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현은 또 안성태의 귀싸대기를 날렸다.“잡지로 만들 거랬지 고객한테 단독으로 보내준다는 말은 없었잖아. 또 나를 속인 거야? 지은아, 그 파이프렌치 잠깐 좀 빌려줘. 이 자식 남자구실 못하게 해줄 테니까.”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건넸다.그 행동에 놀란 안성태는 사색이 되어 갑자기 하정현에게 주먹을 날렸다.그 순간 나는 다급히 하정현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뒤로 끌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안성태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속박에서 벗어난 안성태는 마치 화가 난 사자처럼 으르렁댔다.“개자식. 감히 그곳을 잡아? 내가 오늘 꼭 너를 죽인다.”“두 사람 얼른 도망쳐요!”나는 윤지은과 하정현을 향해 소리쳤다.윤지은은 안성태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순간 다급히 하정현을 잡고 밖으로 도망쳤다.그리고 나는 안성태의 앞길을 막아섰다.안성태는 나를 보며 이를 갈았고 두 눈은 나를 찢어발길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나는 일부러 냉소를 지으며 안성태를 자극했다.“아까 어땠어? 앞으로 남자구실 못할까 봐 두려웠지?”“이게 감히 그걸 입에 담아? 너 오늘 죽었어.”나는 계속해서 놈을 자극했다.“와 봐. 내가 놀아줄 테니까.”그 말에 안성태는 주먹을 그러쥔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이번에는 그래도 대비가 되어 있었는지 쉽게 파고들 기회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나도 서두르지 않았다.변석훈이 그랬는데 상대가 미쳐 날뛸 때는 절대 무리하게 맞서 싸우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한 방에 맞혀야 한다고 했다.이번 싸움이 나에게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평소 도관에서 연습하는 건 항상 똑같은 몇 가지 기술이라 이미 몸에 배어 있는데, 이걸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때문에 나는 오히려 흥분되고 설렜다.나는 줄곧 안성태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다가 놈이 완전히 폭주해 약점을 드러낸 순간 공격했다.나는 아예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 놈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내 공격에 안성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조차도
윤지은의 집 안.옷을 갈아입은 하정현은 나와 윤지은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그 순간 윤지은이 사람을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하정현을 훑어봤다.“이제 말해 봐.”윤지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정현은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지은아, 나도 일부러 너 속이려던 건 아니야. 너한테 더 이상 폐 끼치기 싫어서 말 안 했어.”“아. 그러면 내가 오히려 너한테 감사해야겠네?”윤지은은 말을 반대로 하며 비꼬는 걸 참 잘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듣는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다만 하정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 나도 알아.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끝났어?”하정현은 얌전한 토끼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윤지은도 피식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네가 말해 봐. 저 말 진정성 있는 것 같아?”“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나는 불안함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또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하, 내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둘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바보였었지? 사랑하는 친구야, 나도 좀 알고 싶네? 너 언제부터 정수호랑 그렇게 친했어? 정수호도 아는 일을 나는 왜 몰라?”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다.나와 하정현의 기세를 합도 윤지은을 이길 수는 없었다.“지은아, 사실은 내가 전에 수호 씨더러 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잖아. 그때 말한 거야.”하정현은 윤지은 옆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쉬운 방법으로 돈 벌려고 하면 안 됐는데. 너한테 말 안 한 것도 미안해. 오늘 두 사람 아니면 나 무슨 일 당했을지 몰라. 이제 생각해 보니 너무 무섭네.”윤지은의 표정은 단번에 누그러들었고 말투도 다정해졌다.“이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친구고 뭐고 없어. 이거 받아. 안에 2억 있어.”하정현은 카드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지은아, 나도 무슨 말을 해야
