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 집안에 프로젝트를 나눠주지 않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그날 이것이 어르신의 뜻이라고 이미 말을 했기 때문에 착하고 효심 자극한 박시율은 어르신을 봐서라도 박 씨 집안에 프로젝트를 나눠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내일 회사에 계약서 작성하러 오세요, 박시율이 꽤 통쾌하게 허락했거든요. 하지만 가격을 5% 낮춰야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거 축하해요.”최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정말이에요?”박이성이 흥분해서 갑자기 일어서며 물었다.“내일 계약을 하러 오라고요? 가격은 문제없어요, 원래 다들 그렇게 하는 거니까. 그리고 5%면 많이 깎은 것도 아니죠. 프로젝트의 얼마를 우리한테 주겠대요? 전부 준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아요, 85%를 준다고 했거든요. 어때요? 이거면 꽤 많죠? 제가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고요.”“85%요? 너무 잘 됐네요, 내일 계약서를 작성하고 소희 씨랑 남자친구랑 같이 밥 먹어요, 제가 준다고 했던 것도 드릴게요.”박이성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씨 집안에서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85%나 가졌으니 지금이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더 중요한 건 이렇게 되면 어르신께서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가업을 자신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어르신은 이미 칠순의 나이였기에 얼마 살지도 못할 것 같아 곧 모든 권력을 내놓을 것 같았다.“박 도련님,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계약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랄게요.”최소희가 전화를 끊었다.“잘 됐어, 너무 잘 됐어!”박이성이 웃음을 터뜨리며 웨이터를 불렀다.“여자 좀 더 불러와요, 제대로 축하해야겠으니까.”박시율은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오후 5시가 되어 퇴근했다.그런데 회사 문 앞에서 한 여자가 자료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가세요, 여기 아무나 들어오는 곳 아닙니다. 우리 회사를 찾아와서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면 일단 자료를 제출하고 부장님께서 결정을 한 뒤에야 업
“박 팀장님 이, 일단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소정이라고 합니다. 저희 가문은 뭐랄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웃으실 수도 있는데 그저 평범한 중소기업을 하고 있습니다. 3류 가문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죠!”“하지만 저희 SH 산업은 진짜 괜찮은 회사입니다. 품질이나 기타 다른 방면 모두 엄청 좋아요. 참 이건 저희 기업에 관한 자료와 지금껏 거래해왔던 고객들과 그 후 피드백이 담긴 문서입니다!”소정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용기를 내서 박시율한테 소개하기 시작했다.그녀의 눈에 비친 박시율은 이미 자신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직업여성이자 성공인사나 다름없었다.용 씨 가문에서는 그녀에게 한 달에 2억씩 주기로 약속하고 초빙해왔다고 했다. 이 정도 월급이라면 중소기업 대표와도 맞먹을 수준이었다.“피드백까지 있어요?”박시율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관심이 생긴듯 서류를 자세히 훑어보고 나서 소정을 보고 말했다.“확실히 괜찮은 회사인 것 같네요. 실은 예전에 들은 적 있어요. 입소문이 꽤 좋더라고요!”그렇게 말한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저는 소정 씨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저희 SH 산업의 가장 큰 장점은 제품의 품질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규모도 작고 다른 회사보다 인지도도 떨어지죠. 때문에 저도 이렇게 큰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을 따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저는 그저 박 팀장님께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저희한테 맡겨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말을 마친 소정이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탐색하듯이 물었다.“혹시 저희한테 그런 협력의 기회가 주어지게 될까요?”상대방의 간절한 모습에 박시율이 미소를 지었다.“저희는 내일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에요. 이미 프로젝트의 85퍼센트를 체결하기로 결정이 났어요. 비록 많지는 않지만 남은 15퍼센트 역시 제대로만 진행되면 200억에서 400억은 문제없이 수익을 따낼 수 있겠죠. 때문에 협력할 대상을 고르는 것도 꽤 엄격하게 진행할 예정이에요!”그 말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소정이 싱글벙글 웃다가 곧이어 자리를 떠났다.“저 애도 참!”박시율도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나왔다.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커피숍 내부, 그녀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선글라스를 낀 육감적인 여자가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박시율이 밖으로 나가자 그녀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섰다.“제 말은 남은 15퍼센트는 전부 소정 씨네 회사에 맡기고 싶다는 뜻이에요…”여자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놀랍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방금 전 박시율의 목소리와 너무나 똑같았다.그 여자가 바로 서남 지역의 킬러 순위 5위인 암영이었다!그 시각 박이성은 싱글벙글해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박 씨 가문의 친척들을 몽땅 불러들였다.“이성 도련님, 무슨 일 있어요? 도련님의 그 들뜬 표정을 보아하니 혹시 무슨 경사라도 난 건가요?”젊은 남자가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경사지, 경사고 말고!”박이성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박준식과 박진천을 바라보았다.“아버지, 할아버지, 드디어 제가 남산 지역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너무 잘 되었네요. 역시 이성 도련님은 대단해요!”“그러게 말이에요.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다 따내고 말이에요.”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현재 박 씨 가문의 회사에서 각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박이성은 회사의 대표이사였고 이제 이렇게 큰 프로젝트까지 따냈으니 앞으로 이 회사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이럴 때 그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의 숨은 공신자를 잘 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던 건 박시율이 그만큼 봐줬기 때문이 분명했다. 만약 그녀가 지난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앙심을 품었다면 박이성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었을 것이다.“하하 다들 한번 맞춰보세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서
