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터미널까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암영은 빠르게 박시율의 차를 몰고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차를 하고 차에 기대어 도범이 오기를 기다렸다.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도범이 도착했다.“무슨 일이야 여보? 오늘 회사 안 바빠? 이렇게 나올 시간도 다 있고 말이야!”도범이 차를 세우고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나 자기랑 함께 놀러 가고 싶은 곳이 생겨서 말이야. 거기가 좀 낡기는 했는데 엄청 조용하고 풍경도 제법 괜찮거든!”암영이 배시시 웃더니 차에 올랐다.“자기는 내리지 말고 내 뒤에서 따라와!”“알았어!”곧바로 도범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하지만 그는 속으로 의심을 품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박시율은 평소의 모습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특히 눈빛이 달랐다. 그녀의 눈빛에서 이상야릇한 요염함이 느껴졌다.박시율은 절대 그런 눈빛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눈빛에서 명확한 유혹의 뜻이 보였기 때문이다.‘이상한데, 오늘 시율이가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한 거지?’그녀의 뒤를 따르며 도범은 속으로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곧바로 차는 산길을 따라 정상에 도착했다. 그들은 공지에 차를 주차했다.“어때? 여기 괜찮지? 봐봐, 여기 서있으면 중주시 전체가 내려다보여. 바람도 산산하니 엄청 기분 좋지 않아?”박시율이 기지개를 쭉 켰다. 원래 완벽했던 그녀의 몸매가 더욱 돋보였다.곁에서 박시율의 모습을 살피던 도범이 살짝 넋을 놓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그녀가 도범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자기야 저기 집이 있네. 우리 저기 들어가 보지 않을래?”“좋아!”도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때, 박시율이 주동적으로 다가와 도범의 손을 잡았다.도범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자기야 왜? 우리는 부부니까 손을 잡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당신 표정 좀 이상한데?”박시율이 교태 어린 눈빛으로 도범을
암영이 도범을 확 끌어당겼다. 그녀가 관능적인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자기야 그 있잖아, 자기가 입대를 하고 떠난 뒤 몇 년이나 지났잖아. 마침 여기는 아무도 없으니까…”암영이 그렇게 말하더니 도범의 가슴에 손을 얹고 쓰다듬으며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시율아 여기는 좀 그렇지 않아? 지금 대낮인데!”도범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바깥쪽을 바라보았다.“참 나 방금 들어오면서 문 잘 닫았거든. 그리고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누가 굳이 들어오려고 하겠어?”“사람도 없는데 우리 둘만의 뜨거운 시간을 보내도 되잖아? 여기라면 분명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거야!”그렇게 말한 암영이 까치발을 들고 도범의 목에 입을 맞췄다.아내의 적극적인 모습에 도범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곧바로 그가 활짝 웃더니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정말 예상 밖이야. 우리 여보가 이런 걸 좋아했다니!”“짓궂어. 난 이렇게 스킨십하면 안 돼?”암영이 매혹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속으로 눈앞의 남자가 너무나 쉽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미인계를 쓰면 아주 쉽게 속아 넘어갈 것 같았다.“읍!”방안의 박시율은 두 사람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되어 몸부림쳤다. 그녀는 도범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하긴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데 도범이 어떻게 쉽게 의심할 수 있을까?또한 저런 유혹을 받게 되면 도범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도범은 이제 20대였다. 당연히 한창 혈기 왕성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바로 그때 암영이 도범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리고 곧바로 도범이 상대를 덥석 끌어안았다.박시율은 암영이 손을 뻗어 허벅지에 걸쳐있는 스타킹에서 비수를 꺼내는 모습을 확인했다.서늘하게 번뜩이는 비수를 본 박시율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이 조마조마 해졌다.그녀가 막 비수를 내리꽂으려고 하던 그때 도범이 그녀를 안고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그들의 모습이 박시율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
“읍!”박시율은 여전히 발버둥을 치며 문밖의 도범에게 상황을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곧이어 그녀는 문밖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설마 벌써 도범이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갑자기 웬 손이 불쑥 나타나 문을 턱하고 잡았다. 그녀가 깜짝 놀랐다. 밖에 있는 누군가가 순식간에 문을 확 열어젖혔다.“읍!”도범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박시율의 눈가가 점점 빨개지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그를 걱정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그가 죽을까 두려웠던지를 알게 되었다.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가 죽게 되면 아이한테 아버지가 사라지게 되는 것 역시 걱정되었다.도범이 무사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본 그녀는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난 그 여자가 당신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어!”서둘러 다가온 도범이 박시율의 입에 물려있던 천을 빼내고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여보 괜찮아? 그 여자가 혹시 때리거나 학대하지는 않았어?”“아니 난 괜찮아. 그 여자 목표가 당신이었지 내가 아니었어.”“그 여자는? 그 여자 킬러라던데, 자신이 서남 지역에서 킬러 순위 5위라면서, 엄청 강하다고 했어. 준장급이 와도 그녀의 상대가 아니라고 하던데.”박시율이 다급하게 물었다.그런데 그녀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그녀를 지긋하게 바라보더니 두 손으로 작은 얼굴을 붙잡고 거센 키스를 퍼부었다.“읍!”아직까지 기둥에 묶여있던 박시율은 도범이 그녀한테 키스를 해올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얼굴은 이미 빨갛게 열이 올랐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한바탕 거센 키스를 퍼부은 도범이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그 여자가 킬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걱정되어 미치는 줄 알았어. 혹시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까봐!”그렇게 말한 도범