“맞아요. 원래는 회장님께 2억을 빌려 하정현 씨 빚 갚아주려고 했는데 두 분이 저한테 4억을 줬어요.”“왜?”“제가 회장님 병을 고쳐줬거든요. 지금 엄청 강하다며 어머님이 엄청 좋아하시며 준 거예요.”윤지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실없긴.”“이건 제가 말한 게 아니라 지은 씨 어머니가 말한 거예요. 지은 씨가 무슨 말 들었는지 물어봐서 제가 말한 거잖아요.”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다른 건 없어? 우리 엄마가 다른 말 안 했어?”윤지은이 나를 보는 눈빛이 왠지 이상했다.그 눈을 보니 이영미가 나한테 했던 말을 솔직히 말해야 하나 싶었다.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윤지은이 나를 쫓아낼까 봐 두려웠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함구하기로 했다.“다른 말은 없었어요. 나중에 우리 가게 영업 시작하면 고객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아.”윤지은의 표정은 약간 복잡 미묘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기분인지 읽어낼 수 없었다.“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가 봐.”나는 뒤돌아 떠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내려와 형수 집으로 들어갔다.고수연과 고아연도 이미 와 있었다.사실 형수의 현재 상황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친구인 애교 누나도 돕고 있는데 친자매가 안 올 수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오는 것 같았다.게다가 두 사람 모습을 보니 오늘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듯싶었다.애교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누나가 떠나고 나니 집에는 나와 고씨 자매 둘만 남게 되었다.나와 고씨 자매는 워낙 할 말이 없는지라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다.결국 나는 형수 보러 침실로 들어갔고 그 김에 형수 몸도 닦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연이 따라 들어왔다.“이봐. 나한테 새 옷이 있는데 대신 좀 입어봐 줄래?”“네? 아연 씨 옷을요?”“아니. 남자들이 입는 옷이야.”고아
내가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으려고 할 때 고아연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다.“거실에서 갈아입어.”“뭔가 음모가 있죠?”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몸매 좋은 남자를 보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좀 남색을 많이 밝혀.”나는 색을 밝힌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인정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그래도 안 돼요. 난 형수 거예요.”나는 농담조로 말하고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몸에 걸친 섹시하고도 색기 넘치는 옷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여정이 나더러 비슷한 옷을 입으라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보아하니 여자도 색을 밝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남자 못지않게.내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고아연은 노골적인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나를 진득하게 바라봤다.“쯧쯧. 역시 젊고 잘생긴 데다 소년미까지 넘치네. 이래서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거였구나. 저녁에 이런 남자를 안고 잠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일어나겠네. 자, 누나도 한번 안아보자.”고아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더듬거렸다.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고아연을 막았다.“옷만 입어보면 된다면서요? 다른 짓 하지 마요.”고수연도 옆에서 질투하는 듯 말했다.“아연아, 큰 언니 아직 혼수상태인데 네가 이렇게 언니 남자를 만져 대면 나중에 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어쩔 수 없지. 미색이 유혹하면 난 남편도 배신할 사람인데 도덕을 어기는 게 뭔 대수야?”문제는 이 말이 고아연 입에서 나오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어울렸다.고아연은 워낙 색을 밝히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충격적이지 않았다.나는 두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옷은 문제없어요. 저는 이만 갈아입고 나올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그때 고아연이 다급히 나를 잡아끌었다.“잠깐만. 영상 좀 찍을게.”“무슨 영상이요?”“내가 보여줄게.”고아연은 내 옆에서
“두 사람은 거기서 씰룩거리고 나는 혼자 카메라나 들고 있으라고? 미친 거 아니야?”“그렇게 싫으면 언니도 끼던가.”고아연은 고수연까지 초대했다.그 순간 고수연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했다.“셋이 같이 찍어도 돼? 이상하지 않을까?”“이상할 거 뭐 있어? 청순하고, 섹시하고, 야성미 넘치고. 이거야말로 관중들이 원하는 거 아니겠어? 할래?”“그럼 카메라는 어쩌고?”고아연은 두말없이 핸드폰을 들어 거치대 위에 고정했다.“언니, 그런 옷은 안 돼. 좀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고수연은 가정주부라 평소에 치장도 하지 않고 보수적이었다.결국 고아연이 나서서 형수의 옷 한 벌을 골라주었다.그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고수연은 확실히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모든 준비가 끝난 뒤 고아연은 우리에게 춤 한 구간을 알려주었고 그걸 함께 연습한 뒤 정식 촬영을 시작했다.음악이 울리자 나는 고씨 자매와 함께 춤을 추며 걸어 나왔고, ‘풀어’라는 단어가 들릴 때 두 자매가 양옆에서 내 옷을 벗기며 탄탄한 복근을 공개했다.촬영이 끝난 뒤 고아연은 바로 편집했다.나도 최종 영상이 궁금해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다.한참 뒤 고아연은 우리에게 편집한 영상을 보여주었다.그런데 남자인 내가 봐도 영상이 꽤 멋있었다.