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부인할 수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아버님이었어도 딸을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저는 딸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지 제가 딸의 하늘이 되어 딸에게 뭐든 명령하고 꾸짖고 싶지 않습니다.”“저는 애교 누나와 아버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봤지만, 애교 누나가 아버님 팔짱을 끼고 애교 부리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 아버지 앞에서 애교 부려요. 아버님은 정말 이런 사이가 부럽지 않으세요?”이태웅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겠지만 나도 나만의 생각이 있었다.내 말은 마침 이태웅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이태웅은 엄격한 아버지다. 하지만 아무리 엄격해도 다정한 면도 있을 거다. 특히 자기 자식 앞에서는 더더욱. 솔직히 이태웅도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매번 공원을 산책할 때 남의 집 딸이 아빠 팔짱을 끼고 애교 부리는 걸 보면 이태웅은 너무나도 부러웠다.하지만 그의 딸 이애교는 그의 앞에서 그런 적이 거의 없다. 그랬어도 아득히 먼 옛날, 이애교가 어릴 적 이야기다.이태웅이 엄격해질수록 딸은 그를 무서워했고, 그의 앞에서 말하는 것마저 눈치를 봤다. 그런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묵묵부답인 이태웅만 봐도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사에 정도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나머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태웅이 스스로 생각할 테니까.하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너무 불편해 나는 볼일 보러 가는 척하며 화장실에 숨었다.이씨 가문 본가 저택은 작은 침실 세가로 구성된 별로 크지 않은 집이었다. 게다가 화장실 공간도 그리 넓지 않았다.하지만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뭐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나는 화장실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애교 누나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히 날려 나갔다.“엄마, 이 모든 건 다 수호 씨가 가르쳐 준 거예요. 우리 사이가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난 부시장이네. 내가 자네처럼 이미지도 지킬 필요가 없는 줄 아나?”이태웅은 싸늘한 얼굴로 반박했다.그러자 고혜란도 옆에서 맞장구쳤다.“나도 교수네. 학생들한테 늘 모범이 되어야지.”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이미지를 지키고 모범을 보이는 건 남들 앞에서만 하면 되잖아요. 가족들한테까지 그러면 너무 힘들지 않아요? 게다가 부부 사이에 그런 재미도 없으면 형제랑 뭐가 달라요?”고혜란은 즉시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그 순간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내가 대체 뭘 잘못했지?’그때 애교 누나가 나를 살짝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수호 씨, 그만 말해요. 우리 부모님은 생각이 좀 보수적이라 평소에 스킨십이 별로 없어요.”“어쩐지 누나한테도 너무 엄격하다 했어요. 본인들 생활이 즐겁지 않으니 누나도 즐기지 말라는 거였네요.”애교 누나는 다급히 나를 쿡 찔렀다.“헛소리 좀 그만해요. 두 분 귀에 들어가면 수호 씨 정말 끝이에요. 관계가 겨우 개선됐는데 또 어색해지면 어떡해요.”“알았어요. 말 안 할게요. 보아하니 못 들은 것 같아요. 손잡는 건 괜찮죠?”애교 누나는 자꾸만 피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누나 손을 잡았다. 우리 행동은 어린애처럼 유치하고 재밌었다. 물론 이태웅과 고혜란이 나오자마자 나는 이내 점잖은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연인 사이에 꽁냥거리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대놓고 맞설 수 없었다. 어쨌든 아직 두 분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무례하게 굴 엄두가 나지 않았다.우리는 동네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그 레스토랑은 아주 평범한 레스토랑이라 가격도 저렴했다.그건 이태웅의 스타일과도 맞았다.나는 애교 누나와 같은 쪽에 나란히 앉으려고 했지만 이태웅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제 옆에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게다가 고혜란과 애교 누나가 이미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터라 나는 마지못해 이태웅 옆에 앉았다.하지만 이태웅과 고혜란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누나와 나는 맞은편에 앉은 터라 내가 다리만
