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차를 보자마자 다가가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훤칠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이어서 주혜민도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나상준이 앞장서서 병원으로 들어가고 그녀 역시 남자의 뒤를 따랐다.“한 시간 전에 의식을 회복했는데 바로 잠들었습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 그 뒤로는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나상준의 마중을 나온 남자가 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의사는 뭐래?”“고비는 넘겼지만 의식을 회복한 후에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그래, 알았어.”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임상희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간호사와 간병인이 환자를 지키고 있었다.나상준이 안으로 들어서자 간호사와 간병인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환자 가족분 오셨습니다.”나상준을 병실로 안내한 남자가 간호사와 간병인에게 그들을 소개했다.간호사와 간병인이 자리를 비키자 나상준은 침대에 누운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초췌한 얼굴로 누워서 잠자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주혜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대….”간호사와 간병인,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담당자가 밖으로 나가고 병실에는 나상준과 주혜민만 남았다.남자는 말없이 환자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의사 좀 만나고 올게.”주혜민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어서 가봐. 내가 여기 있을게.”“그래.”말을 마친 나상준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병인은 나상준을 보자 그에게 다가갔다.나상준이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지키고 있어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의사 호출하고요.”“네.”간병인이 안으로 들어가고 마중을 나왔던 남자는 조용히 서서 나상준의 지시를 기다렸다.그는 NS안평 지사 사장 주진수였다. 청주의 급한 연락을 받은 뒤로 병원에 달려와 상황을 알아보고 나상준이 올 때까지 한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나상준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주치의한테 안내 좀 부탁해.”
차우미는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렇듯 절제 되고 리듬감 있는 노크소리는 나상준을 떠올리게 했다.그 사람이 여기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차우미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차동수가 말했다.“내가 나가볼게.”하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약 가져왔나 봐.”말을 마친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차우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차우미는 어릴 때부터 꽤 건강한 편이었다. 잔 감기 한번 걸린 적 없던 아이인데 갑자기 입원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차우미는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위로했다.“나 괜찮아. 곧 나을 거야. 걱정 마.”하선주는 그런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차우미는 하늘이 무너져도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너도 참….”모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을 연 차동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자네….”차동수는 문밖에 선 훤칠한 남자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나상준은 담담한 시선으로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금방 잠에서 깬 건지, 긴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부상 때문인지 약간 창백했다.하지만 원래 차분한 성격 탓인지 그렇게 아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나상준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차동수에게 인사를 건넸다.“장인어른.”낮고 허스키한 음성이 문밖에서 전해지자 차우미가 움찔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셔츠에 같은 색상의 정장 바지를 입은 그가 담담한 표정을 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차우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하선주도 나상준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차우미가 이혼한 뒤로 이혜정 여사가 중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로 NS일가의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이혼하기 전에도 별로 연락이 없던 사위가 갑자
날이 어두워지자 병실 안에는 밝은 불빛이 밝혀졌다.뭔가 생소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는 긴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평소처럼 절제되고 차분한 걸음걸이였다.마치 평소처럼 출장을 다녀온 것 같은 모습.차우미는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조화로운 이목구비, 그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저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나상준은 천천히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조용히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차우미는 당황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 여자애가 당신 조카일 줄은 몰랐어. 걔는 좀 어때? 괜찮아?”차우미가 상처를 소독하고 병원을 떠날 때에도 임상희는 여전히 응급 수술 중에 있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나상준은 자신을 친구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위기는 넘겼는데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어.”그 말에 차우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심각해?”NS일가는 방대한 가족이었다. 친척도 많고 방계도 많았지만 차우미는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원래 떠들썩한 걸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지만 시어머니 문하은이 그녀를 별로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에 평소에 어딜 가든 그녀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문하은은 며느리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친척 몇몇을 제외하고 다른 친척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이번에 다친 조카라는 사람도 그러했다.좋은 마음에 선의를 베풀었는데 상대가 공교롭게도 나상준의 조카일 줄은 몰랐다.“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이 물었다.”손은 좀 어때?”차우미는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서 물어본다는
