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의 구남준도 의아해하며 얼른 되물었다.“어르신, 혹시 그 약초 더 있나요? 있으면 저희에게 넘겨주세요. 있는 만큼 저희가 다 구입하겠습니다.”이 약초만 있다면 도련님은 아마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신수 노인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시장에서 야채처럼 한 트럭씩 갖다 파는 줄 아나? 희귀 약초라고 했잖은가?”“그…….”모처럼 한 가닥의 희망을 잡은 구남준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그동안 약초를 공급해 온 사장이 우연히 몇 뿌리 구했다고 넘겼어. 나도 물었지…… 혹시 여분이 있냐고…… 없다더라.”구남준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준재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저 눈빛이 한결 더 어두워졌을 뿐. 그의 지병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요 몇 년 동안 세계 명의를 두루 찾아다녔지만, 완치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지금 그냥 남은 목숨을 부지하며 구차하게 살아갈 뿐이었다. 다행히 신수 노인에게서 치료받은 뒤 약간의 차도가 있었다. 고통도 다소 완화되었다.지금, 이렇게 기이한 효과가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많이 구매하여 약물 연구에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완치가능한 약품을 연구해 낼 수도 있을 테니.하지만, 희망의 불꽃이 다시 꺼졌다. 여준재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듯했다.그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읽은 신수 노인이 큰 소리로 위로를 건넸다.“자, 비록 약초가 몇 뿌리밖에 없지만, 몇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적어도, 이 기간 에는 고통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나중에 그 사장을 다시 만나면 꼭 물어봐 주마. 오늘 밤은 여기서 푹 쉬도록 해라…….”노인은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준재를 향해 한 소리 했다.“내가 아무리 네 병을 잘 치료하고 싶어도 내 의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은둔 명의인 부윤솔을 찾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람을 찾기 전에 먼저 네 건강 좀 챙겨! 넌 사람이지 신이 아니라고. 매일 이렇게 악착같이 일만 하다간 몸
다정은 정성껏 약초에 물을 주며 가지치기와 곁순치기도 같이 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나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약초는 신수 어른에게 넘긴 것보다 훨씬 진귀한 약종으로, 가격도 몇십 배나 더 비쌌다.‘낮에 그 뿌리들을 200여 만 원에 팔았는데, 이런 약초 모종들은 잘만 키운다면 만만치 않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거야.’가치를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약종이니.얼굴의 땀을 훔치던 다정은 약초들을 보며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특히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 꼬맹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다정은 공구를 정리하고 문을 잠근 뒤 집으로 걸어갔다.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꼬맹이가 목욕가운을 두르고 증조할머니와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새끼 고양이 앙꼬와 크림이 흥분하여 옆에서 맴돌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고 즐거웠다.“외증조할머니가 또 졌어요.”첫째 하준이 팔짱을 끼고 앉아있다. 귀엽고 작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더하니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우리 하준이, 정말 갈수록 대단하네!”강말숙이 웃자, 눈이 반달이 되었다. 자기 집 아이가 이렇게 총기가 넘치다니……. 어린 나이임에도 논리 정연하고 언어 표현 면에 있어서도 절대 어른에게 뒤지지 않았다.둘째 하윤이는 엄마를 보고 기뻐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엄마다!”말과 함께 작은 몸이 날듯이 다정에게 달려왔다.하준은 다가와 물을 한 잔 내밀었다.“엄마, 피곤하죠? 물 한 잔 드세요.”두 꼬맹이를 품에 안은 다정은, 모든 피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애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 버텨낼 수 있어!’다음 날 아침, 다정은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그리고 택시를 타고 신의약방으로 향했다.컴퓨터에 환자 정보를 등록하고 있던 프런트 데스크의 여직원 소영은 다정이 문에 들어서는 걸 보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다정 씨
홀에는 오직 한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다정은 잠자코 서서 자리를 떠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금테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바로 어제 교통사고가 났던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기품이 고귀하고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의 특유한 카리스마가 몸에 넘쳐흘렀던 그 사람…… 그때 맡았던 피비린내와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안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남자일 것이다.보기만 해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자와 시비가 붙었으니, 이치대로라면 빨리 도망가는 게 맞다.그러나 의술을 익힌 자로서, 눈앞에 목숨이 시급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모른 척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다정이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안에서 구남준의 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이것저것 따질 틈도 없이 다정은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에 들어갔다.문에 들어서니, 진한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깨끗한 병상에 정교한 얼굴의 남자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두 볼은 비정상적인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다정은 한눈에, 그가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열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듯.한쪽의 구남준과 소영은 어쩔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어젯밤에 신의약방에 온 후 여준재는 줄곧 여기에 묵고 있었다.그전까지는 멀쩡했다.그런데 방금 구남준이 여준재를 불렀는데 미동이 없었다. 혼수상태였다. 숨결이 미약하고 이마는 손을 델만큼 뜨거웠다.당황한 구남준이 바로 신수 어른을 부르러 나간 것이었다.소영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구 비서님, 지금 신수 어르신이 안 계십니다. 도련님의 상황이 급박하니 먼저 병원으로 모시는 건 어떨까요?”“그럴 수밖에요…….”구남준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누르고자 할 때, 얼핏 빨간 그림자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여준재에게 손을 뻗으려
