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겠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나는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동성 형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당황한 질문을 해 왔다.“내 일을 다 알았다면 너는? 솔직히 너, 네 형수랑 잘해보고 싶지?”“아니.”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한편으로 마음이 찔려 들킬까 봐 겁났다.그러자 동성 형이 피식 웃었다.“아니라고? 아니면 왜 우리 방에 들어갔어?”“궁금해서 들어가면 안 돼?”“수호야, 난 네가 자라는 거 지켜본 사람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내가 왜 너를 집에 들였는지 알아? 네가 점잖은 사람이라서, 내 여자한테 더러운 마음 품지 않을 걸 아니까, 그래서 여기서 살게 했어. 하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야. 네 변화를 내가 모를 것 같아?”형의 말에 너무 당황한 나는 담배로 마음을 삼출 수밖에 없었다.나는 사실 괜찮다. 형이 나를 때리든 욕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형수한테 폐 끼칠 수는 없다.나는 형수의 이미지가 나 때문에 훼손되는 걸 원치 않는다.형이 나와 형수 사이의 일을 알고 형수한테 함부로 대하는 건 더더욱 싫다.때문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맞아. 나 변했어. 하지만 사람은 원래 변하지 않아? 형도 나를 이용해서 소여정한테 다리를 놓으려 했잖아. 왕정민과 협력하려고 나더러 애교 누나를 꼬시라고 했잖아. 나야말로 묻고 싶어. 그동안 나한테 잘해줬던 거, 목적이 있어서지?”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리며 마음속 의문을 제기했다.동성 형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를 보더니 다리를 꼬며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그렇다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 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돼? 고작 같은 동네에서 자란 형 동생이야. 내가 왜 조건도 없이 너를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그리고 막말로, 애교 씨를 꼬시고 소여정한테 접근하라고 한 거, 너한테 아무 이득도 없었어?”동성 형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 오히려 내가 잘못한 사람 같았다.나는 화가 뻗쳐 손데 든 담배꽁초를
나는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내가 젊다는 이유로 날 가르치려 들지 마. 형도 나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잖아. 현자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마.”형이 만약 아주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면 형의 말에 동의하겠지만, 형도 지금은 실패자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날 가르치는 거지?형이 한 말은 너무 우스웠다.그때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형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동성 형, 동성 형 하며 따르더니, 이제는 그런 태도로 얘기하네? 솔직히 기뻐. 네가 성장했다는 거니까.”나는 그 말에 구역질이 났다.‘형이 기쁠 게 뭐 있는데?’‘기쁘다면 표정이나 좀 신경 쓰지.’나는 동성 형을 이제는 꿰뚫어 볼 수 있다. 항상 본인이 다 맞고, 잘난 체하는 족속.‘이런 방식으로 나를 주무르려 하다니. 내가 예전의 나인 줄 아나? 유치하긴.’이젠 더 이상 형을 동정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는다. 현재 남은 검 오직 혐오감뿐이다.나는 씩씩거리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솔직히 말해. 전화한 여자 누구야?”“나 그 여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믿을래?”“X발, 내가 등신도 아니고, 그걸 믿을 것 같아?”나는 버럭 소리쳤다.형이 이런 말을 하는 것마저 나에 대한 모욕 같았다.아무 사이도 아니면 폰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있나? 심지어 그럴 숨길 필요가 있나?그건 세 살짜리 어린이한테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형의 모습을 보니 솔직히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내 말 사실이야. 네가 형수한테 다른 마음 없다는 것과 같아.”형의 말에는 분명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이건 뭐 자기 입에서 솔직한 말을 듣고 싶으면 먼저 솔직하게 말하라는 거랑 뭐가 다르지?나는 속으로 냉소했다.형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쏙 빠져나가다니.나는 차갑게 웃으며 형을 바라봤다.“계속 그렇게 해. 언젠가는 결혼 생활이 파멸로 갈 거야.”“그럴 리 없어. 아이만 있으면 네 형수는 절대 나랑 이혼 안 할 거야.”형은 아주
나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 퉁명스럽게 말했다.“형이 한 말 형수한테 말할 거야. 형수더러 형과 이혼하라고 할 거라고.”동성 형은 피식 웃을 뿐 나를 말리지 않았다.“그래. 가서 말해. 네가 말하면 나도 네 부모님께 네가 돈 많은 사모님들 애인하고 다닌다고 말할 거야.”나는 멍하니 형을 바라봤다. 형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제야 형이 왜 이토록 겁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내 약점을 잡고 있어서였다.나는 효심을 중요시하는 사람인지라 부모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하지만 화나는 것도 사실이었다.이런 형을 어떻게 할 수 없어 화가 나고, 형수를 제대로 지켜줄 수 없어 화가 났다.나는 결국 재떨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바닥이 순간 깨져버렸다.하지만 형은 시종일관 침착했다.“형제간의 정을 봐서 수리비는 청구하지 않을게. 너도 애교 씨랑 살겠다고 결심했으니 앞으로 애교 씨 집에서 지내. 일 없으면 여긴 찾아오지 마. 그리고 우리 집 열쇠 내놔.”형은 집 열쇠까지 받아 갔다.이로써 형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앞으로 더 이상 잘 지낼 수 없게 되었다.나는 퉁명스럽게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쾅 올려놓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집을 나갔다.애교 누나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나는 소파에 앉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애교 누나는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수호 씨, 무슨 일 있어요? 동성 씨가 뭐라고 했어요?”애교 누나는 계속 질문을 내던졌지만 나는 대답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하여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애교 누나한테 말했다.“누나, 저 혼자 있고 싶어요.”누나는 나를 무척 안타까워했지만 이해했기에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나를 혼자 남겨두고 방에 들어갔다.나는 남주 누나도 떠올리고 소여정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그러고 보니 사람은 참으로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
