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여준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무 일도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고다정이 급히 안심시켰지만 여준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지금 어디 있어요? 이미 꼭대기 층에 갔어요?”“아니요. 아직 안 갔어요.”고다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구석에 서서 여준재에게 대답하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앞뒤 출입구를 바라보았다.그녀도 왜 그러는지 모르고 그냥 무의식적으로 방비했다.여준재는 그녀가 아직 꼭대기 층에 가지 않았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고다정을 만나려 하는지 모르지만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당부했다.“그 자리에서 기다려요. 나랑 같이 가요.”그는 강수지의 죽음이 고다정에게 마음속 아픈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았다.그러나 고다정은 동의하지 않았다.“올 필요 없어요. 당신이 걱정하는 건 알지만 그쪽에서 저만 만나자고 했는데 당신이 같이 가면 불만을 느끼고 그냥 가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이 밖에 있어야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지원할 수 있잖아요?”여준재는 이 말에 설득당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고다정의 고집을 알았다.“알았어요. 가지 않을게요. 하지만 10분은 시간이 너무 길어요. 거기 도착한 후 5분에 한 번씩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요. 메시지를 받지 못하면 직접 올라갈게요.”“알았어요.”고다정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후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앞에 펼쳐진 한적한 복도를 보며 고다정은 왠지 모르게 앞에 거대한 짐승이 자기를 삼키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긴장하고 무서웠지만 심호흡을 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갔다.“누구 있어요?”고다정이 노크하고 몇 초가 지났지만 안에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노크했다. 아까보다 좀 세게 노크했더니 문이 갑자기 열렸다.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밀면서 재차 물었다.“누구 있어요?”그러나
내려앉은 방문을 보며 왼쪽의 신비한 인물이 불만을 토로했다.“고다정에게 최면을 걸려고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 건 너무 번거롭지 않아? 아까 그렇게 좋은 기회에 직접 고다정을 데려가 손에 있는 자료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됐을걸.”“내가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오늘 저녁 누구도 편안하지 못했을 거야. 이거 봐, 방금 받은 소식이야.”그가 말하고 나서 자기 휴대전화를 던지자, 그의 동료가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받아 확인했다.여준재가 유라 배후의 신비한 협력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그래서 네가 생각을 바꿨구나. 여준재가 진짜 깊이 숨어 있었네.”왼쪽의 신비한 인물은 한마디 감탄하고는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이 모든 것을 여준재는 모르고 있었다.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다정을 안고 연회장에 돌아오자 많은 사람이 시선을 보내왔다.어떤 사람들은 고다정이 정상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놀라며 의아해했다.이때 유라가 관심 어린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준재야, 고다정 씨가 왜 이래?”“몰라. 갑자기 기절했어. 병원에 가봐야겠어.”여준재는 진실을 숨긴 채 고다정을 안고 떠나려 했다.유라가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따라나섰다.“여기서 병원에 가려면 너무 멀어. 아니면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집은 여기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1년 내내 국제 일류 의료진을 고용하고 있어.”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동의했다.고다정이 그 방에 들어간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고다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는 것은 확실하다.병원에 가면 사람이 많고 난잡해 유라네 집보다 안전하지 못하다.그렇게 유라는 이내 여준재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차에 오른 후, 여준재는 의식불명의 고다정을 보며 휴대전화를 꺼내 구남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성곽의 꼭대기 층 방들을 누가 예약했는지 알아봐.”구남준은 이 메시지를 받고 의문이 들었지만 여전히 명령에 따라 조사에 나섰다.여준재
“우리 이혼하자.”이제 고다빈이 가지고 있는 GS그룹의 주식은 이미 모두 자신이 확실히 쥐고 있었고 오늘 저녁에 많은 사람들도 만났으니 진시목은 더는 고다빈과 강제로 엮이고 이 우둔한 여자 때문에 진 씨네 집안까지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다빈은 진시목의 말을 듣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나랑 이혼하겠다고? 난 동의 안 해!”“네가 동의 안 해도 상관없어, 내가 돌아가서 조수와 상의해서 이혼협의서를 작성할 거야, 네가 한 일이 진씨 가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감안해서, 나는 너에게 어떠한 이혼 보상도 주지 않을 거야, 잠시 후에 사람을 보내서 너를 귀국시킬 거야.”진시목은 말 한뒤, 휴대전화를 꺼내 조수한테 연락하려고 했다.그는 이상 보다 빈을 여기에 머물게 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여 존재 측에서 뭔가를 알아내면 자신도 따라서 화를 입을 것이고, 심지어 오늘 밤의 노력도 헛수고가 될 것이다.이를 눈치챈 고다빈은 재빨리 휴대전화를 빼앗아 오고 방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이혼하지도 않을 거야.”고다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잇달아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종업원이 다가와 물었다.“두 분 괜찮으신가요?”“괜찮아요, 소란 끼쳐서 죄송합니다.”진시목은 종업원에게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사과를 전했다.주위 사람들은 그의 태도가 좋은 것을 보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이때 보다 빈은 어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누가 괜찮다고 했어,진시목, 내가 너랑 이혼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으면 해? 알려줄게, 어림도 없어!”그녀는 진시목을 가리키며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차서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을 거로 생각했어생각했어? 너는 내가 지금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으니까 오늘 저녁에 많은 재벌들과 친해지고 나를 버리려고 했잖아, 그리고 재벌들의 딸들과 결혼 할 속셈이었고. 아!”그것은
