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빈은 장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여론을 조작한다는 거야?”장미도 궁금했다.[아직 누군지 알아내지는 못했어요.]다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까놓고 말해서 고 씨 집안과 진 씨 집안 외에는 이런 능력을 갖춘 집안이 많지 않았다.‘도대체 누구인 거야?’다빈은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아 장미에게 지시했다.“기사를 내릴 방법을 계속 찾아봐!”다빈은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다빈은 바로 서재로 달려가 진시목을 찾았다.시목이 서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다빈이 문을 열었다.“다빈아, 무슨 일이야?”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시목은 걱정스럽게 물었다.다빈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내 부정적인 기사가 내려가지 않았어. 오히려 더 이슈가 되고 있다고. 근데 고다정 기사만 다 내려가 있어. 누가 뒤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아. 시목 씨, 힘 좀 써서 나 좀 도와줘.”JS그룹은 광범위한 산업 분야를 다루고 있었고, 연예계도 섭렵하고 있었다.JS그룹은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그룹이었다.다빈의 말을 들은 시목은 절반 정도 처리한 서류를 내려놓았다.그는 다빈을 위로하며 말했다.“다빈아, 걱정하지 마. 바로 이 일을 조사할 사람을 붙여볼 게.”시목은 JS그룹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다빈이의 기사는 어떻게 된 일이야?”직원은 잠시 알아보더니 그에게 대답했다.[도련님, 확실히 누군가가 중간에서 방해하고 있습니다. 여론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전부 도련님과 아가씨를 비난하고 있습니다.]시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누가 그랬는지 알아냈어?”[아직 찾지 못했습니다.]직원도 난처했다.시목이 전화를 끊고 SNS를 열어 보자 그의 미간은 더 세게 찌푸려졌다.그들을 비난하는 댓글은 늘어나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다정에 대한 기사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시목 씨,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 어떡해! 이러다 연예계에서 퇴출당하는 거 아니야?”다빈
이 말에 여준재는 수중의 일을 멈추었다.준재는 눈썹을 찌푸리고 잠시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다정을 찾아도 소용없어. 이 일은 결국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렇다면 그 두 집안은 아마 고다정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남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무실을 떠났다.남준이 떠난 후, 준재는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내가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이때의 다정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다정은 눈살을 찌푸리고 눈동자를 굴렸다.보면 볼수록 다정의 표정은 더욱 미묘해졌다.다정의 기사는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다정은 SNS에‘고다정'이라는 세 글자를 검색했다. 그 결과,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다정을 욕하던 사람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다정에게 불리한 그 어떤 발언도 찾을 수 없었다.속도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신속이었다.다정은 SNS에 대해 관심이 없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지만, 그런 다정이었음에도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지는 알 수 있었다.분명 누군가가 다정을 도와 기사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많은 돈을 써야 해. 도대체 누가 한 걸까?’다정이 아는 큰 인물 중 고씨 집안사람과 진씨 집안사람도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설마, 여 대표님?’다정은 눈을 크게 떴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리가 없었다. 또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여 대표님한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데,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다정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준재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정은 자신과 준재의 관계가 그 정도로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럼 도대체 누가 이런 거지?’다정은 모든 정신을 집중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찾고 싶었다.다정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고경영이었다.갑자기 다정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그 전화를 거절했다. 이미 어머니의 목걸이는 가져왔으니 더 이상 고씨 집
전화를 끊은 고다정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 관자놀이를 비볐다.‘왜 저런 사람이 내 친아빠인 거야!’화가 치밀어 오른 다정은 목이 메어 기침을 두어 번 했다.하윤과 하준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두 아이는 다정의 양옆에 서서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봤다.“엄마, 왜 그래요? 누가 괴롭혔어요?”하준은 다소 화를 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엄마, 괜찮아요? 화내지 마요.”하윤은 다정의 팔을 잡아당겼고 목소리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사랑스러운 자신의 두 아이를 보자 다정은 순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엄마는 괜찮아.”두 새끼 고양이도 야옹야옹 울며 달려와 다정의 손을 핥았다.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 그 장면은 따뜻하면서도 아름다웠다.다정은 이내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적어도 다정에게는 진정한 가족이 있다. 