고수연은 나보다도 눈을 더 크게 뜨고 입꼬리를 씰룩씰룩 끌어 올렸다.“아연아, 너 평소 이런 영상만 촬영해?”나는 그제야 고아연이 SNS 스타라 평소 자기가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을 여러 플랫폼에 올린다는 걸 알았다.나는 몰래 고아연의 계정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몰래 구독했다.고아연의 계정은 팔로워 수가 엄청났고 영상 하나당 좋아요가 만 개가 넘었으며 댓글도 수천 개가 달렸다.그리고 한 가지 예외 없었던 건, 고아연이 올린 영상은 모두 여러 가지 젊고 잘생긴 미남들이라는 거였다.게다가 모두 상반신을 노출한 모습이었고 한 번도 중복된 적이 없었다.그걸 보다 보니 나는 문득 고아연이 부러웠고 이 많은 남자들이 어떻게 고아연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고아연이 찍은 영상은 확실히 재밌었으니까. 팬이 이렇게 많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다만 댓글은 죄다 침을 흘리는 이모티콘이거나 내 친구가 이 영상을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유형의 댓글이었다.고아연은 남자만 찍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나오는 여상도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매력이 넘치게 잘 찍었다.전에는 고아연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말이다.내가 한창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고아연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핸드폰을 숨겼다.“왜 왔어요? 노크는 왜 안 하는데요?”“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고아연은 오히려 삐진 듯 되물었다.이에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무슨 일인데요?”고아연은 나한테로 걸어오더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혹시 잘생긴 남자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나 좀 소개해 줘.”“왜요?”“왜긴? 당연히 영상 찍으려고 그러지. 내가 설마 그 남자들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고아연은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나는 나 하나로도 모자라 또 더 찾아달라는 건가 싶어 순간 화가 나서 말했다.“없어요.”“정말 없어? 아니면 소개해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정말 없어요?”“누굴 속이려 들어? 너의 가게에 잘생긴 사람들이 많다던데. 소개해 주기 싫으면 내가 나중에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지.”“마음대로 해요.”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쓰라렸다.“그래. 그럼 내일 찾아갈게.”고아연은 말을 마친 뒤 이내 방을 나갔다.나는 처음에 고아연이 밀당하는 건가 싶었는데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고아연은 정말 나한테 잘생긴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내 방까지 쳐들어온 거였다.나도 여자들한테 인기 꽤 많은 남자인데 고아연처럼 나를 꼬시지도 않고 아예 무시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사람은 참 이상한 게, 분명 상대와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상대가 무시하면 오히려 괴로워지고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내가 지금 그랬다. 때문에 나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러자 이 사모님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왜 또 그래요? 오늘은 욕하지 않기로 했잖아요.”“하는 짓을 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가정교육 잘못시킨 줄 알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말 걸 그랬어. 당신도 참,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왜 계속 애 편을 들어?”이 선생님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눈까지 부릅뜨며 핏대를 세웠다.그 모습에 이 사모님분은 한숨을 푹 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나도 솔직히 이다연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다연 외에 한지영도 자리했다. 물론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가족 중에 나와 한지영만 젊은 축에 속했다.한지영은 다른 사람과 할 얘기가 없으니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또 만났네요? 요즘 뭐 해요?”내가 한지영에 대한 첫인상은 더욱 꽝이었다. 한지영은 큰소리만 치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며 곧 죽어도 체면이 제일 중요한 부류였다.때문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한의관 일 때문에 바빠요.”“한의관은 돈 많이 벌어요? 많이 벌지 못하면 나랑 같이 영화 찍어요.”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지영을 째려봤다. ‘본인은 행인 1도 못하면서 무슨 수로 나랑 같이 찍자는 거지?’나는 더 이상 한지영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할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나는 일부러 일을 찾아 했다.봉섭 할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옆에서 할아버지께 침을 건네는가 하면 소독을 도와드렸다.사장님은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몇 차례의 치료를 받고 나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치료 과정은 매우 순탄했다. 이건 모두 봉섭 할아버지의 뛰어난 의술 덕분이었다.그 덕에 나도 옆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치료가 끝난 뒤 봉섭할아버지는 사장님 가족들에게 말했다.“이제 치료는 다 끝났으니 병세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5년 정도는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두 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봉섭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선생님, 우리 사위
