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은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러자 태연이 동성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피곤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예전에는 왜 괜찮았는데? 결혼 초기 때를 돌이켜 봐, 하루에 7, 8번도 더 했어. 심지어 새벽 2, 3시까지 나를 놓아주지도 않았으면서. 회사에서 돌아오면 꼭 한 번은 했잖아.”“그런데 지금 봐 봐. 내가 얼마나 힘쓰는데 왜 맥을 못 추느냐고? 그러면서 문제없다고?”태연은 말하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갓 결혼했을 때 아기를 갖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 갖자고 설득해서 매번 피임약을 챙겨 먹었는데.2년쯤 되면서 회사가 자리를 잡아 다시 요구를 하니 이제는 남편이 맥을 못 추니 태연은 혼자만 노력한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했다. 애는 혼자서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태연이 울자 동성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울지 마, 자기야. 그래. 자기 말대로 병원 가보자.”그 말에 태연은 끝내 울음을 그치더니 동성의 품에 안겼다.“나도 자기 애 빨리 낳아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 내가 서른 중후반이 되면 애 낳는 것도 힘들어.”동성은 마음 아픈 듯 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도 알아. 우리 함께 노력하면 애는 꼭 생길 거야.”...그 시각 나는 끊임없이 시간을 확인하며 형수가 오기를 기다렸다.시계가 9시에서 10시, 10시에서 11시가 되니 나는 애간장이 탔다.그러다 11시 십몇 분이 되었을 때 방문이 슬그머니 열렸다.어둠 속에서마저 형수의 풍만한 몸매는 또렷하게 보였다. 형수는 슬립을 입은 채로 나에게 걸어왔다.“수호 씨, 자요?”형수가 낮은 소리로 묻자 나는 다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아니요. 기다리고 있었어요.”“수호 씨 형 이제 막 잠들었어요. 오래 기다렸어요?”‘네, 기다리다 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어요. 형수님이 안 올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나는 이 말을 솔직히 내뱉지 않았다. 내가 온종일 형수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무슨 뜻인데요?”형수는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따져 물었다.그게 너무 답답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자니 부끄러웠다.“내 어디가 불편한지 알잖아요. 뭘 도와달라고 한지도 알고. 그리고 이번에는 형수님이 먼저 제안했는데 어떻게 속을 수 있어요?”“내가 언제 속였어요? 내가 손으로 수호 씨 욕구 해소해 주겠다고 말했어요?”너무 노골적인 말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형수가 확실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는 거다.내가 제멋대로 기대를 품은 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형수 말이 사실이지만 기분이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속은 기분이 들었다.“수호 씨, 고개 들고 나를 봐요.”형수는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잔뜩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들어 봤더니 형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내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나는 진지하게 형수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형이 떠올랐다.‘형은 아직 옆방에서 자고 있는데, 나는 형의 아내한테 그런 짓을 하려고 하다니.’들끓었던 마음이 한순간 식어버리더니 형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형 생각났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거 봐요. 나는 수호 씨 형수예요. 수호 씨는 나를 볼 때마다 형을 떠올릴 건데, 내가 정말 수호 씨를 도와 그런 짓을 하면 앞으로 형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그건 맞지만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그리고 엄연히 따지면 이건 형수가 먼저 약속한 건데, 결국 거짓말이었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나는 형수가 왜 나한테 희망을 주고 다시 실망을 안겨주며 가르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때 분명 솔직히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괴로울 리는 없다.내가 용기 내어 솔직히 털어놓자 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수호 씨 말이 맞아요. 내가 잘못했네요.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럼 딱 이번 한 번만 도와줄까요?”형수의 말에 나는 다시 흥분했다.지금껏 참은 것도 이 순간만을 위
