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급히 말했다.“형, 이러지 마. 약속한 일은 나도 지켜.”“그럼 오늘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우리랑 같이 술자리 나가는 거다?”이 상황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그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형은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나 식사하자고 얘기했다.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어리둥절하다.‘정말 내가 형수를 도와야 하나? 이건 너무 터무니없는 일인데?’‘왜 나한테는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거야?’그때 밖에서 형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얼른 일어나서 식사해요.”“네, 가요.”‘그래, 됐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될 대로 되라지.’침실에서 나왔더니 형수는 이미 풍성한 아침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수호 씨를 위해 특별히 달걀 후라이 두 개 준비했으니 많이 먹고 기력 보충해요.”나는 왠지 형수의 말에 숨은 뜻이 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오늘 밤 힘 제대로 써야 하니 많이 먹고 보충하라는 것처럼 들렸다.순간 나는 마음이 찔려 형 쪽을 봤다. 하지만 다행히 형은 아직 화장실에 있어 못 들은 모양이었다.“형, 앞으로 형이 집에 있을 때는 그런 말 하지 마요. 형이 듣고 기분 나빠 할 수 있잖아요.”물론 나랑 형이 일을 꾸미고 있다지만 형 앞에서 형수랑 눈빛을 주고받으면 형이 기분 나쁠 게 뻔하다.그러자 형이 웃으며 나를 째려봤다.“그저 많이 먹고 기력 보충하라고 말한 것뿐인데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아, 그래요.”내가 야릇한 쪽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형수가 자기가 말을 내뱉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내가 형수 앞에 앉자 형수는 내 앞으로 우유 한 잔을 밀었다.그리고 내가 그걸 들어 마시려고 할 때 갑자기 물었다.“수호 씨 어제 양이 이 우유만큼 될까요?”“풉...”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우유를 그대로 내뿜었다.그것도 형수를 향해.순간 형수는 옷이 축축하게 젖었고 물기 때문에 옷이 투명해져 속옷이 희미하게 보였다.나는 너무
“정말이에요? 그런데 왜 홧김에 한 말처럼 들리죠?”‘알면서 뭘 묻는대?’형수가 일부러 나를 놀린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방법이 없었다.그저 화가 나고 답답해서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형수, 아직 형수 남편이 나더러 형수랑 자라고 한 거 모르죠?’‘그것도 오늘 밤. 그러니까 아직 좋아하긴 일러요.’‘내가 오늘 밤 아주 제대로 혼쭐내 줄 테니까.’오늘 밤 형수랑 있을 일을 생각하니 나는 순간 기분이 좋아져 음식과 우유를 단번에 먹어버렸다.그러고는 일부러 형수한테 말했다.“형수, 형수 우유 참 맛있네요.”나도 일부러 형수를 희롱했다.형수는 당연히 그걸 보아냈을 거다.하지만 내가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는 알지 못한 듯했다.“맛있어요? 한 잔 더 마실래요? 바로 짜줄 수 있는데.”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의 가슴을 봤다.물론 이 우유가 오늘 아침 갓 짠 따끈따끈한 소젖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환상했다.‘저기서 짜는 거라면 내가 직접 먹고 싶은데.’‘그러면 형수도 자지러질 건데.’상상하다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형수는 내가 흐뭇해하는 걸 보더니 갑자기 식탁 위에 손을 짚고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대체 뭘 그렇게 웃는 거예요?”“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 잔 더 주세요.”내가 웃으며 잔을 건네자 형수는 곧바로 우유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하지만 내가 손을 뻗자 갑자기 손을 뒤로 뺐다.“직접 가져가요. 난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그러더니 아예 뒤돌아 떠나버렸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며 직접 우유 잔을 집었다.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우유는 아까 것보다 더 맛있는 듯했다.은은한 우유 향이 나면서 말이다.내가 한창 우유를 마시고 있을 때 형이 다가왔다.“수호야, 방금 네 형수랑 무슨 얘기 했어?”“아,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내가 실수로 형수 옷에 우유를 쏟았더니 형수나 나를 뭐라 하더니 옷 갈아입으러 갔어.”내 말에 형은 바싹 긴장했다.“형수가 너