아이들과 외할머니는 다정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강말숙과 임은미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그녀들은 아이들과 다정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아마 또 진씨 집안이나 고씨 집안사람이 전화했겠지.’말숙은 뉴스를 보지도 않았고, SNS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두 집안은 절대 다정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외할머니.”다정은 서둘러 일어나 외할머니를 부축하며 앉혔다.말숙은 앉자마자 다정에게 물었다.“다정아, 방금 전화한 사람은 누구니?”다정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알렸다. 아니, 숨길 필요도 없었다. “고경영이요, 고씨 집안과 고다빈 일이 아니면 그 사람이 저한테 전화할 이유가 뭐 있겠어요.”다정은 콧방귀를 뀌었고, 그런 경영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다.말숙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고씨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결코 말숙은 고씨 집안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손녀가 그들과 연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다정은 할머니의 옆에 앉아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했다.“누가 인터넷에 고경영이 바
저녁 식사 후, 임은미는 집으로 돌아갔다.하준과 하윤은 엄마를 도와 하준은 설거지하러 갔고, 하윤은 식탁을 닦고 의자를 정리했다.스스로 자신을 돕는 아이들을 본 고다정은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하윤은 집안일을 마치고 다정에게 달려가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또 뭐 하면 돼요?”다정은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오빠가 설거지를 끝내면 엄마랑 국어공부 하자. 어때?”이번 해가 지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쳐줘야 했다.다정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사용할 교재들도 미리 사 놓았다.‘미리 공부를 해 놓는다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더욱 수월해질 거야.’‘예습은 해도 나쁠 게 없잖아.’이를 생각한 다정은 매우 흡족했다.하윤이 잠깐 생각하더니, 곧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좋아요! 하윤이는 배우고 싶어요!”하윤은 조그마한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정말 활기차고 귀여웠다.다정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하준아, 설거지 다 했니?”“네, 엄마!”하준은 대답한 뒤, 다정에게 달려갔다.“오빠, 엄마가 우리한테 단어를 알려주신대!”하윤은 오빠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하준이 다정을 바라보니 하윤은 매우 신나 보였다.하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다정은 그들에게 말했다.“방으로 가자. 오늘 엄마가 3학년 내용을 가르쳐 줄게!”다정은 미리 준비한 교재를 꺼내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그런 다음 책상 중앙에 앉아 양옆으로 아이들을 앉혔다.“자, 엄마랑 같이 읽어보자.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기만 아는 비밀스러운 내용이야.”교재에 나온 단어를 가리키며 아이들을 정성껏 가르쳤다.“저도 알아요, 엄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은 진심, 맞죠?”하윤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다정은 다시 종이를 꺼내 두 아이에게 받아쓰기 연습을 시켰다.“엄마, 우리 말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받아쓰기도 어렵지 않죠.”네 권의 교재를 다 읽은 하준은 어깨를 으쓱거렸고, 하윤도 하준과 같은 생각을 했다.“엄
고다정의 서재에 있는 고대 의학 서적 중 한 권은 약용 식단에 관한 것이었다.어젯밤, 다정은 책을 읽다가 날을 지새웠다.다정이 동의한 이상, 여준재에게 감사해야 했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취해야 했다.약식은 활력을 돋게 해주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신수 노인은 다정의 말을 듣자마자 흥분하기 시작했다.‘다정이가 준비하는 약이라면, 아주 특별한 조합임이 틀림없어.’신수 노인은 다정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아주 조금.신수 노인은 가슴을 두드리며 문제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다정아, 무슨 약재가 필요하니? 지금 바로 소연이한테 꺼내 오라고 할게.”다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필요한 약재가 너무 많아 말로 다 하지 못했다.“리스트를 적어서 드릴게요.”다정은 밝은 얼굴로 신수 노인에게 말했다.신수 노인은 긍정적인 태도로 솔선하여 펜과 종이를 가지러 갔다.“잠시만 기다리거라.”다정은 예쁜 글씨체로 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신수 노인의 과도한 추궁을 방지하기 위해, 다정은 꼭 필요한 약재만 적었다.만약 신수 노인에게 처방전을 공유한다면, 아마 오늘 다정은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신수 노인은 다정의 리스트를 살펴보았다.그 종이에는 흔치 않은 약재들이 많이 적혀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신수 노인은 다정이 있는 틈을 타 물었다.“다정아, 이 약재들은 뭐니?”신수 노인은 리스트에 있는 약효 성분을 가리키며 수염을 쓰다듬었다.처방을 고민하던 다정은 힐끔 쳐다보고 성실하게 대답했다.“이건 반설련이에요. 일반 설련을 인삼 물에 담근 후, 열흘간 햇빛에 말리면 설련이 노랗게 변해요. 그게 반설련입니다.”신수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왜 인삼 물에 담가야 하니?”인삼과 설련의 약효는 상극이었다.인삼으로 우려낸 설련은 병을 고칠 수 없을뿐더러 독이 될 수 있었다.다정은 한숨을 쉬며 신수 노인에게 대답했다.“설련이 인삼을 만나면 독이 되지만, 햇볕을 쬐면 독성을 없앨 수 있어요. 반설련은