내가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나는 형수를 지켜주겠다고 했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없더라도 약속은 지킬 생각이다.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핸드폰 사건과 동성 형의 진짜 얼굴을 형수한테 말하기로 결심했다.적어도 형수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를 갖지 않도록 해야 했으니까.나는 저녁에 있었던 일을 문자로 작성해서 형수에게 보냈다.이 모든 걸 마치니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형수는 나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새벽 2시이니 분명 자고 있을 거다.내일 아침 핸드폰을 켰을 때 내가 보낸 문자를 보기만 하면 된다.나는 겨우 한시름 놓고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대로 일어났다.하지만 형수한테서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다.그 사실에 나는 너무 불안했다.형수는 보통 형보다 일찍 깨어나 아침을 해준다.때문에 일어났다면 분명 문자를 봤을 거다.‘설마 형이 먼저 문자를 발견한 건 아니겠지?’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점점 조마조마했다.심지어 형이 형수한테 나쁜 짓이라도 저지른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아침을 먹을 때도 나는 안절부절못했다.그런 내 모습에 애교 누나가 말했다.“수호 씨, 정 안 되면 오늘 출근하지 마요.”나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하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형수를 생각했다.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형수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애교 누나 집에서 나온 나는 형수네 집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그러다 끝내 용기를 내어 형수네 집 문을 두드렸다.나는 형수가 안전한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얼마 뒤 문이 열렸다.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 형수가 무사한 걸 보니 나는 겨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형수, 형은요?”“출근했어요.”‘형이 출근했다면 형수 혼자 있다는 거잖아?’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형수, 오늘 아침에 핸드폰 봤어요?”“네.”그렇다면 더 의아했다.‘핸드폰을 봤는
형수는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본인의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다.솔직히 이런 형수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형수, 가끔 보면 형수가 참 깨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은 너무 바보 같아요. 형수가 애교 누나를 설득할 때는 얼마나 정의로웠어요. 그런데 본인한테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왜 그렇게 고민하는데요?”형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남을 설득할 때는 정신이 아주 또렷했는데, 똑같은 일을 당하니 줏대가 없어진 것 같아요.”나는 형수가 안쓰러웠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어떻게 할지는 결국 형수가 직접 선택해야 하니까.너무 마음이 아픈 나머지, 나는 참지 못하고 형수의 손을 잡았다.“형수, 형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응원할게요. 그리고 늘 형수 안전을 지켜줄게요. 슬퍼하지 마요. 형수가 이러면 제가 마음 아파요. 전 형수가 예전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나는 예전의 형수가 너무 그립다. 정열적이고 대범하고 나를 자꾸만 희롱하던 형수가.무엇보다 그때의 형수는 웃는 게 너무 예뻤다.형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남편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즐겁겠어요? 지금 너무 막막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애교가 참 부러워요. 그렇게 즉시 결단 내릴 수 있어서. 하!”나는 형수가 왜 갈등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형수의 모든 걸 존중한다.나는 어찌 된 일인지 참지 못하고 형수의 이마에 키스했다.형수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예전에 봤던 것처럼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웃음이었다.내 마음속의 형수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데.“애교 누나랑 쇼핑하며 기분 전환해요. 그러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내 말에 형수는 예전처럼 내 볼을 꼬집었다.“이젠 다 컸네. 형수 달랠 줄도 알고.”나는 이런 느낌이 즐거웠다.이럴 때마다 형수가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니까.형수와 작별한 뒤, 나는 착실하게 출근했다.애교 누나와 형수가 기쁘다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화인당에