“그럼 다행이네. 네가 몰라서 그런데, 오늘 밤 술자리는 내가 어렵게 네 형수를 설득해서 함께 가기로 한 거야. 내가 계산해 봤는데 요즘 네 형수 배란기야. 네가 기회만 잘 잡으면 네 형수 임신하게 할 수 있어. 네 형수가 임신하면 너한테 수고비 톡톡히 챙겨줄게.”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수고비는 됐어. 난 그저 형 도와주는 거니까.”‘내가 본인 마누라랑 자는데 돈까지 주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하하하, 오늘 밤 힘내!”우리가 말하고 있을 때 형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우리 앞에 앉았다.“둘이 뭐라고 쏙닥거리는 거야?”형수는 형을 보며 물었다.그랬더니 형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오늘 술자리에 수호도 부르려고. 세상 물정 알게 해야지.”“응, 그거 잘됐네. 수호 씨도 이제는 세상 물정 좀 알아야지. 오늘 술자리에 거물들이 많이 참석할 거예요. 그중에 한둘만 알아도 수호 씨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나는 사실 오늘 밤 모임에 참석하는 거물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큰일을 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착실하게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만약 큰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혼자 한약방이나 차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전에 알아본 바로는 이곳에서 약방 하나 운영하려면 초기 투자 금액이 적어도 몇억은 있어야 한다.그건 나한테 천문 숫자나 다름없기에 계획을 바꾸어 거물들과 안면을 틀 수밖에 없다.만약 거물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많은 게 순조로워질 테니까.“네.”나는 형수의 말에 대답했다.대충 음식을 몇 점 먹던 형은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다급히 떠나갔다.“오늘 저녁에 데리러 올게.”그러면서 잊지 않고 귀띔했다.형이 떠난 뒤 나는 형수를 훑어보았다.형수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어 흰 피부가 더 맑아 보였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심지어 가슴도 더 풍만해 보였다.그때 형수가 젓가락으로 내 그릇을 두드리며 귀띔했다.“뭘 보는 거예요?”“형수, 오늘 입은 옷 정말 예뻐요. 그
“이거 얼마 주고 샀어요?”“4만 원밖에 안 해요. 너무 싸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죠?”“수호 씨는 질문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봐요. 근무하는 동안 받은 임금은 얼마인데요?”“28만 원이요.”“그 돈은요?”“하, 말도 마요. 퇴사하던 날 윤지은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모습을 마침 봤었거든요. 기분이 꿀꿀한 것 같아 보여 같이 식사했었는데 식사비만 32만 원이 나오더라고요. 원래는 더치페이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돼서 체면 깎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제가 20만 원 냈어요.”“그렇다면 윤 쌤하고 식사하고 나서 8만 원밖에 안 남았다는 소리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수는 거울에 비친 목걸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8만 원밖에 안 남았는데 이 목걸이가 4만 원이면 나머지 4만 원은요?”“사실 똑같은 거 두 개 구매해서 돈은 다 써버렸어요.”“그럼 남은 돈이 없다는 거예요?”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그랬더니 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수호 씨 바보예요? 애교 선물만 사면되지 내 건 뭐 하러 샀어요?”“형수니까요, 사주고 싶었어요.”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마음속에 애교 누나와 형수는 모두 중요하다.때문에 선물을 하고 싶고.“돈 다 써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요?”“괜찮아요. 다시 일 찾으면 돼요. 먹고 자는 건 형수 집에서 하니까 돈 쓸 일도 없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니 돈 쓸 일이 별로 없어요. 나중에 일 찾으면 더 좋은 선물 해줄게요.”형수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또 한 번 내 얼굴을 꼬집었다.“대체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수호 씨가 몇 살만 더 먹었다면 당장 수호 씨랑 도망갔을지도 몰라요.”형수의 말에 나는 기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면 지금은 어려서 그만한 매력이 없다는 거예요?”“매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내 나이 되면 앞뒤 안 가리고 사랑에 목매는 일은 적어져요. 남자가 자기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 조건에 부
