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왕부를 찾은 현비여기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고 원경릉의 능력도 한계가 있음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이때 어떤 하인이 달려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하더니, 원경릉이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왕비가 어째서 하인 숙소에 있을 수 있지?“무슨 일이야?” 기상궁이 물었다.하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경릉에게 예를 갖춘 후: “탕대인께서 상궁께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궁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현비마마께서 초왕부로 오신다고 합니다.”“현미마마님이 오신다고?” 기상궁은 곧 힘을 내서, “알았네, 자네는 탕대인에게 가서 내가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다 이르게.”기상궁은 현비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려와 우문호가 분봉왕으로 초왕부로 나가 살게 되자 현비가 내려준 상궁이다.옛날 주인이 오신다는 말에 기상궁은 자연 흥이 돋지만, 반대로 원경릉의 마음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비는 황궁을 통틀어 원경릉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번 출궁으로 아마 우문호가 상처를 입은 사실이 후궁에 알려지겠지? 사실 현비가 이 일을 알고자만 하면 알 방법은 많지만,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현비가 온다는데 명색이 며느리가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이마의 상처는 희상궁이 분을 두껍게 발라 가렸는데도 약간 흔적이 남았다. 마치 도장처럼 상당히 선명하다.원경릉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절세 미녀는 아니라 주명취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지만, 담백하고 맑은 눈빛과 비굴하지 않지만 굴하지도 않는 정신, 침착함은 원경릉 쪽이 앞선다.희상궁이 원경릉과 구리거울에서 눈이 마주치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원경릉의 눈은 이미 잔잔한 바다와 같다.현비가 왕부에 도착할 때는 이미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무렵이었다.한낮의 태양이 작렬하고, 바람은 시원하지만 원경릉이 초왕부 입구에서 영접할 때 여전히 햇살이 강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현비의 봉황가마가 초왕부 입구에 멈춰 서고,
후궁을 맞아? 현비와 원경릉의 갈등현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네가 도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심하게 당했단 말이냐?”“소자는 미움을 산 일이 없습니다.” 우문호는 달래듯이: “됐습니다.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소자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에미가 바보인 줄 아느냐……” 현비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니? 아랫사람에게 왕야께 드릴 탕을 만들어오라고 분부할 줄도 모르느냐? 넌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드는구나?”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 뭐 드시고 싶으세요?”현비는 화를 내며: “뭐든 만들어 오라고 시켜야지, 뭐든 안 좋겠어? 다친 사람한테 뭘 먹어야 하는지 까지 물어봐야 하고, 작은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하는구나, 보아하니 이 왕부의 일은 너 혼자 감당이 안되겠다. 사람을 찾아서 너를 대신해 분담을 시켜야지.”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측실 들이는 건으로 온 거지?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 좀 지른다고 겁 먹을 까봐? 아니다 현비를 너무 높게 평가했네, 현비는 소리도 못 지르지.현비는 꼿꼿하게 앉더니 얼굴색을 단정하게 하고, “에미가 이번에 행차를 한 건 네 상처가 어떤지 보는 것 외에 너랑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서 였다만.”우문호는 현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다음에 하시지요, 소자 지금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말씀 나누기 어렵습니다.”“꼭 지금 얘기 해야 해.” 현비는 강경하게 말했다: “에미가 이미 아바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아바마마께서도 반대가 없으셨어. 사람을 시켜 주씨 집안 의견만 물어보면 끝이야. 주씨 집안에서만 동의하면 이 일은 성사되는 거지. 게다가 만약 네 아바마마께서 너 대신 언급만 해주시면 주씨 집안도 동의 안 할 수 없는 일, 넌 그저 안심하고 요양하며 상처가 낫는 데만 치중 하려 무나, 혼사는 알아서 할 테니까.”“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세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목숨이 걸린 이런 순간에 후궁
우문호에게 측실을 권하는 현비바로 깔깔 웃으며: “이 못난 녀석아, 당초에 네가 왕비와 한사코 혼인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왕비 대신 변명을 다 하는구나. 고작 1년 사이에 무슨 감정이라도 생긴 거니? 절대 잊으면 안된다. 왕비와 정후 두사람이 어떻게 너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게다가 정후 그 사람 정말 못 쓰겠 더구나, 넌 반드시 주씨 집안의 지원을 얻어내야 해, 그래야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생기지.”우문호는 참다 못해 결국, “어마마마,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면 안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쓸 상태가 아닙니다.”현비는 한숨을 쉬며, “에미는 다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냐. 그 자리는 네가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만약 주씨 집안이 가로채지 않았으면 네 어미는 황후가 되었고, 너는 적장자인 황자였어. 쟁취할 필요도 없지 않았느냐?”우문호는 아예 눈을 감고, 싸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문호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태자를 세운다 해도 이 태자의 자리가 또 얼마동안 이나 평온할 수 있을까? 우문호가 처음 전장에 나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북당을 위해 변방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에 진취적으로 비쳤고 모든 사람들은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를 노린다고 믿었다.