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대체 무슨 논리람? 더군다나 남자 친구를 만나려면 제대로 된 곳에서 찾아야지 클럽에서 찾는 건 대체 뭐지?’‘이렇게 난장판인 곳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이건 단지 주선영네 룸메이트들이 너무 대담하고 허영심이 강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클럽 같은 곳에서 잘나가는 도련님 하나 건질 생각일지도 모른다.주선영이 계속 이런 애들과 어울린다면 분명 나쁜 물이 들 게 뻔했기에, 나는 오빠가 동생 타이르듯 차분히 경고했다.“앞으로 룸메이트들과 어울리지 마. 정말 남자 친구 사귀려면 정상적인 곳에서 만나고.”“알았어요.”주선영은 고분고분 대답했다.“나 목마르니까 물 좀 따라줘.”주선영은 곧장 물 한 컵을 따라 가져왔다.“됐어. 넌 이만 휴식해.”“수호 오빠, 오빠 오늘 여기서 잘 거예요?”“응.”“어떻게 그래요? 몸도 다쳤으면서. 아니면 차라리 내 방에서 자요.”주선영의 말에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잠자리 바꾼다 해도 민우랑 바꿔야지 어떻게 여자애랑 바꿔? 넌 얼른 가서 자.”주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특히 오늘 밤 벌어진 일을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존경스럽기도 했다.난 오늘 내가 첫걸음을 내디뎠기에 앞으로 점점 더 용감해질 거라고 믿는다. 적어도 다시는 예전처럼 겁쟁이가 아닐 거다.전에 혈자리로 체력을 한꺼번에 끌어 쓴 관계로 너무 피곤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꿈나라에 들었다. 심지어 어찌나 편했는지 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푹 잠들고 말았다.“수호야, 무슨 꿈을 꼈길래 그렇게 기뻐해?”민우가 얼굴을 내 앞으로 쭉 내밀면서 의아한 듯 물었다.방금 전, 나는 확실히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꿨다. 꿈에서 내 실력은 놀랍게 제고되어 양동준이 결국 나를 제자로 받아주었다. 그렇게 양동준한테서 많은 걸 배운 나는 임천호한테마저 패기 있게 맞설 수 있었다.그 느낌은 그야말로 너무 끝내주었
“정말 갔어요?”난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태곤은 절대 순순히 돌아갈 사람이 아니다.그때 소여정이 말했다.“갔어. 가는 거 내가 직접 봤어. 어젯밤 일은 정말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분명 막았을 거야.”“소여정 씨 탓할 생각 없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그러자 소여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정말 내 탓 안 해?”“소여정 씨가 정태곤더러 저를 죽이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소여정 씨를 탓해요?”“내가 수호 씨 찾아가서 정태곤이 살의를 느낀 거잖아.”소여정이 말했다.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하긴. 그럼 다음부터 저 찾아오지 마세요.”“진심이야?”“농담이에요. 소여정 씨는 제 환자잖아요. 제가 제 환자를 치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운 거지.”문제에 직면했다고 자꾸 피하면 안 된다. 만약 내가 피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일 테니까.게다가 앞으로 따로 나가 사업하면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할 텐데, 고작 이런 용기조차 없다면 사업도 하지 말아야 한다.내 말을 들은 소여정은 은근히 기뻐했다.“어디 있어? 내가 지금 갈게.”“오늘은 됐어요. 저 다쳐서 오늘 하루는 집에서 휴식하고 있거든요.”“치료하러 가는 거 아니야. 얼마나 다쳤나 보러 가는 거지. 수호 씨 입으로 내 의사라고 했잖아. 내 주치의가 나 때문에 다쳤는데 병문안 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소여정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어 결국 주소를 알려주었다.하지만 놀랍게도 소여정은 혼자 온 게 아니라 백연우와 함께 왔다.“하. 나 오늘 바빠. 지은이 찾아가지 왜 나를 끌고 오는 거야?”“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성격이 안 맞는 거 알면서. 내가 부른다고 지은이가 따라오겠어?”두 사람은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소여정의 손에 보건 식품을 가득 들려 있었다.“그 정도 아니에요. 이거 다 찰과상이에요.”이 보건 식품은 모두 귀한 것들이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거
