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 뒤에 몇 자가 더 적혀 있었는데 제왕에게 상대천 안건을 철저하게 다시 조사하라고 써져 있었다. 우문호는 다른 사람을 통해 원경릉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알고보니 전서구에 묶어 보낸 게 아니었다. 전서구의 다리에는 ‘걔 뭐야’라는 종이 한 장만 묶여 있었고, 다른 편지를 써서 파발을 시켜 아내에게 보냈다.그렇게 그날 밤 원경릉이 우문호의 편지를 받았는데 사촌 소형과 같이 술을 마셨고 교방의 여자들을 불렀으나 그 여자들은 한쪽에서 술을 나르기만 했다는 것이다. 노래도 듣고 싶지 않았는데 곁에서 시중드는 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그리고 취월이 우문호에게 접근하고 접촉하려는 시도를 몇 번 했으나 우문호가 물러나라고 꾸짖었다고 했다. 못 믿겠으면 전진 장군이나 사촌 소형에게 물어보라고 했다.제왕이 사촌 소형에게 가서 물어보니 확실히 우문호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날 밤 우문호는 술을 조금 마시고 기분이 상해서 취월이를 한바탕 꾸짖었는데, 이유는 바로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 필요 없다는데도 취월이가 몇 차례나 들러붙었기 때문이라 했다. 한 번은 술을 가슴에 뿌리고 우문호 몸에 비비려는 걸 우문호가 바닥으로 밀쳐서 그날 술자리는 기분이 별로 좋은 않은 채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원경릉이 이 사실을 알고 탕양을 홍주부로 보내 상대천에 대해 알아보게 하고 백성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홍주부 관할에 있는 현의 다른 관리들에게도 상대천의 재임 기간의 공적을 물어봐서 이부와 맞춰보도록 했다. 전에 이부에서는 매년 관리들의 인사고과를 진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분부를 마치고 원경릉은 취월을 초왕부로 불렀고, 취월은 단장을 마치고 초왕부에 가 원경릉을 만났다.원경릉을 본 순간 취월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는 아이를 몇이나 낳고, 또 임신을 했다고 들어서 분명 원경릉의 얼굴이 초췌하고 늙어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자비는 화장도 하지 않고 소박한 의상에 간단하게 머리를 빗어 올리고 깨끗한 운두벽옥 비녀를 했는데도 아름다워 그 누구도 눈을 떼지 못할
원경릉이 취월에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 당신이 태자 전하와 정말 뭔가가 있었다면 나도 당신을 만나지 않았을 테니까.”취월이 냉소를 지었다. “태자비 마마는 안 믿으시나요? 지나치게 자신이 넘치시네요. 한 여자에게만 전심을 다하는 남자는 없어요. 특히 태자 나리 같으신 분은 더욱 그렇죠. 하지만 태자 나리는 저와 우연히 만나 즐기셨을 뿐으로, 분명 이슬처럼 투명하고 영롱한 여자가 나타나 태자 나리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죠, 단지 시간이 빠르냐 늦냐 차이일 뿐.”원경릉이 답했다. “호접 아가씨 말도 일 리가 있네. 허나 나와 태자 전하 사이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우리들 문제지, 아가씨와는 상관 없으니 쓸데없는 데 참견할 필요 없어. 아가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아가씨 아버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니깐.”취월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제.. 제 아버지요?”“응,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지?” 원경릉이 온화하게 물었다. 자식의 눈에 보이는 아버지는 때론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참고할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어떻게 훈육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취월의 눈에 격분한 기색이 완연해졌다. “우리 아버지는 죄를 지으실 분이 아니세요. 청렴결백하신 관리로 근면하게 정사를 돌보시고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교묘하게 사리사욕을 취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고, 첫째 황자의 일에 가담하신 일도 당연히 없으셨어요.”“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원경릉이 반문했다.“당연히 알죠!” 취월은 격분해서 벌떡 일어나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지방관이 되는 건 최대의 행복이라고요. 경성의 서열다툼에 끼어들이 않을 수 있을테니 말이죠. 첫째 황자는 평범하고 잔학하신 성품이라 태자에는 적합하지 않으시다고 했는데 그런 아버지께서 어떻게 서열다툼에 끼어드셨겠어요?”“네 아버지는 우문군이 발탁한 인물인데 뒤에서 이렇게 우문군을 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원경릉이 물었다.취월이 흥분하고 놀란 나머지
