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인께서 작년 연말에 넘어지신 후,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왕부에서 이미 그를 위해 관을 준비했다고 합니다.”“운왕과 창왕도 떠나셨지요.”섬전위가 말을 하면서 노창왕을 한 번 쳐다봤다.“노창왕이 아니라, 노창왕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오.”“그래!”노창왕은 손을 뒤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휘종제 어르신께서 더 힘드신 건,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 아들도 무상황과 저희 친왕뿐이니 말입니다.”귀영이 말했다.안풍 왕비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다소 무거웠다. 예전에 휘종제 어르신께 찾아갔을 때, 그는 이 사람들에 대해 물은 적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죽음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아, 다들 건강하다고 했을 뿐이다.그래서 휘종제 어르신께서는 그들이 아직 잘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서일이 말했듯이, 안풍 친왕이 그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예전에 알고 있던 친척과 옛 벗들이 떠났기 때문이다.그리고 예전에는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직 많기에, 오지 못하게 했었다.민간에서 백성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큰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지만, 죽은 황제가 살아난다면, 아마도 천하가 들썩일 것이다.모두 각자 추억에 잠겨,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마차는 점차 숙왕부 대문에 가까워졌고, 경단 일행은 이미 골목에서 떠나, 궁으로 돌아간 뒤였다. 마차에 탄 네 사람은 호위를 받으며 왕부 안으로 들어간 후, 길을 따라 적성루로 향했다.문이 열리자,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흥분을 금치 못하거나 환호할 것 같았지만, 다들 조용했다.추 할머니와 두 명의 부인, 그리고 노창왕비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휘종제 어르신의 황후 연서유를 안고, 한데 엉켜서 울었다. 눈물이 눈 앞을 가려 시선이 흐릿해졌고,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어찌 이렇게 늙으신 것입니까?”운 부인은 연서유를 보며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연서유 역시 울며 그들을 보았
불길이 일며, 모든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노부인들은 부엌에서 만두를 빚고, 노인들은 밖에서 큰 원을 이루어 앉았다. 그렇게 적성루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우문극은 안풍 친왕 부부 옆에 앉았고, 삼대 거두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휘종제 어르신과 노태자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고, 파지옥은 고기를 구워 먹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속 열이 오르면, 얼마나 많은 차를 마셔서 가라앉혀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그들도 한때 국가의 대사를 논의했었지만, 이제는 우문호가 다스리는 북당이 어떻게 번창하고, 어떻게 번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불빛과 함께 구운 고기의 향기가 서서히 기분을 좋게 해주었고,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되돌아왔다. 다들 여전히 예전처럼 음식을 다투고 있었다.황궁 소월궁.가족 여덟명이 함께 모여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원경릉이 준 약 때문에, 다소 졸린 경천 황제는 이미 잠들었다.우문호는 별로 입맛이 없어, 몇 입 먹고 나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아바마마, 어르신이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돌아오는 동안 계속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경단이 위로하며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 걱정이 아니다.”원경릉이 물었다.“그럼 무엇을 걱정하는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을 보며 말했다.“어제 궁으로 돌아올 때, 서일이 나에게 한마디 했소. 안풍 친왕이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는 이유는 그들의 옛 친척이나 벗이 이미 다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원경릉도 항상 큰 그림을 신경 쓰는 편이였기에, 서일처럼 구체적인 문제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원경릉은 이것이 가장 큰 가능성임을 깨달았다.사실 그녀도 공감할 수 있었다.그녀도 한동안 떠나 있었지만, 다행히 돌아왔을 때 모두가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만약 운이 좋지 않아, 50년 후에 돌아왔다면, 그녀도 지금의 친척이나 친구들이 거의