애교 누나의 남편이 인간쓰레기라지만 지금의 나는 그보다 더한 인간말종이다.내가 다급히 형수의 손을 잡자 형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었다.“결정했어요?”나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무척 갈등했다. 한쪽은 그동안 나를 친형제처럼 대해주었던 형이고, 한쪽은 여자에 대한 갈망이었다.하지만 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전자를 선택했다.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형한테 미안한 짓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그러면 나는 정말 사람도 아니다.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결정했어요. 그냥 가세요.”“역시 이럴 줄 알았어요. 수호 씨는 역시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동성 씨가 항상 수호 씨 같은 친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했죠.”나는 형수를 죄송한 눈으로 바라봤다.“죄송해요. 형수와 형 사이가 그렇게 좋은데 그걸 망치려 하다니. 저는 정말 쓰레기예요.”“수호 씨 탓만은 아니에요. 내 탓도 있어요. 수호 씨가 아직 어리다는 걸 잊고 너무 스스럼없이 말했어요.”“저 어리지 않아요. 이제 성인이에요. 그저 경험이 부족할 뿐이에요.”“그래요, 수호 씨는 성인이에요.”형수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이불 밑에서 손을 빼냈다.나는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리고 속으로 앞으로 절대 형수를 상대로 나쁜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정 힘들면 혼자 해결해요. 되도록 참는 게 좋겠지만. 이런 것도 많이 하면 몸에 해로워요. 수호 씨도 형을 보면 알 거잖아요. 하, 생각하니 도 머리 아프네.”나는 괴로워하는 형수를 얼른 달랬다.“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나중에 형이랑 병원에 한 번 다녀와요.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불치병만 아니면 뭐든 고칠 수 있어요.”그 말에 형수가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그러고 보니 수호 씨가 경락 마사지도 할 줄 알잖아요. 혹시 마사지로 형 고칠 수는 없어요?”나는 고개를 저었다.“저도 확신이 없어요. 워낙 효과가 느려 약물로 치료해야 해요. 우선 병원에서 검사 한번 받아보고 의사의 의견을 들어본 뒤 정 안되면
이건 분명 고통스러워서 내는 신음이었다.“애교 누나, 무슨 일 있어요?”나는 저도 모르게 안으로 뛰어들었다.그 시각 애교 누나는 침대에 엎드려 한 손을 축 늘어뜨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헐레벌떡 다가가 맥을 짚어 보니 상태가 엉망인 데다 위쪽에 문제 있었다.심지어 구토까지 한 걸 보면 급성 위염이 틀림없었다.급성 위염은 심할 경우 탈수를 유발할 수 있다.나는 애교 누나를 반듯하게 눕히고 차례대로 천추혈, 족삼리혈, 양구혈, 내관혈을 눌렀다.이 몇 개 혈 자리는 통증을 완화하는 혈 자리다.그렇게 한참 동안 마사지하니 애교 누나의 증상도 점차 나아졌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애교 누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수호 씨, 고... 고마워요.”나는 애교 누나의 땀을 닦아주며 걱정스레 물었다.“혹시 저녁에 뭐 먹었어요?”“찬 우유 좀 마시고 과일 좀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나더니 구토까지 했어요. 너무 괴로워서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는데 실수로 핸드폰이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그래도 수호 씨가 제때 나타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대로 죽어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엄청 괴로웠을 거예요. 앞으로 저녁에 찬 우유는 먹지 마요. 위에 자극되니까. 계속 그렇게 습관 하면 위가 망가질 거예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항상 혼자라 밥해 먹기도 귀찮고 대충 때웠는데, 오늘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솔직히 애교 누나더러 내 집에서 식사오라고 말하려 했지만 낮에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나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이윽고 애교 누나를 침대에 눕히고 내가 주방에 가 좁쌀죽을 만들줬다.“죽 좀 마셔요. 그러면 속이 좀 괜찮아질 거예요. 좁쌀죽은 위에 좋거든요.”나는 직접 만든 죽을 가져와 애교 누나에게 먹여주었다.애교 누나도 처음에는 직접 먹으려고 시도했지만 숟가락 들 힘도 없어 결국에는 내 도움을 받았다.죽을 먹는 내내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
침대에 앉아 애교 누나에게 시범을 보여주며 조작하다 보니 핸드폰은 이내 다시 반응했다.하지만 다시 켜진 핸드폰에서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잔뜩 흥분한 여자의 교성에 나는 순간 얼떨떨해졌다.그때 애교 누나가 홍당무가 된 얼굴로 황급히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핸드폰 하나 고쳤을 뿐인데 이런 난처한 일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 했다.나랑 형수가 떠나고 혼자 영상을 훔쳐본 모양이다.‘확실히 많이 굶주렸나 보네.’애교 누나는 부끄럽고 난처했는지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쥔 채 내 눈을 피했다.그러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먼저 설명했다.“수호 씨, 오해하지 마요. 이건 내 게 아니라 수호 씨 형수가 나한테 보내준 거예요. 그걸 삭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렉 걸리는 바람에.”“아, 네.”