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감히! 나 경찰에 신고한다?”나는 마음이 조급하고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내 말에 상대는 오히려 냉소적으로 말했다.“그래. 신고해. 경찰이 도착했을 때면 그 계집애는 죽어 있을 테니까.”“내가 돈 줄 테니까 그 여자 풀어줘.”나는 하정현을 구하고 싶었지만 하정현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몰랐기에 이런 방법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상대는 돈을 갚는다는 말에 이내 웃었다.“좋아. 그럼 북교 사거리 뒤쪽에 있는 공터로 와.”상대가 말한 곳은 도심과 매우 먼 데다 사고 다발지역이라 택시 기사들도 다니기 싫어하는 일대였다.그렇다고 버스를 타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버스는 너무 느려 도착하면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었다.한참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윤지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지은 씨, 혹시 안 쓰는 차 있으면 좀 빌려줘요.”윤지은은 나를 꿰뚫어 볼 듯 훑으며 물었다.“뭐 하려고?”“그런 건 묻지 말고 한 번만 빌려줘요. 한 번만 쓰고 돌려줄게요.”“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데 내가 왜 빌려줘야 하지?”나는 너무 조급한 나머지 결국 하정현의 일을 모두 실토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윤지은은 즉시 안색이 변하더니 두말없이 외투를 걸치고 나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차고에 차 한 대 있어. 이게 차키야.”윤지은은 BMW 차키를 나에게 던져주며 나더러 운전하라고 했다.그건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명색이 윤씨 가문 딸인데, 스포츠카 몇 대 정도 소유하고 있는 건 정상이었으니까.나는 신속하게 시동을 걸고 놈이 말한 주소지로 내달렸다.윤지은의 얼굴은 어느새 잿빛이 되어 있었다.“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또 간 거야? 돈이 그렇게 부족한가?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정현 씨가 이번에 강북에 온 이유가 엄청 성가신 일 때문이라는 거 모르죠?”윤지은은 즉시 나를 돌아봤다.“무슨 성가신 일? 나한테 말한 적 없는데?”“정현 씨 어머니가 정현 씨더러 방법을 대서 아버지를 빼내라고 했대요. 안 그러면 연을 끊겠다고 하면서요.”내 말을
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받아 들었다.그제야 나도 망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철제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하정현은 그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그 순간 나는 먼저 관찰하다가 기습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바로 달려갔다.쾅쾅쾅!철문이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윤지은의 이런 모습은 너무 용맹스러웠다.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분명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인데 곤란한 상황 앞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이런 용기는 정말 기특했다.얼마 뒤, 철제문은 안에서 열리더니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나와 물었다.“뭐 하는 거야?”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놈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하정현 어디 있어?”“젠장. 그 계집애를 찾으러 온 거였어? 센 척하긴.”“잔말 말고. 하정현 어디 있어?”윤지은은 언성을 높이며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안에...”윤지은은 두말없이 제 앞을 막은 놈을 밀치고 안으로 쳐들어갔다.창고 안은 아주 간단한 스튜디오였는데 촬영 내용은 어디 내놓기 남사스러운 장면들이었다.그 가운데 하정현이 있었는데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보면 맞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하정현 여에는 상의를 벗어 던진 못생긴 놈들이 서 있었는데 보아하니 하정현의 촬영 파트너인 것 같았다.나는 하정현을 본 순간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나는 한주먹으로 놈을 쓰러뜨리고 하정현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괜찮아요?”하정현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였으며 눈시울은 빨갰다.“괜찮아. 안 죽어.”그때 촬영장 스태프들이 우리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윤지은은 우리 앞에 막아선 채 당장 놈들에게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한 발짝만 더 나서 봐!”그 순간, 긴 콧수염을 가진 남자 한 명이 냉소를 머금은 채 걸어 나왔다.“계집애 주제에 이 많은 인원을 다 묶어둘 수 있을
