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네. 그 자식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수중에 돈이 있다는 얘기였어!”백이성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씨발. 그 자식 전에 너무 몸을 사리니까 나는 기껏해야 몇십억 전도 있는 줄 알았는데 1000억이나 갖고 있었다니. 그 자식한테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면 20억 정도 쓰는 건 껌도 아니잖아!”“열받네. 그 자식 망신 당하는 거 보려고 했는데 이렇면 정말로 그럴듯한 파티 준비하게 생겼잖아!”한지훈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와인을 한 잔 따라 마셨다.“자! 음식도 다 나왔는데 다들 먹으면서 얘기하자고!”박이성도 순간 기분이 잡쳤다.“웃긴 게 뭔 줄 알아? 우리가 그 자식 망신당하는 꼴 보려고 돈을 써가면서 홍보해 줬다는 거잖아. 도시 사람들 모두가 알라고!”성경일은 자기 잔에 와인을 채워 한꺼번에 마셔버렸다.“이제 어떡해. 돈만 팔았잖아. 그렇게 많이 썼는데 결과는? 그 자식 홍보만 해주고 몇 조 아껴준 거잖아. 완전 호구 잡혔네!”“젠장, 나는 어떻겠냐? 이 일 때문에 친구한테 돈도 빌렸어. 다음 달에 갚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 자식을 도와 홍보만 해준 꼴이라니!”지난 일을 생각하니 한지운은 한숨이 저절로 났다. 게다가 요즘 아버지도 엄격해져서 매달 용돈이 전보다 훨씬 줄었으니 캄캄하기만 했다.“그 자식이 우리한테 한방 먹였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하지만 박이성은 오히려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며 씩 웃었다.“그 자식 보아하니 아직 자기가 중독된 것도 모르는 눈치던데 아무리 으리으리한 생일파티를 준비한다고 한들 사람들에게 자기 장례식을 보여주는 꼴밖에 더 돼?”“맞는 말이긴 한데. 돈 들여 그 자식을 도와 홍보해 준 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그 자식이 중독된 게 아니라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진짜 골치 아파져!”성경일은 이 사실이 가장 걱정됐다. 그는 옆에 있던 장소연을 힐끗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소연 씨한테 확인하려고 이렇게 달려온 거잖아. 도범 그 자식이 정말로 독을 삼켰는지!”그 말
“그래, 네가 쓸데없는 생각했네.”성경일의 말이 언짢은 듯 박이성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나도 다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 도범 그 자식이 상대하기 좀 쉬워야 말이지. 예전에는 잘 싸우는 게 다 부대에서 5년 동안 있어 그런 줄 알았는데. 중장 급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걱정돼서.”성경일은 씁쓸한 듯 웃으며 설명했다.그러던 그때 장소연이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하재열이 초청했던 중장도 도번한테 죽었어요. 듣기로는 그 사람이 소명용의 제자라던데 뒷배를 써서 중장 계급을 따낸 거랬어요. 그러니 실력이 중장에 못 미쳐서 도범이 그 사람을 운 좋게 죽일 수 있다고 했어요.”장소연은 뭔가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없다고 해도 중장 급 언저리 정도는 갔을 텐데 도범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중장 급이란 얘기죠. 하, 내가 도범 그놈의 말에 깜빡 속아넘어갔다니!”“그 자식 숨기는 게 확실히 많아!”한지운이 한 마디 거들었다.“지금으로써 알 수 있는 건 첫째, 도범 그 자식 수중에 1000억 정도 되는 돈이 있고 대규모 생일 파티를 기획할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바보처럼 그 자식 마누라 생일파티 홍보를 해줬다는 거. 둘째, 그 자식의 실력이 중장 급인데 뭔지 모를 이유 때문에 강등되어 실력을 숨겼다는 거. 그리고 셋째, 그 자식이 무조건 독약을 먹었다는 거. 하지만 증상이 선명하지 않고 실력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거. 이 세 가지야.”성경일은 지금까지 알아낸 상황을 모두 읊더니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봤다.“그럼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예전에 이 약 효과가 느리다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열흘이 지나도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나?”성경일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박이성이 입을 열었다.“앞으로가 관건이야. 며칠만 지나면 그 자식은 아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거야. 그러다가 끝내 몸이 썩으면서 고통 속
