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99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초왕부로 돌아와 목욕하는 원경릉

우문호는 눈을 감아도 어찌 된 일인지 마차가 여전히 요동을 친다. 전에 예친왕이 준 자금단으로 일시적으로 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 자금단 효과가 사라지고 상처가 위중하다 보니 이 정도의 요동으로도 우문호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원경릉은 본래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우문호의 미간이 찡그려 진 채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악 상자를 꺼내 우문호에게 강력한 진통제를 주사했다.

우문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더니, 진통제를 주사한 후 통증이 줄었는지 겨우 눈을 뜨고 원경릉을 봤다.

원경릉은 약 상자를 만지작거리느라 우문호를 보지 않고 있는데 볼에 머리카락 하나가 내려와 눈꼬리를 가렸다.

“아바마마께서 널 처벌하지 않으신 게 정말 사실이냐?” 우문호가 쉰 소리로 물었다.

원경릉이 약 상자를 닫으며, “아바마마께서 추호의 빈틈도 없이 살피시고 내가 이번 일과 무관함을 아셨으니, 당연히 날 처벌하실 리가 없지.”

“누가 한 건데? 희상궁은 또 왜 우리를 따라 출궁하는 거야?”

“현비마마도 어서방에 계셨으니, 몸이 좋아지면, 현비마마께 가서 물어봐.” 원경릉은 다시는 우문호 앞에서 주명취에 대해 말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초왕부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그 숨막히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느니 삼가는 편이 낫다.

현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말에 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생모는 몸이 좋지 않아 늘 궁중의 일엔 상관하지 않으셨는데 왜 이번 일엔 끼어드신 걸까?

원경릉은 눈을 감고 머리를 창에 기댄 채 서늘한 바람이 밖에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도 가을의 소슬함에 물든 것 같다.

우문호는 그녀를 보니, 가을 태양이 그녀의 옆 얼굴에 비치며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감도는 반면 반대쪽은 어둡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요 며칠이 원경릉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일면이었다면, 지금은 차갑게 가라앉은 어둠 쪽이다.

초왕부에 돌아온 원경릉은 마차에서 내려 희상궁을 데리고 봉의각으로 갔다.

녹주와 기상궁이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100화

    희상궁과 기상궁, 열이를 만나다저녁식사는 기상궁이 준비한 것으로, 원경릉은 입맛이 없어 탕만 한 모금 마시고 가져 가라고 했다. 기상궁은 원경릉의 마음이 안 좋다고 느꼈지만 이유를 묻지 못하고 녹주에게 상을 내 가라고 분부했다.기상궁이 나가려던 때, 원경릉이 물었다: “기상궁, 열이는 좋아졌어?”기상궁은 원경릉이 입을 여는 것을 듣고 황급히 돌아와: “왕비마마,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이는 벌써 괜찮아 졌습니다.”“내일 열이 보러 갈게.” “예, 감사합니다!” 기상궁은 원경릉이 마음이 유쾌하지 못한 와중에도 열이에게 신경을 써 준 것에 순간 감동했다.원경릉은 책을 좀 보고 잠을 청하며, 좋은 꿈을 꾸길 바랬다.마침 이때 희상궁이 들어와 안에서 문을 잠근다.원경릉이 그녀를 보며, “무슨 일 있어?”희상궁이 손을 늘어뜨리고 담담하게: “왕비 마마 직접 말씀해 주시지요, 쇤네를 어찌 처벌 하시겠습니까?”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처벌 같은 거 안 할 건데.”희상궁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쇤네 알아들었습니다, 왕비 마마 말씀은 쇤네가 자결하라는 것이군요, 이건 틀림없이 황제 폐하의 뜻이기도 하겠지요.”원경릉은 평상시처럼: “황제 폐하께서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고, 감히 성은을 추측할 수도 없지. 하지만 태상황 폐하께서 나한테 희상궁을 아끼고 잘 대해주라고 하셨어.”희상궁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며 입술만 달싹이며, “태상황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내가 희상궁을 속일 필요 없잖아, 자결을 하면서까지 은원을 없애든지, 잘 살아서 태상황의 성은에 보답할지, 희상궁 자신이 고민해봐. 내가 대신 해줄 순 없어. 돌아가. 나 쉬고 싶어.” 원경릉은 대놓고 나가라고 했다.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나가는 희상궁의 한숨 소리가 원경릉 귀에 아직 들린다.희상궁이 원경릉에게 심어준 느낌은 희상궁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수도 없이 처했고, 말 못할 고민도 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경릉은 희상궁의 행동을 평가할 마음도 없고, 그