“비꼬지 마세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정태곤을 죽이고 싶어요. 그럴 능력이 안 돼서 비겁한 수단으로 상대한 거지.”“비겁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목숨만 건지면 되지.”어제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난 양동준만큼 강해지고 싶다. 아니, 심지어 양동준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임천호처럼 실력이 부족해도 권력이 있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부하를 거느리던가.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어젯밤은 운이 좋았던 거지만, 다음번에도 과연 그럴까?정태곤이 가더라도 또 강태곤이거나 서태곤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임천호의 부하가 얼마나 많은데. 수많은 사람이 임천호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 때문에 나는 서둘러 강해져야 한다.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소여정이 갑자기 내 옆에 앉았다.“먹어. 왜 안 먹어?”나는 두 입에 제비집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됐어요. 이제 배불러요. 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이만 가 줘요. 전 휴식할 테니까.”사실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내 말에 소여정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그렇게 우리가 갔으면 좋겠어?”나는 차분히 해명했다.“저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 그렇게 다쳤으면서 설마 여자 만나러 가려고?”“아니요. 중요한 일이에요!”나는 재차 강조했다.“그럼 같이 가.”“그럴 필요 없어요. 사적인 일이라 데리고 가기 불편해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가세요.”오랜 설득 끝에 나는 겨우 두 불청객을 집에서 내보냈다. 이윽고 외투를 걸치고 국민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윤 회장님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운에 맡겨야지.’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하지만 뜻밖에도 내 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윤 회장님. 이런 우연이. 또 만나네요.”윤해철이 오늘도 평행봉에서 운동하는 걸 본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윤해철은 나를 흘긋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나도 수호 군이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아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기다리지도 않았어.”윤해철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왜 기다리신 거예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윤해철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저쪽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자고.”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해철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았다.“우리 집사람이 수호 군한테 뭘 시켰는지 나도 아네. 하지만 난 아직 집사람을 받아줄 수 없어. 몸 건강 때문이 아니라 회사 때문에. 우리 회사에 요즘 문제가 생겼는데 한동안은 그걸 처리해야 하거든. 그러니 우리 집사람 쪽은 수호 군이 시간 좀 끌어 줘.”윤해철이 상세한 사항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고민됐다.내가 이영미를 돕는 건, 이영미가 양동준을 설득해 나를 제자로 받게 해준다고 약속해서다. 하지만 윤해철을 돕는 건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기에, 도와야 할지 무척 고민됐다.짝짝!내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윤해철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수풀 뒤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한 남자가 걸어 나와 윤해철에게 공손히 인사했다.“윤 회장님.”윤해철은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나를 바라봤다.“이 애는 내 개인 경호원 겸 기사인 변석훈이라고 하네. 이 애의 실력도 양동준 못지않아. 수호 군이 내 요구를 들어주면 석훈이더러 수호 군을 제자로 받아주라고 할게.”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변석훈의 실력이라면 의심이 가지 않았다. 윤해철의 개인 경호를 맡을 정도라면 실력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왜? 싫나?”윤해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좋아요. 너무 좋아요. 회장님 조건은 저한테 너무 이득이에요.”“하하. 별거 아니야.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거든.”비록 그렇다지만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하지만 변석훈의 말은 역전하려는 내 꿈을 처참히 짓뭉개 버렸다.