“애교 누나가 오늘 밤 저한테 기회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거든요. 남주 누나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게.”내 말에 형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마치 진작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던 사람처럼.”“그럼 수호 씨는 싫어요?”“저는...”나는 더듬거리며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그러다가 형수가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하자 그제야 용기를 내어 말했다.“솔직히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는데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요.”“왜요?”형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나는 곧바로 어젯밤 민규한테서 받은 문자 내용을 형수한테 털어놓으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그걸 본 형수는 나를 보며 물었다.“남주가 몸 함부로 굴리는 여자인 것 같아 잠자리를 갖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그때 형수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남주처럼 행동하면 나도 싫어할 거예요?”“그럴 리가요! 형수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나는 곧바로 부인했다.하지만 형수는 끝질기게 물었다.“만약에요, 정말 만약에 내가 나주랑 같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요?”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런 경우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형수가 남주 누나랑 같을 리가? 형수가 얼마나 좋은데.’내 마음속에 형수는 애교 누나랑 동급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결국 고개를 마구 저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형수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하, 수호 씨는 왜 그렇게 단순해요?”‘내가 단순하다고?’‘이게 무슨 뜻이지?’나는 순간 멍해졌다.“형수,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내가 의아해하자 형수는 갑자기 긴장한 듯 내 손을 잡았다.“사실 비밀이 하나 있는데 절대 수호 씨 형한테 말하지 마요.”‘형수한테 비밀이 있다고?’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어쩌면 부부가 모두 비밀을 갖고 있지? 부부인데 서로 모르나?’‘게다가 공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형수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만약 형수가 형을 계속 닦달하면 형은 아마 죽고 싶었을 거다.그러니까 형수는 형의 체면과 심정을 고려해서 모른척해 준 거다.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해되지 않았다.“형수, 그런데 왜 저한테 이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나는 형수의 목적이 알고 싶었다.그때 형수가 말머리를 돌리며 대뜸 말했다.“사실 수호 씨 동료가 봤다던 그 여자 나였을 거에요.”“네?”나는 순간 얼빠진 표정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형수의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으니까.‘그러니까 형수의 말은 부민규가 라운지 바에서 봤다던 여자가 남주 누나가 아니라 형수였다고? 그 기생오라비와 같이 있었던 여자가?’‘왜지?’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그때 형수가 고개를 숙이며 허탈한 듯 말했다.“수호 씨 형이랑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정말 아이를 갖고 싶었거든요. 만약 아이가 없다면 어떻게 이 관계를 유지할지도 막막했고. 그래서 이혼하고 새 가정 꾸릴 생각도 했어요.”“하지만 아이 문제만 아니면 수호 씨 형은 다 좋거든요. 나한테 잘해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이혼하기는 싫고 아이는 가지고 싶고 해서...”형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나는 모두 이해했다.“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이라도 가지려고 한 거예요?”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귓가에서 자꾸만 이명이 들리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나는 정신을 차렸다.“그래서 남주 누나한테 부탁해서 사람을 찾았던 거예요?”내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묻자 형수는 다시 고래를 끄덕였다.“남주는 아는 사람도 많고 신분과 배경도 있으니까, 남자들의 배경을 조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거든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고 괜찮은 사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어요.”형수의 해명을 듣자 나는 순간
“남주 누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앞으로 남주 누나 말은 귓등으로 들어요.”형수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살라고요? 생리적 욕구는 내가 직접 해결한다 쳐도 수호 씨 형이 안 되면 내가 아이를 가질 수가 없잖아요. 이건 나 혼자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요.”나는 형수가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 보아낼 수 있었다.게다가 형수가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나는 이때다 싶어 형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럼 나는 어때요? 낯선 남자보다 차라리 나를 선택해요.”