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율은 더 이상 임여을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임여을을 못 본 사이, 그녀는 속물이 되어있었다.“가자!”머지않아 화장실에서 나온 도범이 말했다.“돈, 돈이 모자라, 방금 내 대학 친구를 만났는데 아들도 여기에서 유치원 다니고 있다고 해서 물어봤는데 일 년에 2200만 원이 필요하대, 아직 200만 원이 모자라. 부모님께서 돈을 저금했는지 모르겠어, 두 분께서 돈을 저금하면 2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려고.”“괜찮아, 가자, 내 카드 긁으면 돼.”박시율의 말을 들은 도범이 그녀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아!”박시율이 반응을 하기도 전, 도범은 이미 그녀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이끌고 있었다.이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잡는 것이었기에 박시율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도범은 반대쪽 손에 수아의 포동포동한 손을 잡고 있었다.유치원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박시율은 부끄러움에 손을 빼내었다.“수아야, 여기서 유치원 다니고 싶어? 여기에서 공부하면 장난감도 많이 가지고 놀 수 있고 친구들도 엄청 많을 거야. 엄마랑 아빠가 시간이 되면 수아를 데리고 오고 아니면 지유 이모가 데리러 올 거야.”도범이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수아를 보며 물었다.“정말요? 친구들이랑 장난감이 많다고요? 너무 좋아요!”수아가 도범의 말을 듣더니 눈을 반짝이며 폴짝폴짝 뛰었다.그런 두 부녀를 보는 박시율도 흐뭇해졌다.두 사람은 곧바로 수아를 데리고 등록을 마치곤 돈을 내러 왔다.그리고 마침 돈을 내러 온 임여을을 다시 만났다.“시율아, 아직 안 갔어? 여기에는 왜 들어온 거야?”임여을이 놀란 얼굴로 박시율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도범을 보더니 말했다.“남편이 5년 동안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이미 죽은 거겠지? 그래서 아이한테 후 아버지를 찾아준 거야? 잘생겼네, 그런데 패션 감각은 좀 별로다. 시율이 너는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잘생긴 사람을 좋아해서 뭐 하니, 나처럼 돈 많은 사람을 찾아야지. 너를 봐, 돈이 없으니
“네가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나 내 친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여자가 화가 나서 말했다.하지만 곧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박시율을 비웃었다.“시율아, 너 이런 남자를 남편이라고 찾은 거야?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아 보이는데, 말도 저렇게 밖에 할 줄 모르고 정말 어이없다.”“어디를 봐서 내가 돈이 없다는 거야?”도범이 웃으며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학비를 담당하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건네줬다.“학비 여기 있습니다, 비밀번호는 필요 없어요.”“짧은 시간 안에 2200만 원을 빌리느라 수고했다, 온갖 방법 대가면서 빌린 거지?”임여을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2200만 원일 뿐인데 빌릴 필요가 있나?”도범이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으아아앙!”그때 여자의 아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 왜 넘어진 거야?”여자가 가슴 아프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의 아들에게 달려가 아이를 부축했다.“엄마, 쟤가 나 밀었어!”남자아이가 박수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뭐!”임여을은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일어서서 박수아를 밀었다.“으아아앙!”이번에는 박수아가 땅에 넘어져 울기 시작했다.도범과 박시율은 임여을이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 큰 어른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아이를 밀다니, 수아는 이제 갓 4살이 된 아이였다.박시율은 얼른 달려가 박수아를 일으켜 세웠다.“임여을, 왜 내 딸을 미는 거야? 아이들끼리 장난도 칠 수 있는 거잖아! 다 큰 어른이 이렇게 아이를 밀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우리 수아 다치기라도 했으면 너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걱정하지 마, 나 돈 많아. 병원비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고! 그리고 네 딸이 먼저 우리 아들을 밀었잖아, 이걸로 퉁 쳐.”임여을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수아야, 너 이제 4살 밖에 안 된 애가 왜 이렇게 장난기가 심한 거야? 왜 이 오빠를 민 거야? 같이 놀면 좋잖아.”박시율이 수아를 다그쳤다, 정말 수아가 상대방을 먼저 민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
