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당신 뭐 하려는 거야?”진용진은 바지를 한사코 움켜쥐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그러자 고수연이 버럭 소리쳤다.“내가 구역질 난다며? 그럼 더 구역질 나게 해줄게. 나 당신 X폭행할 거야!”나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여자가 남편을 X폭행할 거라고?’‘이건 사나운 정도가 아닌데!’진용진은 다급히 소리쳤다.“당신 미쳤어? 그러고도 여자야? 당신 같은 여자가 어디 있어?”고수연은 말없이 진용진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아예 그를 소파 위로 밀쳤다.“내가 여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나랑 할 때는 신나 하더니, 질리니까 이제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고? 내 의견 물었어?”고수연은 벌써 남편의 바지를 벗겨 버렸다.그 모습은 정말 뭐라도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이대로 가야 할지 남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저기... 내가 나간 뒤에 하면 안 돼요?”나는 고수연의 의견을 물었다.하지만 고수연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걸 말해야 알아요? 당장 안 가고 뭐 해요.”‘젠장, 남의 호의도 몰라주고, 배은망덕하기는!’나는 얼른 뒤돌아 그 집을 빠져나왔다.내가 나오자마자 집 안에서 진용진의 비명이 들렸다.그 소리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저 여자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설마 남편 그곳을 물어뜯은 건 아니겠지?’‘정말 그렇다면 너무 지독한데?’나는 다시 차에 올라 형수에게 전화했다.“형수, 걱정하지 마요. 누나 동생분이 진용진을 이미 제압했어요.”[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전에 일은 내가 수연한테 잘 얘기할 테니까 계속 거기 묵는 건 어때요? 그럼 나도 마음 놓일 텐데.]나는 다급히 거절했다.“아니요. 때려죽여도 싫어요. 형수, 저 이제 돈도 벌고 있으니 방 구하는 건 스스로 할 수 있어요.”[그런데, 수호 씨가 밖에서 지내는 게 걱정이에요.]‘이 상황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저 남자예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다른 여자가 수호 씨 몸 노릴까 봐 그러죠.]형수는 농담 섞인
[이미 결심했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죠.]나는 형수한테 미안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형수, 제가 최대한 진동성 마음 형수한테로 되돌려 놓을게요.”[그 인간이 어떻게 하든 이젠 상관없어요. 난 고수연과 달라요. 고수연은 남자한테 의지해 살지만, 난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진동성과 서로 사생활 터치하지 않고, 생활은 같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사는 부부들 많잖아요.]나는 여전히 시름 놓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었다.“형수, 혹시 다른 남자 만날 거예요?”형수는 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서 내가 밖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 만나는 것도 안 돼요?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에요?]“형수, 정말 젊고 잘생긴 남자 만나려고요?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 심지어 질투까지 났다.사실 나는 형수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싫었다.하지만 형수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진동성이 뭘 하든 상관없다고, 평생 혼자 외롭게 살면 나만 손해 아닌가요? 그리고 이 나이 여자들은 남자 사랑이 없으면 빨리 늙어요.][수호 씨도 이제 결정 내렸으니, 앞으로 나 상관하면 안 되죠. 나도 수요가 있는데.]나는 형수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형수는 나더러 우선 지낼 곳을 알아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고수연한테 상황 설명을 잘할 테니 좋기는 동생네 집에 묵으라고 말했다.전화를 끊은 뒤, 내 기분은 조금 이상했다.사실 형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람은 워낙 이렇게 욕심이 많다.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고.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기에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형수는 나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야. 내가 무슨 자격으로 형수의 자유를 제한해? 형수가 행복해지면 좋은 일 아닌가?”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나는 차를 몰고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 곳을 찾았다.환경이 괜찮은 동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마침 국민 공원과 가까웠다.나는 얼른 준비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우선 저녁 식사를 하고 국민 공원을 뛸 생각이었다. 