“안성태, 내가 정말 사람 잘못 봤네.”하정현은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안성태는 오히려 깔깔 웃어댔다.“하하하, 나 원래 불법 장사하는 사람이야. 어디서 순진한 척하는 거야? 그러게 순순히 촬영에 협조하면 됐잖아. 왜 그렇게 기어올라? 네가 계약을 위반했으니 위약금을 내는 건 당연하잖아.”“계약서에 명확히 적혀 있어. 촬영에 협조하지 않을 시 위약금을 지불한다.”“그게 1억이라고?”하정현은 후회막심했다.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옛 동창이거나 고향 사람들이라서 하정현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촬영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촬영이라 순조로웠는데, 오늘 갑자기 낯부끄러운 장면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그것도 못생긴 남자 모델들과 함께.그러니 하정현은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다.그랬더니 이 사람들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하정현더러 위약금을 물어내라며 마구 때렸다.그 순간 하정현은 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나와 윤지은 역시 하정현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함께 하정현을 부축했다.“이건 정현 씨 잘못 아니에요. 탓하려면 쓰레기 같은 저 자식들을 탓해야죠.”“헛소리 그만하고 대답해. 위약금 낼래? 아니면 촬영에 협조할래? 선택하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생각 하지 마.”윤지은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유도를 배운 적 있어서 한두 명은 문제없어. 나머지를 혼자 해결할 수 있겠어?”현장에는 총 6명이었다.윤지은이 2명을 맡는다면 나는 4명을 해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절대 맥 빠지는 소리를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문제없어요.”“그럼 왼쪽 둘은 내가 맡을게. 나머지는 네가 해결해.”윤지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왼쪽에 있는 놈에게 돌진했다.이윽고 나 역시 하정현더러 자리를 찾아 숨어 있으라고 하고는 다른 놈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하정현은 숨지
나와 윤지은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우리의 합이 이렇게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하정현의 도움도 컸다.우리 셋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로 안성태와 마주 섰다.그때 하정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성태, 너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네가 그 계약서를 나한테 돌려주고 내 사진을 모두 삭제하면 네 책임을 묻지 않을게.”안성태는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외투를 벗어 던졌다.“너희가 꽤 치는 줄 몰랐네. 마침 잘 됐어. 나도 오랜만에 좀 놀아보자.”그때 나는 즉시 윤지은과 하정현 앞에 막아섰다.“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두 사람은 본인 몸이나 잘 지켜요.”무엇보다 안성태는 덩치가 컸기에 나는 절대 그놈이 윤지은이나 하정현을 노리게 둘 수 없었다.“승산은 있어?”윤지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그럼 힘내.”나는 안성태 앞으로 다가갔다.내 키도 185라 놈 앞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비록 안성태의 덩치가 나보다 훨씬 컸지만 나보다 민첩성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안성태가 나를 먼저 공격했다.하지만 나는 신속히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변석훈이 전에 말했는데 알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서둘러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 상대의 실력과 잘 쓰는 기술, 그리고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때문에 초반에 나는 계속 피하기만 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만 하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상대를 관찰했다.몇 분 동안 싸우다 보니 s는 안성태가 덩치가 커서 힘만 넘쳐났지 기술과 스피드가 많이 달린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다, 이 개자식아.”나는 신속히 공격했다.지난 한 달 동안 피하는 법과 공격하는 법을 배운지라 내 현재 속도는 안성태보다 훨씬 빨랐다.나는 단번에 필살기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놈의 정가운데를 잡았다.그 순간 안성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눈을 까뒤집었다.“이 비겁한 자식...”나는 피식
하정현은 또 안성태의 귀싸대기를 날렸다.“잡지로 만들 거랬지 고객한테 단독으로 보내준다는 말은 없었잖아. 또 나를 속인 거야? 지은아, 그 파이프렌치 잠깐 좀 빌려줘. 이 자식 남자구실 못하게 해줄 테니까.”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건넸다.그 행동에 놀란 안성태는 사색이 되어 갑자기 하정현에게 주먹을 날렸다.그 순간 나는 다급히 하정현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뒤로 끌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안성태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속박에서 벗어난 안성태는 마치 화가 난 사자처럼 으르렁댔다.“개자식. 감히 그곳을 잡아? 내가 오늘 꼭 너를 죽인다.”“두 사람 얼른 도망쳐요!”나는 윤지은과 하정현을 향해 소리쳤다.윤지은은 안성태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순간 다급히 하정현을 잡고 밖으로 도망쳤다.