“아들아, 이번 일은 정말 잘 했다!”박준식이 껄껄 웃으며 박이성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는 사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할 일 없으면 차나 마시고 낚시나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게 전부였다.하지만 자신의 아들만큼은 똑똑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리고 드디어 박이성이 그 소망을 이뤄준 것이다.“헤헤 아버지, 어떡하겠어요. 제가 우리 박 씨 가문을 위해서, 우리 가문이 이류 가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면 그곳이 불구덩이일지언정 이 한 몸 불태우면서라도 뛰어들어야죠!”술에 얼큰하게 취한 박이성이 자신의 가슴팍을 팡팡 두드리며 우쭐해서 말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경박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진천이 도무지 못 봐주겠다는 듯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그러더니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모두들 가서 쉬거라. 이성이 너도 빨리 자거라. 내일 아침 일찍 계약서 체결하러 가야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만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다. 지난번처럼 웃음거리를 만들지나 말고!”“걱정 마세요. 무조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이번엔 제가 맹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일 오전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제가 라이브로 똥을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박이성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보증했다. 이번에는 절대적으로 성공할 자신감이 있었다. 박시율은 지금껏 자신이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여자였다. 그녀가 이미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했으니 절대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지난번 왕 씨 가문과의 계약에 실패했던 건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집안 어르신이 이제 그만 물러들 가라고 했으니 다들 빠르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르신 역시 방에 돌아가 잠에 들었다.곧이어 커다란 거실에는 박이성과 박준식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아버지 이상해요. 이렇게 큰일을 성사시켰는데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왜 기분이 별로인 것 같으시죠?”박이성이 미간을 찌푸
그녀의 예상대로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그런데 당신 진짜 예쁘게 생겼다. 꽤 동정심이 들기도 해.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일단 의뢰인의 돈을 받으면 무조건 일을 완수해야만 해서 말이야!”그녀의 말을 들은 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바로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의뢰인? 당신 킬러예요? 여기는 어디죠?”박시율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 낡아 보이는 오래된 기와집에, 심지어 눈앞에는 킬러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킬러까지 고용해서 그녀를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박이성?”그녀는 곧바로 박이성이 떠올랐다. 지난번 도범이 그의 팔을 부러트렸던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는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따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언젠가는 기회를 틈타 복수할게 분명했다.때문에 그녀는 박이성이 이 일을 꾸몄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고쳤다.“아니야 그놈일 리가 없어.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막 약속했던 시간이 된 참이었다. 만약 사람을 시켜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계약을 체결한 후 일을 저질렀을 텐데!”“걱정 마. 내가 죽이려는 사람은 네가 아니니까!”바로 그때, 뜻밖에도 눈앞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박시율은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를 죽이려는 것도 아닌데 왜 나를 납치한 거예요?”그렇게 묻던 그녀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알겠어요. 당신 지금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화장하고 내 남편, 도범을 죽이려는 거죠!”박시율이 숨을 들이켰다. 상대한테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납치까지 한 걸로 보아 분명 타깃을 이곳까지 유인하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그러면 당연히 그녀가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도범일 확률이 높았다.박시율은 생각하면 할수록 여자의 목표가 자신보다 도범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범은 지금껏 너무 많은 사람들을 건드려왔다.박이성뿐만 아니라 성경일, 한지운과 왕