원경릉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원용의가 와서 얘기했을 때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었다. 우문호는 믿었지만 취월이라는 기생이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태자를 모함하는 게 수상했다. 그래서 누군가 태자의 명성을 해치려고 지시한 것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원경릉이 계속 그녀를 궁지로 몰아간 것은 취월의 뒤에 누가 있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취월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원경릉은 요즘 몇년간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라게 되었다.그동안 태자 부부를 노리는 일이 쉬지 않고 일어났고, 이제 겨우 평온한 일상을 되찾나 싶었다. 그런데 또 다시 그런 일이 나타나니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취월은 개인적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취월은 지부의 딸로 금지옥엽 귀한 출신의 아가씨니 당연히 기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운명이 관기라 죽을 수도 없으니 그까짓 우아 좀 떨고 거만하면 좀 어때?원경릉이 기라를 시켜 상호접을 일으키게 한 뒤 말했다. “우선 기방으로 돌아가지 말고 잠시 머물 곳을 찾아 줄 테니, 아버지 사건을 다시 조사한 뒤에 네 아버지가 누명을 쓴 것이 밝혀지면 다시 처리하도록 하자.”취월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건을 다시 조사한다고요? 우리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거야.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는 사실에 따라 달렸지. 상대천이 만약 정말 무고하신 거면, 태자 전하께서 가만히 좌시하고 계시지만은 않을 거야.”취월이 당황해서 원경릉을 바라보고 바로 눈물을 터트렸다. “하지만 태자 전하께서는 절 아주 미워하셔서 제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날 복덕헌에 갔는데 태자 전하의 신분을 알고 일부러 접근했어요. 일부러 꼬시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태자 전하 덕에 아버지께서 감옥에 계실 동안 좀 도와드릴 수 있지 않을까 했던건데, 태자 전하께서는 그런 행위를 아주 질색하셔서 절
우문호는 오주부에서 한 달도 채우지 않고, 보름 만에 먼저 경성으로 돌아왔다. 반면 왕강은 오주부에 남아 현지 실질 조사와 부지 선정을 하며 호부에서 은자가 내려오는 대로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우문호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처음 한 일은 상대천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었다. 상대천 외에 사건에 관련된 다른 관리도 다시 한 번 일제 조사를 거쳐 재능이 있고 헛된 야심에 동조하지 않았던 자의 누명을 모두 벗겨주었다.취월은 태자를 모함한 죄로 인해 경조부에 압송해 하옥했으며, 징역 6개월을 선고해 일벌백계로 삼았으나, 그 일로 태자는 오주부에서 원 선생이 화낼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취월에게 3개월의 형량을 추가했다.화류계 병이 돈 사건은 관리들이 도무지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고발하는 자에게 현상금을 걸었는데, 병에 걸린 기생과 관계를 맺은 자가 누구인지 아는 자는 무조건 상금을 주고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으며, 고발자의 신분은 절대로 외부에 공포되지 않는다. 이렇게 삼엄하고 신속한 조치를 통해 병에 걸린 관리는 전부 파면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태자의 작은 조정에 있던 관리도 있었으나 냉정하게 파면시켰다.태자는 어사대를 다시 가동해 신하들과 조정을 감찰해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든 친왕과 군왕이든 규정을 어기면 전부 탄핵하도록 했다.이렇게 대대적인 소탕 후 탐관오리가 싹 다 조사해서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큰 소리치자 관아에서는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명원제는 냉정언에게 태자의 이번 대대적인 조치가 지도자의 풍모로는 충분하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고 했다. 탐관오리라는 직책은 경성의 관리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지방 관리도 해당되기 때문이었다.냉정언이 명원제의 말을 듣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 “폐하, 탐관오리를 정리해서 척결하는 일은 지지부진해서는 안 됩니다. 지지부진한 건 엄밀한 의미로 장려하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탐관오리들은 처벌은 그다
