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예약했다고? 어느 경호원한테 예약하라고 한 거야?”박시율이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당신 몇 테이블 예약한거야? 한 테이블당 얼마? 그때 가서 돈이 부족하면 일이 복잡해, 우리 돈이 많지 않으니까 전부 다 쓰지는 마.”“여보, 안심해. 그냥 놀랄 일만 기다려!”도범이 웃으며 박시율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가자, 나가서 산책도 하고 거리도 구경하고, 이따가 해일이 PC방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가서 보자!”“어떻게 준비하긴, 어제 이미 영업 시작했어!”박시율이 쓴웃음을 지었다.“뭐? 어제 영업을 시작했어? 왜 우리한테 말 안한거야, 꽃바구니도 못줬네!”이 소식을 들은 도범이 놀랐다.“안심해, 내가 꽃바구니 보냈어. 걔가 좀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해서 개업 행사도 별로 안 하고 저녁에 우리 집 경호원 데리고 나가서 밥이나 한 끼 먹었지 뭐, 그걸로 축하한 셈 쳐.”말을 마친 박시율이 얼굴에 뿌듯한 기색을 드러냈다.“내 동생이 정말 많이 크고 전보다 성숙해진 것 같다.”그러나 두 사람이 밖에서 잠시 걷다가 앞에 있는 남자 셋을 보았을 때, 그 중 한 사람이 장님인 척을 하며 선글라스를 낀 채 길을 찾는 막대기로 앞서가는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젠장!”그들을 보자마자 안색이 변한 도범이 박시율을 향해 말했다.“여보, 봤어? 저 사람들, 틀림없이 또 청천당 사람들이야. 또 여자 치마 밑을 몰래 찍고 있어. 이 짐승들, 또 이런 짓을 하다니!”“설마!”박시율도 그들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어쩔 수 없었지만, 곧 뭔가 생각난 듯 도범에게 물었다.“당신 설마 끼어들 건 아니지?”“당신도 날 알잖아. 내가 이런 일을 보고도 어떻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겠어!”한 마디를 내던진 도범이 바로 뛰어들었다.이전에 그는 이미 청천당에 말했었고, 상대방 쪽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청천당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여전히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
여학생들이 놀라서 후다닥 달아나고, 쪼그리고 앉은 도범이 상대방 허리춤의 명패를 벗기니 그 위에 청천당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이런 명패를 가지고 있다니, 이 세 사람은 청천당에서도 엘리트인가 보군.”차갑게 웃은 도범이 주먹을 꽉 쥐었다.“여보, 그냥 혼만 좀 내주면 되지, 왜 사람을 죽여!”박시율이 달려오며 걱정했다.“당신이 이러면 청천당의 미움을 사게 돼. 그 뒤에 아주 큰 세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청왕당이라고? 그렇게 대단하다던데…….”“하하, 안심해! 여보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나는 여전진 장진과 사이가 아주 좋으니까!”도범이 웃으며 명패를 한쪽에 내팽개치고 나서야 박시율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 마침 시간도 괜찮으니까 우리 장진 집에 한번 가 볼까? 응?”“정말 가도 돼? 그녀가 우리를 만나줄까? 정말 높은 전신인데?”섹시한 붉은 입술을 깨물며 박시율은 도범이 너무 자신만만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가 여전신의 생명을 구하긴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방문해서 방해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가자, 괜찮아, 안심해!”도범이 박시율을 끌고 산책을 하면서 장진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너무 좋아, 잘됐어!”먼 곳의 차 안에서 중년 남자가 굉장히 흥분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해. 원래 도범이 그들한테 어떤 세력인지 말하라고 협박해서 자살하게 만들거나, 도범이 바로 죽이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우게 했다면 그때도 한 명만 죽었을 텐데, 이렇게 우리 사람들을 다 죽여놓다니!”“형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그의 옆에 있던 두 남자가 즉시 물었다.“어떡하긴? 내려가서 시체를 처리해야지. 그냥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태워버려. 그리고 바로 우리가 잡은 청천당 세 놈을 죽이러 가는 거야!”그 중년 남자는 못된 웃음을 지었다.“도범 이녀석은 틀림없이 곧 청천당으로 갈거야.”중년 남자와 다른 두 남자는 세 사람의 시체를 다 처리한 후에 다시 그 세 명의 청천당 녀석을 살해하러 갔다. 그리고 또 시체를 처리한 후에야