그날 임민수 내외는 모든 사람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술까지 권했다. 그 모습은 살짝 의외였다.“수호 군, 우리 호섭이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자네 공이 커. 자, 내가 한 잔 권하지.”임민수의 말에 나는 얼른 뚝딱거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어르신, 별말씀을요.”나는 솔직히 임민수가 나에게 술을 권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때 한영심도 잇따라 일어났다.“정 선생, 나도 한 잔 권하네.”“아닙니다, 어르신.”임민수 내외의 존경을 받게 되어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심지어 유미 사모님마저 직접 나에게 술을 권했다.“수호 씨, 나도 한 잔 올려요.”“사모님, 저만 마실 테니 사모님은 마시지 마세요.”사모님은 아직 사장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걱정되었다.그런데 사모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도 딱 한 잔만 마실 거예요. 우리 호섭 씨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수호 씨 덕분이에요. 호섭 씨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마실게요. 그러니 절대 사양하지 마요.”사모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술잔을 들어 올려 사모님의 잔과 부딪혔다.식사 분위기는 매우 화목하고 화기애애했으며 전에 있던 안 좋은 일은 모두 털어버렸다.임민수는 어찌나 기뻤는지 취할 때까지 술잔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두 어르신을 집으로 모셔 드리겠다고 하니 기어코 필요 없다며 대리까지 불렀다.술을 마시지 않은 한지영은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 떠났고, 이 선생님은 기분이 안 좋아 살짝 술을 들이켜더니 또 이다연을 꾸짖었다. 결국 이다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버렸고, 그 때문에 이 선생님은 또 한바탕 화를 냈다.사장님은 나더러 저와 사모님을 상관하지 말라며 대리를 부르고는, 나더러 이 선생님 가족을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다.차에 올라탄 순간, 이 선생님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셨다.나이도 드신 분이 서럽게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
“우리는 돈이 없고, 저 영감은 돈이 있는데, 저 영감을 찾아오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가겠어요?”“서 사장님과 돈을 벌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더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우리가 뜯어낸 돈은 저 사람이 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어요.”나는 당연하다는 듯 반박했다.내 대답을 조용히 듣던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둘렀다.“돈은 받아 가요. 하지만 난 다른 걸 원해요.”“뭘 원하는데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왠지 여자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때 여자가 내 몸에 기대더니 귓가에 소곤거렸다.“난 당신을 원해요.”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여자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지? 장난하나?’“미쳤어요?”내 안색은 단번에 어두워졌다.그러자 여자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나 미쳤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내가 많이 아프대요.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건장한 사내를 찾아 양기를 제대로 보충해야 한대요.”나는 이제야 여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지난번에 여자가 나한테 달라붙어 나를 꼬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광덕이 평소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여자는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날 생각이었다.남자만 바람피운다는 법은 없다.주광덕은 자기가 이 여자한테 완전히 놀아났다는 걸 아마 모를 것이다.나는 현성을 앞으로 밀었다.“얘랑 예기해 봐요. 이 자식 아다라 활력이 넘칠 거예요.”현성은 어리둥절해서 나를 봤다.“수호야, 이러면 안 되지. 난 못 해. 나 아직 선영이 마음도 못 얻었다고.”나는 얼른 현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난 정말 안 돼. 여자 친구가 나 단속하거든. 너도 알잖아. 내 여자 친구 아버지가 강북시 부시장인 거. 만약 내가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걸 들키면 끝장이야.”현성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네가 몸 함부로 굴리고 다닌 게 처음도 아니고. 이번 한 번 더한다고 티도 안 나.