“나도 수호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 하지만 수호 씨와는 관계가 관계인지라...”“만약 형도 그걸 원한다면요?”나는 이참에 형의 계획을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었다.툭 까놓고 말해 버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모두 솔직히 말해버리면 서로 속일 필요도 없고.하지만 형수가 대뜸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면 모를까?”“왜 안 돼요? 형도 본인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만약 형도 형수처럼 이혼하고 싶지 않고 또 형수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면요?”나는 은근슬쩍 형수한테 귀띔했지만 형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수호 씨는 아직 동성 씨를 모르네요.”나는 형수의 말에 멍해졌다.형에 대한 인식이 아직 예전에 멈춰 있는 건 사실이다. 사회의 시련을 겪으면서 그동안 형이 많이 변했는데 그걸 내가 아직 모르고 있으니.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형수가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그러면 형이 왜 무조건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요?”형수는 내 물음에 확신하는 듯 대답했다.“수호 씨가 본인 동생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면서요. 툭 까놓고 동성 씨가 없으면 지금의 수호 씨도 없었을 거잖아요.”나는 형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내 인생에서 형이 참으로 많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내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었고 물질적으로
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왠지 불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 싶었다.너무 궁금했으니까. 그러니 끝까지 파고들기 전에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때 형수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자기 옆에 앉혔다.“수호 씨 형이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어 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형이 동네에 돌아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한테 말했었거든요. 본인이 나중에 잘나가는 사장이 되면 동네 사람들도 같이 부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말이 쉽지 큰 회사 사장이 되는 게 어디 쉬워요? 수호 씨 형을 봐요, 도시에서 5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직원이 고작 10명뿐이잖아요.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나 사업을 키우려면 대가가 필요해요.”“수호 씨 형이 항상 그랬거든요, 자기한테 동생이 있는데 잘생긴 데다 엄청 착실하다고. 자기가 앞으로 발전하는 데 분명 도움 될 거라고. 그러니까 동성 씨가 수호 씨한테 잘해주는 건 수호 씨한테 마음의 빚을 심어주려는 거예요. 본인이 수호 씨 도움 필요할 때 수호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형수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얼떨떨했다.“형수, 앞으로의 발전에 제가 큰 도움이 될 거라니, 그건 무슨 뜻이에요? 왜 알아듣지 못하겠죠?”형수는 안타까운 듯 나를 보며 말했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수호 씨 형은 수호 씨를 돈 많은 유부녀의 애인으로 팔아버리려고 계속 도와준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한참 동안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머릿속에는 자꾸만 형수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형이 나한테 잘해준 게 마음의 빚을 얹어주고 본인이 필요할 때 내가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게 하기 위해서라고?’‘나를 친동생처럼 대한 게 아니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하지만 나는 계속 형을 친형처럼 생각했었다.그러면서 언젠가 성공하면 무조건 보답할 거라고 수없이 되뇌었다.그런데 형이 지금껏 나한테 잘해준 게 다 목적이 있어서
“무서운 것도 신경 쓰인다는 뜻이거든요. 아니에요?”강한나는 나에게 되물었다.그 말을 들어보니 왠지 일리가 있는 듯해 나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그때 동료가 조사를 마치고 상황을 보고하자 강한나는 일하러 가버렸다.약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내 차는 견인차에 끌려갔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윤지은이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나지 못했을 거다. 심지어 일이 해결된 후에도 윤지은이 나와 윤미화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내가 윤지은더러 형수 동생네 집에 바래다 달라고 하자 윤지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언제부터 거기서 지냈어?”