사실 원씨 집안에서 일찌감치 산파를 구해 며칠을 초왕부에 가서 살게 했다. 그런데 산파가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잔소리를 해대니 사식이는 귀찮아져 산파더러 일단 돌아가라고 하고 출산이 임박하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태자비가 있으니 사소한 문제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바로 낳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원씨 집안에 알리자마자 산파가 달려왔고 원씨 집안 사람과 원용의도 앞다투어 도착했다. 원노부인은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다.산파는 태자비가 회임했다는 말을 듣고 산실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는데, 검사했을 때 사식이의 태아는 안정적이였고 위치도 문제 없었고, 사식이는 무공을 했던 사람이기에 아이도 문제없이 나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원씨 집안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서일은 관아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열이가 와서 사식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다리가 부러져라 미친듯이 달려 초왕부 문 앞에 도착해서야 퍼뜩 자기가 왜 말을 타고 오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모두가 정신 없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바로 대문 앞까지 바로 달려갔으나 문 앞에서 막으며 사식이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했다. 속이 타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직 안 낳았으니 들어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마구 소리쳤다.서일이 사식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로 원 부인이 나서서 진정시켰다. “조급해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게. 조금만 있으면 곧 나올 거야. 사식이는 몸이 좋잖냐.”“장모님, 들어가서 한 번만 보면 안 될까요? 딱 한 번만이요!” 서일이 애처롭게 애원했다.원경릉도 따라서 애원했다. “저도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사식이도 서일이 있어야지 안심 할 수있을 거예요.”원 부인은 태자비까지 나서서 애원하고, 자신의 사위 이마가 땀으로 흥건한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뀐 듯 말했다. “좋아, 들어가봐, 하지만 너무 오래 있지는 말.... 아니 이 사람들 어디 갔어
사식이가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못 참고 소리를 마구 지르자, 서일은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찢어질 듯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신 입으로 중얼거렸다. 원경릉이 자세히 들어보니 제발 도와달라고 신께 빌고 있었다.원경릉은 서일의 모습이 웃겼지만 비웃지 않고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요, 엄마는 강한 법이니까. 잘 버텨낼 거예요.”그러자 서일의 눈가가 붉어졌다. “앞으로 애 다시는 안 낳게 할겁니다. 다시는 안 낳을 거예요. 태자 전하는 진짜 악당이에요. 태자비 마마께서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게 하시다니, 정말 너무 비참해요.”뭔가 이 말은 좀 아닌 것 같지만 서일스러웠다.서일은 바닥에 털썩 앉아 두 손으로 떨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앞으로 사식이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절 때리든 욕하든 가만히 맞고 있을 거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서 기쁘게 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아무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전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으니까 사식이한테는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사식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식이는 강한 여자예요. 다쳐서 제가 상처를 치료할 때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아프면 지금 이런 비명을 지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라도 빕니다.. 사식이는 무사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사식이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자 서일이 펄쩍 뛰어오르며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가 소리쳤다. “법도가 어쩌고 난 몰라. 같이 있을 거야!”서일의 위세는 잠시를 못가고 곧 바로 원 부인과 원씨 집안 다른 여자들에게 떠밀려 비틀대다가 바깥에 고꾸라졌고 그렇게 문은 다시 닫혔다.원경릉은 서일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영 아닌 것 같아 물었다. “상황이 어때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원용의가 안에서 답했다. “들어올 필요 없어요, 원 언니. 사람은 충분하고 곧 나을 것 같아요.”원경릉이 말했다. “그래, 난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안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깨끗하게 닦은 후 산실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서일이 마침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일은 마치 안개 속을 거닐 듯 허우적대며 애는 볼 생각도 못 하고 사식이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서일이 사식이를 끌어안더니 사식이의 피로한 얼굴을 보자 안쓰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목이 메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저 서글픈 목소리로 ‘사식아’ 라고 부르기만 했다. 