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주재상의 눈으로, 원경릉은 그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절대적으로 불길한 일이었다.하지만 건곤전에는 사람이 많아 당분간 묻기 곤란해 원경릉은 주재상이 이미 상당히 호전되었으니 다른 곳에 묵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했다. 건곤전에 사람이 많아 쉬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병자가 쉬는 일과 관련된 지라 태상황은 당연히 허락했고 주재상은 원래 머물던 곳에 묵게 되었는데 상황이 호전되어 한시름 놓아 소요공에게 농담까지 던졌다.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좀 걸리적 거려. 난 희야랑 단둘이서 있고 싶거든.”소요공이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 “눈치 빤한 사람들끼리 염라대왕 한번 보고 왔으면 속 얘기 좀 해야지 말이야!”희상궁이 소요공을 흘겨보더니 몇 분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주재상이 죽을 먹으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으나 눈빛은 여전히 어두운 회색 빛이 맴돌았다.그는 죽을 먹은 뒤 약을 마신 후 원래 있던 전각으로 옮겨졌다.원경릉이 들어가 주재상을 똑바로 눕히고 자리를 잡은 후 희상궁을 불러 주재상에게 뜨거운 물을 끓여주라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빙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원경릉이 주재상에게 물었다. “제가 뻗은 손가락이 보이십니까, 재상?”원경릉은 주재상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주재상은 보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태자비 마마, 안보입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저들에게 말하지 마세요. 일단 저들이 한숨 돌리고 며칠 쉬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조급한 나머지 열이 치받쳐요.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자꾸 타격을 입으면 안됩니다.”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희상궁은 알 거예요.”주재상이 말했다. “일단 감추죠. 한 시진이라도 기뻐할 수 있으면 그 한 시진은 감춥시다. 희상궁이 저를 가장 많이 챙기는데 제가 눈이 안 보이는 걸 알면 또 얼마나 슬퍼하겠어요.”원경릉이 말했다. “그래요, 재상 말씀대로 하죠. 하지만 재상도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우문호가 저녁 무렵 입궐하자 원경릉이 그에게 주재상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다.우문호는 오늘 회의로 피곤한 이유가 관계 수리가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주재상의 소식까지 들으니 마음이 아픈듯 해 보였다. 원경릉을 품에 안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요즘엔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지?”원경릉도 가만히 우문호 품에 안겼다. 며칠간 다들 정말 지쳤다.처음엔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안일하고 느긋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원, 전보다 더 조마조마한 나날이었다.우문호의 목소리가 원경릉의 귓가에 쟁쟁 울렸다. “여기 북당은 걱정할 거리 정말 투성이야. 내가 왜 이렇게 당신 고향에 돌아가고 싶냐 면 거기는 북당이 없고, 내가 걱정할 일이 없어. 그저 우리 가족만 있지. 난 매일 오늘은 어디 가서 놀까 하는 소소한 고민만 하고 싶어.”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그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주진 쪽에서 아직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호수에 뛰어들 수만 있으면, 원경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주재상을 데리고 뛰어내렸을 것이다.“됐어, 이따금 한 두마디 터트려야 또 살아가지. 줄곧 부정적으로 매일을 어떻게 보내.” 우문호가 원경릉을 풀어주고 초췌한 얼굴을 보더니 마음이 아팠다. “입궐한지 며칠 지나니까 얼굴이 영 말이 아니네.”“주재상이 좋아지면 다시 잘 먹을 수 있을거야.” 원경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건곤전 밖으로 나갔다. 부부가 산책하는데 바람이 불어 머리가 맑아지며 어두운 구름이 걷히는 것 같다.“맞다,” 우문호가 갑자기 눈썹을 찡그리고 원경릉을 보며 말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관도에 다수의 병사들이 말을 달려 경성으로 향한다 던데 그게 안풍친왕의 병사들 같다고. 섬전위, 흑영위 있잖아. 그리고 이리 나리가 그러는데 자기가 기르고 있는 회색 늑대도 안풍친왕이 전부 빌려갔는데 어디에 쓸 건지 모르고 있더군. 설마 전