물론 이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솔직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저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믿어 주기로 한 것뿐.형수가 보낸 영상에 바이러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핸드폰이 렉 걸렸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분명 바닥에 떨어뜨린 것 때문일 거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너무 민망해하자 나는 그릇을 집어 들고 말했다.“애교 누나, 먼저 쉬어요. 저 설거지하고 올 게요.”그 말을 마친 나는 바로 방을 나섰다.한편, 수호가 떠난 뒤 애교는 너무 당황스러워 황급히 영상을 삭제했다.“고태연, 너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니? 쪽팔려 죽겠어.”태연이 보낸 영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난감한 일도 벌어질 리 없었을 텐데.애교는 생각할수록 민망했다. 무엇보다 전에 무의식적으로 수호가 그런 짓을 하는 것까지 보고 화내면서 일부러 무시했는데.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몰래 그런 영상을 본 걸 들켰으니.수호가 저를 겉과 속이 다른 여자로 오해할까 봐 불안하고 무서웠다.그 시각 나는 주방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조금 전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유리했다.애교 누나의 마음을 명확히 알았으니.게다가 이제는 서로 각자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앞으로 서로를 비웃
“그래도 너무 부끄러워요.”애교 누나는 너무 보수적이다.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여자들보다도 더 보수적인 것 같다.도시 사람들은 모두 개방적인 줄 알았는데.하지만 애교 누나가 이럴수록 오히려 정복감이 생겨난다.특히 이렇게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너무 사랑스럽다.당장 품에 안고 예뻐해 주고 싶을 정도로.난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꽤 잘생긴 외모로 여자애들의 대쉬를 여러 번 받아보긴 했지만.그때는 학업에만 열중하려는 생각에 연애에는 관심도 없었다.그런데 이제 대학도 졸업했겠다, 또 성인도 됐겠다, 여자 친구를 찾을 때인 건 맞다.그 상대로 애교 누나가 제격인 것 같고.만약 애교 누나가 이혼했다면 당장 고백해서 내 여자 친구로 만들었을 거다.“애교 누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영상 하나 때문에 누나의 인성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저는 제 느낌과 판단을 더 믿어요. 누나는 제 마음속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자예요.”애교는 사뭇 진지한 내 모습을 보자 걱정이 사라졌는지 겨우 미소를 지었다.“수호 씨, 고마워요. 오늘 저녁 나 구해준 것도. 나 믿어준 것도 모두 고마워요.”애교 누나는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참 너무 쉽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하지만 누나의 칭찬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내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물었다.“참,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까 베란다로 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설마 형수 집에서 넘어온 거예요?”‘이런! 들켰네.’나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다행히 머리가 빨리 돌아가 이내 대답했다.“아까 형수 집에서 누나 목소리가 들려 무슨 일이 생겼겠다 대충 짐작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온 거예요.”그 말에 애교 누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그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여기 10층이에요.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애교 누나가 의심하지 않자 나는 거짓말을 계속했다.“아까는 누나한테 무슨 일 있을까 봐 다른 건 생각할 새가
“네.”애교 누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이내 말을 보탰다.“형수가 물으면 내가 몸이 불편해 가지 못한다고 해요. 알았죠?”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 쉬어요.”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애교 누나의 두 눈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나는 웃으며 애교 누나한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 뒤 문을 나섰다.하지만 형수 집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형수 집 열쇠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어떻게 들어가지?’‘이 시간에 전화해서 문 열어달라고 하면 무슨 일인지 물을 텐데.’하지만 난 두 사람한테 조금 전 일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이건 나와 애교 누나의 비밀이니 우리 둘만 알아야 한다.이에 나는 다시 애교 누나 집에 돌아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내가 다시 돌아온 걸 보자 애교 누나는 잔뜩 긴장해서 이불로 제 몸을 덮었다.