나는 준비물을 챙긴 뒤 전신 마사지를 해드리려고 준비했다.이렇게 관리를 잘 받는 여자를 마사지하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이다.사모님은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든 모양이었다.내가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다.윤 사모님이 골아 떨어진 걸 확인한 나는 얼른 마사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사지가 끝났는데도 사모님은 계속 자고 있었다.나는 결국 담요로 윤 사모님을 덮어주고 휴식하러 밖으로 나갔다.모태진의 마사지룸은 여전히 휴식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왜 안 오지? 전화도 없고.’너무 이상했다.내가 한창 의아해하고 있을 때, 모태진이 문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채로.나는 얼른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 답장도 안 하고.”모태진은 물을 따르며 기분 좋은 듯 웃었다.“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요. 사장님께는 미리 말해뒀어요.”나는 어제 오후 일이 생각 나 얼른 물었다.“그 여대생하고는 아무 일 없었죠?”“내가 은솔 씨랑 무슨 일이 있겠어요?”모태진이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이에 나는 얼른 귀띔했다.“아무 일 없으면 다행이고요. 난 또 바보짓 할까 봐 걱정했잖아요. 난 정말 선배를 친형제처럼 생각해서 이런 말 하는 거니까 절대 흘려듣지 마요.”“알았어요, 알았어. 다 나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모태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모태진이 정말 내 말을 귀담아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우리가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김진호가 노기등등해서 사장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러더니 마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그만두라면 누가 못 그만둘 줄 알고? 이 일자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 능력이면 어딜 가서든 밥벌이는 할 수 있다고!”‘무슨 상황이지?’‘김진호가 그만두나?’‘보아하니 해고된 것 같은데?’얼마 뒤, 김진호는 짐을 챙겨 떠나갔다.그때 정 사장님이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직원들한테 말했다.“
“김진호 일, 이 정도면 만족해요?”팁을 받자마자 들려오는 윤 사모님의 목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김진호를 쫓아낸 게 사모님이란 말씀이세요?”윤 사모님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그런 보잘것없는 인간은 내가 직접 나설 필요 없어요. 내가 이 사모님 남편과 사업 파트너거든요. 그 남자가 워낙 김진호를 싫어했으니, 김진호가 일하는 곳을 알려만 주면 쫓아낼 방법은 많죠.”‘그런 거였군.’하지만 윤 사모님이 아무 이유 없이 김진호를 쫓아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수호 씨 때문이죠. 나도 알거든요. 김진호가 얼마나 소심하고 질투심 많은 인간인지. 내가 계속 수호 씨를 찾으면 분명 질투하고 원망하면서 괴롭혔을 거예요.”“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실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내가 윤 사모님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도 않고, 윤 사모님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나처럼 평범한 마사지사를 이렇게 도와준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다.내 말에 사모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 눈동자는 맑았고, 치아는 새하얗고 정갈해 무척 우아하고 아름다웠다.이래서 여자는 관리가 필요하나 보다.관리를 잘 받은 여자는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처럼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니까.런 여자들은 겉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향기까지 나기에 남자의 마음까지 좋아진다.윤 사모님이 바로 그런 여자다.“별거 아니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정말 고맙다면 내가 전에 얘기했던 거 고민해 봐요.”“네? 뭘요?”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러자 윤 사모님은 입을 삐죽거리며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마사지숍 차리면 일 도와달라고 했잖아요.”‘아, 이 일이었어?’그때 나는 이 얘기를 마음에 두지 않은 데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이미 완전히 잊어버렸다.나는 머쓱해서 말했다.“가끔 도와달라고 하면 그래줄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를 그만두고 사모님 가게에서 일하라고 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쪽으로 필요할 때 찾아와도 돼요.”윤 사모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니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그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사모님의 뜻을 의심했다.‘설마 나를 암시하는 건가?’‘에이, 아닐 거야.’‘윤 사모님 같은 귀부인이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지.’‘내가 요즘 자뻑이 너무 심해졌어.’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했다.“네, 알겠어요.”나는 또 건성으로 대답했다.그때 윤 사모님이 허리를 흔들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옷을 정리해 주었다.이 행동에 나는 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도 그럴 게, 이 동작이 너무 야릇했으니까.나는 무의식적으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코를 간지럽히는 윤 사모님의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와 새하얀 피부, 잘빠진 몸매와 고귀한 분위기를 보니 가슴이 콩닥거렸다.윤 사모님은 소여정과 비슷했다. 모두 매혹적이고 우아했으며 고귀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소여정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녀의 남자가 너무 무서우니까.나는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하지만 윤 사모님은 다르다.윤 사모님은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 데다, 젊은 남자와 함께 있는 걸 즐기는 듯했다.물론 윤 사모님이 정말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윤 사모님 같은 귀부인이 나처럼 신분 낮은 남자를 좋아할 리 없을 테니까.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마사지사다.윤 사모님 인맥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할 거다.그런데 윤 사모님이 무슨 이유로 나를 좋아하겠나?하지만 이 순간, 윤 사모님이 직접 내 옷을 정리해 주고 있다.야릇한 눈빛은 마치 자기 남편의 옷을 정리해주는 것 같아, 나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심장이 콩닥거리고 귀까지 빨개져 윤 사모님을 바라봤다.“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나는 윤 사모님 손을 밀쳐내려 했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삐진 듯 나를 째려봤다.“혼자 하긴 뭘 혼자 해요? 내가 해주는 게 싫어요?”나는 다급히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