이 기회에 마침 운동도 하면 나한테 이득이니까.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나는 호주머니에 칼을 챙겼다. 또 정태곤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랐으니까.식사를 마치고 국민 공원을 돌기 시작할 때는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 때문인지 공원에서 운동하는 노인들이 꽤 많았다.노년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대단했다.이 나이에도 더 오래 살기 위해 다들 운동하는데, 나는 허구한 날 여색에만 빠져 있었으니.나는 어르신들 사이에 섞여 운동하면서 윤해철의 그림자를 찾았다.이영미한테서 윤해철의 사진은 이미 받아 놓은 상태였다. 윤해철은 생긴 것 자체부터 부티가 나는 게 흔한 얼굴이 아니었다.하지만 주위를 꼼꼼히 살펴봐도 윤해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또 공원을 한 바퀴 더 찾았다.유해철이 언제 올 자는 몰랐으니까.그러다가 7시쯤, 윤해철의 그림자가 겨우 나타났다. 그는 수수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 이영미가 준 사진과는 조금 느낌이 달라 보였다.하지만 얼굴이 특별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나는 바로 다가가 인사하는 대신 묵묵히 그 뒤를 따라 뛰었다.낯선 사람이 갑자기 다가가 인사하면 너무 티가 날 테니까.윤해철은 한참 동안 뛰다가 공원에서 운동기구를 하기 시작했다.그제야 기회가 생겨,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운동 기구를 했다.윤해철은 평행봉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도 슬금슬금 다가가 그와 가까운 곳에서 평행봉을 하기 시작했다.윤해철은 나를 보더니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젊은 총각, 팔이 그런데도 평행봉을 해요?”윤해철이 말을 걸어준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상대가 다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마음대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어요. 습관 돼서 하루라도 빼면 이상해요.”“아, 그래요? 전에는 본 적 없는데?”
윤해철은 말이 참 잘 통했다. 분명 권력 있는 거물급 인물이지만, 다정하고 친절한 데다, 이태웅처럼 거리감이 느껴지지도, 임천호처럼 사납고 독하지도 않았다.어떤 계층이든 사람의 종류가 참 다양한 모양이다.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나는 한편으로 감탄하며 윤해철의 맥을 짚어 봤다. 주로 이영미가 걱정하는 문제를 확인했다.솔직히 윤해철 나이대가 되면 남자는 좀 힘에 부치는 게 정상이다.나이 50에 어떻게 20대처럼 혈기 왕성할 수 있겠는가?윤해철의 맥을 짚으며 확인해 보니, 그의 건강은 꽤 좋았다. 물론 신장이 조금 약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안 그러면 예쁜 아내를 건드리지도 않을 리 없을 테니까.나는 솔직하게 말했다.“형님, 몸은 건강하시네요.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 외에 큰 문제는 없어요. 한동안 한약 좀 처방해 드시면 많이 개선될 거예요.”나는 말을 마친 뒤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가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리고 신장에 조금 문제가 있는데, 이 나잇대 남자들은 다 있는 문제이니 정상이에요. 제가 이따가 약방에서 약 좀 처방해 드릴 테니까 그거로 몸조리해 보세요.”윤해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정말 되겠나? 그 문제는 여러 의사를 찾아가 봤는데, 다 늙으면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딱히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나는 싱긋 웃었다.“이런 문제는 서약과 한약은 효과 없어요. 요즘 제가 처방해 드린 약을 드시면 알게 될 거예요.”“알겠네, 해보지. 가망은 없지만 끝까지 노력은 해 봐야지. 얼마인가? 내가 돈 입금하지.”“아니에요.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도와드릴게요.”“하하, 젊은 친구가 마음에 드는군. 이름이 뭔가?”나는 얼른 자아 소개를 했다.“정수호라고 합니다. 한약관에서 출근하는데, 한의학을 전공했어요.”“어쩐지, 의술이 좋다 했네. 앞으로 자잘한 병에 걸릴 때마다 수호 군을 찾아야겠네. 자, 연락처 교환이라도 하자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윤해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왜 갑자기 이런 걸 묻지? 설마 뭔가를 발견했나?’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게다가 지금 애교 누나와의 관계도 알 수 없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거짓말을 했다.“아직 없어요. 우선 사업부터 자리 잡고 나서 연애하려고요.”윤해철은 나에게 마음에 드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음, 그런 마인드 좋지. 사내라면 이 나이에 사업부터 이룩해야지. 능력이 있어야 애인한테 좋은 삶도 줄 수 있고.”“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분투 정신이 결여되었더라고. 대학 졸업하기 바쁘게 결혼부터 하고 말이야. 결혼의 의미가 뭐인지도 모르면서. 역시 우리 때 사람들이 참 뭐든 열심히 했는데. 하.”