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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47화

Author: 유애
원경릉이 오늘 출궁하지 않은 대신 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보기 위해 입궐했다.

원경릉은 어젯밤 이리 나리 저택에서 본 그림자를 떠올리자,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알고, 어쩌면 몇 년 후의 안풍 친왕비가 그리운 사람을 보기 위해 돌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안풍 친왕비에게 안으로 들어와 앉으라고 한 뒤 차를 대접하는데 안풍 친왕비가 바로 얘기를 꺼냈다. “우리 내일 현대에 돌아갔다 올 건데, 전할 거나 할 말 있으면 전해 줄까?”

“돌아가시게요?”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 ‘자기 입으로 여기 남겠다고 하지 않았나?’

“일이 좀 있어서 한 번 다녀와야 해. 곧바로 돌아올 거야.”

“아하.” 원경릉이 안심했다. 정말 현대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르신들은 열받아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다섯째에게도 한 번 물어봐, 아이들에게 전할 말 있는지. 네 큰할아버지 말로는 어젯밤 얘기하는데 다섯째는 줄곧 애들 얘기뿐이었데. 굉장히 그리워하는 거 같더라며.”

“알았어요. 있다가 물어볼게요. 언제 가셔서 뭐 하시는 거예요?”

“주 꼬맹이 데리고 가서 검사받으려고, 어젯밤 머리가 아프다고 소리치더라고. 자세히 물어보니 요즘 머리가 자주 아팠다고 해서, 좀 일찍 가서 재검을 받아 보려고 해. 할머니와 상의해 봤더니 돌아가서 검사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가야지.”

“두통이요? 심해요?” 원경릉은 긴장이 됐다.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가서 검사받으려고. 문제를 알면 바로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원경릉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렇죠. 주 재상은 마마께 맡길게요. 고마워요.”

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흘겨봤다. “그런 말 듣는 게 영 익숙해 지지가 않네. 주 꼬맹이는 내가 아기 때부터 키운 아인데…. 됐어. 그만하자. 어쨌든 결석한 시기가 있으니까.”

원경릉은 안풍 친왕비가 뭔가 아쉬워한다는 걸 눈치챘다. 이 아쉬움은 계속 주 재상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지금 같이 편안한 만년을 보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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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풍 친왕비는 재검을 받으러 주 재상을 데리고 가고, 무상황과 소요공은 원래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걸 돕거나 가끔 휘종제에게 효를 다하곤 했다.북당 쪽은 박원과 소홍천이 이미 풍도성에 도착했다. 부임하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잔당을 진압한 것이 효과가 있었으나, 일부 잔당은 도망쳐서 경성으로 떠났다.박원은 어쨌든 신임 관리인이라, 안지여의 결사대만큼은 그 땅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그들도 풍도성에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다. 잔당들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그들이 경성으로 가서 황제를 암살하려 들까 걱정된 나머지, 바로 서신을 써 경성으로 전서구를 보냈다.우문호는 전서구를 받은 뒤, 경성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엄중하게 조사하도록 성지를 내리고, 성문에 검문소를 설치해 바깥에서 경성으로 들어오거나, 풍도성에서 온 무공을 하는 사람은 전부 밀착 조사를 받게 했다.이리 나리 말에 따르면 그날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참여한 다수가 무림 사람들이였다. 그들이 당일엔 안지여를 보호하지 않았던 게, 일이 이렇게 심각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나중에 안지여에게 일이 터지자 풍도성도 안풍 친왕에게 제압당해 그들도 한순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 안지여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 강호인의 특징이 의리를 중시하므로 반드시 안지여를 위해 복수할 것이며, 특히 안지여의 결사대 부하 전부를 재판에 회부한 것이 아니라 그게 결국 복병이 될 것이라고 했다.우문호가 이렇게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 선생이 늘 의대를 가느라 출궁하는데다가 곁에 사람들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자객을 만나면 원경릉 무공이 허접해 사고가 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검열을 강화하라는 성지를 내린 뒤, 서일과 구사 두 사람에게 원경릉과 출입을 함께 하며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도록 했다.사실 우문호도 아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예전에 솜방망이 같은 주먹과 발차기가 익숙해져 사람을 몇 명이라도 더 보내 지키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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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타와 칠성은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우문예가 엄격하게 규칙을 정해, 반드시 열여섯살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그저 가만히 어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다행히 약도성에는 과일주가 있었다. 과일주는 주 아가씨가 특별히 택란을 위해 빚은 것이었다. 과일주는 발효 후 몇 번이나 병을 옮겨 숙성시켰기 때문에 술맛이 거의 없었고, 사실상 과일즙과 다름없었다.안왕은 황후 책봉 보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고는 무슨 일이 생겨도 홀로 책임을 질 수는 없을 것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위왕은 그런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마시거라, 겁쟁이 꼴을 하고선. 다섯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도, 금나라 황제의 수를 탓하지, 네 어리석음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자네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네. 자네가 이 보책을 받았더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니오?"안왕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하지만 위왕은 그저 가차 없이 그를 몰아붙일 뿐이었다."이제야 네가 모두의 미움을 샀다는 걸 알겠냐? 네가 한 짓이 벌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넌 평생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해. 길을 잘못 들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북당을 위해 힘을 보탰으니, 목숨은 건진 것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네 목은 진작 날아갔을 거다. 그러니 이 정도로 만족하거라.""됐소. 애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시게!”안왕이 창피한 듯 화를 냈다."아이들이라고 모를 줄 아느냐? 네 일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네가 아무리 숨긴다 한들 다 드러나 있다."위왕이 비웃으며 말했다.여섯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이야기는 예전에도 들어본 적 있었지만, 삼 숙부가 대체 왜 오래전에 지나간 일을 자꾸 반복하는지 알 수 없었다.위왕은 우문예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잘못된 길에는 한 번이라도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치욕으로 남을 것이고 설령 운 좋게