그리고 나는 안성태의 앞길을 막아섰다.안성태는 나를 보며 이를 갈았고 두 눈은 나를 찢어발길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나는 일부러 냉소를 지으며 안성태를 자극했다.“아까 어땠어? 앞으로 남자구실 못할까 봐 두려웠지?”“이게 감히 그걸 입에 담아? 너 오늘 죽었어.”나는 계속해서 놈을 자극했다.“와 봐. 내가 놀아줄 테니까.”그 말에 안성태는 주먹을 그러쥔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이번에는 그래도 대비가 되어 있었는지 쉽게 파고들 기회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나도 서두르지 않았다.변석훈이 그랬는데 상대가 미쳐 날뛸 때는 절대 무리하게 맞서 싸우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한 방에 맞혀야 한다고 했다.이번 싸움이 나에게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평소 도관에서 연습하는 건 항상 똑같은 몇 가지 기술이라 이미 몸에 배어 있는데, 이걸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때문에 나는 오히려 흥분되고 설렜다.나는 줄곧 안성태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다가 놈이 완전히 폭주해 약점을 드러낸 순간 공격했다.나는 아예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 놈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내 공격에 안성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조차도
윤지은의 집 안.옷을 갈아입은 하정현은 나와 윤지은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그 순간 윤지은이 사람을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하정현을 훑어봤다.“이제 말해 봐.”윤지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정현은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지은아, 나도 일부러 너 속이려던 건 아니야. 너한테 더 이상 폐 끼치기 싫어서 말 안 했어.”“아. 그러면 내가 오히려 너한테 감사해야겠네?”윤지은은 말을 반대로 하며 비꼬는 걸 참 잘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듣는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다만 하정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 나도 알아.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끝났어?”하정현은 얌전한 토끼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윤지은도 피식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네가 말해 봐. 저 말 진정성 있는 것 같아?”“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나는 불안함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또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하, 내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둘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바보였었지? 사랑하는 친구야, 나도 좀 알고 싶네? 너 언제부터 정수호랑 그렇게 친했어? 정수호도 아는 일을 나는 왜 몰라?”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다.나와 하정현의 기세를 합도 윤지은을 이길 수는 없었다.“지은아, 사실은 내가 전에 수호 씨더러 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잖아. 그때 말한 거야.”하정현은 윤지은 옆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쉬운 방법으로 돈 벌려고 하면 안 됐는데. 너한테 말 안 한 것도 미안해. 오늘 두 사람 아니면 나 무슨 일 당했을지 몰라. 이제 생각해 보니 너무 무섭네.”윤지은의 표정은 단번에 누그러들었고 말투도 다정해졌다.“이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친구고 뭐고 없어. 이거 받아. 안에 2억 있어.”하정현은 카드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지은아, 나도 무슨 말을 해야
“맞아요. 원래는 회장님께 2억을 빌려 하정현 씨 빚 갚아주려고 했는데 두 분이 저한테 4억을 줬어요.”“왜?”“제가 회장님 병을 고쳐줬거든요. 지금 엄청 강하다며 어머님이 엄청 좋아하시며 준 거예요.”윤지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실없긴.”“이건 제가 말한 게 아니라 지은 씨 어머니가 말한 거예요. 지은 씨가 무슨 말 들었는지 물어봐서 제가 말한 거잖아요.”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다른 건 없어? 우리 엄마가 다른 말 안 했어?”윤지은이 나를 보는 눈빛이 왠지 이상했다.그 눈을 보니 이영미가 나한테 했던 말을 솔직히 말해야 하나 싶었다.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윤지은이 나를 쫓아낼까 봐 두려웠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함구하기로 했다.“다른 말은 없었어요. 나중에 우리 가게 영업 시작하면 고객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아.”윤지은의 표정은 약간 복잡 미묘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기분인지 읽어낼 수 없었다.“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가 봐.”