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는 그때 어서방에서 정무(政務)를 보고 있었고, 밖에는 많은 대신들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명을 듣고 명원제는 곧바로 다녀갔다.대전에 들어서자 우문호가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찻상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고 검 세 자루를 보니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대전에 들어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아바마마, 짐에게 무슨 일로 오라고 하신 것이옵니까?"그는 말을 하며 우문호를 싸늘하게 힐긋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우문호가 궁에 들어와 태상황을 설득하여 조중의 일에 간섭하고 그가 내세우는 관점을 지지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우문호는 아주 억울하게 그를 바라보았고 태상황은 그를 앉으라고 명한 뒤 말했다."너희 부자 두 사람은 여기에 앉아 우리 세 사람의 무공이 퇴보하였는지 한 번 보거라."그러자 명원제가 멈칫했다. 어서방 쪽은 아주 바쁜 상황인데 감히 그를 불러서 무공을 겨루는 것을 보라니!하지만 그는 하기 싫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저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짐이 한 번 보겠사옵니다."세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고, 각기 검 한 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갔다.바람이 불어오자 세 사람의 옷소매는 휘날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등은 아주 꼿꼿했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우문호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검을 들기도 힘들어한다고 느꼈을때 그는 바로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눈은 휘둥그레졌다. 태상황이 그 무거운 검을 들어 올렸고 곧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주수보를 향해 찔렀기 때문이다. 주수보는 몸을 날렵하게 피했고 몇 번의 깔끔한 회전으로 검을 피했다. 그리고 소요공은 칼을 들고 허공으로 뛰어 올라 태상황을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태상황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한 번 구르고 난 뒤 재빨리 뛰어 올라 다시 검을 들고 소요공을 향해 찔렀다.소요공은 뒤로 공중회전을 하며 2장 넘게 멀리 뛰여 올랐지만 수보가 허공에서 날아왔다.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검은 이미 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고, 소요공이 허허 웃으며
명원제는 단번에 넋을 잃었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아올랐다. 그는 손수건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은 그가 자리에 오른 후 처음으로 태상황의 매서운 안색을 마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랐고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도 아바마마가 틀림없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먼저 무릎을 꿇고 아바마마 대신 죄를 빌었다."할바마마께서는 이만 노여움을 푸십시오!"그러자 태상황은 담담하게 말했다."과인은 화를 내지 않았고 네 아비도 불쾌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아비에게 맞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네가 물어보거라 그렇지 않느냐? 아들이 아무리 커도 아비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뺨을 몇 대 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가 태자든 황제든 무슨 상관이더냐!"명원제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태상황이 우문호를 대신해 나서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그렇지 않느냐?"태상황은 그를 보며 직접 물었고 명원제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소자 죄를 잘 알겠사옵니다!""네가 태자일 때 과인이 언제 이유 없이 너를 때린 적 있더냐?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과인은 그저 너를 꾸짖었을 뿐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어바마마께서는 그러시지 않았사옵니다!"명원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그것이 왜 인지 아느냐?"명원제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소자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옵니다."태상황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네가 걸핏하면 손을 대는 것을 보니 어디 그를 북당의 황태자라 여기는 것이느냐? 신하들이 어찌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겠느냐?"명원제가 겸연쩍게 말했다."소자 이제 잘못을 알았사옵니다.""예전에 하던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이렇게 철이 들고 유능한 아들이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거라."명원제는 수보와 소요공을 힐긋 보았다. 그들은 눈치를
"정세가 어떠한지 다시 신하들과 분석을 해 보거라. 과인이 비록 몇 년 동안 조정의 일을 상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네. 그러니 나라의 땅은 한 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북막은 지난번 크게 패한 후 지금 다시 공격을 하려는 마음이 굴뚝같다. 우리 북당의 풍요로운 토지는 그들이 백 년도 넘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니 그들을 크게 좌절시키지 않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명원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여전히 자신의 뜻을 견지하며 말했다."소자는 이미 계획이 있사옵니다. 사람을 보내 담판을 하고 싶사옵니다."그러자 태상황이 싸늘하게 말했다."담판이라니? 무슨 조건을 내걸고 얘기를 할 셈이느냐? 땅을 떼어 줄 것이냐? 매해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냐!""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옵니다.""북막인에게 조금의 이득도 없는데 그들이 왜 우리와 평화로이 담판을 하겠느냐? 설마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병사를 물러가게 하라 설득할 것이냐? 아니면 입으로만 우리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 말하려는 셈이냐?"명원제가 답했다."