내가 풀이 죽어 있을 때 변석훈이 갑자기 또 입을 열었다.“비록 실력은 나처럼 될 수 없어도 기술을 많이 익히면 적어도 스스로 보호할 수는 있어.”‘말 좀 한꺼번에 하지. 희망 없는 줄 알고 놀랐네.’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스승님께서 좀 가르쳐 주세요.”“여기 내 명함이야. 몸 다 회복하면 연락해.”나는 얼른 그 명함을 챙겼다.그 뒤로 변석훈은 나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윤해철을 찾아갔고, 윤해철도 운동이 거의 끝났는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나는 이영미에게 바로 문자했다. 남편분 건강이 채 회복되지 않아 몸조리를 더 해야 한다고.문자를 받기 바쁘게 이영미는 곧장 나에게 전화했다.[대체 몸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벌써 보름 동안 몸조리했는데 아직도 안 나았다고?]“한약 치료는 원래 효과가 늦게 나타나요. 이건 급하면 안 돼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셔야 해요. 제가 윤 회장님 몸 다 치료해 드리면 회장님은 무조건 어머님을 모셔갈 거예요.”이영미는 짜증나는 듯 물었다.[그이가 나한테 전한 말은 없었어?]“무척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직은 어머님이 원하는 행복을 드릴 수 없어 모셔 와도 싸울 거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젊을 때 절제를 몰랐다고 무척 후회하셨어요.”나는 이영미가 또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대충 그럴싸한 변명을 지어냈다.그 말을 들은 이영미는 살짝 놀란 듯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럼 시간 좀 더 준다고 전해줘. 그러니 수호 씨도 서둘러야 해. 되도록이면 우리 남편 몸 예전처럼 돌려 놔줘.]“그럼요. 그러니 어머님도 요즘 인내심 갖고 기다리세요. 지은 씨도 출근하랴 어머님 기분 맞춰드리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걸 수호 씨가 어떻게 알아?]“당연히 지은 씨한테서 들였죠. 지은 씨가 저더러 어머님과 윤 회장님을 도와주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방금 확인했는데 윤 회장님
이영미는 개량한복 스타일의 슬립을 입고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연핑크색에 우아한 얼굴이 어우러져 섹시하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자인 내가 이대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좋은 마음에 귀띔했다.“어머님, 외투라도 좀 걸치는 게 어때요?”“한여름에 외투는 무슨. 더워죽겠는데. 난 집에서 항상 이렇게 입어. 수호 씨도 익숙해지면 돼. 얼른 들어와.”이영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상대도 괜찮다는데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면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라, 나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훑었다.“혹시 혼자 계세요? 하정현 씨는요?”“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정현이는 못 봤어. 지은이 말로는 B시에 가슴 보러 갔대.”집에 정말 이영미 혼자뿐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얼른 치료하고 빨리 떠날 생각뿐이었다. 시간을 끌다 윤지은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나는 입이 열 개라도 설명할 수 없었을 테니까.“어머님, 혹시 어디가 불편하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나는 빨리 끝나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여기. 자꾸만 답답하고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우선 앉으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이영미는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내가 맥을 짚는 사이 이영미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는 내가 어떤 것 같아?”‘엥? 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아름다우시죠. 관리도 잘하셨고.”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영미는 으쓱한 듯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당연하지. 나 이거 다 자연산이야. 화장도 안 했어.”“네.”“여자가 하고 싶을 때 어떤 방법으로 욕구를 억제해야 해?”갑자기 야릇해진 대화 주제에 나는 어색해서 코를 쓱 문질렀다.“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해소될 수 있어요.”“소용없던 걸? 내가 다 해봤어. 혹시 다른 방법은 없어? 예를 들면 혈자리를 마사지한다던가 혹은 침으로 자극한다던가.”