윤해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위험할 뻔했네. 앞으로 게시물도 설정해야겠어. 새 친구 추가할 때마다 내 게시물 함부로 볼 수 없게.’‘잘난 척 과시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겠어. 들키는 게 한순간이니까.’나는 속으로 다짐했다.그 뒤로 윤해철과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윤해철은 아예 나에게 자기 회사에서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했다.나는 그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니에요. 일개 한의사가 윤 회장님 회사에 가서 뭐 하겠어요?”“무슨 그런 말을 하나? 당연히 맞는 전공이 있으니까 오라는 거지. 우리 회사 내부에도 한약방이 있네. 회사 직원들한테 한약재가 들어간 음식과 차를 제공하고, 병도 봐주는 곳이거든.”그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한의사를 그렇게 좋게 보세요?”이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윤해철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건강 관리에 관심이 좀 많아서, 우리 회사 직원들도 건강하게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이건 너무 좋잖아.’‘한의학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급하면, 지금처럼 인기가 없어질 일은 없었을 텐데.’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윤해철처럼 좋은 상사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아마 회사 직원들도 행복할 거다.요즘처럼 직장인들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시대에, 정호섭과 윤해철
[윤 회장님, 사실 그런 게 아니라...]윤해철은 강력한 태도로 상대의 말을 잘랐다.“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네. 짐 챙겨서 나가게. 재무팀에서 월급을 정산해 줄 거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게. 안 그러면 진짜 화낼 테니까. 내 성격 알지 않나?”윤해철은 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나는 그제야 윤해철 회사에 한약방이 있는데도 왜 병이 있는지 알았다.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모양이었다.게다가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얘기하던 사람이, 방금 전화한 사람과 대화할 때는 바로 회사 오너의 모습으로 변해 존경스러웠다.평소에는 온화하고 너그럽지만 매사에 강단 있는 사람,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이제야 알게 된 건데,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것도 경험치를 높일 수 있다.경험을 쌓지 못하더라도 성공한 사람의 그림자를 통해 자기 생각과 관념을 바꿀 수 있다.“수호 군, 나 이만 가봐야겠어. 나중에 얘기하자고.”윤해철은 운동기구에서 내려오더니 다정하게 인사했다.나는 얼른 인사했다.“네, 앞으로 매일 나올 테니까 형님한테서 많이 배웠으면 좋겠네요.”“하하, 배우긴. 나는 우리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네.”윤해철과 작별하고 나니 감개무량했다.이토록 많은 수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나는 얼른 이영미한테 문자를 보내 사실대로 말했다.[남편분 문제는 심각한 정도가 아니에요. 신장에 문제가 조금 있는데, 이 나이대 남자는 다 있는 정도라서 약 처방해드렸으니 괜찮아질 거예요.]이영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예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통화를 수락하니 잔뜩 흥분한 이영미의 모습이 보였다.[정말 큰 문제 아닌 거 맞지? 그런데 왜 나한테 손을 안 대지?]‘어... 이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런 일을 즐기는 분이 아닌 가 보죠. 남편분 성공한 분 같던데, 성공한 남자는 할 일이 많잖아요.”[그런데 대부분 자리를 잡아 신경 쓸 게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바쁘지?]“아마도 건강을 중시하느라 그런 것 같
“맞아요. 남자든 여자든 욕구가 생기는 건 당연해요. 아버님과 상의해서 한 달에 한 번 하거나 하시는 게 어때요? 그러면 아버님 부담도 덜 수 있고, 어머님 성욕도 풀 수 있잖아요.”이영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면 내가 사과해야 하잖아? 이런 일을 어떻게 말하지? 아니면 수호 씨가 나 한 번만 더 도와주는 건 어때?”‘이 상황에 어떻게 도와달란 말이지?’그렇다고 아내 욕구가 쌓였으니 만족시켜 주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때 이영미가 말했다.“이번 일까지 도와주면, 양동준을 스승으로 모시는 일은 내가 100프로 성공하게 도와주지.”‘이건 나를 협박하는 건가?’나는 결국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알았어요. 해볼게요.”이영미와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혼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6월의 강북은 벌써부터 건조하고 무더웠다. 아침저녁에만 조금 선선할 뿐.공원 안 수로를 따라 한 바퀴 빙 도는 것도 꽤 힐링 됐다.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난 뒤, 나는 근처에서 음식점을 찾아 저녁을 먹었다.