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 친왕비는 재검을 받으러 주 재상을 데리고 가고, 무상황과 소요공은 원래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걸 돕거나 가끔 휘종제에게 효를 다하곤 했다.북당 쪽은 박원과 소홍천이 이미 풍도성에 도착했다. 부임하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잔당을 진압한 것이 효과가 있었으나, 일부 잔당은 도망쳐서 경성으로 떠났다.박원은 어쨌든 신임 관리인이라, 안지여의 결사대만큼은 그 땅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그들도 풍도성에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다. 잔당들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그들이 경성으로 가서 황제를 암살하려 들까 걱정된 나머지, 바로 서신을 써 경성으로 전서구를 보냈다.우문호는 전서구를 받은 뒤, 경성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엄중하게 조사하도록 성지를 내리고, 성문에 검문소를 설치해 바깥에서 경성으로 들어오거나, 풍도성에서 온 무공을 하는 사람은 전부 밀착 조사를 받게 했다.이리 나리 말에 따르면 그날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참여한 다수가 무림 사람들이였다. 그들이 당일엔 안지여를 보호하지 않았던 게, 일이 이렇게 심각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나중에 안지여에게 일이 터지자 풍도성도 안풍 친왕에게 제압당해 그들도 한순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 안지여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 강호인의 특징이 의리를 중시하므로 반드시 안지여를 위해 복수할 것이며, 특히 안지여의 결사대 부하 전부를 재판에 회부한 것이 아니라 그게 결국 복병이 될 것이라고 했다.우문호가 이렇게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 선생이 늘 의대를 가느라 출궁하는데다가 곁에 사람들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자객을 만나면 원경릉 무공이 허접해 사고가 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검열을 강화하라는 성지를 내린 뒤, 서일과 구사 두 사람에게 원경릉과 출입을 함께 하며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도록 했다.사실 우문호도 아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예전에 솜방망이 같은 주먹과 발차기가 익숙해져 사람을 몇 명이라도 더 보내 지키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문호는 역시 직접 계란이를 봐야 안심이 돼서, 그들에게 밖에 서 있으라고 하고 원경릉과 살금살금 문을 밀고 들어갔다.방안이 하도 캄캄해서 조심조심 들어가던 우문호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한밤중에 가끔 올 때, 계란이가 밤중에 일어나 밤 수유하기 편하도록, 방에 등을 켜져 있었는데 오늘 밤은 어째서 등이 켜져 있지 않은 거지?우문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얼른 나가서 풍등을 가지고 들어와 막 문을 들어서는데 원경릉이 발아래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원 선생, 당장 발 들어!”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발을 들고 고개를 숙여보니, 발 아래는 영양실조에 걸린 깃털 하나가 있었다.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집어 들으며 물었다. “계란이의 신조 털이네, 어? 신조는?”신조는 원래 방 안 새장에서 살고 있는데, 낮에 계란이가 일어났을 때나 내보내 주지만 지금은 새장이 열려있고 신조는 보이지 않고, 깃털 하나만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우문호의 안색이 돌변해 서둘러 풍등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침실 안에선 유모들이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발소리를 듣고 황송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 황후 마마께서…?!”황제와 황후가 늘 밤에 오곤 하기에 별생각 없이 일어나 예를 취하는데, 황제가 벌써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침대엔 이불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문호는 얼른 방안을 살펴보다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성을 잃고 계란이를 부르며 바로 달려 나갔다.“맙소사!” 유모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할 말을 잃었다. “공주마마? 공주마마는?”원경릉이 새장을 자세히 본뒤 우문호가 계란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말할 겨를도 없이 우문호가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순간 안색이 돌변하며 따라가 보았는데, 계란이는 보이지 않았고 유모들은 울고 있었다.“어떻게 된 겁니까? 누가 들어온 겁니까?!”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하지만 유모들은 모두 얼이 빠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
