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이런 말을 듣고 하마터면 뛰어오를 뻔했다."출정을 하시려는 것이옵니까?"태상황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콧방귀를 뀌었다."어찌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느냐? 우리가 전쟁에서 싸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맞다네. 예전에 황궁 별채에서도 우리는 똑같이 갑옷을 입고 적에게 대항하지 않았는가?"소요공이 묻자 원경릉이 다급히 말했다."그게 어떻게 똑같습니까? 그때는 안풍 친왕 부부도 있었사옵니다.""그들이 없어도 우리는 너무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은 매우 중요하니 그들도 아마 올 것이야!”태상황이 말했다."하지만 조정에 무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찌 태상황께서 지휘를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건 절대 안 돼옵니다. 전쟁터가 얼마나 험악한데, 태상황께서는 지금 몇 걸음 걸으셔도 숨을 헐떡이고 심장도 좋지 않아 갈 수 없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태상황은 몸이 이렇게 나쁘고 몇 년 전에 거의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비록 운이 좋아 구해냈지만 요 몇 년 동안 강해져 봤자였다. 항상 때때로 병이 나고 심장병과 천식까지, 이 모두 작은 병이 아니다. 전쟁터에 나가 정말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누가 그를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상대는 그녀의 동의를 구할 생각도 없이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네!"원경릉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때 별채에서 한바탕 싸우고 나서 싸우는 것에 빠져버린 건가? 전쟁에도 빠져들 수 있나?"태자비."소요공은 자리를 바꾸어 태사의자에 앉았고 마치 대장군과도 같은 위엄을 풍겼다."내가 묻겠네. 두 군사가 대적했지만 강약에 큰 차이가 있다네. 강자가 이기는가 아니면 약자가 이기는가?"원경릉은 그의 지혜로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그것은 만약 병력의 강약 차이가 크다면 강자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을 것이옵니다.""좋네. 태자비는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네. 그럼 강약
"이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일러요. 아바마마께서 전쟁에 동의하지도 않으시고 조중에도 지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그러자 태상황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그의 동의가 필요하느냐?""태상황께서는 정사에 간섭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원경릉은 간섭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될수록 간섭하지 않는 그의 원칙을 알고 있었고 특히 이런 큰일에는 더욱 그러했다.태상황은 그녀를 보며 유유히 뒤로 기대었다."지난날 간섭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 과인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다."원경릉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잠시 넋을 잃었다."다섯째는 아직 이 일을 모르는 것이지요?""돌아가서 다섯째에게 알려주면 된다. 사실 그가 아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섯째는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야. 다섯째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를 따라 전쟁터에 나간다면 우리를 보호하느라 언제 전쟁에 전념할 수 있겠느냐?"원경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럼 아마 다섯째가 동의를 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태상황이 또 웃기 시작했다."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우리를 막을 수 있느냐?"원경릉이 말했다."할바마마, 전장은 너무 위험하니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사옵니다."소요공은 빈랑을 물고 무심히 말했다."우리는 본디 무장 출신이네. 다만 후에 한 사람은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황제가 되었고 두 사람은 생각이 바뀌어 큰 관리가 되어 이 나라를 잘 관리하려 노력했다네. 허나 무장의 가장 좋은 귀착점은 바로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네. 나는 정말 죽어야 한다면 오히려 전쟁터에서 죽어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귀착점이라고 생각한다네."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마음을 쓸어내렸고, 그녀는 곧 그에게 설득될 것 같았다. 그러나 태상황의 건강을 떠올리고 그녀는 단념하지 않고 수보를 바라보았다."이 일을 희상궁께서는 아십니까? 희상궁께서 아시면 슬퍼하지 않을까요?"희상궁이 밖에서 걸어 들어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는 동의한다네!"원경릉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동의하신다니요?