“이렇게요. 손가락을 구부리지 말고 쫙 펴야 해요.”나는 최선을 다해 시범을 보여주었다.그때 이영미가 갑자기 내 바지춤을 잡으며 말했다.“옷이 너무 커서 시선이 막히잖아. 옷 벗어 봐. 그래야 잘 보이지.”“어머님, 그건 안 돼요...”“그럼 옷을 들어 올리던가. 이렇게 하면 잘 안 보여.”나는 어쩔 수 없이 티셔츠 밑단을 위로 들고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보세요. 이렇게 손가락을 놓으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간격이 조금 생기는데 그 위치가 바로 우리가 찾으려는 혈자리예요.”“똑바로 앉아 봐. 잘 안 보여.”이영미는 또다시 나를 마구 잡아당겼다. 이러다가 바지가 벗겨질 것 같아 나는 다급히 일어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그녀와 거리를 유지했다. “어머님, 전 이미 충분히 보여줬으니 직접 찾아보세요.”“이렇게? 이것 봐, 내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니까.”이영미는 동안에 귀염 상이지만 손은 어찌나 둔한지 계속 틀렸다.결국 보다 못한 나는 직접 가르쳐주었다. 다만 자세만 잡아주고 혈자리를 찾는 건 역시나 이영미 스스로 찾게 했다.“혈자리를 찾았다면 가볍게 눌러 봐요. 시큰거리는지 확인해 봐요.”그 과정에 나는 이영미를 보지 않으려고 계속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 말에 이영미는 혈자리를 살짝 눌렀다.“아. 진짜 시큰거리는 것 같네. 앞으로 여기를 누르면 해소된다는 거지?”“네.”나는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이영미의 맥을 짚었다.이영미는 낮은 소리로 진작 물었던 걸 그랬다며 혼잣말했다. 이영미의 모습을 보니 연기 같지는 않았다. 아까 계속 내 바지를 내리려 해서 하마터면 이영미가 나한테 뭐라도 할 줄 알고 진땀을 뺐는데, 보아하니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었다.맥을 한참 짚어본 뒤 나는 상황을 말했다.“보아하니 편두통이 있으신 것 같아요. 손으로 마사지하면 두통이 사라질 거예요.”나는 이영미더러 소파에 기대앉게 하고 나는 소파 뒤에 선 채 머리를 마사지해 줬다.그때 이영미가 갑자
“절대 못 그래요. 제가 그렇게 물으면 지은 씨는 분명 저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예요.”나는 바로 거절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우리 딸이 정말 불감증은 아니겠지? 평생 결혼도 안 하고 남자도 안 만나려는 건가? 남자랑 한 번도 해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불쌍한데.”“크흠...”서슴없이 말하는 이영미의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수호 씨, 힘 좀 써봐. 아무 느낌도 안 나잖아.”“이 정도면 돼요?”“아니. 더 힘써 봐. 난 심플하고 거친 걸 좋아하거든.”“이렇게요?”“아, 좋아...”한편, 집 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려던 윤지은은 안에서 어머니와 누군가의 이상한 대화가 들려 다급히 문에 귀를 바짝 댔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대화를 들어 버렸다.그 순간 나와 제 어머니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착각한 윤지은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문을 확 열어젖히고 노기등등해서 들어왔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하지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참 공교롭게도 윤지은이 들어오기 바로 전 이영미는 소파가 불편하다며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이영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나와 이영미가 한 방에 같이 있는 장면을 윤지은에게 들키고 말았다.단단히 화가 난 윤지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손에 잡히는 대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 넘봐? 내가 너 다시는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 거야.”나는 침실에 들어오기 전에 사실 도어락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영미가 얼른 마사지해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바로 그걸 무시해 버렸다.고개를 돌렸을 때 이영미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게다가 슬립이 너무 짧아 예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이런 상태에서 마사지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망설이고 있을 때, 이영미가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 집에 사람도 없는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잖아. 얼른 눌