다섯째는 사람을 볼 때다 마음속에 있는 저울로 계산했다.원 선생은 그 저울의 꼭대기에 자리 잡아 모두를 압도했다.경천은 그저 저울에 오를 수 있을 정도였고, 그 높이는 사실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후 그가 점점 높아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했다.다섯째가 원경릉에게 한 마디 전했다."만약 경천이 계란이를 탐내지 않는다면, 그를 기분 좋게 양자로 들일 수도 있소."원경릉이 그를 비웃었다."참 단순한 생각이오. 금나라 황제를 양자로 들이면, 경천 황제가 당신이 금나라를 탐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소."다섯째가 웃으며 말했다."영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하지만 그는 그럴 생각까진 없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친분을 쌓고 서로 침략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다.황제는 항상 평안한 삶을 바란다. 그는 그렇게 큰 야망이 없었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도 없었다.물론, 다른 사람에게 땅을 조금이라도 빼앗길 순 없다.원경릉이 경천에게 준 약은 주로 그의 면역력을 조절하는 약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주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에게 진정제를 조금 줘서 잘 자게 해주었다.택란은 그가 깨어났을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다시 잠들면 오라버니와 놀았다.원경릉은 요즘 요부인에게 가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아이들이 돌아온 후, 왕비들이 차례차례 궁에 들어왔다. 원용의와 미색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어린 형제자매들이 감정을 나누도록 했다.만아는 황후가 호명과 주 아가씨의 혼인을 성사하겠다고 들었을 때 매우 기뻐했다.만아와 호명은 인연이 깊다. 만약 호명이 없었다면, 만아는 그때 초왕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혼사를 올리고 아이까지 있으니, 호명도 혼사를 올려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다. 이제는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를 말이다.그래서 그녀는 궁에 들어와 원경릉에게 물은 후, 남강에 편지를 보냈다. 그러고는 아홉째에게 연락을 보내, 귀한 선물을 준비해 약도성으로 보내라고 했다.그녀는 호명을 자기
그들은 먼저 들어가서 인사를 한 후, 안풍 왕비 부부와 함께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왕비가 말했다."그들은 예전의 벗과 가족들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기분이 많이 우울해진 상황이다.""그럼 어찌합니까?"우문호는 안타깝께 느껴졌다. 그들이 계속 우울한 상태로 있게 할 수는 없었다."방금 백조부와 그들을 데리고 장 대인을 만나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장 대인? 장 어르신이요?"우문호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경조부의 부윤이었고, 은퇴한 지 오래되었다. 몇 년 전 넘어져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상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원 할머니도 그를 치료하러 갔었고, 몸조리할 처방을 내렸지만, 연세가 높은 어르신에게 있어, 넘어지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나가게 하는 건 면하는 것이 좋으니, 장 대인을 데려오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안풍 친왕이 말했다."그럼, 그렇게 합시다."왕비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돌아서서 지시를 내렸다.우문호는 안풍 친왕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장 대인이 휘종제 어르신과도 친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그 당시 왕위 계승 싸움에서 장 대인이 많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장 대인이 많은 삶의 이치를 말해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들의 마음 정도는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적성루의 장수들은 바로 나서서 큰 대군을 이끌고 장 대인 집으로 향했다.그렇게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된 노인이 태사 의자에 앉아, 적성루의 노인들의 어깨에 받들려 왔다.