오후가 되자 고다정은 여준재의 집으로 향했다.다정은 행여나 길을 잘못 들었을까 준재가 보내준 주소를 반복해서 확인했다.준재가 사는 곳은 제란원이었다.다정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모던한 스타일의 별장과 넓은 정원이었다.공기는 신선하고 상쾌했다.다정은 탁 트인 시야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역시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환경이 정말 좋았다.정원의 배치도 관광지처럼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언뜻 보면 전문 디자이너가 특별히 디자인한 것 같았다.집사는 일찍이 별장 문 앞에 서서 다정을 기다리고 있었다.집사는 다정을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고 선생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전 여 대표님의 집사, 이상철입니다. 편하게 이 집사라고 불러주세요.”다정은 정중하게 인사하며 악수하였다.“안녕하세요, 이 집사님.”“대표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셔서 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얼른 들어오세요.”상철은 정중하게 다정을 집으로 들였다.별장에 들어간 다정은 두 눈을 의심했다.방의 장식은 주로 무채색이었으며, 심플하고 무난했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무의식적으로 벽을 본 다정은 비싸 보이는 벽화와 장식품들에 놀랐다.어느 것 하나도 고급스럽지 않은 건 없었다.다정은 감탄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역시 여씨 집안이야. 대단해.”상철은 다정에게 차 한 잔을 내어주며 앉혔다.다정은 지체하지 않고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이 집사님,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여 대표님께 드리는 약재는 약식으로 사용되는 거예요. 괜찮으시면 최훈 요리사님을 불러주시겠어요?”상철은 그런 다정의 말에 최훈을 불렀다.훈은 서둘러 왔고, 여전히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딱 봐도 요리하다 다정에게 달려온 모양이었다.“고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훈은 다정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상철은 미리 훈에게 대표님의 주치의이고 귀한 손님이므로 잘 대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했다.“대표님을 위한 약식을 만들려면 먼저 이 두 가지 약재를
고다정은 그의 생각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다정은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고, 그런 모습은 꽤 귀여웠다.“약식이니 약 맛이 나겠죠. 하지만 약식과 한식은 완전히 달라요. 식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재는 대부분 향긋하고 조리법도 아주 독특해요.”다정은 그 부분에 대해선 자신의 요리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그런 다음 다정은 한 마디 덧붙였다.“제 요리 실력까지 더해졌으니, 맛은 괜찮을 거예요. 못 믿겠다면 한 번 드셔보세요!”그렇게 말하며 다정은 준재에게 국을 한 숟갈 떠 주었다.다정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여준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마치 아내가 남편에게 간을 보라며 먹여주는 모습과 같았다.그의 마음이 요동치는 동안 다정이 들고 있던 숟가락은 준재의 입 앞까지 왔다.“얼른 드셔보세요.”정신을 차린 준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아주 피곤한가 봐.’준재는 한 숟갈 받아먹었다.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고, 단맛이 가미되어 있었다.‘고 선생 말이 맞아. 정말 맛있잖아?’준재는 곧바로 칭찬했다.“맛있네요.”다정은 그의 말에 만족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말했잖아요.”‘역시 내 요리 실력은 죽지 않았어.’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여 대표님,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먼저 들어가 볼게요.”그렇게 말하고 다정은 소파 위에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잠시만요.”준재는 다정을 붙잡았고, 다정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섰다.“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다정의 가족들은 다정을 기다릴 게 뻔했다. 다정의 머릿속에는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준재의 이목구비는 조명에 비쳐 더욱 자기주장을 띠고 있었다.준재는 가볍게 웃으며 다정을 향해 눈썹을 치켜떴다.“오신 김에 밥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여기까지 오셔서 보양탕을 끓여주신 고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사실 준재는 왠지 모르
고다빈은 무거운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다빈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고, 두 눈에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다빈이 왔니? 너 왜 그래?”심여진은 인기척에 부엌에서 나왔고, 다빈은 어깨를 들썩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진은 딸의 흐느끼는 소리에 대충 짐작이 갔다.여진은 한숨을 쉬고 다빈 옆에 앉아 딸의 등을 토닥였다.“이번 일 때문이니?”다빈은 자리에 앉아 눈물을 닦았다.다빈은 화장을 하지 않았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다빈은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목이 메어 쉽게 나오지 못했다.“저…….”그때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울음소리가 다빈의 말을 막았다.여진은 마음이 아파 더 이상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여진은 딸을 품에 안고 부드럽게 위로했다.“다빈아, 다 지나갈 거야. 뭐라도 먹어. 엄마가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요리해 놨어.”다빈은 고개를 저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안 먹을래요.”지금 다빈에게 입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밥은 먹어야지. 엄마 말 들어.”여진은 엄격하게 말했다.다빈은 입술을 오므리고 끅끅거리며 말했다.“제…… 드라마와 영화, 광고 모두 다…… 계약 해지됐어요. 이대로면 전 끝장이라고요!”그렇게 말한 후, 다빈은 여진을 끌어안으며 목 놓아 울었다.“왜 그래?”경영은 딸의 울음소리에 침실에서 나왔다.여진은 딸의 말에 마음 아파하며 재빨리 경영을 설득해서 도와달라고 했다.“다빈이의 일이 모두 취소됐어요. 여보, 얼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이 일은 오직 아버지인 경영만이 다빈을 구할 수 있었다.다빈은 눈물을 닦고 여진의 품에서 벗어난 후, 경영에게 부탁했다.“아빠, 제발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고다정을 말려야 해요.”경영은 조용히 앉아 고개를 돌리며 한숨 쉬었다.여진은 딸을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다빈아, 고다정은 우리 좋은 꼴을 못 볼 애야. 너한테 이런 상처를 준 애잖니.”다빈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감히 YS그룹을 건드릴 수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