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율 일가는 한 씨 집안의 주인 한용휘가 사람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니 도범이 걱정되기 시작했다.박시율도 방금 전 도범이 자신을 속이고 여자를 데리고 경매 행사에 참석하고 그 여자를 전신이라고 거짓말을 한 사실만 생각하면 화가 났지만 어쨌든 그동안 두 사람은 많은 감정을 쌓아왔기에 지금 위험에 처한 도범을 보니 그녀는 도범이 걱정되었다.그리고 도범이 정말 죽어버린다면 수아는 정말 아버지를 잃게 되었다.“누나, 얼른 들어가자!”박해일과 장소연이 박시율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지유도 얼른 수아를 안아들고 안으로 들었다.“한 씨 어르신, 오늘 오전의 일은 도범이 저지른 것이지 우리 집이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집 안으로 들어간 나봉희가 마당으로 들어온 한용휘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어머님, 도범 어머님 아직 밖에 계신 거 아니에요? 얼른 들어오라고 하세요!”박시율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문은 이미 닫혔다, 그들은 그저 창문 옆에 서서 바깥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착해빠져서는, 자기가 안 들어온 걸 왜 불러? 도범 엄마지, 네 엄마도 아니잖아, 자기 아들 곁에 있고 싶다고 하는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그리고 저 여자가 정말 들어왔다가 한 씨 집안에서 그걸로 꼬투리를 잡고 우리까지 끌어들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나봉희가 박시율을 보며 말했다.“아들, 너, 너 정말 한 씨 집안 도련님을 때린 거야?”서정은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들밖에 남지 않았기에 도범을 혼자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하지만 한 씨 집안이 이류가문인 것을 생각하니 서정도 무서웠다, 그녀는 다급하게 도범을 바라보며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도범은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뺨 좀 때렸어요, 좋은 놈은 아니길래 부모님 대신 교육 좀 시켜줬어요.”그 말을 들은 서정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도범이 전쟁터에서 돌아오더니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새삼 다시 느꼈다, 그는 불공평한
“뭐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한 도련님이 지금 도범 앞에 무릎을 꿇은 거야?”나봉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도범 혼내주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까지 데리고 온 거 아니었어? 도범이 자기 아들 뺨을 때렸는데, 그건 한 씨 집안사람의 뺨을 때린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한용휘 지금 자기 아들한테 도범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한 거야?”장소연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한 씨 집안사람들이 미친 건가?“이게 무슨…”박영호도 멍청한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다.“일어나세요, 오늘 당신이 제 한계를 건드리지 않아서 살려준 겁니다.”한지운의 사과를 들은 도범이 대답했다.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도범의 대답을 들으며 긴장했다, 그리고 도범이 정말 평범한 퇴역 군인이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씨 집안사람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는 마치 한 사람의 생사를 선포할 수 있는 것마냥 굴었다, 마치 자신이 다른 이의 생명을 주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박시율은 그런 도범을 보고 있자니 정말 그가 전신의 친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아니면 저렇게 많은 한 씨 집안사람들을 앞에 두고도 담담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감, 감사합니다.”한지운의 마음속에는 원한이 가득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도범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 신중하다고 생각했다.한용휘는 평생을 평온하게 지내왔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이 그를 무시해도 최대한 참는 쪽을 선택했다.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는 그저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한 씨 집안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한지운은 평생을 조심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아버지를 겁쟁이라고 생각했다.도범은 그저 퇴직군인에 불과했기에 한지운은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그리고 도범과 만나고 있는 여자가 아무
“6억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제 성의이니 받아주세요.”한용휘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하지만 도범은 담담하게 웃더니 상자 두 개를 힐끗 바라봤다.“6억, 큰돈은 아니죠.”도범의 말을 들은 한용휘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도범이 돈이 적다고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범이 이를 문제 삼는다고 한다면 큰일이었다.“하지만 태도도 성실하고 직접 아들까지 데리고 와서 사과를 했으니 성의만 받을게요, 돈은 가지고 가세요, 저는 이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태도만 있으면 된 거죠.”“안돼!”나봉희는 6억 원의 돈을 보곤 눈을 반짝였다.하지만 도범이 그 돈을 거절하자 얼른 문을 열고 달려 나왔다.“이 돈을 왜 안 가진다고 하는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 집을 쳐들어왔는데 당연히 챙겨야지!”나봉희가 두 개의 상자를 닫더니 얼른 집어 들었다.“그러니까요, 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저는 싸움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어요. 너무 놀라서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으니까 배상을 좀 받아야겠어요, 이 6억 도범 당신이 안 가지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받을게요.”