그런데 오늘 현성만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때문에 지금으로서 주광덕에게 선택지라고는 나와 서윤기와 척지거나 진술을 바꾸거나 두 가지뿐이었다.잠시 속으로 저울질하던 주광덕은 결국 전 자를 선택했다.“아니에요. 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이 둘이 한패예요. 난 이 두 사람 몰라요.”현성은 나를 보며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냈다.나도 주광덕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다급히 주광덕의 혈자리를 누르며 다시 물었다.“삼촌, 내 얼굴 제대로 봐요. 나 정말 몰라요?”주광덕은 혈자리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방에서 요염한 여자가 걸어 나와 이상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그 틈에 주광덕은 몸을 버둥대며 나를 밀어냈다.“이 사람이 내 아내예요. 여보, 자기가 말해 봐. 이 사람들 강도 맞지?”나와 현성은 순식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내 팔짱을 끼며 놀라운 대답을 했다.“여보, 이 사람 당신 조카잖아요. 잊었어요?”여자의 답변에 나와 현성마저 어리둥절해졌다.다행히 경찰의 고비는 넘겼다.두 경찰은 주광적을 훈계조치하고 바로 떠났다.경찰이 떠난 뒤 주광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왜 그래? 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바보예요? 상대가 돈을 돌려줬는데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하루 정도 잡혀 있다 바로 풀려날 텐데. 나중에 저 사람들이 나오면 그땐 어떡하려고요?”여자는 주광덕보다 더 주도면밀했다.주광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네. 그래도 어떻게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저 사람들이 맨날 와서 돈 뜯어내는 거 난 더 이상 못 참아.”“오늘 가게 매출 바닥 났다고. 내가 뭐 부자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저 사람들한테 돈 갖다 바쳐?”주광덕은 가게 매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뒤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그 말에 여자가 주광덕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설마 성공해도 남 덕분, 실패해도 남
“수호야. 방금 왔는데 또 어디 가려고?”샤워를 마치고 온 민우는 내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걱정스레 물었다.나는 신발을 신는 와중에 민우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일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 너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일찍 돌아와.”민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우리 셋은 늘 이렇게 잘 맞다. 서로 믿기 때문에 묻지 말아야 할 건 눈치껏 묻지 않지만 정말 일이 있을 때는 모두 함께 하는 게 우리 사이의 국룰이다.나는 얼른 차를 몰고 주광덕이 사는 동네로 향했다.동네에 도착해 경찰차를 본 순간 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주광덕은 역시나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거였다.나는 현성의 상황을 몰랐지만, 현성의 차가 아직 아래에 있는 걸 봐서 이미 위층으로 올라갔다는 뜻이었다.나는 현성에게 문자를 보내 절대 위협을 가하거나 돈을 빼앗았다는 걸 인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그러고는 나도 이미 아래층에 도착해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시각, 현성은 위층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현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내 문자를 보자 서서히 걱정을 내려놓았다.“다시 묻겠습니다. 이 2천만 원은 어디서 났죠?”현성은 가슴을 쭉 펴고 큰 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준 거예요.”“그런 일 없어요. 난 저 사람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큰돈을 그냥 주겠어요? 형사님, 저 사람은 강도예요. 당장 잡아가세요.”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현성은 당장 반박했다.“강도요? 당신이 직접 문 열어준 거 잊었어?”“그리고 보시다시피 제 몸에 문을 따고 들어올 만한 도구가 있나요? 없잖아요. 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강도예요?”주광적이 말했다.“나를 협박한 거잖아. 나는 나이 많은 늙은이고 그쪽은 건장한 젊은이니까 나를 해칠가 봐 돈을 준 거라고.”“형사님, 나 정말 저 사람 몰라요. 제발 잡아가세요.”주광덕은 진작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성은 정말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거였다.현성은 얼굴이