고혜란은 흠칫 놀라더니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았다.“정말 이렇게 대담하게 군다고요?”“뭐?”이태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혜란을 바라봤다.그러자 고혜란은 이태웅의 손을 더 꽉 잡으며 물었다.“그러니까... 정말 여기서 할래요?”“여기 아니면 어디 가려고?”이태웅은 당연히 식사 얘기라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이미 여기까지 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먹지 않으면 뭘 하겠다는 말인가?고혜란은 점점 어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래요. 그럼. 당신이 오랜만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데.”그 순간 고혜란의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이상함을 느끼고 얼른 발을 뒤로 뺐다.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고혜란은 낯빛이 변한 채로 남편 팔을 잡았다.“왜요?”“뭐가? 얼른 메뉴나 골라.”고혜란은 이태웅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해 먼저 이태웅을 슬쩍 건드렸다.“그래요. 뭐 먹고 싶어요?”누군가 저를 차는 느낌에 고개를 숙여 확인한 이태웅은 상대가 자기 아내라는 걸 발견했다.심지어 지금은 그를 툭툭 건드리면서 하이힐 끝으로 그의 바지를 쓸어 올렸다.이태웅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설마 방금 수호 녀석과 애교 때문에 자극받았나?’“크흠...”이태웅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어쩌다가 먼저 다가오는 아내를 거절해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아예 고혜란의 발을 잡아 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그 동작에 고혜란은 심장이 콩닥거렸다.‘몇십 년 동안 무뚝뚝하게 굴더니 이 양반이 드디어 눈을 떴나? 젊었을 때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 내가 행복한 세월을 얼마나 놓쳤는지.’나는 너무 놀라 애교 누나를 보며 숨을 참았다.보아하니 애교 누나도 이미 진작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낮게 소곤댔다.“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어요?”애교 누나도 입을 가리고 작게 소곤댔다.“말했는데, 수호 씨가 못 들은 거예요.”“이제 어떡해요? 두 분이 만약 제가 그런 거 알면 분명 죽이려고 할 거예요.”“우리가 말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체면을 중시한다.하지만 이태웅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는 것만 해도 관계가 큰 진전이 있다는 증거였다.“하하하,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나중에 제가 약속 잡으면 아버님께 말씀드릴게요.”“난 신세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네. 자네가 나를 도왔으니 빚진 거라고 치자고. 하지만 이 일로 내 딸 만나는 거 허락해달라고 할 생각은 말게. 내 백을 이용해 부정당한 수단으로 목적을 이룰 생각도 하지 말고.”이태웅은 아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이태웅은 매우 올곧은 사람이기에 진 빚은 무조건 갚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 선을 넘는 건 용납하지 못했다.그의 신분과 그의 딸이 그에게는 바로 건드리면 안 되는 선이었다.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버님, 신세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이건 저한테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에요. 두 분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든 저랑은 상관없으니 신세니 빚이니 할 필요 없어요.”이태웅은 내가 그런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나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봤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나는 이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레스토랑에서 나온 뒤 나는 윤해철에게 바로 전화했다.“수호 군, 무슨 일인가?”윤해철은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매우 밝았다.때문에 나도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윤 회장님, 혹시 시간 되시면 제가 따로 식사 대접해도 될까요?”“하하, 나야 언제든 괜찮지. 그런데 뜬금없이 식사는 왜 대접하겠다근 건가?”“회장님 찾아뵌 지도 오래돼서 얘기나 나눌까 해서요. 혹시 오늘 저녁은 어떠세요?”“그러자고. 주소 보내줘.”윤해철은 흔쾌히 동의했다.윤해철과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이 소식을 이태웅에게 전했다.이제 나머지는 이태웅에게 달렸다.내가 이태웅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건 이태웅의 신분을 고려해서다. 이태웅은 강북시 부시장인데 내가 제멋대로 부시장님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면서 자리를 마련하는 건 접합하지 않으니까.하지만