“남주 누나, 농담 아니죠?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니요? 그럴 리가요.”‘형수처럼 좋은 분이 감옥에 다녀올 리가 있나?’나는 그 말을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예상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내 신분을 생각해 봐.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어?”남주 누나의 신분을 생각하니 나는 더 충격에 빠졌다.남주 누나의 신분이라면 이런 일을 조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렇다는 건,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건 진짜일 확률이 높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형수가 왜 감옥에 다녀와요?”“사실 큰일은 아니었어. 네 형수가 결혼 전에 쫓아다니는 남자가 엄청 많았거든. 심지어 네 형수 미모에 반해 스토킹하고 강제로 몸을 취하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어. 그런데 네 형수 성격이 그 당시 너무 강해서 상대를 칼로 찍는 바람에 1년 수감되었어.”“그런 일은 여자한테 얼마나 큰 오점이자 상처야? 누가 감옥살이를 한 적 있는 여자와 결혼하려 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네 형수 몸매와 외모로 왜 진동성과 결혼했을까?”이렇게 말하니 나는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난 형수가 잘못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런데 그게 이혼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남주 누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찔렀다.“똑똑한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방면에서는 이렇게 둔해? 네가 스스로 생각해. 만약 이것도 모른다면 앞으로 너 안 찾아올 거야. 정말 그 정도 IQ라면 전염될까 봐 두렵네.”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주 무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진동성이 형수랑 결혼할 때 그 약점으로 협박했어요?”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떨쳐내지 못 할 정도였다.남주 누나는 곧바로 긍정적인 눈빛을 보냈다.“음, 너무 바보는 아니네. 앞으로 계속 찾아와도 되겠어.”나는 일순 소름이 돋아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순간 손끝부터 발끝까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이 순간 진동성의 이미지는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나는 몸이 짜릿했다.“어때? 기분 좋아?”남주 누나는 생긋 웃으며 내 가슴에 엎드리더니 긴 손톱으로 내 피부를 긁어내렸다.그때까지도 나는 방금 전 느낌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남주 누나, 안 본 사이에 더 대단해졌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숨 못 쉴 뻔했잖아요.”이런 느낌은 남주 누나와 할 때만 느낄 수 있다.그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경험을 해봤지만 남주 누나를 이길 상대는 아무도 없다.남주 누나는 몸매가 끝내주는 것도 모자라 남자가 어떤 걸 원하는지 너무 잘 알아 욕망을 살살 건드리곤 한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남자가 흥분하는지, 어떻게 하면 미치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 좋아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남주 누나의 모든 자세는 그야말로 나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했다. 더욱이 이제는 걱정할 것도 없겠어 멘트마저 노골적으로 변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전생에 기녀였나 보지.”나는 너무 난감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를 이렇게 형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남주 누나는 내 가슴을 살짝 깨물었다.“또 할래? 다른 자세도 있는데.”“저...”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다리를 쫙 벌린 채 내 몸에 올라탔다....그 시각 형수는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화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분명 저를 보러 온다고 했으면서 남주 누나를 따라 나가버렸으니까.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얼마 뒤 옆집에서 곧바로 19금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딱 들어도 친구 남주가 낸 소리였다.형수는 곧바로 나와 남주 누나가 옆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게다가 남주 누나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건 형수를 향한 도발이었다.형수는 소리를 들을수록 화가 나고 온몸이 불편했으며 아래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내가 남주 누나와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정수호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수호 씨더러 애교를 꼬시라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만약 형수가 애초에 나를 애교 누나에게 밀어주지만 않았어도 지금 나는 형수 혼