고다정은 난처한 듯 답했다.“묻는 사람이 없어서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의술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진맥 정도는 조금 할 줄 알아요.”의술을 안다고 하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할까 봐 얼버무려 얘기했다.의술이 뛰어난 스승님 밑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일반적인 병을 진찰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구남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 사람을 믿어야 할지 고민 중인 듯했다.“조금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이죠? 고다정 씨, 저는 도련님 목숨으로 장난칠 수는 없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다정은 구비서의 말을 끊었다.“지금 병원으로 옮기기엔 이미 늦었어요. 지금 이분은 기운이 약해져서 언제든지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병원까지 꽤 멀어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고 해도 차로 30분은 족히 걸릴걸요. 그 난리를 피울 동안, 이분은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 같습니다만…….”다정의 말을 들은 소영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일리가 있긴 한데,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고다정 씨, 그럼, 도련님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한 듯합니다.”구남준은 아무 말없이 다정만 쳐다보았다. 눈빛에 그가 원하는 답이 뭔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다정은 한숨을 내쉬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의학에는 한계가 있어요. 병을 100%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 하물며 이분은 지금 목숨이 반밖에 남지 않았어요. 최선을 다하겠다는 얘기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세요.”구남준은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정은 이곳의 단골이다. 소영도 그녀를 여러 번 봤었다.’‘성격이 침착하고 연구개발한 약초도 효과가 뛰어나, 신수 어르신도 평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의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 그냥 속는 셈 치고 맡겨볼 수밖에…….’“구 비서님, 다정 씨에게 한번 맡겨 봅시다. 차도가 있다면 좋고…… 만약 안 된다면 병원에 갈 수밖에요…….”
다정은 머릿속의 생각들을 다 말로 하지 않았다. 굳이 얘기해도 별 소용없으니,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진맥하던 손을 거두고 다정은 고개를 돌려 소영에게 물었다.“소영 씨, 혹시 침 있어요? 침술용 그런 침이요.”소영은 눈이 맑아지며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네. 있어요! 그 말인즉 치료 가능하다는 얘기인가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답했다.“네.”그녀의 의술이 미덥지 않았던 구남준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고다정 씨, 정말 가능한 거죠?”다정은 별말 없이 구 비서를 한 번 쳐다보았다.‘이 사람 벌써 몇 번 확인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이 참 많군.’다정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제가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대체 제가 치료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쪽이 치료하는 겁니까?”구남준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위층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소영은 침이 들어있는 작은 케이스를 하나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이즈의 다양한 침이 촘촘히 꽂혀 있었다.“저 혼자 힘으로는 안 돼요.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말만 하세요.” 구남준도 캐묻지 않았다.“그래요, 소영 씨, 수고스럽지만 이 침들 전부 소독해 줘요.”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말했다.“비서님, 이분의 옷을 다 벗겨 주세요. 아…… 속옷은 빼고요…….”“네?” 소독하러 가려던 소영이 놀라서 다정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소독하러 갔다.구남준은 꼼짝하지 않고 놀란 눈빛으로 다정을 바라보았다.‘어찌 이 여자 앞에서 도련님의 옷을 반쯤 다 벗긴단 말인가? 모양 빠지게…….’‘그리고 침술 하는데 바지를 벗기는 게 어딨어? 기껏해야 상의 정도지…….’구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다정의 초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바지 안 벗겨도 돼요, 대신 바짓가랑이는 걷어줘요, 말 안 따랐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쪽 책임인 겁니다…….”다정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쳐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쉽게 깨어난다고?’‘도련님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침 몇 대 놓고 10분 기다리면 깨어날 수 있다고……?’다정의 확신에 찬 말투에 구남준과 소영은 의아했지만, 별말 없이 초조히 기다렸다.구남준은 몇 번이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여준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저 여자 말을 대체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르겠네…….’두 사람의 긴장한 모습과 달리, 다정은 평온했다.다정은 침대 위의 남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말도 안 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병색으로 창백했지만, 이목구비는 조각같이 정교하고 또렷했다.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서글서글한 눈매에 총기가 넘치는 반짝거리는 눈, 단정하게 생긴 오뚝한 코, 복사꽃 같은 입술.