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는 그때 어서방에서 정무(政務)를 보고 있었고, 밖에는 많은 대신들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명을 듣고 명원제는 곧바로 다녀갔다.대전에 들어서자 우문호가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찻상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고 검 세 자루를 보니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대전에 들어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아바마마, 짐에게 무슨 일로 오라고 하신 것이옵니까?"그는 말을 하며 우문호를 싸늘하게 힐긋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우문호가 궁에 들어와 태상황을 설득하여 조중의 일에 간섭하고 그가 내세우는 관점을 지지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우문호는 아주 억울하게 그를 바라보았고 태상황은 그를 앉으라고 명한 뒤 말했다."너희 부자 두 사람은 여기에 앉아 우리 세 사람의 무공이 퇴보하였는지 한 번 보거라."그러자 명원제가 멈칫했다. 어서방 쪽은 아주 바쁜 상황인데 감히 그를 불러서 무공을 겨루는 것을 보라니!하지만 그는 하기 싫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저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짐이 한 번 보겠사옵니다."세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고, 각기 검 한 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갔다.바람이 불어오자 세 사람의 옷소매는 휘날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등은 아주 꼿꼿했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우문호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검을 들기도 힘들어한다고 느꼈을때 그는 바로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눈은 휘둥그레졌다. 태상황이 그 무거운 검을 들어 올렸고 곧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주수보를 향해 찔렀기 때문이다. 주수보는 몸을 날렵하게 피했고 몇 번의 깔끔한 회전으로 검을 피했다. 그리고 소요공은 칼을 들고 허공으로 뛰어 올라 태상황을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태상황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한 번 구르고 난 뒤 재빨리 뛰어 올라 다시 검을 들고 소요공을 향해 찔렀다.소요공은 뒤로 공중회전을 하며 2장 넘게 멀리 뛰여 올랐지만 수보가 허공에서 날아왔다.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검은 이미 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고, 소요공이 허허 웃으며
명원제는 단번에 넋을 잃었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아올랐다. 그는 손수건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은 그가 자리에 오른 후 처음으로 태상황의 매서운 안색을 마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랐고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도 아바마마가 틀림없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먼저 무릎을 꿇고 아바마마 대신 죄를 빌었다."할바마마께서는 이만 노여움을 푸십시오!"그러자 태상황은 담담하게 말했다."과인은 화를 내지 않았고 네 아비도 불쾌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아비에게 맞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네가 물어보거라 그렇지 않느냐? 아들이 아무리 커도 아비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뺨을 몇 대 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가 태자든 황제든 무슨 상관이더냐!"명원제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태상황이 우문호를 대신해 나서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그렇지 않느냐?"태상황은 그를 보며 직접 물었고 명원제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소자 죄를 잘 알겠사옵니다!""네가 태자일 때 과인이 언제 이유 없이 너를 때린 적 있더냐?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과인은 그저 너를 꾸짖었을 뿐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어바마마께서는 그러시지 않았사옵니다!"명원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그것이 왜 인지 아느냐?"명원제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소자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옵니다."태상황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네가 걸핏하면 손을 대는 것을 보니 어디 그를 북당의 황태자라 여기는 것이느냐? 신하들이 어찌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겠느냐?"명원제가 겸연쩍게 말했다."소자 이제 잘못을 알았사옵니다.""예전에 하던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이렇게 철이 들고 유능한 아들이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거라."명원제는 수보와 소요공을 힐긋 보았다. 그들은 눈치를
"정세가 어떠한지 다시 신하들과 분석을 해 보거라. 과인이 비록 몇 년 동안 조정의 일을 상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네. 그러니 나라의 땅은 한 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북막은 지난번 크게 패한 후 지금 다시 공격을 하려는 마음이 굴뚝같다. 우리 북당의 풍요로운 토지는 그들이 백 년도 넘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니 그들을 크게 좌절시키지 않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명원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여전히 자신의 뜻을 견지하며 말했다."소자는 이미 계획이 있사옵니다. 사람을 보내 담판을 하고 싶사옵니다."그러자 태상황이 싸늘하게 말했다."담판이라니? 무슨 조건을 내걸고 얘기를 할 셈이느냐? 땅을 떼어 줄 것이냐? 매해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냐!""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옵니다.""북막인에게 조금의 이득도 없는데 그들이 왜 우리와 평화로이 담판을 하겠느냐? 설마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병사를 물러가게 하라 설득할 것이냐? 아니면 입으로만 우리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 말하려는 셈이냐?"명원제가 답했다."