한창 먹고 있을 때, 형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수호 씨, 어디예요? 내가 수연을 데리고 찾아갈게요.”그 말에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동생분은 왜 데려와요?”[수연한테서 얘기 다 들었어요. 이번 일은 수연이 잘못이니까 사과하게 해야죠.]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필요 없어요.”[안 돼요. 무조건 사과해야 해요. 수호 씨가 도와줬는데, 수연이 수호 씨를 그렇게 대한 건 너무했잖아요.]형수가 너무 집요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다.약 20분 뒤, 형수는 동생을 데리고 나타났다.형수는 나를 보자마자 동생더러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딱 봐도 고수연은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하지만 형수의 등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사과했다.“미안해요.”퍽!형수는 고수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 그게 사과야? 누가 보면 원귀인 줄 알겠어.
나는 결국 마음 약해져서 형수한테 타협했다.“지금 사는 곳 꽤 괜찮아요. 방 2개에 거실 1개 있고, 환경도 좋아요.”“말만 하지 말고 구경시켜 줘요.”형수는 또 한 번 재촉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두 사람을 내가 사는 월세방으로 안내했다.형수는 집안을 한 바퀴 빙 돌아보더니 기뻐하며 말했다.“집 괜찮네요. 깔끔해 보이고, 환경도 좋고. 사는 곳 봤으니 마음 놓이네요. 안 그러면 계속 걱정했을 거예요.”형수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형수가 내 몸을 노린다고 생각했다.‘차라리 죽자 죽어.’‘형수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나는 형수와 고수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물을 따라주었다.고수연은 끝까지 말하지 않아 나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어쨌든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하게 지낼 것도 아니기에 말하든 말든 상관없었다.형수는 나를 잡고 이것저것 물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물어본 건 애교 누나와 나 사이에 대한 일이었다.애교 누나를 언급하니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애교 누나는 본가로 돌아갔죠?”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날 아버지한테 끌려 돌아갔어요. 아마 한동안은 만나지 못할 거예요.”나는 순간 마음이 착잡했다.“애교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요.”“걱정하지 마요. 그래도 아버지인데, 잡아먹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지금 수호 씨가 할 일은 얼른 강해져서 애교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거예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안 그래도 그동안 그럴 생각이었다.형수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믿어요.”나와 형수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고수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질 난 고양이처럼 으르렁 대더니 소리쳤다.“진용진, 죽고 싶어? 계속 그렇게 나오면 너 죽고 나 죽는 수가 있어!”고수연의 말에 형수는 얼른 걱정이 돼 다가갔다.“왜 그래? 그 인간이 또 뭐래?”고수연은 엉엉 울기 시작
내가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으려고 할 때 고아연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다.“거실에서 갈아입어.”“뭔가 음모가 있죠?”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몸매 좋은 남자를 보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좀 남색을 많이 밝혀.”나는 색을 밝힌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인정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그래도 안 돼요. 난 형수 거예요.”나는 농담조로 말하고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몸에 걸친 섹시하고도 색기 넘치는 옷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여정이 나더러 비슷한 옷을 입으라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보아하니 여자도 색을 밝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남자 못지않게.내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고아연은 노골적인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나를 진득하게 바라봤다.“쯧쯧. 역시 젊고 잘생긴 데다 소년미까지 넘치네. 이래서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거였구나. 저녁에 이런 남자를 안고 잠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일어나겠네. 자, 누나도 한번 안아보자.”