박해일도 얼른 덧붙였다, 그는 도범이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6억이면 좋은 자리에서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을 안 가지겠다고 하다니.“이 돈은 저한테 주는 것이지, 당신들한테 주는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를 바깥사람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시율이랑 혼인신고도 했고 아직 이혼을 하지 않았으니 아직 한 가족인 거지, 나는 네 장모님인 거고. 나도 방금 많이 놀랐으니까 이 돈을 가져야겠어.”나봉희가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을 너한테 주는 거면 부부 공동재산이니 너 혼자 처리할 문제도 아니잖아.”나봉희의 말을 들은 도범은 할 말이 없어졌다, 나봉희가 돈을 위해서 부부 공동재산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일 줄 몰랐다.“그래요, 도범 씨도 장모님을 위해서 이 돈을 받으셔야죠.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요, 갑자기 이렇
“짝!”한용휘가 한지운의 뺨을 내려쳤다.“어디서 목소리를 높이는 거야? 도범 씨 지금 농담하는 거잖아.”“아버지, 저…”한지운은 더더욱 화가 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도범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한용휘는 한지운을 쏘아보더니 도범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범 씨는 농담도 잘 하시네요, 저희는 일단 돌아가 보겠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살펴서 가세요.”한 씨 집안사람들은 빠르게 집을 나섰다.집으로 가는 내내, 한지운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별장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버지, 도범이 아버지한테 그런 말까지 했는데 왜 참고만 계셨던 거예요? 저희 이류가문이라고요, 그런데 고작 퇴임 군인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요, 저 너무 억울해요!”한용휘는 고개를 돌려 한지운을 바라봤다.“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집안을 생각해서 그런 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우리도 그저 자그마한 장사를 하던 평범한 집안이었어, 중주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예전부터 실력 있던 집안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망하던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어. 그리고 얼마 전에도 다른 도시의 일류가문이 퇴역하고 돌아온 대장의 심기를 건드려서 제명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어, 가족 전부가 살해당하고 하인들만 살아서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고 하더구나.”그 말을 들은 한지운이 놀라서 말했다.“설마요, 일류가문의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죽인다는 게 말이 돼요? 아버지, 도범은 그저 평범한 퇴역군인일 뿐이에요, 너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요.”“내 말 잊지 마, 그 누구도 얕잡아봐서는 안 돼, 도범이 이름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감히 너를 때릴 수 있었겠어?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갔는데도 담담한 모습으로 맞이했잖아, 마스크를 쓰고 있던 그 여자, 절대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게 분명해.”한용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지운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네 아버지 그동
박시율은 차가운 얼굴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어머니, 마음도 참 빨리 바뀌시네요. 도범이 이 집에서 잔다고 해도 저랑 같은 방을 쓰는 건 안돼요, 제 화가 아직 안 풀렸으니까. 6억 때문에 이 거짓말쟁이를 믿을 수 없어요.”방금 전, 도범에게 무정하게 굴었던 박시율은 이렇게 빨리 태도를 전환할 수 없었다.“네 방에서 안 자면 어디에서 자라는 말이야? 네 침대에서 안 자면 그만이지, 어차피 지금도 바닥에서 자고 있잖아.”나봉희가 6억을 들고 신이 나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보름 뒤, 저놈이 네 할아버지 생신 때 80억을 내놓지 못하면 당장 나가라고 할 거니까. 정말 사기꾼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때 밝혀질 거야!”“80억이요? 전에 60억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갑자기 20억이 불어난 거예요?”지유가 놀라서 물었다.“예물을 20억이 아니라 40억을 받기로 했어, 그리고 도범도 그때 허락했고. 그치, 도범?”나봉희가 팔짱을 낀 채 거만하게 말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 무조건 40억을 드릴 테니까.”도범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맞아요, 사돈, 제 아들을 믿어주세요, 무조건 방법을 생각해 내서 그 돈을 벌어올 겁니다.”서정이 나봉희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다시 박시율을 말렸다.“시율아, 아이를 봐서라도 도범을 믿어줘, 나는 우리 아들 믿어, 도범 절대 너를 속이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수아도 아버지를 무척이나 따르잖니.”서정의 말을 들은 박시율이 그제야 도범을 힐끔 바라봤다. “그럼 보름의 시간 더 줄게, 할아버지 생신 때 네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전부 밝혀질 테니까, 그때 가서 나를 무정하다고 탓하지 마.”“수아야, 이리 와, 아빠가 목욕시켜줄게, 목욕하고 할머니가 해 준 맛있는 저녁 먹자!”도범이 수아를 보며 말했다.“네!”박수아가 신이 나서 도범을 향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수아를 안고 떠나는 도범을 보고 있으니 박시율은 마음이 복잡해졌다.“여보, 6억이야, 우리 이제 돈 걱정할 필요 없어,