“그런데 우리 가격이 저쪽보다 높아서 고객 다 뺏겼어.”나는 민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너 같은 성격은 정말 사업하면 안 되겠다. 오늘 저쪽에서 가격을 낮췄다고 너도 따라 낮추려 한다면 내일 그보다 더 낮추면 너도 또 따라 낮추려고? 우리는 사업 오래 하는 게 목적이야. 그러니 안목과 마음을 넓게 가져야지.”현성의 털털한 성격은 오히려 이런 상황에 좋은 작용을 했다.“그래. 수호 말이 맞아. 우리 가게는 평판을 우선시하기로 했잖아. 계속 가장 좋은 약재를 사용하면 고객 없을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넌 너무 조급해.”민우는 그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어쩔 수 없어. 난 하루빨리 돈 모아서 차 사고 집 사고 임설아와 결혼할 생각이니까. 내가 너희 둘과 어떻게 비하겠어? 한 명은 재벌 2세고, 한 명은 스폰 받고 있잖아...”“이봐, 한 가지 정정해야 할 게 있는데. 난 스폰 받은 적 한 번도 없거든.”나는 어이없어 귀띔했다.그러자 민우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뭐가 다른데? 네 돈 다 그 예쁜 누나들이 준 거잖아.”민우가 나를 이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안 좋았다.이에 나는 정색하며 강조했다.“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는데 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넌 내 친구잖아.”“왜 갑자기 무게 잡고 이래? 알았어. 말 안 할게.”내 상황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우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그런데도 내가 누나들한테서 스폰 받는 다는 말이나 하고 말이야. 내가 언제 스폰 받았다고 그래? 난 누나들 돈 일전한 푼 받은 적 없는데.’우리는 서로 즐기려고 만나는 사이인 건 맞지만 스폰과는 거리가 멀다.하지만 이건 별것도 아닌 일인지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게다가 민우도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그러다 퇴근할 때쯤 임설아가 또 왔다.민우는 얼른 나와 현성을 잡아끌었다.“오늘 저녁 우리 같이 밥 먹자. 내가 살게.”“난 안 돼. 저녁에 일이 있어.”난 오늘 저녁 이태웅과 윤해철을 만나
“이태웅? 수호 군 이태웅 부시장도 알아?”윤해철의 표정을 보면 그도 이태웅을 알고 있는 듯했다.하긴, 한 명은 강북시 부시장이고 한 명은 강북시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이니 서로 아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하지만 윤해철은 이태웅과 트러블이 있는 것 같았다.나는 멍하니 윤해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윤해철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오늘 식사 자리도 이태웅 부시장이 부탁했나?”“네.”“이 사람이. 직접 불러내지 못하겠으니 수호 군을 앞세우다니. 혹시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얘기 못 들었나?”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은 없으셨어요.”이태웅이 비록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진작 알아챘다.그렇지 않으면 강북시 부시장 신분으로 윤해철을 불러내지 못하는 게 말이 안 되니까.아무리 대단한 기업가라도 정계 인사의 체면을 봐야 한다. 더욱이 이태웅은 강북시 부시장이라 LC그룹 미래 발전을 결정지을 정도로 권력이 대단하다.”“됐네. 알겠어. 들어가지.”나는 이태웅과 함께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갔다.이곳은 3성급 호텔 레스토랑인데 윤해철에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이태웅한테는 무척 호화로웠다.평소 겸손하기로 유명한 이태웅은 옷차림도 항상 수수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훌륭한 공무원이다.그런데 이번에 윤해철을 만난다고 힘을 많이 준 모양이었다.룸에 들어서자 윤해철은 허허 웃으며 인사했다.“이태웅 부시장, 나랑 식사하고 싶었으면 바로 연락하면 될 것이지 뭐 하러 수호 군은 내세우나?”이태웅은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누가 자네와 식사하고 싶어 했다고. 정수호가 그래?”나는 바로 이태웅의 뜻을 이해하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 사실은 제가 시간을 잘못 기억해서 두 분과의 약속 시간이 겹쳤지 뭐예요. 이왕 만났으니 함께 식사하죠.”커다란 원형 테이블에서 윤해철은 이태웅 옆에 자리했고 나는 두 사람과 멀리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그럼에도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스파크가 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 내가 하필 그 가운데 끼어 있는