원경릉은 황귀비 일을 우문호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우문호가 지금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해도 가끔 욱할 때가 있기에 지금 시점에 황제를 들이받는 건 영 아니기 때문이었다.우문호는 들어가 태상황과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바로 주재상 상태를 보고 건곤전을 나갔다. 사실 공무가 바빠 궁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문호는 건곤전을 나서며 오랫동안 황귀비 마마한테 문안을 드리지 못했음을 떠올렸다. 사고가 일어난 날 건곤전을 지키던 황귀비의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문안 하러 간 김에 몇 마디 당부의 말도 올려야지 생각했다.우문호가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구사가 큰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어디가? 난 이제 곧 교대인데 홍엽이랑 냉대인이랑 같이 한 잔 안할래? 요즘 너무 심심해서 재미난 일 뭐 없나 싶네.”“술 마실 시간 없어. 일이……” 우문호가 잠시 뜸을 들여 생각하더니, 제방 수축하는 일에 관해 마침 냉대인의 의견을 듣고 싶던 참이기에 언젠가 한번을 날을 잡아야 했으므로 말을 바꿔 대답했다. “그래, 일단 황귀비 마마께 먼저 문안 인사부터 드리고.”“황귀비 마마? 그럼 잘못 왔어. 황귀비 마마께서는 이미 장문전으로 침전을 옮기셨어!” 구사가 말했다.우문호가 놀라서 물었다. “왜?”구사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말했다. “황제 폐하와 다투셨대. 호비 궁 사람한테 듣기로 황귀비 마마께서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진찰하지 못하게 하셨다더군. 황제 폐하께서 화가 나서 황귀비의 따귀를 때리고 황귀비 마마께서 상심한 나머지 후궁의 권한을 내려놓고 장문전으로 옮겨 가셨대.”“정말이야?”“이런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호비 궁 사람 입으로 따귀를 심하게 때리셨다고.” 구사도 마음이 영 좋지 못한 것이 궁에서 일직을 서고 있으면 황귀비가 늘 구사를 챙겨 주셨다. “그리고 폐하께서 최근 채명전 사람들 전부에게 벌을 내리셨어. 호비 마마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곤장을 맞고 십황자도 곤장을 맞았다더군. 십황자는 곤장을 맞고 많이 얌전해
그러자 우문호가 소리쳤다. “잘못인 줄 아시면서 왜 사과하지 못하십니까?”“짐은 천자니라!” 명원제가 일갈했지만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닫. “호비 마마께는 사과하신 적이 있으시죠? 호비 마마마저도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왜 어마마마께는 하실 수 없는 겁니까?”명원제가 관자놀이를 누르는데 시퍼런 핏줄이 불끈거리고 말투도 차갑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다 떠들었어? 언제부터 짐과 비빈의 일에 태자의 의견을 들어야 했지? 짐이 어쩌다 태상황 폐하의 말씀은 들을 수 있지만, 네 의견까지 들어야 해? 넌 네 주제가 뭔지 알고 있느냐?”싸움이 커지는 것을 보고 목여태감이 얼른 앞으로 나와 우문호를 말렸다. “전하 그만하세요. 부자 지간에 말다툼이 생기면 화목을 해칩니다. 어서 잘못했다고 빌고 가시지요!”목여태감의 이 말은 우문호에게 권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명원제 보고 들으라는 소리로 부자의 정을 생각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들된 도리로 어마마마를 위해 한 마디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이 일은 집안일로 처리 해야지 물불 못 가리고 군신관계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소리였다.목여태감이 명원제의 시중을 오래 들어왔기 때문에 목여태감이 명원제를 알듯 명원제도 목여태감의 말을 못 알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명원제도 분노를 조금 가라앉히고 우문호를 대했다. “넌 일단 돌아가거라. 짐이 있다가 장문전으로 가볼 것이니 더는 이 일로 소란하게 하지 말도록 하거라. 짐은 너와 부자의 화목을 상하고 싶지 않구나.”우문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마마, 소신이 어찌 아바마마와의 화목을 상하게 하고 싶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어마마마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것으로, 지난 세월을 함께 해온 어마마마를 보시고 아바마마께서 평하시기를 온화하고 공손하며 검소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질고 덕이 있다고도 하셨죠.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지키고 싶지 않는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마마마는 아바마마를 떠올리고 서운한 마음을 삼킨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