고아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더듬거렸다.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고아연을 막았다.“옷만 입어보면 된다면서요? 다른 짓 하지 마요.”고수연도 옆에서 질투하는 듯 말했다.“아연아, 큰 언니 아직 혼수상태인데 네가 이렇게 언니 남자를 만져 대면 나중에 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어쩔 수 없지. 미색이 유혹하면 난 남편도 배신할 사람인데 도덕을 어기는 게 뭔 대수야?”문제는 이 말이 고아연 입에서 나오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어울렸다.고아연은 워낙 색을 밝히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충격적이지 않았다.나는 두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옷은 문제없어요. 저는 이만 갈아입고 나올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그때 고아연이 다급히 나를 잡아끌었다.“잠깐만. 영상 좀 찍을게.”“무슨 영상이요?”“내가 보여줄게.”고아연은 내 옆에서
“맞아요. 원래는 회장님께 2억을 빌려 하정현 씨 빚 갚아주려고 했는데 두 분이 저한테 4억을 줬어요.”“왜?”“제가 회장님 병을 고쳐줬거든요. 지금 엄청 강하다며 어머님이 엄청 좋아하시며 준 거예요.”윤지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실없긴.”“이건 제가 말한 게 아니라 지은 씨 어머니가 말한 거예요. 지은 씨가 무슨 말 들었는지 물어봐서 제가 말한 거잖아요.”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다른 건 없어? 우리 엄마가 다른 말 안 했어?”윤지은이 나를 보는 눈빛이 왠지 이상했다.그 눈을 보니 이영미가 나한테 했던 말을 솔직히 말해야 하나 싶었다.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윤지은이 나를 쫓아낼까 봐 두려웠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함구하기로 했다.“다른 말은 없었어요. 나중에 우리 가게 영업 시작하면 고객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아.”윤지은의 표정은 약간 복잡 미묘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기분인지 읽어낼 수 없었다.“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가 봐.”나는 뒤돌아 떠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내려와 형수 집으로 들어갔다.고수연과 고아연도 이미 와 있었다.사실 형수의 현재 상황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친구인 애교 누나도 돕고 있는데 친자매가 안 올 수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오는 것 같았다.게다가 두 사람 모습을 보니 오늘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듯싶었다.애교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누나가 떠나고 나니 집에는 나와 고씨 자매 둘만 남게 되었다.나와 고씨 자매는 워낙 할 말이 없는지라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다.결국 나는 형수 보러 침실로 들어갔고 그 김에 형수 몸도 닦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연이 따라 들어왔다.“이봐. 나한테 새 옷이 있는데 대신 좀 입어봐 줄래?”“네? 아연 씨 옷을요?”“아니. 남자들이 입는 옷이야.”고아
윤지은의 집 안.옷을 갈아입은 하정현은 나와 윤지은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그 순간 윤지은이 사람을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하정현을 훑어봤다.“이제 말해 봐.”윤지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정현은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지은아, 나도 일부러 너 속이려던 건 아니야. 너한테 더 이상 폐 끼치기 싫어서 말 안 했어.”“아. 그러면 내가 오히려 너한테 감사해야겠네?”윤지은은 말을 반대로 하며 비꼬는 걸 참 잘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듣는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다만 하정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 나도 알아.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끝났어?”하정현은 얌전한 토끼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윤지은도 피식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네가 말해 봐. 저 말 진정성 있는 것 같아?”“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나는 불안함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또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하, 내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둘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바보였었지? 사랑하는 친구야, 나도 좀 알고 싶네? 너 언제부터 정수호랑 그렇게 친했어? 정수호도 아는 일을 나는 왜 몰라?”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다.