  • 명의 왕비   제3225화

    칠성이 입을 삐쭉거렸다."그 어린 황제 생김새도 별로입니다! 나이가 큰형이랑 비슷한데도 큰형보다 훨씬 늙어 보입니다."그러자 택란이 깜짝 놀랐다."정말 그를 본 적 있습니까? 아, 오라버니들도 간 것입니까? 어찌 저를 만나러 오지 않은 것입니까? 숨어 있었던 것입니까?"우문예는 칠성을 힐긋 쳐다보았다."어찌 그렇게 말이 많은 것이냐?""다들 갔으면서 저를 찾지도 않았습니까?"택란도 입을 삐쭉 내밀었다.우문예는 여동생의 입이 삐죽 나온 걸 보자,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다정하게 말했다."그 혼례가 너무 수상해서 확인하러 갔다. 막상 가고 나니, 네가 황후로 책봉된 걸 알게 됐지. 그래서 그 대담한 어린 황제를 직접 만나려 했던 것이지, 일부러 너를 피한 게 아니다. 그저 약도성에서 너를 기다리려 했다."택란은 사실 진짜로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오라버니들이 금나라까지 와놓고도 자신과 함께 놀지 않은 게 아쉬웠다. 금나라에서 함께 놀았다면 얼마나 신났을까?다들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고, 택란이 다시 웃음을 되찾자 비로소 안심했다.찰떡이 우문예를 보며 물었다."큰형,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금나라에 있을 때 왜 어린 황제를 혼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까? 그 녀석이 얼마나 얄미웠는데요. 우리의 허락도 없이 계란을 부인으로 맞겠다고 하다니."우문예는 옷자락을 날리며 택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찰떡이와 나머지 동생들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답했다."신분 때문이다.""그가 황제라서 우리가 손을 못 댄다는 뜻입니까?"찰떡은 불만을 터뜨렸다. 그 녀석이 높은 신분이라 겁먹고 못 건드리는 셈이다. 형이 언제부터 이렇게 소심했단 말인가?우문예는 손을 뻗어 찰떡의 귀를 잡아당겼다."우리의 신분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신분 때문이기도 해. 나라 간의 우호 관계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찌 홧김에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말이냐? 우리가 금나라에서 황제를 붙잡고 두들겨 팼다면, 두 나라는 소란이 일 것이다."찰떡은 귀를 감싸

  • 명의 왕비   제3224화

    우문예는 택란의 책을 정리하며 준수한 얼굴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계란이는 남들의 사랑을 받을 필요도, 동정받을 필요도 없다. 계란이는 다섯 명의 오라버니가 있으니.”"예. 우리 계란이가 어찌 타인의 안쓰러움과 사모를 받아야 하겠습니까?"환타도 곧이어 맞장구쳤고, 다섯 형제는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다음 날, 택란 일행이 돌아왔다. 마침 위왕과 안왕도 약도성에서 이틀 정도 머물 계획이었다.조카들이 다 모였으니,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택란은 오라버니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마자, 자기가 황후로 책봉된 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역시나 묻기도 전부터, 그들은 그녀를 방으로 끌고 갔다.택란은 그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어마어마한 적을 만난 듯한 모습입니다.""넌 무슨 생각인 것이냐? 그 어린 황제한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는 것이냐?"환타가 먼저 묻자, 택란이 피식 웃었다. "오라버니, 어린 황제라니요. 오라버니보다 나이가 많습니다.""편을 듣는 것이냐? 듣기 거북하구나."우문예가 인상을 찌푸렸다."그냥 어린 황제라고 부르거라."택란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예.""자, 네 사형이 한 질문을 대답하거라. 그... 어린 황제가 황후로 책봉했다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우문예는 사실 여동생이 안쓰러웠지만, 장남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러자 택란이 턱을 괴고 앉으며 천천히 말했다."딱히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그럼, 화가 나진 않았느냐?"칠성이 묻자, 택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화날 이유가 있습니까?"다섯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화가 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뜻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계란아, 어린 황제한테 어떤 감정이 있느냐? 혹시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느낌이라도 있었냐?"경단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평소 소설을 많이 읽기에 남녀 간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름 이해하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리면, 가