“정수호, 여긴 어쩐 일이야?”내가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여정이 눈에 보였다.가뜩이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던 나는 소여정을 보자마자 너무 예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오늘 밤 소여정은 너무 예뻤다. 이건 단순히 예쁘다는 단어보다는 충격적일 만큼 아름답다는 단어가 어울렸다. 하지만 이내 무서운 감정이 대신했다. 그도 그럴 게, 소여정이 여기 있다는 건 임천호도 함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전에 임천호는 강용재를 보내 나를 몰래 미행하게 한 적이 있다. 비록 요즘에는 그 검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임천호가 우리 둘이 함께 있는 걸 보면 절대 나를 가만둘 리 없다.때문에 나는 소여정과 말도 섞지 않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하필이면 화장실 문 앞에서 그 시커먼 덩치와 마주치고 말았다.그 순간 나는 이제 딱 걸렸으니 죽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강용재는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내 멱살부터 잡으려 했다.그때 나는 신속히 몸을 틀어 아무 말 없이 도망쳤다.나는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용재는 나를 끝까지 쫓아왔다.복도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나는 얼마 못 가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발을 들어 강용재를 걷어찼다. 그 바람에 강용재는 연신 뒷걸음쳤다.그 틈에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난 소여정 씨와 아무 일도 안 했어. 그러니까 나 괴롭히지 마. 안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 강용재는 피식 웃으며 나를 봤다. 그 웃음은 너무나도 서늘했다.순간 임천호는 대체 어디서 이런 이상한 놈들만 찾아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정태곤도 그렇더니 강용재도 똑같네.’두 사람은 모두 독하고 말쑤가 적은 타입이었다. 게다가 눈빛은 하나 같이 독사처럼 음험하며 웃을 때조차 살기가 느껴졌다.강용재는 또다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그때 소여정이 다급히 달려 나와 강용재를 불러 세웠다.“강용재, 멈춰!”강용재는 정태곤과 달리 소여정의 말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소여정은 벽에 기대어 일부러 나한테 윙크했다.“나 예뻐?”나는 저도 모르게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소여정 씨, 제발 저 좀 해치지 마세요. 이 미친개가 계속 저를 물려고 하잖아요. 우선 어떻게 할지부터 생각해 봐요.”내가 지금은 강용재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계속 이러고 이을 수는 없기에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그때 소여정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네 말대로 그냥 미친개야. 정태곤보다도 더 돌아 있는 놈인데, 내가 어떻게 도와? 정태곤이라면 그래도 내 말을 듣겠지만 이 자식은 내 말도 안 들어 처먹어.”‘뭐야? 미친개인 줄 알면서 나를 건드려서 내가 이런 놈한테 당하게 해?’‘내가 진짜 죽기라도 해야 그만둘 건가?’강용재는 계속 버둥거렸다.“이거 놔라. 안 그러면 네 팔 부러뜨리는 수가 있어.”“내가 놓든 안 놓든 나 죽일 거잖아. 뭐 담보라도 있어야 놔줄 거 아니야.”“담보는 얼어 죽을. 당장 놓으라고!”강용재는 또다시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그 순간 나는 욱해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강용재 입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임천호 개 주제에 어디서 개겨? 나 오늘 강북시 부시장과 함께 식사하러 왔거든.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 임천호도 너 못 구해줘.”나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강용재만 나를 풀어준다면 나도 이 자식을 풀어줄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이 미친개는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너... 죽고 싶어?”