“아이고, 말을 전해도 소용없다니까!”한 경호원이 한숨을 쉬었다.“틀림없이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야.”하지만, 말싸움 하기도 귀찮았던 그는 안으로 보고하러 들어갔다.“사실 오늘 또 여자 대장 한 분이 방문했어. 다른 도시에서 특별히 여전신을 보러 왔대. 그 대장도 원래 장진 전신의 부하여서 사이가 매우 좋대. 그러니까 장진 전신이 오늘 당신들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거지!”또 다른 경호원이 도범과 박시율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박씨 사람은 그저 이류 집안, 그것도 이제 막 이류 집안 명단에 이름을 올린 데다가 도범은 데릴사위다. 장진 전신은 틀림없이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가서 보고한 경호원이 재빨리 뛰어나와서 공손하게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분, 전신님께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하시니 저를 따라오십시오!”“설마!”다른 몇몇 경호원들이 이 말을 듣고 하나하나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생각지도 못했다. 여전신 장진이 뜻밖에도 두 사람을 만나겠다고 하다니.잠시 후, 도범과 박시율은 한 별장의 대청으로 갔다. 그곳에는 30대로 보이는 여대장이 여전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정말 귀한 손님이 이렇게 오늘 오실 줄은 몰랐네!”장진이 도범을 보고 히죽거리며 말했다.‘장진 전신을 보다니!’박시율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는 두 여자 중, 하나는 전신이고 다른 하나는 대장이다. 어쨌든 둘 모두 높은 존재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도 이런 인물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여기 인테리어 괜찮네, 럭셔리해!”박시율을 정말 놀라게 한 것은, 옆에 있는 도범이 장진을 만난 후에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이곳의 인테리어나 감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그녀가 즉시 도범의 소매를 당겨 눈치를 주자, 그제야 앞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장진 전신, 나정 대장!”“저를 아세요?”나정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박시율은 장진이 주도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갑자기 그녀의 관심을 받은 박시율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어떻게 된 일이긴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도범 오빠랑 사이가 아주 좋으니까,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죠?”장진은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옆에 있는 도범을 힐끗 쳐다보고 말을 참았다. 이렇게 다정한 눈빛을 보는 박시율의 마음 속에 약간의 의혹이 생겼다.비록 지난번에 그 돈 많은 부인이 도범을 노린 건 오해였던 것 같고, 도범도 그 후에 장진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 보니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다니, 정말 둘 사이에 뭔가 있는걸까?만약 도범이 장진과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둘의 관계는 아직도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뭣 때문에 장진이 이렇게 쉽게 그들을 집에 들어오게 하고 또 이렇게 친절하단 말인가?“아 맞다, 이건 저와 도범이가 방금 사 온 팔찌예요. 전신님이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어색하게 웃던 박시율은 뭐가 생각난 듯 손에 든 쇼핑백을 건내주었다.“그래요? 저한테 올 때는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생각하라니까, 뭘 또 이런 걸 사 와요?”장진이 웃으면서 말했다.“여러분들 일단 구경 좀 하고 있으세요. 이따 점심에 같이 식사할 수 있게 제가 주방에 가서 요리 몇 개 더 주문해 놓을게요. 오늘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말을 마친 장진이 요리사를 찾아가자, 박시율의 마음 속에는 갈수록 도범과 장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쌓여갔다. 장진이 이곳을 집처럼 편하게 여기라는 건, 자신에게 뭔가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설마, 둘의 관계에 대해서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 놓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여기까지 생각한 박시율은 참지 못하고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장진과 함께 살고 모두가 한 가족이 된다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도범의 괜찮다는 말을 듣고, 박시율은 기뻤다. 보아하니 도범의 마음 속에 장진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아닐까? 아니면 그들은 이미 관계를 발전시켜 가고 있는 걸까?적어도, 제갈소진처럼 도범에게 바로 거절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 내 생각도 그래!”