“없어요.”형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네가 뭐 수호 친형 와이프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수호 씨 일 끼어들 자격 없잖아.”“푸들, 너한테 선택할 기회를 줄게. 이 집에 남아 있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갈래?”남주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작은 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나랑 같이 나가자. 네 형수가 왜 이혼하지 않으려 하는지 알려줄게.”남주 누나의 말은 너무 유혹적인 제안이라 내 마음은 흔들렸다.게다가 형수가 계속 이혼을 거부하는 게 무슨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나 생각하던 참에, 마침 답을 너무 알고 싶었다.하지만 내가 정말 남주 누나와 함께 나가면 형수는 반드시 화낼 거다.그때 남주 누나가 일부러 형수의 화를 돋우려는 듯 계속 나를 향해 윙크했다.나는 마음으로는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형수의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우리 나가요.”“수호 씨...”나를 보는 형수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내 마음은 미어질 것만 같았다.나는 살짝 마음이 흔들려 형수에게 말했다.“형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면 말해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요.”“나한테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어요? 갈 테면 가요. 이번에 가면 영원이 오지 마요.”형수는 질투한 게 틀림없었다.그걸 나는 당연히 눈치챘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계속 내 팔을 잡아당기며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는 사인을 보냈다.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일을 그르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남주 누나와 함께 밖을 나갔다.형수 집을 나온 뒤, 나는 얼른 남주 누나에게 물었다.“대체 뭘 아는 거예요? 말해줘요.”“급할 거 뭐 있어? 네 애교 누나 집에서 말해줄게.”“누나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갖고 있어요?”“내가 애교한테 달라고 했어.”남주 누나는 손바닥을 활짝 펴며 쥐고 있던 열쇠 뭉치를 보여주었다.나는 무척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애교 누나 집에 가려는 건
“나 아직 너한테 질리지 않았어. 내가 몇 번 더 해줄게. 나중에 내가 너한테 질리면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될 거야.”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 것을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주 누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무슨 뜻이에요? 저 하나로는 만족 못 하고 다른 놈 만나겠다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일어섰다.“너 하나로 어떻게 만족해? 난 역하렘이라도 만들어 매일 다른 남자와 즐겨보고 싶은데.”“누나 진짜 나쁜 여자네요. 전 허락 못 해요.”나는 남주 누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그러자 남자 누나는 일부러 내 팔뚝을 물었다. 그게 너무 아프고 짜릿해 내 욕망은 단번에 솟아났다.“요물!”“요물이 네 정기 다 빨아먹고 싶다는데, 그래줄 수 있어?”남주 누나는 눈웃음치며 나를 바라봤다. 누나의 빨간 입술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숨어 있었다.나는 화장실 쪽을 흘긋 바라봤다.“좋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싫어요.”“그럼 밖에 나가자. 나 제대로 만족시켜 줘.”남주 누나는 점점 더 요망해지는 것 같았다.이런 여자의 유혹을 견딜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을 거다.내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때, 형수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나왔다.그 순간 나는 잘못을 들킨 것처럼 발이 저렸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팔짱을 끼며 형수에게 말했다.“태연아, 나 네 남편 동생 따먹고 싶은데, 괜찮지?”형수는 예쁜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 나는 더 마음이 찔렸다.“형수, 저...”나는 뭔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때 형수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싫어! 최남주, 피해줄 거면 다른 놈 건드려. 수호 씨 건드리지 말고.”“피해준다니? 사랑을 나누려는 건데. 안 그래 수호야?”“수호 씨는 네 사랑 필요 없어.”“내가 아니면 누가 사랑해 주는데? 설마 너? 고태연, 난 지금 솔로야. 난 누구랑 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넌 달라. 너랑 진동성은
남주 누나는 절대 좋은 여자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좋은 여자는 애교 누나처럼 다정다감하고 결혼하기 적합한 조강지처 스타일이니까.하지만 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남주 누나는 싱긋 웃었다.“형수 집에 가 봐. 이따 봐.”“네.”나는 사실 남주 누나가 형수네 집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형수랑 단둘이 있고 싶었으니까.하지만 남주 누나가 가겠다는 걸 내가 막을 수는 없었다. 남주 누나도 이제 막 이혼해 기분이 안 좋을 게 뻔했으니까.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으로 향했다. 남주 누나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수호 왔어? 얼른 와서 나 마사지 좀 해줘.”남주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소파에 엎드리며 마사지를 요구했다.오랜만에 보는 건 데도 남주 누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요염했으며 고혹적이었다. 남주 누나를 본 순간 누나와 멀어져야겠다던 내 결심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남주 누나가 소파에 눕자 볼륨감 넘치는 콜라병 몸매는 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하고 싶어?”