나는 뒤돌아 떠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내려와 형수 집으로 들어갔다.고수연과 고아연도 이미 와 있었다.사실 형수의 현재 상황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친구인 애교 누나도 돕고 있는데 친자매가 안 올 수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오는 것 같았다.게다가 두 사람 모습을 보니 오늘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듯싶었다.애교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누나가 떠나고 나니 집에는 나와 고씨 자매 둘만 남게 되었다.나와 고씨 자매는 워낙 할 말이 없는지라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다.결국 나는 형수 보러 침실로 들어갔고 그 김에 형수 몸도 닦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연이 따라 들어왔다.“이봐. 나한테 새 옷이 있는데 대신 좀 입어봐 줄래?”“네? 아연 씨 옷을요?”“아니. 남자들이 입는 옷이야.”고아
내가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으려고 할 때 고아연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다.“거실에서 갈아입어.”“뭔가 음모가 있죠?”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몸매 좋은 남자를 보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좀 남색을 많이 밝혀.”나는 색을 밝힌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인정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그래도 안 돼요. 난 형수 거예요.”나는 농담조로 말하고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몸에 걸친 섹시하고도 색기 넘치는 옷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여정이 나더러 비슷한 옷을 입으라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보아하니 여자도 색을 밝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남자 못지않게.내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고아연은 노골적인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나를 진득하게 바라봤다.“쯧쯧. 역시 젊고 잘생긴 데다 소년미까지 넘치네. 이래서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거였구나. 저녁에 이런 남자를 안고 잠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일어나겠네. 자, 누나도 한번 안아보자.”고아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더듬거렸다.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고아연을 막았다.“옷만 입어보면 된다면서요? 다른 짓 하지 마요.”고수연도 옆에서 질투하는 듯 말했다.“아연아, 큰 언니 아직 혼수상태인데 네가 이렇게 언니 남자를 만져 대면 나중에 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어쩔 수 없지. 미색이 유혹하면 난 남편도 배신할 사람인데 도덕을 어기는 게 뭔 대수야?”문제는 이 말이 고아연 입에서 나오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어울렸다.고아연은 워낙 색을 밝히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충격적이지 않았다.나는 두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옷은 문제없어요. 저는 이만 갈아입고 나올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그때 고아연이 다급히 나를 잡아끌었다.“잠깐만. 영상 좀 찍을게.”“무슨 영상이요?”“내가 보여줄게.”고아연은 내 옆에서
나는 흠칫 놀라 뒤돌아 도망치면서 다급히 해명했다.“서나연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서나연 씨 병은 침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침술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해요...”서나연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었다.심지어 서광진도 막지 못했다.“아빠, 아빠는 상관하지 마요. 내가 이렇게 크는 동안 내 앞에서 이런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오늘 저 사람 가만 내버려두면 울분을 삭일 수 없어요.”나는 서나연이 나를 쫓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서나연의 속도는 나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다만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만약 서나연을 다치게 하기라도 하면 수천 수백억으로도 배상할 수 없을까 봐 가장 두려웠다.문 앞까지 도망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서 회장님, 서나연 씨가 오늘 치료받을 상태가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할게요.”“다음번이라니?”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더니 서지예가 가위를 쥐고 나를 베려고 하는 언니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지예는 다급히 내 앞에 막아섰다.그러자 서나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우리 언니한테 무슨 짓 한 거야?”서지예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 질문에 나는 억울하기만 했다.