“두 번째도 있어?”연승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계속 그러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있어.”“너... 알았어. 말해. 두 번째는 뭔데?”연승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너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우리 두 가게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연승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협력?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왜 안 되는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질 수 있잖아. 그럴 때 우리 한약과 너희 레스토랑 음식을 조합해서 먹게 하면 얼마나 좋아. 너도 그렇게 세트로 팔면 더 좋지 않아?”“그러면 너희 레스토랑도 장사가 더 잘 될 테고 고객들 건강도 좋아지고 서로 좋잖아. 심지어 이걸 너희 가게 특색으로 밀 수도 있잖아!”연승호가 비록 세상 물정 모르고 귀하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기에 바로 반박했다.“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너희 좋은 짓이잖아. 난 싫어.”“싫다면 너희 가게 손해지. 난 상관없어. 네가 협력 안 하면 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그만이니까.”나는 질척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놈은 돌려줄게. 첫 번째 요구만이라도 잘 기억해. 두 번째는 생각해 보고. 우리 천수당 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말을 마친 뒤 나는 민우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우리 손에는 연승호의 범죄 증거가 있기에 걱정될 건 없었다.게다가 두 번째는 사실 내가 현장에서 바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돈 벌 루트가 있는데 벌지 않는 건 바보나 다름없다.인정하기 싫지만 푸른솔 레스토랑은 평판이 좋아 고객이 꽤 많다. 만약 우리의 한약과 이곳 음식을 결합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건 분명 이곳 특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푸른솔 레스토랑에서 나온 민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쉽게 저 자식을 주무를 수 있단. 너무 쉬운 거 아니야?”“아직 경계를 늦추긴 일러. 연승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여준휘도 사실 무서웠다.우리한테 증인과 물증 모두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연승호에게 또 혼나는 건 당연했다.결국 여준휘는 연승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도련님, 전 안 돼요. 저는 힘도 없고 백도 없는데 정수호 저놈이 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도련님이 나서주세요.”연승호는 당장이라도 여준휘를 차버리고 싶었다.평소에 쓸모없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타이밍에도 실수했으니.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나와 민우가 이미 문 앞에 도착해 노크하고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그 시각.“수호야. 연승호가 문 열까?”민우는 문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안 열면 차라리 더 좋아.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증거도 있는데 무서울 거 뭐 있어?”어찌 됐든 연승호는 이번에 도망칠 수 없다.연승호도 계속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나는 우리가 잡은 높을 발로 걷어차 우리 넘어뜨렸다.“네 사람이야!”연승호는 겉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 사람이라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계속 잡아떼. 이 자식이 이미 다 불었어. 네가 우리 가게 앞에 쓰레기 터러와 똥 테러를 해서 우리 가게 이미지를 망치라고 지시했다고. 여기 영상 증거도 있는데 볼래?”민우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영상 속에서 놈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걸 확인한 연승호는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내가 지시했다고 하는데 증거 있어? 이 개자식이. 너 지금 나 모함하는 거지?”연승호는 말하면서 민우에게 달려들어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그 순간 나는 얼른 민우를 뒤로 잡아끌었다.연승호는 때리는 척하면서 기회를 노려 민우 핸드폰을 뺏으려는 수작이었다.민우도 그걸 눈치채고 신속히 연승호와 거리를 두었다.“연승호, 증거 인멸하려고? 잘 들어. 소용없어. 이 자식이 네가 송금한 기록까지