강용재는 어딘가 나사가 풀린 것처럼 도저히 사람 말을 듣지 않았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고통마저 참으며 그 와중에 내 팔을 꽉 잡고 있다는 거였다.‘이거. 이런 상태만 아니었으면 내 팔 정말 부러졌겠는데?’나는 다급히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강용재가 버럭 소리 지르며 또 나에게러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동작은 전보다 좀 더뎌졌고 걷는 자세도 어딘가 이상했다.나는 원래 도망가려 했는데 강용재의 이런 모습을 보니 갑자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하지만 뒤에 아무 사람도 없었다.“형수, 지금 저 놀린 거예요?”“아니에요. 정말 사람이 있어요.”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봤다.“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만 겁줘요. 제가 뭐 한대요? 그냥 이불 좀 덮어주려는 건데 뭘 그렇게 놀라요? 이러다 나 심장 떨어지겠어요.”나는 말하면서 형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형수는 입을 가리며 싱긋 웃었다.형수의 모습을 보니 나는 형수가 어제 나와 남주 누나가 너무 높은 소리로 떠들어댄 걸 혼내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나는 형수의 겨드랑이를 마구 간지럽혔다. 형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마구 웃어댔다.그때 뒤에서 갑자기 불빛이 번쩍거렸다.흠칫 놀란 나는 침대에서 내려 신발도 신지 않고 뒤를 돌아봤다. 멍하니 돌아본 내 눈앞에는 고아연이 서 있었다.고아연은 사진을 찍은 뒤 피식 웃었다.“계속하지 왜? 내가 없는 사이 우리 언니한테 뭘 하려고 했지? 그런데 왜 내가 오니 왜 그만두는데? 겁나?”“귀신도 아니고, 왜 소리를 안 내요?”나는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방금은 정말 너무 깜짝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고아연은 그런 나를 보고 깔깔 웃어댔다.“그러게 언니가 방금 뒤에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본인이 안 믿었으면서 누굴 탓해?”형수는 나를 속인 게 아니라 진실을 얘기한 거였다.‘내 탓이네. 내가 형수 말을 안 믿어서 그래.’나는 뻘쭘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했다.“오해하지 마요. 전 그저 이불을 덮어주려는 거예요.”“이불 덮어주는데 침대까지 올라가서 덮어줘? 심지어 같이 누워서? 지금 누구를 애 취급하는 거야?”고아연의 말에 나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나는 결국 할 말이 없어 말머리를 돌렸다.“아연 씨가 왔으니 전 이만 갈게요. 언니 잘 돌봐줘요.”나는 다급히 짐을 챙겨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그 시각, 고아연은 자기 언니 앞에 다가가 팔짱을 끼고 언니를 내려다봤다.그 눈빛에 고태연이 고아연을 째려봤다.“그 눈빛 뭐야?”“언니, 궁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형수의 상태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지라 나는 고아연에게 연락해 형수를 돌보러 오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내 핸드폰은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그때 형수는 자기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말했다.형수는 그동안 혼미 상태였지만, 핸드폰을 정기적으로 충전했기에 사용할 수 있었다.나는 형수 핸드폰을 켰다. 그러자 형수가 말했다.“아연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해요. 다른 거 보지 말고 전화만 해요.”나는 다른 걸 확인할 생각이 없었는데 형수가 이런 말을 하니 갑자기 손이 근질거렸다.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잠시 뒤 앨범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고아연은 형수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하며 당장 오겠다고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형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전화 끊었으니 핸드폰 돌려줘요.”나는 그런 형수를 향해 싱긋 미소를 날렸다.“급할 거 뭐 있어요? 형수 핸드폰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확인 좀 해보고요.”“나한테 무슨 비밀이 있다고 그래요? 얼른 돌려줘요. 이제는 내 말도 안 들어요?”형수는 손을 마구 휘저었지만 완전히 일어설 수 없어 핸드폰을 빼앗을 수 없었다.그 틈에 나는 곧바로 앨범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형수의 앨범 속에는 내 사진뿐이었다. 그거도 내가 형수 집에 있을 때 형수가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내가 세수하거나 이를 닦는 모습도 있었고, 옷을 입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심지어 자는 모습도 있었다.