“네?”“세 맡은 집도 있잖아. 그런데 언제부터 거기서 지냈냐고?”윤지은은 또다시 물었다.나는 그제야 윤지은의 질문을 이해하고 해명했다.“이틀 전이요. 제 친구 두 명이 제 집에서 얹혀살아 제가 지낼 자리가 없어서 잠깐 신세진 것뿐이에요.”“이제 겨우 형수랑 정정당당하게 만날 수 있어 기쁘겠네?”‘윤지은이 질투하는 것 같은 건 왜지?’‘설마 윤 사장님 말대로 윤지은이 나를 좋아하나?’자세히 생각해 보니 윤지은이 나에게 도움을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비록 그동안 말로 나를 봐준 적이 없고 항상 쌀쌀맞게 대했지만 매번 나한테 일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그랬겠나?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뭐 하나 물어볼게요. 절대 화내면 안 돼요.”“뭔데? 꾸물대지 마.”윤지은은 고개를 돌려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혹시 나 좋아해요?”그 질문을 한순간 윤지은은 털이 곤두선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반응했다.“뭐?”나는 흠칫 놀라 목을 움츠렸고 자신감을 잃어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나는 도망치듯 차를 뛰쳐나갔다.내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나는 윤지은
윤지은은 두말없이 가방에서 립스틱 하나를 꺼냈다.그걸 본 여경은 이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아르마니 한정판이잖아? 나 오래전부터 예약했는데 아직도 못 샀는데. 역시 우리 윤지은 아가씨가 나서야 한다니까. 나 그냥 주는 거야?”“그 컬러는 나한테 많아. 너한테 하나 주는 게 뭐라고.”“헐.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말로 사람 기죽이네. 그런데 대체 누가 우리 윤지은을 움직였는지 궁금한데?”여경은 말하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 순간 나는 얼른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나는 윤지은의 말을 명심하고 있기에 절대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여경은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자 곧바로 나를 가리키며 윤지은에게 물었다.“설마 저 남자야? 오 마이 갓! 윤지은, 너 연애해? 심지어 남자 때문에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여경은 놀란 듯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윤지은의 얼굴은 단번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립스틱 갖기 싫어? 싫으면 돌려주든가.”말을 마치자마자 윤지은은 립스틱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다.여경은 단번에 몸을 비틀었다.“줬다 뺐는 게 어디 있어? 이미 줬으면 내 거야.”그러면서 또 나를 한번 흘긋거렸다.몰래 훔쳐보던 나는 여경이 나를 보자 또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 모습을 본 윤지은이 낯빛이 어두워진 채 말했다.“정수호, 뭘 그렇게 피해?”‘왜 또 나한테 뭐라는 거야?’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보는 것도 안 돼, 안 보는 것도 안 돼. 그럼 말해봐요. 어떻게 할까요?”나는 이번에 살가운 태도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으니까.하지만 윤지은은 또 화를 냈다.“어떡하긴. 내가 뭐 협박이라도 했어? 다 큰 성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나는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알았어요. 갈게요. 내가 있으면 지은 씨 화만 날 테니까.”나는 말을 마친 뒤 바로 뒤돌아섰다. 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다투기 싫었다. 생각해 보니 윤지은은 가끔 아이처럼 너
“너 가은 쓰레기를 계속 강북에 있게 하면 또 형수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잖아.”진동성은 나에게 기어와 싹싹 빌며 애원했다.“수호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이렇게 빌 테니 봐줘. 우리 같은 동네 출신이잖아. 내가 예전에 너 도와줬던 걸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또 진동성을 걷어찼다.그 사이 윤지은은 어디론가 전화했고 얼마 뒤 양동준이 모습을 드러냈다.“아가씨.”“이 인간 강북에 다시는 못 오게 처리해.”윤지은은 차갑게 명령했다.“네.”양동준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진동성을 향해 걸어갔다.그러자 진동성은 버림받은 개처럼 두 손 두 발을 사용해 앞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양동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진동성이 양동준에게 끌려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수호 씨, 괜찮아?”윤미화는 나를 걱정하는 듯 물었다.“괜찮아요. 조금만 휴식하면 돼요.”나는 이제야 내 사지의 힘이 모두 빠져 흐물흐물해졌다는 걸 발견했다.이런 일은 처음 겪는지라 반응이 세게 온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체력을 회복하려고 한참을 휴식했다.휴식을 마친 뒤 나는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이제 괜찮아요. 