구사가 잡힌 자들을 끌고 가 엄히 형벌을 가해도 공주의 행방을 불지 않았다.그저 이구동성으로 자객은 총 12명이며, 죽은 세 사람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 잡혀 왔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공주를 데려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다.우문호는 평소 어떤 상황에 처해도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원 선생과 아이는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서둘러 사람들 배치해 궁 안을 수색하게 하고, 구사와 금군과 함께 찾으러 나섰다.성문은 밤이라 닫혀 있었으며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도 성을 나간 사람이 없다고 했고, 의심스러운 사람이 나타난 일도 없었다고 했다.경조부에 신속하게 어명이 하달되어, 공주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한참 잠을 자던 제왕이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사람을 데리고 출두했다.늑대파, 숙왕부 노인, 여러 친왕이 전부 경악해, 대대적으로 경성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다음날 해가 떴으나 여전히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가운데, 의심스러운 사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우문호는 조회에 나가지 않았고, 이렇게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지자, 경성 전체에 공주마마의 실종 소식과 어젯밤 황궁에 자객이 들었던 일이 쫙 퍼지면서, 안지여의 잔당이 한 짓임을 다들 속으로 예상하고 있었다.우문호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우선 궁으로 돌아갔다.우문호는 괴롭고 초조했으나 원 선생이 분명 자신보다 더 괴로울 것이기에, 우선 돌아가서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그녀부터 위로하기로 마음 먹었다.소월전에 돌아오자, 녹주가 원 선생이 계란이 방에 갔다고 했다. 힘든 마음으로 계란이 방으로 가자 원 선생이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앉아서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우문호는 한숨을 내쉬고 다가가 원 선생을 안는데, 면목이 없고 괴로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렀다. “미안해, 계란이를 찾지 못했어…”원경릉이 눈을 뜨고 살짝 우문호를 밀어내며,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물었다.“전부 죽은 거야?”“응, 온 경성을 다 둘러보았는데.. 지금
이틀 동안 연달아 수색을 했으나,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다.하지만 성문 쪽에서 사람을 한 명 색출해 냈는데, 그자는 안지여의 옛 부하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한 내용이, 경성에 들어온 사람은 총 30명이고, 그날 밤 궁으로 들어간 자객이 몇 명인지까지는 모른다고 했다.구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 성을 수색해 그 자가 말한 사람들을 전부 색출해 냈다. 잡아놓은 12명과 같이 30명 전원을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으나, 아무리 형을 가해도 공주는 납치하지 않았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리고 12명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황궁에 들어온 적도 없다고 했다.그러자 우문호는 황궁 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에 누군가 경비의 틈을 남겨놓았을 것으로 의심했었는데,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금군 한 명이 자객에게 은자를 받고 일부러 금군을 유인해 자객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우문호는 황제가 된 이래 처음으로 사형을 명했다. 감히 황궁에 잠입해 황제를 해치려는 자객과 내통하다니, 구족을 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성은이 망극하고도 남을 지경이다.….계란이가 실종된 지 사흘째, 계속 된 감감무소식으로, 우문호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성격이 완전히 거칠어졌다. 계란이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원경릉마저 마음이 초조해졌다.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가운데 안풍 친왕 부부와 삼대거두가 경성에 도착했다.안풍 친왕 부부는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새 한 마리를 들고 마차에 올라 궁으로 들어왔다.궁문에 있던 사람이 안풍 친왕비가 마침 실종된 공주마마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뒤 바로 달려가 황제에게 보고했다.안풍 친왕 부부에 안겨져 있던 아이가 바로 계란이였던 것이다! 우문호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상태로 얼른 계란이를 품에 안았는데, 계란이는 아주 얌전하게 품에 폭 안겨있는 모습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원경릉도 울며 계란이 얼굴을 쓰다듬고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풍 친왕비에게 물