“사실 다연이 좋은 아이예요. 평소 소통을 많이 하세요.”내가 이 선생님과 얘기하고 있을 때 민우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다급히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마자 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호야, 네 말이 맞았어. 그 사람들 뭔가 문제 있어.]“혹시 무슨 일 있어? 넌 괜찮아?”[난 괜찮아. 그 사람들이 문제지. 그 자식들이 우리 가게 문 앞에 쓰레기 테러랑 똥 테러를 했어. 내가 소리를 듣자마자 뒤로 돌아 겁줬더니 소리 지르며 도망쳤어.]“사람은 잡았어?”[한 놈만 잡았어. 지금 가게에 묶어 놨어. 이 사람들 누가 보낸 것 같아?]“연승호야.”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민우는 내 대답에 놀란 듯 물었다.[어떻게 알았어?]“나 지금 당장 갈게. 너도 조심해.”나는 민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추측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임천호는 그렇게 유치하고 비열한 수단은 쓸 리 없고 주광덕은 아직 내가 천수당 사람이라는 걸 모르니, 남은 건 연승호뿐이었다.연승호는 전에 나한테 당했으니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다. 그 때문에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복수한 것일 테고.이건 역시나 막무가내 재벌2세가 생각할 법한 방법이긴 했다.다만 부하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덜미를 잡혔을 뿐이다.나는 이 선생님 내외와 작별하고 곧바로 천수당으로 향했다.남자는 민우한테 입이 틀어 막힌 채로 묶여 있었다.“저 자식 불었어?”“다 불었어. 이렇게 돈 받고 일하는 놈들은 깡다구도 없어. 겁 좀 주니까 바로 불던데.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모두 녹화했어. 연승호가 또 아니라고 잡아뗄까 봐.”영상을 확인했더니 놈은 역시나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영상 증거도 인고 증인도 있으니 일은 많이 쉬워졌다.“가자. 연승호 찾으러.”“늦었는데 그 자식이 아직도 가게에 있을까?”“큰 공을 들여서 이 짓을 준비했으니 분명 직접 지켜볼 거야.”민우는 내 말을 듣더니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말했다
이다연은 반항심이 너무 강했기에 나는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왜? 놀 기분 아니야? 그럼 게임하지 말고 요즘 뭐 했는지 대화할까?”이다연은 침대에 엎드려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예기할 거 없어요. 친구도 없는데요, 뭘. 그냥 매일 먹고 자는 것뿐이에요.”“그래? 역시 심심했겠네. 혹시 뭐 해볼 생각 없어?”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유도했다.그때 이다연이 갑자기 나를 발로 걷어찼다.“싫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가요. 앞으로 오빠도 안 만날래요.”“그래. 그럼 갈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척하면서 이다연의 반응을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이다연은 내가 가려고 하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정말 가려고요? 이젠 나 상관 안 할 거예요?”나는 자리에 서서 이다연을 바라봤다.“나도 상관하고 싶은데 네가 협조 안 하는데 어떡해? 난 너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넌 나한테 흑심이나 품고. 그러면 돼 안 돼?”나는 이다연의 마음을 단번에 들추었다.이럴수록 숨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대놓고 얘기해서 직접적으로 문제를 직면하게 하고 이런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누구나 이런 일에 부딪히기 마련이니까.이다연의 얼굴은 단번에 빨개지더니 내 눈을 피했다.“어, 어떻게 알았어요?”“네가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이다연의 핸드폰을 주워 돌려주면서 말했다.“나도 너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적이 있어. 넌 지금 너무 자신을 꽁꽁 숨기고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는 데다 평소에 가족과도 대화를 안 해서 부모님 사랑이 고프고 관심받고 싶을 때야.”“그래서 다른 사람이 조금만 잘해줘도 그게 사랑이라고 오해해. 하지만 그렇지 않아. 네가 깨닫지 못한 것뿐이야.”이다연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난 오빠 사랑해요. 오빠를 만나지 못하면 잠도 못 자요.”“난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다른 남자애들이 갖고 노는 총 장난감을 보고 나도 갖고 싶어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한테 권총 장
