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경이 안이슬을 쳐다보자 그녀는 어색한 듯 고개를 숙였다.심재경이 물었다.“지금 나 관심해주는 거야?”안이슬이 대답했다.“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잖아. 대표님한테서 돈을 받았는데 당연히 고용주한테 최선을 다해야 하지.”안이슬이 자신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선을 철저하게 긋는 모습은 비수가 되어 심재경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그는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당신은 정말 직업정신이 투철한 베이비시터야. 내 딸을 잘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나한테도 이렇게 관심을 주다니, 당신의 말대로 하면 내가 당신의 급여를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해야 당신이 한 만큼 돌려받게 되는 거잖아?”안이슬은 비아냥거리는 심재경의 말투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만약 대표님이 더 많은 급여를 준다고 하면 당연히 사양하지 않을 거야.”심재경의 말은 그녀를 자극하는 데 실패했다.윙윙--심재경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강세헌한테서 온 전화였다. 그는 뒤돌아 방으로 가서 방문을 잠근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접니다.”그쪽에서는 임지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재경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확실하게 강세헌의 번호가 맞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아니지?그는 휴대폰을 다시 귓가에 대면서 말했다.“여보세요?”“왜요, 제 목소리도 모르시겠어요?”임지훈이 물었다.심재경은 당연히 목소리를 알아들었다.“이거 강세헌 번호잖아요?”심재경이 묻자 임지훈이 대답했다.“대표님이 진원우랑 심 선생님의 일을 토론하는 것을 듣고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어요. 제 휴대폰이 배터리가 다 되어서 대표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거고요.”심재경이 대답했다.“그렇군요. 근데 제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지금 저한테 해결방법을 제시하려는 거예요?”임지훈은 차갑게 한마디 했다.“선생님에 관한 일은 비밀도 아니잖아요?”“...”심재경은 자신의 사연을 모든 사람이 다 알
심재경이 정말로 화가 난 것을 보고 임지훈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짜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을 못 하겠다. 지금 심재경은 분명히 화가 잔뜩 난 상태인데 또 심기를 건드릴만한 얘기를 했다면 정말 손절 당할지도 모른다.심재경은 끊어져 버린 전화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방법이 없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설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딱히 말할 게 없으니까 그냥 도망간 건가?‘이게 대체 무슨 경우야!’심재경은 휴대폰을 내려서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었다.원래 기분이 이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는데 임지훈 때문에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그는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였다.침대 위에 버려진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미간은 더욱 세게 찌푸려졌다.‘또 무슨 속셈인가? 뾰족한 수는 없는데 쓸데없는 말은 많네?’심재경은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받고 상대방이 소리도 내기 전에 먼저 말을 뱉었다.“임지훈, 내가 경고하는데 얼렁뚱땅 넘기려 하지 마. 나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줄 알아? 다음에 마주치면 내가 수술 메스로 당신의 살가죽을 도려낼 수 있어, 알아?”심재경은 숨도 쉬지 않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인제야 상대방이 천천히 말을 건네왔다.“얘기 다 했어?”‘이 목소리는 임지훈이 아닌 것 같은데?’심재경은 다시 휴대폰 화면을 보았는데 강세헌의 이름이 확실했다.‘그래서 이번에는 강세헌이야?’심재경은 다급하게 해명했다.“임지훈 씨인 줄 알았어. 정말 약 올라.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데 화가 안 나겠어?”강세헌은 뜨뜻미지근하게 한마디 했다.“네 일은 너 혼자 알아서 해. 괜히 계속 연아한테 전화하지 말고, 연아가 네 일까지 상관할 시간 없어.”“...”심재경은 얼굴이 구겨졌다. 강세헌의 말은 임지훈의 말보다 더 마음에 상처가 됐다.“야, 네가 지금 행복하다고 친구는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전화한 것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기에 문을 두드릴 사람이 안이슬밖에 없었다.심재경은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 자신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는 걸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역시나 안이슬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었는데 정말 샛별이를 돌보기 위해서 돈 주고 고용한 평범한 베이비시터 같았다.말하는 말투도 딱딱했다.“음식을 좀 만들었어. 아직 식사를 안 했으면 가서 좀 먹어.”허허!심재경은 화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안이슬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괴롭기 그지없었다.그는 소용돌이치는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배 안 고파. 별일 없으면 저 방해하지 마.”이렇게 말하고 그는 방문을 세게 닫았다.안이슬은 그의 태도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건가?안이슬도 심재경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돌아갔다.그녀가 뒤로 돈 순간,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심재경은 돌아가려는 그녀를 보고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불만이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안이슬, 내가 죽어야 나도 아픈 줄 아는 사람이란 걸 네가 알까?”안이슬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를 보았다.그녀는 아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심재경, 왜 그렇게 사람이 멍청해? 