휘종제 어르신은 그를 보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후, 이내 문턱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장 대인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가 앉은 모습은 여전히 익숙했다.그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안풍 친왕을 바라보자, 안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만 태자 어른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손자 녀석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어르신이 돌아오고 나서 벗들도 만나도 아들도 봤으니 더는 아쉬움이 없을 거야.”안풍 왕비는 앞으로 다가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애들한테 전달해줘. 너희들이 태자 어르신을 모시고 와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절대 여기 모셔왔다고 해서 돌아가신 게 아니야.”솔직히 원경릉이 오면서 이 문제를 걱정하고 하고 있었다.아이들은 머리가 똑똑하지만 아직 어리고 생각이 짧아서 죄책감을 느낄까 봐 걱정되었다.그때 남평왕이 눈시울을 붉힌 채로 다가와 원경릉에게 진심을 전했다.“엊저녁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여러 번이나 당부했었어. 녀석들이 고향으로 데리고 와줘서 너무 감다하다면서, 죽기 전에 북당을 한 번 더 본 것만으로도 생을 잘 마감할 수 있다고 하셨어.”원경릉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비록 태자 어른에게 각별한 정은 없지만 고향을 그리는 순수한 마음만으로도 깊은 공감이 갔었다.이제부터 장례식을 치르기 시작했다.워낙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미처 관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무상황이 자신의 수관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눈물을 뚝뚝 흘리던 원경릉이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마침 눈이 마주친 무상황이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 수관은 몇 해전에 준비했어. 그런데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괜히 관만 먼지 쌓이게 됐어.”“태상황의 수관은 제왕 것과 같게 만들었습니다.”소요공이 한마디 끼어들었다.“만약 그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태자가 북당의 제왕 자리에 앉았어.”태상황이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때 일은 원경릉도 알고 있었다.태자 어른의 일가는 유친왕에게 참살당하고 온 가문에 우문극과 태자 어른만 살아남았었다.그 당시 심한 부상을 입고 두 다리까지 다쳐서 결국은 현대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그 바람에 제왕의 자리와는 인연이 없게 되
이튿날, 약속대로 안풍 친왕은 변장한 휘종제를 모시고 매화장으로 향했다.전 명원제는 백부가 오신다는 연통을 받고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그분이 오시면 분명 좋은 일이 없으니, 얼른 아랫것들에게 값비싼 물건들을 치우고 고기 음식들만 준비하라 일렀다.그를 만난 휘종제는 당연히 기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아들에게 약속한 이상 손자에게 신분을 드러낼 수 없으니 기쁜 심정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안풍 친왕은 휘종제가 자신의 벗이라 소개했지만 전 명원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오로지 안풍 친왕이 매화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도 찾아서 가져갈까 봐 노심초사했다.보물을 발굴한 후부터 전 명원제는 항상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무서웠다.솔직히 은퇴할 때도 자신에게 많은 노후 자금을 남기지 않았다.물론 조정에서 보조금이 내려와 충분히 부양할 수 있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에게 보태 주었다.게다가 최근 2년 동안 북당의 생활이 차차 풍요로워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들였다.휘종제가 몰래 안풍 친왕에게 말했다.“내 손자의 얼굴은 아비를 닮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아비 얼굴은 조금 쩨쩨하게 생겼거든.”그러자 안풍 친왕이 눈을 희번득거렸다.“여섯째는 쩨쩨하지 않아요. 행실이 조금 그럴 뿐이지 다 아버지한테서 배운 거잖아요.”휘종제는 여섯째가 두 손을 소매에 넣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그 모습이 자신과 너무 똑같아서 차마 원망하지 못했다.‘아무리 못나도 내 아들인 걸 어쩌겠어.’이제 열째도 꽤 ‘건장’하게 자랐다.안풍 친왕이 평가하는 건장함이란 솔직히 그의 둘째 형처럼 너무 뚱뚱하다는 소리였다.다행히 열째가 무술을 익혀서 ‘날쌘 뚱보’가 되었다.