“치료하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니까 저래요. 옷 안 벗고 침 어떻게 놔요?”서지예는 내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바로 언니한테 그렇게 말했어?”“그럼요.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나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우리 언니는 엄청 보수적인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언니 앞에서 그렇게 가벼운 말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사전에 고지하지도 않았잖아요...”“지금 고지했잖아.”서지예는 말을 마친 뒤 서나연에게 다가갔다.“언니, 나도 의사야. 저 사람 말 못 믿는다 쳐도 내 말도 못 믿어? 한의학에서의 침술은 확실히 옷을 벗어야 해. 저 사람이 언니를 상대로 뭘 해보려는 게 아니야. 게다가 저
윤지은은 이애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정수호가 아까 나한테 그랬는데, 화 안 나요?”그 말에 이애교가 오히려 반문했다.“내가 왜 화내야 해요?”“질투 안 나요? 속 안 불편해요? 정수호는 애교 씨 남자 친구잖아요.”윤지은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 말에 이애교가 설명했다.“수호 씨는 아직 젊어서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해요.”“애교 씨 마인드는 참 이상하네요.”윤지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이애교가 싱긋 웃으며 반박했다.“그건 지은 씨가 젊어서 아직 단순해서 그래요. 나처럼 실패한 결혼을 경험하면 사람을 잘 보게 돼요.”윤지은은 그 말을 동의할 수 없었다.“그건 아니라고 봐요. 젊다는 건 단지 개념일 뿐이에요. 난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난 지은 씨와 실랑이 벌이러 온 거 아니라 병문안 온 거예요. 지은 씨가 수호 씨 좋아하면 쟁취해도 돼요. 내 감정을 개의치 않아도 돼요.”이애교는 덤덤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그 말에 윤지은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지금 장난해요? 자기 남자를 남한테 밀어주는 거예요?”“난 경쟁하는 거 안 좋아해요. 내 사람이라면 누가 끼어들든 나한테 돌아올 거고, 내 사람이 아니라면 강요해도 소용없잖아요. 그리고 난 이제 개방적이에요. 전에 소유했었다는 거면 충분해요. 안 그래요?”윤지은은 이애교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전에는 분명 내성적이고 보수적이라던 사람인데, 대화해 보니 이게 어떻게 보수적이고 내성적인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오히려 너무 선진적인 마인드였다.윤지은은 순간 자기가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윤지은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지 절대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윤지은은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확신했다.“밖에 누구 있어? 나 퇴원 절차 밟아.”윤지은은 갑자기 자기 결정을 바꾸었다....나는 아래층으로 도망쳐 내려온 뒤에도
윤지은은 내가 사운 음식을 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먹어. 버려.”“왜요?”‘내가 뭘 또 잘못했지?’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내가 또 심기 건드렸나?’내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윤지은은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왜긴 왜야? 입 맞이 없어.”“입맛이 없다고요? 설마 임신한 거 아니죠?”나는 말하면서 다급히 윤지은의 맥을 짚어 보았다.“아쉽지만 아니에요.”“아쉬워?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임신이 아니면 책임질 필요 없이 네 애교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윤지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지은 씨가 임신하면 난 윤씨 가문 사위로 단번에 신분 상승하는 건데 얼마나 좋아요. 직접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어렵게 선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사람 진짜 뻔뻔하네!”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이에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진짜 뻔뻔하면 지은 씨랑 애교 누나를 모두 내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겠죠. 안 그래요?”“꿈 깨. 네가 뭐 왕인 줄 알아? 한꺼번에 몇 면과 결혼하게?”“그러니까 뻔뻔하다고 하는 거잖아요. 자, 죽 먹어요.”나는 그 틈에 윤지은에게 죽을 건넸다.그러자 윤지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먹긴 뭘 먹어? 안 먹어.”“나 뻔뻔한 사람이에요. 안 먹으면 강제로 먹일 수밖에 없어요. 회진하던 의사 선생님이 그걸 보면 병원 전체에 소문날 텐데. 난 이 병원을 그만둬서 괜찮지만 지은 씨는 다르잖아요. 앞으로 이곳에서 일도 해야 할 텐데.”나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윤지은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결국 윤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정수호, 너 아주...나는 그 틈에 윤지은의 입가에 뽀뽀했다.“협박뿐만 아니라 입도 맞출 건데요. 지은 씨만 괜찮다면 난 두렵지 않아요.”윤지은은 단번에 목덜미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윤지은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말로 기분을 형용할 수 없었다.그저 너무 당