사식이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있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그제야 기운이 조금 되살아난 듯 했다. 방 안 사람들도 정신이 없어 아무도 아이를 안고 와서 사식이에게 보여주지 않아 사식이는 자기가 돼지 새끼를 낳았는지 원숭이 새끼를 낳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게다가 서일이 들어와 자신을 끌어안고 우니, 사식이는 그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원경릉도 들어와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식아, 어때?”사식이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쉰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뭘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일이 제 아들이 된 것 같네요.”서일이 얼른 일어나 눈물을 닦고 사식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책임질 수 있어. 내가 당신 모......”서일은 그제서야 자신의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뒤를 돌아보니 원용의가 벌써 아이를 안고 와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제부, 사식이가 제부를 위해 금지옥엽을 낳아줬네!”서일은 사식이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를 가만히 쳐다 보았다. 비록 지금 서일 마음에는 사식이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득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보긴 봐야 했다. 주름이 쪼글쪼글한 얼굴에 콧잔등에는 누르스름한 얼룩같은 게 있는 못생긴 딸을 말이다. 사식이가 임신했을 때 태자가 딸을 좋아해서 서일도 막연하게 딸을 나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소원대로 딸을 얻었고 그래서 기쁘긴 기쁘지만 솔직히 가슴 아픈 게 더 컸다. 애는 한 번 쓱 보고 다시 사식이 곁으로 가고 싶었다. 원경릉이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예뻐, 크면 사식이처럼
서일의 이름 후보를 듣더니, 원경릉은 차라리 자신의 복덩이의 이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일이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온 초왕부에 퍼지며 초왕부 사람들이 전부 와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원 부인은 이전에 준비해 온 현금 봉투 한 무더기를 탁자위에 쏟아 놓고 누가 오든지 전부 동일하게 하나씩 나눠주었다.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십황자를 데리고 와서 현금 봉투를 받았는데 십황자가 봉투를 쥐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원래 여동생이 생길 거였는데.”그러자 만두가 주먹을 휘두르며 무섭게 말했다. “또 어리숙한 척 했다간, 내가 가만 두나 봐!”찰떡이도 못 참고 한마디 보탰다. “딸을 낳으셨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데, 울긴 왜 울어? 예의 없기는 정말. 나중에 탕대인한테 다 이를 거야. 찰싹 때려주라고 해야지!”탕양은 지금 십황자를 지도하는 전권을 책임지고 있는데, 십황자는 냉정언 얘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탕양이 기초부터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탕양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 십황자가 황자의 신분인 것을 상관하지 않고,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굴면 무조건 엄히 벌해서 십황자는 탕대인이란 세글자만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울음소리가 뚝 그치자 세 조카들이 십황자를 초왕부쪽 작은 마당으로 끌고 갔다.우문호도 이부 관아에서 서둘러 탕양과 앞다퉈 돌어왔다. 우문호는 축하 인사를 하고 홍바오를 집은 뒤 한없이 부러워했다. “서일 이 바보 같은 녀석,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다더니 정말로 천금처럼 귀한 딸을 얻었구먼.”“분명히 원하는대로 되실 거예요. 태자 오빠!” 원용의가 이제는 우문호를 무서워하지 않고 웃으며 앞으로 나와 축복해 주었다.“고마워. 만약 진짜 그렇게 되면 반드시 너한테 엄청난 선물을 주고 우리 조카에겐 금 젓가락 한 쌍을 선물하도록 하지!” 우문호가 즐겁게 말했다.서일이 딸을 얻은 것에 우문호는 부럽기도 하고 웬지 모르게 질투하는 마음도 들었다. ‘서일 이 녀석이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다니.. 서일이 어떻게 장인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