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몇 년 전 일이지만, 원경릉에겐 그 사건이 지금도 여전히 흑역사로 남아 있었다.거의 술자리를 마칠 무렵, 원경릉과 친왕비들은 마당을 걸으며 술을 깨고 있었다.훼천은 여자들이 일어날 때 작은 소리로 요부인에게 속삭였다. “날이 어두우니 길 조심해요.”요부인 얼굴이 살짝 빨개지고 미색이 아주 살풍경하게 말했다. “다 들려.”훼천이 미색에게 눈을 흘기고 남자들과 술잔을 계속 주고받았다.여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회랑에 올라 마당에 초목이 우거져 그늘진 곳을 보는데, 누군가 서 있는 것 같아 원경릉이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안풍 친왕비 같은 것이, 꽃나무 뒤에 서서 본관에 있는 사람을 보는 모습에 놀라서 물었다. “안풍 친왕비 마마?”“누구야?” 요 부인이 물으며 쳐다봤다. “사람이 대체 어딨는데? 안풍 친왕비 마마는 본관에 계시지 않아?”원경릉이 다시 보니 보이지 않아 헤헤거리며 웃었다. “제가 취했나봐요, 눈이 다 삼삼한 게!”“원래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오늘 밤엔 그렇게나 많이 마시더라니요.” 원용의가 말했다.사식이가 킥킥 웃어댔다. “사실 원 언니가 오늘 술주정 부릴 줄 알았는데, 마셔도 아무 일도 없을 줄이야.”그러자 원경릉이 사식이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요 계집애가 내가 주정부리는 걸 보고 싶었단 말이지.”다들 깔깔 웃느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꽃밭으로 멀리멀리 흩어져갔다.돌아봐도 꽃나무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은 아무에게도 안 들리게 한숨을 내쉬었다.세월은 앞으로 가고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지만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문득 귓가에 안풍 친왕이 전에 했던 말이 울려왔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소중히 대해 줘’.원경릉은 다시 한숨을 쉬며 사식이와 요 부인의 팔짱을 꼈다. ‘그래, 아직 같이 있으니 소중히 여기자.’“훼천이랑 혼례를 치르니까 어때요?” 원경릉이 요 부인에게 물었다.손 왕비는 요 부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웃으며 답했다. “뭘 물어? 요 부인이 요즘
동서들이 마당을 거닐다가 정자에 앉아 사람을 시켜 공주를 불러오게 했다.공주는 시어머니를 챙기고 있었는데, 오늘 밤 시어머니가 기뻐서 술이 좀 과한 나머지 시어머니가 주무시도록 시중을 들고 그제야 합류했다.“하하 호호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공주가 와서 보니 모두 얼굴이 발그레하게 웃고 있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입에 음담패설이 붙어서, 우리가 아무리 화제를 돌리려 해도 꿈쩍도 안 하세요.”“네?” 공주가 놀랐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노부인께서 오셔서 시어머니 진맥을 해주시고 몸조리를 해주셨는데, 그때 약 다리는 아이를 시켜 손왕부에 가서 약을 바꾸라고 분부하셨어요, 둘째 오빠가 한동안 먹어서 맛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전 둘째 오빠가 어디 아픈 줄 알고 노부인께 여쭤봤더니 둘째 오빠가 몸조리가 필요하다며, 어쩌면 아이를 또 낳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다들 의아한 눈초리로 손 왕비를 바라보자, 금세 난처해하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미색이 손 왕비에게 한마디 했다. “어쩐지 계속 그 얘기만 하더라니. 알고 보니 진짜 밤마다 새색시는 따로 있었군요.”“둘째 형님, 하나 더 낳고 싶으신가요?” 원용의가 물었다.손 왕비가 얼굴을 붉히며 사람들에게 눈을 흘겼다. “뭐야? 내가 낳기는 뭘 또 낳아? 나이가 지금 몇인데. 더 낳으면 사람들한테 웃음거리밖에 더 돼? 늘그막에 자식을 본다고. 그런 건 다들 요 부인한테 물어봐야지, 요 부인은 훼천이랑 혼인한 지 얼마 안 됐고, 훼천은 아이가 없으니까. 하나 낳을 생각 없어?”요 부인이 단정지으며 말했다. “훼천은 예전에 희열이랑 희성이를 자기 딸로 대하겠다고 했고, 자기가 낳은 자식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어요.”“요 부인도 안 늙었어요. 더 낳을 수 있죠!” 원용의가 말했다.“인연이 닿으면요, 하지만 우리는 안 낳기로 했어요!” 요 부인이 말했다.다들 웃으며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은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곤두섰다. “저
