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와 원경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몇 명의 형들이 경천을 먼저 궁전에 데리고 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대화의 내용은 다름 아닌 계란이가 그들의 보배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혼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사윗감 조건에 관한 것이었다.그들의 말투는 거만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다정했다.하지만 그 다정함 속에서도 분명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경천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는 그들의 태도를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온화하고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심지어 가끔은 맞장구를 치기까지 했다.특히 사윗감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다른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제일 중요한 것은 택란을 존중하고, 언제나 그녀를 마음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만두와 다른 아이들은 아직 연애 경험이 없었기에, 주로 외적인 조건만을 고려했었다. 늘 택란을 마음에 두는 것과 같은 세세한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경천의 말을 들은 형제들은 서로 눈을 마주했고,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다.그들은 이 어린 황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싫지는 않았다.심지어… 조금은 귀엽기까지 느껴졌다.공통 주제가 생겼으니, 형제들은 몇 마디 더 나누어 보기로 했다.한편, 택란은 옆에서 지루함을 참으며 듣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돌아와서 매우 기뻤지만, 정작 자신은 뒷전이었다. 이대로 가면, 경천도 오라버니가 될 것만 같았다.그렇게 되면, 그녀의 오라버니는 여섯 명이나 되는 셈이다.택란이 거의 잠에 빠질 즈음, 우문호 부부가 도착했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와 황후를 맞이했다.부부는 드디어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매우 기뻐했다. 비록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우문호와 원경릉을 먼저 찾아뵈었지만,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더욱 뿌듯했다.부부가 손을 맞잡고 궁에 들어서자, 다섯째가 물었다."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신나게 하고 있었느냐? 밖에서도 너희 대화 소리가 들리더구나."경단이 답했다
경천은 황후의 온화한 얼굴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찡해졌다. 어머니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원경릉은 그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그의 과거가 떠올랐다. 원경릉이 부드럽게 말했다."사양하지 말고, 어서 먹거라.""감사합니다, 황후마마!"경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차라리 숙모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경천에게 있어, 이렇게 다정한 가족 식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편하게 이야기하고 웃을 수도 있었다. 황실에서 이런 분위기가 가능하다니,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그를 궁으로 불러 며칠 지내게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황제는 거의 그와 함께 식사하지 않았고, 어쩌다 같이 먹게 되어도 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했다. 식사 예법 또한 몹시 까다로웠다.식사가 끝난 후, 원경릉과 우문호는 경천을 따로 객실로 불렀다.오늘 택란이 이미 이야기했기 때문에, 원경릉은 치료 방법에 관해서만 설명했다.경천은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얼떨떨했다. 원래 피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원경릉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이 아닌, 피를 직접 혈관으로 주입하는 방식이었다.이전에 경천의 피를 뽑은 적 있기에, 우문호의 혈액과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수혈할 수 있었다.경천은 북당 황제가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피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며 원경릉에게 물었다."괜찮습니까? 폐하께서 위험하시진 않을까요?""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거라."원경릉이 말했다.경천은 그제야 안도하며, 잔뜩 긴장한 채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우문호도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택란의 말대로, 역시나 이 녀석은 그를 존경하는 것 같았다.수혈이 끝난 후, 경천은 반 시진 정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원경릉의 관찰을 받아야 했다.경천은 처음엔 이 분위기가 몹시 어색했다. 누워 있는 그의 곁에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녀가 경성을 떠난 후 경천에게 이상이 생기면 큰일이었다.그렇게 아이들과 상의하였는데, 찰떡이 자진해서 원경릉을 대신해 돌아가 혈액 검사 샘플을 양여혜 교수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여섯 아이 중에서 찰떡만 의술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찰떡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았다.그래서 원경릉은 샘플을 그에게 맡기고,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도록 했다.경단도 오랫동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큰외삼촌을 보지 못해, 같이 가겠다고 했다.경단이 그렇게 말하자, 환타와 칠성도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결국 원경릉은 아이들을 모두 보내기로 하고, 만두만 남겨 여동생과 함께 있도록 했다.아이들은 원래 내일 무상황을 찾아뵈려 했지만, 시간이 촉박해 먼저 현대에 다녀온 후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그들은 즉시 출발하여 빠르게 경호에 도착한 뒤, 경호를 통해 22세기로 돌아갔다.