명원제는 주필을 손에 쥔 채 복잡한 심경으로 호비한테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아이를 잃은 명원제도 마음이 괴로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예전이었으면 황귀비에게 가서 차를 마시며 얘기 하다 보면 지혜로운 황귀비가 명원제의 근심을 덜어주며 자신의 마음을 한결 가볍고 명랑하게 만들어 주었다.하지만 황귀비가 장문전으로 옮겨간 것을 보면 명원제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가도 아마 황귀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걸 듣게 될 것이고, 지금 속이 너무 시끄러우니 황귀비가 징징거리며 애원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속으로 황귀비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한참 뒤 명원제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짐이 한동안 황후를 만나러 가본 적이 없구나.”“황후 마마는 금족 중으로 재상이 사고가 났을 때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폐하…… 께서 성은을 베푸사 황후 마마께서 재상을 보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인지요?” 목여태감이 물었다.“짐이 황후에게 금족을 해제한지 오래 되었으니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명원제는 황후가 보기 싫어졌다. 방금 순간적으로 과거 시절이 떠올라 잠시 행복했지만 부부의 정이 다했으니 다시 본다해도 딱히 할 말도 없었다.“짐이 진비를 보러 가지.” 명원제가 벌떡 일어났다. 우문군이 죽은 뒤로 진비와 말 해 본 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목여태감이 눈을 들어 아뢨다. “폐하, 장문전에 한 번 가보심이 어떠신지요?”명원제가 싸늘하게 목여태감을 노려보았다. “그 말은 진비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떤가?”목여태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명원제가 진비 궁으로 가겠다고 하시는 걸 굳이 장문전으로 가시라고 청한 걸 진비가 알면 목여태감을 아주 잡아 죽이려 들 것이다.진비는 황제가 다시 그녀를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황제의 가마가 도착했다는 전언을 듣고 진비는 미친듯이 감동해서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그리고정말 황제가 온 것을 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부들거리
명원제는 진비 궁에서 저녁 수라를 들고 같이 앉아 옛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힘든 추억이 떠올랐으나 다행히 명원제가 닥친 고통은 해소 되었다.“넌……넌 누구냐? 어째서 함부로……” 순간 대경실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더니 곧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멈췄다.명원제가 살짝 놀라 주렴밖에 서있던 목여태감에게 분부했다. “가서 무슨 일인지 보고 오너라!”“예!” 목여태감이 돌아서자 퍼뜩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자를 견제하려는 찰나 검은 그림자의 손 날이 잽싸게 목여태감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목여태감은 순간 둔탁한 통증을 느끼고 머리가 윙윙거리더니 기절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 앞에 검은 그림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주렴이 걷히고 다시 내려지자 거대한 그림자가 주렴에 가려지는 게 이내 진비 궁 안으로 들어갔다.명원제 표정이 진노에서 경악으로 바뀌며 소리쳤다. “큰아버지?”진비는 깜짝 놀랐다가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보고 기분이 상해져서 말했다. “친왕께서 어찌 후궁으로 곧바로 쳐들어 오십니까? 이곳은 제 침전으로 친왕께서는 언행을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안풍친왕이 냉담한 눈빛으로 진비 얼굴을 쏘아보자 진비가 바로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아니……”“나가!” 안풍친왕이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침전이 울리도록 묵직하게 말했다. 마치 메아리라도 들릴 듯 위력이 정말 대단했다.진비가 명원제를 보자 명원제가 손을 내저었다. “당신은 이만 나가봐!”진비는 안풍친왕이 좋은 뜻으로 온 것이 아님을 보고 얼른 예를 취하고 자리를 떴다.이제 침전엔 두 남자가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풍친왕은 키가 190으로 훤칠해서 신장처럼 장대해 명원제라는 유약한 군주를 압도했다. 명원제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서 물었다. “큰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명원제는 주렴밖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목여태감을 흘끔 보고 순간 아차 싶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목여태감을