왜 굳이 결혼했었고 또 많은 사람한테 몹쓸 짓을 당한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말하며 안이슬은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아프다.상처를 드러낸 그녀는 마음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심재경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는 차갑게 얘기를 계속했다.“명섭 씨가 죽은 후 나는 그 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스파이로 들어갔는데 들켰어. 그래서 그 사람들이 더럽고 치사한 수단으로 나를 괴롭혔어. 처음부터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간 곳이지만, 다만...”그녀의 몸이 떨렸다.다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졌다.“샛별이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살 수가 있겠어?”심재경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나는
안이슬은 지금 심재경의 머리가 아직 이성적이지 못하여 자신의 말을 잘 곱씹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아마도 하룻밤이 지나면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심재경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네.”안이슬이 되물었다.“너는 나를 잘 알아? 네가 나를 잘 안다면 이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단지 샛별의 베이비시터로 남고 너는 그냥 내 고용주로 있는 게 좋지 않아? 굳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 어색하게 할 필요 없잖아...”심재경이 말했다.“알았어...”안이슬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네가 뭘 알아?”심재경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 알게 될 거야.”말하고 그는 문을 닫았는데 방문이 다시 열리지 않았다.안이슬은 멈칫하다가 더 생각하지 않았다.심재경의 순애보는 확실히 마음을 동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안이슬과 심재경은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도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가 없었다.이미 금이 간 옥은 아무리 비싼 금속으로 도금을 해도 그 금을 감출 수가 없다.금이 간 자리는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다.심재경이 지금 집착하는 이유가 아마 그들의 감정이 끝까지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시 시작한다고 꼭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심재경은 양명섭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안이슬의 과거를 정말 개의치 않을 수 있는가?안이슬의 얼굴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다 무시할 수 있겠는가?그녀의 지금 모습을 보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심재경은 더 고달플 것이다.설사 사랑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게 아닌가?안이슬은 눈을 감고 한참 있다가 주방으로 갔는데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은 이미 다 식었다. 두 사람의 관계처럼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강제적인 방식으로 다시 만난다고 해도 처음과 같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
단기문은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됐어, 끊을게.”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방으로 가서 샛별을 안아 들었다. 안이슬은 따라 들어와서 그가 샛별이를 안아 드는 것을 빤히 보고만 있었다.그녀는 두 손을 주먹 쥐고 애써 참고 있었다. 안이슬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샛별이를 어디 데리고 가는 지 알려줄 수 있어요? 심재경이 뭐 하려는 거예요?”단기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말했다.“좀 물러서지 그랬어요?”“...”“참나, 걱정하지 마세요. 샛별이를 잘 보살필게요.”말하고 그는 샛별이를 안고 방을 나섰다.안이슬이 따라 나오면서 말했다.“제가 같이 갈게요. 제가 샛별이를 보살펴 줄게요.”“당신은 나 따라오면 안 돼요.”단기문이 말했다.“당신이 오면 심재경은 계획을 실행할 수가 없잖아요.”“심재경의 계획?”안이슬은 가슴이 철렁했다.“뭐 하려는 거예요? 심재경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예요?”단기문이 말했다.“그래요. 두 사람 모두 머리가 어떻게 된 거죠. 세상에 풀리지 않는 일이 뭐가 있다고 굳이 이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안이슬은 고개를 떨궜다.“참, 저도 한마디 하는데요. 당신이 고개만 끄덕이면 샛별이는 완전한 가족이 생기는 건데 도대체 뭘 망설이는 거예요? 당신이 정말 샛별이를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 샛별이를 위해서 좀 참아주면 안 되는 거예요?”단기문의 말에 안이슬이 대답했다.“저는 참는 거 없어요. 참아도 심재경이 참는 거겠죠.”“재경이는 다 감당하겠다잖아요. 그냥 감당해 볼 기회 한 번 주면 안 돼요?”안이슬은 고개를 돌렸다.이제 알겠다. 심재경은 지금 샛별이를 가지고 협박하는 건가?“샛별이 돌보기 쉽지 않아요. 울리지 않았으면 해요.”안이슬은 다정하게 샛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단기문은 어이가 없었다.“좋아요. 두 사람 다 고집불통이네요.”단기문은 여전히 안이슬한테 불만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위해서라도 심재경과 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이슬이 왜 싫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
