님과 직장 동료를 제외하면 차우미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친구도 여가현을 제외하면 몇 없었다.여가현과는 화상 통화나 문자를 주로 해서 통화기록에는 보이지 않았다.온이샘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는 아빠라고 적힌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고 차우미의 귀가에 가져다 댔다.잠시 후, 차동수가 전화를 받았다.“아빠.”“그래. 오는 중이지? 어디까지 왔어? 엄마가 저녁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차우미는 외출하기 전이면 몇 시까지 온다고 미리 얘기하고 외출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였다.아빠의 자상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차우미는 대답을 망설였다.온이샘은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 지금 상황을 부모님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받는 게 맞았다.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자꾸 망설여졌다.한참 머뭇거리던 차우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빠, 선배랑 진달래 산 사찰에 갔다가 사고가 좀 있었는데 그 여자애를 구하다가 도중에 좀 다쳤어. 지금 병원에 있는데 엄마랑 와줘야 할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차동수가 곧바로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다쳤어? 어딜 다쳤는데? 지금 병원이야? 어디 병원이야?”“엄마랑 아빠 지금 바로 출발할게!”말을 마친 차동수는 곧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우미 엄마, 큰일 났어.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한창 나물을 다듬던 하선주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병원? 누가 다쳤어?”“우미가 다쳤대.”“우미가 갑자기 왜!”하선주는 다급히 거실로 나가서 외출 준비를 했다.차동수가 전화기에 대고 다급히 물었다.“우미야, 어딜 다쳤는지 말해줘야 알지. 병원에서는 뭐래? 너 괜찮아?”“엄마는 지금 옷 갈아입으러 갔어. 곧 그쪽으로 갈게.”
두 분이 걱정하시는 걸 알기에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차우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부탁할게.”온이샘은 핸드폰을 건네 받고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건넸다. “네, 아저씨.”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온이샘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질문에 대답했다.상황 설명이 끝나고 온이샘이 말했다.“네. 우미 바꿔드릴게요.”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다시 차우미의 귓가에 가져갔다.차동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우미야.”“응, 아빠.”“우리 지금 출발할 거니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엄마랑 같이 갈게.”차동수는 아까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딸을 위로했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아빠, 나 괜찮으니까 엄마랑 천천히 와. 급하게 서두를 것 없어.”“알았어. 이따 봐.”드디어 통화가 끝나자 온이샘이 말했다.“미안해. 나 도와준다고 나왔는데 다치게 만들어 버렸네.”차우미 부모님의 걱정을 알기에 그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차우미 역시 가족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차우미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선배, 나 아니었으면 그 여자애 구해줬을 거야?”갑작스러운 질문에 온이샘은 멈칫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구했을 거야.”차우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거 없어.”부상과 고열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 만큼은 따스하고 찬란했다.온이샘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병원에 도착한 차동수와 하선주 부부는 급급히 의사에게 차우미의 상황을 물었다. 손에 화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부부는 안심하고 병실을 찾았다.하선주가 병실에 나와 딸을 보살피는 사이, 차동수와 온이샘은 밖으로 나와서 복도로 걸어갔다.병실과 멀어진 뒤에야 온이샘은 입을 열었다.“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우미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문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차를 보자마자 다가가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훤칠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이어서 주혜민도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나상준이 앞장서서 병원으로 들어가고 그녀 역시 남자의 뒤를 따랐다.“한 시간 전에 의식을 회복했는데 바로 잠들었습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 그 뒤로는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나상준의 마중을 나온 남자가 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의사는 뭐래?”“고비는 넘겼지만 의식을 회복한 후에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그래, 알았어.”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임상희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간호사와 간병인이 환자를 지키고 있었다.나상준이 안으로 들어서자 간호사와 간병인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환자 가족분 오셨습니다.”나상준을 병실로 안내한 남자가 간호사와 간병인에게 그들을 소개했다.간호사와 간병인이 자리를 비키자 나상준은 침대에 누운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초췌한 얼굴로 누워서 잠자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주혜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대….”간호사와 간병인,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담당자가 밖으로 나가고 병실에는 나상준과 주혜민만 남았다.남자는 말없이 환자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의사 좀 만나고 올게.”주혜민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어서 가봐. 내가 여기 있을게.”“그래.”말을 마친 나상준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병인은 나상준을 보자 그에게 다가갔다.나상준이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지키고 있어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의사 호출하고요.”“네.”간병인이 안으로 들어가고 마중을 나왔던 남자는 조용히 서서 나상준의 지시를 기다렸다.그는 NS안평 지사 사장 주진수였다. 청주의 급한 연락을 받은 뒤로 병원에 달려와 상황을 알아보고 나상준이 올 때까지 한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나상준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주치의한테 안내 좀 부탁해.”