안풍친왕이 눈꼬리를 치켜 뜨고 말했다. “소리칠 필요 없네.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황성을 포위 했다. 모든 금군은 전부 내 통제 하에 있고 오늘밤 내가 자네를 죽이고 내일 보위에 올라도 자네를 도와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이 말에 명원제가 크게 분노했다. “감히 모반하겠다는 것이냐? 간도 크구나. 천하의 사람들이 침 뱉고 욕하는 것이 두렵지도 않나? 아바마께서 이 조서를 인정하실 리가 없어. 만약 짐을 죽이고 보위에 오르면 그건 역적이다. 두고두고 그 추악함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야!”안풍친왕이 냉소를 지으며 승리에 대한 확신을 쥔 듯, 치켜 올린 눈매가 조금 과장된 미치광이 느낌을 풍기기 딱 이었다. “역사는 늘 승리한 사람이 쓴 기록이지. 내가 보위에 오른 뒤 사관들은 명원제가 제위에 있던 기간을 기록하며 공적도 덕도 없고 진부한데다 멍청했다고 기록할 거야. 그리고 내가 천명을 받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았다고 하겠지. 보위에 오른 뒤 우선 네 처첩을 죽이고 네 생전의 공적을 없애 버린 뒤 온 황궁을 피로 한바탕 씻어버리는 거야. 너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을 전부 죽여 없애는 것부터. 과연 앞으로 누가 널 위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지 두고 볼까? 역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쓰여지겠지?”명원제가 너무 놀라서 당황한 듯 물었다. “어떻게..! 그래서 방금 목여를 죽인 것인가?”“죽였지!” 안풍친왕은 마치 개미 한 마리 죽였다는 것처럼 별거 아닌 듯한 말투로 답했다.그러자 명원제는 순간 목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면서 분노가 점점 폭발하기 시작했다. “너……”하지만 안풍친왕은 명원제를 비웃었다. “목여태감 죽이는 걸로 끝일 것 같아? 지금 후궁에 아마 피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갔을 걸. 네가 좋아하던 호비, 네 아들, 다른 비빈들도 아마 저 세상에서 황천을 건너고 있겠지. 좋은 시절은 다 갔어. 우문익.”명원제는 어지러워 하늘이 뱅뱅 돌며 목구멍을 타고 선혈이 넘어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만 뿜고야 말았는데 몸이 몇 번 휘청거리며 정신을 잃기 직전같
명원제는 안풍친왕의 말에 소름이 끼쳐 등골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당장이라도 변명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었다.안풍친왕이 계속 말을 이었다. “태자를 책봉할 때도 모든 친왕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고 네가 편애하는 친왕 중심으로 정했지. 알랑거리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다른 건 일체 고려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마저도 다 무시 했어. 결국 국본을 세우는 일로 형제가 치고 받게 만들다 못해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지. 우문호를 태자로 확정한 뒤로도 넌 마음에 들지 않았어. 늘 잘못 뽑았다고 생각해서 우문안 세력을 키웠지. 태자가 저지하지 않았으면 우문안의 야심은 지금도 여전했을 걸. 어디 문둥산의 일을 돌아볼까? 당시 나라에 조건이 열악하고 주변국에서 여러차례 침략이 있었지. 선비와 북막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나라의 힘의 대부분이 전부 변경에 가 있는 상황이었어. 네가 보위에 오르면 민생을 수습하고 의료, 교육을 개혁할 수 있었지만 넌 아무것도 안 했어. 여전히 전에 아바마마가 어쩔 수 없이 하던 방법 고대로 할 뿐, 유일하게 태자비를 문둥산에 병자를 치료하러 보냈을 뿐이었어. 그러다가 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개혁의 뜻을 세웠어. 요 몇 년 동안 넌 큰 실수를 한 게 없지만 큰 공을 세운 적도 없지. 당초에 북막에 출병하는 것도 넌 여러 번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최적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어. 다행히 태자가 네 말을 안 듣고 몰래 무기개발을 진행시켰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 북당의 황궁은 벌써 피바다가 되었고 네가 보좌에 올라 앉아 신하들에게 호령이나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리고 네 핑계도 고작해야 등극하고 다음해까지 밖에 안돼. 회강 홍수 때 직접 재해지역을 가서 삼일 밤낮 침식을 잊었다는 걸, 사람을 시켜 노래를 만들게 하고 일년간 네 덕을 칭송하게 만들었어. 민간에 일년내내 네가 성군이라는 얘기가 돌면 뭐해, 지금 넌 제방을 보수하지 않아서 재해의 우환이 여전히 상존하는대. 그동안 네가 편안하게 지냈던 건 네가 운이 좋아 서가 아니라 주씨네