하얀 셔츠에 캐주얼한 정장 바지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은 훤칠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살짝 걷어 올린 옷소매 사이로 그의 건장한 팔뚝 근육이 보였다.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저녁과 과일, 그리고 각종 일용품을 잔뜩 쇼핑하고 돌아온 온이샘이었다.그는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온이샘은 쇼핑백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강서흔의 전화였다.아마 이쪽 상황이 궁금해서 전화했을 것이다.마침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한 손에 짐을 들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 엘리베이터를 나섰다.손에 든 짐에만 신경 쓰다 보니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와 마주쳤다.“여보세요.”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남자를 힐끗 바라보았다.수화기 너머로 강서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미 씨는 어때? 깼어?”그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대답했다.“깼어.”“괜찮은 거지?”온이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많이 좋아졌어.”“괜찮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이번 사고로 둘이 조금 가까워졌으니 너한텐 좋은 건가?”장난 섞인 목소리에 온이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게 왜 나한테 좋은 거야?”“넌 우미 씨 좋아하는데 우미 씨는 너한테 관심 없었잖아. 한번 만나려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생각해야 하는데 마침 다쳤으니까 병문안을 이유로 대놓고 병실 드나들 수 있잖아?”“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이런 기회 흔치 않아. 하늘이 널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싸하긴 하네. 하지만 이런 기회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아.”그는 차라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쥐어짜더라도 그녀가 다치지 않는 게 좋았다.“순정남 납셨네. 야, 닭살 돋아. 이만 끊어. 사랑에 미친 놈!”말을 마친 강서흔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온이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주혜민은 임상희의 병실을 지키며 나상준을 기다렸다.하지만 나간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자 병상에 있는 임상희를 돌아보았다.임상희는 아직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간병인에게 임상희를 부탁하고 병실을 나섰다.복도를 둘러보았지만 나상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휴게실 쪽에서 주진수가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었다.주혜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다가갔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나 대표님께 전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주진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차우미를 보러 간 나상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같이 가려고 했는데 나상준이 위층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기에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30분이 지났다.“상준 씨는요?”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진수가 고개를 돌렸다.“나 대표님은 아래층에 가셨습니다.”“아래층에는 왜요? 의사가 아래층에 있어요?”주혜민이 예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진수는 주혜민의 신분을 잘 모르기에 자세한 사정을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상준과 같이 달려온 것으로 봐서 평범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임상희 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구해졌어요. 그분이 상희 씨를 구하다가 다쳐서 지금 6층 외과 병동에 입원해 있거든요.”주혜민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임상희의 부모님은 해외에서 바로 올 수 없었기에 나상준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해결했다.솔직히 그녀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상준의 사촌누나와 그녀는 해외에서 시간 내서 만날 정도로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임상희와도 몇 번 봐서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다.마지막으로 본 게 두 달 전이었나?물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나상준이었다.그녀는 그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오는 길에 들은 바로 임상희는 죽을 뻔한 상황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고 들었다.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병실로 달려왔기에 위기의 순간에 임상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을 깜빡 잊고 있었다
한편, 하선주와 차동수는 나상준이 병실을 나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실로 돌아갔다.병실로 돌아가자 셋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이혼했다고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딱히 슬퍼하거나 상심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하지만 딸을 잘 아는 부모로서는 3년 간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겨우 마음을 정리했는데 나상준이 다시 나타났으니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차우미는 조심스러운 부모님의 태도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아빠, 엄마, 나 정말 괜찮아.”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그녀는 일단 부모님을 위로했다.하선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아가, 답답하면 엄마한테 얘기해. 힘들면 울어도 돼. 엄마아빠 앞에서는 그래도 돼.”차우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엄마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아빠를 보자 차우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나 정말 괜찮다는데도.”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힘든 걸 마음에 담아두지만 말아. 우리가 걱정하고 속상할까 봐 말을 아끼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우리한텐 너밖에 없어. 이럴 때는 엄마아빠한테 기대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그래, 우미야. 참지 마.”하선주는 여전히 딸이 자신들을 배려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다가 마음에 병이라도 들까 봐 걱정되었다.차우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시름을 덜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우리가 이혼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그냥 그런 생활이 내가 바라던 삶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야.”“그 사람은 항상 바쁘고 출장 나가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길었어. 나도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정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어.”“처음에는 그런