“만두가 의식에 단톡방을 하나 만들어 자기들끼리 초대해서, 의식이 서로 통하게 된 것인데, 너는 초대를 안 했으니까 모르는 거야.”원경릉은 순간 버럭 화가 났다. ‘자기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서 날 초대하지 않았단 말이지?’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어쩐지 계란이가 안전하다는 느낌과 계란이가 즐겁다는 느낌은 감지할 수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알고 보니 시공간이 달라서 그랬던 거군요. 이거 제가 한 번 다녀와야겠는데요? 애들을 아주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어요!”“혼나야지!” 우문호도 화가 치미는 것이, 요 며칠간 온 동네에서 난리를 쳤는데 결국엔 자기 집 애들이 벌인 일이었으니 말이다.안풍 친왕비가 우문호를 흘끔 보고 말을 이었다. “네가 얘들을 혼내서 어쩔 거야? 계란이 본인의 생각이었어. 계란이가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야 꼬마 봉황도 그녀의 생각에 따라 행할 수 있지 않겠어? 아들들은 기껏해야 좀 부추긴 정도에 지나지 않아.”우문호의 매섭던 눈빛이 순간 굳어지며, 자신의 가슴속에 폭하고 숨어있는 계란이를 바라봤다. 포도알 같은 까만 눈동자가 순진무구한 것이, 조금도 못된 짓을 할 아이가 아닌 것 같아 보여 화를 낼 수 없었다. “따져보면 역시 애들이 부추긴 잘못이긴 하지요. 여동생이 어린 걸 모르나?” 우문호가 좀 뜸을 들이다가 새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리고 넌, 내일 내가 기름에 넣고 바로 튀겨버리겠어!”꼬마 새는 앵앵 거리며 울더니, 폴짝폴짝 뛰어와 억울하고 무고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바라보며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우문호가 다시 새를 노려봤다. 계란이를 혼낼 수 없으니 다른 곳에 화풀이를 해야했다.꼬마 신조는 풀이 죽은 상태로 바닥에 엎드렸다.“너희 부부는 내일 무상황 일행을 어떻게 위로할지 생각 좀 해 둬야 할 거야.” 안풍 친왕비가 뾰로통하게 말하자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무슨 일 있었나요?”안풍 친왕비가 씩씩거렸다. “계란이가 그쪽에 가서 하마터면 사람을 죽일 뻔했어. 시공간의 속박이 없어진 탓에 기화의
이날 정무회의를 마치고, 우문호는 냉정언과 홍엽에게 남았다가 어서방에서 잠시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그는 아주 낙담한 모습으로 긴 한숨을 내쉬는데, 홍엽과 냉정언이 서로 눈을 맞추며 ‘이거 또 무슨 꿍꿍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 땐, 예전 모습 그대로 서로를 군신이 아닌 친구처럼 대했다.냉정언이 편하게 물었다.“왜 그래?”우문호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정언아, 엽이야,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나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아.”“어? 잠자리가 마음같이 안돼?” 홍엽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그러자 우문호가 화가 난듯 홍엽에게 붓을 던졌다.“마음같이 안되는 건 너고, 상대도 없는 게 어디서!”홍엽이 킥킥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그럼,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냉정언은 예상이 되는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애들이 다 커서 곁을 떠났는데,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아직 내 딸이 옆에 있잖아?” 우문호가 홍엽에게 눈을 부라렸다.“내 딸이야, 우리 딸 아니거든.”“똑같지, 뭐, 네 꺼가 내 꺼고, 내 꺼가 네 꺼고.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쪼잔하게 나누고 그래.” 홍엽이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이건 원칙의 문제거든!” 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러자 냉정언이 나섰다.“기왕 이렇게 된 거 또 낳으면 되지!”“그건 불가능해.”“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우문호가 두 사람을 쳐다봤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희들 나이도 적지 않잖아. 이젠 본인의 인륜지대사를 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냐?”홍엽과 냉정언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쓸데없는 참견 하지마!”말을 마치고 각자 일어나 예를 취했다.“공무가 바빠서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투덜이는 무시하는 게 정석이지!우문호가 몸을 움츠리고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갔다. 시간이 남았을 땐 딸과 함께 있는 게 역시 최고였다. 반면, 원경릉은 그가 곁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 듯, 오늘 숙왕부에