나와 하정현의 기세를 합도 윤지은을 이길 수는 없었다.“지은아, 사실은 내가 전에 수호 씨더러 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잖아. 그때 말한 거야.”하정현은 윤지은 옆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쉬운 방법으로 돈 벌려고 하면 안 됐는데. 너한테 말 안 한 것도 미안해. 오늘 두 사람 아니면 나 무슨 일 당했을지 몰라. 이제 생각해 보니 너무 무섭네.”윤지은의 표정은 단번에 누그러들었고 말투도 다정해졌다.“이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친구고 뭐고 없어. 이거 받아. 안에 2억 있어.”하정현은 카드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지은아,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하정현은 또 안성태의 귀싸대기를 날렸다.“잡지로 만들 거랬지 고객한테 단독으로 보내준다는 말은 없었잖아. 또 나를 속인 거야? 지은아, 그 파이프렌치 잠깐 좀 빌려줘. 이 자식 남자구실 못하게 해줄 테니까.”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건넸다.그 행동에 놀란 안성태는 사색이 되어 갑자기 하정현에게 주먹을 날렸다.그 순간 나는 다급히 하정현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뒤로 끌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안성태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속박에서 벗어난 안성태는 마치 화가 난 사자처럼 으르렁댔다.“개자식. 감히 그곳을 잡아? 내가 오늘 꼭 너를 죽인다.”“두 사람 얼른 도망쳐요!”나는 윤지은과 하정현을 향해 소리쳤다.윤지은은 안성태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순간 다급히 하정현을 잡고 밖으로 도망쳤다.그리고 나는 안성태의 앞길을 막아섰다.안성태는 나를 보며 이를 갈았고 두 눈은 나를 찢어발길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나는 일부러 냉소를 지으며 안성태를 자극했다.“아까 어땠어? 앞으로 남자구실 못할까 봐 두려웠지?”“이게 감히 그걸 입에 담아? 너 오늘 죽었어.”나는 계속해서 놈을 자극했다.“와 봐. 내가 놀아줄 테니까.”그 말에 안성태는 주먹을 그러쥔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이번에는 그래도 대비가 되어 있었는지 쉽게 파고들 기회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나도 서두르지 않았다.변석훈이 그랬는데 상대가 미쳐 날뛸 때는 절대 무리하게 맞서 싸우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한 방에 맞혀야 한다고 했다.이번 싸움이 나에게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평소 도관에서 연습하는 건 항상 똑같은 몇 가지 기술이라 이미 몸에 배어 있는데, 이걸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때문에 나는 오히려 흥분되고 설렜다.나는 줄곧 안성태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다가 놈이 완전히 폭주해 약점을 드러낸 순간 공격했다.나는 아예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 놈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내 공격에 안성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조차도
나와 윤지은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우리의 합이 이렇게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하정현의 도움도 컸다.우리 셋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로 안성태와 마주 섰다.그때 하정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성태, 너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네가 그 계약서를 나한테 돌려주고 내 사진을 모두 삭제하면 네 책임을 묻지 않을게.”안성태는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외투를 벗어 던졌다.“너희가 꽤 치는 줄 몰랐네. 마침 잘 됐어. 나도 오랜만에 좀 놀아보자.”그때 나는 즉시 윤지은과 하정현 앞에 막아섰다.“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두 사람은 본인 몸이나 잘 지켜요.”무엇보다 안성태는 덩치가 컸기에 나는 절대 그놈이 윤지은이나 하정현을 노리게 둘 수 없었다.“승산은 있어?”윤지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그럼 힘내.”나는 안성태 앞으로 다가갔다.내 키도 185라 놈 앞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비록 안성태의 덩치가 나보다 훨씬 컸지만 나보다 민첩성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안성태가 나를 먼저 공격했다.하지만 나는 신속히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변석훈이 전에 말했는데 알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서둘러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 상대의 실력과 잘 쓰는 기술, 그리고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때문에 초반에 나는 계속 피하기만 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만 하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상대를 관찰했다.몇 분 동안 싸우다 보니 s는 안성태가 덩치가 커서 힘만 넘쳐났지 기술과 스피드가 많이 달린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다, 이 개자식아.”나는 신속히 공격했다.지난 한 달 동안 피하는 법과 공격하는 법을 배운지라 내 현재 속도는 안성태보다 훨씬 빨랐다.나는 단번에 필살기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놈의 정가운데를 잡았다.그 순간 안성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눈을 까뒤집었다.“이 비겁한 자식...”나는 피식