그곳을 나오자 진시목에서 풍겨오는 음험한 기운이 모두 실사화되고 있었다.고다빈은 그의 몸에서 나는 위험한 기운을 눈치채고 핸드백을 움켜쥐며 자신이 이 남자 앞에서 도망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고민했다.하지만,고다빈이 방법을 알아내기도 전에 진시목은 걸음을 멈춰 홱 돌아서더니,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고다빈을 쳐다보았다.“난 정말 눈이 멀어서 너 같은 여자한테 미련이 있다니 차라리 내가 애초에 고다정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허, 드디어 네 진짜 마음이 드러났구나.”고다빈은 워낙에도 화가 많은 진시목을 무서워했다.하지만 진시목이 자신과을 그 천한 여자와 비교하고, 그녀와 만나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을 들은 그녀는 원한이 치밀어올랐고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네가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어, 그리고 네가 나의 주식을 빼앗아 갔으니 이렇게 쉽게 못 끝낼 줄 알아!”“네가 당했다고? 네가 저지른 이러한 진씨 가문을 해치는 일로 이혼 하는 것인데 네가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진시목은 고다빈의 협박을 받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하지만 이 말말은 정말로 고다빈을 진정케 하였다.그녀가 사고를 계속 쳤고 세 번의 전과까지 있었으니 진시목이 이혼을 신청하면 고다빈은 막을 수가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고다빈은 살짝 황당했다.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여 이를 갈며 말했다.“난 진씨 가문을 해치는 일을 확실히 많이 했어, 하지만 진씨 가문에 이익을 준 것도 나야, 당신이 이번 국제상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것도 주최자 측에서 나의 능력을 보고 너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야, 당신네 진씨 가문이 3등급 가문도 아닌데 어떻게 참가하게 했겠어.”“뭐라고?”진시목은 황당하듯이 바라보았다.고다빈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자만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이번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 다 내 도움이었다고.”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시목의 안색이 변했다.눈을 둥그레 뜨고 고다빈을 바라보는 진시목의 눈빛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두웠다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고다빈은얼굴을 감싸쥐고 눈에는 원한이 가득 쌓여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고 진시목의 섬뜩한 눈빛을 보며 그 남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도통 알 수가 없었다.진 씨네 가문이연루될지 하는 걱정뿐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고다빈은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진시목,나는 일부러 너랑 상의하지 않은 거야, 네가 먼저 나를 해치려고 했잖아, 난 그저 이에는 이로 갚았을 뿐인데.”이 말을 듣더니 진시목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역시 넌 독한 아낙네였어, 진작에 부모님 말씀을 듣고 너와 이혼할 걸 그랬어.”“이혼? 그래, 지금 당장 이혼해, 어차피 지금 이혼 한다고 한들 진 씨네 가문이 나로 인해 몰락한 사실을 바꿀 수는 없어.”고다빈은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는 듯 말했다.진시목은 그녀를 바라보며 화가 나서 가슴까지 아팠고 그녀를 향해 뺨 한 대 날리고 싶었다.고다빈도 눈치를 채 눈에는 온갖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얼굴을 갖다 대며 웃으면서 말했다.“왜? 나를 때리고 싶어? 좋아, 때려봐, 네가 때린 상처로 폭행 증거라고 말할 수 있지.”고다빈의 이런 태도에 진시목은 손을 댈 수가 없었다.필경 가정폭력이 되면 이혼의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이혼하든 하지지 않든 간에 지 씨네 가문이 이미 몰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외곬으로 끝까지 가서 여 씨 집안과 마지막까지 싸우는 것이다.“난 너의 배후 사자를 만날 것이야.”진시목은 손을 거두고 고다빈을 향해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고다빈은 진시목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진시목을 경계심을 품고고 쳐다봤고 그가 또 어떤 생각을 할지 몰라서 물었다.“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뭘 할까?”“너랑은 상관없어, 만약 내가 내일에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난 여준재를 찾아가서 이때까지의 일들을 다 말할 거야,여준재는 내가 주동적으로 말한 것을 보아 너무 지나치게 굴진