원경릉이 돌아가자 마침 그 자리에는 이리 나리도 있었다. 그녀는 태상황과 수보, 그리고 소요공의 결정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우문호가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어떻게든 어르신들을 전장에 내보내서는 안된다네. 우리 북당에 장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와 셋째 형님 모두 지휘를 할 수 있다네. 넷째 형님은 병사를 이끌지 않게 해도 전장에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네. 그리고 남강에서 이미 좋은 소식이 전해져왔으니 아홉째도 돌아올 수 있네. 지금 조중의 장군은 비록 예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이 지휘를 나서야 할 정도는 아니라네."이리 나리가 모처럼 쓴웃음을 지었다."북막에서는 어떻게든 생각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쪽에서 현상금으로 태자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궁중에서 들볶을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겠지요. 만약 어르신들이 출정하여 지휘를 하신다면 군중의 사기는 반드시 크게 북돋아질 것이고 북막사람들이 들어도 심장이 떨려올 것입니다. 태상황의 이 수법은 정말 북막이 넋을 잃게 한 방 날렸을 겁니다."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지금 편들어 줄 때 입니까?"이리 나리가 말했다."저는 단지 일만 논할 뿐이옵니다. 요 몇 년 동안 태상황께서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병들고 나이가 많으며 몸이 성치 않다는 겁니다. 그 누가 생각을 해도 태상황께서는 전장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북막에서는 그를 이 빠진 노인네라 여겼는데 어찌 언젠가 그가 갑옷을 입고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습니까? 만약 안풍 친왕 부부도 전쟁터에 나간다면 더 대단하지요."그러자 우문호가 반박했다. "누가 뭐라 해도 할바마마를 전쟁터에 내보낼 수 없사옵니다.""체면에 얽매이지 마시오.""이게 어떻게 체면과 관련이 있사옵니까? 그는 저의 할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를 모험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 나리는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맞닥뜨리게 할 것이옵니까?"우문호가 단도직입적으로 세게 묻자 이리 나리가 자애롭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당연히
명원제는 그때 어서방에서 정무(政務)를 보고 있었고, 밖에는 많은 대신들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명을 듣고 명원제는 곧바로 다녀갔다.대전에 들어서자 우문호가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찻상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고 검 세 자루를 보니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대전에 들어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아바마마, 짐에게 무슨 일로 오라고 하신 것이옵니까?"그는 말을 하며 우문호를 싸늘하게 힐긋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우문호가 궁에 들어와 태상황을 설득하여 조중의 일에 간섭하고 그가 내세우는 관점을 지지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우문호는 아주 억울하게 그를 바라보았고 태상황은 그를 앉으라고 명한 뒤 말했다."너희 부자 두 사람은 여기에 앉아 우리 세 사람의 무공이 퇴보하였는지 한 번 보거라."그러자 명원제가 멈칫했다. 어서방 쪽은 아주 바쁜 상황인데 감히 그를 불러서 무공을 겨루는 것을 보라니!하지만 그는 하기 싫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저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짐이 한 번 보겠사옵니다."세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고, 각기 검 한 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갔다.바람이 불어오자 세 사람의 옷소매는 휘날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등은 아주 꼿꼿했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우문호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검을 들기도 힘들어한다고 느꼈을때 그는 바로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눈은 휘둥그레졌다. 태상황이 그 무거운 검을 들어 올렸고 곧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주수보를 향해 찔렀기 때문이다. 주수보는 몸을 날렵하게 피했고 몇 번의 깔끔한 회전으로 검을 피했다. 그리고 소요공은 칼을 들고 허공으로 뛰어 올라 태상황을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태상황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한 번 구르고 난 뒤 재빨리 뛰어 올라 다시 검을 들고 소요공을 향해 찔렀다.소요공은 뒤로 공중회전을 하며 2장 넘게 멀리 뛰여 올랐지만 수보가 허공에서 날아왔다.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검은 이미 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고, 소요공이 허허 웃으며
명원제는 단번에 넋을 잃었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아올랐다. 그는 손수건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은 그가 자리에 오른 후 처음으로 태상황의 매서운 안색을 마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랐고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도 아바마마가 틀림없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먼저 무릎을 꿇고 아바마마 대신 죄를 빌었다."할바마마께서는 이만 노여움을 푸십시오!"그러자 태상황은 담담하게 말했다."과인은 화를 내지 않았고 네 아비도 불쾌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아비에게 맞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네가 물어보거라 그렇지 않느냐? 아들이 아무리 커도 아비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뺨을 몇 대 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가 태자든 황제든 무슨 상관이더냐!"명원제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태상황이 우문호를 대신해 나서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그렇지 않느냐?"태상황은 그를 보며 직접 물었고 명원제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소자 죄를 잘 알겠사옵니다!""네가 태자일 때 과인이 언제 이유 없이 너를 때린 적 있더냐?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과인은 그저 너를 꾸짖었을 뿐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어바마마께서는 그러시지 않았사옵니다!"명원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그것이 왜 인지 아느냐?"명원제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소자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옵니다."태상황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네가 걸핏하면 손을 대는 것을 보니 어디 그를 북당의 황태자라 여기는 것이느냐? 신하들이 어찌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겠느냐?"명원제가 겸연쩍게 말했다."소자 이제 잘못을 알았사옵니다.""예전에 하던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이렇게 철이 들고 유능한 아들이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거라."명원제는 수보와 소요공을 힐긋 보았다. 그들은 눈치를