요즘은 너무 평화로워 나도 오랜만에 긴장을 풀었다.게다가 나 역시 현성과 주선영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현성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고, 주선영은 단순한 사람이라 만약 사귀게 된다면, 현성은 분명 주선영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줄 거다.나 혼자 운전해서 월세방으로 돌아와 보니 민우도 집에 없었다.생각하지 않아도 임설아를 만나러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젠장, 결국 오늘은 나 혼자 외로이 남게 되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지은이었다.요즘 너무 바빠 병원에도 들르지 못해 윤지은의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태다.현재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나는 윤지은이 잠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요즘 어떤지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웬걸? 윤지은은 내 카톡을 차단해 버렸다.나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했기에 이번에는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문자는 차단하지 않은 모양이었다.그 시각 한창 핸드폰을 보고 있던 윤지은은 갑자기 뜬 문자를 클릭해 확인했다.[요즘 어때요?]윤지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했다.[안 죽어.]보아하니 다시 익숙한 윤지은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나는 얼른 웃으며 답장했다.[카톡은 왜 또 차단했어요? 내가 언제 또 지은 씨 심기를 거슬렀는데요?][차단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이유가 필요해?][요즘 보러 안 갔다고 삐진 거죠?][누가 삐졌다는 거야? 자기애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어린애 아니고. 쉽게 안 속아.][알았어요. 지은 씨 말이 다 맞아요. 난 매너 있는 남자니까 여자랑 안 싸워요. 내일 보러 갈 건데, 뭐 먹고 싶어요? 챙겨 갈게요.][먹고 싶은 거 없어. 올 필요도 없고. 네 얼굴 보기 싫어.]‘또 반대로 말하네.’나는 이제 윤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다 파악한 상태다. 윤지은과 대화할 때는 대부분 말을 바꾸어 이해해야 한다.[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내일 내가 알아서 할게요.]윤지은이 한창 나와 대화하고 있을 때, 서지예가 밖에
“우리는 돈이 없고, 저 영감은 돈이 있는데, 저 영감을 찾아오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가겠어요?”“서 사장님과 돈을 벌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더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우리가 뜯어낸 돈은 저 사람이 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어요.”나는 당연하다는 듯 반박했다.내 대답을 조용히 듣던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둘렀다.“돈은 받아 가요. 하지만 난 다른 걸 원해요.”“뭘 원하는데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왠지 여자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때 여자가 내 몸에 기대더니 귓가에 소곤거렸다.“난 당신을 원해요.”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여자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지? 장난하나?’“미쳤어요?”내 안색은 단번에 어두워졌다.그러자 여자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나 미쳤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내가 많이 아프대요.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건장한 사내를 찾아 양기를 제대로 보충해야 한대요.”나는 이제야 여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지난번에 여자가 나한테 달라붙어 나를 꼬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광덕이 평소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여자는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날 생각이었다.남자만 바람피운다는 법은 없다.주광덕은 자기가 이 여자한테 완전히 놀아났다는 걸 아마 모를 것이다.나는 현성을 앞으로 밀었다.“얘랑 예기해 봐요. 이 자식 아다라 활력이 넘칠 거예요.”현성은 어리둥절해서 나를 봤다.“수호야, 이러면 안 되지. 난 못 해. 나 아직 선영이 마음도 못 얻었다고.”나는 얼른 현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난 정말 안 돼. 여자 친구가 나 단속하거든. 너도 알잖아. 내 여자 친구 아버지가 강북시 부시장인 거. 만약 내가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걸 들키면 끝장이야.”현성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네가 몸 함부로 굴리고 다닌 게 처음도 아니고. 이번 한 번 더한다고 티도 안 나.