  • 명의 왕비   제 101화

    초왕부를 찾은 현비여기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고 원경릉의 능력도 한계가 있음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이때 어떤 하인이 달려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하더니, 원경릉이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왕비가 어째서 하인 숙소에 있을 수 있지?“무슨 일이야?” 기상궁이 물었다.하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경릉에게 예를 갖춘 후: “탕대인께서 상궁께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궁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현비마마께서 초왕부로 오신다고 합니다.”“현미마마님이 오신다고?” 기상궁은 곧 힘을 내서, “알았네, 자네는 탕대인에게 가서 내가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다 이르게.”기상궁은 현비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려와 우문호가 분봉왕으로 초왕부로 나가 살게 되자 현비가 내려준 상궁이다.옛날 주인이 오신다는 말에 기상궁은 자연 흥이 돋지만, 반대로 원경릉의 마음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비는 황궁을 통틀어 원경릉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번 출궁으로 아마 우문호가 상처를 입은 사실이 후궁에 알려지겠지? 사실 현비가 이 일을 알고자만 하면 알 방법은 많지만,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현비가 온다는데 명색이 며느리가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이마의 상처는 희상궁이 분을 두껍게 발라 가렸는데도 약간 흔적이 남았다. 마치 도장처럼 상당히 선명하다.원경릉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절세 미녀는 아니라 주명취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지만, 담백하고 맑은 눈빛과 비굴하지 않지만 굴하지도 않는 정신, 침착함은 원경릉 쪽이 앞선다.희상궁이 원경릉과 구리거울에서 눈이 마주치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원경릉의 눈은 이미 잔잔한 바다와 같다.현비가 왕부에 도착할 때는 이미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무렵이었다.한낮의 태양이 작렬하고, 바람은 시원하지만 원경릉이 초왕부 입구에서 영접할 때 여전히 햇살이 강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현비의 봉황가마가 초왕부 입구에 멈춰 서고,

  • 명의 왕비   제 102화

    후궁을 맞아? 현비와 원경릉의 갈등현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네가 도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심하게 당했단 말이냐?”“소자는 미움을 산 일이 없습니다.” 우문호는 달래듯이: “됐습니다.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소자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에미가 바보인 줄 아느냐……” 현비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니? 아랫사람에게 왕야께 드릴 탕을 만들어오라고 분부할 줄도 모르느냐? 넌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드는구나?”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 뭐 드시고 싶으세요?”현비는 화를 내며: “뭐든 만들어 오라고 시켜야지, 뭐든 안 좋겠어? 다친 사람한테 뭘 먹어야 하는지 까지 물어봐야 하고, 작은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하는구나, 보아하니 이 왕부의 일은 너 혼자 감당이 안되겠다. 사람을 찾아서 너를 대신해 분담을 시켜야지.”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측실 들이는 건으로 온 거지?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 좀 지른다고 겁 먹을 까봐? 아니다 현비를 너무 높게 평가했네, 현비는 소리도 못 지르지.현비는 꼿꼿하게 앉더니 얼굴색을 단정하게 하고, “에미가 이번에 행차를 한 건 네 상처가 어떤지 보는 것 외에 너랑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서 였다만.”우문호는 현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다음에 하시지요, 소자 지금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말씀 나누기 어렵습니다.”“꼭 지금 얘기 해야 해.” 현비는 강경하게 말했다: “에미가 이미 아바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아바마마께서도 반대가 없으셨어. 사람을 시켜 주씨 집안 의견만 물어보면 끝이야. 주씨 집안에서만 동의하면 이 일은 성사되는 거지. 게다가 만약 네 아바마마께서 너 대신 언급만 해주시면 주씨 집안도 동의 안 할 수 없는 일, 넌 그저 안심하고 요양하며 상처가 낫는 데만 치중 하려 무나, 혼사는 알아서 할 테니까.”“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세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목숨이 걸린 이런 순간에 후궁