“수호 씨, 왜 다시 돌아왔어요?”그 시각 애교는 솔직히 수호가 저한테 뭘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늦은 야밤에 본인이 이렇게 섹시한 차림을 하고 있으니 남자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게 불가능 하기에.애교는 한 손으로 슬그머니 핸드폰을 잡으며 만약 수호가 저를 어떻게 하면 당장 신고하려고 했다.애교 누나가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그저 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저 형수 집 열쇠가 없어서 다시 베란다로 넘어가야 해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와 동시에 본인을 탓했다.‘수호 씨가 나를 그렇게 도와줬는데 의심하다니. 사람이 너무 속 좁은 거 아니야?’그러다 잠시 뒤, 애교 누나는 베란다를 흘긋거리더니 걱정스레 말했다.“그런데 저기를 넘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아니면...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는 게 어때요?”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간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세게 뛰었다.‘여기서 지내라고?’‘내가 얼마나 바라던 거였는데.’물론 오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애교 누나와 같은 지붕 아
“네.”옆방 객실로 온 나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침대 위에 폈다.그러고 바로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들떠 잠을 이룰 수 없었다.애교 누나의 태도 변화가 너무 큰 것 같다.낮까지만 해도 나를 무시하더니 저녁에는 아예 집에서 지내라고 하다니.이 객실과 애교 누나의 방은 아주 가깝다.나는 일부러 방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이렇게 하면 애교 누나가 나를 부를 때 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애교 누나는 좀처럼 나를 부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가리켰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애교는 아침을 차려놓고 수호를 깨웠다.작은 소리로 깨우다가 수호가 듣지 못하는 것 같으니 문을 채 닫지 않은 수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하지만 딸랑 팬티 한 장 걸치고 이불도 덮지 않고 대자로 침대에 누워 자는 수호를 보자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이내 다급한 목소리로 수호를 불렀다.“수호 씨, 수호 씨.”하지만 너무 깊이 잠든 수호가 듣지 못하자 애교는 방법이 없는 듯 얼굴을 붉히며 수호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그 순간, 애교의 눈은 수호의 그곳에 멈췄다.왜냐하면 그곳이 불룩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반년 넘도록 남자를 접하지 않은 터라 애교의 욕망은 순간 불 타올랐다.두 눈은 오롯이 그곳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릿속에 한 번만 만져보자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렸다.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천천히 수호의 침대로 올라와 백옥 같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너무 깊은 잠에 빠진 수호는 그걸 알 리 없었다.하지만 손이 수호에게 닿으려는 순간, 애교는 갑자기 현실을 깨달은 듯 다급히 손을 움츠렸다.‘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남편도 있는 사람이 이러면 남편은 어떻게 보려고?’애교는 비록 자책했지만 방을 나가지는 않았다.오히려 자꾸만 수호를 흘긋거렸다.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이미 말라비틀어져 남자에게 받는 사랑을 너무 갈망
어쩐지, 방 2개에 거실 하나 딸리고 이렇게 깨끗한 집이 한달에 22만 원일 리가 있나?“젠장.”나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집주인한테 전화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주선영은 전전긍긍하며 나를 봤다.“선배, 나랑 같이 사는 게 싫으면 내가 나갈게요. 그런데 오늘 밤만 우선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주선영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도저히 쫓아낼 수 없었다.이건 집주인 잘못이지 주선영 잘못이 아니었으니.게다가 주선영은 애교 누나 사촌동생이고, 단순하고 여린 아이인데, 혼자 밖에서 지내다가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런 게 바로 인연인가 보다.“됐어. 그냥 여기서 지내. 마침 방도 2개니까 하나씩 나눠 쓰면 되지. 넌 낮에 학교 가고 나는 출근해야 하니까 밤에만 지낼 거잖아.”말을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물 한 잔을 들이켰다.주선영은 약간 쭈뼛하게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어?”주선영은 입을 오므리고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선배, 우리 언니랑... 정말 결혼할 거예요?”“꼬맹이는 어른 일에 신경 꺼.”나는 마치 인생 대선배라도 되는 듯 나이를 내세워 위세를 부렸다.“그리고, 우리도 서로 아는 사이인데 내 앞에서 그렇게 눈치 볼 거 없어. 너도 돈 내고 이 집 구한 거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선영이 어색하게 구니 나도 덩달아 어색해졌다.