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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Author: 꽃도령
최학수는 생각에 잠겼는데 이마의 주름은 계속 깊게 패 있었다.“그럼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노지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부군께서는 비범한 공을 세우셨지만, 그 공은 이미 다른 데 쓰였습니다.”

이간질이라면 그녀도 할 수 있다.

그녀의 말은 조서녕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조서녕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노지연의 눈빛은 차분했다.

“다른 뜻은 없네. 단지 아버님과 함께 이 일을 분석하고 있을 뿐이라네. 한 번 쓰인 공은 다시 쓸 수 없고 다 써버리면 끝인 거라네. 폐하께서는 밝으신 분이시니 공적부에 따로 장부가 있을 걸세.”

여러 사람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스치며 마음속에도 수많은 생각과 추측이 떠올랐다.

조서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언니가 화제를 돌리려는 게 틀림없어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왜 폐하께서 면담하련다는 거예요?”

모두의 관심이 다시 이 문제로 쏠렸다.

그녀가 이 일과 무관하다고 부인한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면성을 하게 된 걸까? 그녀는 후부의 며느리인데, 후부의 미래에 불리한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최학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가 내실 부인일 뿐인데 무슨 일로 성상께서 면담을 요청하셨다는 거냐?”

노지연이 되물었다.

“동생 또한 내실 부인이잖습니까. 동생은 면성을 하실 수 있는데, 저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조서녕이 모욕당한 표정으로 경멸 어린 어조로 말했다.

“언니가 감히 나와 자신을 비교하다니요?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의술이 있지만 언니에게는 뭐가 있어요?”

노지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세상에 의술에 모두 정통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네. 그렇다고 모두 동생보다 못하다는 것도 아니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하늘 위에 하늘 있는 법인데 동생이 이렇게 도량이 좁은 걸 밖에 알려지면 웃음거리가 될 걸세.”

노지연의 말에 조서녕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반박하려는 순간, 최익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녕이 틀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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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학수는 생각에 잠겼는데 이마의 주름은 계속 깊게 패 있었다.“그럼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노지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부군께서는 비범한 공을 세우셨지만, 그 공은 이미 다른 데 쓰였습니다.”이간질이라면 그녀도 할 수 있다.그녀의 말은 조서녕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조서녕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노지연의 눈빛은 차분했다.“다른 뜻은 없네. 단지 아버님과 함께 이 일을 분석하고 있을 뿐이라네. 한 번 쓰인 공은 다시 쓸 수 없고 다 써버리면 끝인 거라네. 폐하께서는 밝으신 분이시니 공적부에 따로 장부가 있을 걸세.”여러 사람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스치며 마음속에도 수많은 생각과 추측이 떠올랐다.조서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언니가 화제를 돌리려는 게 틀림없어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왜 폐하께서 면담하련다는 거예요?”모두의 관심이 다시 이 문제로 쏠렸다.그녀가 이 일과 무관하다고 부인한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면성을 하게 된 걸까? 그녀는 후부의 며느리인데, 후부의 미래에 불리한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최학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네가 내실 부인일 뿐인데 무슨 일로 성상께서 면담을 요청하셨다는 거냐?”노지연이 되물었다.“동생 또한 내실 부인이잖습니까. 동생은 면성을 하실 수 있는데, 저는 왜 안 된다는 겁니까?”조서녕이 모욕당한 표정으로 경멸 어린 어조로 말했다.“언니가 감히 나와 자신을 비교하다니요?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의술이 있지만 언니에게는 뭐가 있어요?”노지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세상에 의술에 모두 정통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네. 그렇다고 모두 동생보다 못하다는 것도 아니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하늘 위에 하늘 있는 법인데 동생이 이렇게 도량이 좁은 걸 밖에 알려지면 웃음거리가 될 걸세.”노지연의 말에 조서녕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반박하려는 순간, 최익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녕이 틀린 말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8화

