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그의 튼실한 가슴팍을 밀어내려고 했는데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체온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장난치지 말아요.”강세헌은 뭐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녀에게 장난치고 싶었다.두 사람은 부부이고, 아이도 둘이나 있지만 송연아는 여전히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강세헌은 부끄러워하는 송연아의 모습을 무척 좋아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나 바쁜 일 다 처리하면 두 아이랑 같이 스위스로 가지 않을래? 스키 타고 싶다고 했었잖아.”송연아는 그의 품에 기댄 채 대답했다.“스키도 타고 싶고 바다도 보고 싶고 단풍도 보고 싶은 건 맞는데요...”그녀가 고개를 돌리고는 부드럽고도 밝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행복하면 사람 자체에서 부드러운 빛이 비친다고 하는데 지금 송연아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강세헌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고는 낮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거면 다 해주고 싶어. 다만...”송연아가 고개를 들었는데 그녀의 눈빛은 샘물처럼 투명하고 맑았다.그녀가 이런 순수한 눈빛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강세헌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이었다.두 사람은 워낙 많은 일을 겪었기에 오늘날 이렇게 평온한 생활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하기에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다.송연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다만 뭐가요?”그녀의 입술은 잘 익은 앵두처럼 빨갛게 물들었다.강세헌은 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복부를 어루만지더지 송연아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알잖아요.”“알아.”강세헌이 또 물었다.“피곤해?”송연아가 대답했다.“괜찮은데요, 왜요?”그는 그녀의 목에 키스를 퍼부었다.송연아가 그에게서 벗어나며 말했다.“나 피곤해요...”“방금은 안 피곤하다고 하더니...”“...”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렇게 송연아는 강제로 ‘피곤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새벽에 깨어난 그녀는 시큰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송연아가 물었다.“샛별이가 아니었으면 난 진작 떠났을 거야. 하지만 난... 샛별이의 곁을 떠날 수 없어.”송연아도 엄마로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안이슬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안이슬이 내린 결정에도 그 어떤 의견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안이슬은 성인이기에 자기 생각이 있을 테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안이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베푸는 것이었다.“내가 재경 선배에게 무슨 말을 전해줘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괜찮다고 했다.그리고 또 한참을 침묵하고는 말했다.“내가 너에게 전화한 것은 심재경이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 나에게 밝혔기 때문이야. 내가 여기 있으니... 우리 두 사람 다 엄청 어색한 상황이 됐어.”“그래도 재경 선배는 이슬 언니가 옆에 남아있길 원할 거예요.”송연아가 진심으로 말했다.“재경 선배 정말 한눈팔 사람 아니에요. 적어도 이슬 언니에게는.”안이슬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나에게는 부담이거든. 만약 그 사람이 나에게 못되게 굴었으면 난 오히려 더 좋았겠는걸?”심재경이 그녀에게 잘해줄수록 그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했고, 더욱 모진 말을 뱉기도 했다.송연아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재경 선배는 절대 언니를 미워할 사람이 아니에요.”심재경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이슬에게만큼 그는 순정을 바쳐 사랑했다....강세헌이 차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그는 송연아를 보며 물었다.“이 시간에 누구랑 전화해?”송연아는 그를 향해 ‘쉿’ 동작을 했다.강세헌은 더 말을 하지 않고 그녀에게 찻잔을 넘겼다.송연아가 잔을 넘겨받고는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는데 한결 편안해진 기분이었다....국내에서.안이슬은 초점 잃은 눈으로 어딘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나 같은 사람이 지금까지 살 수 있는 것도 샛별이를 위해서지. 언제 남녀 간의 정까지 생각하겠어.”송연아는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어디
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볼을 잡으며 물었다.“이럴 때만 내가 최고야? 평소에도 내가 잘해주잖아.”송연아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평소에도 세헌 씨가 나에게 잘해주는 거 알죠. 누구보다 날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요.”그녀는 애교를 부리는 듯 강세헌의 품에 더 파고들고는 그를 꼭 안았다.강세헌이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자자.”하지만 송연아는 졸음이 날아가 버렸다.강세헌도 눈치채고는 그녀에게 물었다.“잠이 안 와?”송연아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가서 놀까?”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가 시계를 봤는데 지금은 벌써 새벽이었다.“지금 이 시간에요?”“저녁은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일어나, 같이 나가자.”강세헌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송연아가 주저했다.“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뭐가 아니야?”그는 송연아를 일으키며 말했다.“옷 입어.”송연아가 몸을 돌돌 말았다.“진심이에요?”강세헌이 눈썹을 치켜들었다.“그럼?”송연아도 호기심에 이끌렸다. 그녀는 아직 강세헌과 함께 프랑스의 저녁을 즐긴 적이 없었기에 이불을 거두고는 침대에서 일어섰다.“나 아직 프랑스의 밤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나 제대로 즐기게 해줘요.”강세헌은 침대에 앉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해야 제대로 즐기는 건데?”