마치 나 때문에 주선영이 긴장한 것 같아서.나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결국 물 한잔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거실에 없으면 주선영이 그나마 편히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얼마 뒤, 밖에서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남자를 무서워하기라도 하나?’나는 별 생가 없이 계속 자료를 훑었다.그렇게 한참 훑어 보다 보니 갑자기 애교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누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한참 생각하던 나는 결국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런데 의외로 애교 누나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수호 씨,
“어? 이 사람...”왕정민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윤미화가 눈웃음 치며 물었다.“왜? 아는 사람이야?”“그렇다고 할 수 있죠.”“마침 잘 됐네. 그럼 이번 일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이건 수호 씨가 탐정 사무소에 들어와서 처음 맡는 임무니까 잘해 봐. 만약 결과가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줄게.”“됐거든요. 저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않으면 땡큐예요.”나는 지난번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사인했더니 인신매매 계약서였다.그때 단번에 1000만 원을 주지 않고, 평소에 팁을 줄 때 관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면 나는 진작 그만뒀을 거다.“이 자료들은 돌아가서 잘 연구해 봐. 사흘 내로 고객이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으면 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윤미화는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려 가슴을 쭉 내밀었다.“한동안 나 못 봤는데, 보고 싶지 않았어?”“...”“사장님, 좀 진지해지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윤미화는 테이블 밑에서 하이힐로 나를 걷어찼다.“내가 언제는 뭐 안 진지했어? 누나도 아직 매력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네, 매력 있어요. 됐죠?”말을 마친 나는 얼른 자료를 챙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윤미화가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 정말 윤미화의 유혹에 넘어가 아랫도리가 반응하면 나만 고생 아닌가?나는 커피숍에서 나온 뒤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원래는 유미 사모님께 연락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바쁠 것 같아 문자를 남겼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그 문자를 보낸 뒤 나는 얼른 집으로 향했다.시간이 늦어 나는 집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자료를 살펴봤다.솔직히 나는 왕정민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계략적이고 간사하고 악랄한지만 알뿐.자료에 나온 내용은 한정적이어서 철저히 조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내가 자료를
정태곤은 그제야 우뚝 멈춰섰다.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늘은 그냥 넘어갈게. 운 좋은 줄 알아. 하지만 다음번에 만나면 이렇게 운 좋지 않을 거야.”정태곤은 말을 마친 뒤 뒤돌아 다시 병실 문 앞을 지켰다.나는 그 틈에 얼른 병실 문 앞을 떠났다. 심지어는 아예 병원에서 나왔다.정태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불편했으니까.병원을 나온 뒤에야 나는 비로소 긴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문뜩 내가 너무 겁쟁이처럼 행동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일만 있으면 도망치기나 하고. 양동준의 기세를 따라배우기는커녕 반대로만 하고 있었다.문제는 기세와 배짱은 하루아침에 단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오랫동안 쌓아야 하고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나는 아직 충분한 경험이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러니 기세가 있는 게 이상하지.“하!”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릴 때 왜 무술을 배워두지 않았는지 후회됐다.내가 만약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웠다면 정태곤을 무서워할 리 없었을 텐데.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익숙한 차 한 대가 내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이윽고 윤미화가 차에서 내렸다.윤미화는 윤미 사모님의 사촌 언니다. 때문에 사장님을 뵈러 온 것 같았다.“윤 사모님...”“사모님은 무슨. 사장님이라고 불러.”윤미화는 내 말을 잘라버렸다.그러고 보니 윤미화에게 속아 얼떨결에 탐정 사무소에 들어가 지금은 윤미화 부하가 됐다는 게 떠올랐다.나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윤 사장님. 사장님도 정 사장님 보러 오셨어요?”“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어. 호섭 씨는 지금 어때?”“잠시는 안정됐지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재발할 가능성이 있대요.”“그래, 알았어. 나 잠깐 들어가 볼테니까 먼저 가지 마. 여기서 기다려. 할 말 있으니까.”윤미화는 말을 마친 뒤 급히 병원으로 들어갔다.그러다 약 10분 뒤, 윤미화는 다시 병원을 나왔다.“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네. 유미랑 두