현비는 우문호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투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니 화를 참지 못하고,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아니? 다시 이렇게 못 쓰게 되면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친왕의 봉호까지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는 네 어미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는 것이냐?”우문호는 돌연 눈을 떴는데 눈빛에 분개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한을 풀어요? 어마마마는 제가 무슨 한을 풀어 주길 바라십니까? 일어서서 태자의 지위를 쟁탈하는 겁니까?”“왜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그래?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비는 일어서서 차갑게 우문호를 보며,
주명취에 농락당하는 정후기상궁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과자와 떡에 먼지가 묻어 더럽혀 진 것을 보고 일 순간 당황해 있는데, 서일이 나오며: “기상궁 일어나요, 현비마마께서 기상궁한테 화난 게 아니라, 왕야께 화가 나신 거니까.”기상궁은 감히 묻지 못하고 그저 땅에 떨어진 떡과 과자를 주워 들더니 물러갔다.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심복을 불러, “아버지께 가서 말을 좀 전하고 오너라. 측실을 들이는 일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고, 아버지께서 정후를 불러다가 몇 마디 좀 하시라고.” “예!” 심복인 상궁이 명을 받고 갔다.정후는 최근 복장이 터진다. 그날 제왕비가 사람을 시켜 정후에게 제왕부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 이틀이나 연달아 갔지만 제왕비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정후는 사실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왕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족히 반 시진을 기다렸을까, 제왕비의 가마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마음속의 울화를 가라앉히며 웃음을 띠고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며, “제왕비를 뵙습니다!”주명취는 가리개를 걷으며 냉랭하게 정후를 흘깃 보더니, “정후 대감이군요?”“예, 예!” 정후는 막상 제왕비를 보자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주명취는 평소처럼: “정후 대감은 돌아가시지요. 제왕부는 미천한 곳이라 대감님의 위신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저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두 마디 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가세요.”말을 마치고 가리개를 내렸다. 가마는 안으로 들어가고 정후만 그 자리에 푸대접을 받은 채 있다.정후도 어쨌든 후작 집안의 사람인지라 삼일 연속으로 와서 기다렸는데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커다란 굴욕이자 수치로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다.제왕부 문간방 수위의 조롱하는 눈빛을 느끼고 서야 비로소 씩씩거리며 가려고 했다.“정후 대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정후부의 속사정, 원경릉 친정에 가기로 하다주명취가 방금 출궁하기 전에 궁중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목여태감을 보내 황제가 경고했다. 고모도 한 바탕 호되게 주명취를 꾸짖었는데, 할아버지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고모도 주명취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경릉은 도대체 무슨 수로 전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거지? 실지로 주명취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일어났다.이 사람은 대비하지 앉을 수 없다, 원경릉을 단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정후부로, 정후부가 아직도 관직이 필요하다면 원경릉의 꼬리를 집어 올릴 수 있다. 원경릉이 초왕부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고, 문호 오빠도 원경릉을 거들떠도 안 보니, 그녀는 친정의 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후의 말을 주명취는 들어줘야 하고, 협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단지 주명취의 마음 저 밑에 어둡게 드리운 의혹은, 원경릉이 의술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예상밖의 일인데다, 그렇게 명철한 생각을 하다니 이전의 단순하고 포악한 행동은 전부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는 계책이었던 걸까? 만약 정후가 단속하지 못하면, 원경릉을 살려 둘 수 없다.정후 쪽 사람이 초왕부에 와서 서신을 전했는데 내용은 노마님의 몸이 좋지 않으시니 원경릉에게 짬을 내서 찾아 뵈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머리속으로 정후부의 상황을 열심히 생각해 냈다.정후부의 노마님 노씨(魯氏)는, 현주(황족의 딸에게 주는 봉호)출신으로 젊었을 땐 예리하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로 노마님이 집안을 맡았던 시절엔 정후부가 순풍에 돛을 달아, 정후가 병부 시랑 자리에 오른 것도 뇌물을 쓴 덕이었다. 하지만 8년전 노마님이 병으로 자리를 보전하시고, 의원이 몇 번이나 노마님이 버티지 못하실 거라고 했지만 과연 노마님은 강인한 분이라 꿋꿋하게 버티며 한 고비 한 고비 이를 악물고 넘겼다. 지금은 노마님이 집안을 관장하지 않으시고,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黄氏)는 주관이 없는 사람이어서, 정후부의 일체 일은 전부 둘째 노마님