“우스워지다니? 돈도 있겠다 호화로운 파티를 준비할 거잖아. 그런데 우스워질 리 있어?”성경일과 한지훈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하하, 사실 내 사촌동생이 결혼하거든, 김 씨 가문 도련님과. 박시연이라고 너희도 알지?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박시연의 결혼식과 박시율의 생일파티가 같은 날이란 거지. 하나는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혼인이고 하나는 그저 생일파티인데 우리 박 씨 가문 어르신들이 어디에 참석하겠어?”박이성은 자신감에 찬 듯 웃어 보였다.“박시연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 이거 딱 보면 박시율과 척지겠다는 거잖아!”“진짜 대박이네!”성경일도 썩 마음에 드는 듯 손뼉을 쳤다.“하하, 어찌 됐건 우리가 도범 그 자식을 도와준 꼴이 돼서 도시 전체에서 박시율 생일파티에 대해 다 알게 됐잖아. 그런데 만약 그 자식이 돈 엄청 많이 들여 생일파티를 차렸는데 결국 아무도 참석하지 않으면 얼마나 쪽팔리겠어?”“그러니까 말이야. 너의 그 사촌 여동생 정말 대박인데. 하필이면 박시율 생일과 날짜를 겹쳐 잡다니!”한지운도 아까의 불안이 모두 씻겨나간 듯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지금 그 자식이 파티 날짜를 바꾼다 해도 우스워지잖아. 게다가 생일인데 날짜를 어떻게 바꿔. 홍보도 다 한 마당에.”그때 박이성이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내가 이 소식을 듣고 박시연한테 전화로 물어봤거든. 그런데 걔가 뭐라는 줄 알아? 도범 그 자식이 엄청 고집을 부렸다는 거야. 파티 날짜를 안 바꾸겠다고. 박시연 결혼식과 같은 날짜에 하겠다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거지.”“곧 죽어도 체면이 구겨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만약 시간을 바꿔 이틀 전에 한다면 박 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참석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쪽팔릴 일도 없고. 그런데 날짜가 겹쳤으니 박 씨 가문에서는 무조건 생일파티보다는 결혼식에 참석할 거고 그 자식은 자연스레 창피 당할 거고!”그 말을 듣고 있던 장소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날짜 앞당기지 않는 게 우리한테는 오히려 땡큐지. 그 자식이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신애 씨가 가고 싶다면 기꺼이 가드리겠습니다. 보디가드로써 아가씨의 말을 거역할 순 없죠!”도범은 싱긋 웃었다. 오후 2시가 되었는데도 제갈소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자 한편으로 안도했다.보아하니 제갈소진도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그가 조금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적어도 그 뒤로 제갈소진이 다시는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그와 용신애, 용일비 세 사람이 떠나려고 하던 그때, 아우디 차 한 대를 시작으로 몇 대의 차가 마당에 들어서더니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신애야 어디 가려고? 내가 시간 딱 맞춰서 왔나 보네. 늦게 왔으면 서로 엇갈렸을 텐데.”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갈소진이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선글라스를 벗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보다도 더 세련돼 보였다. 새로 한 검은 웨이브 머리도 아주 어울렸다.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제갈소진과 달리 도범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다. 지난 번 식사 자리에서의 거절도 그녀 앞에서 대놓고 박시율과 벌인 애정 행각도 효과를 발휘하지 않은 모양새였다.제갈소진이 전에는 용신애와 용일비와 별로 친하지도 않고 서로 왕래도 없었는데 요즘 매일같이 여기로 출근도장을 찍는 이유는 보다 마나 도범이었다.심지어 용 씨 가문의 보디가드들도 뒤에서 그의 얘기를 하며 부러운 기색을 보내고 동시에 그런 미녀를 거절한 도범을 바보라고 수군대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그러게. 정말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오전에 머리하러 갔다 왔나 봐? 스타일 괜찮네!”용신애는 웃으며 제갈소진의 말을 받아쳤다.“우리 당구 치러 갈 건데. 어때? 너도 콜?”“아, 당구 치러 가는 거구나. 그래. 실력은 별로지만 나도 자주 치러 다니긴 하지. 가자!”제갈소진은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로 동의했다.“앞장서, 뒤따를게.”그러고는 도범과 조수석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도범 씨는 따로 운전하지 말고 제 차