가요.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윤지은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처리할 건데?”사실 나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마저 두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윤지은이 말했다.“앞으로 이런 미친 짓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뒤처리는 내가 해줄게.”“이런 일은 절대 안 해요. 아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아까의 상황을 돌이켜 보니 나는 겁이 났다.윤지은은 내가 반박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나를 욕하지 않았다. 그저 동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전화에서 윤지은은 이곳에 교통사고가 났으니 대신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이 일은 사고가 아니라 내가
나는 얼른 조수석으로 가 진동성을 차에서 끌어내렸다. 차는 순간 평형을 잃고 도로 위로 떨어졌다.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나는 차 상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진동성 앞으로 다가갔다.진동성은 한쪽 팔과 다리를 찔린 데다 한쪽 팔은 쓰지 못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신세가 되었다.나는 칼을 들어 진동성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자 진동성은 겁에 질려 엉엉 울면서 윤지은과 윤미화에게 애원했다.다만 두 사람은 모두 진동성을 무시했다.“정수호. 진동성을 죽일 방법은 수천수만 가지가 있어. 그런데 방금처럼 하는 건 아니지.”윤지은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늘 고고하고 깨끗하던 그녀는 이 순간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윤지은의 그런 모습을 보니 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런 위험한 순간 윤지은은 재벌가 아가씨라는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몸을 던져 나가 같이 평범한 사람을 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잘못을 인정했다.“그러면 안 되는데,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또 다음도 있어? 아까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윤미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그 모습을 보니 나는 더 미안해졌다.방금 두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형수처럼 병원에 누워있었을 거다.나는 너무 무모했다.때문에 두 사람이 뭐라고 하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했다.“경찰에 신고해서 저 인간은 경찰한테 맡겨.”“안 돼요. 경찰에 맡기는 건 너무 가벼워요.”“그럼 어떻게 하려고?”윤지은이 물었다.나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진동성을 흘긋 보고는 그의 손등을 발로 밟았다.“말해. 왕정민이 어디 있어?”“정말 몰라. 나중에 먼저 연락하겠다고 했어.”“좋아. 그럼 두 번째 질문. 우리 할아버지가 준 의서는 누구한테 팔았어?”진동성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봤다.“내가 그걸 말하면 풀어줄 거야?”“풀어 달라고? 꿈 깨!”“날 풀어주지도 않는데 내가 왜 말해야 해?”진동성은 배 째
“틀렸어.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난 인간이야. 넌 인성도 없어. 너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야.”나는 진동성을 죽이려고 칼을 꼭 움켜잡았다.진동성은 내가 칼을 쥔 걸 보고는 바들바들 떨었다.“수호야. 바보짓 하면 안 되지. 나 같은 쓰레기 때문에 이럴 필요는 없잖아.”“너를 위해 이럴 가치가 없긴 하지.”내 말에 진동성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희망을 바로 부숴버렸다.“그런데 네 놈을 살려두는 건 형수한테 가장 큰 위협이 돼. 난 아무도 형수를 다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나는 칼을 들어 진동성의 허벅지를 콱 내리 찔렀다.진동성은 단번에 비명을 질렀다. 그가 격렬하게 몸부림칠수록 차도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거렸다.진동성 다급히 나에게 애원했다.“수호야. 너 아직 젊잖아. 왜 이런 바보짓을 하는 건데? 내가 잘못했어. 그만 놔줘. 우리 같이 내려가자. 내가 당장 네 형수랑 이혼하고 두 사람 축복해 줄게.”“못 믿겠어.”나는 칼을 힘껏 비틀었다.그 순간 진동성은 고통에 더 세게 비명 질렀고 차도 따라서 삐걱거리며 소리 냈다.그때 윤지은과 윤미화가 달려왔다.“정수호. 이러다 떨어져. 당장 내려.”“살려줘요. 살려주세요...”진동성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윤지은과 윤미화는 진동성을 무시한 채 나를 잡아끌었다.하지만 이미 분노에 눈이 먼 나는 진동성과 같이 죽을 결심까지 한 지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그때 차 앞부분이 앞으로 기우뚱 쏠렸고 나와 진동성의 몸도 동시에 앞으로 쏠렸다.차가 당장이라도 떨어질 절체절명의 순간, 윤지은과 윤미화는 다급히 뒤로 달려가 차를 내리눌렀다.하지만 이미 겁먹을 대로 먹은 진동성은 이미 바지에 오줌을 지려 축축하게 젖어버렸다.나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었다.그 순간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형수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쓰레기 때문에 나를 희생하는 건 너무 수지가 맞지 않았다.그렇다고 진동성을 이대로 풀어 주자니