  • 명의 왕비   제 103화

    우문호에게 측실을 권하는 현비바로 깔깔 웃으며: “이 못난 녀석아, 당초에 네가 왕비와 한사코 혼인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왕비 대신 변명을 다 하는구나. 고작 1년 사이에 무슨 감정이라도 생긴 거니? 절대 잊으면 안된다. 왕비와 정후 두사람이 어떻게 너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게다가 정후 그 사람 정말 못 쓰겠 더구나, 넌 반드시 주씨 집안의 지원을 얻어내야 해, 그래야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생기지.”우문호는 참다 못해 결국, “어마마마,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면 안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쓸 상태가 아닙니다.”현비는 한숨을 쉬며, “에미는 다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냐. 그 자리는 네가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만약 주씨 집안이 가로채지 않았으면 네 어미는 황후가 되었고, 너는 적장자인 황자였어. 쟁취할 필요도 없지 않았느냐?”우문호는 아예 눈을 감고, 싸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문호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태자를 세운다 해도 이 태자의 자리가 또 얼마동안 이나 평온할 수 있을까? 우문호가 처음 전장에 나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북당을 위해 변방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에 진취적으로 비쳤고 모든 사람들은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를 노린다고 믿었다.현비는 우문호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투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니 화를 참지 못하고,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아니? 다시 이렇게 못 쓰게 되면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친왕의 봉호까지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는 네 어미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는 것이냐?”우문호는 돌연 눈을 떴는데 눈빛에 분개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한을 풀어요? 어마마마는 제가 무슨 한을 풀어 주길 바라십니까? 일어서서 태자의 지위를 쟁탈하는 겁니까?”“왜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그래?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비는 일어서서 차갑게 우문호를 보며,

  • 명의 왕비   제 104화

    주명취에 농락당하는 정후기상궁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과자와 떡에 먼지가 묻어 더럽혀 진 것을 보고 일 순간 당황해 있는데, 서일이 나오며: “기상궁 일어나요, 현비마마께서 기상궁한테 화난 게 아니라, 왕야께 화가 나신 거니까.”기상궁은 감히 묻지 못하고 그저 땅에 떨어진 떡과 과자를 주워 들더니 물러갔다.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심복을 불러, “아버지께 가서 말을 좀 전하고 오너라. 측실을 들이는 일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고, 아버지께서 정후를 불러다가 몇 마디 좀 하시라고.” “예!” 심복인 상궁이 명을 받고 갔다.정후는 최근 복장이 터진다. 그날 제왕비가 사람을 시켜 정후에게 제왕부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 이틀이나 연달아 갔지만 제왕비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정후는 사실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왕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족히 반 시진을 기다렸을까, 제왕비의 가마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마음속의 울화를 가라앉히며 웃음을 띠고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며, “제왕비를 뵙습니다!”주명취는 가리개를 걷으며 냉랭하게 정후를 흘깃 보더니, “정후 대감이군요?”“예, 예!” 정후는 막상 제왕비를 보자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주명취는 평소처럼: “정후 대감은 돌아가시지요. 제왕부는 미천한 곳이라 대감님의 위신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저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두 마디 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가세요.”말을 마치고 가리개를 내렸다. 가마는 안으로 들어가고 정후만 그 자리에 푸대접을 받은 채 있다.정후도 어쨌든 후작 집안의 사람인지라 삼일 연속으로 와서 기다렸는데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커다란 굴욕이자 수치로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다.제왕부 문간방 수위의 조롱하는 눈빛을 느끼고 서야 비로소 씩씩거리며 가려고 했다.“정후 대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 명의 왕비   제 105화

    정후부의 속사정, 원경릉 친정에 가기로 하다주명취가 방금 출궁하기 전에 궁중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목여태감을 보내 황제가 경고했다. 고모도 한 바탕 호되게 주명취를 꾸짖었는데, 할아버지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고모도 주명취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경릉은 도대체 무슨 수로 전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거지? 실지로 주명취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일어났다.이 사람은 대비하지 앉을 수 없다, 원경릉을 단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정후부로, 정후부가 아직도 관직이 필요하다면 원경릉의 꼬리를 집어 올릴 수 있다. 원경릉이 초왕부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고, 문호 오빠도 원경릉을 거들떠도 안 보니, 그녀는 친정의 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후의 말을 주명취는 들어줘야 하고, 협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단지 주명취의 마음 저 밑에 어둡게 드리운 의혹은, 원경릉이 의술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예상밖의 일인데다, 그렇게 명철한 생각을 하다니 이전의 단순하고 포악한 행동은 전부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는 계책이었던 걸까? 만약 정후가 단속하지 못하면, 원경릉을 살려 둘 수 없다.정후 쪽 사람이 초왕부에 와서 서신을 전했는데 내용은 노마님의 몸이 좋지 않으시니 원경릉에게 짬을 내서 찾아 뵈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머리속으로 정후부의 상황을 열심히 생각해 냈다.정후부의 노마님 노씨(魯氏)는, 현주(황족의 딸에게 주는 봉호)출신으로 젊었을 땐 예리하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로 노마님이 집안을 맡았던 시절엔 정후부가 순풍에 돛을 달아, 정후가 병부 시랑 자리에 오른 것도 뇌물을 쓴 덕이었다. 하지만 8년전 노마님이 병으로 자리를 보전하시고, 의원이 몇 번이나 노마님이 버티지 못하실 거라고 했지만 과연 노마님은 강인한 분이라 꿋꿋하게 버티며 한 고비 한 고비 이를 악물고 넘겼다. 지금은 노마님이 집안을 관장하지 않으시고,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黄氏)는 주관이 없는 사람이어서, 정후부의 일체 일은 전부 둘째 노마님