차우미는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렇듯 절제 되고 리듬감 있는 노크소리는 나상준을 떠올리게 했다.그 사람이 여기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차우미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차동수가 말했다.“내가 나가볼게.”하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약 가져왔나 봐.”말을 마친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차우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차우미는 어릴 때부터 꽤 건강한 편이었다. 잔 감기 한번 걸린 적 없던 아이인데 갑자기 입원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차우미는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위로했다.“나 괜찮아. 곧 나을 거야. 걱정 마.”하선주는 그런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차우미는 하늘이 무너져도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너도 참….”모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을 연 차동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자네….”차동수는 문밖에 선 훤칠한 남자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나상준은 담담한 시선으로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금방 잠에서 깬 건지, 긴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부상 때문인지 약간 창백했다.하지만 원래 차분한 성격 탓인지 그렇게 아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나상준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차동수에게 인사를 건넸다.“장인어른.”낮고 허스키한 음성이 문밖에서 전해지자 차우미가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셔츠에 같은 색상의 정장 바지를 입은 그가 담담한 표정을 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차우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하선주도 나상준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차우미가 이혼한 뒤로 이혜정 여사가 중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로 NS일가의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이혼하기 전에도 별로 연락이 없던 사위가 갑자
날이 어두워지자 병실 안에는 밝은 불빛이 밝혀졌다.뭔가 생소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는 긴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평소처럼 절제되고 차분한 걸음걸이였다.마치 평소처럼 출장을 다녀온 것 같은 모습.차우미는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조화로운 이목구비, 그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저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나상준은 천천히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조용히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차우미는 당황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 여자애가 당신 조카일 줄은 몰랐어. 걔는 좀 어때? 괜찮아?”차우미가 상처를 소독하고 병원을 떠날 때에도 임상희는 여전히 응급 수술 중에 있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나상준은 자신을 친구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위기는 넘겼는데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어.”그 말에 차우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심각해?”NS일가는 방대한 가족이었다. 친척도 많고 방계도 많았지만 차우미는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원래 떠들썩한 걸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지만 시어머니 문하은이 그녀를 별로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에 평소에 어딜 가든 그녀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문하은은 며느리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친척 몇몇을 제외하고 다른 친척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이번에 다친 조카라는 사람도 그러했다.좋은 마음에 선의를 베풀었는데 상대가 공교롭게도 나상준의 조카일 줄은 몰랐다.“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이 물었다.”손은 좀 어때?”차우미는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서 물어본다는
온이샘은 차우미 앞에 부드럽게 차를 멈추고 문을 열고 나왔다.자기 앞에 서 있는 차우미를 바라보며 그는 진정으로 차우미가 자기 손이 닿는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온이샘은 빠른 걸음으로 차우미의 앞으로 갔는데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잠깐 멍해 있었다.햇빛이 강렬한 관계로 그녀는 눈을 찌푸려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하지만 온이샘도 차우미의 이런 표정은 처음으로 보았는데 조금은 귀엽고, 또 조금은 매혹적이었다.온이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차우미의 귀에 들어갔는데 그제야 눈썹을 흠칫하며 온이샘이 자기 앞에서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눈으로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차우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선배, 아침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내가 살게.”차우미가 그를 보자마자 첫마디가 그에게 아침 사준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온이샘이 웃는 것을 본 차우미는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본 온이샘은 더 크게 웃었다.그러다가 헛기침하며 웃음을 꾹 참았는데 입꼬리는 여전히 참지 못하고 치켜올라갔다.“우미야, 여기는 청주이니 내가 살게.”그의 진지한 표정에 차우미가 웃었다.“알았어. 안평으로 돌아가면 내가 살게.”“약속한 거야?”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하지.”“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거니까 아침 사주기로 한 거 까먹으면 안 돼.”온이샘은 특별히 차우미가 이번에 아침을 사주기로 한 것과 기존에 밥 사기로 한 것을 구분해서 강조했다.전에 약속한 것과 지금 약속한 것을 반드시 별도로 해야 했는데 같이 있을 수 있는 차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차우미가 대답했다.“알았어.”“가자. 내가 먹어 본 중에서 아침을 제일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좋아.”온이샘은 조수석의 차 문을 열어주었고 차우미가 올라타자, 본인도 즉시 운전석에 타고 출발했는데 교통 체증은 여전했다.“오래 기다렸어?”교통 체증 때문에 천천히 달리는 차에서 차