똑똑!노크 소리가 울리자 정신을 차린 차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갈게.”하선주도 급하게 표정을 수습했다.차우미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생필품 사온다고 나갔던 온이샘이 돌아온 것이다.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노크 소리였다.문이 열리고 온이샘이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다녀왔어요, 아저씨.”차동수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어서 들어와.”온이샘은 물건을 들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쇼핑백을 본 차동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뭘 이렇게 많이 샀어?”하선주도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뭘 샀길래 이렇게 많아?”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많지 않아요. 두 분 저녁에 병실을 지켜야 하는데 생필품 좀 샀어요.”마음은 남아서 병실을 지켜주고 싶지만 차우미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참았다.“아이고. 섬세하기도 해라.”하선주는 쇼핑백에 담긴 수건과 치약, 칫솔들을 꺼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그의 정성이 엿보였다.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는 흔치 않았다.“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온이샘은 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을 음식을 꺼냈다.“오는 길에 식당에 들려서 먹을 것 좀 챙겨왔어요. 별거 없지만 오늘은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것 같네요. 내일 안평 병원으로 옮기면 좀 나을 거예요.”차동수 부부는 흐뭇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그들은 온이샘의 자상함이 마음에 들었다.가만히 듣고 있던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선배, 부모님도 오셨으니까 선배는 어서 돌아가서 쉬어. 내일 학교도 나가야 하잖아.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병원 옮기는 일도 아빠랑 엄마가 있으니 충분해.”온이샘은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그녀의 얼굴에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진지함이 보였다.“날 구하다가 손까지 다쳤는데 내가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겠어? 내가 그렇게 야박한 사람으로 보여?”그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차우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온이샘의 성격을 알기에 지금 돌아가도 일
13층 VIP 병동.임상희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의사는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나상준은 병실 밖에서 소식을 기다렸다.주혜민은 그의 곁을 지켰다.정신을 차린 임상희는 오기석을 죽여버리겠다며 난리를 피웠다.어려서부터 사랑만 받고 자란 임상희는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그런데 남자한테 배신을 당했으니 당연히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주혜민은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걱정 마. 널 다치게 한 사람에게 삼촌이 변호사를 보냈어. 그쪽도 발뺌하지 못할 거야.”“변호사가 무슨 소용이야? 그 인간 죽여 버리라니까!”“그냥 감옥에 보내는 걸로는 부족해. 그런 인간은 사회의 악이야. 없애버려야 한다고!”임상희는 아픈 것도 잊고 침상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나상준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임상희가 주혜민을 밀치며 주혜민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나상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주혜민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를 돌아보았다.“죽여? 네가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죽인대?”주혜민에게서 손을 뗀 그가 차갑게 말했다.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한 마디에 임상희가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한참 아무 말도 못하고 씩씩거렸다.친척들 중에 그녀가 가장 어려워하는 상대가 나상준이었다.“내가 이렇게 된 거 다 그 자식 때문이란 말이야! 대가를 받게 하는 건 당연하잖아?”임상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그 인간이 날 배신하고 내 친구랑 붙어먹었어. 그것들 키스하고 호텔까지 갔다고! 생각만 하면 역겨워. 절대 용서 못해!”임상희의 두 눈이 증오로 번뜩였다.잠자코 듣고 있던 주혜민이 인상을 찌푸렸다.“그래서 그런 인간 때문에 자해를 한다고?”나상준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주혜민은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나상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임상희를 내려다보았다.“그건….”임상희는 말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그 모습을 본 주혜민은 다가가서 임상희의 어깨를 안아주며 말했다.“울지 마.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알았어요.”가정부는 거실의 유선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주혜민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주 사장님, 사모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에 돌아올 수 없다고 해요.”주혜민은 눈 밑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많이 바쁘시군요. 오늘은 제가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왔으니 방법이 없죠. 다음에는 사전에 약속을 잡고 다시 올게요.”말하면서 주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가정부가 고개를 끄덕였다.