그런데 오늘 현성만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때문에 지금으로서 주광덕에게 선택지라고는 나와 서윤기와 척지거나 진술을 바꾸거나 두 가지뿐이었다.잠시 속으로 저울질하던 주광덕은 결국 전 자를 선택했다.“아니에요. 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이 둘이 한패예요. 난 이 두 사람 몰라요.”현성은 나를 보며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냈다.나도 주광덕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다급히 주광덕의 혈자리를 누르며 다시 물었다.“삼촌, 내 얼굴 제대로 봐요. 나 정말 몰라요?”주광덕은 혈자리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방에서 요염한 여자가 걸어 나와 이상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그 틈에 주광덕은 몸을 버둥대며 나를 밀어냈다.“이 사람이 내 아내예요. 여보, 자기가 말해 봐. 이 사람들 강도 맞지?”나와 현성은 순식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내 팔짱을 끼며 놀라운 대답을 했다.“여보, 이 사람 당신 조카잖아요. 잊었어요?”여자의 답변에 나와 현성마저 어리둥절해졌다.다행히 경찰의 고비는 넘겼다.두 경찰은 주광적을 훈계조치하고 바로 떠났다.경찰이 떠난 뒤 주광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왜 그래? 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바보예요? 상대가 돈을 돌려줬는데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하루 정도 잡혀 있다 바로 풀려날 텐데. 나중에 저 사람들이 나오면 그땐 어떡하려고요?”여자는 주광덕보다 더 주도면밀했다.주광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네. 그래도 어떻게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저 사람들이 맨날 와서 돈 뜯어내는 거 난 더 이상 못 참아.”“오늘 가게 매출 바닥 났다고. 내가 뭐 부자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저 사람들한테 돈 갖다 바쳐?”주광덕은 가게 매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뒤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그 말에 여자가 주광덕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설마 성공해도 남 덕분, 실패해도 남
“수호야. 방금 왔는데 또 어디 가려고?”샤워를 마치고 온 민우는 내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걱정스레 물었다.나는 신발을 신는 와중에 민우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일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 너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일찍 돌아와.”민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우리 셋은 늘 이렇게 잘 맞다. 서로 믿기 때문에 묻지 말아야 할 건 눈치껏 묻지 않지만 정말 일이 있을 때는 모두 함께 하는 게 우리 사이의 국룰이다.나는 얼른 차를 몰고 주광덕이 사는 동네로 향했다.동네에 도착해 경찰차를 본 순간 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주광덕은 역시나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거였다.나는 현성의 상황을 몰랐지만, 현성의 차가 아직 아래에 있는 걸 봐서 이미 위층으로 올라갔다는 뜻이었다.나는 현성에게 문자를 보내 절대 위협을 가하거나 돈을 빼앗았다는 걸 인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그러고는 나도 이미 아래층에 도착해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시각, 현성은 위층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현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내 문자를 보자 서서히 걱정을 내려놓았다.“다시 묻겠습니다. 이 2천만 원은 어디서 났죠?”현성은 가슴을 쭉 펴고 큰 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준 거예요.”“그런 일 없어요. 난 저 사람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큰돈을 그냥 주겠어요? 형사님, 저 사람은 강도예요. 당장 잡아가세요.”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현성은 당장 반박했다.“강도요? 당신이 직접 문 열어준 거 잊었어?”“그리고 보시다시피 제 몸에 문을 따고 들어올 만한 도구가 있나요? 없잖아요. 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강도예요?”주광적이 말했다.“나를 협박한 거잖아. 나는 나이 많은 늙은이고 그쪽은 건장한 젊은이니까 나를 해칠가 봐 돈을 준 거라고.”“형사님, 나 정말 저 사람 몰라요. 제발 잡아가세요.”주광덕은 진작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성은 정말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거였다.현성은 얼굴이