열째는 경단이 온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그들과 하산하겠다고 말했다.2년 전에 우문호가 그에게 왕으로 책봉하려고 했는데 명원제가 반대했었다.그러면서 열째가 몇 년을 더 단련하고 조정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후에 책봉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었다.오늘 보니 그때 왕으로 책봉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투자 쪽은 서유가 담당하고 있어. 그 계집이 현대에 가서 투자에 대해 배웠는데 아주 성공적이야. 우리한테 투자 회자도 있는 거 알고 있지?”“네. 알고 있어요.”“전망이 좋은 회사에 투자했는데 몇 집은 벌써 상장했어. 시가도 20조를 넘었거든.”휘종제는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여기에 살면서 황제 자리만 올랐지만 현대에서는 부자가 되었다니, 안풍 친왕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정말요? 돈이 그렇게 많아요?”이렇게 빈부차이가 심하다니 갑자기 부자지간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그럼 대략 계산해도 아버지 몸값이 몇 조는 되겠어요.”휘종제가 손을 휘저었다.“그 정도로 가난하지 않아.”그 한마디에 대화가 끊어져버렸다.한참 뒤, 안풍 친왕이 씩씩거리면서 말했다.“난 아버지가 골동품만 갖고 노는 줄 알았잖아요.”“그건 취미로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서유가 투자했다고 말했잖아.”“물어볼 때마다 작은 돈을 벌었다고 했거든요.”휘종제가 피식 웃었다.“작은 돈이 맞아. 20조, 30조 있는 게 무슨 부자야? 넌 정말… 에휴. 궁상맞게 살더니 바깥세상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그 말에 화가 난 안풍 친왕은 홱 돌아서 먼저 가버렸다“돌아가면 너한테 좀 줄게. 얼마나 필요해?”휘종제는 아들이 화난 것 같아 재빨리 쫓아가며 달랬다.“싫어요!”솔직히 안풍 친왕은 현대의 화폐에 관심이 없었다.어차피 이곳으로 옮길 수도 없지 않은가.정말 현대로 돌아가서 정착한다면 그도 부자나 다름없었지만 현실은 이곳에서 가난뱅이라는 것이었다.“네가 번 돈은 자식들에게 썼으니 공헌을 한 거나 다름없어. 녀석들이 나중에 열심히 일하고 돈이 생기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휘종제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하산 후, 안풍 친왕은 이 일로 왕비에게 궁에 들어가 원경릉과 상의하라고 일렀다.어차피 콜라와 칠성이 경성에 있으니, 원경릉이 동의한다면 최대한 빨리 현대로 가서 변호사에게 수속을 맡길 생각이었
원경릉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빙그레 웃었다.”칠성이 우리 가문 이야기를 찍겠다고 했어요?”“그래. 자기한테 위대한 어머니와 책임감이 있는 아버지가 있고 형제자매들도 우애가 깊어서 그동안 겪었던 일들 모두 영화로 찍고 싶댔어.”안풍 왕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칠성이 정말 찍게 된다면 북당이 일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전부 영화에 담고 싶다고 했었다.원경릉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가문의 이야기를 상상했었다.특히 칠성이 감독한 작품이라면 생각만 해도 신기할 것 같았다.“어때? 기쁘지?”왕비가 미소를 머금고 그녀에게 물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기뻐요. 당연히 기쁘죠. 항상 두 녀석이 걱정되었어요. 특히 어릴 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거든요. 버스를 운전하고 싶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 밀크티를 팔지 않으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 지구본을 팔고 싶다, 하도 많아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어요.”지금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다던 녀석은 비행기를 운전하고 싶어 하고, 지구본을 팔겠다던 녀석은 지구 밖으로 날아가고 싶어 했다.“너만 동의하면 애들하고 돌아가서 얼른 진행해. 아직 미성년자지만 업무 같은 건 맡기고 주식, 옵션 같은 건 네 명의로 돌리고 전문가한테 맡겨.”로양이 그쪽에 원경릉의 신분을 만들어 주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원경릉이 왕비를 쳐다보며 말했다.“실은 자주 가시는 왕비께서 받으셔야죠.”그런데 왕비가 큰 소리를 쳤다.“미안한데 그깟 돈은 별로 욕심나지 않아.”원경릉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렇게 큰 소리를 쳐도 위화감이 있는 사람도 있다니, 솔직히 이곳에서 부유하지는 못했다.하지만 이것은 다 옛날 일이고 지금은 북당이 부유해져서 그들의 삶도 많이 좋아졌다.한참 웃던 원경릉이 이내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럼 돌아가서 그이와 상의하고 아이들과 얘기해 볼게요. 전에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처럼 충동적일까 봐 걱정이 돼요.”“그래. 물어보고 가능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