박수아가 훌쩍이며 대답했다.박시율은 그런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뚝해, 뚝!”박수아를 한참 달래던 박시율이 차가운 얼굴로 일어섰다.“임여을, 너 너무한 거 아니야. 네 아들 혼자 넘어진 걸 내 딸을 탓하고, 그리고 우리 수아 잡종 아니고 아빠 있어!”“잡종 맞아, 엄마가 그랬어, 아빠 없는 아이는 잡종이라고! 아빠가 전쟁터에서 죽었으니 잡종 맞아!”임여을의 아들이 씩씩거리며 말했다.“누가 아빠가 없다고 그래? 저 사람이 수아 아빠야! 수아 아빠가 돌아왔다고!”도범은 박시율이 이토록 분노하며 목청을 높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딸은 그녀의 목숨과도 같았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는 걸 참을 수 있어도 어른인 임여을이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박수아를 밀어내는 건 박시율은 참을 수 없었다.“네 딸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저 사람이 네 딸 아빠라는 거 내가 알 리가 없잖아!”임여을은 조금 찔렸지만 여전히 당당하게 말했다.“내 딸한테 사과해, 지금 당장 사과해. 아니면 오늘 너 용서하지 않을 거야!”박시율이 화가 나서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했다.“어머님, 방금 아드님이 저 아이를 밀려고 했던 거 맞아요, 그러다가 혼자 넘어진 거고요.”그때 모든 것을 목격한 여자 선생님이 말했다.“여러분들도 아이를 위해서 이러시는 거잖아요, 다 자기 자식을 예뻐하는 법이니까 저쪽 부모님들도 당연히 가슴 아프겠죠, 그러니까 아드님이 먼저 사과하게 하시는 게 어떨까요?”여자 선생님의 말을 들은 임여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더니 표독스럽게 선생님을 쏘아보며 말했다.“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끼어드는 거야? 돈 있는 집 자식이 소중한 거지, 저런 거지 같은 집안 자식은 하나도 안 소중해, 그냥 잡종이지!”“내 딸한테 사과해!”박시율이 임여을을 잡고 고집스럽게 말했다.“꺼져, 박시율, 내가 너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아? 대학 친구라서 너를 상대해 주고 있는 거야, 나 상류 인사라고. 이 손 놔, 옷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너 배상해 줄 돈
“아!”전대영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손가락의 뼈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에 그의 이마에는 핏줄까지 드러났다.“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공장장이야, 밑에 몇 천명이나 거느리고 있다고, 그런 나한테 감히 손을 대?”그가 이를 악물고 도범을 노려봤다.“여기에서 이러지 마세요, 말로 하세요, 말로!”유치원의 선생님들이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말렸다.“공장장? 네가 뭐든 내 딸이랑 아내를 괴롭히면 안 되지, 내 전화 한 통이면 네 공장 문 닫아버리게 할 수도 있어!”도범이 표독스럽게 전대영을 쏘아보다가 힘껏 그를 밀었다.그러자 보기에는 건장한 전대영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아이고!”전대영이 소리를 지르며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문질렀다.“당신, 저렇게 마른 사람 하나도 못 이기는 거야?!”임여을은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곤 화가 나서 소리쳤다.“너, 너 이 자식, 여기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전대영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도범에게 손가락질을 하다 화가 난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여보, 걱정하지 마, 나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 저 자식 내가 반드시 혼내주고 말 거야.”“야, 너 오늘 끝났어! 오늘 유치원에서 걸어서 못 나가!”전대영의 말을 들은 임여을이 씩씩거리며 도범에게 소리쳤다.“내 딸이랑 와이프한테 사과해!”도범은 두 사람을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냉랭한 얼굴로 임여을을 다그쳤다.“사과? 꿈도 꾸지 마!”임여을이 허리를 짚으며 오만하게 말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도범이 임여을의 반대편 옷소매도 찢어버렸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던 임여을은 순식간에 두 팔뚝을 드러낸 우스운 꼴이 되었다.“너, 너 감히 내 옷을 찢다니, 변태! 여보, 이 남자 완전 변태야!”임여을이 소리치기 시작했다.“셋 셀 때까지 내 와이프랑 딸한테 사과 안 하면 당신이 입고 있는 옷 전부 다 찢어버릴 거야!”도범이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내가 왜 여기에 남아서 네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지?”도범이 웃으며 물었다.“너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하는 거지? 능력 있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여기를 떠나려고 하는 거야?”