"정세가 어떠한지 다시 신하들과 분석을 해 보거라. 과인이 비록 몇 년 동안 조정의 일을 상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네. 그러니 나라의 땅은 한 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북막은 지난번 크게 패한 후 지금 다시 공격을 하려는 마음이 굴뚝같다. 우리 북당의 풍요로운 토지는 그들이 백 년도 넘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니 그들을 크게 좌절시키지 않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명원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여전히 자신의 뜻을 견지하며 말했다."소자는 이미 계획이 있사옵니다. 사람을 보내 담판을 하고 싶사옵니다."그러자 태상황이 싸늘하게 말했다."담판이라니? 무슨 조건을 내걸고 얘기를 할 셈이느냐? 땅을 떼어 줄 것이냐? 매해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냐!""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옵니다.""북막인에게 조금의 이득도 없는데 그들이 왜 우리와 평화로이 담판을 하겠느냐? 설마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병사를 물러가게 하라 설득할 것이냐? 아니면 입으로만 우리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 말하려는 셈이냐?"명원제가 답했다."북막인들도 정말 싸우려 한다면 결국 두 나라의 백성들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하옵니다. 북막의 초황제가 진심으로 백성들을 연민하기를, 혹은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정말 터무니없구나. 짐도 이 이치를 북막인들은 백 년이 되도록 깨우치지 못했다. 헌데 네가 사람을 보내서 말을 한다고 그자들이 알아차리고 이해를 하며 깨우칠 것 같으냐? 생각은 참으로 잘 한다만,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내든 결국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북막은 야심가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네. 한쪽의 패자를 설득하여 침점을 멈추게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북당에는 그런 유능한 자가 없다!"명원제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사실 사람을 보내 평화롭게 담판을 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나라에
이번 전쟁은 아주 관건적이나 그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구사는 그에게 태자비가 지금 임신을 한 상황이니 경중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 대군이 모두 출발하였으니 중요한 경중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문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시종 3대 거두가 걱정되었기에 원경릉은 이날 궁으로 들어가 3대 거두의 신체를 검사하였다.출정이 임박해서인지 다소 쇠약하던 태상황의 심장도 지금은 아주 침착하고 힘 있게 뛰고 있었다. 그는 기침도 하지 않고 마치 온몸이 새롭게 변한 것만 같았다. 그는 원경릉에게 지난날에는 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성치 않은 몸도 쓸모가 있어지니 당연히 좋아지기 마련이였다. 의지력은 정말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예순이 넘은 노인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직 젊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세 사람 중 소요공의 신체가 가장 좋았고 거의 아무런 병도 없이 안색이 좋고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수보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조금 뒤떨어졌다. 게다가 그는 명원제가 등극할 때부터 수보가 되어 몇 년 동안 정력을 다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일찍 몸이 상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해 동안 물러나 조용히 요양하니 천천히 몸조리가 되었다.원경릉은 그들에게 모두 약을 조금 처방해 주었다. 해열, 소독, 상처를 처리하는 것과 고뿔 약, 심장과 기관지 약에 천식에 쓰이는 뿌리는 약도 조제하였다.하지만 태상황은 아주 싫어했다."남들이 전쟁터에 가면 병기를 가지고 가는데 어째서 우리는 전쟁터에 약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느냐? 이것이 얼마나 불길한 것이냐! 가지고 가지 않을 테야, 짐은 가지고 가지 않을 테다!"그러자 원경릉은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반드시 가지고 가셔야 하옵니다. 이건 상의할 여지가 없사옵니다!"태상황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감히 이렇게 사납게 군단 말이냐?""가지고 가지 않으시면 소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원경
태상황은 손을 뻗어 만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착하구나. 네가 크면 태조부는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예!"만두는 태상황을 안고 말했다."태조부께서는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하옵니다."경단과 찰떡도 그에게 안겼다."태조부, 나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빨리 돌아오십시오.""그래, 알겠다!"태상황의 눈가에는 많은 감정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떡들 앞에서 그는 항상 태상황의 위엄을 지키기 어려웠다.출정 전날 밤, 황실 자손들은 궁에 모여 수라를 들었다.사실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상황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는데도 직접 출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밤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만 마시며 반찬도 거의 먹지 않았다. 손왕도 마찬가지였고 직접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는 대체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몰랐다. 다만 북당과 우문가의 위급한 고비 앞에서 그는 그저 바깥사람처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안일하게 지내는 것만 생각해왔기에 나라를 위해 근심을 덜어내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회왕은 할 일이 있으니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아 통쾌하게 몇 잔을 마셨다. 희고 깨끗한 얼굴에는 바로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고 눈가에는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이었던 상황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회상하며 탄식했다.출전 당일, 3대 거두와 주국공은 갑옷을 걸치고 말 등에 앉아 저 멀리 오르락내리락하는 북당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군대의 병사들은 위풍당당했고 진이 정연하며 햇빛 아래에서 금빛 찬란했다.앞에서 먼지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마치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안풍 친왕 부부가 흑영위, 섬전위, 귀영위를 이끌고 채찍질을 하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우두머리는 금 호랑이였고 금 호랑이는 달려와 하늘 높이 고개를 쳐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우레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그들의 뒤에서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