북막인들도 정말 싸우려 한다면 결국 두 나라의 백성들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하옵니다. 북막의 초황제가 진심으로 백성들을 연민하기를, 혹은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정말 터무니없구나. 짐도 이 이치를 북막인들은 백 년이 되도록 깨우치지 못했다. 헌데 네가 사람을 보내서 말을 한다고 그자들이 알아차리고 이해를 하며 깨우칠 것 같으냐? 생각은 참으로 잘 한다만,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내든 결국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북막은 야심가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네. 한쪽의 패자를 설득하여 침점을 멈추게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북당에는 그런 유능한 자가 없다!"명원제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사실 사람을 보내 평화롭게 담판을 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나라에
이번 전쟁은 아주 관건적이나 그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구사는 그에게 태자비가 지금 임신을 한 상황이니 경중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 대군이 모두 출발하였으니 중요한 경중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문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시종 3대 거두가 걱정되었기에 원경릉은 이날 궁으로 들어가 3대 거두의 신체를 검사하였다.출정이 임박해서인지 다소 쇠약하던 태상황의 심장도 지금은 아주 침착하고 힘 있게 뛰고 있었다. 그는 기침도 하지 않고 마치 온몸이 새롭게 변한 것만 같았다. 그는 원경릉에게 지난날에는 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성치 않은 몸도 쓸모가 있어지니 당연히 좋아지기 마련이였다. 의지력은 정말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예순이 넘은 노인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직 젊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세 사람 중 소요공의 신체가 가장 좋았고 거의 아무런 병도 없이 안색이 좋고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수보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조금 뒤떨어졌다. 게다가 그는 명원제가 등극할 때부터 수보가 되어 몇 년 동안 정력을 다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일찍 몸이 상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해 동안 물러나 조용히 요양하니 천천히 몸조리가 되었다.원경릉은 그들에게 모두 약을 조금 처방해 주었다. 해열, 소독, 상처를 처리하는 것과 고뿔 약, 심장과 기관지 약에 천식에 쓰이는 뿌리는 약도 조제하였다.하지만 태상황은 아주 싫어했다."남들이 전쟁터에 가면 병기를 가지고 가는데 어째서 우리는 전쟁터에 약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느냐? 이것이 얼마나 불길한 것이냐! 가지고 가지 않을 테야, 짐은 가지고 가지 않을 테다!"그러자 원경릉은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반드시 가지고 가셔야 하옵니다. 이건 상의할 여지가 없사옵니다!"태상황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감히 이렇게 사납게 군단 말이냐?""가지고 가지 않으시면 소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원경
태상황은 손을 뻗어 만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착하구나. 네가 크면 태조부는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예!"만두는 태상황을 안고 말했다."태조부께서는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하옵니다."경단과 찰떡도 그에게 안겼다."태조부, 나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빨리 돌아오십시오.""그래, 알겠다!"태상황의 눈가에는 많은 감정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떡들 앞에서 그는 항상 태상황의 위엄을 지키기 어려웠다.출정 전날 밤, 황실 자손들은 궁에 모여 수라를 들었다.사실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상황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는데도 직접 출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밤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만 마시며 반찬도 거의 먹지 않았다. 손왕도 마찬가지였고 직접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는 대체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몰랐다. 다만 북당과 우문가의 위급한 고비 앞에서 그는 그저 바깥사람처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안일하게 지내는 것만 생각해왔기에 나라를 위해 근심을 덜어내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회왕은 할 일이 있으니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아 통쾌하게 몇 잔을 마셨다. 희고 깨끗한 얼굴에는 바로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고 눈가에는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이었던 상황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회상하며 탄식했다.출전 당일, 3대 거두와 주국공은 갑옷을 걸치고 말 등에 앉아 저 멀리 오르락내리락하는 북당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군대의 병사들은 위풍당당했고 진이 정연하며 햇빛 아래에서 금빛 찬란했다.앞에서 먼지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마치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안풍 친왕 부부가 흑영위, 섬전위, 귀영위를 이끌고 채찍질을 하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우두머리는 금 호랑이였고 금 호랑이는 달려와 하늘 높이 고개를 쳐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우레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그들의 뒤에서