전대영이 대문을 막고 말했다.“내가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 와이프가 가자고 한 거야. 오늘 오래간만에 가족들이랑 쇼핑을 하러 나왔는데 이딴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잖아.”도범은 전대영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하지만 그때, 봉고차 몇 대가 유치원 앞에 멈춰 섰다.자기 쪽 사람들이 온 것을 확인한 전대영은 흥분한 얼굴로 도범을 바라봤다.“야, 이제 가려고 해도 늦었어, 우리 쪽 사람들이 도착했거든!”“잘 됐어!”임여을이 얼른 전대영 옆으로 다가가 기고만장한 얼굴로 말했다.“나더러 사과를 하라고? 방금 네가 그렇게 무섭게 굴지만 않았다면 나 절대 사과하지 않았을 거야. 너 오늘 끝났어.”하지만 도범은 당황하지 않고 박수아를 박시율의 품에 넘겨주며 웃었다.“오늘 내가 본때를 보여줘야 너희들이 정신을 차릴 것 같구나.”“저 자식 때려, 젠장, 불구로 만들어버려도 돼, 내가 한 사람당 400만 원씩 줄 테니까!”전대영이 명령했다.“저 사람들이 다치면 네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는 거지?”도범이 웃으며 물었다.“당연하지, 나 돈 많아, 얘들이 다치면 당연히 내가 돈을 내주고 치료해 줘야지! 하지만 너 혼자 열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겠어? 이제 좀 무섭지!”전대영이 임여을과 아들을 데리고 물러서며 다시 말했다.“때려, 저 자식 마음껏 때려!”하지만 일분도 되지 않아 전대영이 불러온 사람들은 전부 바닥에 누워 신음했다.“손 골절에 다리 골절, 갈비뼈 골절, 난리 났네, 이 사람들 다 치료해 주려면 돈 좀 들겠는데.”도범이 손을 털며 말했다.“이게 무슨…”전대영과 임여을은 서로를 한 눈 보며 침을 삼켰다, 심지어 자신들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고 의심까지 했다, 도범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돈을 들여야 했다.직원들의 가족들도 찾아와
“그럴 리가. 너희 어머니가 화병이 났다고 함부로 자살하려고 할 사람은 아니지 않아?”도범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나봉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지만 최근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그녀는 돈을 사랑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사랑했다.그런 사람이 화병 때문에 함부로 자살하려고 할 리가 없었다.박시율 역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여보 어떡하지? 어머니 아버지가 현금 7억 8천만 원을 은행 카드에 입금하려고 커다란 마대 자루에 넣은 채 집을 나섰는데 바로 은행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탄 두 소매치기한테 그 돈을 몽땅 도둑맞았대!”그 말에 도범이 숨을 들이켰다. 무려 7억 8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소매치기당했다니.다른 일이었다면 나봉희가 화병 때문에 자살하려고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물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그녀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우리한테 모처럼 생긴 큰돈인데. 어머니는 그 돈으로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하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바로 은행 앞에서 이런 일이…”박시율도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그 큰돈을 한 번에 잃어버렸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하필 지금처럼 돈이 부족한 시기에 말이다.“걱정하지 마 시율아, 비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 도범의 돈은 아무나 쉽게 빼앗아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도범이 담담한 표정으로 박시율에게 말했다.말을 마친 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어서 말했다.“그런데 나 의문점이 있어. 너희 어머니 아버지는 그 7억이 넘는 현금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마대 자루에 넣고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으로 외출했겠는데, 소매치기들은 어떻게 마침 그 안에 돈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 빼앗아 간 거지? 그것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빼앗겼다면서?”그 말에 박시율 역시 어리둥절했다.“어라,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한 것 같은데. 설마 우연이 아닌 건 아니겠지?”박시율이 섹시한 입술을 살짝 깨물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도범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가장 싼 가격의 디스 플러스를 피고 있었고 담배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맛이 났다.