    노지연은 혼수가 많고 친정아버지도 종3품 호조참의였는데 이 모든 것은 고아 출신인 조서녕이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아들이 두 명의 정실을 두고 또 양쪽 모두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왜 굳이 하나만 선택하며 밑지는 장사를 한단 말인가?최학수는 탁자를 크게 내리쳤다.“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로다! 지연이는 우리 최씨네 며느리인데 이렇게나 분수를 모르고 시집을 배신하는 거냐! 정말 화근이 따로 없구나! 여봐라, 며느리 노지연을 내 앞으로 데려오거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후부는 이런 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최익만은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 말리지 않았다.‘저 여인은 제대로 혼내줘야 해. 그래야 자기가 이젠 최씨네 며느리라는 걸 깨달을 테니까.’옥류각.노지연은 하인의 전갈을 받았다. 외출금지령을 받아 나갈 수 없다고 말했으나 하인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마님, 소인은 선평후의 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노지연은 의아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두 번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는 이 시아버지와 거의 교류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그녀를 불렀을까?노지연이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틈을 타 김 어멈은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말을 전달하러 온 어멈에게 건넸다.“언니, 수고하셔요. 얼마 안 되니 술 한 잔 사드세요.”이 어멈은 일부러 사양하는 척하다가 결국 소매 속에 넣으며 누그러든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마님께서 집안을 맡으셨을 때 우리 같은 하인들을 항상 너그럽게 대해주셨어요. 오늘 선평후 외에 도련님과 작은 사모님도 있어요. 아마 도련님의 발령 때문에 말다툼이 일었나 봐요.”노지연이 준비를 마치자 김 어멈은 조용히 방금 알아낸 정보를 귀속말로 전하며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김 어멈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마도 대 공자님께서 배정받은 관직이 좋지 않아 후작님과 부인님께서 불만을 품으셨고, 영부인께서 곁에서 부채질하시며, 아씨께서 황상 앞에서 고언(告言)을 하셨다고 점점 더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7화

    기분이 우울해서 후부에 돌아온 최익만은 곧바로 영복당에 불려갔다.모처럼 오늘은 선평후 최학수도 함께 있었고 조서녕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모두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좋은 소식이 있다. 이씨 집안에서 마침내 후부의 청첩을 받아들였단다. 이제 이 대인과 마님께서 직접 후부에 와서 너희 혼인을 축복해줄 것이다.”강미숙이 말한 이 대인과 마님은 이 귀빈의 오라버니와 형님으로서 이씨 가문의 가주이기도 했다. 이명원은 2품인 대제학이었고 이 부인은 명문가인 정씨 가문 출신이었다.이 귀빈이 낳은 여섯번째 황자는 유력한 태자 후보였다. 그러니 이씨 가문은 진정한 권문세가로서 선평후부에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집안이었다.이제야 비로소 이씨 가문과 연줄을 맺게 되자 최학수와 강미숙은 자연히 기뻐했다.이 좋은 소식에 최익만의 우울했던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서녕을 바라보았다.“이 모든 건 부인의 공로였소.”최학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서녕을 칭찬했다.“네가 이번에 후부를 위해 공을 세웠구나. 익만이가 너와 혼인하는 건 정말 잘한 일이다.”강미숙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제가 서녕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집안을 흥성하게 할 수 있는 상이 보였는데 역시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강미숙은 진심 어린 말이었다. 조서녕이 궁에서 일하며 귀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앞으로 더 많은 공을 세울 수 있을 텐데, 그럼 후부가 출세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최학수도 강미숙과 같은 생각을 하며 더없이 만족했다. 자신이 일찍이 조서녕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아들이 동등처 교지를 청하는 것을 묵인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 결정이 옳았다.두 사람의 태도에 조서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의 자부심이 절정에 달했다.“아버님, 어머님,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후부의 영광이 바로 저의 영광입니다.”“정말 착한 아이구나. 너를 더 일찍 맞아들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말에는 숨겨진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6화