박시율은 놀랍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여 그저 웃기만 했다. 이제 보니 정말로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았다. 도범은 진작 이상을 감지하고 있었다.그때 도범이 물었다.“방금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의심이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지만 내 쪽에서 먼저 손을 쓸 수는 없었어. 감히 손을 쓸 생각도 못 했지. 그러다 내 판단이 틀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내가 마지막에 그 여자한테 비수를 꽂아 죽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나한테 확실하게 들킨 게 있어서야!”“무슨 일 있었어? 뭘 확실하게 들켰어?”박시율이 눈썹을 찡그리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녀가 보았을 때 그 여자의 분장은 이미 완벽에 가까웠다.“내 와이프는 나한테 먼저 입을 맞추는 일이 없어. 그런데 그 여자는 나한테 먼저 입술을 가져다 댔잖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그 여자한테서 어렴풋하게 담배 냄새를 맡았어. 그 말인즉슨 그 여자는 담배를 피운다는 거지. 하지만 내 진짜 와이프인 당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잖아!”“그래서 그 순간 단정할 수 있었어. 눈앞의 이 여자가 절대 당신이 아니라는걸. 그녀는 킬러고 나를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도범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이제 보니 당신 진짜 똑똑한 사람이었네!”그 여자가 도범한테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박시율은 속이 뒤틀렸다. 그녀가 물었다.“어땠어? 그 여자는 그렇게 적극적이고 몸매도 엄청 좋잖아? 그런데 당신 안 기뻤어? 설레지 않았어?”도범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박시율이 여기서 질투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더니 그제야 말을 꺼냈다.“여보 그 여자는 그냥 킬러일 뿐이야. 내가 정말 죽고 싶은 줄 알아? 그 순간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어. 난 그저 혹시나 내 판단이 틀리게 될까 봐 거듭 확인을 한 후 죽였을 뿐이야!”“잠깐만 그런데 저 여자 실력이 그렇게 강한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죽일 수 있었어? 나 아까 분명 저 여자가 비수를 뽑아드는 모습을 봤었는데!”박시율은 여전히 이해
“하하 괜찮아. 당장 급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그들한테 내일 아침 다시 오라고 하면 되지!”도범이 큰 소리를 내며 웃다가 곁에 있는 박시율을 바라보았다.“여보 이왕 나왔는데 내려가서 함께 점심이라도 먹는 게 어때? 놀란 마음도 달랠 겸 말이야. 어때?”“그래!”박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두 사람은 차를 몰고 산을 내려왔다.같은 시각, 박시율의 사무실에는 소정과 박이성이 여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도대체…”박이성은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미 박시율에게 전화를 열몇 통이나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그가 곁에 앉아있는 소정을 돌아보고 물었다.“당신은 생각은 어때요? 혹시 지금 우리 두 사람, 박시율한테 놀아난 건 아니겠죠? 그년이 만약 나를 농락한 거라면 정말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내가!”그런데 오히려 소정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박 팀장님을 믿어요. 그분께서 이미 그러겠다고 말씀을 하셨으니 분명 와주실 거예요. 제 생각에는 아마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셔서 조금 늦으시는 것 같아요!”“하하 웃기는 소리! 무슨 일이 우리 계약서보다도 중요하다는 거야!”박이성이 콧방귀를 끼며 불만을 토로했다.그렇게 말하던 그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그들이 고용한 킬러는 5일 내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다.오늘로 두 번째 날인데 설마 이미 움직인 건가?문제는 암영이라는 여자가 의뢰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녀한테는 특수한 기호가 있었다. 그녀는 타깃의 가장 친밀한 사람으로 변장하는 것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친밀한 사람이 타깃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것도 좋아했다.“설마…”지금껏 박시율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암영한테 납치를 당한 듯했다. 박이성은 현재 너무나 당황스러웠다.어쨌든 킬러란 작자들은 보통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니 그녀가 욱하는 마음에 박시율을 죽일 가능성도 있었다.“이런…”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