“네놈이 형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진동성 난 단지 진실을 원해.”나는 진동성을 빤히 주시했다.진동성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내 눈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진실은 바로 그 교통사고는 단순 사고였어. 나도 네 형수가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 몰랐어.”“좋아!”나는 더 이상 진동성과 말씨름하기 싫었다. 이런 인간과 얘기하는 건 입만 아프니까.나는 두말없이 육교 가장자리로 차를 이동했다.그때 윤지은의 차가 내 차를 따라잡았다.“정수호, 명령하는데 당장 차 세워!”나는 윤지은을 무시한 채 반대쪽 차선으로 차를 돌렸다.육교의 양쪽은 모두 공중에 떠 있어 어느 쪽으로 부딪히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진동성, 빌어!”나는 액셀을 밟으며 난간 쪽으로 부딪혔다.“아! 정수호, 이 미친놈! 말할게. 말할게!”차 바퀴는 이미 난간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공중에 반만 둥둥 떠 있었다.정신을 차린 뒤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알아챘다.방금 1초만 늦었어도 나와 진동성은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솔직히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물었다.“말해. 그때 상황이 어땠어?”진동성의 얼굴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제야 내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만약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육교 아래로 돌진했을 거다.진동성의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했고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난, 난 그냥 네 형수랑 좀 다투다가 실수로 떨어진 거야.”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역시 그 사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하지만 고작 이게 다라고?고작 몇 마디 다툰 거로 차가 통제력을 잃고 육교 아래로 떨어졌다면 왜 운전석에 앉은 진동성은 고작 찰과상만 있고 형수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걸까?“진동성, 한꺼번에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같이 여기서 떨어질
우연히 그림자를 통해 진동성이 벽돌을 휘두르는 걸 발견한 나는 재빨리 피해 진동성을 세게 걷어찼다.진동성은 내 발에 차여 연신 뒷걸음치더니 이내 벽돌을 던져버리고 도망쳤다.그 순간 나는 곧바로 뒤쫓았다.그러자 진동성이 도망치면서 소리쳤다.“정수호, 이 개자식아. 꼭 나를 죽여야만 해?”“내가 네 놈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네 놈이 죽으려고 설치는 거잖아.”“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수호야. 우리 그래도 형제처럼 지냈잖아.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진동성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잡자마자 또 주먹질했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를 잡은 채 질질 끌어 다시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그 모습을 본 윤미화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수호 씨가 이런 거야?”“윤 사장님, 지은 씨, 왕정민은 두 분한테 맡길게요. 난 우리 형을 데리고 교통사고를 체험하러 가야 해서요.”말을 마친 나는 진동성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차를 금방 샀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게 내 애마라고 애지중지했었다. 비록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산 인생 첫 차였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단지 진동성을 태운 채 교통사고 체험을 시켜주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조수석에 앉은 진동성도 형수처럼 세게 다칠지 확인하고 싶었다.진동성을 차에 밀어 넣은 뒤 나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그러자 진동성은 겁을 먹었는지 버럭 소리쳤다.“수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밟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나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맞아. 사고 내려는 거야. 이따가 육교에서 떨어지면 네 놈도 정말 형수처럼 크게 다칠지 확인해야겠어.”진동성은 다급히 조수석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정수호, 너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멈춰. 당장 멈춰!”나는 차를 멈춰 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진동성은 핸들을 잡으려고 버둥댔지만 나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그래. 잡아. 더 빨리 죽고 싶으면.”진동성은 형수가