얼마 뒤 차 몇 대가 쇼핑몰 앞에 정차되었다.“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우리는 위에서 놀다 올 테니까 그 사이에 차 한잔하러 갔다 와도 되고!”제갈 소진은 보디가드한테 몇만 원 정도 쥐여주었다.“우리 그저 위에서 당구 치러 가는 거고 도범 씨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보디가드들은 제갈소진이 건넨 돈을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이곳 고급 져 보이는데 당구 치는 것도 돈이 꽤 들겠죠 아마?”도범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두리번거리면서 물었다.“제가 여기 몇 번 와 봤는데 여기 당구장 꽤 괜찮아요. 음료와 디저트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게다가 인수로 따지는 거라서 시간제한 없이 한 사람당 2만 원!”용신애는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네 명이니까 8만 원이에요!”도범은 용신애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오래 쳐야 본전이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꽤 비싸니까.”“도범 씨더러 돈 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요. 도범 씨는 우리 따라 놀러 나온 거니까 돈은 당연히 우리가 내야죠. 게다가 몇 만 원이 뭐가 비싸요? 전에 40억이나 받았으면서 뭔 걱정이래.”용일비는 어이없다는 듯 도범을 째려봤다.“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용일비의 말에 헛웃음을 치던 도범은 이내 당구장 안에 보이는 낯익은 얼굴에 눈살을 찌푸렸다.“저기 저 사람 천수 씨 아니에요?”“오빠!”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에 용신애는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요 며칠 큰 오빠가 태 씨 가문 사람들과 어울려다니며 내기 당구로 돈을 많이 날린 것도 모자라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이렇게 가다간 언젠가는 저 사람들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텐데라는 걱정이 앞섰다.“씨발, 또 졌네!”용천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하하, 천수 씨 너무 급하시네. 천천히 해요.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구만, 전 판은 제가 졌잖아요.”맞은 켠에 있던 남자가 허허 웃으며
남자는 돈을 받기 바쁘게 다시 용천수를 꼬드겼다.“당연하지. 또 10판 해요. 설마 내가 또 지기야 하겠어?”용천수는 승리에 목매는 듯 앞뒤 가지리 않고 또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와. 끝내주는데.”그러던 그때, 문어구에 서있던 누군가 용신애를 포함한 몇몇을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신애? 쟤가 왜 여기에 왔지?”용천수는 들어오는 사람을 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허구한 날 저놈만 끼고 다니다니. 그 노친네들도 그래. 저런 자식이 어딜 봐서 대장이라고. 증거도 대지 못하는 놈을 그렇게 높은 임금을 주면서 고용한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된다니까.”그 말을 곁에서 듣던 남자가 씩 웃었다. 그는 삼류 가문의 도련님이자 왕호의 친구인 태용이었다.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용천수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천수 씨, 제가 볼 때 아주 간단해 보이는데요. 기껏해야 보디가드인데 저희가 저놈을 꼬드겨 당구 내기를 걸고 박살 내주면 되잖아요.”“태용 씨가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좋죠.”용천수는 태용의 의견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허허 웃었다.“아이고 이게 누굽니까? 신애 씨와 소진 씨 아닙니까? 다들 보기 귀한 얼굴들이네요.”용신애 일행이 당구장에 발을 들이기 바쁘게 태용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그쪽이 우리 오빠 꼬셔 나쁜 물 들게 한 사람이에요?”이를 갈고 있던 상대인지라 말투 역시 좋을 수가 없었다.“이거 섭섭합니다. 나쁜 물이라니요.”태용은 히죽거리며 눈앞에 있는 미녀들을 번갈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세 미녀 모두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 신붓감으로 눈독 들이는 자들인지라 그중 아무와 결혼한다면 땡잡은 거나 다름 없었다.특히 용신애와 제갈소진과 같은 신분과 지위가 높은 여자와 결혼하면 인생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용신애의 사촌 언니인 용일비는 두 사람보다야 못하지만 섹시한 몸매와 특유의 분위기로 뭇남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일은 안 하고 돈내기만 하러 다니는 게 나쁜 물이 아니면 뭔데요?”용신애