“안성태, 내가 정말 사람 잘못 봤네.”하정현은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안성태는 오히려 깔깔 웃어댔다.“하하하, 나 원래 불법 장사하는 사람이야. 어디서 순진한 척하는 거야? 그러게 순순히 촬영에 협조하면 됐잖아. 왜 그렇게 기어올라? 네가 계약을 위반했으니 위약금을 내는 건 당연하잖아.”“계약서에 명확히 적혀 있어. 촬영에 협조하지 않을 시 위약금을 지불한다.”“그게 1억이라고?”하정현은 후회막심했다.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옛 동창이거나 고향 사람들이라서 하정현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촬영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촬영이라 순조로웠는데, 오늘 갑자기 낯부끄러운 장면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그것도 못생긴 남자 모델들과 함께.그러니 하정현은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다.그랬더니 이 사람들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하정현더러 위약금을 물어내라며 마구 때렸다.그 순간 하정현은 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나와 윤지은 역시 하정현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함께 하정현을 부축했다.“이건 정현 씨 잘못 아니에요. 탓하려면 쓰레기 같은 저 자식들을 탓해야죠.”“헛소리 그만하고 대답해. 위약금 낼래? 아니면 촬영에 협조할래? 선택하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생각 하지 마.”윤지은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유도를 배운 적 있어서 한두 명은 문제없어. 나머지를 혼자 해결할 수 있겠어?”현장에는 총 6명이었다.윤지은이 2명을 맡는다면 나는 4명을 해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절대 맥 빠지는 소리를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문제없어요.”“그럼 왼쪽 둘은 내가 맡을게. 나머지는 네가 해결해.”윤지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왼쪽에 있는 놈에게 돌진했다.이윽고 나 역시 하정현더러 자리를 찾아 숨어 있으라고 하고는 다른 놈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하정현은 숨지
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받아 들었다.그제야 나도 망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철제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하정현은 그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그 순간 나는 먼저 관찰하다가 기습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바로 달려갔다.쾅쾅쾅!철문이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윤지은의 이런 모습은 너무 용맹스러웠다.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분명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인데 곤란한 상황 앞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이런 용기는 정말 기특했다.얼마 뒤, 철제문은 안에서 열리더니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나와 물었다.“뭐 하는 거야?”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놈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하정현 어디 있어?”“젠장. 그 계집애를 찾으러 온 거였어? 센 척하긴.”“잔말 말고. 하정현 어디 있어?”윤지은은 언성을 높이며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안에...”윤지은은 두말없이 제 앞을 막은 놈을 밀치고 안으로 쳐들어갔다.창고 안은 아주 간단한 스튜디오였는데 촬영 내용은 어디 내놓기 남사스러운 장면들이었다.그 가운데 하정현이 있었는데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보면 맞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하정현 여에는 상의를 벗어 던진 못생긴 놈들이 서 있었는데 보아하니 하정현의 촬영 파트너인 것 같았다.나는 하정현을 본 순간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나는 한주먹으로 놈을 쓰러뜨리고 하정현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괜찮아요?”하정현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였으며 눈시울은 빨갰다.“괜찮아. 안 죽어.”그때 촬영장 스태프들이 우리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윤지은은 우리 앞에 막아선 채 당장 놈들에게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한 발짝만 더 나서 봐!”그 순간, 긴 콧수염을 가진 남자 한 명이 냉소를 머금은 채 걸어 나왔다.“계집애 주제에 이 많은 인원을 다 묶어둘 수 있을