나는 두 사람한테서 모든 빚을 천천히 받아낼 작정이었다.나는 한참 때리다가 손이 힘들어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어찌 됐든 형수가 혼수상태가 된 게 진동성 짓이라고 확신했으니까.그렇게 나는 힘이 모두 빠져서야 동작을 멈추었다.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진동성이 도망칠까 봐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나도 내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그저 형수가 혼수상태라는 생각만 하면 분노가 차올라 힘도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진동성에 대한 미움도 더해져 진동성을 죽여서라도 형수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시뻘게진 눈으로 반쯤 죽은 듯 누워 있는 진동성을 보며 또다시 물었다.“형수가 저렇게 된 거 너랑 관련 있는 거 맞지?”진동성은 여전히 잡아뗐다.“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나는 또다시 진동성을 주먹질했다.“말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싹 다 조사할 거니까. 진동성, 만약 이 일이 네놈 짓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 순간 진동성이 나를 보는 눈빛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그는 내가 이토록 살기를 내뿜는 눈빛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진동성은 겁에 질려 머리를 마구 저었다.“정말 아니야. 정말 나 아니라고.”나는 진동성을 발로 걷어차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 왕정민은 어디 있는데?”“나, 난 왕정민 대신 물건 가지러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나한테 연락한다고 했어.”“물건은 가졌어?”내가 따져 물었다.그때 윤지은과 윤미화도 다가왔다.진동성은 전전긍긍하며 목을 움츠렸다.“서, 서류야.”진동성은 대충 얼버무렸다.“무슨 서류?”윤미화가 따져 물었다.그 옆에서 윤지은이 보충했다.“혹시 모든 핵심 서류를 챙겨 오라고 했어?”그 서류만 챙기면 왕정민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윤지은은 평소 차갑기만 하고 사업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릴 때부터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나와 윤미화보다 맥을 더 잘 짚었다.그때
나는 다급히 일어섰다.“그런다고 이렇게 나간다고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때 윤미화가 뒤에서 말했다.“분명 계획이 있을 거야. 따라가 보자.”윤지은이 이미 계획이 있다니 순간 궁금했다.나와 윤미화는 윤지은을 따라 왕정민 회사 입구에 도착했다.현재는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매우 조용했다.순간 문득 궁금해 물어보려던 그때 그림자 하나가 살금살금 수풀 뒤에서 걸어 나왔다.하지만 그 사람은 왕정민이 아니라 진동성이었다.진동성은 우리를 발견하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정수호, 설마 이런다고 왕정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이를 갈며 진동성을 바라봤다.“왕정민은 언젠가 잡혀. 계속 왕정민과 협력하면 분명 불똥이 튈 거야. 진동성, 이제 벼랑 끝이니 그만 멈춰.”“벼랑 끝? 하하, 정수호.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진동성은 나를 비아냥거렸다.“넌 나랑 다를 것 같아? 너도 여자 덕에 여기까지 왔잖아. 넌 뭐 대단한 것 같아?”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마음대로 말해. 왕정민은 어디 있어?”내 질문에 진동성은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나는 두말없이 진동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진동성뿐만 아니라 윤지은과 윤미화도 몰랐다.내가 평소에 고분고분하고 나약한 인상을 줘서인지 누구도 내가 먼저 진동성을 때릴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준비도 없이 한 대 맞은 진동성은 이를 갈며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네가 감히 나를 때려?”나는 두말없이 또 한 번 달려들었다.요 며칠간 나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진동성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진동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강해졌는지 모를 거다. 진동성은 몇 대 맞다가 내 발에 차여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곧장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며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