그곳에서 재빨리 혈액 샘플을 양여혜 교수에게 전달한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오랜만에 돌아온 아이들을 본 어르신들은 너무 기뻐, 이틀 동안 맛있는 음식을 가득 준비했다.셋째 날, 연구소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야 했지만, 교수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물었다."다들 돌아왔으니, 휘종 어르신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네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그럼, 가죠."휘종제 어르신은 집안 어른이었는데, 이전에 이곳에서 생활하며 공부할 때도 늘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장난감도 사 주고 함께 나가 놀면서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아이들은 과일 한 바구니를 들고 버스를 타고 휘종제 어르신과 태자 어르신을 찾아갔다.휘종제 어르신은 아이들을 보자 무척 감격하며, 한 명씩 끌어안았다. 그리고 북당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을 덧붙였다."이렇게 오랜만에 왔는데, 며칠은 머물러야지."하지만 찰떡이 고개를 저었다."어르신, 그건 안 돼요. 혈액 샘플을 어머니한테 가져다드려야 하기에, 오늘 돌아가야 합니다.""벌써 돌아간다고? 이렇
고개를 돌려, 휘종제 어르신에게 말하려는 순간, 휘종제 어르신은 이미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추지 못한 흥분과 기쁨이 묻어났다."형님, 그리고 파지옥, 서유, 어서 짐을 싸시게. 북당으로 돌아가야 하니."그러자 놀라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그리고 울먹이는 소리가 바로 이어졌다.네 명의 소년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아간다는 소리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단지 휘종제 어르신만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형제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대책을 생각하다가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휘종제 어르신이 경단을 꼭 안아버리고 말았다."오랜만에 돌아가는 것이니, 선물을 사 가야지. 매장 한 번 다녀오자.""괜찮습니다. 경호로 다니니, 짐을 들기 힘들지 않습니까?"경단은 휘종제 어르신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휘종제 어르신은 오히려 더 세게 안았다."그래도 사야 해. 사람도 많으니, 다 옮길 수 있다."휘종제 어르신은 그들의 생각을 간파한 듯 경단의 얼굴을 장난스럽게 꼬집으며 말했다."날 속이면 안 돼. 사람은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 난 북당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고, 매일 밤 북당을 꿈꾸며 울며 깨어나곤 했단다."안쓰러운 그 말에, 찰떡은 이내 마음이 아파왔다. 만약 그가 평생 북당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도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네 명의 아이들은 문 밖에서 잠시 의논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것을 찬성한 사람은 세 명, 찰떡과 환타, 칠성이었다.경단도 조금 마음이 약해졌지만, 휘종제 어르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후회했다. 마음이 약해지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비록 경단은 반대 입장이였지만, 홀로 반대하고 있었기에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휘종제 어르신을 데리고 가야 했다.휘종제 어르신은 파지옥이라는 하인에게 물건을 사 오라고 지시했다. 사온 물건들은 몇 개의 방수 처리가 된 큰 여행 가방에 담았다.휘종제 어르신이 누구에게 줄 선물인지를 줄줄이 말하고 있었는데, 장 대인과 명월 군주
휘종제 어르신과 태자 어르신 외에 또 한 명은 파지옥이라는 사람으로, 당시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는 안풍 친왕 부부의 빚을 갚기 위해 그들과 함께 경호에 뛰어들었는데, 그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가 없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오르자, 그는 그에게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시 돈을 받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가 죽었다고 해도,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받아낼 셈이었다.다른 한 명은 연서유라는 사람으로, 휘종제 어르신의 황후였다. 그녀는 휘종제 어르신과 함께 이곳에 보내졌었다. 당시 연서유는 적성루에서 지냈는데, 휘종제 어르신이 즉위하기 전 혼사를 올렸고, 이후 황후로 책봉되었다.휘종제 어르신이 이곳으로 오게 될 때, 그녀는 자발적으로 따라오는 의리와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그녀는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실, 태자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동안 열심히 지내며 건강을 유지해 왔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위해서였다.그들은 그렇게 다시 경호로 돌아갔다. 경단은 칠성에게 보고서를 갖고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 어르신들이 함께 돌아갈 테니, 어떻게 할지 어머니에게 물으라 명했다. 연세가 많으시므로, 칠성이와 함께 밤낮없이 경성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이 힘들기도 하기에 천천히 가야 되었다.하지만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휘종제 어르신의 마음이 굴뚝같아, 지쳐도 괜찮으니,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전했다.골치가 아픈 칠성은 보고서를 들고 빠르게 경성으로 돌아가, 곧바로 궁으로 향했다. 그는 재빨리 부모님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머리가 아픈듯,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정말 복잡해졌구나. 사실 내가 돌아갔을 때도 계속 데리고 와달라고 했었지만, 안풍 친왕이 그들을 보내지 않기로 했어서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풍 친왕과 왕비가 외지에 간 상황에 돌아왔으니, 무슨 문제가 생길지 걱정이구나."그들이 추측하는 문제에는 경성에서 터질