  • 명의 왕비   제3223화

    만두와 우문예는 여전히 변경 도성에 머물고 있었고, 형제들과 함께 금나라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이번 금나라 황제의 대혼이 다소 수상쩍다고 여겨, 그들은 몰래 금나라에 잠입하여 상황을 살펴보았다.금나라 황제가 계란이를 황후로 책봉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몹시 화가 났었다. 그러나 통천각 지붕에서 황제와 금나라 금군 수장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야, 그 속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계란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은 먼저 약도성에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일은 아버지가 알면 안 되는 문제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모르는 상황이니, 장남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적어도 계란의 생각이 어떠한지부터는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우문예는 여전히 화가 났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 애지중지 키운 보물이 누군가에게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여동생이 언젠가는 시집을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동생이 적어도 서른 살이 되어서야 결혼하길 바랐다. 계란이가 충분히 즐기고, 세상을 경험한 후,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시집을 가야 앞으로 혼인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제 겨우 열한 살인데, 벌써 이런 걱정을 해야 한다니 말이다. "형, 어마마마가 찾으세요?"경단이 물었다."맞아. 아바마마께서 내가 군영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돌아가면 불려 가서 이야기해야할 것이다."그러자 우문예가 말했다."그럼,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십시오. 우리가 남아서 계란이를 기다릴 테니.""괜찮다. 돌아가서 아바마마께 직접 설명하마.""설마 아바마마까지 속이려는 것입니까?"찰떡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앞으로 아버지께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속이는 것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었다.우문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아바마마를 속이는 건 안 된다. 하지만 이 일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그럼, 아바마마께 뭐라고 말할 셈입니까?"우

  • 명의 왕비   제3222화

    모두 아주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우문호 부부는 마차를 타고 달빛 아래 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금나라 어린 황제의 혼사가 떠올라 우문화가 입을 열었다.“위왕, 안왕에게 금나라 황제의 혼례에 참석하라고 시켰는데, 아직도 보고할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군.”“아마 별다른 일이 없어서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했다.“택란은 금나라와 함께 광물 채굴을 진행하기를 원했으니, 혼례 참석뿐만 아니라 그 일을 도와달라고도 시켰네. 그러니 보고해야지 않겠소.”그러자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 곁에 기대며 말했다. “택란? 자네가 딸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 왠지 익숙하지 않소.”“아이가 이제 컸으니, 늘 애칭으로 부르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오.”우문호는 딸의 체면을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찌 아직도 만두나 경단이라 부르는 것이오? 아들이 체면을 잃는 것이 걱정되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모르는 소리. 남자는 체면을 잃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뻔뻔하게 굴 필요가 있소.”우문호는 머리를 숙여 원경릉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야 좋은 부인을 얻을 수 있소.”“정말 갈수록 뻔뻔해지오.”원경릉은 그의 목덜미를 감싸 안으며, 그의 이마 위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다섯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또한 다섯째가 참 잘생겼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원 선생, 아이들이 보고 싶소. 내일은 만두한테 군영에서 돌아와 함께 밥이라도 먹자고 해야겠소.”우문호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좋소.”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그들의 곁에는 이제 만두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도성에서 각자 바쁘게 지내고 있다.비록 그들이 안전하다는 걸 알지만, 늘 마음 한쪽에서는 걱정이 되었다.궁으로 돌아온 후, 우문호는 서일에게 내일 군영에 가서 만두를 데려오라고 하였다.남영은 경성