북막인들도 정말 싸우려 한다면 결국 두 나라의 백성들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하옵니다. 북막의 초황제가 진심으로 백성들을 연민하기를, 혹은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정말 터무니없구나. 짐도 이 이치를 북막인들은 백 년이 되도록 깨우치지 못했다. 헌데 네가 사람을 보내서 말을 한다고 그자들이 알아차리고 이해를 하며 깨우칠 것 같으냐? 생각은 참으로 잘 한다만,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내든 결국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북막은 야심가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네. 한쪽의 패자를 설득하여 침점을 멈추게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북당에는 그런 유능한 자가 없다!"명원제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사실 사람을 보내 평화롭게 담판을 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나라에
이번 전쟁은 아주 관건적이나 그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구사는 그에게 태자비가 지금 임신을 한 상황이니 경중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 대군이 모두 출발하였으니 중요한 경중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문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시종 3대 거두가 걱정되었기에 원경릉은 이날 궁으로 들어가 3대 거두의 신체를 검사하였다.출정이 임박해서인지 다소 쇠약하던 태상황의 심장도 지금은 아주 침착하고 힘 있게 뛰고 있었다. 그는 기침도 하지 않고 마치 온몸이 새롭게 변한 것만 같았다. 그는 원경릉에게 지난날에는 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성치 않은 몸도 쓸모가 있어지니 당연히 좋아지기 마련이였다. 의지력은 정말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예순이 넘은 노인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직 젊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세 사람 중 소요공의 신체가 가장 좋았고 거의 아무런 병도 없이 안색이 좋고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수보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조금 뒤떨어졌다. 게다가 그는 명원제가 등극할 때부터 수보가 되어 몇 년 동안 정력을 다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일찍 몸이 상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해 동안 물러나 조용히 요양하니 천천히 몸조리가 되었다.원경릉은 그들에게 모두 약을 조금 처방해 주었다. 해열, 소독, 상처를 처리하는 것과 고뿔 약, 심장과 기관지 약에 천식에 쓰이는 뿌리는 약도 조제하였다.하지만 태상황은 아주 싫어했다."남들이 전쟁터에 가면 병기를 가지고 가는데 어째서 우리는 전쟁터에 약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느냐? 이것이 얼마나 불길한 것이냐! 가지고 가지 않을 테야, 짐은 가지고 가지 않을 테다!"그러자 원경릉은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반드시 가지고 가셔야 하옵니다. 이건 상의할 여지가 없사옵니다!"태상황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감히 이렇게 사납게 군단 말이냐?""가지고 가지 않으시면 소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원경
태상황은 손을 뻗어 만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착하구나. 네가 크면 태조부는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예!"만두는 태상황을 안고 말했다."태조부께서는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하옵니다."경단과 찰떡도 그에게 안겼다."태조부, 나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빨리 돌아오십시오.""그래, 알겠다!"태상황의 눈가에는 많은 감정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떡들 앞에서 그는 항상 태상황의 위엄을 지키기 어려웠다.출정 전날 밤, 황실 자손들은 궁에 모여 수라를 들었다.사실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상황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는데도 직접 출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밤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만 마시며 반찬도 거의 먹지 않았다. 손왕도 마찬가지였고 직접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는 대체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몰랐다. 다만 북당과 우문가의 위급한 고비 앞에서 그는 그저 바깥사람처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안일하게 지내는 것만 생각해왔기에 나라를 위해 근심을 덜어내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회왕은 할 일이 있으니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아 통쾌하게 몇 잔을 마셨다. 희고 깨끗한 얼굴에는 바로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고 눈가에는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이었던 상황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회상하며 탄식했다.출전 당일, 3대 거두와 주국공은 갑옷을 걸치고 말 등에 앉아 저 멀리 오르락내리락하는 북당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군대의 병사들은 위풍당당했고 진이 정연하며 햇빛 아래에서 금빛 찬란했다.앞에서 먼지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마치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안풍 친왕 부부가 흑영위, 섬전위, 귀영위를 이끌고 채찍질을 하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우두머리는 금 호랑이였고 금 호랑이는 달려와 하늘 높이 고개를 쳐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우레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그들의 뒤에서