윤지은은 두 어르신을 훈계하고는 바로 병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벽에 기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왜 그래요?”‘이까는 그렇게 위풍당당하더니 왜 갑자기 이러지?’윤지은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유미가 걱정돼서. 만약 호섭 씨가 정말 없으면 유미는 어떡해?”윤지은은 항상 이렇다. 말은 사납게 하면서 마음은 누구보다 약하고, 겉으로는 차갑게 굴면서 모둔 누구보다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나는 이런 윤지은을 뭐라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왜 그렇게 봐요? 내 얼굴에 뭐 있어요?”윤지은은 싸늘하게 나를 노려봤다.“경고하는데, 호섭 씨가 어떻게 되든 유미는 넘보지 마. 만약 유미마저 넘보면 내가 너 죽일 거야!”“헉,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예요? 정호섭 씨는 내 사장님이에요. 나한테 평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 아내를 넘보겠어요?”나는 윤지은이 나를 이렇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게 화가 났다.‘이 여자 마음속에 나는 항상 이렇게 비열한 사람이었나?’윤지은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안 그렇다면 다행이고! 만약 정말로 그런다면, 내가 너 아주 처참하게 죽여줄 거야.”나는 화가 치밀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윤지은 눈에 나는 항상 짐승인가 보다. 잠시 뒤, 백연우도 도착했다.백연우와 윤지은은 계속 윤미 사모님 곁에 같이 있어줬다. 사모님도 두 친구의 위로 덕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병실에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들어가도 있을 곳에 없어, 나는 아예 문 밖에 앉아 있었다.그러다가 오후 4, 5시쯤 되니 소여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 정태곤도 있었다.소여정은 나를 아는 체할 새도 없이 병실에 들어가 친구들을 찾았다.정태곤은 밖에서 말없이 지켰다.나 역시 밖에 있었다.우리는 시선이 서로 맞물렸다. 정태곤의 싸늘한 눈빛을 보니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이 사람과 한 공간에 있기만 하면 나는 온몸이 불편하다. 나는 결국 떠
두 사람은 내 말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분위기도 약간 풀어졌다.“그래. 그만 울자고.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쪽팔리지도 않나?”이 선생님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정 사장님 눈물을 닦아주었다.이 선생님은 정 사장님을 마치 아들 대하듯 대했다.우리가 한창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두 줄기의 그림자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두 사람은 화려한 옷차림에 약 50대 정도 돼 보였는데,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정 사장님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호섭아, 어때? 많이 아파?”먼저 말을 꺼낸 여성분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이윽고 뒤에서 유미 사모님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아빠, 엄마...”유미 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두 사람은 유미 사모님 부모님이었다. 동시에 정 사장님 장인 장모이자 양부모이기도 했다.두 분은 정 사장님을 친아들 대하듯 아꼈다.솔직히 정 사장님도 그렇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나는 이렇게 다정한 남자를 본 적이 없다. 가족을 대할 때도, 주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리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도.정 사장님은 따뜻한 햇살 같은 분이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사르르 녹아버린다.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이 하필 간암에 걸렸다니. 유미 사모님의 어머니는 펑펑 울었고, 아버지 역시 정 사장님이 걱정되는 듯 어디 아픈지 계속 물어봤다.정호섭은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병실 안 분위기는 점차 침울해졌다. 이러다가 모든 사람이 너무 울어 눈이 팅팅 부을지도 몰랐다.나도 그런 감정에 물 들어 점차 자신감이 사라졌다. 결국 나는 바람 쐬러 병실에서 나왔다.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항상 내가 젊다고 자부했고 아직 살 날이 많다고 거만하게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짧은 몇 시간 동안 나는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특히 내 주변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 감각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나는 가슴이 뭉클해 참을