송연아는 옷장에서 가장 섹시한 옷을 꺼내고는 몸에 대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이 옷, 어때요?”“...”강세헌은 말문이 막혔다.그가 알고 있는 송연아는 항상 진지한 모습을 많이 보였었다. 아마 그녀의 직업과 연관이 있었는데 줄곧 다른 사람에게 엄숙한 인상을 주곤 했다.갑자기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그녀가 강세헌은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강세헌도 생기발랄한 송연아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그는 침대에서 일어서더니 그녀의 앞에 다가가고는 그녀의 손에 든 옷을 집어 들었다.“내가 입혀줄게.”“...”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강세헌이 송연아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그녀는 바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생기발랄하게 느껴졌다.“마음에 안 들어요?”강세헌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마음에 드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어.”송연아가 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너무 가부장적인 거 아니에요?”하지만 강세헌은 억지를 부렸다.“내가 널 사랑해서 이러는 거잖아. 너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생각하는 거야.”...강세헌은 운전해서 한 클럽에 도착했는데 화려한 불빛이 눈을 부셨다.송연아는 이런 곳에 온 적이 거의 없어서 잘 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강세헌이 말했다.“긴장하지 마, 내가 있잖아.”송연아는 그의 품에 기대면서 애교를 부렸다.“무슨 이상한 곳도 아니고, 내가 왜 무서워하겠어요.”강세헌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강세헌과 송연아는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은 후 술 두 잔을 주문했다.스테이지에 남녀가 몸을 밀착하며 뜨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열광적인 스텝은 삶의 지루함, 경제적 압박을 잊게 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기에 그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이게 바로 클럽의 매력이지 않은가 싶다.많은 사람들은 고민을 잊어버리기 위해 이곳을 계속 찾아오는데 확실히 생활 속의 번뇌와 멀리 떨어질 수 있는 홀가분한 곳이었다.그리고 클럽은 또 평소의 생활패턴을 깨버릴 수 있는 곳이었다.자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가끔 찾아오지만 이런 릴랙싱 방법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 기댄 채 술잔을 흔들더니 춤추는 남녀를 보며 말했다.“다들 젊네.”송연아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강세헌은 잠깐 흠칫하다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그럼 우리는 늙었어?”“저 사람들과 비교하면 늙었죠.”이국적인 외모의 미남 미녀들은 아주 눈에 띄었다.송연아도 홀딱 반하게 생겼는데 하물며 강세헌이야...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세헌의 표정을 살폈다.그녀도 똑같은 여자였고
송연아는 달걀프라이까지 하고 라면에 토마토도 넣었다.그리고 소시지를 넣은 후 일부러 강세헌 앞에서 먹기 시작했다.날이 거의 밝아지는데 강세헌이 배고프지 않다는 걸 송연아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정말 맛있네.”송연아는 먹으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강세헌에게 물었다.“좀 먹어볼래요?”그녀가 면을 집어 올리며 물었는데도 강세헌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송연아는 흥미를 잃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칫, 재미없네요.”강세헌이 미간을 구겼다.“됐어, 나 자러 갈게.”강세헌이 정말 배고프지 않은 것 같아 송연아는 끝내 포기했다.“가서 자요. 난 다 먹고 올라갈게요.”...여기는 금방 날이 밝았는데 국내는 벌써 어둠이 내렸다.심재경은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안이슬은 혹시 자기 때문에 일부러 돌아오지 않는 건지 걱정되기도 했다.하지만 직접 전화해서 물을 수도 없었다.만약 그에게 전화해 묻는다면 심재경은 분명 그녀가 자기에게 마음이 남아있다고, 깨끗하게 감정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녀는 심재경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기에 모진 말을 해가며 그를 멀리했다.그래야만 심재경도 정을 끊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샛별이는 오늘 잠들기에 유난히 어려워했다. 아무리 재워도 잠이 들지 않았는데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안이슬은 마음이 다급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녀는 끊임없이 샛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안이슬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심재경이 돌아왔다.그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샛별이를 받아안았는데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아팠다.“우리 아기, 왜 그래?”엉엉 울던 샛별이는 심재경을 보더니 기적적으로 울음을 뚝 그쳤다.마치 배터리 나간 인형처럼 곧바로 조용해졌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이슬은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샛별이가 이렇게 울었던 게 아빠가 보고 싶어서야? 아니면 왜 심재경을 보자마자 울음을 그치는 거지?’딸은 아빠랑 더