원경릉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했다. “어?”‘진짜 귀도 밝네.’그러자 우문호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야말로 둘째 형을 놀려먹어야지. 형은 약을 먹는다고. 말로는 정력을 보강하는 거라는데, 둘째 형수가 주야장천 그 얘기라는 걸 나도 모르진 않아.”원경릉이 웃었다. “둘째 형님의 음담패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니까.”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안으며 귀밑머리를 만져주었다. “최근 애들 일로 고민하느라 그런 거지, 일부러 당신을 차갑게 대한 거 아니야.”“자기가 그랬다는 게 아니…” 그 순간 뜨거운 입술이 원경릉의 말을 막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자신의 몸쪽으로확 끌어당기더니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하여간 독특하다니까. 그래도 지금 달리고 있는 마차 안이란 사실은 잊지 않아서, 우문호는 부드럽게 원경릉의 반쯤 벗겨진 옷과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더니, 엷게 화장기가 남은 볼에 다시 키스하고, 정열의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며 그윽한 눈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곧 도착해.”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있었는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궁으로 돌아가자 계란이는 이미 잠들었고, 부부는 살금살금 들어가 계란이를 보는데, 자는 아이는 정말 천사구나.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며 나가는 게 아쉬워, 다가가 얼른 계란이 얼굴에 뽀뽀하고 싶었지만 깰까 봐 꾹 참았다.결국 둘은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갔다.술을 마셔서 땀이 났으므로 곧바로 옷을 가지고 목욕하러 갔다.궁중에는 온천이 있었는데, 소월전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라 부부는 기라와 녹주에게 따라올 필요 없다고 하고, 둘이 손잡고 갔다.온천에서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가운데, 옷을 벗고 둘은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들어가, 우문호는 원경릉의 가는 허리를 안고 자기 몸 앞으로 바짝 당겼다.황제가 된 후 이렇게 감미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어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입술에 다시 입맞춤을 했고, 원경릉은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우문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단단하고 힘
원경릉이 오늘 출궁하지 않은 대신 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보기 위해 입궐했다.원경릉은 어젯밤 이리 나리 저택에서 본 그림자를 떠올리자,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알고, 어쩌면 몇 년 후의 안풍 친왕비가 그리운 사람을 보기 위해 돌아온 것일지도 몰랐다.안풍 친왕비에게 안으로 들어와 앉으라고 한 뒤 차를 대접하는데 안풍 친왕비가 바로 얘기를 꺼냈다. “우리 내일 현대에 돌아갔다 올 건데, 전할 거나 할 말 있으면 전해 줄까?”“돌아가시게요?”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 ‘자기 입으로 여기 남겠다고 하지 않았나?’“일이 좀 있어서 한 번 다녀와야 해. 곧바로 돌아올 거야.”“아하.” 원경릉이 안심했다. 정말 현대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르신들은 열받아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다섯째에게도 한 번 물어봐, 아이들에게 전할 말 있는지. 네 큰할아버지 말로는 어젯밤 얘기하는데 다섯째는 줄곧 애들 얘기뿐이었데. 굉장히 그리워하는 거 같더라며.”“알았어요. 있다가 물어볼게요. 언제 가셔서 뭐 하시는 거예요?”“주 꼬맹이 데리고 가서 검사받으려고, 어젯밤 머리가 아프다고 소리치더라고. 자세히 물어보니 요즘 머리가 자주 아팠다고 해서, 좀 일찍 가서 재검을 받아 보려고 해. 할머니와 상의해 봤더니 돌아가서 검사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가야지.”“두통이요? 심해요?” 원경릉은 긴장이 됐다.“더 심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가서 검사받으려고. 문제를 알면 바로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원경릉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렇죠. 주 재상은 마마께 맡길게요. 고마워요.”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흘겨봤다. “그런 말 듣는 게 영 익숙해 지지가 않네. 주 꼬맹이는 내가 아기 때부터 키운 아인데…. 됐어. 그만하자. 어쨌든 결석한 시기가 있으니까.”원경릉은 안풍 친왕비가 뭔가 아쉬워한다는 걸 눈치챘다. 이 아쉬움은 계속 주 재상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지금 같이 편안한 만년을 보내고 있