다행히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무상황은 만두와 아이들이 그리워 원경릉에게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는데, 원경릉이 연말에 돌아와서 시끌벅적하게 함께 새해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무상황은 내심 아쉬웠지만, 지금 숙왕부에 사람이 많아서 가끔 증손자들이 생각나도 이내 왁자지껄한 무리에 이끌려가기에 다행이었다. 원경릉이 궁으로 돌아오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이 나이가 들어, 같이 사는 게 정말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으면 얼마나 고독하셨을지...’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나날이 그들에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우문호는 민심이 향하는 쪽으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느라 바빠졌고, 현대에 한 번 다녀와 인터넷 용어를 잔뜩 배운 것 외에도 국가 관리 정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중 교육, 의료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기에 나라에 전쟁이 없을 때, 백성의 수준을 높이고 교육을 진흥하고 의료를 개혁하기로 했다.의료 개혁 방면에서는 원경릉과 할머니가 주도했다.교육을 추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조정은 아직 의무 교육을 시행할 단계는 아니라, 그저 공부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제창해 더 많은 아이가 공부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우문호가 조례를 발표해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아, 일개 주나 부에서 입학률이 50%를 넘으면 해당 관리 인사고과에 대대적으로 가산점을 줄 예정이다.우문호는 교육부를 설립하고 각지의 교육 상태를 책임지고 전담 감독하며, 교육 모델을 만들도록 했다.학교를 세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조정은 전국에 학교를 세울만큼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 민간의 기부금을 통해 조정과 지방 관아가 연합해서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 목표는 현마다 조정이 개설한 학교를 2곳 이상씩 두는 것이었다.이건 향후 10년 계획으로 전반기가 비교적 힘이 들 예정인데, 어떤 정책이든 마련해 내보내면, 시행이 쉽지 않은데다가 특히 교육 쪽은 더욱 어려웠다.북당은 농업 국가로 최근 몇 년간 경제를 개발하고 무역에서 괜찮은 성
떡국을 먹은 후, 모두 적성루에 모여 새해를 맞기로 했다.적성루가 원래 크지 않은 데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은 대부분 담장 위에 쭈그리고 앉거나, 지붕을 가득 메웠다. 담장 아래에서는 술을 마시고 허풍을 떨며 논쟁을 벌이느라 시끌벅적했다.아이들은 눈 늑대, 호랑이, 개들과 같이 밖에서 뛰어다니느라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행히 밖이 넓어서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었다. 여자들은 본관에 자리를 잡았는데, 적성루는 본관도 크지 않아 여자들이 모이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전부 꽉 찼다.멀리서 폭죽 소리가 들리자, 옆 저택에 있는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온통 기쁨으로 일렁였다.태상황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험난했던 보물찾기 사건을 얘기하는데, 감히 안풍 친왕을 원망할 수는 없었지만 어른,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던 차에 그들 또한 관심을 보여서 한바탕 얘기를 늘어놓게 되었다.처음엔 그냥 가볍게 얘기 하는 분위기였는데 누군가 무공을 겨루자고 제안을 하는 바람에, 마당에 빈 곳을 찾아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먼저 대결을 펼쳤다. 그들의 검법은 전혀 우아하지 않은 것이 도처에 살기가 등등했으나, 오히려 상당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이어서 무상황도 소요공과 함께 몇 초식이나 겨뤘다.한창때 무상황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글로는 주 꼬맹이를 능가하고, 무예로는 소요공을 능가한다’ 결과적으로 글은 낫 놓고 기역 자도 겨우 아는 소요공을 넘었고, 무예와 무공도 글만 완벽하게 아는 주 꼬맹이를 능가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으니, 자기표현에 따르면 문무에서 전부 두 사람을 누른 셈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정신 승리에 불과했다.황제와 태상황을 맡던 시절 그는 무공 수련에 소홀했는데, 최근 1-2년 동안 다시 연습을 시작해 소요공과 몇 초식을 나누더니 분위기에 휩쓸려 아들 태상황과도 몇 초식을 겨루고 싶다고 했다.모두가 뜨거운 눈빛으로 그들을 주목하자 전 명원제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하얗게 질려 버렸다.그가 일어나 땀을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