나상준이 만약 아무 일도 없으면 자기와 같이 안평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흰색 BMW 차 한 대가 멈춰 섰다.차가 브레이크 밟는 소리를 내며 앞에 멈춰서자, 차우미는 고개를 들었는데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흰색 셔츠에 회색 캐주얼 바지를 입은 온이샘이 내려왔다.시간은 8시가 넘어서 햇빛이 적당하여 너무 덥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몸 전체를 짱짱하게 따뜻하게 내리 비춰주었다.온이샘이 차에서 내리자 밝은 햇빛이 즉시 그를 감쌌는데 얼굴도 더욱 맑고 우아해졌다. 그는 햇빛 때문에 눈을 지그시 뜨더니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미소를 아끼지 않으며 차우미를 보고 있었다.그건 만족의 눈빛이었다.차우미는 온이샘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사람으로서 가장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진심이라고 하는 데 진심은 분명히 통하게 된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자기를 대하는 것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여가현이 노골적으로 얘기한 이후로는 그 마음이 더 잘 보였다.온이샘은 차우미를 각별히 챙기고 돌봐주었는데 모든 면에서 온이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온이샘은 연인으로도 남편으로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다.처음에 차우미는 그냥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치 못 할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이제 더 이상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온이샘은 남자로서 훌륭하고 심지어 나상준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차우미는 만약 이혼한 경력만 없었으면 아무 고민 없이 온이샘과 함께했겠지만, 본인의 상황이 온이샘 인생에 흠집이 될까 봐 걱정되었다.그녀는 본인은 자격이 없기에 온이샘은 자기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왜 그래?”온이샘은 주차장을 나오자마자 차우미의 호텔을 향해 달렸는데 아마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빨리 운전했을 것이다.청주의 7~8시는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이기에 자전거, 스쿠터,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붐볐다.어쩔
휴대폰 화면에 나상준의 이름이 나타났다.온이샘이 아닌 것을 보고 차우미는 잠깐 멈칫했다가 메시지를 클릭했다.[일 끝나면 연락해.]너무 간결한 한 마디였지만 뜻은 분명했는데 동시에 차우미의 머릿속에는 나상준이 어젯밤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일 끝나면 연락해. 너랑 같이 안평으로 갈 거니까.”어제저녁부터 나상준은 차우미와 같이 안평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녀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미룬 것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정말로 일이 있고 타임이 맞아서 같이 안평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쉽게 미루니까 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어젯밤에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가 순식간에 차에 올라타면서 대화가 끊어져 버렸다.그 후 집중해서 운전하느라 그 일은 완전히 잊었다.지금 차우미는 나상준의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나와 같이 안평으로 가겠다는 건가?’차우미는 나상준과 같이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답변했다.[오늘 나와 같이 안평으로 가겠다는 거야?]메시지를 보내고 차우미는 나상준이 메시지를 보낸 시간을 보고 엘리베이터로 갔다.그녀는 아까 연락한 시간에서 20분 정도 지났기에 온이샘이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아서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같은 시각, 관강동 별장에서 나상준은 차우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욕실로 들어갔다.그는 어젯밤에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방금 집에 왔는데 샤워하고 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다시 회사로 나가야 했다.나상준이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물소리가 들렸는데 침대 머릿장에 올려놓은 휴대폰에서 그때 메시지 도착 음이 울렸다.휴대폰은 짧게 두 번 울리고 곧바로 침실에 정적이 흘렀다.별장 전체가 차우미와 나예은이 떠나면서 고요함은 더욱 짙어졌다.욕실의 물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별장 내의 고요함과 차가운 느낌은 가려지지 않았다.나상준은 시원하게 씻고 머리를 닦으며 나와서 곧바로 머릿장으로 가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화면이 켜지면서 읽지 않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발신자 이름을 보고 그는
순간 여가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차우미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어쩐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차우미는 여가현의 목소리에서 슬픔과 무력함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현아, 난 괜찮아. 이혼을 결심했을 때 남은 생을 살면서 다시 결혼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 원래는 선배와 잘 지내면서 연애도 해보고 나중에 천천히 결혼 생각도 해보려고 했어. 이샘 선배와 같은 좋은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선배가 좋으면 좋을수록 내가 너무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선배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래서 계속 이렇게 선배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오늘 선배한테 확실하게 얘기하고 더 좋은 여자를 만나라고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당분간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일에 매진하고 결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할 거야.”어떤 일들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산도 보기에는 가까워 보여도 정작 가려면 엄청 멀듯이 말이다.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바로 그런 가까이에 있는 같지만 사실상 멀고 먼 곳에 있는 존재인 것 같다.여가현은 크게 벌렸던 입을 다물며 속상해했다.“우미야, 나도 지금 세상이 이혼한 여자한테 불공평하다는 거 알아. 현재로서 세상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 그런데 나는 이혼을 한 사람도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샘 선배가 너를 지켜줄 거라는 것도 믿어. 너도 이샘 선배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 인정하잖아. 더 중요한 건 이샘 선배의 마음속에서 너의 자리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다는 거야.”차우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현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얻지 못한 것은 언제나 좋아 보이는데 정작 얻고 나면 달라질 거라고. 너 그거 알아? 그날 나상준과 같이 예은이를 데리고 식당에 갔는데 선배가 밖에서 우리를 만났을 때의 표정을 보며 재혼이라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 왜냐하면 아무리 이전의