고개를 숙인 박시율이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했다.“만약, 만약 둘이 서로 괜찮다고 생각하면, 사실 당신이 첩을 찾고 싶다고 하면 나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이 말을 들은 도범의 입이 떡 벌어지며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의심했다.“설마? 여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괜찮다고 한 걸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 나는 사람이 괜찮다고 한 거지, 결코 남녀 관계 그런 쪽으로 좋다고 한 게 아니야!”“그럼 뭐야? 두 사람이 서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뿐이지, 생각해 보면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어!”그리고 나서 박시율은 더욱 직접적으로 말했다.“게다가 둘이 함께 있으면, 나도 당신이 사고 치는 게 두렵지 않아. 누군가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그녀가 날 보호해 준다고?”도범의 얼굴에 이상한 기색이 드러났다.“내가 보호해 주는 걸로도 이미 충분해!”“또 허튼소리 하고 있네. 그 사람은 전신인데, 당신이 그녀를 보호해? 능력이 있어?”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의 박시율이 도범의 손을 잡고 말했다.“정말 이상해. 당신이 말한 장군은 도대체 누구야? 그 장군 정말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아무도 그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어. 정말 궁금해!”이 말을 들은 도범은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장군을 본 적이 없다니, 그와 살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궁금하다니…….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박시율의 허리를 껴안고 말했다.“여보, 장군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 설마 그 화하부대에서 가장 강한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 남자도 당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욱 등 전신들이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후배가 정말 부럽네, 스승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아이고, 부러워라, 부러워 죽겠어!]전신 한우현이 감격스럽게 말했다.[하하, 스승님이 열흘 후에 사모님의 생일에 결혼식도 함께 올린다고 하셔. 이 일을 사모님은 아직 몰라. 그냥 생일파티인 줄 알고 계시지. 그런데 스승님은 이미 나한테 호텔을 예약하라고 하셨어. 스승님께서 모두에게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고 하셨어. 하지만 조건이 있지. 첫째, 스승님의 장군 신분을 폭로해서는 안 돼. 둘째, 그가 우리들의 스승님이라고 말할 수 없어.]장진의 입가의 웃음기가 돌며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내자, 한우현이 다시 한 번 감격했다.[뭐야! 정말 너무 좋아, 스승님을 볼 수 있다니! 이렇게 오랫동안 스승님을 만나뵙지 못했는데, 마침 중주에도 가볼 수 있겠군. 중주에 미녀가 많다고 들었는데, 아내를 찾을 수 있을지 봐야겠어!][설마, 이현이 너는 미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전신 아니야? 아직도 솔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양진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참, 가족을 데려와도 될까? 후배님, 내가 아내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지금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해서 두 명의 아내가 있어!]초장현이 채팅방에 묻자, 장진이 놀랐다.[대단하네, 또 한 명을 더 찾다니! 너무 유혹에 약한 거 아니야?][그래, 어쩔 수 없지, 미녀가 너무 많은 걸. 정말 유혹을 견딜 수 없어. 죽마고우들과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후배님도 하나 찾아야 되는 거 아니야? 눈을 씻고 천천히 찾아봐. 너도 신분이 높으니까 권력에 빌붙기 위해서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많을 거야. 잘 가려내야 해!]장진이 웃으며 답했다.[안심해 선배, 나도 분명히 알고 있어. 스승님이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으면 마음대로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하셨어. 그런데 내가 예약한 호텔은 헬리콥터를 주차할 곳이 없으니까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오려면 일단 도시 밖의 공터에 세운 다음에