심재경은 여자를 하나 데리고 들어왔다. 그 여자는 깊은 웨이브를 한 머리에 딱 붙는 검은 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새하얀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속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안이슬은 한 번 보더니 바로 시선을 옮겼다.심재경이 말했다.“네가 몇 명의 남자랑 잤다면 나도 그만한 여자와 잤어. 앞으로 우리는 대등하게 되는 거야.”안이슬은 깜짝 놀라서 심재경을 쳐다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너 미쳤어?”심재경이 말했다.“나는 단지 우리가 평등하게 만들려는 거야. 너는 우리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안이슬은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말을 뱉지 못했다.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겪은 일은 어쩔 수 없었던 일들이다...심재경은 어떻게 이런 방식을 택할 수 있는 거지?“심재경, 분명히 말할게. 네가 어떻게 하든 나는 절대 마음을 돌리지 않아. 하고 싶은 대로 해.”안이슬은 뒤돌아 섰다. 심재경은 그녀를 몇 초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좋아.”그는 여자를 껴안고 방으로 향했다.심재경이 진짜로 하려고 하자 안이슬은 마음이 약해졌다.“이렇게 너 자신을 더럽히는 게 재밌어?”“더럽히다니? 얼마나 미인인데.”안이슬은 심재경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오늘은 처음일 뿐이고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많을 거야. 하루에 한 명씩 어때?”“...”“내가 원하는 건 딱 한 마디야.”그는 한 글자씩 물었다.“나랑 다시 만날래?”안이슬은 눈을 꼭 감고 말했다.“너 마음대로 해.”말하고 그녀는 방안으로 달려가서 문을 잠갔다.심재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고집을 부린다고?“심 대표님?”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계속 해야 해요?”그녀는 그냥 돈을 받고 연기를 하는 것뿐이다.심재경이 말했다.“계속해.”여자가 웃으며 말했다.“사실 저는 돈을 안 받고 진짜로 할 수 있어요.”심재경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봤고 그녀는 바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농담이에요. 화내지 말아
하지만 안이슬은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이 상태가 지속하였다.심재경은 그 여자에게 돈을 더 주고 떠나게 했다. 여자한테는 오늘 돈을 벌기가 참 쉬운 하루였다. 남자의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되고 고약한 취향을 가진 늙은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아도 되었다.그녀는 싱글벙글하여 돈을 건네 받았다.“이런 일이 있으면 저 또 불러주세요.”심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도 눈치가 빨라서 돈을 가지도 바로 떠났다. 그녀는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돈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또 시중도 많이 들어줬는데 이 여자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돈 많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고 그저 데리고 노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신데렐라가 왕자한테 시집가는 꿈을 꾸지 않았다.신데렐라는 순결이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뭐가 있는가?아무 것도 없다. 이게 현실이었다.그녀의 꿈은 그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성실한 남자를 만나 시집가는 것이다....똑똑...안이슬은 자신이 언제 울었는지도 몰랐다. 눈물이 얼굴에서 흘러내렸지만 감각이 없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안이슬은 방문을 열었다.심재경은 안이슬의 얼굴에 남은 눈물을 보더니 손을 들어서 닦아주려고 했지만 여전히 차가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억지로 참았다.“왜 울어?”안이슬이 말했다.“내가 울게 뭐가 있어?”“그럼 네 얼굴에 있는 건 뭐야? 모래가 눈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하지 마.”심재경이 말했다. 안이슬은 얼굴을 만져보고 나서야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왜 울었던 거지?자신의 마음이 너무 모질어서 심재경을 이 지경까지 내 몰았기 때문에 우는 건가? 아니면 심재경이 자신의 고집을 꺾으려고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것 때문에 우는 건가?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안이슬은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모래가 들어간 거야.”심재경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안이슬, 네
가슴 쪽이 훤히 드러나자 안이슬은 본능적으로 움츠렸다. 하지만 여자의 힘으로 어떻게 지금 한창 화가 나 있는 남자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심재경은 안이슬을 침대에 눕혔다.처음에는 안이슬도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심재경이 마음대로 하게 놔두었다.그녀는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천장만을 바라보았다!눈을 감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그때의 자신이었다.안이슬은 공포에 휩싸여 이를 꼭 깨물었다. 몸 아래에 있는 침대 시트는 이미 그녀에 의해 너덜너덜해졌다.몸은 통제할 수 없이 떨려왔다!안이슬은 억지로 참으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이고 그녀가 예전에 깊이 사랑했었던 남자라고 계속 되새겼다.자신을 그렇게 짓밟던 남자들이 아니다!심재경은 아주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이슬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심재경의 마음은 조금씩 식어가서 동작을 멈추었다.“나한테는 정말 아무 느낌이 없어?”안이슬은 눈꺼풀을 뜨며 말했다.“너는 내가 더럽지도 않아?”심재경이 대답했다.“아니.”안이슬은 입술을 깨물더니 비아냥대듯 말했다.“보아하니 네가 여자를 정말 못 만나봤나 보다. 나 같이 남자들한테 몹쓸 짓을 당한 여자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면. 너는 정말 남자로서 체면을 구기고 있어.”심재경은 혀로 입술을 핥았는데 입가에 아직 그녀의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향기롭고 달콤한 그 냄새는 그가 좋아하는 것이고 그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향기였다.“안이슬,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해. 어차피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심재경은 이불을 끌어당겨서 그녀에게 덮어주었다.“푹 자고 난 다음에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 생각해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한테 대한 내 마음은 이미 다 얘기했으니 너도 그 쓸모없는 자존심 좀 내려놔 봐.”말하고 그는 일어나서 바닥에 버려졌던 옷가지들을 주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안이슬이 그를 불러세웠다.“샛별이를 언제 데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