“형수, 이거... 형수 오래전부터 나 짝사랑했어요?”“그거 자의식 과잉이에요. 짝사랑이 아니라 잘생겨서 눈요기로 찍은 거예요.”형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그러자 형수가 다급히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 남주랑 그렇게 하고도 힘이 남아돌아 이제는 날 괴롭힐 생각이에요?”“형수, 저를 대체 뭐로 보는 거예요? 전 그냥 형수 곁에 누워 대화하고 싶은 거예요.”“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그와 동시에 나도 벨트를 풀고 즉시 달려가 양춘옥의 아들을 쓰러뜨린 뒤 신속히 제압했다.나와 남주 누나는 손발이 척척 맞게 두 모자를 묶었다.모자를 제압한 뒤 나는 얼른 형수 사태부터 살폈다.“형수, 어때요?”“괜찮아요. 그냥 다리가 안 움직여요.”나는 얼른 약상자를 가져와 형수의 팔과 목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팔짱을 낀 채 형수 옆에 앉았다.“너도 참, 어쩜 깨어나자마자 이런 일을 당해? 고태연, 너 전생에 대체 무슨 덕을 쌓았길래 나랑 수호 같은 사람을 만나?”형수는 내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그러게. 얼마나 덕을 쌓았으면 어젯밤 내내 두 사람 소리를 들었을까?”형수의 방은 애교 누나의 방과 사실 벽 하나 사이 두고 붙어 있는 셈이다.그런데 내가 어제 남주 누나와 애교 누나의 방에서 그 짓을 했으니...나는 순간 너무 난처했다. 형수가 혼미해 있는 동안에 우리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니.형수는 말을 마친 뒤 나를 바라봤다.“두 사람 요즘 자주 붙어먹었지?”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요즘 바빠서 어제만 그랬어요.”“흥. 내가 그 말을 믿을 줄 알아요? 남주가 저번에 나를 보러 와서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수호 씨를 빼앗아 가겠대요.”‘그랬다고? 난 왜 모르지?’남주 누나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말했다.“그건 너 빨리 깨어나라고 자극한 거잖아.”“흥. 소설을 써라 아주!”형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남주 누나도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믿거나 말거나. 내가 수호랑 맨날 붙어먹는다 한들 어쩔 건데? 우리 서로를 뭐라고 할 자격 없잖아.”형수는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수호 씨, 내가 수호 씨 일에 상관할 자격 없어요?”“아니요. 형수는 제 형수인데 당연히 자격 있죠.”형수는 내 말에 바로 입꼬리를 올렸다.“들었지? 수호 씨가 나한테 자격 있대.”남주 누나는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그건 너 달래려고 하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며 형수에게 다가갔다.“나도 그 심정 이해해요. 하지만 오늘 나쁜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내가 기회를 줄게요. 아줌마 아들이 내 한약관에서 일할 수 있게 할 테니 우선 형수부터 놔줘요.”양춘옥은 내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정, 정말이에요?”“네. 약속할게요.”나는 말하면서 점점 형수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었는데 양춘옥이 갑자기 소리쳤다.“거짓말! 우리가 이 여자한테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당신이 내 아들한테 잘해줄 리 없잖아. 내가 칼을 놓게 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그러고 나서 우리 잡아가려고?”나는 다급히 걸음을 멈추었다.“거짓말 아니에요. 진짜예요. 나한테는 직원 하나 더 모집하는 거 별거 아니에요. 아줌마 아들이 새사람 될 기회를 줄게요. 그거로 사죄해요.”“정, 정말 나 속이는 거 아니죠?”양춘옥은 아들 생각에 거의 다 넘어오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양춘옥의 아들이 갑자기 눈이 시뻘게서 끼어들었다.“엄마, 이 사람 말 믿지 마. 이 사람은 우리를 속이는 거야. 자기 여자의 안전을 지키려고 거짓말하는 거라고!”양춘옥은 그 순간 다시 정신을 차린 것처럼 또다시 칼을 형수의 목에 겨누었다.칼날이 형수의 목에 스쳐 피가 나는 걸 보니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을 풀어줄 건데요?”“우리가 무슨 요구를 대든 나중에 무조건 책임을 물을 거잖아. 현재로선 한 가지 방법뿐이야.”“아들, 무슨 방법인데?”“내가 저 여자랑 자는 거!”남자는 형수를 가리키며 말했다.양춘옥은 머리를 굴리더니 말했다.“아들, 저 남자를 우선 묶어. 저 남자만 묶으면 이 여자 하나 다루기는 쉬워져.”양춘옥의 아들은 곧바로 벨트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나는 반항하고 싶었지만 양춘옥이 칼로 형수의 팔을 긁는 걸 본 순간 너무 놀라 꿈쩍도 할 수 없었다.양춘옥의 아들은 벨트로 내 손을 묶고 나를 창문에 매달았다.나를 포박한 뒤에야 두 모자는 안도의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