“두 번째도 있어?”연승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계속 그러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있어.”“너... 알았어. 말해. 두 번째는 뭔데?”연승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너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우리 두 가게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연승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협력?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왜 안 되는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질 수 있잖아. 그럴 때 우리 한약과 너희 레스토랑 음식을 조합해서 먹게 하면 얼마나 좋아. 너도 그렇게 세트로 팔면 더 좋지 않아?”“그러면 너희 레스토랑도 장사가 더 잘 될 테고 고객들 건강도 좋아지고 서로 좋잖아. 심지어 이걸 너희 가게 특색으로 밀 수도 있잖아!”연승호가 비록 세상 물정 모르고 귀하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기에 바로 반박했다.“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너희 좋은 짓이잖아. 난 싫어.”“싫다면 너희 가게 손해지. 난 상관없어. 네가 협력 안 하면 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그만이니까.”나는 질척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놈은 돌려줄게. 첫 번째 요구만이라도 잘 기억해. 두 번째는 생각해 보고. 우리 천수당 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말을 마친 뒤 나는 민우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우리 손에는 연승호의 범죄 증거가 있기에 걱정될 건 없었다.게다가 두 번째는 사실 내가 현장에서 바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돈 벌 루트가 있는데 벌지 않는 건 바보나 다름없다.인정하기 싫지만 푸른솔 레스토랑은 평판이 좋아 고객이 꽤 많다. 만약 우리의 한약과 이곳 음식을 결합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건 분명 이곳 특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푸른솔 레스토랑에서 나온 민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쉽게 저 자식을 주무를 수 있단. 너무 쉬운 거 아니야?”“아직 경계를 늦추긴 일러. 연승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여준휘도 사실 무서웠다.우리한테 증인과 물증 모두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연승호에게 또 혼나는 건 당연했다.결국 여준휘는 연승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도련님, 전 안 돼요. 저는 힘도 없고 백도 없는데 정수호 저놈이 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도련님이 나서주세요.”연승호는 당장이라도 여준휘를 차버리고 싶었다.평소에 쓸모없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타이밍에도 실수했으니.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나와 민우가 이미 문 앞에 도착해 노크하고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그 시각.“수호야. 연승호가 문 열까?”민우는 문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안 열면 차라리 더 좋아.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증거도 있는데 무서울 거 뭐 있어?”어찌 됐든 연승호는 이번에 도망칠 수 없다.연승호도 계속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나는 우리가 잡은 높을 발로 걷어차 우리 넘어뜨렸다.“네 사람이야!”연승호는 겉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 사람이라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계속 잡아떼. 이 자식이 이미 다 불었어. 네가 우리 가게 앞에 쓰레기 터러와 똥 테러를 해서 우리 가게 이미지를 망치라고 지시했다고. 여기 영상 증거도 있는데 볼래?”민우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영상 속에서 놈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걸 확인한 연승호는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내가 지시했다고 하는데 증거 있어? 이 개자식이. 너 지금 나 모함하는 거지?”연승호는 말하면서 민우에게 달려들어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그 순간 나는 얼른 민우를 뒤로 잡아끌었다.연승호는 때리는 척하면서 기회를 노려 민우 핸드폰을 뺏으려는 수작이었다.민우도 그걸 눈치채고 신속히 연승호와 거리를 두었다.“연승호, 증거 인멸하려고? 잘 들어. 소용없어. 이 자식이 네가 송금한 기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