안풍 친왕비는 재검을 받으러 주 재상을 데리고 가고, 무상황과 소요공은 원래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걸 돕거나 가끔 휘종제에게 효를 다하곤 했다.북당 쪽은 박원과 소홍천이 이미 풍도성에 도착했다. 부임하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잔당을 진압한 것이 효과가 있었으나, 일부 잔당은 도망쳐서 경성으로 떠났다.박원은 어쨌든 신임 관리인이라, 안지여의 결사대만큼은 그 땅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그들도 풍도성에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다. 잔당들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그들이 경성으로 가서 황제를 암살하려 들까 걱정된 나머지, 바로 서신을 써 경성으로 전서구를 보냈다.우문호는 전서구를 받은 뒤, 경성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엄중하게 조사하도록 성지를 내리고, 성문에 검문소를 설치해 바깥에서 경성으로 들어오거나, 풍도성에서 온 무공을 하는 사람은 전부 밀착 조사를 받게 했다.이리 나리 말에 따르면 그날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참여한 다수가 무림 사람들이였다. 그들이 당일엔 안지여를 보호하지 않았던 게, 일이 이렇게 심각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나중에 안지여에게 일이 터지자 풍도성도 안풍 친왕에게 제압당해 그들도 한순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 안지여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 강호인의 특징이 의리를 중시하므로 반드시 안지여를 위해 복수할 것이며, 특히 안지여의 결사대 부하 전부를 재판에 회부한 것이 아니라 그게 결국 복병이 될 것이라고 했다.우문호가 이렇게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 선생이 늘 의대를 가느라 출궁하는데다가 곁에 사람들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자객을 만나면 원경릉 무공이 허접해 사고가 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검열을 강화하라는 성지를 내린 뒤, 서일과 구사 두 사람에게 원경릉과 출입을 함께 하며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도록 했다.사실 우문호도 아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예전에 솜방망이 같은 주먹과 발차기가 익숙해져 사람을 몇 명이라도 더 보내 지키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문호는 역시 직접 계란이를 봐야 안심이 돼서, 그들에게 밖에 서 있으라고 하고 원경릉과 살금살금 문을 밀고 들어갔다.방안이 하도 캄캄해서 조심조심 들어가던 우문호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한밤중에 가끔 올 때, 계란이가 밤중에 일어나 밤 수유하기 편하도록, 방에 등을 켜져 있었는데 오늘 밤은 어째서 등이 켜져 있지 않은 거지?우문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얼른 나가서 풍등을 가지고 들어와 막 문을 들어서는데 원경릉이 발아래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원 선생, 당장 발 들어!”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발을 들고 고개를 숙여보니, 발 아래는 영양실조에 걸린 깃털 하나가 있었다.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집어 들으며 물었다. “계란이의 신조 털이네, 어? 신조는?”신조는 원래 방 안 새장에서 살고 있는데, 낮에 계란이가 일어났을 때나 내보내 주지만 지금은 새장이 열려있고 신조는 보이지 않고, 깃털 하나만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우문호의 안색이 돌변해 서둘러 풍등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침실 안에선 유모들이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발소리를 듣고 황송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 황후 마마께서…?!”황제와 황후가 늘 밤에 오곤 하기에 별생각 없이 일어나 예를 취하는데, 황제가 벌써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침대엔 이불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문호는 얼른 방안을 살펴보다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성을 잃고 계란이를 부르며 바로 달려 나갔다.“맙소사!” 유모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할 말을 잃었다. “공주마마? 공주마마는?”원경릉이 새장을 자세히 본뒤 우문호가 계란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말할 겨를도 없이 우문호가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순간 안색이 돌변하며 따라가 보았는데, 계란이는 보이지 않았고 유모들은 울고 있었다.“어떻게 된 겁니까? 누가 들어온 겁니까?!”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하지만 유모들은 모두 얼이 빠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
