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걱정하시는 걸 알기에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차우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부탁할게.”온이샘은 핸드폰을 건네 받고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건넸다. “네, 아저씨.”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온이샘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질문에 대답했다.상황 설명이 끝나고 온이샘이 말했다.“네. 우미 바꿔드릴게요.”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다시 차우미의 귓가에 가져갔다.차동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우미야.”“응, 아빠.”“우리 지금 출발할 거니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엄마랑 같이 갈게.”차동수는 아까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딸을 위로했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아빠, 나 괜찮으니까 엄마랑 천천히 와. 급하게 서두를 것 없어.”“알았어. 이따 봐.”드디어 통화가 끝나자 온이샘이 말했다.“미안해. 나 도와준다고 나왔는데 다치게 만들어 버렸네.”차우미 부모님의 걱정을 알기에 그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차우미 역시 가족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차우미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선배, 나 아니었으면 그 여자애 구해줬을 거야?”갑작스러운 질문에 온이샘은 멈칫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구했을 거야.”차우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거 없어.”부상과 고열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 만큼은 따스하고 찬란했다.온이샘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병원에 도착한 차동수와 하선주 부부는 급급히 의사에게 차우미의 상황을 물었다. 손에 화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부부는 안심하고 병실을 찾았다.하선주가 병실에 나와 딸을 보살피는 사이, 차동수와 온이샘은 밖으로 나와서 복도로 걸어갔다.병실과 멀어진 뒤에야 온이샘은 입을 열었다.“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우미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문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차를 보자마자 다가가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훤칠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이어서 주혜민도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나상준이 앞장서서 병원으로 들어가고 그녀 역시 남자의 뒤를 따랐다.“한 시간 전에 의식을 회복했는데 바로 잠들었습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 그 뒤로는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나상준의 마중을 나온 남자가 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의사는 뭐래?”“고비는 넘겼지만 의식을 회복한 후에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그래, 알았어.”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임상희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간호사와 간병인이 환자를 지키고 있었다.나상준이 안으로 들어서자 간호사와 간병인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환자 가족분 오셨습니다.”나상준을 병실로 안내한 남자가 간호사와 간병인에게 그들을 소개했다.간호사와 간병인이 자리를 비키자 나상준은 침대에 누운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초췌한 얼굴로 누워서 잠자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주혜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대….”간호사와 간병인,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담당자가 밖으로 나가고 병실에는 나상준과 주혜민만 남았다.남자는 말없이 환자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의사 좀 만나고 올게.”주혜민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어서 가봐. 내가 여기 있을게.”“그래.”말을 마친 나상준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병인은 나상준을 보자 그에게 다가갔다.나상준이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지키고 있어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의사 호출하고요.”“네.”간병인이 안으로 들어가고 마중을 나왔던 남자는 조용히 서서 나상준의 지시를 기다렸다.그는 NS안평 지사 사장 주진수였다. 청주의 급한 연락을 받은 뒤로 병원에 달려와 상황을 알아보고 나상준이 올 때까지 한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나상준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주치의한테 안내 좀 부탁해.”
차우미는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렇듯 절제 되고 리듬감 있는 노크소리는 나상준을 떠올리게 했다.그 사람이 여기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차우미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차동수가 말했다.“내가 나가볼게.”하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약 가져왔나 봐.”말을 마친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차우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차우미는 어릴 때부터 꽤 건강한 편이었다. 잔 감기 한번 걸린 적 없던 아이인데 갑자기 입원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차우미는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위로했다.“나 괜찮아. 곧 나을 거야. 걱정 마.”하선주는 그런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차우미는 하늘이 무너져도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너도 참….”모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을 연 차동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자네….”차동수는 문밖에 선 훤칠한 남자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나상준은 담담한 시선으로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금방 잠에서 깬 건지, 긴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부상 때문인지 약간 창백했다.하지만 원래 차분한 성격 탓인지 그렇게 아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나상준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차동수에게 인사를 건넸다.“장인어른.”낮고 허스키한 음성이 문밖에서 전해지자 차우미가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셔츠에 같은 색상의 정장 바지를 입은 그가 담담한 표정을 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차우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하선주도 나상준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차우미가 이혼한 뒤로 이혜정 여사가 중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로 NS일가의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이혼하기 전에도 별로 연락이 없던 사위가 갑자
날이 어두워지자 병실 안에는 밝은 불빛이 밝혀졌다.뭔가 생소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는 긴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평소처럼 절제되고 차분한 걸음걸이였다.마치 평소처럼 출장을 다녀온 것 같은 모습.차우미는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조화로운 이목구비, 그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저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나상준은 천천히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조용히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차우미는 당황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 여자애가 당신 조카일 줄은 몰랐어. 걔는 좀 어때? 괜찮아?”차우미가 상처를 소독하고 병원을 떠날 때에도 임상희는 여전히 응급 수술 중에 있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나상준은 자신을 친구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위기는 넘겼는데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어.”그 말에 차우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심각해?”NS일가는 방대한 가족이었다. 친척도 많고 방계도 많았지만 차우미는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원래 떠들썩한 걸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지만 시어머니 문하은이 그녀를 별로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에 평소에 어딜 가든 그녀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문하은은 며느리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친척 몇몇을 제외하고 다른 친척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이번에 다친 조카라는 사람도 그러했다.좋은 마음에 선의를 베풀었는데 상대가 공교롭게도 나상준의 조카일 줄은 몰랐다.“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이 물었다.”손은 좀 어때?”차우미는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서 물어본다는