나는 애써 참으려고 했다.어쨌든 여자 아이가 이 선생님을 따라온 걸 보면 선생님 딸일 수 있었으니까.나와 이 선생님은 사이가 좋은데, 내가 여자 아이를 꾸짖으면 여자 아이 체면도 깎일 뿐만 아니라 이 선생님도 난처해진다.하지만 여자아이는 점점 더 심해졌다. 심지어 게임을 놀면서 언성을 높였다.“가운데, 가운데라잖아... 젠장. 게임 할 줄도 몰라? 등신...”목소리만 크면 모를까, 욕설까지 섞여 있었다.그 순간 정 사장님 얼굴에 그늘이 졌다.정 사장님은 점잖고 신사적인 분이라 한 번도 욕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그런데 지금 사장님 상황이 이 지경인데, 여자아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예의 없이 구는 건 너무했다.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이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다연, 당장 나가! 호섭 오빠 아픈 거 안 보여?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니, 양심이 있기는 해?”이다연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몇 마디 위로한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잖아요? 쳇.”이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손을 휘두르며 여자 아이에게 걸어갔다.그러자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막아섰다.“여보, 여기 병원이야. 그러지 마. 다연아, 넌 그만 나가 봐.”이 선생님 아내분은 난감한 듯 말했다.그러자 이다연은 콧방귀를 뀌며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화가 난 이 선생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나는 그래도 평생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런 걸 나았는지 모르겠다.”말하면 말할수록 이 선생님 눈은 점점 더 붉어졌다.그러자 이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그를 위로했다.나 역시 이 선생님께 다가가 위로했다.“이 선생님, 화 푸세요. 사장님도 계시잖아요.”이 선생님은 사장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황급히 미소를 쥐어 짜냈다.“호섭아, 미안하다. 애가 참 철이 없어.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정 사장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괜찮아요. 게임 싫어하는 애가 몇이나 돼요? 스승님도 앞으로 다연이를 너무 나무라지 마요. 의학을 배우기 싫어하면 너
‘하!’“수호 씨.”한창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 나는 얼른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수호 씨, 앉아 봐. 나 할 얘기 있어.”나는 얼른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사장님,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제가 꼭 최선을 다해 들어드릴게요.”사장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수다나 좀 떨까 해서 그래. 이런 병에 걸리고 나서도 사실 항상 좋게 생각했었어. 내가 기쁜 마음을 유지하면 병마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그런데 병들어 쓰러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정말 쓰러지니까 내가 이제 곧 죽겠구나 실감이 오더라.”“나 어릴 때부터 고아였어. 장인어른이 나를 입양해서 키워주다시피 했지. 나랑 우리 아내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서 사이가 늘 좋았어.”나는 조용히 사장님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난 어릴 때부터 하느님이 나한테 참 후다고 생각했어. 장인어르신네 가족을 만나고 따뜻한 집을 얻었으니까. 내 아내도 어릴 때부터 나한테 잘해줬는데, 크고 나서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됐지.”“만약 내가 계속 이렇게 행복했다면 난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였을 거야. 그런데 어릴 때 행운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 액운이 닥쳤는지 모르겠어. 하늘은 참 공평하더라고.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그래서 난 한 번도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원망한 적 없어. 곧 죽는다 해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니까. 하지만 아까 의식을 잃고나서 많은 걸 생각했는데, 내가 떠나면 내 아내는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맨 처음 들더라고.”“수호 씨, 나 갑자기 죽기 싫어졌어. 살고 싶어. 아직 내 아내랑 아이를 낳지 못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한이야. 난 아내와 백년해로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사장님은 말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역시나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걱정되는 사람과 일이 없을 리 없다.