남주 누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난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상대는 형수였다.남주 누나는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긁었다.“난 하고 싶은데.”남주 누나의 매혹적인 눈빛은 분명 나를 꼬시는 게 틀림없었다.어쩜 이리도 대담한 건지. 형수 집에서마저 이러다니.나는 다급히 손을 뒤로 뺐다.“안 돼요. 여긴 형수 집이에요.”“네 형수도 함께 부르는 건 어때?”남주 누나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그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누, 누나 그건 너무 대담한 거 아니에요?”“못 하겠어?”“네, 못 하겠어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무엇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형수한테 맞을까 봐 겁이 났다.“쫄긴. 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네가 뭐가 무서워?”남주 누나는 내 팔을 살짝 꼬집었다.그 순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내가 누나처럼 밝히는 것도 아닌데. 누나는 당연히 안 무섭겠죠.’“내가 왜 이혼했는지
더욱이 요즘은 마사지를 하면서 은근슬쩍 고객님한테 흘리며 암시했다.화인당에서는 그런 걸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때문에 나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려고 안준희를 찾아갔다.사무실 안.안준희는 내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빙빙 돌려 말했다.“정 사장님이 세운 규칙 잊었어요?”“아니요.”“그런데 왜 그래요?”“나도 수호 씨한테 시비 걸려는 거 아니에요. 다만 요즘 급전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왜요?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나도 상대가 일부러 나에게 시비 거는 게 아닌 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인내심 있게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안준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인내심을 갖고 물었다.“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하지만 가게 규칙을 어겼으니 다음번에 또 고객한테 은근슬쩍 암시하다가 걸리면 바로 해고할 거예요.”안준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나는 마음이 심란하고 짜증이 났다.사장님 일은 당분간 해결됐지만, 내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임천호가 나타난 뒤로 소여정도 더 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않고, 윤미화는 본인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사모님은 사장님을 매일 돌봐야 하고, 백연우는 하루 종일 학교에만 붙어 있고 애교 누나마저 집에 갇혀, 내 주변에 여자라곤 형수님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미녀들한테 둘러싸이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니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결국 나는 핸드폰을 꺼내 형수한테 문자를 보냈다.[형수, 뭐 해요?][내가 뭐 할 게 있나요? 티브이 보고 있죠.][형수, 보고 싶어요.][보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요. 진동성도 집에 없어요.]형수의 말에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다.며칠 동안 형수를 만나지 못했더니 정말 보고 싶었다.나는 형수네 집에 가려고 짐을 정리했다. 하지만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려 확인했더니 남주 누나의 이름이 액정에 떴다.나는
한지영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연기에 협조했다.하지만 주위를 빙 둘러봤지만 우리 쪽을 바라보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전 남자 친구가 우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나 보네.’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한지영에게 물었다.“전 남자 친구는 어디 있는데요?”“사실 난 전 남자 친구가 없어요.”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얼굴은 어두워졌다.“미쳤어요? 사람 놀리니 재밌어요?”나는 짜증을 내며 한지영의 손을 뿌리쳤다.그랬더니 한지영이 애원하는 듯 말했다.“사실 나 연기자예요.”“그쪽이 연기자면 난 연기 천재예요.”나는 더 이상 한지영을 상대하기 싫어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속으로 봉섭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분이 어쩌다 이런 미친 손녀를 뒀는지 안 됐다고 생각했다.테이블 앞에 도착한 나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 무엇보다 내 언짢은 기분을 봉섭 할아버지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잠시 뒤, 한지영도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착석한 뒤로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계속 외할아버지와 이야기꽃을 피웠다.식사를 마친 뒤, 한지영은 곧장 계산하러 갔다. 하지만 사내대장부인 내가 여자더러 계산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말없이 한지영의 뒤를 따랐다.