대군이 출발하자 기세는 산과 강을 삼킬 것만 같았고, 길에서는 줄곧 깃발이 휘날리며 온 하늘에 먼지가 날아올랐다. 관도는 한차례의 땅과 산이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을 겪은 후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우문호과 명원제는 여전히 성루에 서서 조중의 신하들을 데리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우문호의 눈 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더욱 가득했다,그는 정말 괴로웠다. 그가 겪는 괴로움은 마치 마음속에 불을 지펴 그의 심장을 계속 굽는 것처럼 초조하고 고통스럽고 불안하며 죄책감이 들었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그의 눈가를 마치 해가 비친 붉은 호수처럼 빨갛게 변하게 만들었다.명원제도 무거운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그의 신분은 특히나 난처했다. 만약 사기를 끌어올리려면 그는 제왕으로서 직접 출정해도 마찬가지로 군사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건곤전에서 3대 거두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충동적으로 직접 출정하겠다고 말을 내뱉을 뻔했다. 그러나 이성은 시종 충동을 이겼고, 그는 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사실 말을 해도 조중에서 찬성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처음 등극했을 때에는 야망이 넘쳤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무서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 자신의 깊은 마음속의 비겁함을 직시하니 비로소 태상황이 황위에 있을 때보다 자신이 황제를 했을 때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우외환을 막론하고 항상 누군가가 그를 위해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재위하는 동안 직면한 가장 큰 위기와 그를 가장 걱정하게 하는 것은 바로 황태자의 자리를 둘러싼 아들들 사이의 쟁탈이었다.이 쟁탈전에서 그는 아들 하나를 잃었고, 셋째와 넷째는 경성을 떠나갔다. 이로 인해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후 태상황의 한마디가 그의 우유부단으로 인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시종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비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성 아래의 백성들을 보아야
구사는 금군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었고, 늑대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 잠복하여 자객이 나타나는 것을 막았다.원경릉은 성위로 올라가 우문호의 곁에 서서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돌아가자네.""아니, 여기 조금 더 있고 싶소."우문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위험하오."원경릉이 주의를 주었고 우문호는 사방을 둘러보다 말했다."금군이 포위하고 있고 늑대파 사람들도 있으니 자객은 이때를 골라 손을 쓰지 않을 것이라네."원경릉은 동의한다는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함께 있어주겠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고, 코끝이 저도 몰래 시큰해졌다."원 선생, 나는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롭다네."그러자 원경릉은 그를 위로했다."내가 잘 안다네. 이번에 정말 갈 수 없는 상황이지 않느냐. 헌데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네. 당신과 이리 나리가 서둘러 무기를 연구 개발하고 현상령이 철회된다면 당신은 지원군과 무기를 가지고 전장으로 달려가 그들과 합류할 수 있다네."이리 나리의 분석에 따르면,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북막은 더 이상 백만 냥의 황금을 써서 태자의 목숨을 앗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이 황금을 들여 북당의 혼란을 조성해 그 기회를 틈타 치고 들어와 빠르게 북당을 차지하려는 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장이 나섰으니 이 전쟁이 신속하게 끝나기는 어려울 운명이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결국 그들은 현상령을 취소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우문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울먹이는 호흡소리가 원경릉의 귓가에 울렸다. 원경릉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눈물을 흐리지 않으려 힘껏 참았다.몇 년 동안 그녀는 일찍이 태상황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고 그를 사랑하고 챙겨주며 존경했다. 지금 그가 늙은 나이에 출정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음은 유난히 괴로웠고 우문호 못지않았다.그들은 성위에서 반시진이 되도록 서 있다 손을 잡고 떠났다. 길을 따라 금군이 계속 곁을 지켰다. 우문호는 황태자가 된 이후 이렇게
탕양이 다가와 물었다."태자 전하, 책자 안에는 대체 무엇이옵니까?"우문호가 감격스러워하며 말했다."병기를 만드는 방법이다."그러자 탕양이 크게 기뻐했다."정말 다행이옵니다!"우문호가 다급히 말했다."어서 말을 준비하거라. 나는 이리댁에 다녀올 것이다!"당시의 화약병기는 안풍 친왕이 만든 것이다. 지금 그가 직접 준 책자가 있으니 책자대로 따라 만들면 반드시 곧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우문호는 투지를 회복하여 이리댁에서 며칠을 머무르며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사이 자객이 이리댁에 침입하려 시도를 하긴 했으나 이리댁에는 땅을 쓰는 사람조차 무공이 뛰어났기에 이리댁에 침입하여 태자를 죽이는 것이 아주 쉽게 격퇴되었다. 그러나 이리 나리는 지금 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자객일 뿐이였고 진정한 고수들은 시기를 보고 난 뒤에야 손을 쓴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니다. 우문호와 이리 나리의 사람들이 기진맥진할 때에야 진정한 위험이 찾아올 것이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일심전력으로 무기 연구에 몰두하며 정사마저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명원제는 그가 아직도 태상황이 출정한 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며칠간 괴로워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구사도 명원제에게 경중에 태자를 죽이려 하는 많은 자객들이 왔다고 알려주었고, 명원제는 구사에게 사람을 더 보내 태자를 보호하게 했다.전쟁이 눈앞에 닥치자 명원제는 아무렇게 빈비를 몇 명 뽑아 후궁을 늘렸지만 총애 없이 그저 일을 하나 완성한 것으로 간주했다.조정의 일부 관리들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진북후의 세력이 다시 강대해질 가봐 걱정했는데 명원제가 빈비를 뽑은 것을 보고 어쨌든 후궁에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으니 전하께서 호비만 총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호비에 대한 비난을 점차 가라앉혔다.태상황이 직접 출정하자 조중의 많은 관리들은 깨달음을 얻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며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라는 정신 기풍이 조당에 널리 퍼졌다.이리 나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