휘종제 어르신과 파지옥 어르신.“십팔매, 적성루에 가서 사람을 찾아, 그들을 경호에서 막고, 비밀리에 다시 경성으로 보내게 하게. 도중에 얼굴을 드러내지 말고, 돌아온 후 바로 숙왕부로 오게 하게.”무상황이 지시했다.그러자 소요공이 일어나며 말했다.“좋소. 사람을 부르러 가겠소.”휘종제 어르신은 황제가 되기 전에 숙친왕이었고, 이곳은 휘종제 어르신이 지내던 숙왕부이다. 그러니 다시 말해, 그는 숙왕부의 주인이었다.적성루 사람들은 그런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적성루의 어르신은 그들의 행방을 몰랐다. 하지만 안풍 친왕을 통해 그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다들 연세가 많은 사람이니, 의심을 금치 못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소요공이 연서유도 함께 돌아왔다고 말하자, 그제야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추 할머니와 몇몇 어르신은 연 낭자를 다시 볼 생각에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적성루 사람은 밤새 말을 타고 경성을 떠났다.우문호는 무상황과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맡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더라도 진짜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그는 그중 휘종제 어르신이 가장 걱정이었다. 그 나이에 성형 수술로 젊어 보이려까지 했으니, 아마도 조용할 성격일 리는 없을 것이었다.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문호 또한 여전히 조금 불안했다.부활한 황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면 어떤 큰 파장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휘종제 어르신이 젊어 보이기 위해 수술을 받았기에, 아마 그가 죽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많고 눈물이 많은 옛 신하들이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그 신하들도 제례 때의 초상화에서만 봤을 것이기에, 그와 실제로 대면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서일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종제 어르신이 연세가 많으니, 누가 그를 기억하겠는가? 숙친왕 시절엔 별로 존재감이 없었
숙왕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흥분해 있었다.세월이 흘러 많은 일을 겪은 탓에 안풍 친왕과 함께 다른 나라에서 떠돌았지만 그들의 뿌리는 여전히 북당, 숙왕부, 그리고 적성루에 있었다.그리고 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도 바로 숙왕부의 사람들 뿐이었다.태자 어르신과는 관계가 깊지 않았기에, 평남왕 우문극과 노창왕만이 신경 썼다.또한 휘종제 어르신과 황후 연서유도 진정으로 그리고 있었다. 특히 후자는 더욱더 그리워했다.다음 날 아침, 왕부는 청소와 동시에 물건을 정리하며,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했다. 병세가 나아진 추 할머니도 두 명의 부인과 함께 시장에서 고기를 사 와 얼음 창고에 미리 쟁여놓았다.추 할머니는 연 낭자가 빚은 만두가 가장 맛있어 했기에, 그녀가 돌아오면 만두를 빚어야 한다고 말했다.잠시 후 정오가 되자, 안풍 친왕 부부와 삼위가 왕부로 돌아왔고, 뒤를 따르는 호랑이 늑대 견도 있었다.안풍 친왕은 굳은 표정으로, 왕부에 도착하자 바로 적성루로 향했다.“그만 생각하시오. 이미 돌아왔잖소.”안풍 왕비가 그를 위로했다.“그래!”안풍 친왕은 고개를 들어, 적성루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한때 흑영을 묶었던 큰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보냈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행복했다.“라만, 사람이 끈질기게 살아가는 이유는 마음속에 소망이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네.”“알고 있소. 하지만 그들도 고향으로 돌아와야하지 않겠소.”안풍 왕비가 말했다.“돌아오셨습니까?”평남왕 우문극이 기쁘게 다가왔다. 그는 라만을 보며 감격했다.“아버지와 삼촌께서 돌아오신다고 합니다.”안풍 왕비는 부드럽게 우문극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그들이 돌아오셨다구나. 아마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오실 것이다.”“정말입니까?”우문극은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형수님의 말은 믿고 있었다. 흥분의
“장 대인께서 작년 연말에 넘어지신 후,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왕부에서 이미 그를 위해 관을 준비했다고 합니다.”“운왕과 창왕도 떠나셨지요.”섬전위가 말을 하면서 노창왕을 한 번 쳐다봤다.“노창왕이 아니라, 노창왕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오.”“그래!”노창왕은 손을 뒤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휘종제 어르신께서 더 힘드신 건,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 아들도 무상황과 저희 친왕뿐이니 말입니다.”귀영이 말했다.안풍 왕비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다소 무거웠다. 예전에 휘종제 어르신께 찾아갔을 때, 그는 이 사람들에 대해 물은 적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죽음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아, 다들 건강하다고 했을 뿐이다.그래서 휘종제 어르신께서는 그들이 아직 잘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서일이 말했듯이, 안풍 친왕이 그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예전에 알고 있던 친척과 옛 벗들이 떠났기 때문이다.그리고 예전에는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직 많기에, 오지 못하게 했었다.민간에서 백성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큰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지만, 죽은 황제가 살아난다면, 아마도 천하가 들썩일 것이다.모두 각자 추억에 잠겨,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마차는 점차 숙왕부 대문에 가까워졌고, 경단 일행은 이미 골목에서 떠나, 궁으로 돌아간 뒤였다. 마차에 탄 네 사람은 호위를 받으며 왕부 안으로 들어간 후, 길을 따라 적성루로 향했다.문이 열리자,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흥분을 금치 못하거나 환호할 것 같았지만, 다들 조용했다.추 할머니와 두 명의 부인, 그리고 노창왕비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휘종제 어르신의 황후 연서유를 안고, 한데 엉켜서 울었다. 눈물이 눈 앞을 가려 시선이 흐릿해졌고,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어찌 이렇게 늙으신 것입니까?”운 부인은 연서유를 보며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연서유 역시 울며 그들을 보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