다만 내가 내겠다고 해도 한지영은 본인이 낸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 계산할 때 신용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이봐요, 돈도 없으면서 왜 돈 많은 척 연기해요?”딱 보니 한지영은 돈을 벌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돈 많은 척 자신을 속이고 다녔던 모양이었다.내 말에 한지영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작게 말해요. 할아버지가 들으면 안 되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밖에서 배우 활동하는 줄 안단 말이에요. 그런데 배우 되기 어디 그렇게 쉽나요? 그런데 난 언젠가 유명한 배우가 될 거라고 믿어요.”한지영은 돈이 없는 건 물론 자기가 대배우라는 착각속에 빠져 살고 있었다.그 순간 한지영이 겉보기에는 분명 화려해 보였는데 혼자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방금까지
어여쁜 여자가 웃으며 달려오더니 봉섭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다.“할아버지, 오랜만이에요. 너무 보고싶었어요.”“다 큰 여자애가 왜 이렇게 점잖지 못해? 참, 네 동생도 이틀 전에 B시에 갔다던데. 둘이 만났어?”“네. 그 계집애가 글쎄 가슴 수술 하겠다는 걸 내가 호되게 혼냈어요. 그랬더니 삐쳐서는 같이 오자고 했는데도 거절하더라요.”“걔는 갑자기 왜 가슴 수술을 받겠다는 거야? 세상에 각양각색의 미녀가 얼마나 많은데. 다 똑같이 생기면 뭔 의미가 있어?”할아버지가 손녀와 얘기하는 도중에 끼어들 수 없었기에, 나는 살짝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그러는 와중에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그때 한창 얘기하던 여자가 나를 보더니 누구냐고 물었다.봉섭 할아버지는 우리를 서로 소개해 주었다.“여긴 정수호라고 내 친구네 손자. 아까 이 친구가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수호야, 여긴 내 손녀 한지영이야.”“반가워요.”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한지영이 나를 훑어보는 눈빛은 너무 불편했다.노골적인 시선에 나는 상대가 왜 이러나, 내 얼굴에 꽃이라도 있나 의심했다.한지영은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외할아버지께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초대했다.결국 나도 그 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우리는 고심 끝에 한 중식당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지영은 수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 모습만 봐도 상대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수호 씨도 나랑 같이 음료수 선택하러 가지 않을래요?”나는 한지영이 왜 갑자기 나를 따로 불러내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뒤따라갔다.음료를 고를 때 한지영이 갑자기 물었다.“혹시 무슨 일 해요?”“한약관에서 마사지사로 일해요.”“몸매도 좋아 보이는데 혹시 모델에 관심 있어요?”나는 눈을 홉뜨며 단번에 거절했다.“없어요.”한지영은 아까부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훑어봤는데, 그 시선은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게다가 한의대를 졸업한 나더러 모델을 하라
임민수와 한영심은 나른하게 누워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나도 내 행동이 너무 지나치고 무례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나는 단지 봉섭 할아버지가 얼른 사장님 병을 치료하기를 바랄 뿐이었다.치료 과정에 나는 두 어르신 옆을 지키며 감각이 돌아오려고 할 때마다 협곡혈을 찔렀다.그 과정에 임민수의 눈빛은 나를 잡아먹으려던 데로부터 갈기갈기 찢어발기려는 것처럼 살의를 띄었다.사실 나도 너무 난감했다. 심지어 너무 무서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그러다 약 3시간이 지났을 때쯤 봉섭 할아버지의 입에서 겨우 끝났다는 말이 들렸다.나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 몸은 어느새 식은땀에 흠뻑 젖어 티셔츠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나는 얼른 달려 나가 사장님 상태를 살폈다.“사장님, 어때요?”사장님은 힘에 부친 듯해 보였다.그때 봉섭 할아버지가 말했다.“치료가 방금 끝나 아직은 몸이 허약할 거야. 한동안은 몸조리해야 해.”이 선생님은 옆에서 연신 감탄했다.“어르신, 침술 실력이 참 대단하네요. 저도 30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이렇게 안정적인 침술 수법은 처음 봐요.”봉섭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자네도 내 침술 실력이 보통이 아닌 걸 눈치챈 걸 보면 실력이 만만치 않군.”사모님은 얼른 사장님 곁으로 다가가 땀을 닦아주었다.그사이 나는 봉섭 할아버지와 이 선생님의 대화를 열심히 엿들었다. 심지어 얼마나 집중했는지 침대에 있는 임민수 내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잡아먹을 듯한 임민수의 눈과 딱 마주쳐 얼른 목을 움츠렸다.“어르신, 죄송합니다.”“죄송?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당장 나가! 당장!”임민수가 폭발한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기 두려워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봉섭 할아버지와 이 선생님도 잇따라 밖으로 나왔다.사모님 집에서 나오기 바쁘게 두려움은 싹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