상대가 킬러이긴 해도 박시율은 도범의 실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어쩌면 도범이 살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죽여 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방금 암영이 한 말에 그녀는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준장 정도면 충분히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준장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도범은 정말로 위험에 처한 게 아닌가?가장 큰 문제는 현재 그녀가 자신의 모습으로 화장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도범이 그녀의 모습에 홀리게라도 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한 사람이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살해를 당할 가능성은 너무나 높았다. 그건 마치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이 아무 장애도 없는 평범한 사람과 싸우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누가 봐도 장애인이 열세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왜? 겁나? 막 가슴이 아파?”암영이 짧은 비수를 꺼내들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박시율의 얼굴을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내가 왜 타깃의 아내 혹은 남편으로 분장한 후 살해하는 걸 즐기는 줄 알아? 왜냐면 나는 그들이 죽기 직전에 짓는 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너무나 짜릿하거든!”거기까지 말한 암영이 몸을 휙 돌리더니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하하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장 친한 사람한테 죽임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지! 그리고 나는 그들이 죽고 나서도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 절대 알려주지 않아. 그러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지 않겠어?”“다, 당신 정말 미쳤어! 언젠가는 꼭 천벌을 받게 될 거예요!”박시율이 빨개진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하하 걱정 마. 참, 나 그런 것도 좋아하는데, 바로 너를 이 방안에 가둬두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내가 네 남편을 어떻게 죽이는지 똑똑히 지켜보게 하는 거야. 그때 너는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지. 남편이 죽으면 넌 엄청 고통스러울 거야 그치? 그것도 참 즐거운 장면이 될 거야!”“
박시율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막 뭐라고 말하려고 하던 그때 상대방이 이미 준비해둔 수건을 그녀의 입에 밀어 넣으며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이 문 보이지? 내가 이문을 살짝 열어둘 거거든. 그러면 그 열린 문틈으로 마침 저기 저 밖에 놓인 낡은 테이블이 보이게 되지. 이따가 내가 바로 저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네 남편을 죽일 생각이야. 하하 그 장면을 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말이야!”“읍!”조급해 난 박시율이 끊임없이 머리를 저으며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하하 괜한 힘 빼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이따가 내가 어떻게 네 남편을 죽이는지 지켜봐야지!”암영이 큰소리로 웃다가 박시율의 휴대폰을 꺼내 들고 도범한테 전화를 걸었다.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렸다. 눈앞의 여자는 비록 생긴 건 자신과 똑 닮았지만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도범이 바보도 아니고 전화로 속을 리가 없었다. 그는 목소리만 들으면 곧바로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다음 순간 박시율은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도범이 전화를 받자마자 여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변한 것이다. 바로 박시율과 똑같은 목소리로 말이다. 심지어 그녀 자신마저 자기 목소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니 도범은 오죽하겠는가. 도범이 목소리만 듣고 분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더욱 소름 끼치는 건 현재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바로 어제 자신이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보아하니 암영은 이미 진작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특별히 그녀와 똑같은 옷까지 입은 걸로 보아 상대방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이 일을 준비했는지 소름 끼칠 정도였다.“여보세요? 자기야 나 터미널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잠깐 나오면 안 돼? 나, 나 자기랑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우리 두 사람 거기서 이야기 좀 나누면 안 될까?”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좋지.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알았어 여보, 터미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운전
산에서 터미널까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암영은 빠르게 박시율의 차를 몰고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차를 하고 차에 기대어 도범이 오기를 기다렸다.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도범이 도착했다.“무슨 일이야 여보? 오늘 회사 안 바빠? 이렇게 나올 시간도 다 있고 말이야!”도범이 차를 세우고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나 자기랑 함께 놀러 가고 싶은 곳이 생겨서 말이야. 거기가 좀 낡기는 했는데 엄청 조용하고 풍경도 제법 괜찮거든!”암영이 배시시 웃더니 차에 올랐다.“자기는 내리지 말고 내 뒤에서 따라와!”“알았어!”곧바로 도범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하지만 그는 속으로 의심을 품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박시율은 평소의 모습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특히 눈빛이 달랐다. 그녀의 눈빛에서 이상야릇한 요염함이 느껴졌다.박시율은 절대 그런 눈빛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눈빛에서 명확한 유혹의 뜻이 보였기 때문이다.‘이상한데, 오늘 시율이가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한 거지?’그녀의 뒤를 따르며 도범은 속으로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곧바로 차는 산길을 따라 정상에 도착했다. 그들은 공지에 차를 주차했다.“어때? 여기 괜찮지? 봐봐, 여기 서있으면 중주시 전체가 내려다보여. 바람도 산산하니 엄청 기분 좋지 않아?”박시율이 기지개를 쭉 켰다. 원래 완벽했던 그녀의 몸매가 더욱 돋보였다.곁에서 박시율의 모습을 살피던 도범이 살짝 넋을 놓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그녀가 도범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자기야 저기 집이 있네. 우리 저기 들어가 보지 않을래?”“좋아!”도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때, 박시율이 주동적으로 다가와 도범의 손을 잡았다.도범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자기야 왜? 우리는 부부니까 손을 잡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당신 표정 좀 이상한데?”박시율이 교태 어린 눈빛으로 도범을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