건들거리며 말하는 용천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네 양아치가 따로 없었고 예전의 그의 모습은 손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런 용천수를 보노라니 용신애는 실망감만 커졌다. 질 나쁜 인간들과 몰려다니더니 그의 오빠는 이제 완전히 변했다.제갈소진은 두 남매가 격양되어 싸우는 걸 보자 곧바로 제재에 나섰다.“신애야,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노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거니까 상관하지 마. 우리 당구나 치자. 너 당구 잘 치잖아.”“그래!”용신애는 그제야 화를 억누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자기의 오빠가 그렇게 나쁘게 변한 게 아니라고, 그저 여느 청년들처럼 놀기를 좋아할 뿐이라고, 저 사람들과는 다르다고.“쳇, 간섭이 너무 지나치네.”“그러게 말이야. 여동생이 오빠 일까지 상관하고 말이야. 이러다가 전체 용 씨 가문의 일도 간섭하는 거 아니야?”태용 일행 중의 한 놈이 싸늘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이봐요 거기. 혹시 당구 칠 줄 알아요?”그러던 그때, 태용이 손에 들고 있던 당구 큐대를 옆에 놓더니 도범에게 물었다.갑자기 던진 물음에 도범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의아한 듯 자신을 가리켰다.“저요?”“그래요. 그쪽이 박 씨 가문의 그 데릴 사위라면서요? 참 운도 좋지. 어떻게 박시율 같은 미인을 다 꿰찼는지. 부럽네요!”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며 태용이 비아냥거렸다.“부러운 건 부러운 건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단 격이랄까?”“하하. 그래요? 뭐 제가 운발 하나는 타고났나 보죠. 전 지금껏 항상 운이 좋았거든요.”상대방의 가벼운 도발에 도범은 화 한 번 내지 않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제갈소진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상대가 그녀 마음속의 신과 같은 존재를 모욕했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제갈소진은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남자를 째려봤다.“태용 씨라고 했나요? 말은 가려서 하시죠. 도범 씨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 그쪽이 뭘 안다고. 도범 씨 발톱만도 못한 게 어디서! 그리고 이 사람과 이 사람
제갈소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도범 앞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화를 억눌렀다. 그의 앞에서는 여전히 숙녀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도범은 상대방의 도발에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이름이 태용이구나. 그런데 저한테 뭐 하러 당구를 칠 줄 아냐고 물어봤어요? 솔직히 저 칠 줄 모릅니다. 예전에는 배달 알바만 했었고 그 뒤로 군대에 갔으니까.”“하하, 역시 모를 줄 알았어요. 딱 봐도 그냥 무력만 쓸 줄 알고 평소에 사람 팰 줄만 알았지 이런 신사적인 게임을 할 줄 알겠어요?”도범의 대답을 들은 태용은 예상했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칠 줄 알면 몇 판 놀아볼까 했는데 실망이네요. 역시 천수 씨와 쳐야겠네!”“칠 줄은 모르지만 방금 보니 꽤 할만해 보이던데요? 흰 공을 쳐서 다른 공 구멍 안에 넣으면 끝이잖아요.”도범은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풉!”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빵 터져버렸다.“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당구도 엄연히 기술이에요.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힘 조절, 각도 조절에 예민한 게임이라고요. 대놓고 무식하게 친다고 들어가겠어요? 게다가 룰도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이건 스누커라고 하는 거고. 들어는 봤나 몰라. 자존심 그만 세우고 포기하지 그래요?”그때 태용 일행 한 명이 같잖다는 듯 도범을 바라보며 도발했다.“도범 씨, 그만해요. 이거 그렇게 쉬운 거 아니에요. 평소에 쳐본 적 없는 사람은 치지도 못한다고요. 저도 2년 넘게 했는데 우리 오빠와 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그것을 보다 못한 용신애가 도범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그를 말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만 쉽게 하면 당구를 오래 친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게 당연했다.“그런데 저들이 무시하게 둘 수는 없잖아요.”하지만 도범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먼저 저한테 룰 설명 간단히 해주고 간단한 방법 가르쳐 주면 제가 배울게요. 그러고 시합이든 내기든 하면 되잖아요.”그 말에 나머지 세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