점심때가 되자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이 때 나정을 놀라게 한 것은, 도범과 장진이 정말 보통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식사를 마친 후 밖에 나가 함께 산책을 할 때, 박시율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도범은 그제서야 장진에게 물었다.“내가 말한 일은 어떻게 됐어? 호텔은 예약했지?”“안심해, 호텔이랑 웨딩드레스 다 예약했어! 웨딩드레스는 선물로 제공해 주더라고. 다들 내가 전신이라는 걸 아니까 굳이 선물로 주는 걸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제일 좋은 걸로 준비해 줬어. 언니가 입으면 틀림없이 예쁠 거야!”장진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호텔은 빌려서 다 쓰고 나면 계산할 때 50% 할인해 준대!”“50%할인?!”그녀의 말을 들은 도범이 의아하게 물었다.“그렇게 할인을 많이 해 주면, 손해 보는 게 무섭지도 않나 봐?”“어유, 뭘 모르네. 나는 전신이야. 내가 그때 방문하면 호텔 광고를 해 주는 거나 다름없지. 사장한테 50% 할인이 큰 손해는 아니야. 이 광고를 한 번 하면 그 후에 장사가 틀림없이 더 잘 될 거니까. 그 사람이 장사를 잘 하는 거지.”장진이 도범을 힐끗 보며 히죽거렸다.옆에 있던 나정은 더욱 알 수 없는 눈빛을 했다. 이게 무슨 농담 같은 상황일까? 도범이 장진에게 몰래 그를 도와 일을 처리하라고 했고, 장진은 기뻐하면서 도와주다니,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이 친절한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뜻밖에도 두 사람이 이성적인 관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래, 이 일은 비밀이야!”도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나정 대장을 바라보았다.“나정 대장, 지금 들은 일은 비밀로 해 주세요!”“안심하세요, 저랑은 큰 상관 없는 일이고, 저는 어차피 내일 돌아가요!”나정이 웃었다. 그녀는 이 도시의 사람이 아니고, 오늘 그저 자신의 상사를 보러 왔을 뿐이다.“나정아, 가면 안 돼. 후회할 거야!”장진이 웃으며 화장실 쪽을 한 번 확인해 보고는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내
격동된 마음에 심장박동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나정이 기대의 눈빛으로 도범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반응에 도범은 식은땀을 흘렸다. 나정이 뜻밖에도 자신의 정체를 한번에 알아맞힐 줄이야. 자신이 다른 전신을 모두 부를 때는 반드시 합당한 구실을 찾았어야 했는데…….“틀림없어요, 저는 전쟁터에서,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이 키와 체형, 틀림없어요!”말이 없는 그를 보며 나정이 다시 한 번 흥분하자, 도범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밀로 해 주세요, 알겠죠? 다른 사람에게 제가 장군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요.”“좋아요, 비밀로 할게요!”나정은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아!”그녀는 갑자기 마음 속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바로 달려들어 도범을 끌어안았다.“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어요, 저의 우상을 안아보고 싶어요!”“나정아, 언니가 나왔어!”장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먼 곳을 보다가, 박시율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박시율도 이쪽을 바라보며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장진과 도범이 서로 이성적인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나정이 도범을 안고 있는 걸까?머리 속이 끊임없이 회전하며 생각해 봤지만, 박시율은 그 까닭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정은 장진보다 몸매도 좋지 않고 섹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녀라고 할 수 있다. 설마 둘 모두 도범과 이성적인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어색하게 웃은 그녀가 도범 쪽으로 걸어오자, 나정은 깜짝 놀라 황급히 도범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위엄을 떨치는 대장이 도범 앞에서 작은 팬이 되어 있었다.“언니, 죄송해요. 도범씨가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랑 비슷해서, 흥분했나 봐요.”나정이 최대한 침착하게 웃으며 어색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연예인?”박시율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도범을 아무리 봐도 닮은 연예인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닮았다는 거지? 잘생기긴 했지만 연예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