여가현은 서류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사인을 하려다가 차우미의 말을 듣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할 말이라는 건 뭐야? 무슨 뜻이야? 해야 할 말이 뭔데? 그러니까 네 말은 이샘 선배가 고백하기 전에 네가 먼저 거절하겠다는 거야?”역시 차우미와 함께 자란 사람으로서 차우미의 간단하게 한 말에서 그 의도를 알아챘다.차우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응.”탁!여가현이 펜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거절한다고? 왜? 이틀 동안 나상준 씨가 또 무슨 말로 너를 꼬셨는데 이샘 선배를 거절한다는 거야? 차우미, 제발 멍청한 짓 하지 마!”여가현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여가현의 반응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이어서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뒀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현의 다급한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렸다.여가현이 말을 다 하고 잠깐 숨을 쉬는 사이에 차우미가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다 진지하게 말했다.“가현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휴대폰으로 차우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여가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애써 참고 심호흡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그래, 우선 진정하자.’차우미는 휴대폰 건너편이 조용해지고 거친 호흡 소리가 들리자, 여가현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가현아, 상준 씨랑 상관없이 나도 오랫동안 생각했어. 얼마 전에 선배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 이번에 청주에 와서 선배 어머니를 또 뵀었는데 너무너무 좋은 분이셔. 상준 씨의 어머니보다도 엄청 좋았어. 그분도 나를 예쁘게 봐주셨고 나도 선배 어머니가 너무 좋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이혼했고 선배의 가족과 배경은 너도 잘 알다시피 그런
차우미는 스카이빌리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거기에서 호텔까지 거리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온이샘이 스카이빌리지에서 출발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 놓고 짐을 준비했다.그녀가 모든 짐을 챙겼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익숙한 전화벨 소리에 차우미는 캐리어를 한편에 놓고 손잡이를 거둔 다음 휴대폰을 들었다.휴대폰에서 여가현이라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차우미는 온이샘이 도착했다는 전화인 줄 알았는데 여가현인 것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 전화를 받았다.“가현아, 무슨 일이야?.”“이틀 동안 괜찮았어? 나상준 씨가 괴롭히지 않았어? 너 다친 데 없지? 그 아이를 돌봐주는 건 이제 끝난 거야?”휴대폰 건너편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와 함께 여가현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그녀는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제야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월요일인데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있어?”월요일은 모두에게 바쁜 날이다.“흠! 사실은 어제 너에게 전화하려다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참았어. 어차피 나상준 씨도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에 감히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까. 만약 나상준 씨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직접 나씨 가문의 어르신을 찾아갈 거야. 그분은 자기 집안 사람이라고 감싸주는 분이 아니니까.”여가현의 말에 차우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상준은 이미 여가현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서 믿음이라고 전혀 없었다.차우미는 통유리창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침 햇살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야. 괴롭히거나 다치게 한 것 없어. 이틀 동안 나와 같이 나예은과 아주 잘 놀아 줬어. 상준 씨가 예은이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차우미도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 동안의 나상준은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던 다른 사람이었다.“쳇! 그 아이는 나씨 가문의 아이니 당연히 친절하게 잘해주겠지. 그런데 너는 다르잖아. 너는 이제 나상준 씨의 전처일 뿐이잖아.”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차우미는 온이샘에게 할 일이 끝났다고 아주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냈었다.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온이샘이 오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대화창을 누르고 답변했다.[호텔에 있어.]윙윙.휴대폰 진동소리였는데 또 온이샘의 메시지가 왔다.[알았어. 호텔에서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온이샘이 오겠다는 말에 차우미는 깜짝 놀랐다.‘선배가 여기로 온다고?’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창밖의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고 청주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여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찌그리더니 다시 온이샘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그녀는 워낙 온이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짐을 정리한 다음 아침 먹으러 가려고 했다.