여준재는 유라의 말을 듣고 확실히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밤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을게.”“그럼, 제가 하인더러 방을 치우라고 하겠습니다.”유라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옆에 있는 집사에게 분부하였다.“네가 두 사람을 시켜서 여준재의 방을 치우고 내가 비상용으로 꺼내놓았던 피부관리를 한 벌 가지고 가라, 아가씨가 깨어나면 쓸 것이야.”마지막 말은 그녀가 여준재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안타깝게도 여준재의 마음은 고다정에게만 있어서 주의깊게 듣지 못하였다.유라는 이를 보고 입가의 미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집사를 향해 손은 저으며 집사 보고 떠나라는 신호를 보냈다.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나갔다.이때 의료진 쪽에서 채혈이 완료됐다.안젤로가 여준재와 유라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의료진들을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유라는 제일 먼저 고다정 곁으로 간 남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안젤로가 별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일도 있지 않을 거예요.”“알아, 그럼, 오늘 저녁에 잘 부탁해.”말은 유라한테 했지만 여준재의 시선은 고다정을 떠나지 않았다.유라는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지만,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여준재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몇 분이 지난 뒤에 집사가 와서 회보하며 말했다.“주인님, 방이 다 정리되었습니다.”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준재에게 알리려고 하자 그는 이미 고다정을 안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너도 얼른 가서 쉬여라.”여준재는 예의상 유라에게 밤 인사를 했다.그러나 이 말이 유라에게는 다른 뜻으로 들려왔다.여준재가 자신한테 밤 인사를 한 것이 설마 그녀가 여준재 마음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유라는 그렇게 느껴졌다.여준재를 되찾겠다는 그녀의 결심도 더욱 확고해졌다.그녀가
여준재는 유라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고 동의하였다.“며칠 동안 신세 좀 질게요.”“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이렇게 말하니 우리 사이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네요.”유라는 짐짓 우스갯소리로 입을 연 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방해하지 않을게요,고다정씨는 당분간 별일 없을 테니 좀 편히 쉬세요.”여준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몇 분 후,여준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그 속에서는 부윤솔이 잠에서 깨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렇게 늦었는데 왜 나한테 전화했어?”“다정이 한테 일이 생겼습니다.”여준재는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끝으로 그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이 배후의 사람이 이렇게 쉽게 만류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전화 드리는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부윤솔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일을 중시했다.그는 고다정이 이렇게 된 이유가 그 특효약 뿐만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거절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이쪽 일을 책임지고 교대할 것이니 끝나고 이내 돌아가겠습니다.”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1분 1초가 흘러가고 어둑어둑한 하늘이 조금씩 금빛으로 물들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해도 떴다.그리고 햇살을 느낀 듯 고다정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했다.여기는 어디인 거지?고다정은 의식적으로 앉으려고 하였지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녀가 옆을 보는 순간 여준재가침대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았고 눈앞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가슴은 쓰라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어젯밤에 있은 일에 대해 영화 리플레이처럼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여준재가그녀를 밤새 돌보았다는 것을 알았다.원래는 여준재를 놀라게 하지 않고 조심스레 일어나려고
여준재는 고다정의 말을 듣고 어젯밤에 알아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자 갑자기 얼굴빛이 싸늘해졌다.고다정은 그의 얼굴빛이 확 변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여준재야,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일이 생기기는 했어, 너를 기절시킨 후에 너의 몸에 무언가를 주사해 넣었는데 유라쪽 의료진들이 검사해 낼 수 없었어.”여준재는 다정에게 숨기려 하지 않았고 사실대로 말했다.고다정은 이런 상황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고 그녀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인데 무슨 위험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그럼, 이쪽에서 검사해 낼 수 없다면 전문적인 기구가 아닌 게 아닐까? 아니면 시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것은 어때?”고다정은 다급하게 여준재를 쳐다보았다.여준재는 고다정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여기의 기구들은 시 병원의 기구보다 더 나은 듯해, 그들이 검사하지 못했다면 다른 병원도 검사하지 못해.”그 말을 듣고 다정의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자신이 자신에게 치료해 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는 스스로 치료할 수 없었고 이는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자기 남편과 약혼녀의 어두운 표정을 지켜보던 여준재는 마음이 아팠고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기기 검사가 안 돼도 우린 다른 방법이 있어.”“기기도 검사 할 수 없는데 무슨 방법이 또 있겠어?”고다정은 풀이 죽어 말했다.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방법은 꼭 있을 것이야, 그리고 내가 너의 사부님한테도 연락드렸으니 걱정하지 마, 사부님께서 검사해 주시겠대.”“사부님?”고다정은 방금 가라앉은 감정을 추스르고 놀라워하며 말했다.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네 사부님, 내가 네 핸드폰으로 연락처를 찾았어.”이는 사적으로 부윤솔과 연락하지 않다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다정은 듣고 나니 별생각 없이 마음속의 걱정마저도 풀렸다.어떠한 난치병이든 사부의 손에 들어가면 간단해지고 불치병이라도 반드시 죽을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