“젠장 망했네 망했어. 박시율이 정말로 납치당했나 보네. 그 여자 킬러가 설마 박시율도 죽인 건 아니겠지?”화가 난 박이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아직 계약서에 사인도 못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어. 그 여자한테 며칠 후에 일을 벌여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건…”박이성은 도범을 죽이라고 사주한 일로 그의 계약이 물거품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는 차에 앉아 저녁에 박시율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그러다 만약 킬러가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고 도범과 박시율이 멀쩡하게 살아있으면 갑자기 찾아간 자신만 이상해질 것이다. 그는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런 처지가 된 그들을 줄곧 무시해왔었다.만약 나중에 킬러가 일을 실패하기라도 하면 괜히 도범한테 자신이 그녀의 배후라는 의심만 남겨주게 될 것이다. 아무리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말이다.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시동을 걸고 그곳을 벗어났다.운전을 하며 한 카페를 지나치던 그는 무심결에 카페 안쪽에 시선을 돌렸다가 장소연을 발견했다.“저거 박해일 여자친구잖아?”박이성은 잠깐 멈칫거리다가 길 옆에 차를 세웠다. 그가 차에서 내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장소연은 평소에 자주 함께 다니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이거 소연 씨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박이성이 빙그레 웃으며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박이성 도련님!”깜짝 놀란 장소연이 곧바로 웃으며 답했다.“정말 우연이네요. 여기는 제 친구들인데 함께 쇼핑하다가 힘들어서 커피 마시러 왔어요!”“그래요?”박이성이 일부러 시간을 확인하는 척하더니 옆자리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마침 소연 씨와 할 얘기가 있었는데 괜찮으시면 저한테 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참, 여기 있는 친구분들도 함께 와도 좋습니다!”눈치 빠른 그녀들은 순식간에
박이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예쁜 분과 식사를 하는데 사치라니요? 그저 제 영광일 따름입니다!”그의 말에 장소연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답했다.“도련님께서 어디 예쁜 여자를 적게 보셨겠어요? 저 정도면 도련님한테 예쁜 축에도 못 끼겠죠!”“하하 너무 겸손하네요!”자리에서 일어난 박이성이 매너 있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아름다운 레이디, 이만 갈까요?”“그럼 염치 불구하고 함께 갈게요.”장소연은 박이성이 도대체 왜 자신과 단둘이 밥을 먹자고 하는지 의문이 가득했다.하지만 저쪽에서도 자신한테 볼 일이 있으니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빠르게 운전하여 꽤나 고급스러운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룸을 잡고 온갖 요리를 주문했다.“도련님, 이렇게 따로 저를 부른 이유가 있으신가요?”장소연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짜 부자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게 처음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와인까지 시키면서 꽤 장중하게 그녀를 대접하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너무나 당황스러웠다.정장 차림의 박이성은 성공한 신사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자 자 자, 일단 먼저 한잔할까요?”박이성은 우선 그녀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잔을 부딪히며 말했다.“네!”장소연은 그의 꿍꿍이속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잔을 들고 단숨에 와인을 비워냈다.“하하 역시 난 소연 씨처럼 아름답고 통쾌한 여자가 좋다니까!”박이성이 큰 소리로 웃더니 손을 장소연의 다리 위에 슬쩍 올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마치 실수로 올렸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도련님 지금 뭐 하시는…”장소연이 얼굴을 붉히더니 곧바로 그의 손을 밀쳤다.“어 하하!”박이성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이거 소연 씨가 너무 예뻐써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나 봅니다!”거기까지 말한 박이성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어서 말했다.“참으로 안타깝네요. 한 떨기 아리따운 꽃이 소똥 같은 놈한테 꽂혀있으니! 정말 박해일한테
“어머 도련님도 참, 너무 과찬이세요. 제가 그 정도로 예쁜 건 아니죠!”장소연이 겸손한 척하며 박이성에게 요리를 집어 주었다.“자 여기 이거 드세요. 우리 밥부터 먹어요.”“하하 알았어요!”박이성이 큰 소리로 웃었다. 두 사람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잠시 후 박이성이 물었다.“소연 씨, 저 정말 소연 씨한테 한눈에 반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식욕도 없어질 만큼 소연 씨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늘 우연한 기회로 다시 한번 당신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래서 제가 용기를 내서 밥 한 끼 함께 하자고 청했던 겁니다!”“거짓말이죠?”장소연이 눈썹을 찡그리다가 박이성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성 도련님, 설마 진심이신 가요?”“틀림없는 진심입니다!”박이성이 다시 한번 그녀의 다리 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오늘부로 당신이 원하는 건 제가 이뤄드리겠습니다. 그리니 당신도 제가 원하는 걸 제게 해줄 수 있죠? 저는 소연 씨가 박해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이성 도련님 사실 도련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진작 해일이한테서 마음이 떠났어요. 해일이가 나한테 잘해주지만 않았다면 헤어지고도 남았을 거예요!”장소연은 혹여 이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더 이상 박이성의 손을 내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그녀의 말에 박이성이 속으로 피식 냉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소연아, 내 여자가 되어줘. 나도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오늘 시킨 술이 너무나 독한 탓인지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느낌이야. 나 너를 갖고 싶어. 이따가 나랑 함께 방으로 올라가 쉬었다 가지 않을래? 그리고 나중에 나랑 함께 명품 가방과 옷을 사러 가는 거야. 마음껏 골라도 돼! 어때?”장소연이 곧바로 내숭을 떨며 말했다.“도련님 그, 그건 좀… 제가 비록 해일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직 헤어진 것도 아닌데. 그리고 도련님이 저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