    이 소식은 옥류각에도 전해졌다.부영과 단연은 질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운이 좋았을 뿐입니다.”“그럼요. 젊은 계집애가 의술이 얼마나 뛰어나겠습니까? 그저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요.”노지연은 오히려 조서녕을 위해 변호했다.“다른 건 몰라도 의술은 좋은 편이다.”하지만 이 세상에 의술이 뛰어난 의녀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생각이 미치자, 노지연은 김 어멈을 불렀다.“어멈, 우쇠에게 분부할 일이 있습니다.”김 어멈은 즉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김 어멈은 즉시 진지한 표정을 지시를 기다렸다.“창고에 있는 인삼을 꺼내 단필무 아저씨에게 전해주세요. 만약 이조판서 현씨네 가문에서 오면 평소 가격의 3할에 되는 가격으로 파세요. 만약 5일 안으로 오지 않으면 아저씨더러 그 사람들이 오게끔 방법을 찾으라고 하세요.”“그리고 현씨 가문의 사람이 오면 한경의 서쪽에 있는 국자 거리에 의원이 한 명 있는데 중풍 치료에 능하다고 해요. 심지어 제때 치료를 하면은 완쾌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전생에 현씨 가문의 어르신은 갑자기 중풍으로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현씨 가문에서는 조서녕을 불러 치료했지만 시간을 지체한 탓에 목숨을 건졌어도 입이 비뚤어진 반신불수가 되었다.부친상 때문에 아들이 관직에서 3년간 물러나 있어야 할까 봐 어르신은 존엄 없이 몇 년을 비참하게 버텼다.노지연이 현씨 가문에 국자 거리의 의원을 추천한 것은 조서녕의 공을 빼앗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더러 자신의 추천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또 어르신이 더 나은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이 외에도 그녀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이 현 판서는 성격이 강직하고 사심이 없었다. 하지만 관리들의 승진을 주관했던 터라 많은 이들이 그에게 접근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썼지만 거절당했다.아버지 노성현은 정3품 호조참의 자리에 오래 머물렀는데 현 판서를 통해 올라가려고 했어도 번번이 실패했다.노지연의 이 행동은 노성현을 위해 발판을 깔아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녀가 이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5화

    노지연은 가슴이 철렁했다.우람진 체격을 가진 그가 다가오자 그녀는 불안해졌고 혐오감이 밀려왔다.그녀는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직 부부이기 때문에 만약 그가 정말로 원한다면 그녀는 거절할 권리조차 없었다.‘내 몸에 손을 댄다면 난 정말 구역질 나서 죽을 것 같아.’하지만 노지연은 당황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다.“좋습니다. 제가 바라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조서녕 동생이 이 일을 알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요. 아마 질투로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적장자를 낳게 된다면 다시는 저를 억누를 수 없을 겁니다.”이 말은 마치 머리 위로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의 욕망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역겨운 듯 두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내 자식을 낳는다고 했소? 꿈도 꾸지 마오.”노지연이 소매 속에서 몰래 움켜쥐었던 주먹이 살짝 풀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긴장했다.최익만은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평생 부인은 내 자식을 낳을 수 없을 것이오. 내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소.”그렇게 말하고는 화가 난 듯 소매를 휘저으며 자리를 떠났다.독설을 내뱉었음에도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방금 노지연의 비웃음 섞인 말들을 잊을 수 없었다.‘이 여자는 분명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말을 내뱉었을 것이야.’최익만이 씩씩거리며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노지연은 그제야 긴장한 마음을 풀 수 있었다.마침 부영은 곁방에서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고 단연은 부엌에서 다과를 만들었다.며칠 전부터 그녀는 뜰 안에 있던 작은 부엌을 정리해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이젠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만들고 먹어야지.’식탐이 많았던 그녀는 요리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다과가 완성됐어도 좋은 기분이 사라져 입맛이 없어 하는 그녀를 보며 부영과 단연은 즉시 사과했다.“아씨, 용서해주십시오. 모두 하인들이 정신을 놓고 있어 도련님이 오신 것을 알아채지 못한 탓입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4화

    최익만이 본 것은 바로 그런 광경이었다. 가슴이 무엇에라도 강하게 부딪힌 것처럼 떨렸고 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일었다.불쾌한 시선을 느낀 노지연이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최익만을 보자마자 그녀의 편안했던 자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최익만의 눈빛이 흔들렸다.“부인을 보러 왔소.”노지연은 속으로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라고 푸념했다.“이제 보셨으니 더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이나마 피어올랐던 죄책감이 그녀의 냉담한 태도 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여긴 후부이고 내 구역이니 난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소. 오히려 부인은 자신의 자리를 잘 알아야 하오.”노지연은 표정을 다잡더니 공손한 태도로 바꿔 말했다.“제가 실수했습니다. 서방님, 무슨 분부가 있습니까?”그녀의 의도적인 거리감을 두며 공손하게 말하자 최익만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부인, 말을 제대로 하시오.”노지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저의 태도가 아직도 공손하지 않습니까?”최익만은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나한테 삐졌다고 해도 정도껏 해야 하오. 계속 이렇게 비꼬는 태도로 말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부부의 정도 다 없어질 거요.”노지연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일었다. 정이라고? 그들 사이에 정이 있단 말인가?그녀가 잠자코 말이 없자 최익만은 그녀가 고개를 숙인 것으로 착각하고는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부인이 나를 위해 상단을 만들고 정성껏 물건을 골라준 마음은 다 알고 있소. 나도 마음이 모진 사람이 아니오. 부인이 성질을 부리지 않고 대범하게 행동한다면 나도 부인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오. 다만 서녕이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 절대 넘어서려고 하지 마오.”노지연은 말문이 막혔다.“아마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그런 일들을 한 건 서방님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최익만은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하려는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상단을 만든 것이 나를 위한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3화