  • 명의 왕비   제 106화

    탕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황제와 태상황은 모두 매우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노도 잠시, 왕비를 내쫓고 나니 궁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정후부의 성화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득될 것이 많았다.“주씨 집안의 아가씨 일 말입니다.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탕양이 물었다. 우문호는 이런 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지만 부황과 모비가 계속 몰아세우니 언제까지 피할 수 만은 없는 문제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탕양에게 되물었다.“현재 국면으로는 왕야께 확실히 유리한 일입니다. 비록 주씨 집안에 장녀가 제왕과 혼인을 했지만 주수보(褚首辅)는 제왕쪽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태후의 사정으로 인해서 주수보는 항상 걱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태상황께서 줄곧 왕야를 총애하고 있기에 주수보에서도 선뜻 손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일단 왕야께서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와 혼인을 한다면 주씨 집안에서 어느 정도 왕야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만약 어느날 제왕의 세력이 약해진다면 주수보에서는 왕야께 전념할 것 입니다.” “보아하니 자네도 모비의 말에 동의하는군.” 탕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국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소인은 왕야께서 권력을 쫓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가 후궁도 개의치 않는다면, 왕야께서 주씨 집안과 혼인을 하셨으면 합니다.”“어찌 말의 앞뒤가 안맞는구나.”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게 아니라 현비마마께서는 조정에 세력을 되찾으라는 의미로 혼인을 하라고 하는거지만, 소인은 그저 주씨 가문이 왕야를 보호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본왕이 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왕야. 간혹 어떤 일들은 왕야께서 할 수 없어도, 주씨 가문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번처럼 기왕에게 당했을 때, 주씨 가문이 왕야의 편이라면 그들이 기왕에게 압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도

  • 명의 왕비   제 107화

    옆에는 원주(原主)의 큰형인 원륜문의 아내 최씨가 노란 꽃무늬 비단 치마를 입고 손목에는 청옥 팔찌를 차고 머리에는 진주와 청옥으로 만든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시건방졌는데, 지금 원경릉을 보는 표정에도 불만족스러움과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물씬났다.그녀의 옆에는 원주(原主)의 여동생인 원경병(元卿屏)이 있었다. 올해 열다섯살이 된 그녀는 얄쌍한 얼굴에 동그란 두 눈은 생기가 가득했고 입술은 길게 좌우로 늘어뜨려 있었는데 누가봐도 예쁘다고 느껴지는 외모였다. 그 외에 두 명의 첩의 딸이 있었는데 첩의 소생이라 그런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옷매무새도 화려하지 않았다. 원경릉이 둘째 노마님을 보았는데 그녀는 풍만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에는 나이에 비해 주름도 별로 없었다. 머리도 염색을 한건지 흰 머리 하나 없었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비단으로 둘러쌓인 사람 같았다. 머리는 높게 땋아올렸고 그 위에는 화려한 비녀가 꽂혀있었다. 모르는 누가 보면 이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오해하기 쉽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는데, 그 웃음에는 다소 조롱감이 있었다. 이로써 정후부에서 황실의 총애를 잃은 왕비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듣자하니 조모의 병세가 심해졌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어떠신지요?” 원경릉이 물었다. 둘째 노마님이 바깥을 한번 슬쩍 보았다. 그녀는 원경릉이 황실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조모께서는 그냥저냥 하신다. 이번에는 네 아버지가 너를 이리로 부르신거니까 서재로 가보거라.”원경릉은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자신을 반기지 않고, 접대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서재로 향했다. 원경릉을 만나려면 그냥 자신이 황실로 오면 되지 굳이 조모가 아프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나를 이 곳으로 부른건가? 조모가 아프시다길래 아침 밥도 먹지 않고 왔는데 말이다. 이른 아침에 공복이라 그녀는 손발이 후들거리는 것 같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