  • 명의 왕비   제3221화

    원경릉은 그 편지를 들고 바로 실험실로 향했는데, 실험실에는 전에 가져온 현미경이 놓여 있었다.편지를 현미경 아래에 두고 자세히 보긴 했지만, 양여혜가 말한 얼음 벌레는 발견되지 않았다.양여혜는 얼음 벌레가 강한 세균이라, 정상적인 환경에 처해있으면 많이 번식할 것이라 했었다. 하지만 왜 보이지 않는가?발견되지 않으니, 그녀는 조사할 길이 없었다. 얼음 벌레를 찾아내려면 아마도 금나라 황실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만약 이 얼음 벌레의 번식력이 약하다면, 편지에 조금 묻었을 뿐인데 수천 리를 오가며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섯째의 상처로 파고들었다는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불운해야 감염이 된다는 말인가?정말 금나라로 가야 하는 것인가?다음 날, 우문호 부부는 무상황을 뵙고 선물을 나눠주러 숙왕부로 향했다.이번에도 그는 무상황을 위해 담배를 가져갔지만, 무상황은 한 번 맡아보기만 한 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는 이미 끊었다.”우문호와 원경릉은 서로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무상황은 전부터 끊겠다고 말을 해왔지만 늘 몰래 한 모금씩 피우곤 했었다. 이번에 진짜 끊을 수 있을까?“나이가 들었으니, 너희 얼굴을 좀 더 보고 싶구나. 택란이 시집가는 모습도 보고, 운이 좋다면 택란이가 아이를 낳는 것도 봤으면 좋겠구나.”무상황이 감탄하며 말하자, 원경릉이 그의 곁에 앉았다. “어찌 갑자기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꺼내십니까? 분명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무상황이 답했다. “추 할머니 사건 이후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십여 년 전부터 죽은 목숨 아니더냐?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 년을 훔쳐 온 것처럼 마음이 늘 불안했다. 계속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언제 이 늙은이가 떠날지 모를 일 아니더냐?”그는 원경릉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눈빛을 띠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식사에도 신경 쓰고 너희의 감시를 받으며, 최대한 오래 너희 곁에 남을 것이다.”“좋습니다!”원경릉은 겉으로는 웃어 보였지만

  • 명의 왕비   제3220화

    “괜찮소. 나도 왜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지 모르겠소.”우문호가 코를 문지르고는 머쩍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우리 딸이 나를 그리워해서 그런 것 같소. 원 선생, 이제는 경성으로 부를 때도 되지 않았소?”“간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나. 오가는 길에서 지칠까 걱정하지 않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우문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루라도 보지 않으니, 격세지감이네. 딸을 낳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네. 늘 걱정되는 마음 뿐이지 않나? 아들들은 훨씬 안심되네.”“아들들이 듣지 않도록 하시오. 편애한다고 하지 않겠소?”원경릉이 말을 덧붙였다.“난 가식적인 사람이라, 아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소!”원경릉은 그의 가식적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이만 어서방으로 가시오. 냉수보가 조급할 테니, 어서 가보시오. 나는 돌아가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원경릉이 말했다.“알겠소. 내일 함께 숙왕부에 가서 가져온 선물을 나눠야겠네.”그쪽 물건을 유난히 좋아하는 삼대 거두가 얼마나 즐거워할지 떠올리며 우문호는 눈웃음을 지었다.“아, 금나라 황제가 보내온 편지를 주시오.”“어서방에 있네. 곧 사람을 시켜 가져다 오라 하겠소. 왜 갑자기 찾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저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네.”한편, 어서방 안에서 냉정언과 이리 나리는 한참 동안 우문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빤히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 우문호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그는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경성을 떠나 병을 치료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어찌 그렇게 쳐다보는 것입니까?”“이상합니다. 대체 얼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훨씬 젊어 보이십니다. 대체 어디서 병을 치료했고 무슨 약을 먹은 것입니까?”냉정언이 물었다.“단약, 단약을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불만스럽게 대답했다.“무슨 단약입니까? 공주에게 드리려 하니, 하나만 주십시오.”이리 나리가 답했다.여자들은 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 명의 왕비   제3219화

    위왕이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는 돕지 않습니다. 택란이 폐하를 사모한다고 말하거나,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마십시오!”“그럼 난 기다리겠소!”경천이 답했다.위왕은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익숙하고도 강한 결단력을 보며 말했다.“정말 고집이 세시군요. 대체 어찌 말해야 할까요? 세상엔 수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택란보다 더 뛰어난 여인도 있을 텐데, 어찌 택란만 붙잡고 이러십니까?”경천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확고하게 느껴졌다.“나는 오로지 하나만 바라볼 뿐이네. 내 생애 다른 여인을 얻을 생각도, 후궁을 들일 생각도 없소. 택란만 있으면, 나는 그 누구도 마음속에 두지 않네.”위왕과 안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경천의 말에 다소 감동하였다.그러나 약속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스무살, 서른이 되어서도 오늘 한 말을 기억하길 바랍니다.”위왕이 말했다.그러자 경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택란이 돌아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내가 한 일은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전부 없던 일로 생각해라.”“예!”택란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이제 좋은 벗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나를 벗으로 생각해 줄 것이냐?”경천이 미소를 지으며 택란을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저희는 벗이니깐요.”위왕은 그제야 경천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택란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협력하는 상황이니,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이 궁을 떠나려 하자, 경천은 말리지 않고 두둑한 선물을 준비해 그들을 궁 밖으로 모시도록 했다.그들이 떠난 후, 경천은 통천각에 올라가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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