대군이 출발하자 기세는 산과 강을 삼킬 것만 같았고, 길에서는 줄곧 깃발이 휘날리며 온 하늘에 먼지가 날아올랐다. 관도는 한차례의 땅과 산이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을 겪은 후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우문호과 명원제는 여전히 성루에 서서 조중의 신하들을 데리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우문호의 눈 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더욱 가득했다,그는 정말 괴로웠다. 그가 겪는 괴로움은 마치 마음속에 불을 지펴 그의 심장을 계속 굽는 것처럼 초조하고 고통스럽고 불안하며 죄책감이 들었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그의 눈가를 마치 해가 비친 붉은 호수처럼 빨갛게 변하게 만들었다.명원제도 무거운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그의 신분은 특히나 난처했다. 만약 사기를 끌어올리려면 그는 제왕으로서 직접 출정해도 마찬가지로 군사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건곤전에서 3대 거두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충동적으로 직접 출정하겠다고 말을 내뱉을 뻔했다. 그러나 이성은 시종 충동을 이겼고, 그는 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사실 말을 해도 조중에서 찬성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처음 등극했을 때에는 야망이 넘쳤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무서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 자신의 깊은 마음속의 비겁함을 직시하니 비로소 태상황이 황위에 있을 때보다 자신이 황제를 했을 때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우외환을 막론하고 항상 누군가가 그를 위해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재위하는 동안 직면한 가장 큰 위기와 그를 가장 걱정하게 하는 것은 바로 황태자의 자리를 둘러싼 아들들 사이의 쟁탈이었다.이 쟁탈전에서 그는 아들 하나를 잃었고, 셋째와 넷째는 경성을 떠나갔다. 이로 인해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후 태상황의 한마디가 그의 우유부단으로 인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시종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비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성 아래의 백성들을 보아야
구사는 금군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었고, 늑대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 잠복하여 자객이 나타나는 것을 막았다.원경릉은 성위로 올라가 우문호의 곁에 서서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돌아가자네.""아니, 여기 조금 더 있고 싶소."우문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위험하오."원경릉이 주의를 주었고 우문호는 사방을 둘러보다 말했다."금군이 포위하고 있고 늑대파 사람들도 있으니 자객은 이때를 골라 손을 쓰지 않을 것이라네."원경릉은 동의한다는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함께 있어주겠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고, 코끝이 저도 몰래 시큰해졌다."원 선생, 나는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롭다네."그러자 원경릉은 그를 위로했다."내가 잘 안다네. 이번에 정말 갈 수 없는 상황이지 않느냐. 헌데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네. 당신과 이리 나리가 서둘러 무기를 연구 개발하고 현상령이 철회된다면 당신은 지원군과 무기를 가지고 전장으로 달려가 그들과 합류할 수 있다네."이리 나리의 분석에 따르면,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북막은 더 이상 백만 냥의 황금을 써서 태자의 목숨을 앗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이 황금을 들여 북당의 혼란을 조성해 그 기회를 틈타 치고 들어와 빠르게 북당을 차지하려는 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장이 나섰으니 이 전쟁이 신속하게 끝나기는 어려울 운명이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결국 그들은 현상령을 취소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우문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울먹이는 호흡소리가 원경릉의 귓가에 울렸다. 원경릉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눈물을 흐리지 않으려 힘껏 참았다.몇 년 동안 그녀는 일찍이 태상황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고 그를 사랑하고 챙겨주며 존경했다. 지금 그가 늙은 나이에 출정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음은 유난히 괴로웠고 우문호 못지않았다.그들은 성위에서 반시진이 되도록 서 있다 손을 잡고 떠났다. 길을 따라 금군이 계속 곁을 지켰다. 우문호는 황태자가 된 이후 이렇게
탕양이 다가와 물었다."태자 전하, 책자 안에는 대체 무엇이옵니까?"우문호가 감격스러워하며 말했다."병기를 만드는 방법이다."그러자 탕양이 크게 기뻐했다."정말 다행이옵니다!"우문호가 다급히 말했다."어서 말을 준비하거라. 나는 이리댁에 다녀올 것이다!"당시의 화약병기는 안풍 친왕이 만든 것이다. 지금 그가 직접 준 책자가 있으니 책자대로 따라 만들면 반드시 곧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우문호는 투지를 회복하여 이리댁에서 며칠을 머무르며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사이 자객이 이리댁에 침입하려 시도를 하긴 했으나 이리댁에는 땅을 쓰는 사람조차 무공이 뛰어났기에 이리댁에 침입하여 태자를 죽이는 것이 아주 쉽게 격퇴되었다. 그러나 이리 나리는 지금 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자객일 뿐이였고 진정한 고수들은 시기를 보고 난 뒤에야 손을 쓴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니다. 우문호와 이리 나리의 사람들이 기진맥진할 때에야 진정한 위험이 찾아올 것이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일심전력으로 무기 연구에 몰두하며 정사마저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명원제는 그가 아직도 태상황이 출정한 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며칠간 괴로워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구사도 명원제에게 경중에 태자를 죽이려 하는 많은 자객들이 왔다고 알려주었고, 명원제는 구사에게 사람을 더 보내 태자를 보호하게 했다.전쟁이 눈앞에 닥치자 명원제는 아무렇게 빈비를 몇 명 뽑아 후궁을 늘렸지만 총애 없이 그저 일을 하나 완성한 것으로 간주했다.조정의 일부 관리들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진북후의 세력이 다시 강대해질 가봐 걱정했는데 명원제가 빈비를 뽑은 것을 보고 어쨌든 후궁에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으니 전하께서 호비만 총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호비에 대한 비난을 점차 가라앉혔다.태상황이 직접 출정하자 조중의 많은 관리들은 깨달음을 얻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며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라는 정신 기풍이 조당에 널리 퍼졌다.이리 나리는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