탕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황제와 태상황은 모두 매우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노도 잠시, 왕비를 내쫓고 나니 궁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정후부의 성화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득될 것이 많았다.“주씨 집안의 아가씨 일 말입니다.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탕양이 물었다. 우문호는 이런 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지만 부황과 모비가 계속 몰아세우니 언제까지 피할 수 만은 없는 문제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탕양에게 되물었다.“현재 국면으로는 왕야께 확실히 유리한 일입니다. 비록 주씨 집안에 장녀가 제왕과 혼인을 했지만 주수보(褚首辅)는 제왕쪽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태후의 사정으로 인해서 주수보는 항상 걱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태상황께서 줄곧 왕야를 총애하고 있기에 주수보에서도 선뜻 손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일단 왕야께서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와 혼인을 한다면 주씨 집안에서 어느 정도 왕야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만약 어느날 제왕의 세력이 약해진다면 주수보에서는 왕야께 전념할 것 입니다.” “보아하니 자네도 모비의 말에 동의하는군.” 탕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국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소인은 왕야께서 권력을 쫓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가 후궁도 개의치 않는다면, 왕야께서 주씨 집안과 혼인을 하셨으면 합니다.”“어찌 말의 앞뒤가 안맞는구나.”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게 아니라 현비마마께서는 조정에 세력을 되찾으라는 의미로 혼인을 하라고 하는거지만, 소인은 그저 주씨 가문이 왕야를 보호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본왕이 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왕야. 간혹 어떤 일들은 왕야께서 할 수 없어도, 주씨 가문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번처럼 기왕에게 당했을 때, 주씨 가문이 왕야의 편이라면 그들이 기왕에게 압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도
옆에는 원주(原主)의 큰형인 원륜문의 아내 최씨가 노란 꽃무늬 비단 치마를 입고 손목에는 청옥 팔찌를 차고 머리에는 진주와 청옥으로 만든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시건방졌는데, 지금 원경릉을 보는 표정에도 불만족스러움과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물씬났다.그녀의 옆에는 원주(原主)의 여동생인 원경병(元卿屏)이 있었다. 올해 열다섯살이 된 그녀는 얄쌍한 얼굴에 동그란 두 눈은 생기가 가득했고 입술은 길게 좌우로 늘어뜨려 있었는데 누가봐도 예쁘다고 느껴지는 외모였다. 그 외에 두 명의 첩의 딸이 있었는데 첩의 소생이라 그런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옷매무새도 화려하지 않았다. 원경릉이 둘째 노마님을 보았는데 그녀는 풍만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에는 나이에 비해 주름도 별로 없었다. 머리도 염색을 한건지 흰 머리 하나 없었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비단으로 둘러쌓인 사람 같았다. 머리는 높게 땋아올렸고 그 위에는 화려한 비녀가 꽂혀있었다. 모르는 누가 보면 이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오해하기 쉽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는데, 그 웃음에는 다소 조롱감이 있었다. 이로써 정후부에서 황실의 총애를 잃은 왕비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듣자하니 조모의 병세가 심해졌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어떠신지요?” 원경릉이 물었다. 둘째 노마님이 바깥을 한번 슬쩍 보았다. 그녀는 원경릉이 황실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조모께서는 그냥저냥 하신다. 이번에는 네 아버지가 너를 이리로 부르신거니까 서재로 가보거라.”원경릉은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자신을 반기지 않고, 접대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서재로 향했다. 원경릉을 만나려면 그냥 자신이 황실로 오면 되지 굳이 조모가 아프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나를 이 곳으로 부른건가? 조모가 아프시다길래 아침 밥도 먹지 않고 왔는데 말이다. 이른 아침에 공복이라 그녀는 손발이 후들거리는 것 같
아침상이 준비되었다. 원경릉은 아침에 달고 느끼한 음식을 먹지 않기에 계화떡은 먹지 않고 죽만 먹었다. 계화떡을 차려놓고 손도 대지 않은 원경릉은 일어서서 둘째 노마님에게 말했다. “둘째 노마님. 결례를 범했습니다.” 둘째 노마님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빨리 가보게. 부친이 기다리시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서재로 걸어갔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난씨가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허세부리는거 보셨습니까? 왕가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우리 정후부의 도움없이는 죽 한사발 얻어먹지도 못하면서! 듣자하니 왕야께서 욕은 기본이고 때리기까지 하신다던데. 다들 원경릉 이마에 난 상처를 보셨지 않습니까? 분명 초왕에게 맞은겁니다! 시집간지 1년이나 됐는데 아직 합방 소식도 없고, 쯧쯧. 비웃음 당해도 쌉니다!”이 말을 듣고 원륜문의 아내 최씨가 입을 열었다. “합방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태후께서 초왕에게 약을 먹여서 겨우 합방을 했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초왕이 원경릉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다들 그만하게. 바깥사람이야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지만 내부 사람인 우리가 덩달아 소란을 피울 이유가 있느냐?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거라.” 이를 듣고 있던 둘째 노마님이 정의로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약간 통쾌한 표정이었다. 약을 먹고 합방을 하다니, 초왕이 얼마나 그녀를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초왕과 합방을 했다고 초왕이 자기를 달리 보고 있다고 친정으로와서 왕비 행세를 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원경릉은 이런 말을 들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원경릉은 비녀를 꽂았다. 그녀는 규방에 있었던 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던 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즉시 그녀를 따라갔다. 원경병이 원경릉의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쓸모 없는 짓 하지마세요. 왕비가 됐는데도 왕야께 총애를 받지 못하니까 다들 비웃는겁니다.”원경릉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비웃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