도범은 아무리 생각해도 박시율이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침대 위에서 이미 잠든 박수아를 힐끔 본 도범이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러자 박시율이 붉어진 얼굴을 하고 도범 앞으로 오더니 말했다.“거짓말 말고 진실을 털어놓으면 뽀뽀하게 해줄게.”“정말? 내가 진실을 털어놓으면 뽀뽀하게 해 줄 거야?”도범이 미심쩍은 얼굴로 박시율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당연하지, 나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아니야!”박시율이 장담했다.“그래, 나도 사실대로 말할게!”도범도 박시율을 따라 손을 들고 장담했다.“그럼 솔직하게 말해 봐, 마스크 낀 여자 정말 전신이야?”박시율이 물었다.“당연하지, 유일한 여전신 장진이야.”도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전신 장진이 정말 자기 친구라는 거야?”박시율이 도범의 모든 것을 꿰뚫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은 도범이 대답했다.“그래, 나 전에 거짓말했어, 장진은 사실 내 친구가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시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친구가 아니라면 도범이 정말 돈을 위해서, 그 80억을 벌기 위해서 여자의 애인 노릇이라도 하러 갔다는 말인가?“그럴 줄 알았어, 이런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박시율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미안, 평범한 생활을 지내고 싶어서 그랬어, 장진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내 제자야. 이거 당신한테만 알려준 거야, 당신은 내 여자니까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다른 가족들한테는 알려주지 마.”“제자?”박시율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장진이 당신 친구라는 것도 내가 안 믿었는데 지금은 뭐, 당신 제자라고?”“왜 못 믿겠다는 거야? 장진 내 제자 맞아.”도범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덧붙였다.“당신이 자꾸 캐물어서 알려준 건데 또 안 믿네.”“전신 9명이 다 당신 제자라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해도 참.”박시율이 도범을 흘겨봤
“읍!”박시율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범은 고개를 숙이고 박시율의 입술을 집어삼켰다.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박시율은 반항하는 것도 잊었다.그는 도범이 이렇게 대범하게 허락도 없이 자신에게 뽀뽀를 할 줄은 몰랐다.박시율은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다리에 힘도 주지 못했다.“비켜!”뒤늦게 도범을 밀어낸 박시율이 화가 나서 말했다.“나쁜 놈, 허락도 없이 입을 맞추다니… 이 방에 들이지 말아야 했어!”“자기가 한 말이잖아, 내가 사실대로 말했으니 당신도 약속을 지켜야지.”도범이 입술을 핥더니 바닥에 펼쳐진 이불로 가 위에 누웠다.“나 내일 양치 안 할래, 오늘은 무조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박시율은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는 도범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행동할 줄 몰랐다.이튿날 아침, 쉬는 날이었던 박시율과 도범은 수아를 데리고 유치원을 찾으러 갔다.이미 하루 저녁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기에 박시율도 화가 많이 풀렸다.“이제 곧 할아버지 생일인데 선물은 준비한 거야? 몇십억 짜리 선물을 어디 구하기가 쉽겠어?”사립유치원 앞에 도착한 박시율이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나 당신이랑 장난하는 거 아니야, 그때 가서 당신이 말한 대로 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그동안 쭉 나를 속였다고 볼 수밖에 없어!”“몇십억 짜리 선물? 그걸로는 내 성의를 표현하기 부족하지!”도범이 웃으며 말했다.“적어도 몇 백억 되는 선물을 드려야 우리 시율이 체면도 서지.”“몇 백억?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헛소리하는 것 좀 봐.”박시율이 어이가 없다는 듯 도범을 보며 말했다. 수아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도범을 쫓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박시율은 다시는 도범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여보, 나 화장실 잠깐 다녀올게. 여기에서 나 기다리고 있어.”도범이 공공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얼른 갔다 와, 하여간에 일도 많아.”박시율이 불퉁하게 말했다.“어머, 시율이 아니야? 왜 여기에 있는 거야?”도범이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임여을의 말을 들은 박시율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곳에서 대학 친구를 만난 건 좋은 일이었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이렇게 얕잡아 볼 줄은 몰랐다.임여을은 대학 2학년 때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해 졸업하자마자 아이를 가졌다.그랬기에 그녀의 아이는 이미 6살이 되었다.“여기 학비가 얼마인데 그래?”박시율은 이 유치원이 제일 좋은 유치원이라는 소리만 들었을 뿐, 학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생활비까지 합치면 일 년에 2200만 원은 있어야 해, 너 정말 그 많은 돈이 있어?”임여을이 박시율을 비웃으며 말했다.“시율아, 우리 학교 다닐 때 너 퀸카로 유명했잖아, 집에 돈도 많아서 우리가 너를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그런데 내 남편한테 들으니까 너 배달부한테 시집갔다며, 네 남편 결혼 이튿날에 전쟁터로 나가서 5년 동안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아마 그곳에서 죽었겠지? 그리고 네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가족들이 반대해서 너 집에서 쫓겨났다며, 안타까워라.”“너희 남편 많은 걸 알고 있네.”박시율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내 남편 상류 인사라서 그런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지, 그리고 우리 남편 밑에 몇 천명이나 되는 직원도 있어. 그런 사람이니 여러 가문의 소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거지. 그리고 너 중주에서 이름난 미녀잖아, 그러니 당연히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지. 내 남편이 너 일자리 찾는 데에도 애를 많이 먹고 있다고 하던데,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네가 지금 왜 이렇게 된 건지.”임여을이 감탄했다, 그때 박시율 덕분에 퀸카 자리를 빼앗겼던 그녀는 어디에서나 박시율보다 못해 그녀는 늘 박시율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일 년 학비가 2200만 원이라고?”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난감했다.지금 그녀에게는 2000만 원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치원의 일 년 학비가 이렇게 비쌀 줄이야.임여을은 난감한 얼굴의 박시율을 보더니 득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