하얀 셔츠에 캐주얼한 정장 바지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은 훤칠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살짝 걷어 올린 옷소매 사이로 그의 건장한 팔뚝 근육이 보였다.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저녁과 과일, 그리고 각종 일용품을 잔뜩 쇼핑하고 돌아온 온이샘이었다.그는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온이샘은 쇼핑백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강서흔의 전화였다.아마 이쪽 상황이 궁금해서 전화했을 것이다.마침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한 손에 짐을 들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 엘리베이터를 나섰다.손에 든 짐에만 신경 쓰다 보니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와 마주쳤다.“여보세요.”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수화기 너머로 강서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미 씨는 어때? 깼어?”그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대답했다.“깼어.”“괜찮은 거지?”온이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많이 좋아졌어.”“괜찮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이번 사고로 둘이 조금 가까워졌으니 너한텐 좋은 건가?”장난 섞인 목소리에 온이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게 왜 나한테 좋은 거야?”“넌 우미 씨 좋아하는데 우미 씨는 너한테 관심 없었잖아. 한번 만나려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생각해야 하는데 마침 다쳤으니까 병문안을 이유로 대놓고 병실 드나들 수 있잖아?”“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이런 기회 흔치 않아. 하늘이 널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싸하긴 하네. 하지만 이런 기회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아.”그는 차라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쥐어짜더라도 그녀가 다치지 않는 게 좋았다.“순정남 납셨네. 야, 닭살 돋아. 이만 끊어. 사랑에 미친 놈!”말을 마친 강서흔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주혜민은 임상희의 병실을 지키며 나상준을 기다렸다.하지만 나간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자 병상에 있는 임상희를 돌아보았다.임상희는 아직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간병인에게 임상희를 부탁하고 병실을 나섰다.복도를 둘러보았지만 나상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휴게실 쪽에서 주진수가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었다.주혜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다가갔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나 대표님께 전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주진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차우미를 보러 간 나상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같이 가려고 했는데 나상준이 위층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기에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30분이 지났다.“상준 씨는요?”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진수가 고개를 돌렸다.“나 대표님은 아래층에 가셨습니다.”“아래층에는 왜요? 의사가 아래층에 있어요?”주혜민이 예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진수는 주혜민의 신분을 잘 모르기에 자세한 사정을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상준과 같이 달려온 것으로 봐서 평범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임상희 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구해졌어요. 그분이 상희 씨를 구하다가 다쳐서 지금 6층 외과 병동에 입원해 있거든요.”주혜민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임상희의 부모님은 해외에서 바로 올 수 없었기에 나상준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해결했다.솔직히 그녀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상준의 사촌누나와 그녀는 해외에서 시간 내서 만날 정도로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임상희와도 몇 번 봐서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다.마지막으로 본 게 두 달 전이었나?물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나상준이었다.그녀는 그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오는 길에 들은 바로 임상희는 죽을 뻔한 상황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고 들었다.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병실로 달려왔기에 위기의 순간에 임상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을 깜빡 잊고 있었다
한편, 하선주와 차동수는 나상준이 병실을 나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실로 돌아갔다.병실로 돌아가자 셋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이혼했다고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딱히 슬퍼하거나 상심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하지만 딸을 잘 아는 부모로서는 3년 간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겨우 마음을 정리했는데 나상준이 다시 나타났으니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차우미는 조심스러운 부모님의 태도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아빠, 엄마, 나 정말 괜찮아.”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그녀는 일단 부모님을 위로했다.하선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아가, 답답하면 엄마한테 얘기해. 힘들면 울어도 돼. 엄마아빠 앞에서는 그래도 돼.”차우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엄마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아빠를 보자 차우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나 정말 괜찮다는데도.”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힘든 걸 마음에 담아두지만 말아. 우리가 걱정하고 속상할까 봐 말을 아끼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우리한텐 너밖에 없어. 이럴 때는 엄마아빠한테 기대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그래, 우미야. 참지 마.”하선주는 여전히 딸이 자신들을 배려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다가 마음에 병이라도 들까 봐 걱정되었다.차우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시름을 덜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우리가 이혼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그냥 그런 생활이 내가 바라던 삶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야.”“그 사람은 항상 바쁘고 출장 나가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길었어. 나도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정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어.”“처음에는 그런
똑똑!노크 소리가 울리자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갈게.”하선주도 급하게 표정을 수습했다.차우미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생필품 사온다고 나갔던 온이샘이 돌아온 것이다.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노크 소리였다.문이 열리고 온이샘이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다녀왔어요, 아저씨.”차동수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어서 들어와.”온이샘은 물건을 들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쇼핑백을 본 차동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뭘 이렇게 많이 샀어?”하선주도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뭘 샀길래 이렇게 많아?”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많지 않아요. 두 분 저녁에 병실을 지켜야 하는데 생필품 좀 샀어요.”마음은 남아서 병실을 지켜주고 싶지만 차우미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참았다.“아이고. 섬세하기도 해라.”하선주는 쇼핑백에 담긴 수건과 치약, 칫솔들을 꺼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그의 정성이 엿보였다.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는 흔치 않았다.“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온이샘은 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을 음식을 꺼냈다.“오는 길에 식당에 들려서 먹을 것 좀 챙겨왔어요. 별거 없지만 오늘은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것 같네요. 내일 안평 병원으로 옮기면 좀 나을 거예요.”차동수 부부는 흐뭇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그들은 온이샘의 자상함이 마음에 들었다.가만히 듣고 있던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선배, 부모님도 오셨으니까 선배는 어서 돌아가서 쉬어. 내일 학교도 나가야 하잖아.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병원 옮기는 일도 아빠랑 엄마가 있으니 충분해.”온이샘은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그녀의 얼굴에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진지함이 보였다.“날 구하다가 손까지 다쳤는데 내가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겠어? 내가 그렇게 야박한 사람으로 보여?”그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차우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온이샘의 성격을 알기에 지금 돌아가도 일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