구사가 잡힌 자들을 끌고 가 엄히 형벌을 가해도 공주의 행방을 불지 않았다.그저 이구동성으로 자객은 총 12명이며, 죽은 세 사람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 잡혀 왔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공주를 데려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다.우문호는 평소 어떤 상황에 처해도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원 선생과 아이는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서둘러 사람들 배치해 궁 안을 수색하게 하고, 구사와 금군과 함께 찾으러 나섰다.성문은 밤이라 닫혀 있었으며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도 성을 나간 사람이 없다고 했고, 의심스러운 사람이 나타난 일도 없었다고 했다.경조부에 신속하게 어명이 하달되어, 공주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한참 잠을 자던 제왕이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사람을 데리고 출두했다.늑대파, 숙왕부 노인, 여러 친왕이 전부 경악해, 대대적으로 경성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다음날 해가 떴으나 여전히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가운데, 의심스러운 사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우문호는 조회에 나가지 않았고, 이렇게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지자, 경성 전체에 공주마마의 실종 소식과 어젯밤 황궁에 자객이 들었던 일이 쫙 퍼지면서, 안지여의 잔당이 한 짓임을 다들 속으로 예상하고 있었다.우문호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우선 궁으로 돌아갔다.우문호는 괴롭고 초조했으나 원 선생이 분명 자신보다 더 괴로울 것이기에, 우선 돌아가서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그녀부터 위로하기로 마음 먹었다.소월전에 돌아오자, 녹주가 원 선생이 계란이 방에 갔다고 했다. 힘든 마음으로 계란이 방으로 가자 원 선생이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앉아서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우문호는 한숨을 내쉬고 다가가 원 선생을 안는데, 면목이 없고 괴로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렀다. “미안해, 계란이를 찾지 못했어…”원경릉이 눈을 뜨고 살짝 우문호를 밀어내며,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물었다.“전부 죽은 거야?”“응, 온 경성을 다 둘러보았는데.. 지금
이틀 동안 연달아 수색을 했으나,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다.하지만 성문 쪽에서 사람을 한 명 색출해 냈는데, 그자는 안지여의 옛 부하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한 내용이, 경성에 들어온 사람은 총 30명이고, 그날 밤 궁으로 들어간 자객이 몇 명인지까지는 모른다고 했다.구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 성을 수색해 그 자가 말한 사람들을 전부 색출해 냈다. 잡아놓은 12명과 같이 30명 전원을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으나, 아무리 형을 가해도 공주는 납치하지 않았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리고 12명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황궁에 들어온 적도 없다고 했다.그러자 우문호는 황궁 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에 누군가 경비의 틈을 남겨놓았을 것으로 의심했었는데,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금군 한 명이 자객에게 은자를 받고 일부러 금군을 유인해 자객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우문호는 황제가 된 이래 처음으로 사형을 명했다. 감히 황궁에 잠입해 황제를 해치려는 자객과 내통하다니, 구족을 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성은이 망극하고도 남을 지경이다.….계란이가 실종된 지 사흘째, 계속 된 감감무소식으로, 우문호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성격이 완전히 거칠어졌다. 계란이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원경릉마저 마음이 초조해졌다.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가운데 안풍 친왕 부부와 삼대거두가 경성에 도착했다.안풍 친왕 부부는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새 한 마리를 들고 마차에 올라 궁으로 들어왔다.궁문에 있던 사람이 안풍 친왕비가 마침 실종된 공주마마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뒤 바로 달려가 황제에게 보고했다.안풍 친왕 부부에 안겨져 있던 아이가 바로 계란이였던 것이다! 우문호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상태로 얼른 계란이를 품에 안았는데, 계란이는 아주 얌전하게 품에 폭 안겨있는 모습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원경릉도 울며 계란이 얼굴을 쓰다듬고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풍 친왕비에게 물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