주혜민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가방을 들고 가정부에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별정을 빠져나가 가정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정부는 계단에 서 있다가 차가 보이지 않자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다시 거실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문지영의 담담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자, 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 주 사장은 갔어요.”“알았어. 다음에 또 오면 나한테 전화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없다고 해.”“네, 알겠습니다.”문지영은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서혜란은 문지영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누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서혜란은 최근에 늘 문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은 그럼 전시회로 가고 또 가끔은 연극, 뮤지컬을 보고 또 SPA 하러도 다녔다.그야말로 엄청나게 가깝게 지냈다.오늘 문지영과 서혜란은 어느 브랜드사의 요청을 받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는데 오늘 밤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 기부될 거라고 한다.기부에 참여하기 위해 문지영과 서혜란은 각각 물품 두 개씩 샀다.이제 경매가 끝나 두 사람은 연회장의 소파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이 전화 받을 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문지영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
나예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두 눈도 깜빡거렸다.“말하지 말라고? 왜? 그런데 예은이는 분명 큰아빠가 큰엄마를 무릎에 앉힌 걸 봤어. 그리고 큰엄마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나예은은 손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서혜지에게 그때 상황을 재연하려고 했다.“...”서혜지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나예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혜지는 자기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나 싶었다.나예은은 서혜지가 자기를 믿지 않으니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심지어 나상준이 차우미를 보며 했던 행동과 말까지 모두 표현했다.서혜지는 나예은의 다채로운 연기를 듣고 지켜보며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에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서혜지는 분명 자신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어린 나이에 알면 안 되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하지만 나예은이 이틀 동안 나상준과 차우미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듣고는 100% 나상준이 차우미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고 확신했다.그렇다, 지금 나상준은 자신의 사업을 대하듯 진지했는데 심지어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그녀는 나상준이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의 행동이 또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나상준은 차우미를 원하고 있고 차우미는 절대로 나상준의 공세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다.서혜지는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나예은의 눈을 보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예은아, 오늘 엄마한테 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그리고 큰아빠와 큰엄마 함께 놀았다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건 예은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와의 비밀이야. 알겠지?”“왜? 왜 그래야 하는데?”나예은은 왜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왜냐하면...”서혜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
비행기는 정확하게 6시 5분에 출발했다.휴대폰을 끄기 전에 차우미는 하선주에게 비행기가 곧 이륙할 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가 이륙해서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자, 밤을 맞은 청주시는 아주 작게 변했고 차우미는 눈을 감았다.한잠을 자고 나면 집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나상준은 옆에 앉아서 창문 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요히 잠이 든 차우미를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본인도 눈을 감았다.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비행기 내에도 밤을 맞이했다....유엔 빌리지.청주시는 밤을 맞이하여 불빛들이 밝아졌다.서혜지와 나예은은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갔다.나준우가 오늘은 너무 바빠서 저녁식사를 함께 못해서 서혜지는 송 할머니더러 나준우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워낙 서혜지가 직접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나예은과 놀고 싶고 또 나상준과 차우미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때문에 예전처럼 나예은과 같이 직접 나준우에게 저녁밥을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 나예은과 둘이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러 나왔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예은아, 지난 주말에 큰아빠, 큰엄마와 같이 놀 때 큰아빠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사실 진작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젯밤에 나예은을 데리러 갔을 때 이미 곤히 자고 있어서 하지 못했다.그리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서 하교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또 나상준과 차우미와 전화를 한 내용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느라 이제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게 되었다.나예은은 나상준이 나중에 또 같이 놀아준다는 얘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퐁퐁 뛰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비처럼 춤도 췄다.서혜지의 질문을 듣고 나예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있어. 큰아빠는 예은이와 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어.”서혜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다고? 예은아, 큰아빠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야.”나상준은 나씨 가문 사람 중에서 이혜정보다도 말이 더 없었다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