    최익만도 강미숙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최운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라버니가 훈적으로 서녕 형님에게 교지를 청해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면 오라버니도 큰 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럼 저도 예쁜 옷과 머리 장신구를 살 수 있었을 겁니다.”탐욕이 가득 담긴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강미숙은 그 말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팠다.‘생각 말아야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이 피가 맺힐 정도로 아프구나.’최익만이 발걸음을 멈추고 매서운 눈빛으로 최운정을 바라보았다.“언제부터 이렇게 속물적이고 허영심에 찌든 것이냐? 눈에는 돈밖에 보이지 않느냐?”최운정은 당황했지만 꾸지람을 듣는 게 억울해 목소리를 높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왜 갑자기 저를 속물이라고 합니까?”최익만은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서녕의 교지는 내가 자발적으로 청한 것이다. 이것이 어찌 금은보화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서녕은 너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주며 정성을 다했는데 네가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속상하겠느냐?”최운정은 꾸중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강미숙은 곁에서 딸의 편을 들어주었다.“운정이 생각없이 한 말이잖느냐.”최익만은 미간을 찌푸린 채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강미숙을 바라봤다.“어머니, 운정이를 이렇게 감싸주면 점점 더 버릇없어질 겁니다. 이젠 어린아이도 아닌데 철이 들어야 합니다.”최운정은 화가 나서 다시 말대꾸하려고 했지만 강미숙이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달래주더니 또 최익만에게 말했다.“운정이는 아직 어린아이 같은 성격이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다. 오라버니로서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해줘야지 이런 식으로 닦달하는 건 아니란다. 이러다 남매가 멀어질 수도 있어.”최익만은 차갑게 말했다.“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지만 이 후부 밖에서도 여전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아무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최운정은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맞받아 말했다.“오라버니는 이기적이지 않으십

  •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제22화

    조서녕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말은 이미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최익만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그 여자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기분만 망칠 뿐입니다.”강미숙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익만아, 지연이를 너무 매몰차게 대하지 말아라. 지연이가 너를 위해 상단을 만든 것이다. 정말 정이 깊고 의리가 있는 행동이지. 지금 이런 소심한 행동도 다 너를 너무 신경 쓰기 때문이란다.”최익만의 표정이 굳었다.“어머니 무슨 말씀입니까? 저를 위해 상단을 만들었다고요?”강미숙이 고개를 끄덕였다.“서창은 가난한 곳이라 상단을 만들어봤자 돈을 벌지 못한다. 네게 물건을 보내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어찌 상단을 꾸리고 3년 동안 유지했겠느냐? 번마다 너에게 보낸 물건은 모두 지연이가 직접 골라낸 것들이라 하나하나가 다 최상품이었다.”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최익만의 얼굴은 충격에 휩싸였다.지난 3년 동안 그는 매년 후부에서 보낸 물건을 받았었다. 단순히 두세 가지가 아니라 수레 몇 개에 가득 실린 물품들인데 그의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위한 물건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의 몫은 항상 가장 좋은 것이었다.어머니의 길고 정성스러운 서신과 달리 노지연의 서신은 항상 간결했고 내용은 항상 간단하고 담백했다.그래서 그는 그 모든 물건이 어머니가 준비한 후 상단을 통해 보낸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개선해서 한경으로 돌아온 후 노지연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그는 이 사실을 알 기회조차 없었다.이제야 갑작스럽게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얼굴에는 충격적인 표정이 드러났고 가슴 속에는 묘하게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조서녕은 갑자기 멍해진 최익만의 모습을 바라보며 답답한 감정이 넝쿨처럼 가슴 속에 퍼졌고 저도 모르게 소매 속에 감춰진 손을 꽉 쥐었다.작년 겨울, 그녀는 상단이 보낸 수레에 가득 실린 물건을 보았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 등 종류별로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다.최익만은 그때 매우 자랑스러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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