그런데 온이샘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답변을 보내고 호텔까지 온다고 할 줄을 몰랐다.차우미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메시지를 보내고 차우미는 짐을 정리하면서 온이샘을 기다리기로 했다.스카이빌리지에서 온이샘은 7시에 강서흔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강서흔이 이른 아침에 온이샘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가 청주에 아직 있으면 만나서 차우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강서흔의 말투에서 조금 다급하고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강서흔이 정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직 청주에 있다고 했는데 현재 차우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어서 언제 만날지는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온이샘은 강서흔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차우미와 식사하기로 한 것까지 모두 말했다.그런데 온이샘의 말을 듣고 강서흔은 더 다급해졌다.‘기다리면 어떡해? 주동적으로 연락해야지.’온이샘의 성격은 온화하고 횡포하지 않기에 차우미를 좋아하더라도 항상 차우미를 존중하고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강서흔은 그런 온이샘을 답답해하며 오늘 무조건 만나야 하니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확정되면 알려달라고 했다.그는 이런 일은 얼굴 보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상준의 회사에서 멀지 않아서 20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차우미는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방 안은 청소를 해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차우미는 차 키와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캐리어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욕실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더니 침대에 앉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때는 이미 매우 늦은 자정 12시 30분이었다.차우미는 오래 전부터 많이 피곤한 걸 애써 참고 있었는데 시간을 확인하자 참았던 피로가 순식간에 확 풀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하품하고, 휴대폰을 머릿장에 올려놓고 점등한 다음 바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점등하는 순간부터 방 안에 고요한 밤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우미는 곧바로 꿈속으로 들어갔다.다만 잠들기 전에 그녀의 눈앞에는 오늘 밤 나상준이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을 할 때의 신중하고 담담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그의 눈빛 속에 많은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서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청주의 밤은 깊어졌고 도시 전체가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도시의 혼잡함과 차들의 경적 그리고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새벽 시간이 되자 모두 사라졌다.같은 시각 스카이빌리지 서재에서 온이샘은 안경을 벗고 의자에 기대어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그는 서재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줄곧 일을 했다.겨우 일를 끝내고 눈을 감았는데 조금 지나자, 온몸의 피곤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눈을 뜨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니 차우미와의 대화창이 나타났다.차우미는 그가 메시지를 보낸 다음 답장을 했는데 비록 아주 간단한 세 글자였지만 온이샘은 만족했다.온이샘은 다시 한번 차우미의 답장을 확인하고는 위로 올려 서로의 대화들을 훑어보았는데 마음이 두근거렸고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주말이 지났으니, 내일은 그 아이도 학교에
하성우는 여전히 담담한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여가현이라고 알지? 며칠 동안 너의 근황을 조사하고 있어. 대체 뭘 잘못해서 여가현에게 조사를 당하는 거야? 어쨌든 변호사이고 이 바닥에서 몇 년 동안 일해서 차우미 씨보다는 더 예민해.”하성우는 비록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그는 여가현이 온이샘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상준에게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상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더니 상관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조사하라고 해.”하성우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하긴, 조사해서 네가 어떤 사람이고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여가현이 너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이미지를 세탁하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너한테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잖아. 그래도 너니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지, 나는 절대 안 돼.”하성우는 나상준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주제 파악도 잘했다.나상준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그만해.”“뭘 그만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네.”하성우는 나성준의 무의식적으로 던진 한마디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상준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나상준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듯 말했다.“나연이가 옆에 있을 때 잘해.”어떤 말은 나상준도 직설적으로 할 수 없었다.그는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상대가 하성우라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게다가 이번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다.“...”하성우는 바로 굳어버렸다.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 나상준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불통이 자기한테로 튕길 줄을 생각도 못 했다.하성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해지자 나상준이 말했다.“나중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