돌다리도 두르려 보고 건너야 한다고 나는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민우에게 문자 했다.[너 잠시 돌아가지 마. 이따가 가게로 다시 가 봐. 무조건 인기척 내지 말고 몰래 확인해. 다른 사람이 너를 보지 못 하게.]민우는 곧바로 내 뜻을 알아차렸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나는 내 의심을 민우에게 말했다.그러자 민우는 곧바로 나에게 답장했다.[알았어. 지금 당장 돌아가서 확인할게.][조심해. 정 안 되면 도망치고.][알았어.]나는 이 모든 게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이었기를 바랐다.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차 안에서 잠시 더 관찰하기로 했다.그렇게 심 몇 분 동안 확인했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해 나는 내가 너무 예민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민우가 이미 가게로 돌아갔으니 마음 놓고 이 선생님 집으로 출발했다.이 선생님은 나를 보자 매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왔나? 우리 딸이 요즘 매일 자네를 찾으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네.”“네?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이다연은 전에 이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다.이 선생님은 아무 설명도 없이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다연아, 수호 오빠 왔어. 문 열어!”이다연은 순식간에 문을 열었다.“왜 이제야 와요? 얼른 들어와요. 계속 점수 좀 올려줘요.”이다연은 나를 방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사실 이다연은 게임이 목적이 아니라 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했다.그런데 내가 왔으니 오늘은 단둘이 오래 있을 생각이었다.나는 그런 이다연의 마음을 모르기에 심각한 표정으로 이다연의 맥을 짚어 보았다.“다행이네. 상태가 많이 안정됐네. 그런데 왜 이 선생님이 요즘 네가 밥도 못 먹고 잠도 안 잔다고 하는 거야?”이다연의 속내를 모르는 나로서는 의사의 각도로 문제를 볼 수밖에 없었다.이다연은 내 손을 덥석 잡았다.“오빠가 나 데리고 게임하지 않아서 그렇잖아요. 혼자서 너무 심심해서 막 이상한 생각이 든다고요.”“게임은 단지 오락 행위일 뿐이지 네
나는 그걸 보고는 바로 무시했다.하지만 임화영이 연달아 몇 번이나 친구 구가를 해왔다.그러다가 내가 계속 무시하자 화가 난 듯 버럭 화를 냈다.“정수호라는 사람 대체 뭐야? 내가 친구 추가를 세 번이나 신청했는데 왜 통과하지 않지?”주해진은 술을 마시며 말했다.“바쁜 거나 못 봤나 보지.”“그런데 1시간에 한 번씩 보냈단 말이야. 아무리 바빠도 핸드폰 볼 시간도 없어?”임화영은 내가 일부러 그런다고 확신했다.그때 주해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런 방법을 사용하려면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너 내 여자야. 다른 놈 꼬시기 전에 내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봤어?”임화영은 다급히 애교 부렸다.“꼬시는 거 아니야. 그냥 내가 마음껏 주무르려고 그런 거야. 남자는 여자한테 마음을 빼앗기면 아랫도리로만 생각해.”“그 세 명 걱정된다며? 내가 그렇다고 매일 그 가게에 붙어있을 순 없잖아. 우리한테 소식을 전해다 줄 사람을 만들면 좋은 거 아니야?”주해진은 임화영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그런데 질투 나. 오늘 밤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임화영은 눈빛으로 프라이빗 룸을 가리켰다.“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상해 줄게.”주해진이 시작하려고 할 때 임화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내가 친구 추가를 동의한 거라고 확신하며 핸드폰을 꺼내던 임화영은 흠칫 놀랐다.“우리 남편이야!”알고 보니 임화영과 주해진은 부부가 아니었고 두 사람이 각자 가정이 있으면서 바람을 피우는 상태였다.“남편이 당장 집에 오래. 아이가 나 찾는다고.”임화영은 다급히 짐을 정리했다.그 순간 주해진은 언짢은 듯 기분이 팍 상했다.“오늘 밤은 나 보상해 주기로 했잖아. 이게 보상이야?”임화영은 다급히 주해진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아잉, 왜 그래? 나 지금 집에 안 가면 들켜. 우리 사이 들키고 싶어?”두 사람이 얘기하던 그때 주해진의 핸드폰도 갑자기 울렸다.주해진이 꺼낸 핸드폰에 화면에 ‘마누라’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가 봐. 나중에 나 몇 배로 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