도범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말했다.“그러면 그 장소연이라는 여자가 위장에 능해서 당신 동생 앞에서는 옷도 평범하게 입고 순진한 척하는데 사실은 남 몰래 시답잖은 양아치 녀석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당신 동생은 그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고, 당신이 동생한테 이 일을 알리지 않는 건 말해봤자 믿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지?”박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바로 그거야. 동생에게 말했으면 분명 엄청 화를 냈을 거야. 예전에 내가 몇 번인가 귀띔해 준 적도 있어. 장소연 그 여자는 결혼해서 함께 살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여자라고, 조금 더 고민해 봐라고 말했었거든.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한 후 동생은 아예 집을 나가버렸어. 그리고 장소연과 피시방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었지!”박시율이 잠깐 말을 멈추고 도범을 바라보더니 이어서 말했다.“해일이는 피시방에 갈 돈이 없으면 나한테 와서 달라거나 당신 어머니한테 가서 돈을 달라고 했었어.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대뜸 욕설을 퍼부으며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며, 당신만 아니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박 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살 수 있었고 한 달에 용돈을 백만, 아니 몇백만원 씩 쓰는 건 일도 아니라며 소리쳐 댔었어!”그 말을 들은 도범은 화가 났다. 이제 보니 지난 몇 년 간 박시율과 자신의 어머니는 박해일 앞에서 울분을 참아가며 아무런 대꾸도 못한 일이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았다.거기다 생각만 해도 골머리를 앓게 하는 장모님까지 있었다.“혹시 장소연과 당신 동생이 합세하여 사람을 시켜서 그 돈을 도둑질한 건 아니겠지? 혹시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도범이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박시율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불가능해. 불과 며칠 전에 어머니가 그에게 천만 원을 주면서 장소연에게 선물을 사주라고 했었잖아.
“네가 말한 거야. 네 입으로 직접 말했어. 난 몰라. 만약 이 돈을 찾지 못하면 네놈이 나한테 7억 6천만 원을 줘야 돼!”나봉희가 도범의 말을 듣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옷깃을 잡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어머니, 도범이 어머니 돈을 빼앗은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이는 기껏해야 어머니를 도와 돈을 되찾을 수 있는지 알아봐 줄 뿐이죠. 만약 이대로 찾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이이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박시율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일까지 도범의 탓으로 돌리다니.“난 몰라. 누가 저놈더러 돈을 꼭 찾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라고 했어?”나봉희는 여전히 도범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네 네 네. 제가 찾아오지 못하면 저한테 달라고 하세요!”도범이 식은땀을 흘리며 상대방의 손을 떼어냈다.“장모님 걱정 마세요. 시율이의 어머니는 저희 어머니와 마찬가지죠. 제가 절대 다른 사람이 어머니 돈을 빼앗아 가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그래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지!”나봉희가 드디어 울음을 멈추고 기뻐하며 도범에게 말했다.“그럼 어디 한 번 노력해 보거라. 나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으니 기한은 정해야 하지 않겠어? 일주일 안으로 찾아올 수 있겠지?”“어머니 그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겠어요? 저희가 뭐 밖에 나가 돈을 주우러 다니는 줄 알아요? 소매치기 놈들이 돈을 빼앗아 가서 어느 곳에 숨겨두었을지 누가 알겠어요!”박시율은 도범 대신 이 불공평한 제안에 맞서고 나섰다. 나봉희는 마치 도범이 7억이 넘는 돈을 그녀에게 빚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저놈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잖니. 그게 왜 내 탓이야 안 그래?”나봉희 역시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조금은 주눅 든 태도로 한 마디 내 뱉었다.말을 마친 그녀가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자신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