비록 몸 정면은 보이지 않지만, 탄탄한 근육이 크고 건장한 몸에 보기 좋게 분포돼 있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남성미가 넘쳤다.‘어떻게 이렇게 잘생겼지?’힐끗 훑어보았을 뿐인데 다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찌릿했다. 이렇게 쳐다보는 것이 예의 아니라고 자책하며 시선을 돌려 소영 옆으로 가서 기다렸다.구남준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10분 지났어요.”다정은 여재준에게 다가가 침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천천히 침착하게.마지막 침을 몸에서 뽑자, 침대 위의 남자는 긴 속눈썹을 떨며 손을 움직였다.깨어났다.잔뜩 긴장했던 구남준이 총총걸음으로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도련님, 기분이 어떠십니까?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소영은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여준재의 몸을 가려주었다.열이 아직 내리지 않은 여준재의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봤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입술을 오므리고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지만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는 기력이 없는 나지막한 소리로 구남준에게 물었다.“나…… 이거, 왜 그래?”구남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여준재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얼른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입을
소영은 다정의 분부대로 약을 한 시간 동안 달여서 여준재에게 먹였다.그는 여전히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다. 깨어났을 때는 의식조차 혼미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몇 시간이 지나고,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구남준은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약을 한 그릇 마셨을 뿐인데, 준재 도련님의 열이 내리고 얼굴색도 많이 돌아왔다. 정신도 멀쩡한 것이, 방금 전의 그 허약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렇게 침 몇 곳 놓고, 약 한 그릇 마셨다고 이게 가능하다니.’여준재의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도련님, 다행이에요. 드디어 깨어나셨군요!”소영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방금까지도 다정의 의술을 의심했었는데.그러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도련님, 정말 어디 불편한 곳 없습니까?”준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아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지병때문에 늘 가슴이 답답해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그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도 가벼웠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전에 지병이 재발했을 때 여러 차례 신수 어른께 도움을 청했었다. 그때 먹었던 약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약효가 뛰어나진 않았다.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물었다.“이번에 먹은 약은 뭐야? 효과가 아주 좋네.”.“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암튼 처방전은 소영 씨에게 있습니다.”사방을 둘러보니 신수 어른이 보이지 않자, 한마디 덧붙였다.“신수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어르신이 나에게 처방해 주셨지?”구남준은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대답했다.“어르신은 지금 약방에 안 계십니다. 잠깐 외출하셨는데…… 곧 돌아오실 겁니다. 도련님, 이번에는 신수 어르신이 치료해 준 것이 아닙니다. 약도 어르신께서 처방한 것이 아니고요…….”여준재는 얼떨떨해졌다. 신수 어른보다 의술이 더 높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누가 처방한 거야?”“그게…….” 구남준은 다정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들어 그녀
“어르신이 나가신지 얼마 안 되어서 도련님의 상황이 악화되었어요. 혼수상태에 빠져서 열도 나고…… 아주 심각했었습니다. 어르신께는 전화도 안 받으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마침 어르신을 찾아뵈러 온 고다정 씨가 도와주었어요. 다정 씨 덕분에 도련님이 이렇게 빨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정 씨 의술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글쎄, 침을 몇 곳 놓으니까, 도련님이 이렇게 일어나셨지 뭐예요…….”신수 노인이 나타나니, 소영은 마음속에 걸려 있던 큰 돌이 내려간 듯 안심되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설명하였다.“어르신, 사실이에요.”구남준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다정이가?” 신수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네. 맞아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신수 노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더해졌다.“다정이가 의술을 할 줄 안다고?”“네, 알고말고요. 게다가 의술도 아주 대단하던 데요. 저도 오늘에야 알았어요……. 어르신이 다정 씨랑 친하니까…… 진작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소영의 말을 듣고 신수 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다정과는 그래도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그녀가 약재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만 알 뿐, 의술을 할 줄 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다정이 그 녀석,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구먼.’‘그런데 생명이 위독한 준재를 다정이가 구하다니…….’“녀석아, 손 좀 내놔, 내가 맥을 짚어 보마.”여준재의 맥박에 손을 얹고 한참이나 진맥하던 신수 노인이 갑자기 혀를 내둘렀다.준재를 치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맥이 이렇게 평온한 것은 처음이었다.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심각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원기 왕성해질 수 있지?“소영아, 다정이가 침을 놓을 때…… 무슨 혈을 찔렀더냐?”신수 노인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다정이가 정말 이 녀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큰 경사일 것이다.소영은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