“어디서 감히! 나 경찰에 신고한다?”나는 마음이 조급하고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내 말에 상대는 오히려 냉소적으로 말했다.“그래. 신고해. 경찰이 도착했을 때면 그 계집애는 죽어 있을 테니까.”“내가 돈 줄 테니까 그 여자 풀어줘.”나는 하정현을 구하고 싶었지만 하정현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몰랐기에 이런 방법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상대는 돈을 갚는다는 말에 이내 웃었다.“좋아. 그럼 북교 사거리 뒤쪽에 있는 공터로 와.”상대가 말한 곳은 도심과 매우 먼 데다 사고 다발지역이라 택시 기사들도 다니기 싫어하는 일대였다.그렇다고 버스를 타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버스는 너무 느려 도착하면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었다.한참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윤지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지은 씨, 혹시 안 쓰는 차 있으면 좀 빌려줘요.”윤지은은 나를 꿰뚫어 볼 듯 훑으며 물었다.“뭐 하려고?”“그런 건 묻지 말고 한 번만 빌려줘요. 한 번만 쓰고 돌려줄게요.”“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데 내가 왜 빌려줘야 하지?”나는 너무 조급한 나머지 결국 하정현의 일을 모두 실토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윤지은은 즉시 안색이 변하더니 두말없이 외투를 걸치고 나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차고에 차 한 대 있어. 이게 차키야.”윤지은은 BMW 차키를 나에게 던져주며 나더러 운전하라고 했다.그건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명색이 윤씨 가문 딸인데, 스포츠카 몇 대 정도 소유하고 있는 건 정상이었으니까.나는 신속하게 시동을 걸고 놈이 말한 주소지로 내달렸다.윤지은의 얼굴은 어느새 잿빛이 되어 있었다.“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또 간 거야? 돈이 그렇게 부족한가?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정현 씨가 이번에 강북에 온 이유가 엄청 성가신 일 때문이라는 거 모르죠?”윤지은은 즉시 나를 돌아봤다.“무슨 성가신 일? 나한테 말한 적 없는데?”“정현 씨 어머니가 정현 씨더러 방법을 대서 아버지를 빼내라고 했대요. 안 그러면 연을 끊겠다고 하면서요.”내 말을
나는 재차 거절하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가게 자주 찾아와 주시면 돼요. 그러니 2억은 받을 수 없어요.”“에이, 수호 씨가 마음에 들어서 주고 싶어 주는 건 데도 안 받을 거야? 돈 받고 우리 딸이나 잘 만족시켜 줘.”이영미는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그에 반해 나는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님은 제가 지은 씨랑 만나는 거 괜찮아요?”“괜찮지 그럼.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 남자애가 또 어디 있다고. 수호 씨가 우리 딸 만족시켜 주면 우리 지은이도 좋아할 거야.”“난 개방적인 사람이라 우리 딸만 즐겁고 행복하면 돼.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잠깐 만나다 헤어지면 그만이야.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윤씨 가문은 지은이를 먹여 살릴 수 있어.”처음 들어보는 관점에 나는 크게 놀랐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윤씨 가문은 워낙 재산이 많고 부부가 워낙 개방적이니 결혼이 최종 귀착점이 아닐 수 있었다.게다가 이영미는 자식이라고는 윤지은 한 명뿐이니, 당연히 자기 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부끄럽네요. 하지만 어찌 됐든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안 받으면 안 돼. 안 받으면 수호 씨가 우리 지은이 만족시켜주지 못할까 봐 걱정돼. 우리 지은이가 불감증인데 수호 씨를 못 잊는 걸 보면 수호 씨가 그쪽 방면으로 꽤 쓸만하다는 뜻이니까.”“콜록콜록...”나는 침에 사레가 들렸다.“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에요...”“구체적인 상황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 지은이가 수호 씨랑 같이 있고 싶어 하고 나도 수호 씨가 마음에 드니까, 수호 씨는 우리 지은이만 만족시켜. 난 우리 딸이 평생 즐거움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건 바라지 않아. 그러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뭔 소용이 있어?”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나는 열심히 돈 벌어 출세하려고 아득바득하고 있는데, 이영미는 벌써 후대의 행복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그것도 이토록 깊숙이.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