심재경이 안이슬을 쳐다보자 그녀는 어색한 듯 고개를 숙였다.심재경이 물었다.“지금 나 관심해주는 거야?”안이슬이 대답했다.“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잖아. 대표님한테서 돈을 받았는데 당연히 고용주한테 최선을 다해야 하지.”안이슬이 자신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선을 철저하게 긋는 모습은 비수가 되어 심재경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그는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당신은 정말 직업정신이 투철한 베이비시터야. 내 딸을 잘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나한테도 이렇게 관심을 주다니, 당신의 말대로 하면 내가 당신의 급여를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해야 당신이 한 만큼 돌려받게 되는 거잖아?”안이슬은 비아냥거리는 심재경의 말투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만약 대표님이 더 많은 급여를 준다고 하면 당연히 사양하지 않을 거야.”심재경의 말은 그녀를 자극하는 데 실패했다.윙윙--심재경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강세헌한테서 온 전화였다. 그는 뒤돌아 방으로 가서 방문을 잠근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접니다.”그쪽에서는 임지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재경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확실하게 강세헌의 번호가 맞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아니지?그는 휴대폰을 다시 귓가에 대면서 말했다.“여보세요?”“왜요, 제 목소리도 모르시겠어요?”임지훈이 물었다.심재경은 당연히 목소리를 알아들었다.“이거 강세헌 번호잖아요?”심재경이 묻자 임지훈이 대답했다.“대표님이 진원우랑 심 선생님의 일을 토론하는 것을 듣고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어요. 제 휴대폰이 배터리가 다 되어서 대표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거고요.”심재경이 대답했다.“그렇군요. 근데 제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지금 저한테 해결방법을 제시하려는 거예요?”임지훈은 차갑게 한마디 했다.“선생님에 관한 일은 비밀도 아니잖아요?”“...”심재경은 자신의 사연을 모든 사람이 다 알
심재경이 정말로 화가 난 것을 보고 임지훈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짜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을 못 하겠다. 지금 심재경은 분명히 화가 잔뜩 난 상태인데 또 심기를 건드릴만한 얘기를 했다면 정말 손절 당할지도 모른다.심재경은 끊어져 버린 전화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방법이 없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설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딱히 말할 게 없으니까 그냥 도망간 건가?‘이게 대체 무슨 경우야!’심재경은 휴대폰을 내려서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었다.원래 기분이 이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는데 임지훈 때문에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그는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였다.침대 위에 버려진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미간은 더욱 세게 찌푸려졌다.‘또 무슨 속셈인가? 뾰족한 수는 없는데 쓸데없는 말은 많네?’심재경은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받고 상대방이 소리도 내기 전에 먼저 말을 뱉었다.“임지훈, 내가 경고하는데 얼렁뚱땅 넘기려 하지 마. 나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줄 알아? 다음에 마주치면 내가 수술 메스로 당신의 살가죽을 도려낼 수 있어, 알아?”심재경은 숨도 쉬지 않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인제야 상대방이 천천히 말을 건네왔다.“얘기 다 했어?”‘이 목소리는 임지훈이 아닌 것 같은데?’심재경은 다시 휴대폰 화면을 보았는데 강세헌의 이름이 확실했다.‘그래서 이번에는 강세헌이야?’심재경은 다급하게 해명했다.“임지훈 씨인 줄 알았어. 정말 약 올라.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데 화가 안 나겠어?”강세헌은 뜨뜻미지근하게 한마디 했다.“네 일은 너 혼자 알아서 해. 괜히 계속 연아한테 전화하지 말고, 연아가 네 일까지 상관할 시간 없어.”“...”심재경은 얼굴이 구겨졌다. 강세헌의 말은 임지훈의 말보다 더 마음에 상처가 됐다.“야, 네가 지금 행복하다고 친구는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전화한 것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기에 문을 두드릴 사람이 안이슬밖에 없었다.심재경은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 자신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는 걸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역시나 안이슬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었는데 정말 샛별이를 돌보기 위해서 돈 주고 고용한 평범한 베이비시터 같았다.말하는 말투도 딱딱했다.“음식을 좀 만들었어. 아직 식사를 안 했으면 가서 좀 먹어.”허허!심재경은 화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안이슬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괴롭기 그지없었다.그는 소용돌이치는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배 안 고파. 별일 없으면 저 방해하지 마.”이렇게 말하고 그는 방문을 세게 닫았다.안이슬은 그의 태도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건가?안이슬도 심재경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돌아갔다.그녀가 뒤로 돈 순간,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심재경은 돌아가려는 그녀를 보고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불만이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안이슬, 내가 죽어야 나도 아픈 줄 아는 사람이란 걸 네가 알까?”안이슬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를 보았다.그녀는 아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심재경, 왜 그렇게 사람이 멍청해? 왜 굳이 결혼했었고 또 많은 사람한테 몹쓸 짓을 당한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말하며 안이슬은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아프다.상처를 드러낸 그녀는 마음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심재경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는 차갑게 얘기를 계속했다.“명섭 씨가 죽은 후 나는 그 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스파이로 들어갔는데 들켰어. 그래서 그 사람들이 더럽고 치사한 수단으로 나를 괴롭혔어. 처음부터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간 곳이지만, 다만...”그녀의 몸이 떨렸다.다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졌다.“샛별이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살 수가 있겠어?”심재경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나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