사모님은 앞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사모님이 지금 겁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의사 선생님, 환자분 상태는 어떤가요?”“다행히 병세는 진정된 상태입니다.”의사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막고 엉엉 울었다.방금 전까지 잘 참고 있는 듯했는데, 긴장이 풀리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애처롭고 가련하게 우는 사모님을 보니 왠지 안쓰러워났다.얼마 뒤, 정 사장님은 응급실 밖으로 밀려 나왔다.사모님은 단숨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호섭 씨, 호섭 씨...”“사모님, 사장님은 아직 혼수상태태예요. 이따가 정심 차릴 테니까 우리 먼저 병실로 가요.”사장님과 사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난 뒤, 나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가게로 돌려보냈다. 그러고나서 사모님과 함께 사장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정 사장님은 겨우 눈꺼풀을 들었다.“호섭 씨, 겨우 깨어났네요. 정말 놀랐잖아요.”사모님은 정 사장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에 정 사장님은 싱긋 웃었다.“이번에 이렇게 갑자기 발병할 줄 몰랐네. 그래도 여러분 덕에 저승사자 만나는 건 면했어.”사모님은 울면서 툴툴거렸다.“당신 하마터면 깨어나지 못할 뻔했어. 지금 농담이 나와?”사장님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색은 창백하기 그지 업었다.“웃지 않으면 어떡해? 울수록 기분만 나쁠 텐데. 기분 나쁘면 병은 악화할 거고.”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사장님 말씀 맞아요. 사모님도 낙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해요.”내가 물론 이렇게 위로했지만 사모님은 그러지 못했다.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음 앞에서 사람은 참 무기력해진다.그래서인지 사모님은 사장님처럼 좋은 마음가짐으로 덤덤하게 대하지 못했다.“됐어. 울보네. 수호 씨도 있는데 그만 울어. 화장 다 번지겠어.”사모님은 그제야 티슈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하지만 너무 울어
“그런데 놀 배짱도 없고, 즐길 줄 모른다면 분명 우리 무리에서 도태될 거야. 이 무리는 내 정치적 이익과 관련이 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을 세우는 동시에 깨끗하게 발을 뺄 수 있겠어?”나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가운데 있는 관계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를 움직이면 나머지가 모두 영향받을만큼.남주 누나가 이러지 않으면 정치상의 업적이 없을 거고, 그렇게 되면 조만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될 거다.그런데 남주 누나는 얌전히 집에서 남편을 내조할 유형이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참으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었다.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고민에 잠겼다. 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그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남주 누나, 지금...”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내 입술을 덮쳤다.벌써 며칠 동안 참았던 탓에, 갑자기 따뜻한 입술이 덮쳐 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달아올랐다.곧이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그저 우리 둘 다 냉정을 되찾았을 때, 벌어질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하!”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남주 누나는 옷을 챙겨 입고는 내 얼굴을 감싸 쥔 채 이마에 입을 맞췄다.“한숨 쉬지 마. 사람은 현재를 보고 살아가야 해. 지금 기쁘다면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어. 만약 현재 기쁘지 않아 면 미래를 생각해서 뭐 해?”“그리고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한 손으로 그렇게 어려운 동작도 할 수 있어?”남주 누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누나를 보내고 난 뒤 나는 머리가 터질 듯 복잡했다.‘어쩌다 이렇게 됐지? 성욕을 금하겠다며?’하지만 계속 참고 있는 것도 솔직히 힘들었다.방금 쌓여 있던 성욕을 풀고 나니 온몸의 맥이 뻥 뚫린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됐어. 그만 생각하자.’남주 누나 말대로 많이 생각해도 소용없다.‘될 대로 되라지.’나는 카운터로 돌아가 다시 약을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정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